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슈워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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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슈워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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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슈워처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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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前 축구선수


파일:Mark Schwarzer.png

이름
마크 슈워처
Mark Schwarzer

출생
1972년 10월 6일 (51세) /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시드니
국적
[[호주|

호주
display: none; display: 호주"
행정구
]]

신체
196cm, 95kg
직업
축구선수 (골키퍼 / 은퇴)
소속
선수
마르코니 스탤리언스 (1990~1994)
SG 디나모 드레스덴 (1994~1995)
1.FC 카이저슬라우테른 (1995~1996)
브래드포드 시티 (1996~1997)
미들즈브러 FC (1997~2008)
풀럼 FC (2008~2013)

첼시 FC (2013~2015)
레스터 시티 FC (2015~2016)
국가대표
109경기[1] (호주 / 1993~2013)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여담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기록
6. 마크 슈워처에 대한 언사



1. 개요[편집]


20년 동안 호주의 골문을 지켜낸 골키퍼이자 미들즈브러풀럼의 레전드격 골키퍼이며 196cm라는 큰 키에 반사신경도 좋았던 골키퍼이다

유일하게 비 영국인 골키퍼 프리미어리그 500경기 이상 출전하였으며 미들즈브러 FC 소속으로 366경기 출전과 클린시트 151경기를 달성하여 프리미어 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 조건을 충족하였다.[2] 이런 활약으로 보통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는다.

슈워처는 시드니 북서부의 준 시골 교외 지역인 노스 리치몬드에서 태어나 노스 리치몬드 공립학교와 콜로 고등학교를 다녔다.

2. 클럽 경력[편집]



2.1. 무명 시절[편집]


유스 출신 구단인 마르코니 스탤리언스에서 18살에 데뷔했다. 큰 활약을 펼친 슈워처는 분데스리가디나모 드레스덴, 1.FC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둥지를 옮겼고 1996년 잉글랜드 1부 리그(현 EFL 챔피언십)의 브래드포드 시티로 이적하며 잉글랜드 무대에 첫발을 내딛는다.[3]

2.2. 미들즈브러 FC[편집]


파일:schwarzer-boro.jpg
1997년 브래드포드 이적 후 반 년만에 프리미어 리그의 미들즈브러 FC로 이적하였으며 1997년 2월 26일 리그 컵 준결승전에서 스톡포트 카운티 FC를 상대로 미들즈브러 데뷔전을 치렀고 레스터 시티와의 결승전에도 출전하고 96-97시즌 리그 7경기에 출전했지만 팀의 강등을 막지 못했다.

1998년 리그컵 결승에서 첼시[4]를 상대로 분투했으나, 2-0으로 팀의 패배를 막지 못하여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해 팀이 1부리그로 승격되었다.

2004-05 시즌 맨체스터 시티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그는 추가 시간에 로비 파울러의 페널티킥을 막아내며 1-1 무승부를 지켜냈는데 이게 결정적으로 팀을 리그 최종 순위 7위로 끌어올리고 UEFA 컵에 진출시켰다.

2006년 1월 6일 타팀으로 이적하려고 하였으나 2006년 1월 20일 이적 요청을 철회하고 팀에 다시 합류했다. 그러나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과의 경기에서 광대뼈 골절로 인해 잔여 경기를 시즌 아웃이 되는가 했지만 그는 보호 마스크를 착용하고 세비야 FC UEFA 컵 결승전에 복귀했다.

2007년 12월 29일 포츠머스를 상대로 미들즈브러가 1-0으로 승리한 경기에서 그는 프리미어리그 한 클럽에서 가장 오랫동안 활약한 외국인 선수가 되어 데니스 베르캄프의 315경기 기록을 넘어섰다.

2004년 리그 컵 우승, 2006년 UEFA 컵 준우승 등의 시간을 함께 한 보로의 전성기의 주역이었던 슈워처는 2007-08 프리미어 리그 시즌 마지막 날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8-1로 승리한 경기를 미들즈브러 마지막 출전이 되었으며 2008년 풀럼 FC로 이적한다. 슈워처는 보로에서만 446경기에 출장하며 현재까지도 프리미어 리그에서 한 팀을 위해 가장 많은 경기를 뛴 외국인 선수로 남아 있다. 그리고 슈워처를 이적시킨 보로의 수비는 급격히 약해졌고, 결국 보로는 2009년 강등의 비운을 맞이하게 된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감독은 그에게 재계약을 희망했지만 거절하고 바이에른 뮌헨유벤투스 FC에게도 제안을 받았지만 주전 자리를 확보하려고 풀럼으로 이적한다.

2.3. 풀럼 FC[편집]


파일:2010-2월의 POTM.jpg
2010년 2월 호주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상 수상
헐 시티에게 2-1로 패하며 풀럼 데뷔전을 치렀지만, 홈에서 열린 아스날 FC와의 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두었고
입단 첫 시즌인 2008/2009에 10경기의 클린시트를 기록하여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쳤다. 이 시즌에 그의 활약으로 인해 풀럼이 이전 시즌 풀럼에 17위로 간신히 강등을 면한 풀럼을 리그 7위로 끌어올려 UEFA 유로파 리그에 보내며 풀럼의 올해의 선수로 지정되기도 했다.

2010년 2월에는 1골만을 실점하며 팀의 2승 2무로 순항하였기에 결국 프리미어 리그 2월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호주 선수로는 최초로 선정되었다.
2010년 UEFA 유로파 리그 결승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맞아 분투했으나, 패배하고 말았다.

2009-10 시즌 동안 그의 활약에 아스날 감독 아르센 벵거는 슈워처의 영입을 시도했다. 2010년 5월 그에 대해 약 200만 파운드의 입찰이 이루어졌고 2010년 8월에 거의 비슷한 가격에 비드가 들어간 것으로 보고 되었으나 둘 다 소속팀에 의해 거부되었다.
2010년 8월 13일, 당시 이제 막 부임했던 풀럼 감독 마크 휴즈는 슈워처가 이적 요청을 제출했지만 휴즈는 이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2010년 8월 31일, 아스날은 이적시장 종료 직전에 그를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으로 데려오기 위해 약 4백만 파운드의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마크 휴즈는 어떤 접근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2012년 1월 18일 풀럼과 재계약 하였다.

슈워처는 2012년 11월 인저리 타임에 미켈 아르테타를 상대로 페널티킥을 막아내며 아스널을 상대로 3-3 무승부를 거두는 데 도움을 주었고 2013년 4월, 그는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비 영국인 유일하게 프리미어리그 500번째 출전을 기록했다.[5]


파일:올타임 PL 출장 TOP 10.png
영국인[6] 역대 최다 PL 출장의 기록을 세웠다
마크 휴즈는 성적부진으로 1년만에 짤리고, 후임으로 마틴 욜이 부임했으나, 역시 성적부진으로 2년만에 경질되고 풀럼 구단주가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큰 활약을 펼친 네덜란드의 골키퍼 마르턴 스테켈렌뷔르흐분노의 영입하여 41세의 골키퍼로서도 고령이었던 마크 슈워처는 방출되었다. 브라질 월드컵을 뛰고 싶었던 슈워처는 은퇴를 하지 않고, 새로운 팀을 물색하던 중 주제 무리뉴의 눈에 들어 이적하게 된다.

2.4. 풀럼 FC 이후[편집]


1년 자유 계약에 첼시로 이적한 슈워처는 페트르 체흐에 밀려 일라리우와 세컨 키퍼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다만 13-14시즌 후반기에 체흐가 부상으로 빠지고 나서는 리그컵에서 스윈던 타운을 상대로 2-0 원정 승리로 데뷔 10월 29일 리그 컵에서 아스날에게 2-0 승리를 거두며 클린 시트를 유지하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주전으로 몇경기 나서기도 했다. 12월 11일, 슈워처는 41세 65일의 나이로 UEFA 챔피언스리그에 데뷔한 최고령 선수가 되었으며, CSA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를 상대로 안방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첼시 소속으로 3경기에 출전해 세 번째 클린시트를 유지했다.

2014년 4월 19일 선덜랜드 AFC와의 경기에서 41세 195일의 나이로 프리미어리그에서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 그는 37세 203일의 나이로 첼시에서 마지막으로 뛰었던 그레이엄 릭스(Graham Rix)를 제치고 클럽의 역대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 4월 27일, 그는 안필드에서 리버풀을 상대로 선발 출전했는데 첼시는 2-0으로 승리하고 본인은 프리미어리그 150번째 클린시트를 기록하였는데 이전까지 페트르 체흐데이비드 제임스 두명만이 가지고 있는 대기록이었다.

그러나 14-15시즌 티보 쿠르투아의 합류로 써드 키퍼로 밀려 별로 출장기회를 잡지 못했고, 2015년 1월 당시 리그 최하위였던 레스터 시티 FC로 이적한다. 레스터에서는 주전 카스페르 슈마이켈의 백업으로 나왔으나, 슈마이켈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때는 주전으로도 자주 출전했다. 그리고 레스터는 시즌 후반기에 엄청난 페이스로 강등권을 탈출하더니, 다음 시즌에 대형사고를 친다. 15-16시즌에는 백업 골키퍼로서 통틀어 공식 경기 6경기를 출전했다.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났고 은퇴했다.

프리미어 리그에 514 경기에 출전하며 호주 축구 역사에 확실한 한 획을 그은 선수. 특히나 슈워처가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 시기 호주는 축구에서 거의 별볼일 없는 수준의 완전한 변방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호주 축구리그인 A리그가 주목 받기 시작한 것도 2014년도에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고 난 이후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호주 U-17 및 U-20 대표팀에서 뛰었던 슈워처는 1993년 캐나다와의 미국 월드컵 지역예선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로버트 자비카가 17분에 퇴장당한 후 교체 선수로 출전해 국제 데뷔전을 치렀다.

1993년 국가대표로 데뷔하여 10여 년 넘게 자국 호주의 수문장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2005년, 2006 FIFA 월드컵 독일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우루과이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 속에 슈워처가 2번의 슛을 막아내어 32년 만에 조국이 월드컵에 진출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또한 2006년 초, 호주가 오세아니아 축구 연맹에서 아시아 축구 연맹으로 이적하였고, 한편 월드컵 본선에서는 조별리그 1차전에서 일본과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오심인 듯 오심으로 허용했지만[7], 후반 막판에 팀이 내리 3골을 넣으며 월드컵 첫 승리를 거뒀고, 2차전에서 브라질에 2골을 허용해 패했지만, 3차전인 크로아티아와의 경기는 출전하지 않았고, 대신 팀은 이 경기를 통해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 이탈리아를 맞아 선전했지만, 후반 막판 루카스 닐파비오 그로소의 발목을 걸었다는 판정으로 페널티킥을 허용했고[8], 실점하고 패해아며 결국 16강에서 대회를 마치고 말았다.

그러나 그 후에도 변함없이 대표팀을 이끌었는데, 자국이 아시아 축구 연맹으로 이적해서 처음으로 AFC 아시안컵에 출전한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에서는 8강에 그쳤고,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마누엘 노이어개성이 없는 키퍼라고 조롱했으나, 조별리그 3위로 광탈했고,[9]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에서는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일본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2011년 1월 알렉스 토빈의 출전 기록을 넘어 호주의 최다 출전 남자 선수가 되었으며 41살 때이던 2013년에 국가대표 은퇴 선언을 했다. 통산 기록은 109경기 출전.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가장 많이 출전한 선수이고, 호주 대표팀 최초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선수다.

4. 여담[편집]


  • 그의 부모인 한스-요아킴(Hans-Joachim)과 도리스(Doris)는 1968년 서독 슈투트가르트에서 호주로 이주했으며 본인 역시 유창한 독일어를 할수 있다.

  • 2007년 6월 닐 몬타냐나 월레스와 함께 "Megs and the Vootball Kids"라는 짧은 아동 소설을 공동 집필하였다.#

  • 2009년에 오스트레일리아 훈장을 받았다.#

  • 아들인 줄리안 슈워처 역시 축구선수인데 마크 슈워처의 아내가 필리핀에서 호주로 이민 간 이민자 출신 집안이라 아들은 본인 어머니, 즉 마크 슈워처 아내의 혈통을 따라 필리핀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뛰고 있다. 줄리안 슈워처는 본인의 아버지가 활약했던 풀럼의 유스팀에서 뛰기도 했는데 큰 재능은 없는지 1군 무대까지는 오르지 못했고 이후에 잉글랜드 세미프로 리그를 전전하다가 2022년부터 필리핀 리그에서 뛰고 있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5.2. 개인 기록[편집]


  • 풀럼 올해의 선수: 2008-09
  • PFA 알렉스 토빈 OAM 메달: 2009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2010년 02월
  • 호주 프로축구협회 올해의 선수: 2010
  • 호주 축구 명예의 전당: 2021
  • 서브웨이 사커루 세기의 팀: 2022 [10]

6. 마크 슈워처에 대한 언사[편집]


많은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이 선수를 한 줄로 설명하면 EPL에서 15시즌 동안 주전 수문장으로 활약했습니다.

한준희 #


그는 나와 함께 할 때마다 더 좋아졌고 이번 시즌 그는 우리에게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여타 골키퍼들과 다른 방식으로 경기에 영향을 미치며 걸출했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


골키퍼로서 필요할 때 그는 우리를 위해 거기에 있었고 사람으로서, 프로로서 조직에서 놀라운 사람이었다. 나 자신과 스태프, 선수들을 대신해서 빅맨을 그리워할 것이며 그가 레스터에서의 새로운 삶에서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

주제 무리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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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자[2] 유럽리그 시즌 통산 686경기 출장[3] 독일 시절에는 백업 골키퍼로 있었는데 2년 연속 소속팀은 강등의 아픔을 겪었다. 1996-97 시즌 후반부에 미들즈브러로 이적했는데 거기에서도 승점 삭감이 원인이 되어 강등되었다.[4] 당시는 로만 아브라모비치 이전 시대라 최강급의 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안프랑코 졸라, 데니스 와이즈, 마르셀 드사이 등을 보유한 만만치 않은 팀이었다.[5] #[6] 잉글랜드,웨일스[7] 나카무라 슌스케가 중거리슛을 날릴 때 다카하라 나오히로가 슈워처 앞에서, 야나기사와 아쓰시가 슈워처를 밀쳐서 방해했다.[8] 페널티킥을 줄만한 상황이었는지 논란이 일었다.[9] 1승 1무 1패여서 잘 하면 두 대회 연속 16강에 갈 수 있었지만, 하필 초장부터 독일한테 4대0으로 참패한 것이 결정타가 되면서 같은 성적을 낸 가나한테 골득실에서 밀리면서 16강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10] 2022년은 사상 첫 호주의 A매치가 1922년 더니딘에서 시작된지 100년이 되는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