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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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밀러의 수상 이력




파일:마이크밀러.jpg

마이클 로이드 밀러
Michael Lloyd Miller

출생
1980년 2월 19일 (44세)
사우스다코타 주 미첼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출신학교
플로리다 대학교

203cm (6' 8")
체중
99kg (218 lbs)
포지션
스몰 포워드 / 슈팅 가드
프로입단
2000 NBA 드래프트 1라운드 5순위
올랜도 매직 지명
소속팀
올랜도 매직 (2000~2003)
멤피스 그리즐리스 (2003~2008)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2008~2009)
워싱턴 위저즈 (2009~2010)
마이애미 히트 (2010~2013)
멤피스 그리즐리스 (2013~2014)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2014~2015)
덴버 너기츠 (2015~2017)
소속팀
멤피스 대학교 어시스턴트 코치 (2018~2020)
휴스턴 고등학교 감독 (2020~)
등번호
50번 / 33번 / 6번 / 13번 / 18번 / 3번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2.2. 올랜도 매직
2.3. 멤피스 그리즐리스
2.4.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2.5. 워싱턴 위저즈
2.6. 마이애미 히트
2.7. 멤피스 그리즐리스로 2차 복귀
2.8.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2.9. 덴버 너기츠
3. 수상 내역
4. 플레이 스타일



1. 개요[편집]


미국의 前 농구선수. 별명은 Skinny(스키니).


2. 선수 경력[편집]



2.1. 아마추어 시절[편집]


파일:external/heathoops.com/mike-miller-gators.jpg
마이크 밀러는 플로리다 대학교로 진학해 2년동안 빌리 도노반 감독(현 오클라호마 시티 썬더 감독)밑에서 뛰어 유도니스 하슬렘, 도넬 하비 등과 함께 NCAA결승진출로 이끌게 했을 뿐만 아니라, 3점 슛을 빨리 넣을 수 있는 선수로써도 알리게 되었다.


2.2. 올랜도 매직[편집]


파일:external/i304.photobucket.com/0d502493.jpg
2000년 NBA 드래프트에서는 얼리 엔트리로 인하여 전체 5순위로 올랜도 매직에 지명을 받았으나 트레이시 맥그레이디그랜트 힐이 대형보강을 마친지 얼마 안 되가지고 그에게 걸리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힐이 부상으로 시즌아웃이 되자, 밀러는 선발로 발탁되어 서서히 NBA라는 무대에 서게 된다. 같은 해에는 NBA 루키 올스타에도 나가 고생하면서도 시즌이 끝날 때까지 82경기를 모두 출전 해 같은 팀의 일원으로써 활약해 루키상을 수상하였다.


2.3. 멤피스 그리즐리스[편집]


파일:external/oliverbigapple.files.wordpress.com/2784015_display_image.jpg
그러자 2002-03시즌 도중에 드류 구든과의 복수 트레이드 형식으로 멤피스 그리즐리스로 이적을 하게 되었다. 종반에 다다르고 있었던 시즌에서 남은 경기수는 16경기로 머무르게 되었지만, 도어 매트 팀으로부터 탈출을 계획하고 있었던 그리즐리스에 있어서 그에게 걸린 기대는 정말 큰 벽이기도 했었다. 2003-04시즌에는 65경기 가운데 모두 선발로 나가 팀도 창립이후 사상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2004-05시즌에는 4월 18일에 열린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경기에서 92-92 동점인 가운데 극적인 버저비터를 꽂아 드라마같은 역전 승리를 거두는 이변을 연출했다.

2005-06시즌에는 지금까지 싹 바뀐 선발선수로써 기용되어 식스맨으로써 안정된 활약을 계속 이어나가 식스맨 상을 수상했다.

2007년 1월 3일에 열린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의 경기에서는 9개의 3점 슛을 넣어 샘 맥이 기록한 8개를 넘었고, 2월 21일에는 같은 팀의 기록인 45득점을 넣었지만 패하고 말았다.


2.4. 미네소타 팀버울브스[편집]


파일:external/www65.homepage.villanova.edu/mike-miller-hair.jpg
2008-09시즌에는 브라이언 카디날, 제이슨 콜린스, 전체 5순위로 지명이 된 케빈 러브와의 트레이드 형식으로 마르코 야리치, 앤트완 워커, 그렉 버크너, 전체 3순위로 지명된 O.J. 메이요와 함께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로 이적했다. 출전시간은 그다지 바뀌어 있지 않지만, 평균 9.9득점을 넣어 가장 낮은 경력을 찍는 등, 저조한 시즌을 보내고 말았다.


2.5. 워싱턴 위저즈[편집]


파일:external/nimg.sulekha.com/mike-miller-2009-11-14-20-41-1.jpg
2009-10시즌에는 랜디 포이와 함께 에탄 토마스등과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 트레이드 형식으로 워싱턴 위저즈로 이적했다. 위저즈에서는 길버트 아레나스의 출전정지, 캐론 버틀러와 앤트완 재미슨등이 시즌 중반에 이적을 하는 등, 좋지 않은 성적에도 불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밀러도 어깨 부상으로 인하여 출전횟수는 54경기에 머무르게 되었다.


2.6. 마이애미 히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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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crankuptheheat.com/Mike-Miller-Miami-Heat.jpg
2010-11시즌에는 마이애미 히트와 5년 2500만달러 계약으로 체결하였다. 그러나 프리시즌 연습에서 수비를 진행하고 있는 중에 부상을 당해, 몇 주간을 사이드라인에서 보내게 되었다가, 같은 해 12월 20일에 열린 댈러스 매버릭스와의 경기에서 정식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2011년 1월 22일에 열린 토론토 랩터스와의 홈 경기에서는 감기에 걸린 드웨인 웨이드를 대신하여 선발로 나가 32득점을 올리게 되어 120-103으로 승리를 장식했다. 밀러는 처음으로 NBA 결승전에 올랐으나, 댈러스 매버릭스에게 2-4로 패하여 히트의 두번째 챔피언과 본인의 첫 챔피언에 오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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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 정규시즌에는 2012년 1월 17일에 열린 샌안토니오 스퍼스전에서 18득점을 넣어 3점 슛 야투 갯수 6개 가운데 모두 넣어 120-98로 승리를 거두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평균 5.2개의 득점을 넣어 각각 한번의 두 자리 숫자를 기록하여 다시 한번 결승전에서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를 만나게 된다. 5차전에서는 7개의 3점 슛을 넣어 결승전에서 3점을 기록한 선수 가운데 가장 많았다. 또 같은 경기에서 23득점, 리바운드와 스틸을 5개 기록하여, 히트의 2번째 NBA 챔피언쉽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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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3시즌에는 17경기를 선발로 기용시켜 평균 4.8득점을 기록하였고, 히트는 2년 연속으로 결승에 진출해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맞붙게 되었다. 특히 6차전에서는 벗은 왼쪽 운동화를 벤치에 던진 뒤, 3점 슛을 넣는 보기 드문 명장면이 나오기도 하였다. 그리고 히트는 3번째 챔피언과 본인의 2번째 챔피언에 등극을 하였지만 밀러는 특사 조건으로 떠났다.


2.7. 멤피스 그리즐리스로 2차 복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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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4시즌에는 멤피스 그리즐리스와 계약을 맺어 복귀한 이후, 데이브 이에거 감독 밑에서 안정된 출전기회를 얻어 정규시즌 82경기와 플레이오프 시리즈에 모두 출전했다.


2.8.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편집]


파일:external/cavs.blox.pl/miller_press.jpg
2014-15시즌에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계약을 해, 마이애미 히트에서 뛰었던 르브론 제임스, 제임스 존스와 다시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2014년 12월 14일, 그가 처음으로 캐벌리어스의 유니폼을 입고 뛰게 된 브루클린 네츠와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나가 3점슛 8개 가운데 7개를 넣어, 총 합계 21득점을 기록해 95-91로 승리를 장식했다.


2.9. 덴버 너기츠[편집]


선수 생활 마지막을 2시즌 동안 보냈다. 당시 덴버 너기츠는 카멜로 앤서니의 트레이드로 인해 얻은 선수들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니콜라 요키치, 자말 머레이 등 15년 드래프트부터의 젊은 선수들이 팀의 주축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밀러는 이미 은퇴가 가까워 코트에서 많은 활약은 못했지만 라커룸 리더로 활약하면서 선수들을 많이 도와줬다고 한다. 은퇴 이후 2018년부터 멤피스 대학교의 코치로 부임했다.

밀러 본인이 니콜라 요키치의 조커라는 별명을 지어준 것도 덴버.


3. 수상 내역[편집]


수상 내역
파일:NBA-Champion.png NBA 챔피언 2회 (2012, 2013)
파일:NBA 로고.svg NBA 올해의 식스맨 상 (2006)
파일:NBA 로고.svg NBA 올해의 신인상 (2001)
파일:NBA 로고.svg NBA 올-루키 퍼스트 팀 (2001)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전성기에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주목받았었다. 돌파력, 외곽슛, 리바운드, 보조리딩 등이 모두 준수하고 미드레인지도 일품이었다. 허슬 플레이를 자주 보여주었으나, 저평가를 많이 받아서 카일 코버와 같은 전문 슈터 급으로 취급되기도 했다.[1] 3점슛은 3점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 리그에서 손꼽히게 많이 쏘는 슈터였다. 하지만 부상을 당한 이후 운동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마이애미 히트 시절 레이 앨런과 비교를 많이 하는데 레이 앨런은 빠르고 정확한 3점슛을 쏘았더라면 마이크 밀러는 느린 3점을 많이 쏘았다. 기동력이 떨어지고 나서 수비력에 약점을 보였고 상대 선수들에게 자주 뚫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다만 늘 최선을 다하고 성실한 모습에 농구 팬들이 좋게 본 선수다.
[1] 정작 코버는 2014-15 시즌 애틀랜타의 시스템 농구에 힘입어 마이크 밀러에게는 없는 올스타 경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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