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틸다(잉글랜드 국왕)

덤프버전 : r202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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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마티다(잉글랜드 군주).png
왕호
마틸다
(Empress Matilda)
부친
헨리 1세
모후
스코틀랜드의 마틸다
생몰년
1102년 2월 7일~1167년 9월 10일
재위기간
1141년 4월 7일~1141년 11월 1일
대관식
없음

영어: Matilda (마틸다)
프랑스어: Mathilde (마틸드)
독일어: Mathilde (마틸데)
라틴어: Mathildis (마틸디스)

신성 로마 제국 하인리히 5세의 황후이기도 했으며 모드 황후라고 불리기도 했다. 헨리 1세는 적통 왕위계승자인 아들 윌리엄이 사고로 익사하자 과부였던 그녀를 다시 불러들여 앙주 백작 조프루아 플랜태저넷과 결혼시킨 뒤 잉글랜드의 여왕으로 즉위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여성계승을 두고 귀족들이 반발하여 헨리 1세 사후 왕위는 조카 스티븐이 강탈하였다. 이 때문에 무정부시대라는 내전이 벌어지나[1] 결국 스티븐과 화해하여 스티븐의 왕위는 인정하되 후계자는 마틸다의 아들 헨리 2세가 잇도록 하였다. 그녀를 여왕으로 인정할지 말지는 지금도 논란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스티븐 왕 문서를 참조.

프랑스 영토가 더 풍요로운 점을 들어서 왜 그렇게 상대적으로 빈약한 잉글랜드 땅에 집착할까 싶지만, (영토를 반이나 잃는 것을 둘째치고) 당연히 집착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잉글랜드 본토를 되찾아야 비로소 잉글랜드 왕위를 되찾아 비로소 왕이라 지칭할 수 있지만, 프랑스 내의 잉글랜드 땅을 가져봤자 그건 프랑스 왕의 신하에 그나지 않게 되니, 본인과 본인의 후손의 위신을 위해서는 반드시 잉글랜드 왕좌를 되찾아야 했다.[2]


[1] 이 내전 동안 마틸다는 잉글랜드 본토의 여왕이라기보다는 영국 왕이 가진 프랑스 영지에서의 여왕에 가까웠다.[2] 조상이자 본디 노르망디 공작이던 윌리엄 1세가 잉글랜드 왕위를 원한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