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마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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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세기 피스코스 (Φύσκος)
로도스령 카리아, 좋은 항구
레토에게 신성한 숲. 헤로도토스 : 기원전 3천년부터 성채 있었음.
기원전 334년 마케도니아 군, 피스코스 포위. 6백 주민들 가망 없다 여기고 성내 귀중품 불사른 후 여인과 아이들 데리고 언덕으로 피신.
성채 전략적 가치 알았던 포위군, 성채 파괴된 부분 보수하고 수백 수비대 남긴 후 돌아감. 멘테셰 후국 때 그리스어로 대리석 뜻하는 마르마론 (màrmaron)에서 유래한 마르마리스 명명. 터키어 메르메르.
일대의 풍부한 대리석 매장량, 대리석 수출항.

1522년 쉴레이만 1세 로도스 원정시 마르마리스를 오스만 해군 거점으로 삼고 폐허이던 성채 재건
1801년 케이트 제독 휘하 120척 영국 함대 + 애버크럼비 휘하 육군 1만 4천 8주간 마르마리스 만에 주둔.
이집트, 시리아의 나폴레옹 휘하 프랑스 군과 싸우기 위한 훈련 + 보급

1957 페티예 지진, 성채와 그 부근의 옛 건축물 제외한 도시 완전히 파괴.
1979 ~ 문화부 주관 하에 성채 보수 후 박물관 전환. 7개 갤러리 중 가장 큰거 전시실, 중정은 계절화 장식
성채와 함께 지어진 바자르에는 쉴레이만 1세의 모후 아이셰 하프사 술탄이 세운 작은 카라반사라이 있음

2018년 고고학자들, 마르마리스 인근서 기원전 300년의 그리스인 격투기 선수 디아고라스 무덤 발굴. 피라미드꼴 영묘. '나는 맨 꼭대기에서 주시하여 그 어떤 겁쟁이도 이 무덤을 훼손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경구 적힘
1970년까지 해당 영묘는 성인의 무덤이라 여겨 현지인들이 기도에 대한 응담을 듣기 위해 찾음. 다만 성스러운 곳이 아니라는 조사 결과 후 약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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