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야마 토모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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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야마 토모히로(町山智浩)

1. 개요
2. 상세
3. 영화 평론의 스타일
3.1. 정치적 성향
4. 기타
4.1.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모티브 중 매춘 관련 발언
4.2. 진격의 거인 각본 집필
4.3. 한국 문화계 평론
4.4. 한국영화와 일본영화의 차이점
5. 외부 링크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트위터

일본의 유명 영화 평론가 겸 재미 저널리스트, 칼럼니스트. 아버지가 한국계인 하프 코리안이다. 1962년 도쿄 출생. 와세다 대학 법학부 졸업으로, 현재는 미국 캘리포니아버클리에서 부인, 딸과 함께 살고 있다.


2. 상세[편집]


어린 시절부터 텔레비젼에서 틀어주는 프로그램을 꼬박꼬박 시청하는 영화광으로 성장했고,[1]그후, 와세다 대학 고등학원(고등학교) 및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졸업. 대학 재학 시절 만화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같은 만화동아리 선배인 "高橋信之(타카하시 노부유키)"가 창립한 편집프로덕션 "스튜디오 하드[2]"에서 알바로 고지라 시리즈에 나오는 괴수 백과사전 기사 및 애니백과사전을 집필. 거기서 소개 받은 "宝島社(타카라지마샤)[3]" 알바 겸 편집 데스크로 임명되어, 당시 펑크 잡지였던 "宝島(타카라지마)"의 편집부를 통해서 서브컬쳐계의 인물과 인맥이 쌓이고, 거기서 여러 괴상한 인물에게 끌려다니며 고생하는 편집자인 "バカの町山(바보 마치야마)"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거기서 집필한 "고지라선언"이라는 서적이 대박나면서 타카라지마 사에 정식채용되었다. 그 후, "ムック(묵쿠)", "別冊宝島(별책 타카라지마)", "宝島30(타카라지마30)[4]"에서도 편집자로 활동하면서 타카라지마 사에서 영화전문 잡지인 "映画宝島(영화 타카라지마)"를 기획하여 영화 평론가의 길로 들어섰다.

다만, 편집자로서의 능력과 비해서 사장과 마찰[5]로 자회사인 "双葉社(후타바샤)"에 좌천. 적자인 후타바샤에서[6] 반년만에 "トンデモ本の世界(톤테모본노 세카이)"라는 세상에 알려지고 잘난체하는 오컬트나 유사과학을 까는 책으로 대박치면서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켜 부활시키고, 1995년에 "영화 타카라지마"의 멤버를 모아서, 매니악틱한 부분만 농축한 일본의 영화 잡지 [영화비보(映画秘宝)]를 창간했다.

1996년에 "파이사건"을 터트리면서 회사를 자진퇴사. 일본 영화잡지계의 권위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키네마 준보"에서 "中原昌也(나카하라 마사야)" [7]가 사실관계를 엉터리로 작성한 영화평론을 계시하자, 영화비보가 시면으로 그것을 조롱하고 까는 내용을 실었는데, 그걸 "키네마 준보"의 부편집장이 시면으로 "저질 잡지", "너희들이 하는건 영화 괴롭힘이다"하면서 받아쳤다. 그걸 본 마치야마[8]는 사원들과 결탁해서 농담 겸 복수를 기획한다. [9][10][11] 키네마 준보 편집부에 들어간 마치야마와 사원들은 [12] "영화비보다!"라고 외치면서 키네마 준보의 부편집장에게 크림파이[13]를 얼굴에 투척하여 도주.[14] 같은 영화 동호인이라, 파이던지기라는 미국식 죠크를 이해해줄거라고 생각했던 마치야마였으나, 지긋히 사회인으로서 정상적인 대응이 들어와서, 사건 책임을 지는 형태로 자진퇴사하게 되었다. 당시 영상의 일부11:08 ~ 11:45

1997년에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15], 일본에서는 늦게 개봉되거나 수입되지 않은 미국 최신 영화를 미국에서 개봉일에 직접 보고, 감독이나 제작 스태프에게서 직접 인터뷰하여 숨겨진 테마나, 제작당시의 사건사고, 연출 의도등을 일본에 소개하는 식으로 인기를 얻었다[16] . 물론 원작이 영어로 쓴 소설이라면 영어 원작 소설도 읽고 다른 외국어로 쓰인 소설이라면 번역본도 찾아서 읽는 등 노력하는 자세도 보여줬다. 다만 요즘에는 인터넷이 발달해 외국 영화의 개봉 일자가 그리 늦지 않고, 개봉하지 않더라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으며[17], 외국 감독의 인터뷰나 촬영 뒷이야기도 찾아볼 수 있게 되어 마치야마의 장점이 다소 퇴색된 감은 있다. 또 본인도 예전 대비 엄청 자료 수집에 적극적이진 않는지, 영화 평론의 질이 예전만큼 날카롭진 않다는 지적도 있다. 영화보다 사회 분야에 더 관심이 많아져서 그럴지도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하프 코리안'이다. 다만 아버지가 그가 어릴 적에 집을 나가서 오랫동안 절연 관계였고(훗날 이혼), 일본인 어머니와 모자(母子) 가정에서 자라서 자이니치(在日) 사회와는 딱히 교류가 없다고. 자신의 선조가 조선 시대 유학자 류운룡(류성룡의 형)이라고 한다[18]. 어른이 된 후에야 아버지의 고향인 한국의 경상도에 있는 친척 집에 찾아 가 본 경험은 있지만, 지금도 한국어는 할 줄 모르고 딱히 배우고 싶은 생각도 없다고 한다. 딱히 코리안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고. 리버럴한 그의 성향상 딱히 국적이나 민족에 얽매이는걸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닌듯. 한국어는 애당초 전혀 못하고 한글도 하루 정도만 노력하면 읽을 수 있는 것을 전혀 읽을 수도 없고 배우고 싶은 생각도 없다고 한다.


한국에 정식으로 발매된 책으로 '미국인의 절반은 뉴욕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가 있다.


3. 영화 평론의 스타일[편집]


본인의 주요 저서인 〈영화를 보는 법〉을 알 수 있는 책의 소개문에서
영화의 수수께끼를 저자 본인의 말로 풀어갑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가 난해한 것은 처음에는 전편에 들어가 있던 내레이션을 완성 직전에 컷 해 버렸기 때문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클라이막스 빛의 샤워와 우주의 영상에는 깔끔한 맥락이있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삭제 된 엔딩이 있었다.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 로버트 드니로가 모히칸 헤어스타일을 한 것은 그것이 베트남의 관습이기 때문이다. 지옥의 묵시록의 시나리오는 "전장은 천국이며 평화는 지옥이다'라는 엔딩이 붙어 있었다. 미지와의 조우의 '완결편'으로 스필버그는 '올웨이즈'라는 영화를 만들고있다. 같이, 더티 해리 프렌치 커넥션 이지 라이더 록키 등의 영화를 보고 「어?」라고 생각하는 「수수께끼」를 인터뷰 등에서 찾아낸 감독과 작가 자신의 말로 풀어가는 책이다. 제멋대로의 억지와 어려운 수사학은 일절 없습니다. 오로지 알기 쉽고, 수수께끼를 모두 자료와 문헌의 뒷받침에 따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맛보십시오.
라고 말하고 있다

이외에도 '블레이드 러너'의 무엇이 "두개로 충분해요(二つで充分ですよ)"인가? "이레이저 헤드" 아기의 정체는 토끼? '비디오드롬'의 변태 방송국은 실존했다? "브라질(영화)"은 왜 브라질인가? 80년대 영화 작가들의 진실을 소개한다! 라고 소개하고 있는 영화를 보는 법을 아는 책 - 80년대 미국영화 편이나 "저주 받은 영화 어둠에 묻힌 영화, 선을 넘어버린 영화 등 저자의 마음에 손톱 자국을 남긴 26편의 작품을 소개. 어릴 때 봤던 그들의 엽기성과 페티시즘의 원천을 풀면서 작품끼리의 연결, 훗날의 작품에 미친 영향을 찾는다." 라고 소개하고 있는 트라우마 영화관 등 여러 저서를 남기고 있다.

논증 대상의 영화가 완성되기까지의 원작자, 각본가, 감독, 배우, 프로듀서 등 각각의 사상 · 생각과 행동, 우연한 사건 등의 에피소드 등을 상세히 취재하는 것에 의한 '가장 정확한 평론'을 지향하고 있다.

영화평론가란 영화를 본 관객에게 작품을 이해하기 쉽게 도와주는 해설자 역할이라는 신조를 갖고 있다. 그래서 어려운 용어나 단어를 난발하면서 관념적이고 뜬 구름 잡는 식의 평론은 싫어한다. 난해하기로 소문난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그래서 평론가마다 이런저런 해석이 난무했는데, 본인이 직접 시나리오 초본을 구해서 읽어보니 영화 전반의 스토리가 이해하기 쉬웠고 감독이 일부러 내레이션을 빼버리고 순서를 섞어버려서 영화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어떤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한 많은 정보와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가 해설하는 영화평을 보면 원작과 관련 서적을 읽는 것은 기본으로, 그래서 모르겠으면 감독을 직접 찾아가서 물어보는 등 평론가 이전에 영화팬이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있다.

또한 『영화비보』지에 연재된 『〈영화를 보는 법〉을 알 수 있는 책』 시리즈에서 할리우드는 1970년대·1980년대는 "영화 작가"들이 자신들의 표현 욕구를 토대로 재미 있는 영화를 찍고 있었지만, 1990년대 이후는 프로듀서 주도의 "고예산 영화(big budget movies)"가 주류가 되어 영화가 재미 없어졌다고 하고 있다.

영향을 받은 영화 평론가로서는 카와모토 사부로, 마스부치 타케시, 야마다 코이치, 요도가와 나가하루 등의 이름을 들고 있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현학적인 평론으로 지식 자랑이나 하면서 읽는 이에게는 어려운 영화를 더 어렵게 만들 뿐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특히 스카페이스를 저질(下品)이라고 평한 것에 대해 분노에 가까운 신랄한 반론을 라디오에서 펼쳤다.

영화의 다른 영화의 장면이나 주제의 유사성에 관해서는 긍정적이다. "어떤 작품이든 다른 것에서 무언가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 사실을 억지로 숨길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마치야마 본인이 영화광으로 영화를 많이 봐서, 이 영화는 이전의 이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지적을 자주 한다.

미국으로 건너 간 이후, 영화잡지 기사를 위한 취재로 여러 감독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자신의 작품이 어떤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솔직히 말하는 감독은 좋게 평가한다. 그리고 M. 나이트 샤말란처럼 영화의 플룻이 기존의 작품에서 따온 것이 분명한데도, 난 그런 영화 본 적이 없다고 시치미를 떼는 감독은 거짓말쟁이라고 까버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3.1. 정치적 성향[편집]


정치적 성향은 좌파, 반(反) 우경화 성향을 가졌으나 동시에 한국을 굉장히 밑으로 보는 성향도 있다. 일본에선 좌익 인사로 꽤 인지도가 있는 편이며, 덕분에 일본 넷 우익들에게 공격도 받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도 밑으로 보는 성향과 편견만 강한 탓에 위안부 문제나 역사, 인종 문제에 한해서만 진보적일 뿐 그 외의 국가 간 문제에선 한국을 굉장히 고깝게 보는 표현을 하는 탓에 우익 혐한계가 주장하는 논지를 유지한 채 좌우만 뒤집힌 스타일로서 혐한은 아니나 친한도 아닌, 이른바 반한계 진보 인사로 손꼽힌다. 분명 역사에 근거한 팩트로 말할 수 있는 식견은 어느 정도 있으나, 자신의 색안경이 너무나도 강한 경우가 바로 마치야마라고 볼 수 있다.

2019년 일본 내 소녀상 전시회를 비난하며 구설수에 오른 에반게리온의 캐릭터 디자이너 사다모토 요시유키에게 "동상 자체는 어쨌든 간에 정치적 배경이 싫다고 말하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정치적 맥락 없이 순수한 조형물로써 봤을 때 그 동상은 전형적인 한국인 소녀를 담담하게 묘사한 것 뿐이므로 그걸 쓰레기라던가 더럽다던가 매도하는 건 차별적이다. 예를 들면 흑인을 묘사한 동상을 보고 그렇게(더럽다, 쓰레기다) 말하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라고 비판하였고, 이에 대해 사다모토 요시유키는 "존경하는 마치야마씨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괴롭군요. 항상 (마치야마씨의)심도높은 고찰파일 사고 있습니다. 이번 건은 미군에게 치여 죽은 소녀가 배경이란 건 몰랐습니다. ADHD[19]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아무런 생각없는 발언이었습니다. 뭐 어떤 말을 해도 변명이 되니 닥치고 비판도 딱지붙이기도 받아들일려고 합니다."[20]라고 답변하였다. 이에 대해 마치야마는 한번 더 "ADHD가 아니라 DHC가 원인이 아닐까?"[21] 라고 강도높게 비판하였다. 주목할 점은 이 과정에서 마치야마는 사다모토에게 단 한번도 직접 멘션을 하지 않았다. 말 섞기 싫다는 간접적인 의사표시인 셈이다.[22]

또한 마치야마는 사다모토를 비판한 유명인들 중 사다모토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비판을 가함으로써 사다모토가 꼬리내리게 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23]

이 외에도 영화 만비키 가족의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비난하는 일본 일부 정치인과 넷우익들에게[24] "정부 지원금을 받았으니 정부를 비판하지 말라는 사람들은 소련에 가라"비판하였고, 김정은이 사망할 경우 서울, 도쿄, 오사카에 숨어있는 북한 테러리스트들이 활동을 시작할 것이라는 미우라 루리(三浦瑠麗)에게[25] "미우라 씨가 발언할 때 관동 대지진 당시 유언비어로 조선인이 학살됐고, 미국에서 세계대전중 일본계가 스파이로 지목되고 수용소에 수감됐으며, 지금 이슬람계의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로 취급되고 있는 것, 거기에 자신의 발언으로 한국/조선계열의 아이들이 어떤 고생을 할지 조금이라도 생각한 것일까?" 라며 강도높게 비판하였다.

2013년 6월 15일 일본에서 한참 재특회의 혐한 데모로 시끄러울 때는 트위터에서 "한일 정부와 피해자 사이에 숙연하게 처리해야 할 문제를 국내외에 떠들썩하게 해서 한일 관계를 먼저 악화시킨 것은 한국 측이고, 재특회는 반일 운동의 거울상(미러링)이야. 한국의 반일파와 일본의 혐한파는 같은 종류의 인간이야. 그 사이에서 가장 불편한 것은 양국 사이에 살고 있는 교포야." 라고 말했다.트위터 글[26] 그리고 마치야마 토모히로는 피해자는 재일교포라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지만, 한국에서 취재한 재특회 관련 방송(JTBC 광복절 특집 다큐 - 재특회, 그들은 왜 한국을 증오하나.2013년 8월 15일 방영)에서 실제로 인터뷰한 재특회 소속으로 영상촬영을 담당하는 재일교포(이름은 박신호. 한국 국적)는 한국에 가서 반쪽바리라고 욕을 먹은 경험이 있고 한국인을 싫어하고 "재특회에는 재일교포가 많다." 라고 언급했다. [27] 이러한 한일 양국 사회 속의 차별적 시선 탓에 생각보다 일본의 혐한 우익에는 재일교포가 많다고 발언했지만, 그 중추와 대부분의 인원이 해당 단체 내에서 일본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적지 않음을 간과했다.

또한 후술할 한국 영화 평론을 보면 오카다 토시오 정도만 아닐 뿐 한국이란 나라를 밑으로 보는 경향이 꽤나 강해 대놓고 인종차별만 안 하지 의외로 점잖은 이미지 치곤 생각 없이 말하는 반한 성향이 생각 이상으로 강한 편에 속하는 일본 진보계 인물 중 한 명이라 볼 수 있다. 이른바 진보계 버전 기타노 다케시[28].

4. 기타[편집]



4.1.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모티브 중 매춘 관련 발언[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 진격의 거인 각본 집필[편집]


진격의 거인의 작가 이사야마 하지메가 크게 존경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메는 자신의 블로그와 인터뷰 등에서 몇번이나 언급하며 존경심을 표현했는데,

"테마와 스토리에 대한 고찰이 대단하신, 내게 있어 이야기를 만들어준 스승, 0에서부터 1을 만들 수 있는 계기와 힘을 실어주신 분"

"진격의 거인의 근간이 그에게 얼마나 영향을 받고 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마치야마로부터) 판타지 세계를 쓰려면 현실 세계의 이야기를 집어 넣는 것이 좋다는 충고를 듣게 되어 작품 내 사회 비판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담았다"[29]

"만화 작업을 할때 그의 라디오를 bgm으로 틀어놓는다''


라는 등, 굉장히 자주 언급하며 존경을 표하는 인물이다.[30]

심지어 하지메가 실사영화판 진격의 거인의 각본을 맡을 정도로 신뢰한 인물인데[31][32], 평론가가 영화 제작에 참여했을때 좋은 결과가 난 적이 별로 없다.라면서 자조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작품 홍보에 꽤 적극적이었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지못미

일본의 인기 영화 평론 라디오 방송의 MC인 우타마루[33]는 영화 개봉 전에 각본을 먼저 읽어 봤는데, 영화 자체는 좋게 보기 힘든 작품이라고 평하면서 각본에서 보여진 묘사와 완성된 작품 사이의 연출의 차이에서 감독의 연기지도가 아쉽다는 태도를 내비쳤다. 영화가 완성도 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그것이 마치야마의 각본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투다.[34]

마치야마를 옹호하자면, 영화공개전에 있었던 인터뷰에서 원래 각본 초본은 원작흐름을 그대로 따르는 형태였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이 나오고 대박을 치자 원작 그대로의 이야기를 만들면 애니판과 비교당한다는 이유로 초본각본이 기각되었고, 여러 스폰서의 힘관계로 인하여 각본이 꼬이고 꼬인 상태에 자신의 팬인 진격의 거인 원작자의 "원작과 완전히 다른걸 만들어주세요"라는 요구로 인하여 완전히 달라진 각본이 만들어졌다고 말하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각본치곤 잘만들었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결국 영화의 결과는 좋지 못했다.


4.3. 한국 문화계 평론[편집]


다른 드라마나 영화를 평론할 때도 주화입마한듯한 언행을 보여오며 전문성이 떨어지다 못해 다소 경박한 언행들을 보일 때가 많았는데[35], 최근엔 본인이 잘 건들지도 않던 한국 문화계 평론을 걸고 넘어지면서 한국을 아래로 보는 생각 없는 언행 탓에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마치야마는 올드한 헐리웃 영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며, 미국에 거주하여, 미국 영화계와 친분이 깊어 90년대 이후의 한국영화계에 관한 정보[36]는 미국 영화계에 있는 왜곡된 지식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미국이 가지고 있는 한국 영화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데 그를 바로잡기보단 계속해서 자신만의 생각을 내세우고 있다. [37]

즉 일본판 김채호의 말빨과 욕설, 라이너의 전문지식과 편향성/확대해석을 섞은 느낌.

4.3.1. 기생충(영화) 비평[편집]


한국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타자, 그 전부터 꾸준하게 주장하던 '한국 영화 국책론'을 다시 끄집어냈다. 마치야마가 주장하는 한국 영화 국책론은 '한국 정부가 김대중 정권 시절부터 아시아권 나라에서 어필할만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정부 예산을 영화 산업에 쏟아부었고, 국비 등으로 할리우드에 간 한국 영화인들은 미국 기술자 밑에서 무급 조수로 일하는 등 영화 기술을 배워 미국을 모방한 결과 지금의 발달한 한국 영화가 탄생했다.'는 요지의 주장이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의 문화정책은 "문화는 손대면 죽습니다" 라는 발언으로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이전까지 있어왔던 사전검열 제도를 완전히 폐지하고 문화에 있어서 제한이나 규제를 없애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그래서 국책영화 같은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것을 원천차단하는 시초를 마련한 정책을 시행했던 정부라는 것이다. 당장 국책영화 같은 짓은 김대중 대통령이 항거했던 독재정권에서나 하는 짓이었다.

일본의 주장은 보호무역 방식으로 외국 문화는 박해하고 한국 영화는 지원해서 일으키는 식으로 했다는 것이지만, 정작 일본 문화부터 외국 문화에 대한 사전 검열과 규제를 폐지하고 문화를 자유화해서 시장경쟁체제로 만든게 김대중 정부이다. 정부의 정책을 완전히 반대로 왜곡해서 갖다 붙이고 있다. 이는 일본 우익과 이에 영향을 받은 한국 극우에서 퍼져있는 대표적인 왜곡선동이다. 한국 극우라면서 왜 일본 극우 정보를 그대로 읊조리는 지도 의문이다.

이런 식의 루머는 일본에 꽤나 널리 퍼져 있어서[38], 기생충 일본 관객 220만 명 돌파 기념으로 방일한 봉준호에게 일본 기자가 "기생충도 국책의 결실이냐"라고 대놓고 질문할 정도였다. 이에 봉준호 감독은 "국가 지원은 주로 독립 영화에 집중되고, 나와 송강호같은 사람이 참여하는 영화들은 대부분 민간 기업체에서 투자와 배급이 진행된다, 따라서 한국 영화 산업은 나름의 건강함이 있다" 라고 말했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면 봉준호는 실질적으로 국가 공무원같은 대우를 받아야하겠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웃기게도 송강호와 봉준호 감독이 해외 활동을 하면서 각광받을 시기는 오히려 개인적인 정치성향 때문에 박근혜 정권에게 대놓고 탄압을 당해서 미운털이 박혀있던 상황이었다. 지원금을 받기는 커녕 정부의 탄압을 걱정해야하는 시기였으므로 억지스러운 주장이다.

참고로 마치야마는 기생충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과 외국어 영화상만 받을 것으로 예측했지만 틀렸다. 물론, 당시엔 다수의 평론가가 외국어 영화상만 받을 것이라고 예측하긴 했다.

더구나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하기 전에 자신의 고정 라디오 코너에서는 영화 기생충을 소개하면서, 봉준호 감독이 가장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하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같은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39] 20분 짜리 코너에서 10분을 엉뚱하게도 영화의 내용과는 별로 관계도 없는 반지하가 만들어진 원인과 발전의 역사와 반지하에 사는 한국 36만 세대의 빈민층의 현실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미국 출신의 영화감독 아리 애스터가 기생충을 해박한 한국 영화 지식을 바탕으로 해석한 것과 비교하면 수준이 의심스럽다.

이 외에도 마치야마는 다른 방송에도 출연해서,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이유를 '투표권을 가진 아카데미 회원이 바뀌었다. 2016까지 있던 6천 5백 명은 대부분이 백인 중년층이었는데 다양성을 위해 여성과 젊은층과 다른 나라 사람들도 2000명을 추가했다. 그래서 기생충이 표를 얻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넷플릭스가 보급되면서 외국어 영화에 대한 알레르기가 없어졌다' 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봤자, 아직도 압도적으로 백인 중년층이 많은 수이고 넷플릭스가 보급되었다고 하는데 정작 넷플릭스에서 제공되는 상당수의 외국어 영화나 드라마들은 대부분 영어 더빙을 지원한다. 그리고 외국어 영화에 대한 알레르기가 없어졌다면 왜 한국 영화인 기생충이 굳이 주목을 받았다는건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더 어원도 같은게 많고 문화적으로 친숙한 독일어나 프랑스 영화 등 유럽 외국어 영화가 최초로 외국어 영화로서 아카데미를 타는게 말이 되지 않는가?

아무튼 그의 말을 종합하면 기생충(영화)은 과거부터 한국 정부가 국책 사업으로 육성한 영화 산업의 질적 향상을 통해 나온 작품으로 시기와 운도 잘 따랐고, 특히 아카데미상 수상은 대기업 CJ그룹의 로비 활동도 있었기 때문에 상을 탔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현실적으로 정부 부처가 나서서 문화 분야의 소프트파워를 부흥시키겠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애초부터 소프트파워는 무조건 정부가 그저 대량으로 세금만 퍼붓는다고 성공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이미 일본은 한국보다 산업화도 일찍 되었고 경제적으로도 먼저 부흥했던 나라였으니 일본 영화계도 한국 영화계보다 먼저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고 높은 성취를 얻었어야 한다. 허나 일본은 60년대 이전까지 오히려 아시아에서 영화강국이었고 구로사와 아키라 같은 쟁쟁한 감독들이 서구에서 주목받고 서구 감독이 일본 영화를 보면서 공부하고 오마주를 하던 시기까지 있었을 정도였으나, 일본이 오히려 국책으로 영화를 이용해먹고 시장이 망가지는 것에는 전혀 규제를 하지 않음으로서 영화계의 질적 저하가 심하게 일어나버렸기에 누워서 침뱉기 수준의 평론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경우는 말년에 대감독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제작을 위한 투자를 받지 못해서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했으며 이를 보다 못한 조지 루카스나 스필버그 같은 서구의 거장 감독이 돈을 투자해서 영화를 찍게 만들어 준 카게무샤 같은 사례가 있을 정도로 자국 문화의 소프트 파워도 제대로 관리를 못했던 국가였다. 당장 쿨 재팬으로 지원한다는 애니메이션도 정부나 일반 국민들 입장에선 그저 서브컬쳐이며, 일부 애니메이션 팬들이나 보는 저급한 문화 취급이나 받다가 서서히 시장이 넓어지면서 받아들여진 것일뿐이다. 그리고 자국의 문화를 융성화한 그런 사례가 아니며 오히려 뒤늦게 지원한답시고 나온 아베 신조의 쿨 재팬은 폭망으로 끝이 났다.

마치야마 토모히로는 미국 영화를 좋아하고 미국 문화에 심취해서 현재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살 정도로 미국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열혈 팬이자 친한 사이기도 해서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는 것에 대해 못마땅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정작 쿠인텐 타란티노는 영화광답게 아시아 영화계 전반에 대해 관심이 많으며, 특히 한국 영화 및 한국 영화인들과의 두터운 친분을 과시하는 경우가 많았던 사람이다. 봉준호 감독 역시 상을 탔을 때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경의를 표했을 정도로 서로 간의 사이는 좋아 보인다.

또한 마치야마 토모히로는 WOWOW 아카데미 시상식 중계에서는 패널로 출연해서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감독상을 탄다면 전세계 감독들이 나도 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라고 발언했다.


4.3.2. 모범가족[편집]


한국에서 살아본 적도 없는 그가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면 모범가족을 소개하면서 한국에서는 대학교수가 되려면 봉준호플란다스의 개에서도 나오듯이 윗사람한테 뇌물을 멕여야만 교수가 될 수 있다 라고 분명 드라마에서 그게 불법이고 들키면 큰일난다고 묘사가 되고 있는데도, 뇌물이 당연한 사회라고 잘못 주장했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은 그렇게 말한 적도 없는데, 봉준호 감독이 마치 그렇게 말한 것처럼 한국 영화계는 감독이 되고 싶은 사람은 프로듀서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감독직을 맡지 못하는 엄청 부패한 사회라고 주장했다. 14분 25초부터


4.3.3. 파친코(드라마)[편집]


또한, 자이니치를 다룬 드라마 파친코가 방영할 즈음에는 혐한 우익들이 온갖 음해를 하고 욕설을 퍼붓고 있는데도, 정작 자이니치 커밍아웃을 한 마치야마는 트위터에서 1990년대 일본인의 양복은 헐렁하게 입었다고 복장 고증 지적한 것이 파친코에 대해 언급한 전부였다. 그러면서 드라마 파친코가 세계에서 주목을 받는 것을 '일본 붐'이라고 일본의 덕분이라고 말했다. #

4.3.4. 특송[편집]


박소담 주연의 영화 특송을 소개하면서, 유튜브 출전 박소담을 "한국의 여배우 중에는 '드물게도' 눈을 손대지 않은(성형수술을 안 했다는 뜻) 사람이죠."라고 말하고, 한국의 도로 사정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 영화의 무대인 부산의 한국의 도로는 복잡하게 엉켜있어서 쭉 갈수 없거든요. 그래서 좁은 골목을 질주하면서 ~."라고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고, 스토리는 레옹이고, 박소담은 킥애스의 히트걸이고,
"얼마나 다른 영화의 클리세나 요소를 가져오고 있는거냐! 할 정도로 아이디어가 둠푹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재료는 최고급 재료를 가져오고, 좋은 장인이 만들고 있기에 엄청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여기서 한국 영화의 장인기술을 엿볼수 있습니다. 전혀 단점이 없어요. 새로운 아이디어도 없지만요.ㅋㅋㅋ 여러 영화의 아이디어를 담으면서도 불화음이 없다는건 한국영화의 장인기술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목[40]처럼 퍼펙트합니다."라면서 평했다.


4.3.5. 영화 킹 메이커남산의 부장들[편집]




요약하면, 킹메이커의 주인공 엄창록김대중을 위해서 헌신했지만 그 헌신이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김대중을 배신했고, 남산의 부장들의 주인공인 김재규박정희 대통령에 헌신했다가 인정받지 못하니까 총으로 쏴 죽였다는 걸 동성애, 브로맨스 의 시점으로 해설했다.

2022년 7월 12일 방송의 [[TBS]]의 라디오 『たまむすび』 [타마무스비]에서 발췌 ▼
측근은 사랑했지만, 그 사랑이 받아들이지 않고... 라는, 쓸데없이 BL영화가 되었죠. 양복의 미남이. 둘 다. 무슨 일이야? 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이 한국 영화의 파워라고 생각했습니다.
출처

참고로 , 마치야마 토모히로는 이런 식으로 부녀자들처럼 남자들의 우정을 동성애, 브로맨스적으로 엮는 것은 아주 좋아한다.[41]


4.4. 한국영화와 일본영화의 차이점[편집]


2023년 1월 10일 방송의 [[TBS]]의 라디오 『たまむすび』 [타마무스비]에서 발췌 ▼
山里亮太(야마사토 료타) : 근데 요즘, 한국은 영화라든가, 엄청 세잖아요. 엔터가... 또 아이돌도 그렇고.
町山智浩(마치야마 토모히로) : 나라를 걸고 하고 있으니까용. 스태프도 일시적으로, 할리우드로 전원, 국비로 유학을 보내거나 하거든, 카메라도 엄청 좋아. 한국영화는 일본영화와 결정적으로 그림이 달라요. 깊이가 있고. 좋은 카메라를 사용하기 때문이에요.
山里亮太(야마사토 료타) : 심플하게 그런 이유인가요?
출처

전체적으로 보면, 좋은 카메라는 하루 빌리는데만 20~30만엔 필요한데, 일본의 영화/드라마는 돈이 없어서 좋은 카메라를 사용못하는데 반해, 한국영화/드라마는 세계시장을 노리고 만드니까 투입되는 투자가 커서 사용하는 카메라가 좋아, 영상의 깊이에서 이미 차원이 다르다라는 논지다.

5. 외부 링크[편집]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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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타쿠 제1세대로 유명한 1960년생의 안노 히데아키도 그렇고, 1960년대에 태어난 이 세대는 '테레빗코'라고 해서 현대 문명의 신기(神機)인 텔레비젼을 어릴 적부터 보고 자라서 그 영향을 듬뿍 받은 세대였다. 지금처럼 컴퓨터VCR도 가정용 게임기도 게임방도 이것저것 뭐도 뭐도 없던 시절이라 놀이터에서 또래끼리 모래 먹어가며 뛰어놀거나, 집에서 만화를 읽거나 TV에서 틀어주는 프로그램을 실시간 시청이 즐거움이었다.[2] http://www.hard.co.jp/[3] 당시 명칭은 "JICC出版局(JICC출판국)[4] 월간지로 당시 일본정부가 부정하고 있었던, 조총련의 첩보활동과, 일본인 납치의 실체를 마치야마가 잡지사에서 특집으로 만들어서 세상에 알렸다. 또한 북한의 실체를 알면서 북한을 찬양하여 재일교포를 보내고, 일본내에서의 북한 첩보원의 존재와 일본인의 납치는 음모론이라고 폄하하던 일본 좌익인사와 출판사의 "岩波書店(이와나미 쇼텐)"에게 잡지사의 이름을 걸고 내용증명서롤 보내고 싸웠다.[5] 사장의 사내 불륜으로 있었던 여사원과 사귀게 되어, 사장에게 미움을 삼. 후에 그 여성과 마치야마는 결혼. 또한 사장이 "돈이 남아도니 영화에 투자한다!"라는 기획에 "그런 돈이 있으면 사원에 환원하라고"라고 하자, 사장한테 주먹을 맞아서 빡친 마치야마가 사장에게 의자를 던지면서 일이 커짐.[6] 후타바샤에 들어가보니, 분식회계로 본사에게 허위로 보고하고 있었고, 사장은 인쇄소와 짜고 팔리지도 않는 서적을 만들어서 회사 자금을 횡령하고 있었고, 회사는 거대한 적자를 가지고 있어서, 어떻게 파산할지를 기다리는 상황이였다.[7] 바이올런트 온센 게이샤暴力温泉芸者Violent Onsen Geisha라는 아방가르드 노이즈 음악가로도 유명하다. 롤링 스톤 재팬 선정 100대 명반에도 올라와 있을 정도. 참고로 이 사람은 아오야마 신지랑 친해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8] 처음 그 소식을 접했을 때는 마을 운동회에서 상품이 걸린 달리기에 집중하고 있어서 별 신경안썼는데, 운동회에세 져서 마누라한테 구박받았고 그 한을 키네슌에게 풀려고 했다고 후에 라디오에서 썰을 풀었다. 왜 직접 처들어갔느냐. 편집자면 시면으로 싸울수 있었는데.라는 질문에 "할 수는 있는데, 게네들은 머리가 좋잖아. 말빨로 질것같했어. 그러니까 제일 바보같은 방식으로 해보자라고 생각했지."라고 답했다.[9] 제일 먼저 한짓이 처들어갈때 차안에서 들을 영화 OST 모음집 테입의 편집이다.[10] 사원들이 다 오타쿠라 운전면허가 없어서 "왜 운전면허가 없냐고! 너희들은 범죄도 못하겠다!"하며 마치야마가 화냈고, 마치야마가 직접 운전했다고 한다.[11] 처들어갈때 영화비보측은 모두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로 차려입었으며, 처들어가는 상황을 프로의 카메라맨을 고용하여 영화로 촬영시킨다.[12] 법학부였던 관계로 처들어 갈때도 상대가 문을 열어서 들이지 않으면 불법침입이 되기에, 상대가 "들어오세요" 할때까지 기다렸고 사원들에게도 "들어가면 아무것도 만지지마. 기물파손 걸리니까"하면서 사원에게 주의를 줬다.[13] 생크림의 파이는 설탕때문에 옷에 손상이 가기에, 씻으면 사라지는 수염제모크림을 알류미늄 접시에 뿌려서 파이처럼 만들었다.[14] 도주중에 추격해온 카라테를 배운 키네마 준보의 편집자의 발차기와 주먹으로 영화비보측 사원이 부상하자, 투척 당일날 바로 진단서 뽑아서, 키네마 준보측이 딴지를 걸고 왔을때의 대비책으로 삼으려고 했다.[15] 아내가 미국대학원에 진학 및 취직하는 동안 가정주부로 있으면서, 영어를 배우고 영화학교를 다니고 일본에서 있었던 오타쿠적인 영화 지식량에 미국의 학술적인 영화학이 더해졌다.[16] 자택이 픽서 바로 근처라는 이점도 크게 작용했다.[17] 최신영화나 영상물에 갈수록 마치야마의 입지는 낮아지지만, 소프트화 되어 있지 않는 옛 티비 시리즈는 미국의 민간인 녹화비디오에서만 볼수있으며, 절판된 비디오등은 매니악틱한 인터넷 판매등을 하지 않는 미국 지방 구석에 있는 비디오가게에서만 남아있기에 발품팔아가면서 찾아다녔던 마치야마의 입지가 아직 강하나, 이 또한 그가 편집장 시절에 키웠던 제자격인 타카하시 요시키(高橋ヨシキ)에 공유되어, 비디오 매니아라는 쪽에서는 이미 60세에 돌입한 마치야마보다는 새로운 세대의 타카하시 요시키가 더 활약하고 있다.[18] 그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꾼다면 柳智浩,류지호라는 자연스러운 이름이 된다.[19] 발달장애의 일종. 또한 최근에는 사다모토가 ADHD라는 게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는데 그 증거로 사다모토는 작업하는 속도가 극도로 느렸다고 한다. ADHD가 있으면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집중해서 작업하기 힘들기 때문에 작업 속도가 극도로 느릴 수 밖에 없다.[20] 멘션을 보면 사다모토는 평소에도 마치야마를 존경한 듯 하다...[21] DHC혐한, 혐중, 극우, 아베 신조 지지로 유명한 기업이다. 정확히는 DHC TV를 말하는 것으로서 일본 극우계의 유명 인사들혐한, 혐중, 외국인 혐오, 반이민, 반세계화 성향의 방송을 하는 채널이다. 대충 우리나라의 신의 한 수가로세로연구소와 똑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마디로 말해 "DHC TV 같은 거나 맨날 쳐 보니까 그렇게 되는 거지." 라고 해석하면 된다.[22] 정신과 의사인 카야마 리카도 본인 트위터에서 "내가 아는 ADHD 환자들 중에 혐한인 사람 1명도 없다."라며 사다모토를 비판하였다. 또한 카야마 리카는 페미니즘이라던가 혐한/차별 문제 같은 시사 문제에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등, 일본에서는 대외적 활동을 자주 하는걸로 유명하다.[23] 마치야마 이외에 사다모토를 비판한 사람들로는 3명 더 있는데, 시노후사 로쿠로는 레이와 아스카가 한복입은 그림을 올림으로써 비판하였고, 이노우에 토시유키는 더러운 본색을 드러낸 동업자라는 멘트로 비판하였으며, 타카토 루이는 나이만 먹은 얼간이라고 비판하였다. 덤으로 유키 노부테루는 원래 사다모토를 옹호하는 입장이었으나. 사과문을 올리고 사다모토에게 말을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며 비판 입장으로 선회하였다. 또한 이노우에 토시유키가 "더러운 본색을 드러냈다." 라는 말로 비판하였는데, 굳이 더러운 본색이라는 말을 쓴 걸 보면 사다모토는 원래부터 질 나쁜 인간성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있다.[24] 고레에다 감독이 "과거 일본 영화가 아베 정권의 국책으로 이용되어 큰 불행을 겪은 적이 있으니 공권력과 거리를 유지하겠다!" 라고 발언했기 때문.[25]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동포에 대한 편견을 불러일으킬수 있는 발언이다.[26] 주 논지가 한일관계 악화는 한국 탓이라는 건데, 문제는 이런 주장이 인종범죄조직 재특회의 회장 사쿠라이 마코토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사쿠라이는 한일관계 악화는 한국 탓이고 한국이 일본인을 죽이자고 반일 운동을 하니까, 일본도 당연히 한국인을 죽이자는 혐한 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한국에서는 일본인 죽이자고 길거리 행진 반일 데모를 한 적이 사실상 거의 없고 오히려 일본에 친근감을 갖는 젊은 세대가 점점 늘고 있는 편다. 물론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인종혐오를 일삼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마치야마 토모히로는 단순히 일본의 헤이트 데모와 한국의 반일 시위를 같은 것으로 취급하며 일반화했다. 그리고 이 트위터의 반응(270 Retweets 9 Quote Tweets 215 Likes) 보면 일본 혐한 우익들이 옳은 소리를 했다고 찬동했다. 이 말은 "이유 없는 일본의 인종범죄와 과거사 문제도 충분히 나쁘지만 조용히 해결할 걸 시끄럽게 만드는 한국도 할 말 없지 않냐." 라는 혐한식 논지라 마치야마의 역사 인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의심스럽단 반응이 많이 났다.[27] 재특회 소속 재일교포의 다른 예는 나무위키 재특회 문서에서 발췌, 2012년 3월 10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 누가 김태희를 쫓아냈는가' 편에서 특이하게 재일교포 3세인 회원도 등장했다. 이 친구는 재특회가 동족인 한국인을 주적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에 못내 불편함을 느끼며 활동에 회의를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자기는 조직에서 반일 배우라며 공격하고 있는 김태희도 좋아한다나. 그래서 고민 끝에 재일 중국인을 공격하는 단체로 소속을 바꿨다고 한다.[28] 사실 기타노 다케시도 실제 성향은 좌파인데, 마치야마보다 더 노골적으로 혐한 성향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정확히는 마치야마는 기타노의 순한 맛 버전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29] 진격의 거인에 사회 비판과 관련된 내용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30] 하지메 작가 극우설에 대한 반박이 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하지메가 정말로 우익이라면 왜 일본 우파들에게 집중 공격을 받는 좌파 논객인 마치야마를 존경한다고 공개적으로 몇번이나 발언했을까 의문이다. 단순히 인간됨을 넘어 마치야마 토모히로는 일본내에서 대표적 좌익 성향 인물로 인식되는 사람이다. 실제로 이러한 존경심을 표현하는 발언 등으로 하지메는 일본에서 좌익 성향 작가로 인식되며 넷 우익들에게 공격받기도 하였다.[31] 정확히는 20세기 소년, 간츠, 갓챠맨 실사영화를 집필한 와타나베 유스케와 같이 썼다.[32] 하지메 작가는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하진 않았다.[33] 마치야마의 제자를 자처할 정도로 사이가 좋은 관계이다.[34] 물론, 각본에서 이러저러했기 때문에 영화의 문제점이 해결된다는 식의 말을 한건 아니다. 영화는 완성된 작품 그 자체만로 평가될 물건이라고 덧붙임.[35] 원래 그의 평론 스타일이 "선 술집아재식 언행, 후 아카데믹한 평론" 이라, 친숙하지않은 사람에게는 일본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요소이기도 한다. 시간에 여유가 있는 강연회나 서적에서는 덜하지만, 시간이 제한된 라디오출현에서는 그 언행이 두드러진다.[36] 한때 북한/한국 특촬물이 일본에서 각광받았던 시기가 있어서 신상옥이나 김기덕은 잡지 편집부 시절부터 특집을 짤 정도로 주목했다.[37] 오히려 그의 대학 후배이며, 영화평론의 제자인 "우타마루" 가 일본에만 있었던 덕분에 오히려 한국영화계에 박식하다.[38] 사실은 일본의 지한파들도 비슷한 주장을 하니 어찌보면 당연한 거기도 하다. 심지어 일본어 위키백과에도 당당히 정부와 한국 영화의 관계 항목이 있을 정도. 하지만, 인물들마다 말하는거 보면 조금씩의 뉘앙스 차이는 있는데, 특히 김대중 정부 시기를 강조하는 좌익계 인사들을 보면 한국은 민주당 정부 시절 한류/문화 산업을 육성해서 저렇게 성과도 내고 있는데, 일본 자민당 정부(당시 아베 내각)는 뭐하고 있냐는 은근한 디스성 뉘앙스도 풍길 때가 있다.[39] 김기영은 일본 영화계에서도 제법 지명도가 있는 편이다. 요모타 이누히코처럼 김기영에 대한 해설을 쓴 연구자도 있을 정도.[40] 특송의 일본제목은 "퍼펙트 드라이버"[41] 일본 영화 평론에서 이러한 동성애, 브로맨스적인 것을 읽어나가는건 영화평론의 선구자인 요도가와 나가하루(淀川長治), 미즈노 하루오(水野晴郎), 하스미 시게히코(蓮實重彦)부터 이어져 있는 전통이다. 50년에 할리우드는 검열을 피하려고 은유표현을 발전시키다가, 60년대부터의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의 시대에 들어오면서 히피문화와 어울러져, 영화계에 그러한 은유 표현이 일정의 기호로서 자주 사용되어 왔다. 예로 들면 록키 2의 아폴로와 록키의 연습장면링크에서의 구도나, 전국자위대(영화)에서 자위대원인 이바와 무사인 우에스기가 우정을 나누는 장면에서 01:40초부터 총으로 생긴 구멍에 화살이 꽂히고, 서로의 창이 십자로 교차하더니, 그후에는 서로의 옷이 바뀌어 있다. 이런식으로 은유적으로 "했네 했어"를 시사하면서 이 둘이 우정을 뛰어넘는 사이라는 걸 표현한다. 특히 마치야마가 이러한 부분을 읽을 때 자주 쓰는 멘트인 "素敵ですね"(근사하네요), "いいですね"(좋네요), "ウットリしますね"(황홀하네요)는, 그가 강하게 영향받은 요도가와 나가하루(淀川長治)와 미즈노 하루오(水野晴郎)이 티비에서 영화소개할때, 브로맨스적 요소가 있다는 걸 말할때 사용해온 멘트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