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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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로버트 월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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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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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월폴
스펜서 컴프턴
헨리 펠럼
토머스 펠럼홀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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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펠럼홀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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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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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대
토머스 펠럼홀리스
존 스튜어트
조지 그렌빌
찰스 왓슨 웬트워스
제10대
제11대
제1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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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윌리엄 피트
오거스트 피츠로이
프레더릭 노스
찰스 왓슨 웬트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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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캐번디시벤딩크
윌리엄 피트
헨리 에딩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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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피트
윌리엄 윈덤 그렌빌
윌리엄 캐번디시벤팅크
스펜서 퍼시벌
제2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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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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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대
제25대
로버트 뱅크스 젱킨슨
조지 캐닝
프레더릭 존 로빈슨
아서 웰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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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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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대
제26대
제27대
제28대
아서 웰즐리
찰스 그레이
윌리엄 램
아서 웰즐리
제2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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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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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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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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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램
로버트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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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존 템플
에드워드 스미스스탠리
헨리 존 템플
제3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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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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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러셀
에드워드 스미스스탠리
벤저민 디즈레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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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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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저민 디즈레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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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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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
아치볼드 프림로즈
로버트 게스코인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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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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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대
로버트 게스코인세실
아서 밸푸어
헨리 캠벨배너먼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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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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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대
제53대
제54대
제55대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앤드루 보너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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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대
램지 맥도널드
스탠리 볼드윈
램지 맥도널드
스탠리 볼드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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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볼드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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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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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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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대처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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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제71대 총리
마거릿 대처
Margaret Thatcher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rgaret_Thatcher.png
본명
마거릿 힐다 새처[1]
Margaret Hilda Thatcher
출생
1925년 10월 13일
영국 잉글랜드 링컨셔 주 그랜섬
사망
2013년 4월 8일 (향년 87세)
영국 잉글랜드 런던 웨스트민스터
재임기간
제71대 총리
1979년 5월 4일 ~ 1990년 11월 28일
서명
파일:마가렛 대처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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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위
케스티븐의 대처 여남작 (1992)[1]
가터 훈장 (1995)[2]
부모
아버지 알프레드 로버츠
어머니 베아트리스 스티븐슨
양어머니 세실리 허바드
배우자
데니스 대처
자녀
딸 캐롤 대처, 아들 마크 대처[3]
학력
케스티븐과 그랜덤 여학교 (졸업)
옥스퍼드 대학교 서머빌 칼리지 (화학 / B.S.)
런던 시티 대학교 로스쿨 (졸업)[4]
종교
개신교 (성공회)[5]
신체
166cm[6]
사상
대처주의
정당

지역구
핀칠리[7]
의원 선수
9
의원 대수
42, 43, 44, 45, 46, 47, 48, 49, 50
별명
철의 여인
약력
서민원 의원 (1959~1992 / 핀칠리 )
국민연금보험부 정무차관 (1961~1964)
주택부 장관 (1965)
재무부 장관 (1966)
에너지부 장관 (1967)
교육과학부 장관 (1970~1974)
보수당 대표 (1975~1990)
귀족원 의원 (1992)
필립 모리스 고문 (1992)
윌리엄메리대학 명예총장 (1993~2000)
영국 제71대 총리
문장
파일:Coat_of_Arms_of_Margaret_Thatcher,_The_Baroness_Thatcher_(1995–2013).svg.png



파일:마거릿 대처 초상화.jpg

공식 초상화
1. 개요
2. 위상
6. 기타
6.1. 이름의 발음
7. 선거 이력
8. 미디어에서
9. 어록
10. 관련 문서
11.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영국 제71대 총리. 이른바 철의 여인(The Iron Lady)[2]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정치인이다. 1979년부터 1990년까지 3차례나 영국 총선을 보수당의 승리로 이끈 정치인이자,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이다.[3]


2. 위상[편집]


역대 보수당 최장수 내각, 전후 최장수 내각의 2관왕이며, 역대로 치면 5번째다. 현대 영국 보수당의 정신적 지주이자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윈스턴 처칠 이후 영국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구가한 총리로서 친구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함께 1980년대의 집권기에 보수우파 진영에서 당시 막 떠오르던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를 현실에 구현하려고 하였으며, 이후 둘 다 자국 및 세계의 정치 지형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그 때문에 세계적으로 평가가 극히 갈리는 정치인으로, 대처를 수식하는 대명사가 되다시피 한 '철의 여인'부터 '신자유주의마녀'까지 평가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여러 의미에서 역사에 이름을 새긴, 영국에서 여성으로서 최고위에 도달한 사람.



좋으나 싫으나, 오늘날 영국을 설계한 이라는 평을 받는다. 제3의 길이라는 중도 이념으로 정권 교체에 성공한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역시 대처에 대해 "내가 한 거라곤 그녀가 만든 정책을 조금 수정한 것 뿐이다."이라고 말할 정도로 여전히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인물이다.[4] 아울러 대처는 친인척의 후광을 받지 않고도 강대국의 지도자가 된 최초의 여성이다. 대처는 중산층 집안 출신으로 부유한 남편과의 결혼을 통해 정치적 후원이나 재력 면에서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결혼이 영국 총리가 되는 데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마가렛 대처 외에 부모나 남편의 정치적 배경 없이 강대국의 지도자가 된 사람은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 2번째 여성 영국 총리 테레사 메이 등이 있다. 또 엘리자베스 2세 여왕보다 먼저 태어난 마지막 영국 총리다.[5]



보수당 공식 영상

3. 생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마거릿 대처/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정책노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대처주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평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마거릿 대처/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기타[편집]


  • 의회 정치에 단련된 영국 정치인 답게, 현역 때는 놀라운 화술을 자랑했다. 영국의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로빈 데이의 압박형 인터뷰에도 굴하지 않고 특유의 구체적인 수치와 팩트 중심의 논변을 보여주었다.

  • 영국에서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사망했을 때 "장례식은 민영화해야 한다"는 온라인 청원이 실시되자, 이 청원에 3만여 명 가량 참여했다고 한다. 대처 총리 연간에 있었던 일련의 강력한 민영화 정책들을 패러디한 것. # 심지어 구글 이미지 검색에서는 '대처 사망'이란 가상 기사 가상의 타블로이드 신문 옆으로 샴페인폭죽이 널브러져 있는 모습도 보인다[6]. 대처 본인도 이미 생전 자신의 장례는 "절대 국장으로 하지 말고 검소하게 치러달라"고 유언까지 남겼다. 그리고 본래 전 총리급 인물은 예우에 따라 영국 공군이 공중 퍼레이드를 하는 것이 관례이나, 대처는 자신의 장례식 때 이런 번잡한 행사를 금해달라고 당부했었다.

파일:external/metrouk2.files.wordpress.com/ay107912225a-hearse-carryin.jpg
영결식 행렬의 예행연습을 위해 영국 국기로 덮인 빈 관을 싣고 리허설 주행 중인 장의차.
이에 따라 실제로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국장 대신 '국장에 준하는 공식적인 장례식'을 통해 장례를 치렀다. 1997년 다이애나 왕세자비, 2002년 엘리자베스 왕대비의 장례식 규모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 로열 블루[7]와 진주를 아주 좋아해서 애용했는데, 진주는 '신뢰'와 '경솔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하며 로열 블루는 영국 보수당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얻었다. 패션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편이라고 평가받았다.

  • 심리학자들에게 영원히 고통받는 비극적인 운명이기도 하다. 지각심리학에서 시각적 착시를 다룰 때 종종 쓰이는데, 사람의 얼굴 사진에서 눈과 입을 상하로 뒤집은 사진을 흔히 "Thatcherized faces" 라고 부른다. 이 사진이 흥미로운 점은, 그냥 뒤집힌 사진을 보고 있으면 두 사진이 뭐가 다른지 그다지 느낌이 오지 않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서 보는 순간 둘 중 한 사진이 갑자기 혐짤로 변하는 착시가 일어난다. 사람의 얼굴을 뒤집어 놓아도 눈과 입 모양만 그대로 보존시켜 놓으면 이상한 느낌을 받지 못한다는 착시였으며 이러한 착시는 대처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실제로 대처의 얼굴이 가장 만만한 사례로 학생들에게 소개되곤 한다.

  • 대처는 잉글랜드 동부의 링컨셔에서 태어났으나 옥스퍼드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용인발음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 특유의 내리까는 목소리 톤[8] 때문에 당대에도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대처의 임기 중 대처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비웃는 일이 자주 있었다고 한다.[9]

  • 재임중이던 1986년 5월 방한했는데, 김포국제공항에 마중 나온 노신영 당시 국무총리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심지어 꽃다발을 전달하러 온 소년에게도 똑같이 대했는데, 통상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인사 예절이 서양에선 사실상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극히 이례적인 행동이었다. 당시 영상

  • 자식 농사에 실패했다. 아들 마크 대처는 가는 곳마다 사고를 일으켜 대처가 살아생전 그렇게나 대처의 속을 썩였다. 심지어 용병과 무기밀매를 하던 아들 마크가 2004년에는 뜬금없이 적도 기니의 쿠데타에 관여하다가 짐바브웨에서 체포당하자 마크의 보석금을 마련하려고 정말 죽을 고생을 했다. 이렇게 된 건 이유가 있는데 대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철의 여인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 하였으나 정작 자기 아들 마크한테만은 무조건 오냐오냐로 일관했기 때문이다.[10]


6.1. 이름의 발음[편집]


Thatcher에서의 Th는 통상적으로는 '번데기 발음'으로, 음성학적으로는 무성 치 마찰음(/θ/)이라고 한다. 1986년부터 시행된 영어의 외래어 표기법을 그대로 따르면 마거릿 힐다 새처라고 표기하여야 한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당시 외래어 표기법(정식 명칭 '로마자의 한글화 표기법')이 /θ/ 발음도 으로 적도록 규정했기에 당시에는 대처가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였고, 이 표기가 굳어져 현재까지도 대처가 표준 표기로 인정되고 있다. 다만 영국 영어상에서는 /ˈmɑːɡɹɪt ˈθatʃə(ɹ)/(마그릿 사처)에 가까우며 /ˈθætʃɚ/(대처·새처)는 미국 영어의 발음이다.


7.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50
제39회 영국 총선
사우스이스트 잉글랜드 다트 포드


24,490 (36.21%)
낙선 (2위)

1951
제40회 영국 총선
27,760 (40.91%)

1959
제42회 영국 총선
사우스이스트 잉글랜드[11] 핀칠리
29,697 (53.6%)
당선 (1위)
초선
1964
제43회 영국 총선
24,591 (46.6%)
재선
1966
제44회 영국 총선
런던 핀칠리
23,968 (46.5%)
3선
1970
제45회 영국 총선
25,480 (53.8%)
4선
1974.2[A]
제46회 영국 총선
18,180 (43.7%)
5선
1974.10[A]
제47회 영국 총선
16,498 (44.0%)
6선
1979
제48회 영국 총선
20,918 (52.5%)
7선
1983
제49회 영국 총선
19,616 (51.1%)
8선
1987
제50회 영국 총선
21,603 (53.9%)
9선[12]


8. 미디어에서[편집]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본드가 임무를 완수한 뒤 수상관저로 무전이 연결되는데 여기서 싱크대 안에 있던 수화기를 집어들어 전화를 받는 여성이 아무리봐도 대처 판박이이다. 특히 “데니스와 저는 당신을 빨리 만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는데 데니스는 실제 대처의 남편 이름이다. 그런데 이때 본드는 무전기 시계를 앵무새 앞에 걸어주고 멜리나와 검열삭제를 위해 자리를 떴는데 앵무새는 “키스해줘요”라고 반복하는 바람에 부끄러워한다.

작중 내내 마거릿 대처를 죽어라 깐다. 주 내용은 발레리노가 되고 싶어하는 빌리라는 소년이 꿈을 향해 날아오르는 이야기지만, 그 배경이 잉글랜드 북부 더럼의 탄광 노동자 파업인 만큼 대처 시대의 혼란상이 담겨있다.

내면보다는 피상적인 겉모습만 부각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스트립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한편 스트립은 대처 사망 직후 낸 성명에서 "마거릿 대처는 정치에서 여성의 역할에 있어 선구자였다, 온갖 증오와 멸시를 견뎌내고, 부정부패 없이 자신의 이상과 신념을 유지했다. 대처는 전세계 여성들에게 공주님이 되는 것과는 또 다른 꿈, 즉 국가를 이끌 수 있다는 선택권을 줬다. 그러기에 그녀는 존경받을 만하다."라는 헌사를 보냈지만, 또 한편 "그러나 대처의 냉철한 재정 조치를 통해 영국의 가난한 자는 큰 피해를 입었고, 정부 개입 배제 정책에 의해 부자들만 배를 불렸다. 오직 파운드 스털링에 대한 집착으로 영국을 유럽 재정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줬다는 견해가 있다."라는 비판도 덧붙였다.#

킹스맨 요원인 해리 하트에그시에게 자신의 과거 임무 수행에 관한 이야기를 알려주는 장면에서 자신이 마거릿 대처 수상의 암살을 막은 적이 있다고 말한다. 이에 에그시는 노동 계급 출신이라 대처를 싫어하는지 "모든 사람이 고마워하진 않았겠네요."라고 비꼬듯이 답하는데, 이에 해리는 "정확히는 그 누구도 고마워하지 않았다."라고 정정한다. 어차피 킹스맨의 활동은 모두 비밀리에 이루어지다 보니 대처의 암살을 막았다는 사실 자체도 외부인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다만 영화 외적으로는 대처를 까는 의미도 들어간 블랙 유머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 탄광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 <풀 몬티>, <브레스드 오프> 등에서도 극중 대사를 통해 대처를 대놓고 저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외 마이크 리켄 로치, 데릭 저먼 같은 1980년대 두각을 보인 영국 영화인들에게는 마르고 닳도록 까이는 존재다.

-
드라마
애니가 "여성들이 총리하는 게 더 낫지 않겠냐"는 말을 하자 샘 타일러가 "언젠가 그 말 후회하게 될 거요"라고 대답한다.

시즌 2 2화 '바스커빌의 사냥개들'에서는 바스커빌 연구소의 소장이 대처를 존경한다는 것을 추리해낸 셜록이 그것을 통해 연구소 기록 시스템의 비밀번호를 알아낸다. 시즌 4 1화 '6개의 대처'에서는 흉상으로 등장해 6개 모두 박살나고, 같은 에피소드에서 마이크로프트가 생전에 만나봤는데 거만한 인상이었다고 평한다. (거만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형한테도 거만해 보일 정도였냐는 셜록의 반응은 덤이었다.

  • 더 크라운》 (2020): 질리언 앤더슨[13]
시즌 4에서 등장. 더 크라운에서 그려진 주요 수상들[14] 중 가장 독특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로, 첫 에피소드인 발모럴 테스트에서는 중산층 출신이라 왕실의 예법에 난색을 표하고 실수를 연발하지만[15] 이내 영국이 처한 현실에 대해 위기의식도 느끼지 못하고 태연자약하게 오로지 여가와 유흥, 행사장에서 시간만 낭비하는 여왕과 왕실에 대한 경멸감을 느낀다.[16][17] 어릴적부터 근면함과 성실한 노력의 가치를 중시하는 영국 중산층 노동윤리를 뼛속 깊이 체화한 대처로서는 왕실을 비롯한 상류층들의 생활이 나태와 안이함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18] 그리고 런던으로 돌아와 왕실 인물들처럼 늙고 구태의연하며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귀족적 내각 인사들을 과감하게 내쳐버리면서 '철의 여인'임을 과시한다. 이후 대처의 강경한 행보에 대해 적을 많이 만들게 될거라며 에둘러 비판하는 여왕에게 찰스 맥케이의 시를 인용하며 "무언가를 해내려면 적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 적이 없다면 투쟁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이룬 것이 없는 겁쟁이에 불과하다."는 뉘앙스의 발언으로 응수하여 여왕을 침묵 시킨다. 초반에 어딘가 어설프고 헤매는 듯한 모습을 보여 왕실 사람들의 조롱을 받았던 것에 대해 자신이야말로 영국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인물임을 확인시키며 완벽하게 되갚아준 셈.
반면 다우닝 가 10번지에서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침공대응방안을 논의하면서도[19] 참모총장들에게 대접하기 위해 '직접' 요리를 하고, 망나니 아들 마크를 편애하면서 딸 캐롤은 막대하는[20], 여성은 여성의 역할이 있다는 보수적인 인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와중에도 투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면모는 여전하여 재무장관을 위시한 내각의 반대를 무릅쓴 채 포클랜드 전쟁 개전을 밀어붙인다. 에피소드 5는 전쟁의 승리로 자신이 주인공인 영광스러운 승전식을 만끽하는 대처를 보여주지만, 대처의 정치적 영광과 페이건으로 대표되는 서민 노동계급이 대처의 개혁으로 겪었던 엄청난 고통을 대비시켜 묘사함으로써 대처 내각의 명암을 극명히 드러낸다. 에피소드 8에선 남아공 경제 제재를 완강히 거부하며 여왕과의 갈등이 극에 달한다.[21] 엘리자베스 2세가 버킹엄 궁 공보관을 통해 언론에 총리와의 갈등 사실을 흘림으로써 선공을 걸어오자 등장 총리 중 사상 최초로 접견에서 여왕과 정면대결해 찍어눌러버리는 것은 물론, 정치적으로도 완패시켜 지시대로 사실을 흘렸을 뿐인 공보관을 꼬리자르기 식으로 해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하지만 에피소드 10에선 측근들의 배신에 의해 정치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크게 상처를 입는다.[22] 내각에서 대처를 향한 불신임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이를 반란[23]이라고 여긴 대처는 총리의 권한인 “의회해산요청권”을 발동한다. [24] 이에 여왕은 해산요청이 통상적으로 내각과 합의하여 이루어지는 관례에 따라 이번에도 내각과 상의 했는지 묻고 대처는 내각과 상의하지 않았으며 이것은 총리의 권한이라고 응수한다. 여왕은 힘이 있다고 모두 사용하는 것이 옳은지 되묻고 권위를 잃은 힘은 무용지물이라고 덧붙인 후 내각과 의회, 여론조사까지 등돌린 상태에서 대처가 이 권한행사를 강행하는 것을 재고해보길 권한다. 결국 이어지는 장면에서 대세가 기운 것을 안 마거릿 대처는 총리직을 사임하고 관저를 떠난다. 여왕은 총리에서 물러난 마가렛 대처에게 군주의 재량으로 24명에게만 주어지는 메리트 훈장을 직접 수여해주며 그간의 수고와 업적을 치하한다. 1980년대 영국을 이끈 두 여성지도자의 모습이 비교되는 이 시즌 하이라이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여담으로 질리언 앤더슨은 제작 과정에서 목소리와 제스쳐에 신경을 썼다고 밝혔다. 역대 마거릿 대처 배우들 중 이정도로 특유의 허스키하고 낮은 목소리를 매력적으로 구현한 배우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
소설
영국 소설가 수 타운젠트의 소설. 80년대 대처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극심한 애증이 교차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대처 때문에 실직자가 됐다며 엄청나게 싫어한다.

명확하게 이름이 언급되는 것은 아니고, 6권 시점에서 등장하는 영국 총리의 회상을 통해 취임 당시 코넬리우스 퍼지를 처음 만나면서 퍼지가 "당신 전임자반대파가 꾸민 속셈이라고 생각하고 나를 창 밖으로 던져버리려고 했다"고 언급한다. 소설에서는 이 전임자나 작중 현재 총리나 둘 다 실명을 언급하지 않고 '영국 총리'라고만 하지만, 혼혈왕자의 배경인 1996년 당시 영국 총리는 마가렛 대처의 후임 총리인 존 메이저이기에 대처임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
만화
앨런 무어의 그래픽노블. 대처에 대해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으며[25] 서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대처 3기를 묘사한다.
"지금은 1988년이다. 마거릿 대처가 자신의 3번째 임기를 시작하고 있고, 다음 세기가 되어서도 무너지지 않고 계속될 보수당의 집권에 대해 자신 있게 얘기하고 있다.[26] 내 막내딸은 7살이며,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에이즈 환자를 수용소에 격리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폭동 진압을 위해 투입되는 전투 경찰은 자신들을 태운 말과 마찬가지로 검은색 복면을 쓰고 있으며 그들이 모는 밴에는 회전하는 카메라가 장착돼 있다. 정부는 모든 동성애의 싹은 물론 그 추상적 개념마저도 잘라내고 싶다는 욕구를 표명했으며, 이제 어떤 소수자가 불법의 대상이 될 지는 추측을 해보는 수밖에 없다. 난 몇 년 안에 가족들을 데리고 이 나라를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냉정하고 비열한 이 곳이 더 이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잘 자라, 영국. 잘 자라, 홈 서비스. 그리고 승리의 브이 사인. 반갑다, <운명의 목소리>. 그리고 브이 포 벤데타."

2부에서 등장하여 주인공 서혜림을 매우 상스러운 대사로 밀어주면서 당선하는데 돕게 한다.

  • 《St. Swithin's Day》
그래픽 노블 작가 그랜트 모리슨이 1989년에 트라이던트 코믹스에서 연재한 단편. 대처를 암살하려는 정신질환자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대통령을 암살한다는 내용으로 문제가 되어 신문에 실렸는데 오히려 이게 광고효과가되어 더 잘 팔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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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마거릿 대처가 템플 기사단의 일원이었다는 설정을 지녔다.

주인공이 자신의 클론 공장을 보고는 무슨 장소냐고 묻자 아샤 오데카가 '타인에 대한 공감이 떨어지는 소시오패스 성향을 보이는 인물'을 복제하는 장소라고 하자 주인공은 '누구? 대처?'라는 반응을 보인다.

SAS 소속 최고참 대원 마이크 베이커의 코드네임으로 쓰인다. 보수인 대처와 비슷하게 구식을 좋아하며 최신식 장비들을 싫어한다는 설정으로 사용하는 방독면과 방탄복, 소총도 모두 구식이다.

포클랜드 전쟁 승리 후 중국에게 홍콩 조차 연장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고 덩샤오핑이 "우리가 홍콩에 걸어들어가 반나절 만에 접수할 수 있다"라는 협박을 보내자 이를 전면적인 무력 도발로 간주해 미온적이었던 영연방 국가들을 설득하여 홍콩에 커먼웰스 군을 대규모 증강했고, 이를 눈뜨고 당하지 않으려던 중국과 전쟁을 벌인다.[27] 참고로 덩샤오핑의 저 발언은 대처와의 홍콩 반환 협상 중 실제로 있었던 발언이다.

여성 영국 총리가 캠페인 컷신에서 등장하는데, 1972년이 배경인 시대상 마거릿 대처가 모티브인 듯하다. 별 비중은 없고 폴란드소련군 핵미사일 사일로가 있다고 알려주는 정도. 한국어판 성우는 양정화다.


  • GTA 산 안드레아스에선 켄트 폴의 친구인 매커가 오디오 녹음 중에 자위행위를 하며, 이름을 외쳐댄다.[28] 매커가 또라이인데다 매드체스터 붐을 이끌었던 해피 먼데이즈의 숀 라이더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라는걸 생각하면, 인물의 똘끼를 강화하는 요소라 보는게 정확하다. 매드체스터의 중심지인 맨체스터는 대처 쇼크의 직격탄을 받은 동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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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상술한 원작인 영화와 마찬가지로 작중 내내 대처를 까고 있다. 특히 Merry Christmas Maggie Thatcher 트랙은 제목부터 보다시피 그냥 대처에게 욕하는 내용이다. # 가사도 아예 "메리 크리스마스 매기 대처, 당신 죽을 날이 하루 더 가까워졌단 걸 축하하네!"인데, 나중에 정말로 대처가 사망했을 때 이 노래를 부르며 파티를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9. 어록[편집]


"생각을 조심하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하라.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하라.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하라. 성격이 된다. 성격을 조심하라. 운명이 된다.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된다."

정확히는 최영 장군의 예처럼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라고 하니 본인의 말은 아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가 한 말이란 의견도 있지만 이 자료에 따르면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진 문장인 것 같다. 다만 청와대에서 대처의 죽음을 거론하며 추모한 글에서도 올라온 것이니 많은 사람들이 대처의 어록으로 여기는 것 같다.

You know, if you just set out to be liked, you would be prepared to compromise on anything, wouldn't you, at any time? And you would achieve nothing!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지 않으려고 한다면 언제나 타협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당신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1989년 언론 인터뷰


Where there is discord, may we bring harmony. Where there is error, may we bring truth. Where there is doubt, may we bring faith. And where there is despair, may we bring hope.

분열이 있는 곳엔 화합을, 오류가 있는 곳엔 진실을, 의심이 있는 곳엔 믿음을. 그리고 절망이 있는 곳엔 희망을.

1979년 5월 4일 취임 연설에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의 기도에서 따온 말이다. 그러나 대처는 공과를 떠나서 영국에 화합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There is no such thing as society. There are individual men and women, and there are families. And no government can do anything except through people, and people must look to themselves first. It's our duty to look after ourselves and then, also to look after our neighbour. People have got the entitlements too much in mind, without the obligations. There's no such thing as entitlement, unless someone has first met an obligation.

"사회라는 것은 없습니다. 남성과 여성, 개개인이 존재할 뿐이고 개별적인 가족 공동체가 존재할 뿐입니다. 그리고 정부란 국민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국민들은 먼저 스스로를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보고, 더 나아가 우리 이웃을 돌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의무는 생각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합니다. 의무를 먼저 다하지 않는다면, 권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1987년 9월 23일 Women's Own magazine과의 인터뷰에서


"실패는 단지 더 현명하게 시작할 기회일 뿐이다"


"나는 언제나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세상 누구도 나를 굴복시킬 수 없다."


I don't mind how much my ministers talk, as long as they do what I say.

"나는 장관들이 내가 말한 것을 수행하는 한 그들이 어떤 말을 쏟아내도 신경 쓰지 않는다."

1987년 인터뷰에서


We had to fight the enemy without in the Falklands and now we have to fight the enemy within, which is much more difficult but just as dangerous to liberty.

"우리는 포클랜드에서 외부의 적과 싸워야만 했다.(그러나) 우리는 항상 내부의 적을 알고 있어야 한다. 내부의 적은 더 싸우기 어렵고 자유에 더 큰 위험이 된다."

1984년 7월 20일 보수당 1922 위원회(1922 Committee)에서


In politics, if you want anything said, ask a man; if you want anything done, ask a woman.

"정치에서 뭔가 말해야 한다면 남성에게 요구하라. 뭔가 이뤄져야 한다면 여성에게 요구하라."

1965년 6월 20일 National Union of Townswomen’s Guilds의 회원들에게 한 연설


No woman in my time will be Prime Minister or Chancellor or Foreign Secretary—not the top jobs. Anyway I wouldn't want to be Prime Minister. You have to give yourself 100%.

"내 생전에 여성 총리나 여성 재무장관, 여성 외무장관같은 고위직이 나올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튼 나는 총리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스스로에 100% 열중해야 한다."

1969년 10월 26일 그림자 내각 교육부 대변인에 임명되었을 때의 Sunday Telegraph와의 인터뷰에서출처

그런데 다름 아닌 대처 스스로가 이 예상을 뒤집었다. 외무장관도 2007년 대처 생전에 토니 블레어 내각에서 마가렛 베켓(Margaret Beckett)이 외무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예상이 뒤집혔다. 하지만 대처 생전은 물론 현재까지도 영국에서 여성 재무장관은 배출되지 않았고, 2013년 대처 사후인 2016년과 2022년에야 비로소 2명의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테레사 메이, 리즈 트러스)

"비전이 없는 사회의 사람은 틀림없이 망한다."


Everyone should turn out in this referendum and vote yes, so that the question is over once and for all, we are really in Europe, and ready to go ahead.

모두가 이번 국민투표에 참여하여 찬성표를 던져야 합니다. 그러면 질문이 완전히 끝나게 됩니다. 우리는 정말로 유럽에 있고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1975년 영국 EEC 잔류 국민투표 당시 텔레비전 인터뷰.

브렉시트 당시 보수당과 노동당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매우 놀라겠지만. 1970년대 까지만 해도 보수당이 친유럽, 노동당이 반유럽이었다. 대처 역시 당시에는 친유럽 정치인 중 한명이었고. 둘의 입장이 바뀐건 1990년대가 지나고서다.

We are not asking for a penny piece of Community money for Britain. What we are asking is for a very large amount of our own money back, over and above what we contribute to the Community, which is covered by our receipts from the Community.

우리는 영국을 위해 유럽 공동체에 약간의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불하여 유럽 공동체에 기여한 아주 많은 돈을 돌려받기를 요구합니다.

1980년 더블린 정상회담에서 다른 유럽 정상들에게.

일반적으로 "I want my money back"(이제 내 돈을 돌려받길 원한다)로 알려져 있다.

"오른손의 장바구니에[29]

가득 찬 것은 1974년 보수당 시절에 1파운드로 살 수 있었던 식료품입니다. 왼쪽은[30] 현재 노동당 정권에서 1파운드로 살 수 있는 식료품입니다. 만일 노동당이 다시 5년간 집권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1파운드로 쇼핑을 하려면 장바구니가 필요 없고 그저 작은 종이봉투 한 장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당신에게 식료품 가격에 대해 간섭하지 못하도록 합시다."

1979년 총선 당시.#


I am not a consensus politician. I'm a conviction politician.

"나는 여론 수렴형 정치인이 아닌 확신형 정치인이다."

1979년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실제로 영어권에서는 자신의 신념을 타인에게 설득시켜 정치를 주도하는 것을 이르는 Conviction politics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에서 유래했다.영어 위키백과

I love argument, I love debate. I don’t expect anyone just to sit there and agree with me, that’s not their job.

"나는 논쟁도, 토론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냥 앉아서 나에게 동의해 주길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의 직업이 아니다."

1980년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To those waiting with bated breath for that favourite media catchphrase, the U-turn, I have only one thing to say: You turn if you want to. The lady's not for turning.

"숨죽인 채로 그 좋아하는 언론 유행어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유턴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원한다면 여러분이 유턴하세요. 여인(나)은 유턴하지 않습니다."

1980년 보수당 회의에서 경제 정책 완화를 요구하는 동료 의원들에게.


I must pay the £1,191. We can therefore say that no extra cost has fallen on the British taxpayer.

"1191파운드는 내가 내겠다. 그래야 납세자들에게 추가로 한 푼의 세금도 사용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 2월에 대처의 아들 마크가 파리-다카르 랠리에 참가했다가 아프리카 사막에서 실종되었을 때 구출 비용을 비서(private secretary)에게 듣자.

실제로 대처는 마크의 구출 비용을 모두 자비로 부담했다.

We fought to show that aggression does not pay and that the robber cannot be allowed to get away with his swag. We fought with the support of so many throughout the world: the Security Council, the Commonwealth, the European Community, and the United States. Yet we also fought alone – for we fought for our own sovereign territory.

"침략은 반드시 응징당하고 도둑은 훔친 물건을 가지고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싸워서 보여줬다. 우리는 전 세계 많은 이들 -안보리, 영연방, 유럽공동체, 미국- 의 지원을 얻어 싸웠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홀로 싸웠다."

1982년 7월 3일 보수당 당수 선거 당시의 연설

포클랜드 전쟁은 6월 11일에 아르헨티나의 항복으로 종결되었다.

Just supposing Alaska was invaded, now you've put all your people up there to retake it and someone suggested that a contact could come in ... you wouldn't do it.

"알래스카가 침략당해 전쟁을 벌인다면 당신은 모든 사람들을 그곳에 투입해 되찾으려 할텐데 누군가가 연락을 해서... 당신도 그렇게 하지는(협상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국제 기구를 통한 협상 제안을 맞받으면서.출처


"There is nothing I could do to stop you, but the eyes of the world would now know what China is like."

"우리가 당신을 막지는 못하지만, 전 세계의 눈은 이제 중국이 어떤 나라인지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1982년 영국중국의 홍콩 반환 협상에서 덩샤오핑"지금 당장이라도 중국 인민해방군홍콩에 상륙할 수 있다."라는 위협을 가하자.

덩샤오핑과 대처의 발언은 2007년에야 공개되었다.

There is no week, nor day, nor hour when tyranny may not enter upon this country if the people lose their supreme confidence in themselves and lose their roughness and spirit of defiance. Tyranny may always enter — there is no charm or bar against it. The only bar against it is a large resolute breed of men.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최고의 신념을 잃고 용기와 반항심을 잃으면 언제라도 전제 정치가 시작될 수 있다. 전제 정치를 막을 부적이나 차단봉 같은 것은 없기에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의 확고함뿐이다."

1984년 7월 20일 보수당 1922 위원회(1922 Committee)에서


"웅변일랑 남들이 하도록 떠넘기고 나는 행동만을 해 나가겠다."


I fight on, I fight to win

"나는 계속 싸울 것이다. 싸워서 이길 것이다."

1990년 보수당 당수 선거 1차 투표에서 이기지 못하자.

그러나 대처는 이 발언 바로 다음 날 2차 투표 출마를 포기하고 총리직을 사퇴했다.

Home is where you come to when you've got nothing better to do.

"가정은 더 이상 잘할 것이 없을 때 오는 곳이다."

1991년 퇴임 6개월 무렵 지난 후의 인터뷰에서.


Remember minister, even in diplomacy there is something called 'loyalty'.

"차관님, 외교에도 의리라는 것이 있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1992년 한국 방문 당시 노창희 외무부 차관에게 한 말.[31]



10. 관련 문서[편집]




11. 둘러보기[편집]





[1] 혼전 성은 로버츠(Roberts).[2] 골다 메이어 총리에게 붙은 별칭이었는데, 이스라엘과 중동에서 특히나 유명하다.[3] 영국 역사상 여성 총리는 단 세 명이고, 나머지 두 명은 테레사 메이리즈 트러스이다. 그리고 셋 중 전임자의 사퇴로 인한 당내 승계가 아닌 본인이 당대표로서 총선을 이끌어 승리함으로써 총리가 된 사람은 대처가 유일하다.[4] 실제로 블레어 정부는 영국병을 치료한 대처의 노동정책을 크게 뒤집지 않았다.[5] 반년차이로 먼저 태어났으며 미드 더 크라운에서도 언급이 된다.[6] 특히 대처 정부 시절 큰 타격을 봤던 리버풀에서는 대처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마녀가 죽었다며 실제로 환호하는 분위기였다. 이게 그냥 타격을 입은 정도.. 가 아니라 대처 정권은 해당 영국 북부 지역에 대해서 사실상 그냥 버리는 정책을 써버렸고 해당 지역들은 순식간에 날벼락이 떨어진 채로 일자리가 싸그리 사라지고 지원도 제대로 못받는 형국이 되버렸으며 하루 아침에 직장이 폐쇄되버린 사람들이 시위를 하자 '기마 부대'를 보내서 기병대가 사람들을 짓밞아서 사상자가 생기는 강경진압을 하는 등 그냥 피해를 입었다 수준 이상의 피해를 입은 동네라 반감이 매우 심각하며 심지어 한국과 달리 영국의 저 지역은 주류 민족도 달라서 안그래도 역사적인 골도 깊은데 저런 짓을 해서 더 골이 커졌다. [7] 영국 왕실의 관복색[8] 권위있고 힘 있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이런 목소리를 훈련받았다고 전해진다.[9] 대처의 포클랜드 전쟁 강행이나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 등에 불만을 가져서, 두 사람은 각각 총리와 여왕으로 있는 동안 별로 친하지 않았다. 이러니 여왕이 대처의 성대모사를 하며 뒷담화를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대처의 신자유주의로 인해 리버풀같이 노동자들이 많은 지역에서는 경제 타격 정도를 넘어 핵폭탄이 떨어져서, 매일 측근에게 "오늘은 그녀가 몇 명의 국민들을 슬프게 했는가"라고 한탄했다고 전해진다.[10] 드라마 더 크라운에서도 이 부분이 묘사되었으며 이 때문인지 쌍둥이 누나인 캐롤 대처가 어머니에게 크게 울분을 터트린다.[11] 1965년 이후 그레이터 런던에 편입된 지역구지만, 대처가 1959년, 1964년 출마했을 당시에는 사우스이스트 잉글랜드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1997년 이후 핀칠리&골더스그린 선거구로 조정된다.[A] A B 1974년에는 선거가 두 번 있었다.[12] 차기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정계은퇴[13] 이 역할을 통해 2021년 골든글로브상, 미국배우조합상 드라마 부문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다.[14] 윈스턴 처칠, 앤서니 이든, 해럴드 맥밀런, 해럴드 윌슨, 에드워드 히스, 마거릿 대처였다.[15] 야외 활동을 위한 활동화를 따로 챙겨오지 않거나, 부부가 각방을 써야한다는 사실에 당황하고, 사냥을 나가는데 하이힐과 푸른 드레스를 입고 나오거나, 빅토리아 여왕의 의자에 앉아 마거릿 로즈에게 질책과 단어 선택에 대한 수모를 듣는 등이 있다.[16] 다만 첫 접견에서는 내정한 장관을 거의 다 맞추는 걸 보고 여왕이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다고 감탄하기도 했다.[17] 이전에는 여왕과 만났을 때 무릎절을 깍듯이 올리는 모습이 자주 비춰지지만, 후술할 훈장 수훈 이전까지는 절하는 모습은 한동안 묘사되지 않는다.[18] 대처 이전에도 중산층 계급 출신 총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정치적, 직업적 커리어가 상승 곡선을 그림에 따라 자연히 상류층의 귀족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이었기에 이런 문제가 없었던 것. 반면 대처는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도 상류층의 귀족 문화에 익숙해지기를 스스로 거부하고 중산층 문화에 잔류한(상술된 '소고기 값' 에피소드를 떠올려보라) 인물이기에 특히 미숙함과 반감이 강렬했던 것이다.[19] 전쟁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재무장관 등 관료들을 노려보며 압박, 반대의견을 일축한다.[20] 다카르 랠리에서 실종되었다 돌아온 직후인데, 아들이란 놈은 알제리군 헬기까지 동원해서 아들을 찾아내느라 며칠간 사색이 되어야 했던 엄마 앞에서 뻔뻔하게 요리 투정을 하고 앉아있고, 대처는 그 투정을 죄다 받아주면서 오냐오냐한다. 반대로 딸에게는 왜 마크만 편애하냐는 반발도 묵살하고 요리나 도와달라고 윽박지르는 모습을 보여준다.[21] 이 화 자체가 대처와 엘리자베스 2세의 인생 배경과 가치관 전반을 그대로 대조시키면서 둘의 갈등을 보여주는 화다. 같은 21세 때 남아공에서 연설했던 엘리자베스 2세는 영연방 수장으로서 영연방 다른 회원국들이 인종을 떠나 연대해서 아파르트헤이트 철폐를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같은 시기 옥스퍼드 대학교를 다니면서 그 연설을 라디오로 들은 마거릿 대처는 영연방 따윈 알바 아니고 영국의 경제가 중요하며 이미 그렇지 않아도 다른 제제를 충분히 하고 있는데 괜히 영국 경제를 망쳐서야 쓰겠냐는 주장을 하면서 대립한다.[22] 다우닝가로 들어설 때는 흔들림 없이 꼿꼿한 모습을 보이지만, 관저 안으로 들어오면서 점점 허리가 굽고, 결국 반쯤 어기적대며 방에 들어와선 비참하게 침대에 걸터앉아 소리도 못 내고 눈물을 쏟는다. 그 와중에 당시 보수당 내의 반란을 보도하는 앵커들의 목소리들이 오버랩되면서 대처의 비참한 몰락을 강조한다.[23] 각료 쿠데타[24] 의원내각제 국가에서는 대개 총리가 의회해산권을 지니지만, 영국 총리는 "형식적으로" 의회해산권을 가진 군주에게 해산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권한을 행사한다. 형식적으로 영국의회를 해산할 권리는 국왕에게 있으나 실질적인 결정은 총리가 하고, 요청의 방식으로 해산이 이루어지는 것이다.[25] 무어는 노동 계급이라 대처를 좋게 볼 구석이 없었다.[26] 실제로도 대처의 후임자 존 메이저는 7년을 집권했고, 정권이 교체 된 1997년은 21세기(2001년)를 불과 4년 남겨놓은 해였다. 브이 포 벤데타가 쓰여진 후 9년이나 흐른 뒤였던 것이다.[27] 게임상 플레이어가 영국군이기 때문에 게임상 역사로는 홍콩을 중국으로부터 지켜낸다. 심지어 유저의 플레이에 따라 선전, 옌톈 등 홍콩에 인접한 중국령들을 집어삼킬 수도 있고, 남중국 최대 도시 중 하나인 광저우 코 앞의 주강 삼각주를 영연방 해군을 이용해 농락할 수도 있다. 다만 이건 매우 수준 높은 유저의 경우이고, 초보는 물론 중수 조차도 홍콩 섬도 지키기 힘들 정도로 난이도가 높다.[28] 마지막에 하는 말이 Oh I Love You Maggie[29] 보수당의 상징색인 파란색의 장바구니로, 빵, 버터, 고기 등이 가득 차 있었다.[30] 노동당의 상징색인 분홍색 장바구니로, 빵, 버터, 고기 등이 절반만 들어가 있었다.[31] 당시 한국은 대만(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했다. 대처가 직전에 대만을 방문했는데, 실컷 한국 욕을 듣고 온 모양이다. 분노를 표시했다기 보다는 대만 단교 전에 섭섭치 않도록 했어야 했다는 일침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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