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오버르마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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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오버르마르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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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파일:신인상.png

1994 FIFA 월드컵 신인상






로열 앤트워프 FC
Royal Antwerp Football Club

파일:external/www.deadlineday.nl/mark-overmars-ajax.jpg

이름
마르크 오버르마르스[1]
Marc Overmars
출생
1973년 3월 29일 (50세)
네덜란드 헬데를란트주 엠스트
국적
[[네덜란드|

네덜란드
display: none; display: 네덜란드"
행정구
]]

신체
173cm
주발
왼발 (양발)
직업
축구 선수 (윙어 / 은퇴)
축구 경영인
소속
선수
SV 에퍼 (1978~1987 / 유스)
고 어헤드 이글스 (1987~1990 / 유스)
고 어헤드 이글스 (1990~1991)
빌럼 II (1991~1992)
AFC 아약스 (1992~1997)
아스날 FC (1997~2000)
FC 바르셀로나 (2000~2004)
고 어헤드 이글스 (2008~2009)
경영
AFC 아약스 (2012~2022 / 기술이사)
로열 앤트워프 FC (2022~ / 기술이사)
국가대표
86경기 17골 (네덜란드 / 1993~2004)

1. 소개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행정가 시절
4.1. AFC 아약스 기술 이사
4.2. 로열 앤트워프 기술 이사
5. 플레이 스타일
6.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7. 여담



1. 소개[편집]


"포기하는 순간, 그 경기는 시합 종료다."

네덜란드축구 선수 출신 축구 경영인.

당대 최고의 스피드를 자랑했던 윙어[2]였으며, 플라잉 더치맨이라는 별명의 대중화를 일궈냈던 선수였다.


2. 클럽 경력[편집]



2.1. 초창기[편집]


이글스에서 데뷔한 오버르마르스는 빌럼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재능을 선보였다.


2.2. AFC 아약스[편집]


파일:마크 오베르마스(AFC 아약스 시절).png
오버르마르스는 1992년 아약스에 입단했다. 오버르마르스는 헤렌벤과 KNVB컵 결승전에서 2골을 넣어 6:2로 대승을 거두며 매우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입단 첫 시즌에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을 이끌어 더블을 달성하였다.

1993년 오버르마르스는 에드가 다비즈, 에드빈 판데르사르, 클라렌스 세이도르프 등과 팀을 이끌며 리그우승을 안기고 이듬해에도 리그우승을 차지하고 챔스에서 4강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격침시키고 당대 최강의 팀이였던 밀란 제너레이션AC 밀란을 꺾고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여 더블을 달성한다.[3] 오버르마르스는 아약스를 이끌고 1995년 리그우승을 달성하고 1995-1996 시즌에도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유벤투스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그친다. 이후 1997년 아약스를 떠나기로 맘먹는다.


2.3. 아스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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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약스에서의 대단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오버르마르스는 그가 입었던 장기 부상으로 인해 다른 빅클럽과의 이적루머가 끊긴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런 오버르마르스를 눈여겨보던 아르센 벵거의 부름을 받아 에마뉘엘 프티와 함께 아스날에 입단하게 된다. 그 해 리그 12골을 넣었으며 아스날은 영원한 맞수인 맨유를 상대로 모두 승리하며 승점 1점 차이로 우승한다. FA컵 결승전에선 뉴캐슬을 상대로 선제 결승골을 기록하며 팀이 우승을 차지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그 이후에도 팀의 주전 윙어로 출전하여 1999-00 UEFA컵 결승전에서 갈라타사라이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하지만 역대급 임팩트를 남긴 오버르마르스는 훗날 팬들이 뽑은 최고의 선수 12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2.4. 바르셀로나[편집]


파일:마크 오베르마스(FC 바르셀로나 시절).png

2000년 오버르마르스는 함께 아스날에 입단했던 동료인 에마뉘엘 프티와 함께 합계 32M유로라는 거액으로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된다. 그러나 이적 후, 오버르마르스는 잦은 부상으로 인해 활약을 펼치는 일이 드물었고 아쉽게도 스피드도 점점 감소하게 된다.

측면의 빈 공간을 빠르게 찢어버리는 게 장점이던 공격수가 스피드를 잃자, 포지션도 초기의 왼쪽 윙포워드가 아닌 레프트 풀백으로 바뀌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만 못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2004년에 은퇴했다. 이후 2008년에 친정팀 고 어헤드 이글스에 깜짝 복귀하여 1년을 뛰고 다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파일:마크 오베르마스.png
1993년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1994 미국 월드컵 예선 7경기에 출장했으며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도 선발되었다.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8강전까지 전 경기에 출장하여 빼어난 플레이를 펼쳤고, 이 때의 활약으로 후대에 94년 미국 월드컵 영 플레이어 상 최다 득표자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이듬해 부상으로 UEFA 유로 1996에는 출장하지 못하게 된다.

부상에서 회복한 후 1998 프랑스 월드컵 예선 5경기에 출장하였고 본선에서는 한국과의 경기[4]에서 필립 코쿠에 이어 두 번째 골을 기록하는 등 팀의 월드컵 4강행에 일조했다.

UEFA 유로 2000을 앞두고 다시 부상을 당하여 대회 출전이 좌절될 뻔 했으나 다행히도 대회 직전에 회복, 체코와의 경기에서 교체출장하여 팀의 1대0승리에 기여[5] 하고 유고와의 경기에서는 두골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대회 내내 뛰어난 활약을 펼치던 그는 4강에서 만난 이탈리아를 상대로는 파올로 말디니지워지며 큰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는 네덜란드가 유럽예선에서 탈락하여 출전이 좌절되었고 그후 1년여간을 부상으로 인하여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하였다가 UEFA 유로 2004에 출장하여 포르투갈과의 준결승전에서 패배한 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였다. A매치 최종기록은 86경기 17골.


4. 행정가 시절[편집]



4.1. AFC 아약스 기술 이사[편집]


2012년부터 오버르마르스는 AFC 아약스 기술 이사로 일하면서 아약스 유스 시스템을 다듬으며 유망주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러한 조치로 인해 마테이스 더리흐트, 프렝키 더용, 도니 판더베이크 등 수많은 선수들이 쏟아져 나오며 아약스는 2010년대 후반 다시 중흥기를 맞았다. 이 과정에서 놀라운 수완까지 보여줬는데, 육성한 선수들을 빅 클럽에 이적시키도록 새로 좋은 잠재력을 가진 이들을 수급해 좋은 성적을 거두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도록 했다.

그러나 2022년 2월 7일, 급작스레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는데 사직 이유는 7일(한국시간)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었다. "오버르마르스는 아약스를 떠나게 됐다. 에드윈 반 데 사르를 포함한 보드진 회의 속 결정된 내용이다. 이유는 여성 동료들에게 장기간에 걸쳐 선을 넘는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이다"고 공식 발표했다. 자신의 신체 사진을 지속적으로 여성들에게 전송했다고 한다.

오버르마르스 본인도 "부끄럽다. 지난 주 보드진 회의에서 내 행동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꼈는지 제대로 알게 됐다. 사과하기엔 너무 늦었지만 정말 죄송하다. 내 위치에서 이런 행위를 보이는 건 어떠한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래서 아약스를 떠나기로 했다"고 말하며 불미스럽게 물러나야 했다. 경영인으로서 유능하였기에 아약스 간부진이나 서포터들도 아쉬워할 지경.

에드빈 판데르사르 아약스 사장은 "끔찍한 일이다. 오버르마르스를 내보내기로 한 결정은 아약스 구성원 모두를 위한 일이었다. 선수로서, 직장 동료로서 함께 했던 오버르마르스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했다.

이 사태로 인해 오버르마르스는 FIFA 22 ICON에서 사라졌고, 피파 온라인 4에서도 선수 공급이 끊기게 되었다.


4.2. 로열 앤트워프 기술 이사[편집]


2022년 3월 21일, 로열 앤트워프 기술 이사직에 부임했다.

1달 만에 새로운 직장에 복귀한 것으로 보아 축구계에서 명예가 많이 실추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마르코 반 바스텐처럼 FIFA 23피파 온라인 4 혹은 피파 온라인의 차기작에 다시 등장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6]

2022-23 시즌에 기술 이사로서 팀의 66년 만의 리그 5번째 우승을 경험했다.


5. 플레이 스타일[편집]



오버르마르스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플라잉 더치맨이라는 이름값에 걸맞은 초월적인 스피드.[7] 당대 최고의 스피드 윙어였으며, 뛰어난 양발 킥력을 보유했었다. 무시무시한 스피드로 안쪽으로 파고들면 슈팅, 측면으로 파고들면 크로스를 올리는 형식의 공격을 자주 시도했다. 플레이스타일을 보면 아르연 로번과 상당히 비슷한 모습을 보이며, 네덜란드에 로번이 등장하기 전 먼저 있었던 스피드스타였다.

그러나 그의 빠른 스피드는 잦은 부상을 가져왔고 후에 그의 몰락을 부르게 된다.

스피드가 얼마나 빨랐냐면 전성기는 이미 지났고 현역 마지막 경기나 마찬가지였던 UEFA 유로 2004 때 포르투갈과의 4강전 경기에서 직선으로 뛰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보다 옆쪽에서 약간 늦게 출발했음에도 스피드로 이겨서 볼을 따내는 장면이 있다.[8] 그 외에도 치달이나 동료의 패스를 받을 때 수비수의 몇 미터 뒤에서 출발했음에도 수비수보다 앞서 볼을 따내는 장면을 자주 보여주었다.


6. 기록[편집]



6.1. 대회 기록[편집]





6.2. 개인 수상[편집]


  • FIFA 월드컵 베스트 영플레이어: 1994
  • 네덜란드 올해의 축구 선수: 1993
  • 네덜란드 올해의 재능: 1992
  • FA 커뮤니티 실드 맨 오브 더 매치: 1998
  • 아약스 올해의 선수: 1996


7. 여담[편집]


  • 키가 173cm로 네덜란드 남성 평균인 183cm보다 한참 작다. 그럼에도 네덜란드 국대의 핵심이었다. 여담으로 네덜란드에서 키 170 초반은 한국에서는 키 160 초중반 급이랑 똑같다.

  • 데니스 베르캄프인테르에 있던 시절 그를 영입하기 위해 나선 아스날에게 베르캄프는 자신의 이적 조건으로 오버르마르스의 영입을 요구했다고 한다.

  • 오버르마르스의 이적은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이적에도 약간의 영향을 미쳤다. 원래 오버르마르스의 이적시 부대조항으로 아스날과 바르셀로나와의 친선경기(이익은 아스널이 모두 가져감)가 있었는데 바르셀로나는 이 친선경기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아르센 벵거는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바르셀로나 유스에서 빼갔고 이로 인해 바르셀로나는 세스크에 대한 보상금을 내놓으라고 펄펄 뛴 바가 있다. 이 때 아스널 측은 바르셀로나가 오버르마르스 이적 때 제시한 친선경기 조항을 아직까지 수행하지 않고 있음을 문제삼았고, 바르셀로나와의 협상 끝에 보상금 문제를 상호간 친선경기 조항 삭제로 퉁치면서 마무리했다.

  • 선수 시절 나이키 머큐리얼을 신고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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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접두어 over-는 '오버르'로 표기한다. 1998 프랑스 월드컵 당시 방송이나 언론에서는 '오베르마스'라고 부르기도 했었다.[2] 100m를 10.55초에 주파하는 기록을 세웠으며 클라우디오 카니자와 함께 축구계에서 가장 빨랐던 선수로 꼽힌다[3] 사실 이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아약스는 밀란을 조별리그에서 2번 만났는데 2번 다 2:0으로 승리를 거두어 조별리그 1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했다.[4] 한국이 5:0으로 패배한 그 경기 맞다.[5] 오버르마르스가 올린 크로스를 로날트 더부르가 받으려는 찰나 체코 수비수가 반칙을 범하여 페널티킥을 허용하였고 결국 페널티킥을 골로 연결시키며 네덜란드가 승리했다.[6] 반 바스텐은 본인이 네오나치가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항변해 사회적으로 크게 매장되지 않아 다시 FIFA 시리즈에 복귀할 수 있었지만, 오버르마르스는 본인의 성폭력을 인정했기 때문에 한동안 FIFA 시리즈에 다시 등장하기는 더욱 어려워 보인다. EA 스포츠에서 라이선스를 완전히 해지했는지 오버르마르스는 차기작에 복귀한 마르코와는 달리 FIFA 23에 등장하는 ICON 선수들 명단에서 누락되었다.[7] 오버르마르스는 스피드가 당대에서 뿐만 아니라 역대로 따져도 순위권을 다툴 정도로 빠르며, 통계에 따르면 100m 기록이 10.4초 라고 한다. 가장 빠른 선수는 클라우디오 카니자로 100m 기록이 10.2초였다.[8] 물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빠르기로 유명하지만 역대급으로 빠른 편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