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예루살렘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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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aria_JanBrienne.jpg
파일:john_de_brienne.jpg
예루살렘 왕국의 제11대 공동 국왕
즉위명
마리(Marie)
장 1세(Jean I)
이름
마리 드 몬페라토(Marie de Montferrat)
장 드 브리엔(Jean de Brienne)
출생일
1192년 여름
1170년
출생지
예루살렘 왕국 예루살렘
프랑스 왕국 샹파뉴(Champagne)
사망일
1212년 (약 21세)
1237년 3월 19일 ~ 3월 23일 (66 ~ 67세)
사망지
예루살렘 왕국 아크레
동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폴리스
매장지
예루살렘 왕국 아크레 불명
동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폴리스 성 소피아 대성당
가문
알레라미치 (House of Aleramici)
브리엔 (House of Brienne)
부모
부친 코라도 델 몬페라토
모친 이자벨 당주
부친 에라르 2세 드 브리엔
모친 아녜스 드 몽포콩
배우자
장 드 브리엔
마리 드 몬페라토
스테파니아(리타) 루비니얀
베렝겔라 데 레온
자녀
욜랑드 드 브리엔
욜랑드 드 브리엔
장 드 브리엔
알퐁스 드 브리엔
루이 드 브리엔
장 드 브리엔
마리 드 브리엔
종교
로마 가톨릭
재위기간
1205년 4월 5일 ~ 1212년 (약 7년)
1210년 8월 말 ~ 1212년 (약 2년, 마리아의 공동 왕)
1212년 ~ 1225년 (약 13년, 이사벨 2세의 공동 왕 겸 섭정)
1229년 ~ 1237년 (보두앵 2세의 선임 공동 황제 겸 섭정)

1. 개요
2. 유복녀 여왕
3. 결혼



1. 개요[편집]


콘라드 1세와 그의 세 번째 부인인 예루살렘의 여왕 이자벨 1세에서 태어난 외동딸. 그녀는 태중에 있을 때 부왕이 암살당하여 태어나자마자 예루살렘 왕위의 상속자가 되었으며 1205년 어머니의 죽음 이후 공식적으로 여왕이 되었다. 1210년에 장 1세와 결혼하여 공동 왕위에 올랐다. 프리드리히 황제의 아내인 이사벨 2세의 어머니이다.


2. 유복녀 여왕[편집]


시빌라의 사망 후 우여곡절 끝에 1190년 마리아의 어머니가 될 이자벨 1세가 예루살렘 왕관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되었다. 그 당시 그녀는 옹프루아 드 토롱의 아내였지만 귀족들의 압력을 받아 결혼이 파기되었다. 그리하여 1190년 11월 24일, 이사벨 1세는 코라도 델 몬페라토와 결혼했다.

콘라드 1세는 1192년 4월 28일 암살자에 의해 살해되었다. 당시 이사벨 1세는 콘라드 1세의 딸 마리아를 잉태중이었고, 남편이 사망 한 지 8일 만인 5월 5일, 앙리 드 샹파뉴와 결혼했다. 그녀의 정확한 생년월일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1192년에 여름에 태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그녀는 아버지의 타이틀 "La Marquise" 때문에 후작공녀라고 불렸다.

1194년 마리아의 계부인 앙리 1세는 당시 키프로스의 새로운 국왕이었던 아모리 2세와 긴밀한 동맹을 체결했다. 그는 아모리 2세의 아들 기와 콘라드 1세의 딸 마리아를 약혼을 주선했다. 마리아의 두 명의 이부 여동생인 알리스 드 블루아와 필리파 드 블루아는 아모리 2세의 다음 아들인 장과 앙리와 약혼했다. 키프로스 왕좌의 상속자와 예루살렘의 왕좌에 상속인의 3중 결합은 다음 세대에 양국의 연합에 대한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마리아의 약혼자 기는 어릴 때 죽었다.

앙리 1세는 1197년에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죽었다. 1198년 이사벨 1세는 키프로스의 아모리 2세와 네 번째 결혼을 했고, 그마저 1205년 4월 1일에 서거하자 미망인이 되었고 며칠 뒤 죽었다.

이사벨 1세는 앙리 2세와의 세 번째 결혼에서 얻은 자녀 중 두 딸 알리스와 필리파만 장성했다. 또한 키프로스 왕이자 예루살렘의 부왕인 아모리 2세와의 네 번째 결혼에서는 그들의 딸인 시빌라와 멜리장드만이 살아 남았다. 후계구도에서 남자가 한명도 없는 상황에서, 어머니의 장녀의 위치를 가졌던 열세 살의 마리아는 예루살렘의 여왕이 되었다. 어머니 이사벨과 이부남매였던 베이루트의 장 디벨린이 섭정의 자리에 취임했다. 이사벨라가 죽기 전에 그를 임명했는지 또는 의회에서 그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오랫동안이었는데 현재 연구자들은 아모리 2세가 죽은 직후 예루살렘 귀족들이 이벨린의 요한을 섭정자로 선택했으며, 이사벨라 여왕은 이 선택을 받아 들였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


3. 결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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