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시마 소레기에타 세루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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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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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마 소레기에타 세루티




네덜란드 빌럼알렉산더르의 왕비
막시마 소레기에타 세루티
Koningin Máxima


이름
막시마 소레기에타 세루티
Máxima Zorreguieta Cerruti
출생
1971년 5월 17일 (52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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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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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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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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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78cm
배우자
빌럼알렉산더르 (2002년 결혼)
자녀
카타리나아말리아, 알렉시아, 아리아너
아버지
호르헤 소레기에타
어머니
마리아 델 카르멘 세루티 카리카트
형제
마르틴, 후안, 이네스
종교
가톨릭
1. 개요
2. 작위
3. 생애
3.2. 네덜란드 왕세자비
3.3. 네덜란드 왕비
3.4. 자녀
4. 국적
5. 기타



1. 개요[편집]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출신의 네덜란드의 現 왕비. 남편은 네덜란드의 국왕 빌럼 알렉산더르. 자녀로는 공주 3명이 있다.

사적으로는 매우 가벼운 처신을 보이긴 하지만 봉사활동과 자선사업에 적극적인지라, 독재자의 하수인을 아버지로 뒀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여론의 비판을 잘 극복하고 비교적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바스크, 이탈리아, 포르투갈 혈통으로, 포르투갈의 왕 아폰수 3세의 후손이기도 하며 그 외에 이베리아 반도 지역의 여러 귀족 가문의 후손이다.


2. 작위[편집]


파일:Coat_of_Arms_of_Maxima,_Queen_of_the_Netherlands.svg.png
문장



3. 생애[편집]



3.1. 문제 많은 아버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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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당시 아르헨티나의 독재자이던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오른쪽이 막시마 왕비의 아버지인 호르헤 소레기에타 농업부 장관

막시마의 아버지 호르헤 소레기에타(Jorge Zorreguieta, 1928-2017)[1]는 일명 더러운 전쟁이라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70년대 군부독재 시절, 독재자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의 밑에서 1976년부터 1979년까지는 농업부 차관을, 1979년부터 1981년까지 농업부 장관을 지냈으며, 비델라가 집권한 모든 기간 동안 국가곡물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비델라 정권은 자신에게 반하는 무고한 시민들과 지식인들을 '공산주의자'나 '기독교와 서구 문명의 적'으로로 몰아 고문, 강간 후 살해했는데, 이렇게 단 5년 동안 '실종'되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만 최소 1만 2천 명에 달해 '남미의 나치'라는 말까지 붙을 정도였다. 당시 상황 아직 시신을 찾지못한 피해자들의 사진 특히 임신여성 정치범들은 좁은 수용소 안에서 수갑과 족쇄를 찬채 출산했으며, 출산한 산모들은 군용기에 실려가 산 채로 바다에 버려졌고, 그렇게 탄생한 신생아들과 영유아 정도밖에 안 된 그들의 자식들 500명은 친정부 성향 가정에 강제로 입양되었다.

이에 대해 호르헤 소레기에타는 생전에 자신이 군사 정권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는 궤변을 남겼왔으나, 네덜란드 의회의 요청을 받아 미셀 보드[2]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소레기에타는 비록 직접적으로 비델라 정권의 반인륜적 범죄에 가담하지는 않았으나 높은 위계에 있던 특성상 비델라 정권에 반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산하 직원들이 실종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풀어서 말하자면, 소레기에타는 비록 직접적으로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탄압을 지시하지는 않았어도 이를 눈감아주며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방치했다는 이야기가 된다.[3][4] 독재정권의 악행과 호르헤 소레기에타의 연계를 폭로한 영상.

막시마는 카톨리카 아르헨티나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유럽 등지의 대형 국제 금융기관에서 근무했다가 왕세자였던 빌럼알렉산더르를 만나 결혼했다. 막시마 소레기에타가 훗날 네덜란드빌럼 알렉산더르 왕세자와 결혼할 당시 아버지의 과거 행적으로 네덜란드 내에서 논란이 일자, 막시마는 자신의 친정 가족들을 아무도 결혼식장에 참석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서는 "네덜란드 국왕이 아르헨티나인들을 능욕하는 결혼을 했다."는 얘기가 지금도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막시마 소레기에타와 빌럼 알렉산더르의 결혼이 군부독재시절 고통을 겪었던 아르헨티나 국민과 아르헨티나 역사를 우롱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호르헤 소레기에타는 2012년에 유아 납치 혐의로 50년형을 선고받고 2013년에 옥사한 상관 비델라하고는 정반대로 군사 정권이 끝나기도 전에 공직에서 물러났다는 이유로 인권 침해로 기소되는 일도 없었고, 오히려 2009년에 퇴직할 때까지 여러 식품 관련 단체의 회장으로 활동해오며 반성의 기색도 없이 천수를 누렸고, 2017년 8월 8일 오랫동안 앓아온 비호지킨 림프종으로 향년 8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3.2. 네덜란드 왕세자비[편집]


1999년, 지인이 여는 파티에 네덜란드 왕세자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취소했던 스페인 세비야행 티켓을 끊었고, 파티에 참석해 왕세자와 사랑에 빠졌다. 후에 막시마는 "빌럼 알렉산더르가 네덜란드 왕세자인 걸 몰랐다"고 발언했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2001년 3월 30일에 빌럼알렉산더르와의 약혼을 발표했으나 아버지의 악행이 드러나면서,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 전체가 발칵 뒤집어졌고 당연히 네덜란드 하원은 이 결혼을 결사반대했다.[5] 그러나 빌럼 알렉산더르2001년 뉴욕에서 "호르헤가 독재정권 하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주장한 책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호르헤의 무죄를 주장하는 등, 가만히 있어도 모자랄 판에 괜히 쓸데없는 양념을 쳤다. 당시 네덜란드 총리였던 빔 코크는 TV연설에 나와 "왕세자는 그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말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빌럼 알렉산더르는 그녀와의 결혼을 위해 영국 왕위 계승권을 포기했으며,[6] 네덜란드 왕위까지 포기하겠다고 주장해서 결국 그녀가 공개적으로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고 그녀의 아버지가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두 사람은 2002년 2월 2일 암스테르담의 옛 증권거래소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인근 니우웨 케르크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결혼 예배를 치렀다. 결혼식에 스페인의 前 소피아 왕후, 벨기에 前 국왕 알베르 2세, 영국찰스 3세, 일본나루히토[7]등 각국의 왕실 인사들 및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 넬슨 만델라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등이 참석했다. 결혼식 때 아르헨티나 음악 Adios Nonino를 듣고 훌쩍이는 그녀의 모습이 동정론을 형성하기는 했지만, 한동안 네덜란드 여론은 시끄러웠다.#


3.3. 네덜란드 왕비[편집]


시어머니 베아트릭스 여왕2013년 4월 30일빌럼 알렉산더르 왕세자에게 양위하겠다고 1월 28일 공식 발표함에 따라, 빌럼 3세의 두번째 왕후 발데크피르몬트의 에마 이후로 123년 만에 등장하는 네덜란드의 왕후가 되었다. 그러나 막시마의 친정 부모는 사위의 즉위식에 불참했다.#

그러나 왕후가 되자 아버지 호르헤를 포함한 친정 가족들을 공식 행사에 참석시켜,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 양국에서 논란을 일으켰다.알렉시아 공주의 세례식 때 다른 왕실 행사가 있을 때도 자신의 아버지인 호르헤를 항상 참석시켜 논란이 되고 있다. 구글에 검색해보면 공식 행사 중 베아트릭스 前 여왕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사진들이 널리고 널렸다.


3.4. 자녀[편집]


파일:IMG_20180718_225800.jpg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막시마 왕비, 차녀 알렉시아, 장녀 카타리나아말리아, 3녀 아리아네, 남편 빌럼알렉산더르.

자녀
이름
출생
1녀
오라녀 여공 카타리나아말리아
(Catharina-Amalia, Princess of Orange)
2003년 12월 7일 (20세)
2녀
알렉시아 공주
(Princess Alexia)
2005년 6월 26일 (18세)
3녀
아리아네 공주
(Princess Ariane)
2007년 4월 10일 (17세)

부모를 닮아서 모두 금발이다. 참고로 2018년에 찍힌 사진이며, 가운데에 있는 소녀가 미래의 여왕이 될 카타리나-아말리아 왕세녀다. 네덜란드 왕국은 1890년부터 쭉 여왕만 즉위해 오다가 123년만에 남자 군주가 탄생했지만, 한 세대 만에 다시 여왕의 시대가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8]

본인과 남편 모두 덩치가 커서 그런지 딸 셋 모두 나이에 비해 덩치가 크며, 특히 맏딸인 카타리나 아말리아는 어머니와 별로 차이도 없을만큼 덩치가 크다. 근데 아직 성장기이다.


4. 국적[편집]


원래 아르헨티나인으로 아르헨티나는 자국 국적포기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막시마는 30세 때까지 6개월 간격으로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비자를 끊어서 체류해야 했으며, 30번째 생일이 되는 날에 드디어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네덜란드 시민권을 얻었다. 그래서 국적포기 금지법 때문에 네덜란드에서만 계속 사는데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국적을 계속 갖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비슷한 상황인 셈.

왕비로 재임 도중 네덜란드아르헨티나FIFA 월드컵에서 두 번 만난 바 있다. 첫번째는 브라질 월드컵 4강, 두번째는 카타르 월드컵 8강.[9]


5. 기타[편집]


  • 빌럼 알렉산더르와 연애할 때부터 열심히 네덜란드어를 배워, 약혼 발표 기자회견 때 완벽한 네덜란드어를 구사해 간신히 네덜란드인들에게 점수 좀 땄다. 네덜란드에서 산 지 10년이 넘었어도 말할 때 여전히 문법 실수가 보이곤 하는데, 나이 먹고 배운 걸 감안하면 매우 빨리 익힌 셈이고 외국인인 걸 감안하면 잘하는 건 맞다. 막시마에게 네덜란드어는 3번째로 배운 언어로, 모국어스페인어 외에 영어에 능숙하며 프랑스어도 회화는 가능하다.

  • 복부인 패션을 자랑하며 특유의 과장된 색상과 디자인은 이미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잡았다. 근데 그 센스가 때때로 "정말 특이하다"는 평가를 받고, "막시마의 풍채 좋은 체형과 영 안 어울릴 때가 많다"는 평도 있어서, 유럽의 왕비/왕세자비 중에서 옷을 못 입는 축에 속한다.[10] 샤넬과 발렌티노의 오뜨꾸뛰르 콜렉터이다.

  • 소레기에타 집안의 족보와 반인륜적 범죄 행위에 관해 파헤친 책이 출판된 적이 있는데, 내용 대다수가 근거가 없는 찌라시 수준이었기 때문에 네덜란드 왕실의 요청으로 판매가 금지되었다.

  • 자선사업에 적극적이며 결혼 전 국제은행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빈민을 위한 마이크로 크레디트(소액대출)를 지원하며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또한 2012년에 루게릭병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 2km에 달하는 암스테르담 운하를 몸소 수영으로 횡단했다.



  • 키가 178cm나 되는데, 사실 네덜란드 성인 여성의 평균 신장은 2023년 기준으로 세계 최장신 수준인 170.4cm이지만[11], 막시마는 그런 네덜란드 여성 중에서도 키가 엄청나게 큰 편이다. 참고로 그녀의 고국인 아르헨티나 남성의 평균 신장은 174.8cm이며, 아르헨티나 여성의 평균 신장은 161.2cm인데, 막시마 소레기에타는 고국에서는 여성들 중에서는 말할 것도 없는 거인 수준이며, 웬만한 남성들보다도 키가 큰 셈이다.


  • 2018년 6월, 막내 여동생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기사)

  • 코로나19 사태 당시 그리스에서 휴가를 보내는데 사회적 거리두기 어긴 논란으로 사과했다.#


운전 실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형 트럭[12]을 직접 모는 영상이 공개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1] 여담으로 막시마의 어머니하고는 불륜으로 시작한 관계이다. 그래서 이복언니가 3명 있다.[2] Michiel Baud, 1952~, 암스테르담 대학교의 라틴 아메리카 연구 교수.[3] 실제로 1976년 12월 21일에 리디아 아미고(Lidia Amigo)라는 여학생이 납치되자 그녀의 아버지이자 소레기에타의 전임 농업부 차관이던 알베르토 아미고(Alberto Amigo)는 소레기에타에게 딸에 대한 도움과 정보 제공을 요청했으나, 소르기에타는 이를 듣고도 그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출처 참고로 상관인 비델라는 한술 더 떠 정신병원에서 요절한 자신의 아들을 자신의 요청으로 돌봐줬던 프랑스인 수녀 2명이 단지 '실종자'의 행방을 알려달라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이들을 풀어주라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결국 그 수녀들은 참혹하게 고문당한 후 산 채로 바다에 던져져 죽었다.[4] 참고로 기무라 헤이타로는 반정부 인사가 아닌 포로 학대를 인지하면서도 방치한 케이스인데, 이쪽은 한술 더 떠 겉으로는 군인들에게 포로 학대를 자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5] 네덜란드 헌법상 왕실의 결혼에는 의회의 동의가 필요한데 빌럼 알렉산더르의 남동생이자 현재 고인이 된 요한 프리소 왕자는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벨 비서 스밋(조폭 두목의 내연녀였다)과의 결혼을 감행하면서 자신과 자녀들의 왕위 계승권을 포기했다.[6] 이는 막시마가 아르헨티나 평민 출신의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오라녀나사우 왕조가 촌수로는 좀 까마득하지만 영국윈저 왕조와 혈연관계가 있기 때문에 비록 서열에서는 밀리지만 영국의 왕위 계승권이 있었다. 그러나 빌럼 알렉산더르가 그 계승권을 계속 갖고 있다 한들 엘리자베스 2세 사후에 실제로 영국의 왕위를 잇는 것은 찰스 3세 또는 그의 맏아들인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스 왕세손 중에서 1명이 된다. 어차피 서열에서 한참 밀리는 셈이고 영국 왕위를 계승할 가능성도 희박하니 결국 네덜란드 왕위만 잇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여 포기해버린 것이다. 다만 현재는 가톨릭 신자 역시 영국의 왕위를 계승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었다.[7] 당시에는 황태자의 자격으로 방문했다.[8] 참고로 네덜란드 왕가는 딸부잣집으로, 베아트릭스 前 여왕의 손주들은 손자가 딱 1명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손녀들이다. 진정한 여왕의 나라다.[9] 두 경기 모두 아르헨티나가 승부차기 끝에 승리했다.[10] 사실 냉정하게 말해서 패션센스가 완벽한 왕세자비/왕비/왕자비/공주들은 의외로 거의 없으며, 오히려 워스트 드레서들이 널렸다. 다이애나 前 왕세자비덴마크 前 왕자비 알렉산드라를 제외하고는 현재 패션센스가 괜찮거나 평타 이상 치는 여성 왕족들은 스페인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 왕비와 영국의 캐서린 왕세자비 정도. 물론 이 둘도 워스트 드레서일 때가 있지만, 다른 여성 왕족들에 비하면 그나마 적다. 스웨덴빅토리아 왕세녀도 레티시아와 캐서린에 비하면 좀 떨어지지만, 전반적으로는 괜찮은 축에 속하는 편.[11] 참고로 네덜란드 성인 남성의 평균 신장은 183.4cm이다.[12] 네덜란드 회사인 DAFXF106 F/L 차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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