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베이 자하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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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소련의 군인.
2. 생애[편집]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목수, 기계공으로 일하다 1917년 페트로그라드에서 일어난 혁명에 참여했다.
2.1. 러시아 내전[편집]
1918년 페트로그라드 군관구에서 포병학을 수료했다. 1918년 12월부터 노농적군 제10군 포병대를 지휘했다. 1919년 9월부터 제48소총수사단과 제50소총수사단 포병단장을 역임한 뒤, 1920년 9월부터 제34소총수사단 제101소총수여단 부여단장을 역임했다. 전간기에도 그는 학업을 계속했다. 1928년 프룬제 군사대학 보급장교, 1933년 작전장교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1933년 7월부터 1936년 2월까지 벨로루시 군관구 부사령관을 역임했다. 이후 이반 코네프와 함께 제2우크라이나전선군을 훌륭하게 지휘했다.
2.2. 대조국전쟁[편집]
1941년 6월 22일부터 28일까지 제9군 사령관을 역임했다. 최전방의 전투원들을 무작정 복귀시키라는 명령을 내려버려 클리멘트 보로실로프의 분노를 사 부사령권으로 강등됐다. 1941년 8월부터 군수부대 부사령관을 역임했지만 교통사고 때문에 금방 해임됐다. 이후 다시 이반 코네프와 함께 제2우크라이나 전선군 소속으로 투입돼 부대를 지휘했다. 추후의 벨고로드-하리코프 전투, 우만-보토샨, 부다페스트 공방전에서 성공적으로 승리했다.
1945년 7월 이오시프 스탈린은 극지방전선군 사령관을 권유했으나, 자하로프는 바이칼 전선군에 남겠다며 거절했다.
2.3. 소련-일본 전쟁[편집]
1945년 8월 힌간-묵덴 공세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대규모 기동부대를 일본 제국의 관동군을 궤멸시켰다.
3. 전후[편집]
1945년 10월부터 자하로프 고등군사사관학교장, 1952년 7월부터 소련 수석 감찰관, 1953년 5월부터 레닌그라드 군관구 사령관을 역임했다. 1972년 1월 31일 크렘린 벽에 안장됐다.[1]
4. 진급 이력[편집]
5. 평가[편집]
고집불통에 까다롭고 가혹한 명령을 자주 내리지만, 그는 확실히 박학다식하며 습득에 훌륭한 재능이 있는 인물이다.
미하일 아브라모비치 밀슈타인 중장
니키타 흐루쇼프의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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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의 첫 번째, 두 번째 아내는 노보데비치 벽 묘지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