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 노부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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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다 노부히로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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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우승 엠블럼 V5.svg 파일: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우승 엠블럼 V6.svg 파일: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우승 엠블럼 V7.svg 파일: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우승 엠블럼 V8.svg 파일: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우승 엠블럼 V9.svg 파일: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우승 엠블럼 V10.svg 파일: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우승 엠블럼 V11.svg
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2011
2014
2015
2017
2018
2019
2020

파일:WBSC 프리미어 12 엠블럼.svg
2015 프리미어 12
{{{#c63 동메달

2015



파일:WBSC 프리미어 12 엠블럼.svg
2019 WBSC 프리미어 12
{{{#c7bc69 우승반지}}}
2019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18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3루수 부문 베스트 나인
젤러스 휠러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마쓰다 노부히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나카무라 다케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11년, 2013~2019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코야노 에이이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마쓰다 노부히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코야노 에이이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코야노 에이이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마쓰다 노부히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스즈키 다이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등번호 5번
요시모토 료
(1999~2005)

마쓰다 노부히로
(2006~2016)


임시결번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등번호 3번
마쓰나카 노부히코
(2000~2015)

마쓰다 노부히로
(2017~2018)


프레디 갈비스
(2022)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등번호 5번
임시결번

마쓰다 노부히로
(2019~2022)


결번
요미우리 자이언츠 등번호 23번
그레고리 폴랑코
(2022)

마츠다 노부히로
(2023)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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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다 노부히로
松田宣浩 / Nobuhiro Matsuda

생년월일
1983년 5월 17일 (40세)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출신지
시가현 쿠사츠시
학력
주쿄 고교 (기후) - 아지아대학
신체
180cm, 86kg, B형
포지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5년 대학생·사회인 드래프트 희망입단제[1] (소프트뱅크)
소속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6~2022)
요미우리 자이언츠 (2023)
등장곡
콘도 마사히코 - ギンギラギンにさりげなく
B'z - ultra soul
그 외 다수[2][3]
응원가
응원단 자작곡[4]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경력
2.1. 프로 입단 전
2.2. 프로 입단 후
3. 플레이 스타일
4. 이모저모
5. 연도별 성적



1. 개요[편집]




파일: external/number.ismcdn.jp/img_0e2f19285fa98f20489ef08db027e9b4128010.jpg

[5]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내야수.


2. 경력[편집]



2.1. 프로 입단 전[편집]


프로 입단전에는 유격수로 뛰며 주쿄상고[6]에서 통산 60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아지아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이구치 타다히토가 가지고 있던 토토 대학야구 리그 홈런 기록을 경신할 수 있을 만큼 홈런을 뻥뻥 날렸다. 하지만 3학년 때인 2004년에 동료 야구부원 5명이 열차에서 강제추행을 저지르는 대형사고를 치는 바람에 팀이 반년간 경기 출장 금지+2부 리그 강등 처분을 받게 되어 기록경신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동료가 웬쑤..

4학년 때인 2005년에 팀의 주장을 맡아 춘계리그를 우승한 뒤 1부 리그로 복귀하는데 성공했으며,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희망입단 범위로 입단을 공식 표명했다.


2.2. 프로 입단 후[편집]


2006년 개막전에 7번타자 3루수로 선발출장 하며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서는 고쿠보 히로키 이후 12년 만에 신인이 개막전에 선발 출장을 했다. 그러나 그해 신통치 않은 타격과 잦은 수비실책 등으로 인해 2군으로 내려갔고 1군으로는 승격되지 못했다. 이듬해까지 고쿠보에 밀려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지만, 9개의 홈런과[7] 3할 초중반의 타율을 기록하며 6월부터 1군에 등록! 8월에는 월간타율 3할을 기록하였다. 193타수에 7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장타력은 여전했다.

2008시즌 주전 3루수로 시즌을 시작하며 큰 이탈 없이 타격면에서는 전년도에 비해 많은 성장을 이루었다. 그리고 9월 29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 에서는 이와쿠마 히사시에게서 홈런을 때려냈는데 이것은 2008시즌 이와쿠마가 퍼시픽 리그 선수에게 허용한 첫 번째 홈런이었다.

하지만 2009시즌 개막전에서 귀루를 하는 과정에서 오른손에 부상을 입었고 팀에서 이탈하게 된다. 6월 초 복귀를 했지만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 사구를 맞으며 다시 한번 부상을 입고 그해에는 46경기 출전에 그쳐야만 했다.

2010시즌에는 한국에서 온 미남과 함께 주전 3루수 경쟁을 벌였다. 그 기간에 좌익수로 출전을 하기도 했다. 이해에는 다나카 마사히로에게서 프로데뷔 첫 끝내기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시즌 타율은 2할5푼5리에 그쳤지만 19개의 홈런과 71타점, 그리고 17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데뷔 후 최고의 성적을 내며 팀의 리그우승에 기여했다.

그리고 2011시즌 드디어 폭발했다. 한경기도 빠짐없이 출전하며 전이닝을 소화. 개인최다인 25개의 홈런(리그 2위)[8]과 83타점 25도루 2할 8푼 2리의 타율을 기록. 전년도 자신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팀의 2년연속 리그우승에 기여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에는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는데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10타수 1안타 1홈런으로 1할 일본시리즈에서는 1,2차전 4번타자로 출장했지만 안타 2개에 도루 1개에 그쳤고 이후 타순이 뒤로 밀리며 타점을 기록하긴 했지만 4번타순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이후 1할 6푼(28타석 25타수 2득점 4안타 2타점 3도루 1희생타 1볼넷 1사구 5삼진)을 기록하며 정규시즌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더 좋은 모습을 기대하며 시작한 2012시즌에는 기대에 부응하듯 도루왕에 오를듯한 페이스로 도루를 무차별적으로 성공 시켰지만 5월부터 홈런과 도루가 급감. 그래도 타율면에서는 수위타자를 향해 좋은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8월초 라쿠텐전에서 미마 마나부의 사구에 맞아 손바닥이 골절되어 전치 3개월을 받으며 이탈하고 말았다. 10월 5일 복귀 했으나 이미 규정타석도 미달되었고 아쉽게도 최고의 시즌이 될 수 있었던 해를 날리고 말았다.

2013시즌에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일본대표에 승선해 타율 0.333, 5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3위에 기여했다. 정규시즌에는 초반 2할3푼대에 머물며 부진했지만 교류전에서부터 부활하며 4번타자로 정착. 3번 우치카와 세이이치 5번 하세가와 유야[9]와 함께 막강 클린업을 형성했다. 본인 최다 90타점과 2년 만의 20홈런을 기록했지만 팀성적과는 무관했다.

2014시즌 5월 13일 롯데전에서 NPB통산 9만5천호 홈런을 쏘아올렸다. 7월초 연습도중 손가락에 공을맞는 부상을 당했지만 출전을 강행. 그러나 다음날에도 붓기가 빠지지 않아 병원에 가보니 손가락 골절로 6주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승리하는 팀이 리그우승팀이 되는 최종전 대 오릭스전 10회말 1대1 상황에서 좌중간 끝내기 안타를 치며 우승을 결정지었다.

2015시즌 자신의 1000호 안타를 홈런으로 기록한다. 최종성적은 자신의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짧아진 야후돔의 영향으로 처음으로 30홈런을 돌파했고(35홈런), 94타점으로 13년 이후 오랜만에 90타점을 넘겼다.

시즌 후에는 FA를 통해 메이저리그행을 추진했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오퍼를 했다고 일본언론에서 발표했으나 샌디에이고 지역언론에서 '마쓰다에 관심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구체적 오퍼를 하지않았다'며 반박, 샌디에이고 오퍼설은 에이전트 피터 그린버그와 일본 언론의 마쓰다의 자존심을 생각한 자작극임이 드러났다. 결국 소프트뱅크 구단 회장 오 사다하루가 마쓰다의 자존심을 살려주기 위해 설득했다는 식으로 포장하여 소프트뱅크에 잔류를 결정했다.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일본 대표팀의 주전 3루수로 출전. 하위타선에서 .333, 1홈런, 7타점을 올리며 일본 대표팀의 4강 진출에 공헌했으나 미국과의 4강전에서 8회초 1사 2, 3루의 위기 이후 펼쳐진 만루작전에서 의도대로 유도된 땅볼타구를 펌블하면서 결승점을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9회말 마지막 타석에서 어이없는 공에 배트를 내밀면서 3구삼진으로 경기가 종료되면서 일본 탈락의 원흉이 되었다. 지난번 대회 탈락의 원흉이 팀 동료의 어이없는 본헤드플레이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팀도 국제전 나가면 안되는 팀일지도

이후 2019시즌까지는 그럭저럭 성적을 내며 버텼지만 2020시즌 들어서는 본격적인 노쇠화가 시작되며 타격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0.228에 13홈런을 기록했다.

2021시즌 초반엔 어느정도 살아나는 듯 했으나 이내 타격감이 나빠지며 타율이 멘도사 라인에 머무르는 중. 그런 와중에도 일발장타력은 아직 살아있어서 간간히 홈런은 치고 있다. 9월 29일 경기에서 개인 통산 300홈런을 달성했다. 최종 기록은 0.234에 14홈런으로 작년과 별반 다르지 않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성적 하락으로 인해 연봉 삭감은 피할 수 없었는데, 기존의 4억 5천만엔에서 3억엔 감봉된 1억 5천만엔에 2022년 계약을 맺었다.

그러던 도중 비시즌 1월에 코로나 양성판정이 나왔다. 그런데 같이 트레이닝했던 선수들까지 집단감염이 되는바람에 문제가 생겼다.[10]

정규시즌동안 43경기에 출전해 타율 .204 0홈런에 그치며 나이를 이겨내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결국 시즌 종료 후 소프트뱅크 구단을 떠나는 것이 확정되었고 본인은 현역 연장을 희망하고 있으나 많은 나이와 크게 부진한 성적 때문에 데려갈 구단이 있을지는 의문.

10월 3일 요미우리 쪽에서 마츠다 영입 검토 중이라고 기사는 나왔다.# 요미우리 OB들의 반응은 팀에 쓸 만한 우타자가 없어서 그런지 긍정적인 편.[11] 11월 11일 요미우리 입단을 공식발표했다.

2023시즌은 놀랍게도 개막 로스터에 들었으나, 주로 대타요원으로 나와 .111 0홈런의 부진한 타율을 기록하고 8경기만에 2군으로 내려갔다. 2군에서도 2할 3푼대를 치고 있어서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는 거의 확정적이다.

2023년 9월 28일에 은퇴를 발표. 은퇴회견장에서 사카모토 하야토우치카와 세이이치가 깜짝 등장해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야나기타 유키 이전에 10년간 호크스에서 보기 드물게 장타력 툴을 보고 2순위 안에 지명한 야수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호크스의 드래프트는 대체적으로 1, 2위는 투수를 지명하는 경우가 많아서 야수가 드래프트에서 2순위 안에 드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12] 지명을 한다고 해도 광활한 홈 구장의 사정을 고려하여 장타력보다는 교타자 위주로 지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13] 그만큼 마쓰다의 장타력이 각별했다는 얘기.

일단 부상만 없으면 팀에서 기대한 만큼의 장타 포텐셜을 보여주고 있으나 문제는 그놈의 부상. 커리어 초기에는 1년이 멀다하고 같은 팀에서 뛰었던 요코하마 출신의 모 선배처럼 부상으로 1개월 이상의 장기 이탈이 연례행사였다. 이 때문에 2014년까지 프로생활 9년동안 110경기 이상 출전한 해가 4번밖에 안 되고 통산 성적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4년 이후는 금강불괴의 내공이라도 체득했는지 그 이후로는 특별한 부상도 없이 2015시즌부터 연속으로 시즌 전 경기 출장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덩달아 통산기록도 상승곡선을 그리며 2014년까지는 불가능해 보였던 명구회 가입의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는 중이다. 또한 마쓰다가 부상이탈 없이 3루를 지키면서 3루수비가 안정되었고 이는 장타력과 더불어 소속팀이 전성기를 구가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기량이 상승하는 특이한 케이스

일본인 선수 중에서는 드물게 노피어 스윙을 구사하는 선수로, 타구 방향이 대부분 좌측으로 향하는 풀스윙어다. 그리고 1루까지 4초대 초반 3루까지 11.59를 기록할 정도로 발이 상당히 빠르다. 멀리던지기 110미터를 기록할 정도로 강견을 소유. 수비범위는 좁지 않으나 08시즌 17실책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래도 골든 글러브상도 8번이나 수상[14]한 3루 수비력은 인정받고 있다. 다만 DELTA 사의 UZR 수치같은 세이버메트릭스적인 수비 평가는 30대 중반까지도 높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30대 후반으로 꺾여가면서 노쇠화로 하향곡선을 그리는 중.


4. 이모저모[편집]


  • 타격 중 파울을 치거나 헛스윙을 하면 한쪽 다리를 든 채 몸을 웅크리고 뛰어다닌다. 중계를 보다보면 상당히 재미있다.

  • 쌍둥이 중 동생이다. 쌍둥이 형 마츠다 노리아키는 고등학교까지는 같이 진학했으나 고교 졸업 이후 대학 대신 사회인야구 기업팀 토요타에 입사하였다. 이후 사회인야구에서 계속 뛰었으나 프로 지명은 받지 못했다. 이후 20대에 야구를 은퇴하고 모기업인 토요타에서 직장인으로 일하고 있다는 듯.

  • 2015년부터는 홈런을 치면 맨 위 두번째 사진의 자세로 주먹을 올리면서 '아츠오(熱男)~!'[15]라는 구호를 외치는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 (궁금하다면 유튜브에 '松田 熱男' 라고검색하면 아츠오 모음영상이 나온다.) 팬들도 곧잘 따라하는 인기 제스쳐. 2019년 일본시리즈 2차전에도 7회말 선제 3점홈런을 때리고 어김없이 보여줬다. 경기후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100점만점의 아쓰오 콜이었다고 자화자찬. 그만큼이나 항상 화이팅 넘치며 리더십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덕아웃의 분위기 메이커.

  • 눈을 상당히 자주 깜빡 거린다. 그냥 평범하게 깜빡이는 모양새가 아니라 눈을 질끈 감는 모습을 상당히 자주 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습관적으로 되는 듯 하니 쉽게 고치기는 힘들듯. 뭐 자주 깜빡이는건 눈 건강에는 좋긴 하다.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중견급 우완투수인 토가메 켄(十亀剣)에게 불가사의할 정도로 상성이 좋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명 토가메의 보은(十亀の恩返し) 2020년까지 마쓰다의 토가메 통산 상대성적은 타율 .509(57타수 29안타, 14볼넷) 10홈런 OPS 1.711이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기록중이다. 그나마도 노쇠화가 본격화된 2020년에는 4타수 무안타로 틀어막힌 탓에 조금 깎인 것. 이들이 처음 만난 2012년 이후 마쓰다는 매 시즌마다 토가메를 제대로 호구잡았다. 하이라이트는 전 타석(6타수 6안타, 홈런과 2루타 각각 1개씩 기록) 안타에 OPS 2.667을 기록한 2015년과 14타수 7안타 5할 타율에 5홈런 5볼넷을 얻어 OPS 2.203을 기록한 2018년 시즌이 있다. 이 둘 사이의 상대전적이 너무나도 유명한 탓에 언론에서도 토가메를 '고객'으로 취급하는가 하면 파리그티비에선 둘 사이의 맞대결 장면을 소재로 활용하여 영상으로 뽑아내기도 했다. 그것도 모자라 1경기에서 토가메가 9명의 마쓰다를 상대로 던졌을때의 결과를 산출하는 시뮬레이터까지 존재한다.링크 2022 시즌에 마츠다가 방출되고 토가메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이제는 볼 일이 없게 될 매치업이 되었다.

  • 2018년 슬로건인 もう1頂(모잇쵸)를 외칠 때 해맑은 표정으로 입도 제일 크게 벌리고 해서 엄청 귀엽다

  • NPB에서도 오프시즌의 국제대회를 위한 국가대표 차출에 몸을 사리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선수들이 꽤 있는데 비해 본인은 국대 차출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있다. 2019 프리미어 12 국대차출 때도 자발적으로 주장을 맡으면서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자처했다. 국대선발 인터뷰에서 몸을 사리면서 자진사퇴하는 선수들을 의식한 듯 "이 좋은 기회에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면서 다른 스타급 선수들도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듣고있나, 센가?

  •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한국 공식 유튜브 채널의 첫 인사를 맡아 특유의 유쾌한 모습으로 시그니처 세레모니인 '아츠오'와 함께 한국어로 인사를 했다.

  • 이후 이대호의 은퇴식에 영상편지를 보냈고 직접 한국어로 말했는데 한본어[16]의 전형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 대학시절 선출 야구선수들 사이에서도 톱클래스를 자랑하는 아지아대학 야구부의 군기를 전혀 힘들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똥군기에 대한 적응력과 멘탈이 좋은 듯.

  • 은퇴 후 SASUKE 41시즌 참가가 밝혀졌다.

5. 연도별 성적[편집]


파일:NPB 로고.svg 마쓰다 노부히로의 역대 NPB 기록
연도
소속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AR
2006





62
220
43
8
3
3
17
18
0
11
53
.211
.258
.324
.582
-0.1
2007
74
221
49
13
2
7
28
22
3
17
35
.254
.321
.451
.772
1.9
2008
142
595
154
33
10
17
68
63
12
28
115
.279
.322
.468
.790
2.9
2009
46
175
45
13
2
8
21
24
1
7
32
.281
.315
.538
.853
1.2
2010
113
458
108
20
3
19
61
71
17
14
90
.255
.284
.450
.734
1.6
2011
144
582
148
31
7
25
77
83
27
41
128
.282
.344
.510
.854
9.6
2012
95
390
108
28
7
9
41
56
16
27
63
.300
.349
.492
.841
5.6
2013
144
626
163
26
5
20
86
90
13
27
124
.279
.314
.443
.757
4.2
2014
101
423
118
20
3
18
54
56
12
24
80
.301
.341
.505
.846
3.7
2015
143
603
152
22
2
35
91
94
8
60
135
.287
.357
.533
.890
6.6
2016
143
609
142
23
5
27
79
85
6
48
141
.259
.325
.467
.795
3.9
2017
143
577
140
19
6
24
64
76
5
43
128
.264
.319
.458
.777
3.2
2018
143
580
128
21
3
32
72
82
3
56
113
.248
.324
.485
.809
4.1
2019
143
576
139
25
2
30
64
76
5
33
115
.260
.305
.483
.788
1.6
2020
116
431
90
16
3
13
36
46
1
32
76
.228
.285
.382
.667
0.7
2021
115
390
83
13
3
14
30
47
5
27
67
.234
.289
.407
.696
0.3
2022
43
106
20
2
1
0
2
7
1
6
20
.204
.255
.245
.500
-0.7
연도
소속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AR
2023
요미
우리

12
17
1
0
0
0
0
0
0
0
5
.063
.063
.063
.125
-0.5
NPB 통산
(18시즌)
1922
7579
1832
333
67
301
891
991
135
501
1520
.265
.318
.463
.781
49.8


[1] 1993년부터 2006년까지 NPB에 존재했던 역지명 관련 제도 중 2005과 2006년, 드래프트가 고교선수와 대학, 사회인 선수 드래프트로 나뉜 시점에 대학과 사회인 선수에 한하여 선수가 입단을 원하는 팀을 선택해 선수를 확정적으로 데려올 수 있던 제도였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KBO 신인 드래프트의 1차 지명 제도와 유사한 제도였다. 단 KBO 리그와는 다르게 연고지의 제약이 없었다는 점.[2] 등장곡을 많이 쓰는데다가 엄청 자주 바꾼다. 등장곡만 40곡을 넘게 썼다. 또한 과거의 등장곡 중엔 한국 노래도 있다. 소녀시대의 gee나 싸이의 강남 스타일 등. 과장 좀 보태서 일본에서 그 해나 그 전해에 인기있는 노래라면 일단 등장곡으로 쓰고 보는 수준이다.일본 인싸의 노래취향이 궁금하면 마츠다 등장곡으로 알아보면 된다 일단 긴기라긴니사리게나쿠랑 울트라 소울은 몇년째 고정적으로 쓰고 있으니 서술하지만 다른 곡들은 일일이 서술하지 않는 것도 하도 자주 바꿔서(...) 한국에서도 이런 케이스로 작뱅이 있다.[3] 참고로 2022년 사용했던 최후의 등장곡은 Aimer의 残響讃歌.의외로 2022년에는 거의 잔향산가만 썼다[4] 沸き立つスタンドの 期待に応えて燃えてやれ 振りぬくその腕に 闘志を注ぎ込め(열광하는 스탠드의 기대에 부응하여 불타올라라 휘두르는 그 팔에 투지를 가득 담아라)[5] 홈런을 친 후 특유의 "아츠오~!(熱男)" 구호를 외치는 마츠다.[6] 기후현의 사립고등학교로 아이치 지역의 강팀이자 고시엔대회 단골 출전교인 주쿄대부속 주쿄고교하고 항상 헷갈리는 학교이다. 보다시피 고시엔도 곧잘 출전하고 마쓰다같은 프로선수도 배출하는 등 남의 학교 이름이나 도용하는 핫바리학교는 아니건만 아이치현의 학교가 워낙 명성이 높아 짝퉁취급을 받는 중이다(...). 참고로 학교이름이 자주 바뀌는 것으로도 악명이 높은데 그 때마다 주쿄대-주쿄고교하고 비슷한 이름으로 개명을 하는 바람에 야구팬들을 더 헷갈리게 하고 있다. 2019년의 학교명은 주쿄"가쿠인"대학 부속 주쿄고교. 2019년 여름 고시엔에서 4강까지 진출했으며 본인도 오사카 원정온 김에 몸소 응원하러 달려와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7] 이는 팀내 1위였다.[8] 단 1위 나카무라 타케야와는 23개의 차이가 난다. 나카무라는 이 해 통일구의 저반발력 때문에 리그 전체적으로 장타가 급감한 와중에서도 홀로 예년 페이스로 홈런을 생산해 파리그 전체 홈런의 10분의 1을 혼자서 때려냈으며, 이는 치바 롯데 마린즈의 팀 홈런(46홈런)보다 많은 것이었다.[9] 13시즌 198안타와 0.341의 타율로 2관왕에 올랐다.[10] 다만 작년에 KBO에서 발생한 NC 다이노스 원정숙소 방역수칙 위반 사건만큼 사건이 크게 난 상황은 아니다.[11] 사실 교진 OB들은 대부분 친정 교진 감독이나 코치 자리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구단이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속마음과는 상관없이 예스맨이 될 수밖에 없다. 구단도 이렇게 OB들을 여론몰이에 잘 쓰며 상부상조하는 관계. 결론은 적당히 걸러듣자는 이야기.[12] 실제로 드래프트 지명 1, 2순위를 모두 야수로 지명한 건 1996년의 이구치 타다히토마쓰나카 노부히코의 국가대표 콤비를 지명한 게 가장 최근이었다.[13] 그렇게 지명된 대표적인 사례가 2016년에 딱 한 번 교류전 MVP 한 걸 제외하면 대수비, 대주자로만 나오다가 33살에 방출당해 은퇴한 기도코로 류마와 어깨는 강하지만 잦은 실책과 빈타로 욕먹고 있는 일본프로야구의 오지환 이마미야 켄타이다.[14] 2013년부터 2019년까지는 7년연속 수상. 일본야구를 논할 때 항상 언급되지만 NPB의 골든글러브는 수비를 보고 주는 상이다. 포지션별 최고의 타자에게는 미국의 실버슬러거에 해당하는 베스트나인상이 따로 주어진다. 참고로 베스트나인의 경우에는 라이벌 팀의 3루에 무지막지하게 홈런을 쏘아올리던 거포돼지 때문에 프로입단 14년차인 2018년에 딱 한번 수상한 게 전부다.[15] 아쓰오는 2016년의 팀의 시즌 슬로건이었는데 이 슬로건에 맞춰 개발한 세리머니였고 팬들의 반응이 좋아서 계속하게 되었다. 그 후 2017년에 팀의 슬로건이 바뀌고 바뀐 슬로건에 맞춰서 세리머니도 바꿔봤지만 임팩트가 영 아쓰오만 못해서 다시 아쓰오로 되돌리고 그 후로는 본인의 전매특허처럼 돼버렸다.[16] 이는 구도 기미야스 전 소프트뱅크 감독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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