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사비누스 율리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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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사비누스 율리아누스.jpg
이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사비누스 율리아누스
(Marcus Aurelius Sabinus Julianus)
출생
미상
사망
283년 또는 285년 또는 288년
직위
이탈리아 교정관
반란 대상
카리누스 또는 막시미아누스

1. 개요
2. 행적




1. 개요[편집]


로마 제국 군인 황제 시대의 반란자. 문헌 기록마다 차이가 많아서 정확한 행적을 파악하기 어려운 황제 참칭자이다.


2. 행적[편집]


익명의 이교도 저자가 4세기말에 집필한 '카이사르의 전형(Epitome de Caesaribus)'에 따르면, 율리아누스는 북이탈리아의 교정관을 역임했다고 한다. 283년 카루스 황제가 사산 왕조 원정을 벌이던 중 낙뢰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는 베로나에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카리누스에게 진압되었다고 한다. 반면 아우렐리우스 빅토르가 저술한 '카이사르의 책(Liber De Caesaribus)'에 따르면, 율리아누스는 일리리쿰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토벌당했다고 한다. 조시무스에 따르면, 프라이토리아니 장교 율리아누스는 284년 누메리아누스가 로마로 복귀하던 중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반란을 일으켰으나 카리누스에게 토벌당했다고 한다.

한편 아우렐리우스 빅토르는 아프리카 총독 율리아누스가 퀸퀘젠타니(Quinquegentani) 부족의 지원을 받아 카리누스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붙잡혀 반역죄로 처형되었다고 기록했으며, '카이사르의 전형'에 따르면 288년경 율리아누스가 이탈리아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막시미아누스의 진압군에게 포위되어 성벽이 무너지자 불 속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그리고 20세기에 판노니아 분지에서 황제 참칭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사비누스 율리아누스가 실존했음을 알려주는 동전이 출토되었다.

이렇듯 기록간의 차이가 많고 고고학적 증거와도 맞지 않기 때문에, 군인 황제 시대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율리아누스의 정확한 행적을 놓고 현재까지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황제 참칭자 율리아누스가 2명 있었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먼저 이탈리아의 교정관이었던 율리아누스가 카루스의 죽음을 틈타 판노니아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뒤이어 프라이토리아니 장교 율리아누스가 누메리아누스의 사망을 틈타 베로나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견이 많아서, 이것이 사실과 얼마나 근접한지 분명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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