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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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어
ᠮᠠᠨᠵᡠ ᡤᡳᠰᡠᠨ | Manju gisun[1]
Manchu language
유형교착어
어순주어-목적어-동사 (SOV)
서자방향좌종서(왼쪽부터 세로쓰기)
문자만주 문자
주요 사용 지역
(또는 공용어 지정 국가)
파일:중국 국기.svg


만주 지역
원어민6명
제2언어 이용자 1000명 이상 (2017)
계통퉁구스어족
남퉁구스어군
만주어군
만주어
언어
코드
ISO 639-2mnc
ISO 639-3mnc
글로톨로그manc1252

ᠨᠠᠮᡠ ᡠᡳᡴᡳ᠈ ᠰᡠᠸᡝᠨᡳ ᡨ᠋ᠠᡵᡳᡵᡝ ᠰᠠᡵᠠᠰᡠ ᡳ ᠮᠣᠣ᠈᠈

namu uiki, suweni tarire sarasu i moo.

(나무 우이키, 수워니 타리러 사라수 이 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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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16~18세기
2.2. 19~20세기
2.3. 현대의 만주어
3. 학술 언어로서 높은 위상
3.1. 만주어 문헌의 재발견
4. 한국의 만주어 연구
4.1. 한국에서 공부하는 법
6. 발음
7.1. 전사법
8. 회화
8.1. 기초 회화
9. 문법
9.1. 모음조화
9.2. 동사
9.2.1. 동사의 활용 일람
9.2.2. 시제
9.2.3. 용법
9.2.4. 활용이 없는 동사
9.3. 조동사
9.4. 형용사
9.5. 명사
9.5.1. 명사화
9.5.2. 명사의 복수형
9.7. 격조사
9.8. 부사
9.9. 후치사
9.10. 관용어
10.1. 농사
10.2. 지명
10.3. 인명
10.4. 세력명
10.5. 건축물
10.6. 천간지지(天干地支)
10.6.1. 10간(干)
10.6.2. 12지(支)
10.7. 기타
11. 예문
12. 대중매체에서의 만주어
13. 언어별 명칭
14. 들어보기
15. 기타
16.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px-Manju_gisun.svg.png
'만주어(manju gisun)'라는 뜻의 단어를 만주 문자로 쓴 모습.[2][3]

금나라를 세웠던 여진족후손이자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들이 쓰 언어. 여진어라고도 한다. 여진족들이 쓰던 여진어는 만주어 또는 그 조상 언어(말갈어 등)와 매우 가까운 언어였다고 추정된다.

만주-퉁구스어족 중 남퉁구스어파에 속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nchu_chinese.jpg
위 사진은 만한합벽체(滿漢合璧體)로 되어 있는 자금성의 건청문 판액(板額). 만주 문자로 '캰 칭 먼(Kiyan Cing Men)'[4]이라고 되어 있다.(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문자는 위구르 문자에서 유래한 몽골 문자를 만주어에 맞게 개량한 만주 문자를 사용한다.

한국어와는 달리 존비어 체계가 발달된 언어가 아니다. 홍타이지가 이러한 문제에 골머리를 썩혀서 어휘를 달리하는 식으로 존비어체계를 만들기는 했지만, 문법이 크게 달라졌다거나 했던 건 아니다.


2. 역사[편집]



2.1. 16~18세기[편집]


이전의 역사는 여진어 참조

여진족들은 만주에 있을 당시 언어기록이 거의 없다시피했다.[5] 따라서 기록도 거의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은 그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 초기부터 여진어를 할 수 있는 역관을 양성하였고, 기록이 남아서 이 당시의 여진어 자료도 오히려 조선쪽에 더 남아 있다.

17세기 초, 누르하치가 여진족을 통일하고, 만주족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몽고문자를 개량해 만주문자를 만들고 그때부터 만주족은 기록문화를 시작했으나, 미처 이것이 확립되기도 전에 입관하여 중국 대륙을 장악하면서 문화적으로 월등히 수준이 높은 한족을 지배하게 되었다. 만주족은 대륙을 장악한 후, 만주어, 한어(漢語) 및 몽골어를 공식언어로 지정하고, 모든 공식 문서에 만주어-한어를 같이 쓰도록 했다. 청 정부는 관학을 세워 만주어를 가르치고 관리등용 시험 때도 만주어를 요구했다. 특히 만주인이 문관이 되려면 반드시 만주어와 몽골어의 번역 시험을 보도록 했다. 공식 문서는 만주어가 원본이 되었고 그것에 한어를 덧붙였는데, 이러한 형식의 문서를 만한합벽(滿漢合璧)이라 한다. 그래서 지금도 자금성에 가면 한자와 만주 문자가 함께 적혀 있는 현판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만주에 살던 소수의 만주족(수백만)이 만리장성 이남의 1~2억 인구를 가진 한족을 지배하면서 압도적인 한어의 언어환경 때문에 점점 지배층들도 만주어를 잊기 시작했다. 지배층이 되면서 학식을 갖기 위해 한족 학자들을 데려다가 한문을 배우며 공자왈 맹자왈 하기도 하고, 한족 시종이나 부하들을 여럿 거느리고 한족 여성처첩으로 두고 통혼하여 혼혈하다보니, 점차 중국화되어 결국은 일상생활에 쓰는 말까지 중국어를 쓰게 된 것이다. 여기에 강희제강희자전을 편찬하면서 청 황실 내에서도 한어의 사용을 허가했고[6], 황실까지 중국어가 상용되게 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18세기 건륭제 연간에 이미 황자들도 만주어에 서툴러져서 만주어를 잘하는 것이 차기 대권구도 예측에서 강점으로 여겨지고[7], 열하일기에도 조선인 역관에게 만주어를 할 줄 아는지 물어서 약간 할 줄 안다는 만주어 대답을 듣자 건륭제가 기뻐했다는 썰이 전해질 정도였다. 그러나 건륭제는 정복 전쟁을 위해 팔기군을 제법 빡세게 굴리는 자칭 십전노인(...)이었고, 이런 팔기군 내의 군사언어로서라도 만주어는 여전히 청나라의 국어이자 기인과 고관들의 못하면 망신살 뻗치는 기본소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준가르를 정복한 만주족 장수인 오야 조혜를 추켜세워준다고 건륭제가 매우 복잡하고 치열한 과거 시험의 최종예선 내지는 본선 조별리그 격인 베이징 회시의 감독관으로 앉혀줬지만 당사자가 스스로 자신은 '글도 모르는 까막눈'이라며 사양하였음에도 건륭제가 억지로 밀어준 일이 있었는데, 이 일화로 미루어보건대 고위 지휘관이 정말 아무 글자도 모르는 문맹이었기보다는 이 인물은 한문(을 쓰는 한어)보다 만문(을 쓰는 만어)이 더 익숙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강건성세의 만주족들은 (주로 군사 분야에서의) 능력과 실적이 담보된다면 한어와 한문에 서툴고 만어 만주문자만 잘해도 얼마든지 출세할 수 있었던 것이다.[8]

하지만 팔기군 역시 삼번의 난 이후로는 녹영과 혼성부대를 이루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한인은 맘대로 드나들지 못하는 만주에서 근무하거나 태어난 만주인 관료들도 건륭제가 만주어로 물을 때 우물쭈물 더듬거리며 대답은 한문, 한어로 하곤 했다는 기록을 보면, 건륭 후반기에는 만주인들 사이에서도 만어보다 한어를 제1언어로 쓰는 경우가 점점 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건륭제는 나이가 들수록 의식적으로 만인 관료에겐 일부러 만주어로 우선 하문하고 못하면 갈구는(...) 등 만주어 사용을 장려하며 심지어는 만주어 연구자들을 동원하여 만주어 진흥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18세기에 만주에는 입관하지 않은 만주족 마을도 남아있었지만, 이미 건륭제 시절에 만주에 남은 만주족들도 상당수가 중국어를 상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만주족의 본거지였던 성경(선양시) 출신 만주족 관리가 베이징으로 와서 건륭제를 알현하게 되었는데, 건륭제가 한화된 베이징 출신 만주족이 아니라 알짜배기 동족출신 만인 관리가 출사하자 기뻐하며 모어인 만주어로 이야기했으나 이 순혈 만주족 관리가 못 알아들어서 건륭제가 상당히 실망했다는 이야기도 있다.[9]

이미 18세기 건륭제 시기에 중국을 다녀온 조선 사신들이 이렇게 만주어가 사라져가는 현상을 목격했고, 만주족이 입관후 100년이 지나니 이제는 한족과 구별할 수 없다는 기록을 남겼다. 정조 시절 베이징에 사신으로 갔다온 박지원이 남긴 열하일기에서도 조선인들이 야만인들이라고 무시하던 만주족들이 입관후에는 상당히 세련되고 예의바르다고 칭찬한 것과는 별개로 만주어를 하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2.2. 19~20세기[편집]


19세기 가경제, 도광제, 함풍제 황제들은 청나라 말기 각종 대 변혁에 시달리며 한가하게(?) 정체성 확립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청나라는 동치 연간 양무운동을 계기로 한인 신사층들이 중용되며 사실상 한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고 만어를 잘 못해도 공무 및 일상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에 이르렀으며, 설상가상으로 서태후 시대에는 아예 만한합벽의 원칙을 폐지하여 한어만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최후반에는 만주족 황제조차도 만주어를 모르는 지경이 되었다.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는 모어가 한어였으며 만주어는 청나라 소조정 시절에 열심히 배운다고 배웠음에도 거의 익히지 못해 "일어서"라는 의미의 "일리" 한마디만 겨우 했다. 청나라 멸망 이후에 만주어는 일상 언어로는 거의 쓰이지 않게 된다.

서태후 시절부터는 아예 만주족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자금성에서도 한어, 즉 중국어만 쓰였다. 윤승운 화백은 "1930년대 외국 학자가 만주를 이 잡듯이 뒤졌으나 간신히 두메산골의 노부부만 찾을 수 있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누르하치가 통탄할 노릇."이라는 논평을 남기기도 했다.

선통제의 자서전에서는 옛날 공부할때 만주어 성적이 가장 나빴다는 언급이 있으며, 또 다른 사람의 회고록에 따르면 선통제의 만주어 성적이 가장 나빴으나 부지런하게 공부해서 일상적인 회화가 가능한 수준이 되고, 또 더 공부해서 만주 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문맹이라도 모어의 일상적인 회화 정도는 전문적으로 배울 필요가 없이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익힌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때 만주족 황실에게 있어서 만주어는 이미 사실상 외국어가 되었다는 것이다.

현대 만주어의 현황은 이 기사를 참조. 불과 200여년 전만 해도 아시아 최고강대국의 공용어로 끝발 날리던 민족의 언어가 바로 지금 사라져 가는 현실… 만주족들은 그래도 청 왕조가 세워진 후 귀족 신분이 되었기 때문에 사실 현재 중국인 중에서는 교육수준이 높다고 한다. 학계나 예술계에도 만주족이 많다고. 그런데 언어와 문화는 이미 한족에 흡수된지 오래다.

만주족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신분증에 표시된 민족 표시 뿐이고, 가끔씩 아이신기오로(Aisin Gioro) 씨 같은 만주족 성이 남아 있기도 하지만, 현재는 대부분 그것도 진(金) 씨로 치환되어서 이름 보고는 구별하기 힘들다. 중국의 진(金) 씨는 조선족이 아니면 대체로 만주족이다. 현재 중국의 만주족 중에 만주어를 모어로 쓰는 사람은 100명 이내라 사실상 사멸 수순을 밟아가고 있는 소멸위기언어다.

물론 만주족이 일방적으로 중화문화와 한족에 동화되기만 한 건 아니고 만주족이 상용하던 중국어가 바로 표준중국어의 바탕이 되었다.[10] 표준중국어를 서양에서는 만다린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데, 그 일설에 의하면 청나라 시기에 이 언어를 최초로 배웠던 서양인 선교사들은 중국인들이 이 언어를 만주인들 (满大人:만다런-직역으로 만주족 어르신들)이 쓰는 언어라고 지칭한 것에서 유래했다.[11] 만주어 차용단어가 관화의 베이징 방언[12]과 동북 방언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긴 했다. 그리하여 중국 아나운서 상당수는 만주족의 본거지였던 랴오닝성-헤이룽장성 출신이 많은데, 그 이유는 여기 발음이 표준중국어와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특히 랴오닝성 선양 방언이 만주어 단어 차용도가 제일 높다고 한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출신 방송인 장위안이 바로 여기 출신이다.

일제강점기만주국에서 청년기를 보낸 박정희김일성이 만주어에 능숙했다고 알려져있기도 하지만 이건 와전이다. 왜냐면 만주에 들어선 일제의 괴뢰국 만주국에서는 표준중국어를 '만어' 즉 '만주어'라고 칭했기 때문이다.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진짜 만주어는 당시에도 이미 쓰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만주국에서 그냥 무시해 버렸다.[13] 만주국에서 말하는 만주인은 한족몽골인이었고 만주국중국어몽골어, 러시아어가 형식상 공용어였다. 만주족은 대다수가 이미 한족화되었으며 일부는 몽골인[14], 한민족[15], 둥간족[16]에 동화되어 버렸다.[17] 그 당시에도 우리가 만주어라고 지칭하는 언어는 많이 쓰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공용어 중에 하나로 지정할 필요가 없었을 듯하다.


2.3. 현대의 만주어[편집]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공산당은 민족간 평등을 내세우며, 만주 내의 여러 소수민족 유화책을 실시했다. 그 중 하나로 민족어를 행정어로 사용하는 소수민족 자치주나 자치현[18]을 세울 수 있게 되었고, 민족어로 교육하는 민족학교를 세울 수 있게 되었고, 이 때문에 여러 민족들이 민족어로 된 언어로 교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만주족은 이미 1949년 당시에 대부분의 인구가 한족에 동화되었기 때문에 민족어로 가르치는 학교를 세울 수조차 없었다. 다행히 만주어와 상당히 유사한 언어를 쓰는 시버족은 자치현을 세우고, 민족교육을 실시 할 수 있었으며, 만주어와는 달리 21세기 현재까지도 시버어는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시버어를 쓰는 시버족(Sibe, 錫伯, 병음 Xībó, 영어 Xibe)은 만주족과 혈통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대단히 가깝다. 시버족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당시에 만명 정도의 인구를 가지고 있었고, 이들도 자국어 학교를 세울 수 있었는데, 당시 모어로 만주어를 사용하는 만주족은 이 정도의 모어 화자도 없었기 때문에 자국어 학교를 세울 수가 없었다.

이 시버족은 준가르부를 토벌했던 팔기군 원정군의 후예로서, 원래 만주에 주둔하다가 신강으로 출동해 현지에 주둔하면서 현지여성과 결혼해 눌러앉다. 이들은 19세기 내내 청나라를 위해 현지의 반란세력과 싸우느라고 한때 소멸단계까지 이르렀지만 현재는 약 3만명까지 인구가 늘었다고 한다. 이들의 거주지역은 현재는 민족 본거지가 중국 서부인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자치현으로 존재한다. 이들도 퉁구스 계통이며, 몽골계인 선비족 혹은 실위의 후예이거나 선비족과 실위족의 혼혈이라는 얘기도 있다. 다만 현재에는 자기들이 절대 만주족과는 관계 없다고 주장하는데,[19] 건륭제 당시 준가르부를 토벌하며 원정으로 모조리 이주했다. 그래도 문화적이나 언어적으로 보면 만주족과 매우 가까운 민족이고 그 언어도 만주어의 방언이라는 시각이 있기 때문에 현대 만주어를 이해하기 위해 시버어가 이용되기도 한다.

만주어의 두 방언은 소멸하여 사어가 되었다.

만주어와 80%의 어휘를 공유하는 시버어는 조금 사정이 나은데, 시버어는 사용하는 화자의 수가 3만 명이 넘고, 시버어로 된 방송까지 할 만큼 일상에서의 사용 빈도가 제법 높으므로, 근시일 내에 소멸될 가능성은 낮다. 다만 시버족 젊은이들도 입말만 할 뿐 시버 문자를 익히는 사람이 드물어서 시버족 어른들은 이를 우려한다.[20]


2007년 헤이룽장성 싼자쯔(三家子) 마을에는 현재 만주어를 모국어로 배운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이곳은 북만주의 치치하얼시에 있는 곳이다. 사실 말이 좋아 대부분이지 2017년 기준으로 겨우 10명 남짓한 숫자이고, 그것도 모두 80~90대 노인들이라 그 수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영상(영어 자막) 이곳에서 시해졌던 실제 만주어 구사자와의 인터뷰. 노인과 인터뷰하는 사람은 시버족. 앞부분은 거의 표준중국어며, 인터뷰에서도 표준중국어와 만주어를 함께 쓰고 있다.[21] 중국어를 많이 들어본 사람이 듣다 보면 분명 중국어와 발음이나 성조가 전혀 다른 못 알아들을 언어가 중간에 간간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만주어이다.


2017년, 만주족 노인(왼쪽)과 시버족(오른쪽)의 대화. 사전 지식 없이 그냥 들으면 두 사람이 다른 언어를 구사한다는 사실을 잘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언어가 유사하다. 본 영상의 대화 분석은 여기를 참조.

시버어의 단어와 만주어의 단어는 비슷하긴 하나 완전히 같은 언어는 아니며, 특히 조사면에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또한 문자도 만주문을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자신들의 특유 발음에 맞추어 약간 개량한 시버문을 사용한다. 그럼에도 두 언어는 특별한 학습 없이 일부 상호 의사소통이 가능한 언어로(#), 같은 만주어군에 속해있는 현재까지 쓰이는 언어로 만주어 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한 시버어를 만주어로 구분하는지 아니면 별개의 언어로 취급하는지에 따라 만주어를 사어가 아닌 사멸위기언어로 구분하기도 한다.(이훈, 만주족 이야기)

일부 뜻 있는 만주족들이 만주어를 복원시켜 보려고 노력 중이지만 글쎄… 히브리어가 기적적으로 현대에 부활한 예도 있지만 이마저도 이디시어의 영향을 짙게 받은 발음과 아랍어와 판박이인 문법[22] 때문에, 몇몇 반시온주의 유대인들과 하레디 민족주의자들은 현대 히브리어를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에 있는 소수민족들 대부분이 현재 모어를 잊고 중국어(한어)만 사용하고 있으며, 모어를 쓰는 모국이 있는 조선족이나 몽골족 같은 경우도 조상의 모어를 잊는 경우가 많아지는 실정에 절대 전망이 밝지 않다. 게다가 문화대혁명 초반 (1966-69)을 제외하면 대체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자신들이 건국할 때 약속했던 소수민족 정체성 보호의 약속을 지켰지만, 시진핑 집권 이후 소수민족어 교육시간을 줄이게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예전에 조선족은 대학입시를 칠 때 조선어로 된 문제지로 시험을 볼 수 있었으나, 한어로만 제출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한동안 억누르고 있던 중화주의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소수자 보호에 대한 한족들이 불만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수민족이 대학갈때 가산점으로 특혜를 받는다면서 반발한 것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만주족들이 모어를 부활하려는 시도도 상당히 어려움을 겪을 듯 하다.

중국에서도 만주족 자치현의 초등학교에서는 소수문화 보호 차원에서 만주어 수업을 진행하지만 만주족 아이들의 모어도 중국어이고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는 중국어를 주로 쓰기 때문에 만주어를 대강 익히는 수준에 그친다. 게다가 중국어가 모어인 선생들[23]이 만주어를 가르치다 보니 이들이 제작한 만주어 학습 동영상 말하자면 콩글리시로 영어를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성조도 성조지만 특히 음절 하나하나 끊어 읽는 특징은 위의 만주족 노인에게는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만주어 학습자나 구사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그래도 중국이다. 중국의 몇몇 대학에는 만주어과나 만주어 과정이 설치되어 있다. 청나라 역사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익혀야 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청사 전공자들도 공부한다. 살아있는 언어로서의 만주어는 의미가 없어졌지만, 만주어를 취미나 역사 덕질용(...)으로 공부하는 사람도 많으며, 조상의 언어를 익히려는 만주족이나 조상의 제2언어를 익히려는 몽골계 중국인[24] 그리고 청나라에 관심있는 중국 역덕[25]들이 공부하기도 한다. 중국어 동영상 플랫폼인 비리비리 또는 샤오홍슈를 보면 만주어 강의가 있으니, 중국어에 능통하면 온라인으로도 공부할 수 있다.

그 밖에 몽골의 울란바토르 대학에 외국으로는 유일하게 만주어학과가 있지만[26] 공부하는 사람은 영 적다.

한국에서도 일부 대학에서 기초 만주어 과목을 개설하고 있고, 미국이나 영국의 명문대학들에도 개설된 만주어 관련 과목들이 있다.

사실 소수의 지배민족이 다수의 피지배민족에게 언어적으로 동화되는 현상은 전세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만주족만의 현상은 아니다. 중근세 이란의 튀르크계 지배층 또한 만주족과 비슷한 경우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데, 이는 지배민족이 소수이더라도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매우 우월한 경우이다.[27][28] 만주족의 경우는 만주과 중국이 한반도와 매우 가까운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눈에 뜨이는 현상일 뿐이다.


3. 학술 언어로서 높은 위상[편집]


현대에 청사 연구자라면 만주어 사료를 읽어낼 능력은 갖춰야 한다.[29] 청대에 만주어로 작성된 엄청난 양의 기록 및 공문서들이 아직도 중국과 대만에 남아 있고, 이들 문헌의 상당수는 아직도 번역, 해독이 되어 있지 않았으며, 청사는 물론 중앙아시아사[30]와 한국사 연구[31]에도 필요한 언어라서 문헌어, 학술어로서 앞으로도 계속 존속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자들의 수요는 중국뿐만 아니라 아니라 한국에도 꽤 있어서 심지어 만한사전(만주어-한국어)까지 나와있을 정도다. 그리고 현대 만주족 또한 만주 샤머니즘 제사[32]나 유교 제사[33]를 지낼 때 만주어를 쓰기도 한다.


3.1. 만주어 문헌의 재발견[편집]


청나라는 만주어 기록과 한문기록을 동시에 남겼기에 청나라 중반까지는 만주어 사료도 방대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만주어 자료를 단순 한문기록의 번역으로 봐서 소홀히 하였다. 특히 민국 초반 청사고를 집필할 때, 대부분의 학자들이 만주어에 능통하지 못했고, 한문사료만 참고하여 청나라 역사를 썼는데,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만문과 한문기록의 차이에 주목해 만주어 사료들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20세기 후반부터 만주어와 비슷한 시버어를 쓰는 시버족들 연구자들이 중국의 역사 연구기관에 대거 채용되어 건륭제 시기까지 남은 만주어 사료들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신청사(新淸史)라고 한다.

이렇게 학술언어로서 만주어는 오히려 과거보다 위상이 크게 올라갔다. 이는 청조를 바라보는 학계의 시선과 연관이 있다. 과거에는 이민족이 세웠으나 한족에 동화된 중화제국으로서의 평가가 일반적이었으나, 만주어와 만주어 사료에 대한 연구가 심화되면서 청나라만의 독자적인 면이 많이 부각되어 이것이 이른바 '신청사'라는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 한족이 중심이 된 현 중국정부도 한족을 지배했던 전시대인 청나라와 그 주체민족인 만주족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차원에서 만주어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사실 전문가들의 연구나 대중매체 속의 만주어 재현을 통해 흔히 접할 수 있는 만주어는 문헌자료가 풍부하게 남아있는 청대 만주어이고, 북방 관화의 영향을 역수입한 현대 만주어는 청대와는 상당히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외국 사극에 비유하면 윌리엄 1세영국 정복을 사극으로 묘사하며 현대 영어가 아니라 중세 노르만어, 프랑스어, 라틴어로 대본을 짜거나 무굴 제국 초대 황제 바부르의 인도 정복을 사극으로 묘사하며 힌디어가 아니라 근세 차가타이어, 근세 페르시아어로 대본을 짜는 셈인데, 당연히 현대어와는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만주어의 근연관계에 있는 시버어도 현대에 와서는 만주어와 상당히 달라져서 전문적인 통번역까지는 아니어도 상호간 진입장벽이 생긴 마당에 당연한 일. 자세한 설명은 이 영상을 참조.


4. 한국의 만주어 연구[편집]


고려-조선은 여진족-만주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안보상, 경제상의 이유로 여진어나 만주어를 구사하는 역관을 양성했다. 그리하여 자체 관련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고려와 조선에서는 노걸대라고 하여 역관들의 외국어 교재를 마련하여 교육했는데 여기에 여진족/만주족의 노걸대도 있기 때문이다. 노걸대에는 외국 글자 옆에 한글로 외국어의 음이 다 적혀 있다.[34] 만주어 연구하는 학자들 입장에서는 표음문자로 당대 음을 고스란히 표기해놓은 기록이 현전하니 고마울 따름. 또한 중국 만주 지역의 치치하얼(치치가르), 하얼빈(하르빈) 등 일부 지명에는 만주어가 한어로 음차된 형태로나마 현대에도 남아있다.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서는 알타이어학 연구를 위하여 만주어 수업을 학부 전공선택 과목으로 개설하고 있다. 대학원생도 가끔 연구를 위해 수강한다. 그리고 언어학과 관련된 학과들, 동아시아사 연구 외에도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만주어 수업을 듣는다. 문자를 눈에 익히기 위한 연습 교재로 청대에 제작된 목판본 문헌을 스캔해서 사용하는데 목판의 빈번한 인쇄로 글씨의 가장자리가 흐릿해지거나 점이 떨어져 나간(심지어 쥐나 좀벌레로 인한 피해도) 경우가 있어 해석에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있다. 다만 만주어의 음성학에 친숙한 사람이라면 오류를 범할 가능성은 낮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은 영화 최종병기 활의 만주어 자문을 제공하기도 했고 일반인(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은 유목민족사, 명청사학자들)을 대상으로 가끔씩 강좌를 열고 있다. 최종병기 활 때문에 만주어 강좌의 인기가 오르기도 했다.(#)

소멸한 언어, 만주어를 연구하는 이유는?(#)


4.1. 한국에서 공부하는 법[편집]


소수언어인만큼 배울 수 있는곳은 거의 없고 혼자서 독학을 해야하는데 한국 교재, 일본 교재, 영어 교재, 중국어 교재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만주어를 자습할 수 있는 자료로는 박문사에서 나온 역주 청어 노걸대신석과 집문당에서 나온 만주어 대사전 등이 있다. 다만 권당 가격이 5만원, 10만원씩 하는 고가템에 파는 곳도 거의 없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 만한사전을 출간하였다.(#)

이글루스역사 밸리에서 활동했던 블로거 길공구(현 네이버 블로그 활동)가 만주어 덕후라 중세 북방민족사와 더불어 노걸대를 비롯한 만주어 학술게시물 역시 자주 올리는 편이디.

중국에서 발행되는 만주어 관련 자료는 상당히 많고, 최신 연구성과를 반영되어 업데이트되어 있다. 중국에서 발행되는 만주어 교재는 만주족 자치현에서 가르치는 초등학교용 입문용에서부터 대학에서 가르치는 고급, 전공용까지 모두 있다. 비리비리와 같은 중국의 동영상 플랫폼에는 만주어 강좌도 있다. # 중국어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구해서 공부해보는 것도 좋다.

상위 문단 인터뷰 기사(소멸한 언어, 만주어를 연구하는 이유는?)에 등장한 사람이 저술한 초급 만주어라는 서적이 있으며 기초지식을 쌓기에 좋은 책이다. 하지만 만주문자가 인쇄체의 한계로 깨져있어서 이 부분은 따로 배우기를 권하고 문법은 여러 파트로 나뉘어져있어서 한번에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만주어 문법은 매우 쉬우니 작문연습도 많이 해보자). 회화파트는 정말 잘 되어있고 삼전도비 전문이나 팔세아 등이 수록되어있다.

이 외에도 "만주어 문법 자료 집성"과 "청어노걸대 신석" 등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 내는 만주학총서 시리즈가 있다. 황명으로 작성한 딱딱한 공문서 같은 것만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구어체가 잘 살아있는 삼번의 난 참전수기, 몽골 초원 너머로 사행을 갔다온 이번원 관료의 견문록, 만주의 시조신화나 만주족들이 만주어로 번역하여 돌려보던(!) 희곡 서상기의 만한합벽본 등도 번역했다.

일본 서적으로는 츠마가리 토시로(津曲敏郎)의 "만주어 입문 20강"과 카와치 요시히로(河内良弘)의 "만주어 문어 입문"이 있다. 둘 다 일본서적답게 체계적으로 알기쉽게 설명해놓았는데 전자는 설명이 많고 후자는 품사별로 그 특징을 서술해놓았다. 다만 만주어 입문 20강은 연습문제의 해답이 없어서(...) 옥의 티라고 볼 수 있다.

영어 서적으로는 "A Colloquial Manchu Grammar"을 추천한다. 1892년에 출판된 좀매우 오래된 책이지만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가 저술한 "A Manchu Grammar"도 있는데 위키북스에서 직접 볼 수 있다.


5. 한국어에서 자주 쓰이는 외래어 단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한국어의 외래어/기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발음[편집]


  • 단모음 : a, e, i, o, u, ū[35]
  • 장모음 : oo, ii
  • 이중모음 : ai, ei, oi, ui, ao, eo, io, uo[36]
  • 삼중모음 : ioi
  • 로마자 'e'로 표시되는 모음의 경우'/ə/'로 발음한다.
  • '-ng' 바로 뒤에 'g'가 오는 경우 'g'가 비음화되어 연구개 비음이 된다. ex) wanggiyan(왕얀), ningguta(닝우타) 등.[37]
  • ye는 "/je/"로 발음된다.
  • ioi는 "/y/"로 발음된다.
c, j는 i가 뒤에 붙을경우 무성 권설 파찰음 [ʈ͡ʂ]가 아닌 무성 치경구개 파찰음 [t͡ɕ]으로 발음된다,[38]
s는 i가 후행할경우 무성 치경 마찰음 [s]가 아닌 치경구개 마찰음 [ɕ]으로 발음된다.

중국어 관화의 영향으로 현대에는 발음이 많이 바뀌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만주어 발음들은 대체로 중국어의 영향이 커지기 전, 중국에서는 중근고한어를 쓰던 시절의 발음으로 현대 만주어와는 차이가 크다.#


7. 문자[편집]


만주 문자를 사용한다. 문자의 순서는 청문계몽(淸文啓蒙)을 따랐다. 만주 문자 참조.


7.1. 전사법[편집]


현대에 와서는 만주문자를 쓰기도하지만 로마자로 전사하는 경우도 많은데 크게 묄렌도르프(Möllendorff) 전사법과 압카이(Abkai) 전사법이 있다. 대한제국 시기 조선에 있었던 그 묄렌도르프 맞다.

a b c ts' d e f g h i j k l m n o p r s š t u ū w y dz

차이는 다음과 같다
묄렌도르프압카이
šx
cq
ūv

한편, 청나라 강희제의 황9자이자 옹정제가 극혐(...)하던 황8자당의 행동대장이던 서스허 아이신기오로 윤탕(胤禟)이 묄렌도르프보다 150년 앞서 만주어의 로마자 전사법을 만들어 써먹었다고 전해진다. 순치제 시절부터 황궁을 들락거리며 러시아 제국와의 외교에도 기여하던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만주어는 일찍부터 서양에도 상당히 알려져 있었는데, 옹정제의 감시에 시달리던 윤당이 포르투갈 출신 선교사의 도움으로 간단한 만주어의 로마자 전사법을 만들어 황8자 아이신기오로 윤사와 편지를 주고 받다가 옹정제에게 걸려서 탈탈 털렸다고 한다. 강희제 시절부터 자금성에는 예수회 선교사들이 심심찮게 들락거리며 황자들 역시 서양 문물을 접했기에 윤사와 윤당을 감시하는 시위들이야 무슨 내용인지 몰라도 특히나 철두철미한 옹정제는 로마자 표기를 직접 유심히 보면 내용을 충분히 해독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암호나 마찬가지인 전사법이 오늘날에도 남아있다면 청말민초의 근고한어와 유사해진 만주어도 아닌 청나라 초반기의 만주어를 로마자로 표기한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겠지만, 암호문을 작성한 주동자들은 옹정제에 의해 모조리 개발살이 났으므로 기록이 남지 못했다.


8. 회화[편집]



8.1. 기초 회화[편집]


si saiyūn - 안녕/안녕하세요
baniha - 감사합니다
ume antaharara - 천만에요
giljaki - 죄송합니다
bi - 네
akū - 아니요
inu - 그렇습니다
waka - 아닙니다
bi ~ se oho. 나는 ~살입니다.
angga isi 맛있게 드세요, 잡수세요, 드세요


9. 문법[편집]



9.1. 모음조화[편집]


만주어의 모음조화는 몽골어만큼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는다. 그리고 일부 명사는 모음조화에 따라 성별이 구분될 때가 있다.[39]
  • 남성 모음 : a, o, ū
  • 여성 모음 : e
  • 중성 모음 : i, u


9.2. 동사[편집]



9.2.1. 동사의 활용 일람[편집]


  • ara 써라
  • arambi 쓰다
  • arambio? 쓰는가? 씁니까?
  • arame 쓰며
  • araha 썼다(종결형); 썼는
  • arahai 쓰는 채로
  • arara 쓰는, 쓴; 쓰마, 쓰겠다
  • ume arara 쓰지마라, 쓰지말거라[40]
  • araci 쓰면, 쓴다면
  • araki 쓰고싶다[41]; 쓰자
  • arafi 쓰고
  • arambihe 쓰고있었다
  • arahabi 썼다(결과 지속)
  • araha bihe 썼었다
  • araha bici 썼었다면
  • aracibe 쓰더라도
  • aracina 쓰거라, 쓰시오
  • arakini 쓰게 하라; 쓰고 싶다
  • arambime 쓰면서
  • arambifi
  • aranggala 쓰기 전에
  • arambumbi 써주다
  • arambubumbi
  • arahangge
  • ararangge
  • arahale
  • ararale
  • araralame
  • ararakū 쓰지 않는; 쓰지 않는다
  • arahakū 쓰지 않은; 쓰지 않았다
  • ararakū bihe 쓰지 않았다
  • arahakūbi 쓰지 않았다
  • arahakū bihe 쓰지 않았었다


9.2.2. 시제[편집]


만주어의 시제는 동사의 어미에 의해 결정된다. 동사는 어근과 어미로 구성되며 어미는 다음과 같이 변한다.
  • 평서문 : 어근 + mbi
te-mbi 산다, 살다
  • 과거형 : 어근 + ha/he/ho, ka/ke/ko
te-he 살았다
  • 과거완료 : 어근 + habi/hebi/hobi, kabi/kebi/kobi
te-hebi 살았었다
  • 미래형 : 어근 + ki
만주어의 미래형은 일본어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ki를 사용해 "~하고싶다", "~할 것이다"와 같은 의지형으로 미래를 나타낸다.
te-ki : 살고싶다


9.2.3. 용법[편집]


  • 의문형 : 어근 + mbi + o
te-mbi-o? 사느냐?
  • 부정(否正) : ume 어근 + ra/re/ro
ume te-re 살지말아라
  • 연체형
# 어근 + ra/re/ro
te-re 사는
# 어근 + fi
te-fi 살고
# 어근 + me
te-me 살며
# 어근 + ha/he/ho, ka/ke/ko
te-he 살았던


9.2.4. 활용이 없는 동사[편집]


  • akū 없다 (akūn 없는가)
  • joo 그만두다


9.3. 조동사[편집]


  • ombi 계열
oci : ~라면
siyan lo[42] sin lo i orhoda oci sain 신라의 인삼이라면 좋다
ocibe : ~이라도
ajige ocibe amba ocibe ehe 작은것도 큰것도 나쁘다
ohode : ~하면
ofi : ~여서
ojorode : ~하니
ohode : ~했다면
  • sembi 계열
seme : ~라며; ~라 하여도
"bi jeterakū" seme jilidafi "나는 먹지않겠다"라며 화내고
sere : ~라는
solho sere gurun asiya i gurun. 한국이라는 나라는 아시아의 나라이다
serengge : ~라함은
solho serengge gurun i gebu 한국이라함은 국가의 이름이다
serede : 말할 때에
sehede : 말했다면; 말했으니
  • bimbi 계열
bihe : ~였다
amban bihe 신하였다
bime : 그리고
bicibe : ~이지만
bihebi : ~이었다
bisirede : 있다면
bihede : 있었다면, 있었을 때


9.4. 형용사[편집]


형용사는 일본어한국어와 달리 활용이 없는 불변화사(不變化詞)이다. 그리고 만주어의 형용사는 명사와 자주 혼용된다.
  • sakda niyalma
  • 늙은 사람

명사, 형용사, 술어의 위치에 모두 올 수 있다
  • sain ehe be tuwambi. (명사)
  • 좋음과 나쁨을 보다
  • sain niyalma (형용사)
  • 좋은 사람
  • usin huweki, ba sain. (술어)
  • 밭은 비옥하고 땅은 좋다.


9.5. 명사[편집]



9.5.1. 명사화[편집]


단어의 어근에 어미가 붙어서 명사로 변한다. 아래는 그 명사화(名詞化)의 예시이다.

*-n이 붙는 경우
dailan(토벌) - dailambi(토벌하다)
참고로 동사의 어근에 -n을 붙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명사화이다. 물론 아래와 같은 예외들도 많다.

*-gan, -gen, -gon, -han, -hen, -hon이 붙는 경우
nirugan(그림) - nirumbi(그리다)

*-ku, -kū가 붙는 경우
bodo(주판) - bodombi(꾀하다, 회책하다)

*-cun이 붙는 경우
buyecun(사랑) - buyembi(사랑하다) - buyecuka(귀여운, 사랑스러운)

*-fun이 붙는경우
ijifun(빗) - ijimbi(빗질하다)

*-si가 붙는 경우
tacisi(학생) - tacimbi(배우다)

*-tun이 붙는 경우
deyetun(비행기) - deyembi(날다)
aššatun(엔진) - aššambi(움직이다)

*-VnggV
형용사와 명사 둘 다 사용되며 형용사일때는 ~하는 이라는 뜻이고 명사일때는 ~한 것 이라는 뜻이다.
generengge(가는, 가는 것) - genembi(가다)
arahangge(만든 것) - arambi(만들다)


9.5.2. 명사의 복수형[편집]


명사에 특정 어미를 붙여 복수를 나타낸다. 이때 명사의 -n, -le 등은 탈락되는 경우가 많다.

*-sa/-se/-so 계열
gucu(친구) - gucuse(친구들)
monggo(몽골인) - monggoso(몽골인들)
amban(신하) - ambasa(신하들)
beile(패륵) - beise(패륵들)

*-ta/-te 계열
ahūn(형) - ahūta(형들)
deo(아우) - deote(아우들)

*-si 계열
omolo(손자) - omosi(손자들)
haha(남자) - hahasi(남자들)
hehe(여자) - hehesi(여자들)

*-ri 계열
mafa(조상님, 할아버지) - mafari(조상님들)

*- se
외래어의 경우 명사 뒤에 se를 띄어쓰기해서 복수를 나타낸다
jiyanggiyūn(장군) - jiyanggiyūn se(장군들)
wang(왕) - wang se(왕들)


9.6. 대명사[편집]



9.6.1. 인칭대명사[편집]


주격[43]소유격[44]목적격[45]여위격[46]탈격[47]
1인칭
단수
ᠪᡳ
비 bi
ᠮᡳᠨᡳ
미니 mini
ᠮᡳᠮᠪᡝ
밈버 mimbe
ᠮᡳᠨᡩᡝ᠋
민더 minde
ᠮᡳᠨᠴᡳ
민치 minci
1인칭
복수 1
[48]
ᠪᡝ
버 be
ᠮᡝᠨᡳ
머니 meni
ᠮᡝᠮᠪᡝ
멈버 membe
ᠮᡝᠨᡩᡝ᠋
먼더 mende
ᠮᡝᠨᠴᡳ
먼치 menci
1인칭
복수 2
[49]
ᠮᡠᠰᡝ
무서 muse
ᠮᡠᠰᡝᡳ
무서이 musei
ᠮᡠᠰᡝᠪᡝ
무서버 musebe
ᠮᡠᠰᡝᡩᡝ᠋
무서더 musede
ᠮᡠᠰᡝᠴᡳ
무서치 museci
2인칭
단수
ᠰᡳ
시 si
ᠰᡳᠨᡳ
시니 sini
ᠰᡳᠮᠪᡝ
심버 simbe
ᠰᡳᠨᡩᡝ᠋
신더 sinde
ᠰᡳᠨᠴᡳ
신치 sinci
2인칭
복수
ᠰᡠᠸᡝ
숴 suwe
ᠰᡠᠸᡝᠨᡳ
숴니 suweni
ᠰᡠᠸᡝᠮᠪᡝ
쉄버 suwembe
ᠰᡠᠸᡝᠨᡩᡝ
숸더 suwende
ᠰᡠᠸᡝᠨᠴᡳ
숸치 suwenci
3인칭
단수

이 i
ᡳᠨᡳ
이니 ini
ᡳᠮᠪᡝ
임버 imbe
ᡳᠨᡩᡝ᠋
인더 inde
ᡳᠨᠴᡳ
인치 inci
3인칭
복수
ᠴᡝ
처 ce
ᠴᡝᠨᡳ
처니 ceni
ᠴᡝᠮᠪᡝ
첨버 cembe
ᠴᡝᠨᡩᡝ᠋
천더 cende
ᠴᡝᠨᠴᡳ
천치 cenci


9.6.2. 지시대명사[편집]


단수복수
ᡝᡵᡝ
ere 어러
이(것)
ᡝᠰᡝ
ese 어서
이(것)들
ᡨᡝ᠋ᡵᡝ
tere 터러
그(것)
ᡨᡝ᠋ᠰᡝ
tese 터서
그(것)들

uba (ᡠᠪᠠ) 이곳
tuba (ᡨᡠᠪᠠ)저곳


9.6.3. 의문사[편집]


누가 무엇 어디 언제 어떤 어떻게 얼마나
ya- 계열ᠶᠠ ᠶᠠ ᠶᠠᠪᠠ ᠶᠠ ᡝᡵᡳᠨᡩᡝ᠋
야 ya야 ya야바 yaba야 어린더 ya erinde
ai-계열 ᠠᡳ ᠠᡳ᠋ᠪᡳ ᠠᡳ᠋ᠨᡠ ᠠᡳ᠋ᠴᡳ
아이 ai아이비 aibi아이누 ainu아이치 aici
그 외ᠸᡝ ᠠᠪᠠ ᠠᡨ᠋ᠠᠩᡤᡳ ᠠᡩ᠋ᠠᡵᠠᠮᡝ ᡠᡩᡠ᠋
워 we아바 aba아탕이 atanggi아다라머 adarame우두 udu

참고로 표준 중국어와 비슷하게 의문사가 오는 경우 동사의 기본형에 o를 붙일 수 없다.
*ai be arambi? (O)
*ai be arambio? (X)

weci : 누구들
antaka : 어떠한가
absi : 어떻게


9.7. 격조사[편집]


  • 주격 : ø[50] (~이/가)
manju jušen i enen 만주족은 여진족의 후예이다
manju oci jušen i enen 만주족이라면 여진족의 후예이다
manju serengge jušen i enen 만주족이라 함은 여진족의 후예이다
  • 속격 : i (~의)[51], ni[52]
han i boo 칸의 집
daicing ni hūwangdi 대청국의 황제
  • 대격 : be (~을/를)
damtun be waki. 인질을 죽이자.
  • 여위격 : de (~에, ~에서, ~에게)
hoton de genembi. 성(城)에 간다.
  • 도구격 : i (~(으)로)[53]
suhe i efujembi. 도끼로 부수다.
  • 탈격 : ci (~(으)로부터)
coohiyan i wang ging ci jihe. 조선의 왕경으로부터 왔다.


9.8. 부사[편집]


  • 그대로 부사가 되는 경우
andala 도중에
ambula 매우
  • i가 뒤에 오는 경우
cun cun i 점점
giyan i 마땅히
  • seme가 뒤에 오는 경우
lak seme 딱 (~한)


9.9. 후치사[편집]


dere ~겠지
gese ~처럼
adali ~같이; ~할 것 같다
ebsi ~이래로


9.10. 관용어[편집]


  • 동사어근+ci acambi ~해야 마땅하다
  • 동사어근+ci ombi ~가 된다
  • ~be dahame ~에 따르면
  • 인칭대명사+be tuwaci 보아하니


10. 만주어 명사 목록[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인터넷상에서 검색할 수 있는 사전류로는 일본의 대학에서 운영하는 만주어 사전과 중국의 민간에서 운영하는 아나쿼가 있다. 영어나 프랑스어가 지원되는 buleku도 참고.

아나쿼와 만주어 사전은 중국어일본어로 지원되기 때문에 번역기를 사용하거나 해당 언어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한다.

10.1. 농사[편집]


  • 우신(ᡠᠰᡳᠨ, usin, /u.ɕin/):
  • 무커이 우신(ᠮᡠᡴᡝᡳ ᡠᠰᡳᠨ, mukei usin, /mu.kʰəɪ̯|u.ɕin/): 물밭 >

출처


10.2. 지명[편집]


만주어에서 유래한 중국 지명

10.2.1. 몽골[편집]


  • 툴러르기 몽오(ᡨᡠ᠋ᠯᡝᡵᡤᡳ ᠮᠣᠩᡤᠣ, Tulergi Monggo /tʰu.lər.ci|mɔŋ.ŋɔ/): 북몽골(외몽골), 원래 뜻은 북몽골이라는 뜻으로 청나라에 비우호적이었던 할하 부족과 오이라트 부족이 살다가 건륭제 연간에 느슨한 속국 형태로 복속되었다.
  • 도르기 몽오(ᡩᠣᡵᡤᡳ ᠮᠣᠩᡤᠣ, Dorgi Monggo /tɔr.ci|mɔŋ.ŋɔ/): 남몽골(내몽골)로 몽골어로는 같은 뜻인 옴노트 몽골(ᠡᠮᠦᠨ᠎ᠡ ᠳᠦ ᠮᠣᠩᠭᠣᠯ, Өмнөд Монгол)이라고 한다. 옴노트 몽골은 내(內)칼카 5부(바린, 자루트, 옹기라트, 바요트, 우지예트), 잘라이트, 두르베트, 나이만, 모밍간, 울라트, 카라친, 우주무친, 차하르, 투메드, 오르도스 등의 부로 이루어져 있었다.


10.2.2. 도시[편집]


  • 닝우타(ᠨᡳᠩᡤᡠᡨ᠋ᠠ, Ningguta /ɲ̟iŋ.ŋu.tʰa/): 영고탑(오늘날 헤이룽장성 영안시)
  • 묵던(ᠮᡠᡴᡩᡝ᠋ᠨ, Mukden /muqʰ.tən/): 청나라의 첫 수도이자 첫 황궁인 선양고궁이 위치해 있는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의 옛 이름. 버드나무 울타리를 두른 도시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한자로는 봉천(奉天). 194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만주어식인 묵던(Mukden)으로 표기한 영문 지도가 주로 쓰였다.
  • 치치가르(ᠴᡳᠴᡳᡤᠠᡵ, Cicigar /t͡ɕʰi.t͡ɕʰi.qar/): 치치하얼.
  • 하르빈(ᡥᠠᡵᠪᡳᠨ, Harbin /xar.pin/): 하얼빈
  • 옌던(ᠶᡝᠨᡩᡝ᠋ᠨ, Yenden /jen.dən/): 흥경, 허투알라, 현 랴오닝성 푸순시 신빈 만주족 자치현 서쪽
  • 어르더무(ᡝᡵᡩᡝ᠋ᠮᡠ, Erdemu /ər.tə.mu/): 중국 허베이성 청더시의 옛 이름. 청대의 여름 별궁인 피서산장이 위치했던 곳이다.
  • 거문 허천(ᡤᡝᠮᡠᠨ ᡥᡝᠴᡝᠨ, Gemun Hecen /kə.mun|xə.t͡ʃʰən/): 베이징. 다만 '거문 허천' 자체는 '도성'을 뜻하는 단어로(Gemun=수도 / Hecen=도시 혹은 성) 베이징에 대한 고유명사는 아니다. 베이징을 그대로 음역한 명칭은 버깅(ᠪᡝᡤᡳᠩ, Beging /pə.kiŋ/)이다.
  • 왕 깅(ᠸᠠᠩ ᡤᡳᠩ, Wang Ging /waŋ|ciŋ/): 왕경(王京). 현대 표준어처럼 구개음화 되기 이전인 명청시대 관화를 그대로 만주 문자로 쓴 것이다. 명청시대 관화발음으론 왕 낑 정도로 발음했을 것이다.
  • 하이 션 와이(ᡥᠠᡳ᠋ᡧᡝᠨᠸᠠᠢ / Haišenwai):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한자 표기인 해삼위(海參崴).


10.2.3. [편집]


  • 아린(ᠠᠯᡳᠨ, Alin):
  • 골민 샹얀 아린(ᡤᠣᠯᠮᡳᠨ ᠠᠯᡳᠨ, Golmin Šanggiyan Alin /qɔl.min|ʃaŋ.ŋjan|a.ʎ̟in/):[54] 장백산(백두산)
  • 아이신 아린(ᠠᡳ᠋ᠰᡳᠨ ᠠᠯᡳᠨ, Aisin Alin /aj.sin|a.ʎ̟in/): 흥안령
  • 일저하리 아린(ᡳᠯᠵᡝᡥᠠᡵᡳ ᠠᠯᡳᠨ, Iljehari Alin /il.t͡ʃə.χa.ri|a.ʎ̟in/): 소흥안령 산맥
  • 암바 힝안 아린(ᠠᠮᠪᠠ ᡥᡳᠩᡤᠠᠨ ᠠᠯᡳᠨ, Amba Hinggan Alin/am.pa|xiŋ.ŋan|a.ʎ̟i̯n/): 대흥안령 산맥
  • 시흐처터 아린(ᠰᡳᡥᠴᡝᡨ ᠠᠯᡳᠨ): 시호테알린 산맥
  • 암바 샹얀 아린(ᠠᠮᠪᠠ ᡧᠠᠩᡤᡳᠶᠠᠨ ᠠᠯᡳᠨ, Amba Šanggiyan Alin /am.pa|ʃaŋ.ŋjan|a.ʎ̟in/): 태백산


10.2.4. [편집]


  • 우라(ᡠᠯᠠ, Ula):
  • 숭아리 우라(ᠰᡠᠩᡤᠠᡵᡳ ᡠᠯᠠ, Sunggari Ula /suŋ.ŋa.ri|u.la/): 송화강(쑹화강)
  • 사하랸 우라(ᠰᠠᡥᠠᠯᡳᠶᠠᠨ ᡠᠯᠠ, Sahaliyan Ula /sa.χa.ʎ̟i̯jan|u.la/): 아무르강(흑룡강)
  • 무단 비라(ᠮᡠᡩ᠋ᠠᠨ ᠪᡳᡵᠠ, Mudan Bira /mu.tan|pi.ra/) 또는 후르하 비라(Hurha Bira): 무단강(목단강)
  • 후너허 비라(ᡥᡠᠨᡝᡥᡝ ᠪᡳᡵᠠ, Hunehe Bira /xu.nə.xə|pi.ra/): 훈허강(혼하)
  • 야루 우라(ᠶᠠᠯᡠ ᡠᠯᠠ, Yalu ula /ja.lu|u.la/): 압록강
  • 투먼 우라(ᡨᡠ᠋ᠮᡝᠨ ᡠᠯᠠ, Tumen Ula /tʰu.mən|pi.ra/): 두만강(토문강)


10.2.5. [편집]


  • 사하랸 우라 앙아 하다(ᠰᠠᡥᠠᠯᡳᠶᠠᠨ ᡠᠯᠠ ᠠᠩᡤᠠ ᡥᠠᡩᠠ, Sahaliyan Ula Angga Hada /sa.χa.ʎ̟i̯jan|u.la|aŋ.ŋa|χa.ta/)[55]: 사할린


10.3. 인명[편집]


  • 타이주(ᡨ᠋ᠠᡳ᠋ᡯᡠ, Taidzu /tʰaɪ̯.t͡su/): 태조(太祖)
  • 타이중(ᡨ᠋ᠠᡳ᠋ᡯᡡᠩ, Taidzung /tʰaɪ̯.t͡suŋ): 태종(太宗)
  • 스주(ᡧᡳᡯᡠ, Šidzu /ʂɨ.t͡su/): 세조(世祖)
  • 셩주(ᡧᡝᠩᡯᡠ, Šengdzu /ʃəŋ.t͡su/): 성조(聖祖)
  • 스중(ᡧᡳᡯᡠᠩ, Šidzung /ʂɨ.t͡suŋ/): 세종(世宗)
  • 까오중(ᡬᠠᠣᡯᡠᠩ, G'aodzung /kɑʊ̯.t͡suŋ/): 고종(高宗)
  • 진중(ᡰᡳᠨᡯᡠᠩ, žindzung /ʐin.t͡suŋ/): 인종(仁宗)
  • 쇼완중(ᠰᡳᠣᠸᠠᠨᡯᡠᠩ, Siowandzung /ɕiɔwän.t͡suŋ/): 선종(宣宗)
  • 원중(ᠸᡝᠨᡯᡠᠩ, Wendzung /wən.t͡suŋ/): 문종(文宗)
  • 무중(ᠮᡠᡯ᠊ᡠ᠊ᠩ, Mudzung /mu.t͡suŋ/): 목종(穆宗)
  • 더중(ᡩᡝ᠋ᡯᡠᠩ, Dedzung /tə.t͡suŋ/): 덕종(德宗)
  • 아이신 교로(ᠠᡳ᠋ᠰᡳᠨ ᡤᡳᠣᡵᠣ, Aisin Gioro /ɑɪ̯.ɕin.ki̯ɔ.rɔ/)
  • 누르하치(ᠨᡠᡵᡥᠠᠴᡳ, Nurhaci /nur.χɑ.t͡ɕʰi/)

만주족은 점차 한화하면서 이름도 만주어가 아니라 한어식으로 돌림자를 넣어가며 짓기 시작했기 때문에 명청교체기 이후의 만주어 인명은 대개 한어식 발음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청 황족의 경우 강희제의 후손들부터는 모두 한족식 돌림자가 있어 항렬을 파악하기에 용이하다. 예를 들어 도광제의 6황자 공친왕 이힌은 한국식 독음 '혁흔' 또는 한어식 독음 '이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렇게 서양에 알려진 만주인들의 서양 문자 표기는 대개 근고한어 독음과 유사한 만주어식 발음이 아닌 현대 표준중국어식 발음에 가까워서 인명 표기에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56] 아편전쟁기의 만주족 대신인 키샨[57]의 경우 일부 서적에서는 치샹이라는 구개음화한 한어식 이름으로 표기될 정도로 만주족 인명 표기에 있어 일관성은 거의 없다. 다만 만주족들 중에서도 만주에 거주하며 전통을 잘 지킨 이들은 계속해서 만주식으로 이름을 짓기도 했다.


10.4. 세력명[편집]


※ 구룬(Gurun)은 만주어로 '국가(國)'라는 뜻이다. 그래서 아이신 구룬(금국), 다이칭 구룬(대청국)이라고도 한다.
  • 주션(ᠵᡠᡧᡝᠨ, Jušen /ʤuʃən): 여진
  • 아이신 구룬(ᠠᡳ᠋ᠰᡳᠨ ᡤᡠᡵᡠᠨ, Aisin Gurun /aɪ̯sin kurun): 금나라
  • 아마가 아이신 구룬(ᠠᠮᠠᡤᠠ ᠠᡳ᠋ᠰᡳᠨ ᡤᡠᡵᡠᠨ, Amaga Aisin Gurun/amaka aɪ̯sin qurun): 후금
  • 다이칭 구룬(ᡩᠠᡳ᠋ᠴᡳᠩ ᡤᡠᡵᡠᠨ, Daicing Gurun /taɪ̯.t͡ɕʰiŋ|ku.run/): 대청
  • 다이랴오 구룬(ᡩᠠᡳ᠋ᠯᡳᠶᠣᠣ ᡤᡠᡵᡠᠨ, Dailiyoo Gurun /taɪ̯.lijao.ku.run/): 대요
  • 다이밍 구룬(ᡩᠠᡳ᠋ᠮᡳᠩ ᡤᡠᡵᡠᠨ, Daiming Gurun, /taɪ̯.miŋ|ku.run/): 대명
  • 니칸(ᠨᡳᡴᠠᠨ, Nikan, /ni.qʰan/): 한족[58]
  • 푸하이(ᡦᡠᡥᠠᡳ, Puhai /pʰu.χaɪ̯/): 발해
  • 모호오(ᠮᠣᡥᠣᠣ, Mohoo /mɔ.χaɔ/): 말갈
  • 차오햔(ᠴᠣᠣᡥᡳᠶᠠᠨ, Coohiyan /t͡ʃʰaɔ.xijan): 조선
  • 솔호(ᠰᠣᠯᡥᠣ, Solho /sɔl.χɔ/), 솔고(ᠰᠣᠯᡤᠣ, Solgo /sɔl.qɔ/): 고려[59], 한국 (현재 한국을 솔호로 표기하기도 한다.)
  • 몽오(ᠮᠣᠩᡤᠣ, Monggo /mɔŋ.ŋɔ/): 몽골
  • 다이 유완 구룬(ᡩᠠᡳ ᠶᡠᠸᠠᠨ ᡤᡠᡵᡠᠨ): 원나라
  • 오로스 구룬(ᠣᡵᠣᠰ ᡤᡠᡵᡠᠨ, Oros /ɔ.rɔs|kurun/): 러시아
  • 슌 다 구룬(ᡧᡠᠨ ᡩᠠ ᡤᡠᡵᡠᠨ, Šun da Gurun /ʃun da kurun/), 오지 구룬(ᠣᡯᡳ ᡤᡠᡵᡠᠨ, Odzi Gurun /ɔt͡si kurun/): 일본, 왜국
  • 료 쿄 구룬(ᠯᡳᠣ ᡤᡳᠣ ᡤᡠᡵᡠᠨ, Lio Kio Gurun): 류큐 왕국
  • 카작 구룬(ᡴᠠᡯᠠᡴ ᡤᡠᡵᡠᠨ, Kadzak Gurun /qʰat͡saqʰ kurun/): 카자흐스탄
    • 하삭 (, hasak) 카자흐
  • 위구르(ᡠᠢᡤᡠᡵ, Uigur /uikur/): 위구르
    • 이처 저천(ᡳᠴᡝ ᠵᡝᠴᡝᠨ, Ice Jecen /it͡ʃʰə ʤət͡ʃʰən): 신강(신장)
  • 시버(ᠰᡳᠪᡝ, Sibe /ɕivə/): 시버족. 시버어와 시버 문자도 이와 비슷하다.
  • 아마이리카이 우허 구룬(ᠠᠮᠠᡳ᠋ᡵᡳᡴᠠᡳ ᡠᡥᡝ ᡤᡠᡵᡠᠨ, Amairikai Uhe Gurun /amaɪ̯riqʰai uxə kurun/): 미합중국
    • 머이 구룬(ᠮᡝᡳ ᡤᡠᡵᡠᠨ, Mei Gurun /məi kurun/): 미국
    • 아마이리카(ᠠᠮᠠᡳ᠋ᡵᡳᡴᠠ, Amairika /amaɪ̯riqʰa/): 아메리카(미국)
  • 두림바이 냘마 이르건 궁허 구룬(ᡩᡠ᠋ᠯᡳᠮᠪᠠᡳ ᠨᡳᠶᠠᠯᠮᠠ ᡳᡵᡤᡝᠨ ᡤᡠᠩᡥᡝ ᡤᡠᡵᡠᠨ, Dulimbai Niyalma Irgen Gunghe Gurun /tulimpaɪ̯ nijalma irkən kuŋxe kurun/): 중화인민공화국
  • 두림바이 이르건 구룬(ᡩᡠ᠋ᠯᡳᠮᠪᠠᡳ ᡳᡵᡤᡝᠨ ᡤᡠᡵᡠᠨ, Dulimbai Irgen Gurun /tulimpaɪ̯ irkən kurun): 중화민국(대만)
  • 두림바이 구룬(ᡩᡠ᠋ᠯᡳᠮᠪᠠᡳ ᡤᡠᡵᡠᠨ, Dulimbai Gurun /tulimpaɪ̯ kurun/): 중국
  • 어원크(ewenk/ owenk), 아이원크, 아이원치(aiwenk/ aiwenci/): 어웡키족


10.5. 건축물[편집]


  • 압카이 얼허 오부러 두카(ᠠᠪᡴᠠᡳ ᡝᠯᡥᡝ ᠣᠪᡠᡵᡝ ᡩᡠᡴᠠ, Abkai Elhe Obure Duka): 천안문


10.6. 천간지지(天干地支)[편집]



10.6.1. 10간(干)[편집]


  • 갑(甲) - 뇨왕얀(ᠨᡞᠣᠸᠠᠩᡤᡞᠶᠠᠨ, Niowanggiyan) - 초록색, 푸른색
  • 을(乙) - 뇨혼(ᠨᠢᠤᡥᠤᠨ, Niohon) - 담녹색, 연녹색
  • 병(丙) - 풀갼(ᡶᡠᠯᡤᡞᠶᠠᠨ, Fulgiyan) - 홍색, 빨간색
  • 정(丁) - 풀라훤(ᡶᡠᠯᠠᡡᠨ, Fulahūn) - 담홍색, 연홍색
  • 무(戊) - 솨얀(ᠰᡠᠸᠠᠶᠠᠨ, Suwayan) - 황색, 노란색
  • 기(己) - 소혼(ᠰᠣᡥᠣᠨ, Sohon) - 천황색, 연황색
  • 경(庚) - 샹얀/샨얀(ᡧᠠᠩᡤᡞᠶᠠᠨ, Šanggiyan/ᡧᠠᠨᠶᠠᠨ, Šanyan) - 백색, 하얀색
  • 신(辛) - 샤훤(ᡧᠠᡥᡡᠨ, Šahūn) - 천백색, 옅은 백색
  • 임(壬) - 사할랸(ᠰᠠᡥᠠᠯᡞᠶᠠᠨ, Sahaliyan) - 흑색, 검은색
  • 계(癸) - 사하훤(ᠰᠠᡥᠠᡥᡡᠨ, Sahahūn) - 천흑색, 옅은 검은색


10.6.2. 12지(支)[편집]


  • 자(子) - ᠰᡳᠩᡤᡝᡵᡳ 싱어리(Singgeri) - 쥐
  • 축(丑) - ᡳᡥᠠᠨ 이한(Ihan) - 소
  • 인(寅) - ᡨᠠᠰᡥᠠ 타스하(Tasha) - 호랑이
  • 묘(卯) - ᡤᡡᠯᠮᠠᡥᡡᠨ, ᡥᡡᠯᠮᠠᡥᡡᠨ 궐마훤, 훨마훤(Gūlmahūn, Hūlmahūn) - 토끼
  • 진(辰) - ᠮᡠᡩᡠ᠋ᡵᡳ 무두리(Muduri) - 용
  • 사(巳) - ᠮᡝᡳᡥᡝ 머이허(Meihe) - 뱀
  • 오(午) - ᠮᠣᡵᡳᠨ 모린(Morin) - 말
  • 미(未) - ᡥᠣᠨᡳᠨ 호닌(Honin) - 양
  • 신(申) - ᠪᠣᠨᡳᠣ 보뇨(Bonio) - 원숭이
  • 유(酉) - ᠴᠣᡴᠣ 초코(Coko) - 닭
  • 술(戌) - ᡳᠨᡩᠠᡥᡡᠨ 인다훤(Indahūn) - 개
  • 해(亥) - ᡠᠯᡤᡳᠶᠠᠨ 울갼(Ulgiyan) - 돼지


10.7. 기타[편집]




11. 예문[편집]


동문유해
청어노걸대/본문


12. 대중매체에서의 만주어[편집]


생각보다 꽤 많다.

영화 천군, 최종병기 활, 남한산성, 연인에서 만주어를 사용하는 장면이 나오므로 들어보면 어떤 느낌인지 대략 알 수 있다. JTBC의 사극 '궁중잔혹사 꽃들의 전쟁'에서도 청나라 인물들이 만주어를 사용하며, 킹덤(한국 드라마)의 프리퀄 영화 킹덤:아신전에서도 여진족 인물들이 만주어를 사용하고[60] 생사초에 관련된 만주어 금석문이 등장한다.

뭐니뭐니 해도 대중들에게 만주어를 가장 강하게 각인시킨 것은 영화 최종병기 활로, 만주어가 한국어와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쓰인다. 특히 후반부에는 대사가 만주어가 한국어보다 더 많이 나올 정도.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다들 만주어 한마디는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ᠮᡠᠰᡝᡳ ᠮᠠᠨᠵᡠ!(우리들의 만주!), ᡝᡩᡠ᠋ᠨ ᠪᡝ ᠪᠣᡩ᠋ᠣᠮᠪᡳᠣ(바람을 계산하느냐), ᠮᡳᠨᡳ ᠪᡝᡵᡳ ᠪᠠᠨᠵᡳᠪᡠᡵᠠᠩᡤᡝ ᠸᠠᡵᠠᠩᡤᠠ ᠠᡴᡡ (내 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지 죽이는 목적이 아니다.) 등….

다만 만주어에 대한 재현을 열심히 했다고 해도 꽈찌쭈가 한국어 하듯이(...) 그냥 한국어 억양으로 만주어 단어를 줄줄 읊는 수준이다. 많은 배우들에게 단기간에 대사를 가르쳐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본어나 중국어처럼 참고로 들려줄 언어 자료가 풍부한 것도 아니니(...). 때문에 언어에 대한 감각이 좋은 사람들은 어쩐지 어색하다고 느낄 수 있다. 덕분에 오히려 자인이가 만주어를 쓰는 장면은 현실성이 높아진 감이 있지만, 후반부 쥬신타가 남이에게 "그저 날 능멸하려던 것이냐?!" 라고 외치는 장면 등, 감정 실린 만주어가 나오는 장면이 매우 어색하게 처리되었다. 위의 만주어 인터뷰 영상이나, 만주족 노인과 시버족의 대화 영상을 보면 확연히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오히려 이런 디테일은 만주어 전문가라 해봤자 역사학 전공자들이 대부분인 한국보다는 언어학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언어학자나 비슷한 언어인 시버어 화자도 많기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에서 시도한다면 훨씬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지만, 만주족 자신들이 이미 청나라 말기에는 한족에 거의 동화되어 버렸고, 상업적인 목적에서 만들어지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미 사어가 된 것이나 다름없는 외국의 소수민족 언어 재현을 중시해봤자 크게 흥행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한국은커녕 중국에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61]

아무튼 이 덕에 2010년대 중반부터, 병자호란 시기를 다루는 한국 사극에서 청나라 측 인물들이 만주어를 쓰는 경우가 많아졌다. 다만 고려나 조선이 금-청 및 여진-만주족과 얽히는 사극 소재가 생각보다 풍부한 편은 아니라 소재가 쉬이 고갈되는 게 문제다. 완안함보는 어려울 것 같고 정충신, 나선정벌, 열하일기의 영화화를 기대해보자 그나마 남한산성에서는 만주어 발음이 실제 만주어에 더 가까워졌다.

최종병기 활을 본 중국의 만주족영화 제작자에게 감사편지까지 보냈다고 한다. 외국인들이 자기네들도 영 모르는 조상의 언어로 영화를 만들었으니(…). 중국 최대의 UCC 사이트인 비리비리의 '한국 사극에서의 중국 모습'이라는 영상 모음엔 한국 사극에서 묘사되는 청과 만주족의 모습도 같이 끼어있다. 이런 한국 드라마의 재현에 대해서 많은 중국 네티즌들이 신기해하기도 하며, 그 재현에 대해 호평을 한다. "만족(만주족)을 제대로 재현하는 건 중국보다 한국이 더 낫다"는 평이 많다.[62] 비리비리 댓글창이나 한국영화에 관한 사이트를 보면 남한산성에서 만주어를 쓰는 용골대숭덕제의 캐릭터를 이야기하며, 황제의 딸이나 보보경심 같은 청나라 궁중드라마에 어째 한어가 쓰이냐, 실제 재현에 따라 만어로 제작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 중국 네티즌들의 이야기도 자주 보인다.[63][64]

중국에서 만드는 청대 사극에서 만주 문자나 만주어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n아거(황n자), 버일러(패륵), 호쇼이 친왕(화석친왕), 도로이 균왕(다라군왕)에 이은 황족의 3등급 작위), 어푸(액부, 부마와 같은 뜻), 아마(아버지) 등의 기본적인 단어는 명대 사극에서는 나오지 않는 청대 사극만의 재현에 해당한다. 오히려 명나라 자금성에 만한합벽 현판이 걸려있어서 두고두고 욕먹기도 한다[65] 제사 장면에서 한문과 만문이 모두 새겨진 신위나 축문이 나오고 만주 귀족 신분을 사칭하는 사람에게 (오늘날의 중국 동북 방언과 비슷하게) 만주어 어휘를 많이 섞어 말을 걸자 못 알아듣길래 인실좆을 시전하는 등의 묘사, 한국 사극에서 한문으로 방을 붙이면 선비들이 한국어로 소리내어 읽어 한문을 모르는 지나가던 민초들이 내용을 알게 되듯이 만주어로 쓰여있는 글을 만주족이 한어 대사로 말하는 식의 묘사도 간혹 나온다. 만주어 전문가도 많고 만주어 자료도 많이 남아있으니 작정하면 할 수는 있는 것이다.

태보 영상 자막 중 만주어가 있다. 조혜련과 태보의 저주에 있다.[66]

우용곡이 그린 대칸: 초원의 엘프에서는 엘프족이 만주어를 쓰면서 돌격한다.

만주어판 주문은 토끼입니까?가 동인서클에서 발매되었다(...).


13. 언어별 명칭[편집]


언어별 명칭
만주어ᠮᠠᠨᠵᡠ ᡤᡳᠰᡠᠨ(Manju gisun)
한국어만주어(滿州語)
중국어滿語/满语[67]
독일어Mandschurische Sprache
러시아어Маньчжурский язык(Man'chzhurskiy yazyk)
영어Manchu language


14. 들어보기[편집]



만주어 노래 '버부 무단(요람곡, 자장가)'.

만주어 노래 송코로(송골매)

만주어 노래 사사 갑타시니 우춘(활쏘기의 노래)

만주어 노래 아르키 우춘(소주 노래소주 한잔)

만주어로 부른 小苹果(작은 사과, 원곡 가수: 젓가락형제 筷子兄弟)

만주어 노래 Run South Road 满族音乐 跑南路


15. 기타[편집]


보이니치 문서가 사실 만주어를 독자적인 문자로 기록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만주어로 된 위키백과 인큐베이터가 있다. 인큐베이터란 새 언어판 위키백과를 만들기 전에 뼈대를 갖추고 시험을 하기 위해 만드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고 사용자들의 동의를 얻으면 정식 위키백과로 출범할 수 있다. 다만 만주어의 경우 참여자가 영 적어서인지(...) 인큐베이터 상태로 남아있다. 그리고 만주 문자가 아닌 로마자를 쓴다. 만주어 위키백과 인큐베이터 헌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유난히 케이온!, 러키☆스타, 내여귀, 로리 등의 오덕관련 용어들이 유난히 많이 기재되어 있다(...). 게다가 중국어 위키백과만주어 문법 항목에서는 일본어와 비교를 하면서 일본어(...)와도 비슷하다고 설명하고 있고, 거기에다 내여귀(!)의 주인공도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는 울산대학교의 김두현 교수와 경상국립대학교 역사교육과의 이선애 교수가 만주어에 능통하다고 한다.


16.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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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부 환경에서는 이 글자들이 네모 혹은 공백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만주어를 직접 입력하고 싶은 사람은 Times new Manchu를 참고.(참고문서, 폰트 다운로드, 온라인 입력)[2] 'manju'는 '만주족(민족명)'만이 아니라 '만주족의' 또는 '만주인의'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어 관형사로 기능하기도 한다. 다만 'manju'를 강조하거나 사전적으로 기술할 때는 속격조사 'i(의)'를 결합하여 표현한다.[3] 원래 만주 문자는 세로쓰기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지만, 컴퓨터는 가로쓰기가 기본이기 때문에 유니코드에는 반시계방향으로 90도 돌아간 형태로 등재되어 있다. 사실 만주 문자는 좌종서(왼쪽부터 세로쓰기)로 쓰게 되어 있으므로, 문자를 반시계 방향으로 90도 돌릴 게 아니라 시계 방향으로 90도 돌려야 한다. 그러면 마치 아랍 문자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게 되는데, 이렇게 쓰인 글을 반시계 방향으로 90도 돌리면 원문처럼 좌종서가 된다. 현행처럼 반시계 방향으로 90도 돌아간 문자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 글을 반시계 방향으로 90도 돌리면 우종서(오른쪽부터 세로쓰기)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여기 써진 만주글을 90도 눕혀놓은 것을 보는걸로 이해해야 한다.[4] 근고한어 발음이다. 표준중국어 발음으로는 구개음화가 일어나서 '첸칭먼(Qiánqīngmén)'.[5] 금나라 시기 여진 문자가 있었으나 한화 및 금의 멸망으로 사멸하였고 다만 몽골족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몽골문자, 명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몽골 문자나, 한족한자는 조금씩 쓰였다.[6] 순치제자금성을 접수하면서 명나라를 섬기던 내시궁녀들 일부도 청나라에서 다시 재취업 일하게 되었는데, 당연히 황실의 시종이나 궁녀들은 한어를 썼을 것이다. 만주족은 거세가 금지되어 있었고, 황궁에서 일하는 내시들은 모두 한족이었다. 다만 만주족 궁녀는 존재했고, 일부는 황제의 승은을 입어 황후까지 오르기도 했다.[7] 몽골인 후궁 소생인 황5자 아이신기오로 영기가 만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여 차기 대권주자로 주목받았으나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등 건륭제가 너무 오래 살아서 황자들이 대권을 노려보지도 못한채 세상을 떠나는(...) 일도 여럿 있었다. 건륭제의 노년기에는 가경제를 포함해 차기 황권 경쟁자들도 대부분 조선계 또는 한족계 포의 출신 후궁에게서 난 아들들이다보니 어머니의 품에서부터 만주어보다는 한어를 더 많이 접하며 자란 터였다.[8] 이 이야기는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과거, 중국의 시험지옥>에서 우야 자오후이(烏雅兆惠, 오아 조혜, 1708~1764)의 일화로 소개된다. 다만 책의 주제가 만주어 흥망사와는 무관한데다 역자들도 이쪽엔 무지한지 그냥 한족 이름처럼 읽은 '조혜'라고만 언급된다. 자오후이는 용비 호자씨(일명 향비)를 포로로 잡아 건륭제에게 바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9] 다만 이 이야기를 만주어의 쇠퇴로 해석하지 않고 만주어 방언의 '분화'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중국어의 지역별 방언은 그 편차가 사실상 서로 다른 언어 수준인데, 순치강희 연간부터 전국 각지의 팔기주방에 정착한 만인들이 구사하던 만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 한족들의 방언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주어 내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였을 것이며, 이 추정을 근거로 베이징식 만주어를 구사하던 황제 및 중앙정계 귀족들과 묵던(선양)식 만주어를 구사하던 신하의 만주어가 특히 입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여 서로간에 쉬이 통하지 않았으리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전국 각지에서 일하던 청나라 관리들이 쓰던 근고한어 관화도 실제로는 민족을 불문하고 다들 모어와는 별개로 따로 익힌 언어였으므로 전국 각지에서 쓰이던 만주어 역시 지역(베이징, 만주, 각 지역 주방 등)과 계층(최상위 귀족층이 아닌 포의나 하급군인, 그리고 팔기한군 등)에 따라 크게 나뉘었으리라는 추정이 이상할 것은 없다.[10] 즉 모어가 만주어인 만주인 고관들이 상용했으며, 중국어모어 화자가 듣기에 어딘가 부자연스럽던 그들의 중국어가 표준중국어가 되었다는 셈이다. 말하자면 콩글리시가 영어의 표준이 되었다는 것과 비슷하다. 사실 영어도 마찬가지인데, 프랑스어가 모어인 노르만인들이 고대영어를 쓰던 토착민들을 정복하고 이들에게 언어적으로 동화되었지만, 노르만인들이 쓰던 부자연스럽던 영어가 표준영어가 되면서 중세영어는 고대영어와 형태가 상당히 바뀌어버렸다.[11] 또는 말레이어의 고관을 뜻하는 menteri에서 파생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간에 "높으신 분들이 쓰는 언어"에서 유래한 것은 둘 설 모두 같다.[12] 베이징 방언과 베이징 표준어(보통화)는 다르다. 베이징 표준어는 근현대 중국 정부가 베이징 방언을 다듬어 만들어낸 국가표준어지만 베이징 방언은 수백년간 베이징 시민들이 써오던 토착방언이다. 마찬가지로 현대 서울말을 다듬어 만든 표준어서울 방언은 다르다.[13] 인구 절대 다수가 한족인 만주를 직접 점령도 아니고 괴뢰국으로 통치해야 하는 일본은 대다수 중국인에게 너희는 중화민국과는 다르다는 정체성을 어떻게든 심어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온갖 수를 다 동원했고 이 과정에서 선통제도 데려와서 옹립했다. 왕도낙토오족협화 낙원이라는 대동아공영권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감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제의 프로파간다는 이미 틈관동 이래 만주에 들어찬 대다수 한족 만주국인들에게 씨알도 안 먹혔다. 한편 만주족들은 만주국 수립 이전까진 터줏대감으로 어느 정도 대접받는 지위에 있었으나 만주국 수립 이후에 일제는 일본어도 못하는 만주족들이 활용가치가 없어서 그 자리를 조선인들로 채워버린 탓에 만주족 지위는 만주국 건국 이후 완전히 소수민족으로 더욱 떨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14] 신해혁명 당시 열하내몽골 내지는 만주 서쪽의 몽골족 거주지로 도망친 이들.[15] 랴오닝성 번시시의 번시 박씨의 경우 청나라 때는 만주팔기로 분류되었다가 이후 한족으로 재분류되었고, 1982년에는 조선족으로 재분류되었다. 그리고 신해혁명을 피해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도망친 만주족도 일부 존재했으며, 그런 사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도 있다.#[16] 신장 일대에 주둔하던 일부 만주족들이 한족이나 후이족들과 함께 코칸드 칸국에 의해 전쟁포로가 되어 중앙아시아 각지에 노예로 팔렸는데, 이러한 연유로 둥간족 일부는 만주족 조상을 두고 있다.[17] 20세기 초반 만주에 거주하던 중국인의 주류민족은 만주족이 아니었다. 만주족은 청나라가 중원을 제패하면서 상당수가 중원으로 넘어가 살았고, 만주는 청나라 시대 내내 인구가 희박한 빈 땅이었다가 19세기 중반 경부터 주로 산동성에 거주하던 한족들이 대거 이주해 와서 오늘날의 동북 3성 주민이 된 것이다. 당연히 그 이주자들의 언어는 만주어가 아닌 중국 화북 지방의 관화였다.[18] 예를 들어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는 한글이 한자와 반드시 병용된다. 법원에서도 중국조선어로 재판을 받을 수 있다.[19] 청초의 기록에 따르면, 시버인들이 코르친 몽골에 예속되어 있을 때 자신들과 만주인들의 조상은 같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이 확인된다.[20] 2016년 뉴욕타임즈의 중문판 기사인데, 젊은이들의 무관심속에 자기 민족 전통이 소멸될 것을 우려하는 시버족 원로들의 걱정을 전하고 있다.[21] 통역 목적으로 보인다.[22] 다만 아랍어가 히브리어와 같은 아프리카아시아어족임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23] 이들 중에는 만주족이 많지만 어차피 만주어를 가르치는 만주족 선생들조차 다른 현대 만주족처럼 중국어가 모어이니 사실상 무의미하다. 물론 어색한 만주어 발음과 별개로 만주족으로서 좀 더 열정적으로 만주어를 가르치는 경우가 많기는 하겠지만 말이다.[24] 실제로 중국의 몽골어가 독립국가 몽골의 몽골어에 비해 만주어의 영향이 더 많이 남아있다.[25] 최근에 여의전이나 연희공략으로 꽤 늘어났다.[26] 현대 외몽골인의 반만주족/반중 감정과는 별개로 만주어는 몽골 역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역시 필수적인 언어이다. 몽골이 청나라의 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27] 로마의 정복 아래서 유럽 전역에서 쓰였던 라틴어와 아라비아 반도의 소수언어였으나 종교의 힘으로 중근동 공용어가 된 아랍어, 현대의 식민지 출신 독립 국가에서도 계속 쓰이는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러시아어를 그 예로 들 수 있겠다.[28] 그래서 만약 일제강점기가 실제보다 더 오랫동안 이어졌다면 해당 대체역사에서 한국은 독립 후에도 일본어가 공용어 내지는 그에 준하는 취급을 받는 언어가 되었을 거라는 주장도 있다.[29] 사실 만주어 뿐만 아니라 중근고한어와 중근세 몽골어도 중요하긴 한데, 중국사를 깊이 연구하는 학자라면 다들 오늘날의 표준중국어 정도는 간단히라도 배우기 때문에 중근고한어 쪽으로의 진입장벽은 상대적으로 낮다. 그리고 미디어에서도 잘 다뤄지지 않는 등의 이런저런 제약이 있어도 결국 대부분의 만주어 사료는 중화권에 남아있고 중화권의 중국어 화자들에 의해 더 넓고 깊게 연구되기 때문에 그쪽에의 접근을 위해서라면 결국은 만몽한어를 모두 할 줄 알아야 한다.[30] 청나라는 준가르를 무너뜨리고 지금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지역을 자국의 지배 하에 두었는데,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지리적, 문화적으로 중앙아시아로 분류된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 외에도 준가르의 지배 하에 있었던 지역은 지리적으로는 중앙아시아로 분류된다. 그 외에 준가르가 지금의 키르기스스탄 땅을 침략하여 키르기스인들을 복속시키고 더 나아가 현대 카자흐스탄의 전신인 카자흐 칸국도 침략했다가 사르타이에 의해 저지되어 카자흐 칸국 정복이 무산된 역사도 있다. 그리고 코칸트 칸국은 청나라의 조공국이 되기 전까지는 청나라의 서쪽 변방을 약탈하여 한족 포로들(오늘날 둥간족의 조상)을 끌고 가기도 했다.[31] 승정원일기와 만주어로 작성된 청나라 측 기록이 반영되지 않고 병자록조선왕조실록에 의존한 정묘호란, 병자호란 연구는 오류투성이 반쪽짜리임이 201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밝혀지고 있다.[32] 만주 샤머니즘의 신인 압카이 한(하늘의 왕)에 대한 제사.[33] 청나라의 역대 황제들 및 유학자들에 대한 제사.[34] 청어노걸대 말고도 삼역총해, 팔세아, 소아론 등도 있다.[35] /ʊ/[36] 이중모음은 반드시 i나 o로 끝난다.[37] 원래 /g/로 발음 되었으나, 음운 변화로 /ŋ/이 된거라 지명은 g를 발음하기도 한다.[38] 한국어의 ㅊ,ㅈ와 같은 발음이 된다.[39] 예시 : ama(아빠), eme(엄마), amila(수컷), emile(암컷), e(음), a(양)[40] ume : 말아라[41] 희망형[42] 'siyan lo'는 '暹羅(섬라)'의 음역이다. '暹羅(섬라)'는 타이의 옛 이름인 'siam(시암)'을 한자로 음역한 것이다.[43][44][45][46]에게[47]한테서[48] 청자를 제외한 우리[49] 청자를 포함한 우리[50] 만주어의 주격조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oci(~(이)라면), serengge(~(이)라 함은)과 같은 용법은 사용된다.[51] 이 격조사 뒤에는 명사가 온다.[52] -ng 뒤에 위치할 경우 ni로 적고 발음한다. 예컨대 daicing ni ejen[53] 이 격조사 뒤에는 동사가 온다. 만주어의 조상격 언어인 여진어에서는 gi였으나 만주어에서 i로 변화했다.[54] 크고 흰 산이라는 뜻이다. 장백산의 어원[55] 또는 쿠예(ᡴᡠᠶᡝ, Kuye /kʰu.je/)라고도 한다.[56] 라틴 문자보다는 키릴 문자 표기들 중에서 한어식보다 만주어식 발음에 가까운 경우가 더 많다. 청과 러시아의 교류는 보통 만주어, 라틴어, 러시아어로 이뤄졌기 때문에 만주어에도 상대적으로 익숙했기 때문. 하지만 강건성세 이후 세대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러시아어권에서도 그냥 한어식 발음으로 부르고 표기하는 게 보통이다.[57] 임칙서가 잘리고 대신 흠차대신으로 임명된 인물로, 보통 '기선'이라는 한국어식 독음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내몽골의 보르지기트씨인데 정황기 만주로 대기된 가문 출신이다.[58] 정확한 어원은 알 수 없으나, 15세기까지 여진어에서는 사용된 적이 없다가 갑자기 등장한 어휘이다. 주변의 퉁구스어족에 속한 언어인 네기달어에도 '니칸'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어휘는 '종', '하인'을 뜻한다. 알렉산더 보빈은 주변의 언어 집단들도 같은 뜻으로 이 어휘를 사용했다는 점을 들어 한족에 대한 멸칭의 의미가 강했을 것으로 짐작했다.[59] 고려 명칭의 원조인 고구려도 포함한다. ex)수 모 모 호오 퉄탄 솔고 더 다야하.: 속말말갈은 고구려에 속했다.[60] 허나 조선에 사는 여진족(성저야인)들은 한국어를 사용한다.[61] 이것은 일부에서 지적하듯이 딱히 중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리처드 1세존 왕만 하더라도 앵글로-노르만 프랑스어가 모어이고, 영어는 거의 모르고 프랑스어를 상용했지만, 영국 드라마나 영국 영화에서는 모두 영어만을 사용한다. 무굴 제국 역대 황제들도 페르시아어가 모어였지만, 무굴 제국을 배경으로 한 인도 드라마·인도 영화와 파키스탄 드라마·파키스탄 영화에서는 힌두스탄어(힌디어/우르두어)만을 사용한다.[62] 특히 만주족의 변발 형태가 청나라 말기의 음양두가 아닌 금전서미(일명 쥐꼬리)를 제대로 재현해서 호평이라 카더라...[63] 일부에서는 광전총국이나 중국 공산당 당국의 검열 때문에 못만들어진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지만, 만주족 자체가 독립은커녕 한족에 거의 동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리 정치적으로 민감하지 않다. 중국에서는 민족갈등을 유발할 수 있거나, 소수 민족을 악마화하는 드라마는 제작이 금지되기는 하지만 (이건 정치적 올바름이 정착된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원주민들이 악역으로 나오는 서부극은 이제 자취를 감췄다.) 만주족의 후손들이 지금 한족이랑 거의 구분이 없어졌기 때문에, 굳이 민감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소수민족의 보호 정책을 없애는 것으로 악명 높은 시진핑 정권조차 안 건드리는 민족이 바로 만주족이다. 만주어 제작 드라마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제작비의 상승 및 외국어 연기로 관객의 공감능력 악화라는 상업적 이유가 가장 크다고 보면 된다. 어떻게 보면 한족 왕조 배경 중국 사극에서 실제 전근대 중국어 대신 평범한 중국 사극 말투가 나오는 것과도 비슷한데, 실제로 재현을 중시해서 중국어의 궁중용 고어가 대사에 많이 들어가는 송나라 배경의 청평악(2020) 같은 사극은 시청률도 좋았고, 컬트적인 팬들의 찬사를 받기는 했지만, "자막을 봐야 내용을 알 수 있다"는 시청자들의 불평도 많았다.[64] 중국 공산당은 건국 초기에 레닌주의에 입각해서 소수민족 문화 보호를 약속했다. 잘 볼 수 있는 예로 조선족 상당수가 아직도 모어를 한국어 방언인 중국 조선어로 쓰고, 대부분 한국어를 알아듣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만주어가 사어가 된 것은 청나라 시절부터 스스로 동화되었기 때문이지 중국 정부가 말살정책을 편 게 아니기 때문에 사극에 만어 사용이 금지된다거나 한국 영화에 등장하는 만주어에 중국인들이 불쾌하게 여긴다는 일부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65] 제작비 문제 탓에 세트장에 있는 만한합벽 현판을 일일이 철거하기가 힘들어서 나타나는 반영 오류로 추정된다.[66] 근데 이 영상에는 별의별 자막이 다 있어서 놀랍지가 않다..... 자세한 건 조혜련과 태보의 저주 참고.[67] 만주(满洲) 라는 말은 일본이 괴뢰국가였던 만주국을 건국하기 위해 정략적으로 썼기 때문에, 满洲라는 단어는 중국(대만 포함)에서 금기시 되어 있다. 그러므로 满洲语, 满洲族이라는 단어는 중국에서 거의 쓰이지 않고, 모두 满族,满语라는 말만 쓴다. 이것은 북한에서 사용하는 남조선이라는 말이 대한민국에서 금기시 된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