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다 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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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다 겐타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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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WBSC 프리미어 12 엠블럼.svg
2015 프리미어 12
동메달


2015


2020년 AL 사이영상
수상
셰인 비버
2위
마에다 겐타
3위
류현진




파일:NPB 로고.svg 일본프로야구 투수 트리플 크라운

사이토 가즈미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6년)

마에다 겐타
(히로시마 도요 카프, 2010년)

스가노 도모유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8년)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10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베스트 나인 투수 부문
디키 곤잘레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마에다 겐타
(히로시마 도요 카프)

요시미 가즈키
(주니치 드래곤즈)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13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베스트 나인 투수 부문
우쓰미 데쓰야
(요미우리 자이언츠)

마에다 겐타
(히로시마 도요 카프)

스가노 도모유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15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베스트 나인 투수 부문
스가노 도모유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마에다 겐타
(히로시마 도요 카프)

노무라 유스케
(히로시마 도요 카프)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10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디키 곤잘레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마에다 겐타
(히로시마 도요 카프)

아사오 다쿠야
(주니치 드래곤즈)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12년 ~ 2015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아사오 다쿠야
(주니치 드래곤즈)

마에다 겐타
(히로시마 도요 카프)

스가노 도모유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10, 2015 센트럴 리그 다승왕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10, 2012, 2013 센트럴 리그 최우수 평균자책점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10, 2011 센트럴 리그 탈삼진왕

히로시마 도요 카프 등번호 34번
니베 사토시
(2004~2006)

마에다 겐타
(2007)


벤 코즐로브스키
(2008)
히로시마 도요 카프 등번호 18번
사사오카 신지
(1990~2007)

마에다 겐타
(2008~2015)


모리시타 마사토
(2020~)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18번
호세 페라자
(2015)

마에다 겐타
(2016~2019)


스티븐 수자 주니어
(2021)
미네소타 트윈스 등번호 18번
미치 가버
(2019)

마에다 겐타
(2020~2023)


결번






마에다 겐타
前田健太 / Kenta Maeda

출생
1988년 4월 11일 (36세)
오사카부 센보쿠군 타다오카정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학력
PL학원고등학교
신체
185cm / 84kg[1]
포지션
선발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6년 드래프트 1라운드 (히로시마)
소속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2007~2015)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16~2019)
미네소타 트윈스 (2020~2023)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에이전트
파일:보라스 코퍼레이션 로고.svg

1. 개요
3. 피칭 스타일
4. 평가
5. 수상 내역
6. 여담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일본야구 선수.


2. 선수 경력[편집]




3. 피칭 스타일[편집]


선발로는 평균 148km/h, 불펜으로는 그보다 조금 더 빠른 포심 패스트볼을 뿌리며 최고 154km/h의 패스트볼과 낙폭이 큰 슬라이더가 결정구이다. 이외에도 드롭커브, 서클체인지업,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할 수 있다. 선발 로테이션에 본격적으로 합류했던 2009년에는 제구력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안타를 많이 맞았었다. 이해 성적은 193이닝 동안 피안타 194개. 하지만 볼넷은 29개로 흔히 팬들이 말하는 볼넷을 내줄 거면 차라리 안타를 맞아라 하는 타입이었다.

이후 2010년 이후 포텐셜이 제대로 터지면서 안타도 적게 맞고, 볼넷도 적게 내주는 완성형 투수로 자리 잡았다. 탈삼진을 많이 잡는 파워피쳐형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탈삼진도 잡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2010~2011년 센트럴 리그 탈삼진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수비와 견제 능력도 상당히 좋은 편이며, 3년 연속 200이닝 투구라는 점에서 내구성도 상당히 좋은 편.

다만 공식 프로필상 6' 1"/185(약 185cm/84kg)으로 메이저 리그 기준에서는 크지 않은 편이라, 과거 스카우트들은 마에다의 하드웨어가 빅리그 진출에 있어 걸림돌이 될 것이라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패스트볼의 구위가 빅리그 레벨에서 경쟁력이 있는지는 미지수였던데다가, 다나카 마사히로다르빗슈 유처럼 특출난 승부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본 투수들의 전가의 보도인 포크볼도 구사하지 않아서 기대치가 그렇게 높지는 않았다. 베이스볼 아메리카가 평가한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TOP 10 유망주 순위에선 다나카 마사히로가 1위를 차지한 가운데, 여러 쿠바 선수들에게 순위가 밀리며 7위에 그쳤다. 참고로,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의 7위는 2012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진출한 아오키 노리치카였다.

메이저리그 진출 첫 시즌에는 초반과 타순 두 바퀴까지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세 바퀴에 접어들고, 투구수가 100개 가까이 다가가면 피안타율이 급증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시즌이 지날수록 피안타율이 서서히 높아지더니 후반기에는 방전된 것 같은 모습을 보이면서 포스트 시즌에서는 2경기 연속 조기강판 수모를 겪고, 2017 시즌에는 전반기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불펜으로 밀려났으나 후반기에는 선발로 복귀했다. 이 투구수 문제는 선발투수의 주요 덕목이라 할 수 있는 이닝 소화력에 큰 지장을 주었고, 감독도 마에다가 5이닝 던지고 나면 바로 불펜을 대기시키며 위기 상황 때 강판시킬 준비를 한다. 2018년까지의 모습을 보면 어느 팀에서나 로테이션은 차지할 수 있지만 강팀의 1~2선발은 안되는 정도로 보인다.

주자가 나가면 제구가 흔들리며 안정감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득점권과 비득점권의 OPS 차이가 2할 가까이 날 정도. 마에다의 피안타율은 생각보다 상당히 좋은 편이지만, 득점권에서 몰아 맞는 바람에 프론트라인급 투수의 성적을 기록하지는 못하고 있다.

2017년 포스트시즌에서는 선발이 아닌 중간계투로 나왔는데, 총 9경기에 등판해 10⅔이닝을 던져 5피안타 10탈삼진 2볼넷 1실점의 활약[2]

2018년 포스트시즌에서도 중간계투로 출전 하여 총 8경기에 등판하여 6⅔이닝 8피안타 11탈삼진 3볼넷 3실점으로 전체적으로 좋은 투구를 펼치면서 불펜투수 쪽에 더 재능이 있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문제는 마에다는 계약에 포함된 옵션 때문에 불펜으로 나오면 나올수록 실질 연봉이 깎이기 때문에 불펜으로 돌리기 상당히 곤란하다는 것.[3] 그래서 옵션에 포함되지 않는 포스트시즌에서는 마음껏 불펜으로 구른다.[4]

일본에서도 그랫듯이 주무기는 슬라이더이며, 슬라이더가 주무기인 우완투수답게 좌타자에게는 다소 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2018 시즌부터는 체인지업 장착[5]에 성공해, 포심-슬라이더-체인지업의 쓰리피치 중심으로 피칭한다. 2020 시즌부터는 아예 포심(20% 내외)보다 슬라이더(40% 내외)와 체인지업(30% 내외)을 더 많이 던지는 유형의 투수가 되었다.


4. 평가[편집]


일본 시절엔 구로다 히로키의 뒤를 이어 답없는 팀에서 고생하던 약팀[6]의 에이스였다. 의외로 다른 동시대 일본 에이스 다르빗슈 유다나카 마사히로에게 인지도가 밀려서 잘 간과하는 부분이지만 마에다는 저런 약팀에서 8시즌 동안 218경기 1509⅔이닝 97승 67패 ERA 2.39 1,233삼진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이런 압도적인 성적을 바탕으로 NPB 최고 투수상인 사와무라 상을 두번이나 타는데 성공했고, 2010년엔 트리플 크라운까지 달성했다.

한편 마에다는 국제 대회에서 한국 대표팀 상대로 등판한 적이 없어서 그의 국제 대회 활약상이 다르빗슈 유, 다나카 마사히로같은 선수들에 비해서는 국내에 잘 안 알려져 있지만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그는 15이닝 동안 단 1실점만 허용하는 철벽 투구를 보여주며 대회 최우수 선발투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마에다가 메이저리그의 주목을 받은 것도 이 시기부터였다.


5. 수상 내역[편집]




6. 여담[편집]



  • 투구 때 표정 변화가 꽤 큰 유형의 투수다. 악쓰면서 던지는 게 보일 정도.

  • 다나카 마사히로와 공통점이 많다. 1988년생 동갑내기, 같은 해 결혼, 부인들도 연상, 둘 다 방송일을 하는 사람. 그리고 각각 히로시마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약팀의 에이스,[7] 사와무라상 수상, 걸쭉한 기록[8]하나 새운것 마저 똑같다. 실제로 서로를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2013년 다나카가 역대급 성적을 내고 팀도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마에다가 묻혔다. 재미있는 건 두 선수가 메이저리그를 진출한 뒤로는 두 팀의 향방이 확연히 다르다. 다나카가 나간 뒤로 라쿠텐은 하위권을 맴도는 반면, 마에다가 나간 뒤로 히로시마는 투타 모두 엄청나게 폭발하며 3년 연속 우승으로 리그를 씹어먹는 절대강자가 되었다.

  • 2010~2012년 3년간 리그 투구이닝 1위를 차지하였고, 본격적으로 1군 선발 로테이션에 자리잡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831⅔이닝을 투구했는데, 같은 기간 동안 그보다 많이 던진 투수는 없다. 연 평균 29번의 선발 등판과 1년에 약 208이닝을 투구했고, 이에 따라 혹사 논란이 자연스럽게 논의되고 있다. 내구성이 좋은 것은 맞으나 흔히 약팀의 에이스들이 그러하듯, 한 번 부상으로 쓰러지면 회복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의견. 일단 2013년 부상 후 흔들리는 모습이었지만 결국 극복해냈다.

  • 2012년 1월 2살 연상의 아나운서 나루시마 사호와 결혼을 발표했다. 원래 멘탈이 좋은 편이라는 평을 받았지만, 결혼 후 아내의 내조 덕분에 더욱 더 안정된 멘탈을 지니게 됐다고.

  • 특유의 준비 운동이 은근히 인기 있다. 일명 '마에켄 댄스'라 불리는데 어깨와 견갑골 쪽에 준비운동 효과가 있다는 팬들의 증언이 있다.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프로야구 스피리츠 시리즈에서도 마에다 겐타 선발시 무조건 한 번은 나온다. 다이아몬드 에이스, 타마요미같은 야구관련 서브컬처에서도 꼭 나오는 마에다의 트레이드마크. 반농반진으로 상당히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히로시마 시절 엄청난 이닝을 던졌고 다저스에서도 허구한날 불펜과 선발을 와리가리하며 갈리는데도 아직 그 흔한 수술 한번 안받고 멀쩡한 것을 보아 저 체조가 꽤 효과가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돌 정도.[9]


  •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팬으로 유명하다. 실황 2013 광고영상도 찍었다. 그런데 인터뷰에서는 히로시마를 사용하지 않고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를 사용한다. 이유는 타선이 좋아서. 카프 시절 후배였던 오세라 다이치랑 자주했는데 둘의 실력차가 워낙 커서 늘 마에다가 이겼다고 한다. 2020년 eBASEBALL 파워풀 프로야구 2020에서 이상의 마에켄이란 캐릭터가 추가됐다. 마에켄 슬라이더[10]라는 전용 변화구도 있으며 성능은 매우 사기적인 편. 반면 타자로서의 성능은 무난하다. 2020년 12월 16일 직접 플레이했다.


  • 빅뱅의 팬으로 알려져 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도 자신의 등장곡을 Bang Bang Bang으로 선곡했다. 다만 빅뱅뿐만 아니라 선수 본인이 전반적으로 KPOP에 관심이 많은 모양. 미네소타 트윈스 이적 후에는 BLACKPINK의 How You Like That으로 등장곡을 바꿨다.

  • 그림 실력이 거의 화백 급이다. 물론 잘 그린다는 뜻의 화백이 아니라 반어법으로서다. 히로시마 시절 히어로 인터뷰 당시 자신이 그림을 그린 티셔츠를 입는 기행으로 유명했고, 덕분에 버라이어티 방송인 아메토크!의 인기 기획인 그림 못 그리는 게닌들의 2016년 2월편에 출연해서 대호평을 받아 2017년 1월 편에 다시 등장하기도 했고, 2019년에도 등장했다. 덤으로, 이때도 자신이 그린 그림을 전문 화가가 클린업 해 주자 그걸 또 티셔츠로 만들어서 입었다. 문제는 "그럼 히로시마 소속의 다른 선수들 그림 실력은 어떤가?"라는 주제로 몇 선수에게 그림을 그리게 해 봤는데 다들 마에다 수준이었다.

  • 2017년 7월 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트레이너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는데, 문제는 그 트레이너가 머리에 욱일기 머리띠를 하고 있어서 논란을 낳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발빠르게 본인이 직접 실수를 인정하고 삭제 조치를 취하면서 류현진에게도 사과를 하면서 해결되긴 했지만, 한국 메이저리그 팬들에겐 커리어 내내 이 일이 떡밥으로 남게 생겼다.[11]

  • 2020년 2월 2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최신 휴대폰 사진을 찍어서 올렸는데 그 이유가 유튜브 채널을 오픈하기 위해 구입했다고 한다. 기사. 같은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가 마에다의 유튜브 개설을 환영하는걸 보니 마에다가 유튜브 관련해서 미리 상의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 채널 개설의 이유는 스포츠계의 기여 및 올바른 식습관, 운동 습관 등 어린 야구 꿈나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기도 하고 프로와 아마추어의 벽을 허물고 싶다고 한다. 현재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 동영상을 게시하고 있으며 올려진 영상들은 한국어 자막이 없지만 일본어 자막을 자동 번역해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한 내용이다.

  • 선배인 다르빗슈가 유튜버로 성공하며 일본 프로 야구 선수들 사이에 유튜브 붐이 일었는데, 다르빗슈 다음으로 성공한 유튜버. 구독자는 현재 32만명이 넘는다. 다르빗슈 채널과의 차이점은 다르빗슈는 겜방부터 톡방, 야방까지 말그대로 뭐든지 다 하는 종합 채널인데 마에다 채널은 야구 얘기나 피칭 영상 위주인 야구 전문 채널로 차별화를 두고 있다. 변화구 그립과 릴리즈법 강의 등 진짜 실전적인 꽤 수준있는 방송이라 라이트팬에게는 좀 어려울 수도 있다. 소위 말하는 고인물 대상의 채널. 그럼에도 20만명을 넘겼다는 점에서 일본의 야구 저변을 알 수 있는 부분. 사실 그 카프조시로 대표되는 열혈팬이 많기로 유명한 그 히로시마 카프 출신인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인기이기도 하다.

  • 본인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가 30만명을 넘은 후로는 그나마 좀 대중적인 콘텐츠로 방향을 틀었는데, 그래도 야구 관련 썰방이나 게임은 프로스피 정도로 야구라는 큰 틀의 주제에서는 벗어나지는 않고 있다.

  • MLB 진출 이후 다저스 시절 루키리그에 소속되었던 적이 있다. MLB에서 마이너로 강등된 경우 10일이 지나야 MLB로 복귀할 수 있지만 해당 마이너리그의 시즌이 종료될 경우 이 기간이 지나지 않아도 복귀할 수 있는데, 로테이션 상 마에다의 등판 예정일 전날에 루키리그가 종료되어 등판이 꼬이지 않는 상황이 생기자 엔트리 1명을 더 쓰기 위해 MLB 선수를 하루아침에 루키리그로 강등시켜 버리면서 생긴 헤프닝이다.

7. 둘러보기[편집]





[1] MLB 공식 프로필에 6' 1"/185(약 185cm/84kg)으로 기재되어 있다.[2] 사실 3점 홈런을 맞았지만 2점은 승계주자로 인한 실점이라 자책점은 1점 뿐.[3] 당장 18시즌 MLB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오프너 시스템만 해도 선발 투수의 연봉을 일부러 깎으려는 의도가 있다며 싫어하는 투수들이 있다.[4] 이 때문에 다저스 구단도 시즌 막판에 불펜행을 결정할 때 이닝 등의 세부 옵션을 다 채워주는 조치를 하고 나서 불펜행을 결정했을 정도였다. 마에다가 그래도 옵션을 채울 수 있을 정도의 피칭은 보여줬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조치였지만.[5] 스플리터 그립으로 던지는 일명 '스플릿 체인지업'으로, 팬그래프나 베이스볼 서번트 등지에서는 스플리터로 구분된다.[6] 현재 히로시마 도요 카프는 그럭저럭 강팀이지만 마에다 재적 시절엔 탱킹 팀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동네북이었다.[7] 다만 다나카는 일본에서 승률이 5할 이하로 떨어진 적은 없고 커리어 상으로는 다나카가 우위다. 그래도 잔부상으로 매년 몇 번씩 로테이션을 이탈했던 다나카와 달리 마에다는 로테이션을 거른 경우가 잘 없어 꾸준함과 내구성에서는 우위다.[8] 마에다는 노히트노런, 다나카는 24승 무패.[9] 참고로 자주 비교되는 동세대의 다른 동양인 선발 메이저리거들의 경우 류현진은 어깨 관절경 수술, 다르빗슈는 토미 존 수술, 다나카는 팔꿈치 인대 손상 전력이 있다. 다들 알다시피 넷 중 메이저 진출할때 내구성을 가장 의심받았던 선수가 마에다였고, 넷 중 메이저 가기 전에 가장 많은 이닝을 던진 선수도 마에다였으며, 심지어 메이저 가서 가장 막 굴렀던 선수 또한 마에다.[10] 슬러브처럼 휘며 특유의 이펙트도 추가되었다. 고속 슬라이더인데도 변화하는 폭이 매우 큰 편.[11] 다만 이것은 마에다의 잘못은 크지 않다. 물론 잘못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욱일기에 대한 교육은 일본에서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에 이 사건에 대해서는 마에다가 사과를 하자 많은 한국인들이 이해하고 넘어가줬다. 진짜로 욕해야 할 곳은 일본 교육 계열 쪽이나 일본 우익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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