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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莫古解

1. 개요
2. 근초고왕 시기의 막고해
2.1. 대중 매체에서
3. 동성왕 시기의 막고해


1. 개요[편집]


백제의 군인, 장군. 한자는 동일하나 근초고왕 시기에 활약한 인물과 동성왕 시기에 활약한 인물 2명이 존재한다.


2. 근초고왕 시기의 막고해[편집]


생몰년도 미상

371년, 근초고왕 때에 고구려고국원왕이 군사를 이끌고 백제를 침략해왔는데, 당시 백제의 태자였던 부여구수가 이를 무찌르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반걸양에서 고구려군을 맞아 싸웠다. 이 때에 본래 백제 사람이었던 고구려 병사 사기(斯紀)가 부여구수에게 고구려군의 약점을 알려주어서[1] 백제군이 크게 승리하였다.

태자 부여구수는 패퇴하여 물러나던 고구려군을 쫓아 수곡성까지 이르렀다. 이때 부여구수가 계속 북쪽으로 밀고 가려고 하자 막고해가 노자도덕경 구절을 인용하며 이렇게 간하였다고 한다.

"일찍이 도가의 말에 '만족할 줄을 알면 욕을 당하지 않고, 그칠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얻은 바도 많은데 어찌 더 많은 것을 바라겠습니까?"


부여구수는 이를 옳다고 여기고는 더이상 고구려군을 추격하지 않았고, 대신에 돌을 쌓아 올려 표시를 남겨 놓고는 그 위에 올라 "오늘 이후로 누가 다시 이곳에 올 수 있는가?"라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막고해가 도덕경의 구절을 인용하며 태자 부여구수에게 조언하는 대목은 백제에 불교가 제대로 전파되기 이전에 도교가 널리 퍼졌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한다. 비록 남겨진 기록은 굉장히 적지만 왠지 모르게 임팩트있는 인물.

한편 일본서기진구황후 46년(366) 기록에 따르면 백제 사람인 막고(莫古)가 두 해 전인 364년 7월에 탁순국[2]에 와서 일본과 통교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막고라는 사람의 이름이 막고해(莫古解)의 이름과 흡사할 뿐만 아니라 그 활동 시기도 비슷하여 두 사람을 동일인물로 여기는 견해가 있다.


2.1. 대중 매체에서[편집]


국내에서 제작된 RTS 게임인 천년의 신화에서도 백제의 영웅 유닛으로 등장하며 기병의 강화판이다. 근초고왕, 근구수왕과 함께 말을 탄 모습. 7장 치양전투에서 총군세를 펼치려는 태자를 말리는 이벤트가 나오긴 하나 아쉽게도 도덕경에 관련된 대사는 나오지 않는다.

바람의 나라의 컨텐츠 천마전에서 '천(天)' 측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등장한다. 빠른 파밍과 괜찮은 기동력을 갖추고 있다.

드라마 근초고왕에서 두고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다가 후에 막고해로 이름이 바뀐다. 배우는 정흥채.

파일:The Legend of Cao Cao Makgohae.png

삼국지조조전 Online에서는 결사계백의 패라는 계보의 미등장 데이터로 남았다. 병과는 무인. 능력치는 무력 78, 지력 84, 통솔 75, 민첩 81, 행운 76. 본래 플레이어블로 등장할 예정이었다가 제작진이 능력치 논란을 우려해 일부러 등장시키지 않았다.


3. 동성왕 시기의 막고해[편집]


생몰년도 미상

백제의 내두좌평. 487년 왜인 키노 오이와노스쿠네(紀 生磐宿禰)가 임나를 점거하고 고려(고구려)와 내통해 왕 노릇을 하려고 했는데, 백제의 적막이해(適莫爾解)를 고구려 땅인 이림에서 죽이고 거병한다. 이때 동성왕은 크게 화가 나 영군(領軍) 고이해(古爾解)와 내두좌평[3] 막고해를 파견해 대산성(帶山城)[4]을 공격했다. 오이와노스쿠네 역시 맞받아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점차 밀려서 임나로 되돌아갔고 백제는 임나의 좌로(左魯) 나기타갑배(那奇他甲背) 등 300여 명을 처형했다고 한다.

1의 인물과 이름이 같지만 120년 간격으로 차이나는 인물이라 동일인물일 수는 없다. 한편 위덕왕 시기 일본에서 숙위했던 인물 중 동성자막고(東城子莫古)가 있는데, 그가 막고해와 동일인이라면 동성왕의 아들로 추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동성왕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고 고작 8년 뒤에 일어난 이 사건에서 동성왕의 아들이 활동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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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구려 군 중에서도 붉은 깃발을 든 병사들은 정예병이지만 나머지는 오합지졸이니 강한 쪽을 먼저 무너트려야 한다고 하였다.[2] 가야 제국의 한 나라로 여겨진다.[3] 원문에는 '내두(內頭)'라고만 되어있다.[4] 오늘날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에 있는 성남리(월계리 산성)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