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스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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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2.bp.blogspot.com/mike-sweeney.jpg
이름
마이클 존 스위니
(Michael John Sweeney)
생년월일
1973년 7월 22일 (50세)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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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출신지
오렌지, 오렌지 카운티, 캘리포니아
포지션
1루수
투타
우투우타
신체
185cm, 88kg
프로입단
1991년 10라운드 캔자스시티 로열스 지명
소속팀
캔자스시티 로열스(1995~2007)
오클랜드 어슬레틱스(2008)
시애틀 매리너스(2009~2010)
필라델피아 필리스(2010)

1. 개요
2. 선수 시절
3.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아이콘
4. 여담



1. 개요[편집]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야구선수.
조지 브렛, 할 맥레이 이후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대표하는 스타이기도 했다.


2. 선수 시절[편집]


1991년 드래프트에서 10라운드(전체 262번)로 로열스에 입단한 스위니의 포지션은 포수였다. 마이너리그에서 3할의 타율에 두 자릿수 홈런을 꾸준히 쳐내는 등 타격 자질을 드러낸 그는 1995년 메이저리그로 승격해 4경기를 뛰기도 했다.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3시즌 동안 포수로 뛰었지만 크게 인상적인 모습은 보이지 못했고, 특히 1998년에는 수많은 트레이드 루머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리고 1999시즌, 토니 뮤저 감독은 스위니를 1루수로 전향시켰는데, 이게 신의 한 수가 된다. 스위니는 팀의 1루수였던 제프 킹의 은퇴 덕에 곧바로 1루 자리를 차지했고, 그 해 아메리칸리그 역대 2위에 해당하는 13경기 연속 타점을 기록하는 등, 타율 0.322, 22홈런, 102타점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내며 단숨에 로열스의 희망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2000년에는 타율 0.333, 206안타, 29홈런, 144타점, 2001년에는 타율 0.304, 29홈런, 99타점, 2002년에는 타율 0.340, 24홈런, 86타점을 기록하며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강타자로 이름을 날린다. 그리고 시즌 후, 로열스 역사상 최대 계약인 5년 5,500만 달러의 연장 계약을 맺게 된다.

하지만 2002년에 당한 등 부상은 그를 정점에서 점점 내려오게 만들었다. 이후 2003년 타율 0.293, 16홈런, 83타점, 2004년 타율 0.287, 22홈런, 79타점, 2005년 타율 0.300, 21홈런, 83타점으로 준수한 성적을 내긴 했지만 잦은 등 부상과 무릎 부상으로 결장하는 경기가 늘어났고, 설상가상으로 2005년 LA 다저스전에서 제이슨 워스와 충돌해 손목 부상까지 당하며 커리어 최대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파일:external/41.media.tumblr.com/tumblr_nsienypP141uckof9o3_1280.jpg

겨우 재활에 성공해서 선수생명을 이어갈 수는 있었지만 이전의 날카로운 타격은 거의 사라진 상황이었고, 부상은 계속되어 2006, 2007년 각각 60경기, 74경기 출장에 그치며 팀에서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2007시즌 후, 데이튼 무어 단장은 스위니와의 재계약을 포기했고 결국 스위니는 정든 캔자스시티를 떠나게 되었다.
떠날 것을 어느 정도 직감했는지는 몰라도, 스위니는 그 해 10월 지역지인 '캔자스시티 스타'를 통해 팬들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전하는 광고를 게재해 팬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스위니는 2008시즌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고, 메이저리그에 올라와 0.286의 타율로 베테랑으로서 자기 몫을 충실히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스위니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시즌 중 방출을 당하는데, 구단버스 안에서 어린 선수들에게 "야구를 직업으로 가진 우리는 경기 자체를 즐기면서 할 줄 알아야 한다" 라는 조언을 했다가 당시 오클랜드의 감독이었던 밥 게렌의 눈 밖에 난 것이었다. 하지만 방출된 이후에도 스위니는 "게렌은 훌륭한 사람이고, 그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라는 대인배스러운 발언으로 주위를 훈훈하게 했다.

이후 스위니는 시애틀 매리너스,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선수생활을 지속하다가 2011년, 고향팀인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1일짜리 계약을 맺고 스프링캠프지인 애리조나의 딕 하우저 필드에서 로열스 유니폼을 입고 은퇴를 선언한다.
이 은퇴식에는 조지 브렛과 프랭크 화이트 등 로열스를 대표하던 스타플레이어들도 참석했는데, 스위니는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선수로 은퇴하는 것을 항상 꿈꿔왔다. 이 유니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은퇴를 후회하지 않는다" 라는 소감을 밝혔고, 조지 브렛은 "로열스 유니폼을 입었던 선수들 중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선수였다" 라는 답사를 하며 경의를 표했다.

통산 성적은 타율 0.297, 1540안타, 215홈런, 909타점.


3.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아이콘[편집]


스위니가 2000년에 기록한 144개의 타점은 팀 기록으로 남아있고, 이 외에도 타율 3위(0.299), 홈런 3위(197개), 장타율 2위(0.492)에서 드러나듯 그는 로열스 역사상 가장 훌륭한 타자 중 한 명이었다. 팀에 대한 애정은 물론이고, 캔자스시티 지역사회에 봉사와 기부도 많이 하는 등 팬들의 사랑에 보답할 줄 알았던 그는 로열스 팀 명예의 전당에 오를 것이 유력하다.

2016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선 첫 후보 등록과 함께 단 0.7%(3표)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광탈했다. 성적이 성적인지라 예상대로라는 평.


4. 여담[편집]


  • 경기중 본인이나 팀메이트가 홈런을 치면 꼭 포옹을 하는 습관으로 유명했다. 이에 대한 그의 코멘트:"저는 (저를 포함해서) 8명의 아이들이 바글대는 가정환경에서 자라났어요, 항상 포옹이 많았죠. 전 제 팀원들을 사랑하고 좋은 플레이가 나오면 자동으로 포옹해줘요. 제가 자라나면서 느낀 사랑을 그대로 팀원들에게도 나누고 싶어요." 선수로서의 활동기간이 겹치지 않는 팀 레전드이자 대선배 조지 브렛에게도 이것을 시전했고 브렛은 "으으, 하지마, 그냥 악수를 하자고"라며 질색했다.[1]

[1] 브렛 본인이 2022년 4월 30일 양키스 중계석의 카를로스 벨트란과 나눈 여담이다. 자신의 우상을 만난 벨트란이 포옹을 시전하자 이때는 받아줬고, "스위니가 자랑스러워하겠네! 내가 포옹을 하다니"라며 웃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브렛의 여담 항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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