리히텐슈타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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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us Liechtenstein


파일:리히텐슈타인 왕실 국장.png

창립일
1608년
창립자
카를 1세
現 수장
한스아담 2세
국가
리히텐슈타인 공국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
2. 역사
3. 현황
4. 공가의 재산
5. 기타



1. 개요[편집]


리히텐슈타인 공국의 공가이다. 약 900년의 역사를 가진 가문이다.

2. 역사[편집]


오스트리아 인근에서 발흥한 귀족 가문으로, 12세기 초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시조인 후고 폰 리히텐슈타인이 가문의 세력을 점차 확장시켰고, 1608년 카를 1세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마티아스로부터 공위를 인정 받으면서 리히텐슈타인 공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리히텐슈타인 가문은 신성 로마 제국의 귀족으로서 과거 합스부르크 제국에 속했던 현재의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체코 등에 있었던 여러 지역에서 많은 영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황제의 직속 제후로서가 아니라 다른 제후의 봉신 자격으로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직속 제후'이어야만 하는 제국의회 참가 자격에 해당되지 않았다. 이를 제국직속령(Reichsunmittelbarkeit)[1]이라 하는데 당시 가문의 당주 한스아담 1세는 제국의회에 참가권을 가진 직속제후가 되기 위해서 당시 제국직속령이었던 파두츠 백작령(1699년)과 셸렌베르크 남작령(1712년)을 구입하였다. 이후 1719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6세가 이 셸렌베르크 남작령과 파두츠 백작령을 합쳐 공국으로 승격시켜주면서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성씨를 따서 리히텐슈타인 공국이라 이름붙였다. 보통 유럽의 귀족 가문은 성씨를 자신들이 통치하는 영지의 명칭을 따서 짓는 경우가 많아 가문의 성씨를 영지인 리히텐슈타인 공국에서 따온 것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실제론 반대로 통치가문인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성씨에서 리히텐슈타인 공국이라는 국호가 유래한 것이다. 오스만 제국,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사례. 리히텐슈타인이라는 성씨 자체는 리히텐슈타인 공국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에 있는 리히텐슈타인 성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 성은 13세기에 상실되었다가 19세기에 복구하여 다시 가문의 소유가 되었다. 어쨌든 이로써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안톤 플로리안 1세는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가 되었고, 공가는 리히텐슈타인 공국을 지배했지만 리히텐슈타인이 아닌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했다.

이렇게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로 얻은 영지라, 가문이 리히텐슈타인 공국만을 다스리게 된 현재 상황에 비춰보면 상당히 아이러니한 사실이지만 당시에는 상술했듯이 이미 보헤미아 왕국에 큰 영지를 가지고 있는 땅부자였던 리히텐슈타인 가문 입장에서는 산골에 쳐박힌 코딱지만한 리히텐슈타인 공국 따위는 제국의회 참가권을 제외하면 크게 부유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영지였기 때문에 가문원 중 1818년까지 리히텐슈타인 공국을 방문한 이가 없었다. 게다가 재위 중인 리히텐슈타인 공이 리히텐슈타인 공국을 처음 방문한 해는 공국 성립 후 100년이 훨씬 지난 1842년이였다. 물론 그나마 처음 방문을 한게 그때라는 거지 공가의 거처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오스트리아 빈에 거주했고 리히텐슈타인 공국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1741년 발발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때는 요제프 벤첼 1세가 리히텐슈타인 공으로서 오스트리아군 기병대를 이끌고 코투지츠 전투에 참전했다. 1938년에는 안슐루스로 인해 공가의 주무대였던 오스트리아에서 리히텐슈타인으로 이주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리히텐슈타인의 경제가 휘청이자 경제 회복을 위해 공가 소유의 예술품을 팔았다.[2] 상술했듯이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현재의 체코슬로바키아 오파바 지역에 1,600평방킬로의 영지[3]를 소유하고 있었으나 해당 지역은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직할통치를 하자않았기때문에 리히텐슈타인 본토와 달리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 독립이후에는 체코슬로바키아 령으로 넘어갔고, 제2차대전 종전 이후 에드바르트 베네시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의 베네시 포고로 인해 리히텐슈타인 공가의 영지를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에 전부 몰수당해서 공가의 영지는 미니국가인 현재의 리히텐슈타인 공국밖에 남지 않게 되었고 현재까지 리히텐슈타인 공국의 군주 가문으로 재위 중이다.

3. 현황[편집]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현 당주는 리히텐슈타인 공국의 군주인 한스 아담 2세이다. 작위는 독일어 원어로는 Fürst라고 하며 한국에서는 대공, 공작, 공(), 후작 등 여러 가지 번역어가 난립하고 있다. 번역 문제에 관해서는 작위/유럽, 프린스, 공작(작위), 후작, 대공국, 공국, 후국 문서의 각 항목을, 통치 작위 Fürst에 관해서는 프린스 문서의 해당 항목을 참조할 것. 참고로 중국에서는 번역이 또 다른데, 모나코와 함께 리히텐슈타인 '친왕국'으로 부른다.

공국 내에서는 가문의 영향력이 상당해서, 법안의 거부권이나 의회의 해산권[4]이 있는 등 제법 권력이 강한 편이다. 전 세계 왕실들의 권한이 날이 갈수록 축소되는 와중에[5] 리히텐슈타인은 이례적으로 21세기2003년의회 해산권, 법관 임명권, 법률 거부권 등을 골자로 하는 왕권 확대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아 통과함으로 공가의 권한이 더욱 강화되었다. 영국BBC에서는 이걸 두고 리히텐슈타인이 사실상 전제군주제 국가가 되었다면서 깠다.[6] 심지어 2012년에는 유럽연합에서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왕권이 비민주적이라는 경고를 받아 다시 법안거부권을 박탈할 것인지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되었으나 80%에 가까운 리히텐슈타인 국민들이 공가가 법률 거부권을 가지는 것이 맞다고 지지했다. 입헌군주제 중에서도 상징적인 왕실치고는 권한이 매우 많다. 영어 위키피디아에서는 리히텐슈타인 공가의 권한을 프랑스 대통령과 비견하였다.

재위중인 다른 유럽 왕실들이 왕위 계승의 법칙을 절대장자상속제로 속속 갈아타고 있는 중에도 고고하게 살리카법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럽연합에서 바꾸라고 했지만[7], 한스 아담 2세는 그 법이 리히텐슈타인 공국 성립 전에 만들어져서 내 마음대로 못 바꾼다고 말했다. 리히텐슈타인 가문은 계승법을 군주나, 정부, 의회에서 바꾸는게 아니라 가문 구성원 전체의 회의에서 결정한다. 문제는 이 집안은 직계후손부터 남초가 극심한 집안이라 어떤 방식으로 투표를 하든 계승법 변경은 부결될게 뻔하고 계승법을 바꾸는 내용이 통과했다고 쳐도 순위가 밀리는 후손들에게 보상을 해줘야 하는데 방계라인까지 다 재산을 퍼줘야 하는 골치 아픈 일이 더 생긴다. 또 남계 자손만으로도 계승권자가 50명이 넘어 계승법을 바꿔야 할 절박한 이유가 없기도 하거니와 현존하는 유럽 왕실은 정치적인 이유로 모계 계승 및 동군연합이 일상이었으나 이 가문은 역설적으로 가문이 작아서 계승권 견제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남계 후손이 많다. 가문 작위가 낮아서 귀천상혼 가드라인이 낮은 것도 도움이 됐다. 역대 리히텐슈타인 공비를 보면 슈탄데스헤어 출신도 몇 있었지만, 통치가문 출신은 같은 리히텐슈타인 가문 출신 1명 뿐이었다. 오히려 비텔스바흐 가문 출신인 현 공세자빈 조피가 급이 높다. 귀천상혼 한계선을 높게 잡은 여러 구 왕가들이 줄줄이 갈려나간 걸 생각해 보면 그리고 가톨릭에 충실하게 다산하는 편이기도 하고, 그렇게 늘어난 후손들의 남녀성비를 볼때 남초 현상이 심해서 오히려 현행대로 놔두는게 최선이다.

가문의 모국어독일어지만 영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를 기본적으로 한다. 가문이 사업을 해 번 으로 국가 예산의 상당 부문을 충당하는 등의 이유로 리히텐슈타인의 세율은 매우 낮다.[8]

이처럼 가문이 국가 예산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권한이 크고 국민들도 인정하고 있다. 한가지 예시로 리히텐슈타인 의회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공세자 겸 섭정알로이스 필리프 마리아가 보수 가톨릭 귀족인 그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는지 나라를 빌 게이츠에게 팔고 국명도 마이크로소프트로 바꾼 후 오스트리아 빈의 본가로 돌아가겠다고 위협했다. 리히텐슈타인은 공가의 가산으로 유지되는 나라라 결국 의회는 알로이스 공세자에게 굴복, 법안을 거부했다. 뉴욕타임즈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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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공가의 재산[편집]


리히텐슈타인 공가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왕실로 한스아담 2세는 76억 스위스프랑, 한화 9조원에 이르는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9] 공가는 주식, 사모주식, 채권, 헤지펀드, 부동산, 사모대출, 보험 연계 등으로 분산 투자해 재산을 운영하고 있다. 또, 공가가 세계에서 가장 큰 왕실 소유 은행 중 하나인 프라이빗 뱅킹 그룹 LGT은행의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다. 한스아담 2세의 차남인 막시밀리안 공자도 LGT가 운용하는 프린슬리 펀드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막시밀리안 공자 뿐만 아니라 현재 리히텐슈타인 공국의 섭정인 알로이스 공세자도 공가의 재산 관리를 맡은 적이 있을 정도로 공가의 일원 대부분이 금융에 대해 매우 정통하다.

리히텐슈타인 공가가 자산을 분산시키는 것은 1938년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나치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로부터 오스트리아에 있던 리히텐슈타인 공가 소유의 부동산을 전부 몰수 당한 이후 확립된 자산을 안전하게 소유하기 위한 자산 운용 법칙이다.[10] 또한 리히텐슈타인 공가는 금융 자산들 뿐만 아니라 높은 값어치의 예술품들과 보물들도 소유하고 있는데, 2차 대전 당시 리히텐슈타인의 경제가 흔들리자 프란츠 요제프 2세가 미술품들을 내다 팔기도 했다. 2018년에는 공가의 보물들이 한국에 전시되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특별전이 열리기도 했다.


5. 기타[편집]


  • 공가의 종교는 가톨릭이다. 리히텐슈타인 공국은 가톨릭 신자 비율이 약 70%에 달한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6 11:57:33에 나무위키 리히텐슈타인 가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영어로는 Imperial immediacy라 한다. 즉 제후와 황제의 중간에 다른 상급 제후를 거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medium) 황제를 직속 주군으로 모시는(immediate) 제후의 권리라는 뜻이다.[2] #[3] 리히텐슈타인의 10배에 달라는 크기의 땅이다.[4] 오늘날 내각제 국가에서 국가원수(군주나 대통령)가 거부권이나 의회 해산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국가원수가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독자적으로 해산 여부를 결정하는 경우가 드물다. 거부권은 사실상 행사하지 않으며, 의회해산정부수반(총리)이 사실상 해산을 결정하고 국가원수가 이를 최종 확인만 해주는 역할을 하거나, 총리의 의회 해산 요청이 있을 때만 국가원수가 해산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되는 식이다.[5] 스웨덴 왕국1974년 국왕의 작위 수여권을 비롯한 그나마 남은 형식상 권력마저 모조리 박탈했고, 네덜란드 왕국베아트릭스 여왕 시절에 왕권이 크게 축소되었다.[6] 굳이 따지자면 바티칸은 전제군주제에 더해 신정 국가이기까지 하다. 물론 리히텐슈타인이나 바티칸 같은 나라들은 아주 작은 소국들이어서 국제사회에서 별반 관심을 갖지 않는다. 거기다 바티칸은 교황령 멸망바티칸 건국 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반 시민은 거주하지 않는 성직자만을 위한 국가였다.[7] 문제는 리히텐슈타인이 유럽연합 소속국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건 내정간섭으로 간주될 우려가 매우 높다.[8] 리히텐슈타인에 세금이 '없다'는 말이 있으나 전반에 굉장히 잘못 알려진 오류다. 심지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2018.12.05.~2019.02.10.에 걸쳐 열린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전시회에서도 '세금이 없다'고 설명했다. 세율이 매우 낮은 편이기는 하나, 엄연히 법인세, 개인소득세 등의 세금이 있다.[9] 영국 엘리자베스 2세가 보유했던 개인 자산은 4억 파운드, 한화 6000억원에 달했는데, 한스아담 2세는 이를 훨씬 뛰어 넘는 규모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