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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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기타



1. 개요[편집]


린위탕(林語堂: 임어당, 1895년 10월 10일 ~ 1976년 3월 26일)은 중국의 소설가이자 문명비평가이다.


2. 생애[편집]


1895년 푸젠성 장저우 핑허에서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상하이의 세인트 존스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1919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교에서 언어학을 공부했다. 1921년에는 독일에 건너가, 예나 대학교,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923년 언어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생활의 발견, 북경호일, 경화연운 등의 작품을 썼다. 1940년과 1950년에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1976년 홍콩에서 사망했다.


3. 기타[편집]


1960년 65세가 되던 해에, 기독교인으로서 회심을 담은 "이교도에서 기독교인으로"라는 저서를 남겼다. 유교, 도교, 불교, 합리주의, 유물론 등을 돌아보고 난 뒤, 마침내 기독교로 회심하게 된 자신의 자전적 회심기이다.

대한민국 초대 문교부(교육부) 장관이었던 안호상 박사가 "중국이 어려운 한자(漢字)를 만들어 놔 우리 한국까지 문제가 많다”고 하자, 이에 린위탕은 “그게 무슨 말이오? 한자당신네 조상이 만든 문자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라고 반문했다는 일화가 있다.

임어당고거(林語堂故居) : 린위탕은 1966년부터 대만에 정착해서 살았는데, 타이페이에 그의 집이 남아있다. 그가 직접 설계하였으며, 중국 사합원과 서양식 미학이 결합된 건축물이다. 타이페이의 관광명소이며, 월요일에는 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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