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모토 타카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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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모토 타카히로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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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그래미 시상식[1]
파일:external/www.brooklynvegan.com/grammy.jpg
최우수 팝 인스트루멘탈 앨범
제52회
(2010년)


제53회
(2011년)


제54회
(2012년)

"Potato Hole"
Booker T. Jones

"Take Your Pick"
Larry Carlton & Tak Matsumoto


"The Road from Memphis"
Booker T. Jones



마츠모토 타카히로
松本孝弘|Tak Matsumoto


파일:202010080000005-w1300_0.jpg

출생
1961년 3월 27일 (63세)
일본 오사카부 토요나카시
국적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학력
도쿄 킨죠고등학교
뮤즈 음악원
직업
음악가, 기타리스트, 작곡가, 편곡가, 음악 프로듀서
장르
, 하드 록, 팝 록, 헤비메탈, 퓨전, 블루스, J-POP
활동 시기
1981년 ~ 현재
소속 밴드
파일:B'z 로고.svg
포지션
기타, 작곡, 어레인지 프로듀서, 보컬
소속사
VERMILLION
House Of Strings
레이블
VERMILLION RECORDS
신체
163~4cm, O형[1]
좋아하는 색
노란색
별명
보스, 맛쨩
특기사항
세계 5번째, 동양인 최초로 깁슨사에서 시그니처 레스폴(노란색) 제공.

1. 개요
2. 상세
2.1. 연주력
2.2. 프로듀싱 능력
3. 그 외



1. 개요[편집]


일본의 국민 록밴드 B'z의 기타리스트이자 리더.

기타리스트로서는 'Tak Matsumoto' 와 '松本孝弘' 두 개의 브랜드가 존재하고 음악성도 차별화를 두고 있다.


2. 상세[편집]


아버지는 성악을 했고, 어머니는 클래식을 좋아하고 일렉톤을 연주할 수 있다고 한다. 집은 부유한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기타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기타리스트 치고는 다소 늦은 고교시절 기타에 입문하여 재능을 개화하게 된다. 출신 고등학교에서 경음악부를 세운 것도 마츠모토. 고등학생 시절 여름 방학에는 집에서 비 덧문을 닫고 하루종일 기타 연습에 매진할 정도로 몰두했다. 슈퍼 이마쥬라는 밴드를 꾸몄는데 테레비 도쿄의 록 음악 방송에 나가 작전을 잘 짜서 그랑프리를 먹은 적도 있다고 자랑했다. 마츠모토의 고교시절 사진을 보면 솔직히 우스꽝스럽지만 이 밴드 그랑프리 우승의 영향으로 마츠모토와 통화해보고자 하는 여성들의 전화가 한동안 끊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고교 졸업 후에는 운전 면허를 취득한 뒤 한동안 기타는 안치고 자동차 튜닝에 매진하다가 기타를 계속 하라는 선배의 권유로 81년 음악 전문학교(요요기 뮤즈 음악원)에 입학한다. 전문학교 시절에는 음악 이론 때문에 선생에게서 "자네는 재능이 없는게 아닌가" 하는 소리도 듣는 등 굴곡도 많았으나, 기타 연주 자체는 잘하다보니 학교 선생으로부터 프로 활동을 권유받아 중퇴하게 된다. 데모 테이프 덕분에 비잉에 소속되어 스튜디오 뮤지션으로 활동하게 된다.

세션으로 불려나간 학원제에서는 실수를 연발해서 '너는 치는 척만 해라' 라는 소리도 들었지만, 열심히 노력한 덕에 결국 세션맨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더욱이 그가 같이 어울렸던 선배가 LOUDNESS히구치 무네타카였던지라, 좋은 일자리를 많이 얻게 된다. 어느날 갑자기 전화로 불려져서 나갔더니 현재도 활동중인 여성 메탈 보컬리스트인 하마다 마리의 레코딩 자리였고 85년에는 TM NETWORK의 라이브의 서포트나 음반의 레코딩에도 참여하게 된다. TM NETWORK에서의 활동은 B'z 데뷔 이후에도 약간 이어졌고 94년, 2004년의 공연에도 특별 출연한다. 댄스 연습을 시키는게 싫었다고 한다

그 이듬해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베이시스트이자 카시오페아의 멤버인 나루세 요시히로, 여성 소울 가수의 대모 카르멘 마키와의 프로젝트 밴드인 시끄러워서 미안해, 그 외에도 키타지마 켄지(FENCE OF DEFENSE) 같은 여러 이름있는 기타리스트와의 프로젝트 앨범에 공동 참여하는 등 스튜디오 뮤지션으로 이름을 날리는 중이었다. 이런 인맥이 초기 마츠모토에게 음악적으로나 커리어적으로 크나큰 영향을 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실제 이나바와 만났을때도 마츠모토는 기타 잡지의 표지로도 오른 적이 있을 정도로 커리어의 차가 상당했다.

데뷔 초기에는 야마하를 위주로 사용했으나 록으로 본격 노선 전환을 하면서 레스폴 골드탑을 애용했고, 1999년 세계 5번째[2] 동양인 최초로 깁슨 레스폴 시그니처 아티스트가 되는 대사건을 일으켰다. 이후 LA에 만든 스튜디오를 거점으로 해외 뮤지션과 교류 한다. 스티브 바이와의 공동작업이나 빌리 시언의 라이브 서포트 멤버 참여, 에릭 마틴과의 프로젝트 밴드 활동, 그 외 유명 뮤지션의 세션 기용 등이 그 실적. B'z가 헐리우드 락워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된 것도 스티브 바이의 추천 덕이다. 이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 깁슨의 추천을 받은 래리 칼튼의 오퍼로 공동 작업한 앨범 「Take Your Pick」으로 이어져 2010년 53회 그래미 상을 받았다.[3] 이처럼 본인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천운이라고 할 수 있는 운빨에 고향 오사카의 상인 기질을 잔뜩 타고나서인지 중요한 고비에 기가막힌 결정을 잘 해낸다.

기타연주를 담은 솔로앨범을 B'z의 데뷔보다 먼저 발매했었다.[4] 기타리스트로써 대표곡은 뮤직 스테이션에서 나오는 기타 멜로디인 「#1090 ~Thousand Dreams~」[5]가 있다. 뮤직 스테이션에서 십수년째 흐르는 바로 그 등장음악이다. 이와 함께 울트라맨 시리즈 중에서 극장판 ULTRAMAN의 테마곡 중 하나인 Theme from ULTRAMAN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2.1. 연주력[편집]


일본을 대표하는 슈퍼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 작은 손에 짧은 손가락이라는[6] 핸디캡이 있으나 젊은 시절부터 프로 세션 연주자로 활동하면서도 다른 유명 연주자들과 음반을 내거나 해외의 명곡을 커버하는 등 테크닉에 있어서도 뒤지지 않지만 마츠모토의 가장 뚜렷한 강점은 톤에 있다. 레코딩이나 프로젝트 등으로 같이 활동한 슈퍼 플레이를 누구보다 많이 봐왔을 해외 뮤지션들도 이구동성으로 '마츠모토 = 톤'이라고 칭찬 해주며 마츠모토 자신도 중시하는 부분이다. 데뷔 후 10여년 정도는 크게 영향을 받은 기타리스트인 마이클 쉥커에디 밴 헤일런의 색깔이 묻어났으나 이후에는 자신만의 시그네쳐 톤이 있을 정도로 들으면 딱 알 수 있는 톤으로 정착한다. 이러한 마츠모토의 톤은 게리 무어의 SUNSET 커버를 통해 원곡을 뛰어넘는 커버로 평가를 올려놓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BARKS 편집장 : 사운드 자체는 어떤가요? 좋은 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기쁨이라던가.

마츠모토 : 좋은 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기쁨이요?

BARKS 편집장 : 저는 B'z의 좋은 사운드에 매번 감명을 받고 있으니까요. '여전히 소리가 좋구나'라고요.

마츠모토 : 그렇게 말해주시니 기쁘군요. 제 가장 큰 포인트는 역시 톤이니까요. 결코 기술적으로 대단한 것은 아니니, 제 입장에서는, 음... 톤이 역시 절대적이지요. 그래서 초킹하고 비브라토를 했을 때의 느낌이 가장 큰 포인트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대담] 마츠모토 타카히로×BARKS 편집장, 앨범 『New Horizon』으로의 여정 「지금의 나가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다」


B'z에서의 마츠모토의 기타 솔로는 일련의 레가토 위주의 프레이즈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2015년까지는 레가토뿐만 아니라 얼터네이트 피킹을 위시한 여러 주법까지 활용했으나, 그 이후부터는 레가토 기반의 프레이즈 사용 비중이 조금 더 늘어났다. 그래서인지 전반적으로 마츠모토의 솔로가 이전에 비해 속주나 복잡함보다는 상기한 톤을 바탕으로 한 초킹과 비브라토를 기반으로 한 사운드를 내세우고 있다. 이에 더해 최근에 솔로앨범[7]이나 B'z의 정규앨범에서 들을 수 있듯 좀 더 블루지한 사운드를 내는데 중심을 두고 있다.

2010년 이전만 해도 서브 기타리스트를 라이브 세션에서 기용하지 않아 대부분의 파트를 마츠모토가 담당했다면, 최근에는 오오가 요시노부, YT 등의 세션 기타리스트들이 그의 파트 일부를[8] 담당해 전반적으로 그의 부담이 해소되었다.

2.2. 프로듀싱 능력[편집]


88년도에 데뷔한 아티스트라면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고 하더라도 보통 한 시대에 머물러 음악적 인상이 변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마츠모토가 제작하는 음악은 팬들조차도 층이 갈릴 정도로 음악적 변화가 극심하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자신이 즐겨듣는 음악이 고정되는것이 보통이고 마츠모토보다 훨씬 젊은 나이의 팬들도 여기에 예외는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츠모토는 새로운 사운드에의 도전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래서 록이라는 장르를 하더라도 늘 새로운 음악을 내놓고 있다.

다른 아티스트들이 B'z 노래를 커버하기 어려운 이유가 이나바의 보컬 실력과 함께 마츠모토의 작곡, 편곡 능력을 꼽는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마츠모토는 철저히 이나바의 목소리에 맞춰 곡을 제작하며 실제로 B'z의 곡을 뜯어보면 '이렇게까지 불필요하게 어렵게 쓸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있으며, 들을 때는 아주 신났던 곡이 직접 부르면 재미없는 경우도 많다. 방악 커버 프로젝트인 HIT PROJECT 앨범의 '勝手にしやがれ', '異邦人', '私は風'등을 원곡과 비교해서 들어본다면 다른 커버 아티스트들과는 달리 확실히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있다.

물론 마츠모토는 '프로듀서라고 이름 올리고 있지만 모두와 함께 만드는 것이다'라고 표현한 것처럼 데뷔 초에는 프로듀서가 따로 있었고, 별도의 제작집단인 B+U+M이나 그것의 해산 이후에도 제작을 지원해주는 스태프들은 별도로 존재한다. 거기에 B'z의 성공으로 돈에 여유가 있다보니 어떠한 시도에 있어 제약이 거의 없다는 것도 크나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다른 아티스트를 프로듀스한 적이 있기는 한데 성공시킨 적이 없다보니 타 아티스트와의 협업은 보통 악곡의 제공 선에서 그치는 수준.


3. 그 외[편집]


  • 96년에는 이나바가 솔로 앨범을 제작하는 동안 3개월 샌디에이고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전세계에서 서로 나이가 다른 사람들끼리 섞여 영어를 배우는 경험은 꼭 해보라며 추천하기까지 했다.
  • 1999년에 발매한 싱글 「THE CHANGING」에서 처음으로 보컬에 도전을 했다.[9] 팬들의 감상평은 "말보로에 제대로 절인 허스키한 창법". 한동안 봉인(?)했다가 2012년 즈음부터 B'z의 레코딩과 LIVE-GYM에서도 코러스와 파트 독창(!)을 하는 등 보컬리스트 맛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 96년 양악 커버 프로젝트였던 Rock and Roll Standard Club에 이어 2003년에는 빙계열 여가수들과 함께 방악 커버 프로젝트를 했다. ZARD와는 「異邦人」, 쿠라키 마이와는 「イミテーション・ゴールド」, GARNET CROW의 보컬 나카무라 유리와는 「私は風」 음이 높아서 라이브에서 유릿페도 힘들게 부른다 라는 곡을 작업했다. 사무소인력
  • 극초반(1985~88)에는 '빌 로렌스(Bill Lawrence)'社[10]의 커스텀 기타를 사용했었으나, 1988년부터 야마하의 커스텀 기타(T'S TOYS)를 사용하다가, 1989년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야마하에서 출시된 시그니처 모델인 'MG-M' 시리즈를 애용했다. 레스폴을 라이브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92년. 현재 라이브에서 주로 사용하는 기타는 깁슨 레스폴, 커스텀 파이어버드, 커스텀 더블 컷어웨이, 플라잉 V, 뮤직맨 EVH[11]이다.
  • 2016년 3월, 트위터에서 요시키와 함께 술을 마시는 근황이 확인되었다.
파일:external/pbs.twimg.com/CdYb5ugUEAARlp2.jpg
  • 지금은 이나바 혼자만 센터에 있지만, 초기 몇년동안은 이나바가 왼쪽에서 노래를 하고 있으면 마츠모토는 오른쪽에서 스탠드 마이크 두고 기타치는 포지션이였다. 이후 완전히 오른쪽으로 이동하였고 토크도 잘 안하게 된다.
  • GLAY의 타쿠로와 유독 친분이 깊은데 타쿠로와 함께 네쉬빌의 깁슨 본사에 여행을 간 적도 있고, 타쿠로 왈 '그간 받은 가르침은 돈으로 계산하면 얼마 정도일까?' 싶을 정도로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인간대 인간으로서 진심으로 화를 낸 적도 있다고 한다. 한창 GLAY가 잘나갈 때 '너네들 적당히 좀 해라'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슥 할 정도로 허물없는 사이로 존경하고 경애한다고 밝혔다. 마츠모토는 그에 대해 '그런적 있었나?' '읽는 사람은 내가 무서운 사람인줄 알거아냐' 라고 코멘트 했다고.
  • 2000년대까지만 해도 데모 작업을 할때는 사용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그때도 이미 희귀해진 카세트 레코더로만으로만 녹음을 했었다. 그때문에 카세트 레코더와 카세트를 눈에 보일때마다 싹쓸어 담을 정도로 구매하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고성능이 된 이후에는 평범하게 쓰고있는 아이폰으로 녹음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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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랫동안 A형으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2] 레스폴 최초의 시그니처는 레드 제플린지미 페이지가, 2번째는 에어로스미스조 페리, 세번째가 KISS의 에이스 프레리, 네번째가 건즈 앤 로지스슬래시(기타리스트)이다.[3] 이건 코무로 테츠야가 라디오에서 마짱이 원래 이런걸 잘 한다면서 래리 칼튼에 묻어서 받았다는 뉘앙스로 좀 에둘러 깠다.[4] 앨범 이름이 「Thousand Wave」인데, 이는 당시 마츠모토의 여친 이름이었던 '치나미(千波)'를 그대로 영어로 옮긴 것이다.[5] 마츠모토가 갖고 있는 1954년산(스트라토캐스터가 처음 생산된 연도) Fender 스트라토캐스터의 시리얼 넘버[6] 후쿠오카 돔에 가보면 마츠모토와 이나바의 손 실물 동상을 확인해볼 수 있다.[7] 『Bluesman』이나 다니엘 호와 공동작업한 『Electric Island, Acoustic Sea』[8] 대표적인 파트가 「ミエナイチカラ ~INVISIBLE ONE~」. 2012년 Into Free -EXTRA- 투어까지만 하더라도 전주 부분이 오오가와의 더블 기타 솔로였다면, 2018년 -HINOTORI- 투어 이후에는 마츠모토는 하모닉스를 이용한 아밍 사운드를 담당하고 오오가가 기타 솔로 파트를 담당한다.[9] 보컬로서 라이브는 이전 1995년 BUZZ에서도 한 적이 있었다.# 곡명은 [10] 광고까지 찍었다. 다만 마츠모토는 사진 속의 모델은 사용하지 않았다.[11] 레스폴이 고정형 브릿지라, 주로 아밍이 들어간 곡에서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