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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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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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위 공화국
Republic of Malawi | Dziko la Malaŵi
파일:말라위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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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Unity and Freedom
단결과 자유

면적
118,484km2
인구
19,647,681명(2021년) | 세계 61위
수도
릴롱궤
접경국
파일:잠비아 국기.svg 잠비아, 파일:모잠비크 국기.svg 모잠비크, 파일:탄자니아 국기.svg 탄자니아
국가
하느님, 말라위를 축복하소서.
(체와어: Mlungu dalitsani Malaŵi)
공용어
영어, 체와어[1]
정부 형태
공화제, 대통령중심제
민주주의 지수
5.91점, 혼합된 체제(2022년)
(167개국 중 76위)
대통령
라자루스 차퀘라
부통령
사울로스 칠리마
여당
말라위 의회당
민족구성
체와족(33%), 야오족(21%) 등
종교
기독교(80%), 이슬람교(13%)
화폐단위
말라위 콰차
UN가입년도
1964년 12월 1일
대한수교현황
대한민국: 1965년 3월 9일
북한: 1982년 6월 25일
교민 수
145명
여행경보
여행자제: 전 지역

위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Malawi_on_the_globe_%28Zambia_centered%29.svg.png




1. 개요
2. 상징
3. 역사
4. 지리
6. 경제
6.1. 식량 위기
7. 사회
8. 외교
9. 스포츠
10. 말라위 출신 인물
11. 창작물에서의 말라위
12. 기타



1. 개요[편집]


동아프리카의 국가로 수도는 릴롱궤(Lilongwe). 최대도시는 블랜타이어(Blantyre)다.[2] 국토면적은 11만 8,000㎢, 인구는 약 2151만 명 (2022년 말라위 정부 추정). 1인당 명목 GDP는 $523, GDP PPP는 $1,588(이하 2022년 IMF 추정)로 정치사회적으로 안정된 나라 중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기도 하다. 부존자원이 없고 오로지 농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산업구조상 자연재해에 취약한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외환위기가 주 원인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말라위 콰차-미 달러의 환율이 시장거래액(소위 암시장)이 정부고시액보다 큰 경우가 파다해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 영향을 심하게 받는다.

그래도 2020년대 들어서는 식량작물들의 안정적인 생산량[3]과 미 달러 강세와 인플레이션에 따른 통계학적인 수혜 덕(?)으로 1인당 명목GDP는 600달러를 살짝 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내전과 그 여파로 어수선한 부룬디, 소말리아, 남수단, 에리트레아, DR콩고, 아프가니스탄 등 보다는 확실히 높고,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모잠비크,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등과는 비슷한 경제 수준이다. 심지어 통계를 발표하는 기관에 따라서는 북한의 1인당 명목GDP와 비슷하게 추정되기도 한다.[4]

말라위의 소득 수준은 한국을 기준으로 하면 1:110 이상. 룩셈부르크 같은 초고소득 국가 기준으로 하면 무려 1:500에 가깝다.


2. 상징[편집]



2.1. 국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말라위/국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역사[편집]


말라위는 10세기에 처음으로 반투족들이 정착하기 시작하여 1891년까지는 흑인 원주민이 이 지역을 지배했다. 하지만 헤로도토스가 저술한 《역사》에도 이 지역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된 것으로 보면, 사람이 정착하지만 않았을 뿐 남아프리카동아프리카로 진출하는 세력들이 이따금씩 드나들던 곳임은 확실해 보인다.

아무튼 영국의 선교사인 데이비드 리빙스톤(David Livingstone)이 당초 나일강 탐험에는 실패했지만 오히려 빅토리아호 이남 지역의 호수와 하천을 탐험하면서 서방에 소개됐고, 1891년에는 영국군에 의해 점령되어 영국의 식민지인 영국령 니아살랜드(Nyasaland)가 설립되었다. 사실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 훨씬 이전에 이웃나라인 모잠비크를 식민지로 점유하던 포르투갈이 이 나라와 잠비아를 합병하여 남서-남동 아프리카 양쪽에 위치한 포르투갈령 식민지인 앙골라와 모잠비크를 육로로 연결하기 위해 식민지 영유권을 주장했으나, 이미 쇠퇴할 대로 쇠퇴한 포르투갈이 영국과의 외교전 싸움에서 패배하면서 이 나라는 잠비아, 짐바브웨와 함께 로디지아 니아살랜드 연방(Federation of Rhodesia and Nyasaland)로 묶여 영국령이 됐다. 1915년 1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틈을 타 침례교 목사였던 존 칠렘브웨(John Chilembwe)가 주축이 되어 영국 총독부에 저항하기도 했지만 이내 진압됐다. 하지만 말라위인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유럽인들에 의해 자행된 식민통치의 실상을 자각하게 된다. 결국 말라위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인 1964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1964년부터 30년 동안 군림한 말라위의 초대 대통령 헤이스팅스 반다(Hastings Kamuzu Banda)는 강압적인 통치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반다는 가난한 농민 태생이라 그런지 1차 산업에 의존하는 대다수 농민들에게 비료를 무상 제공하여, 가뭄이 아니라면 적어도 사람들이 굶주릴 일은 없었다. 덕분에 독재정치로 국제적으로 욕을 먹어도 대다수 말라위 농민들은 반다를 지지했다. 또한 이때 반다는 아프리카에서 드물게 친서방-반공산주의적인 행보를 보여 서방에게 원조도 받았으며[5], 남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제1세계권 국가였기도 했다.[6] 그래서 냉전 시대에 제3세계 혹은 반식민주의를 표방하지 않는 나라를 찾기 매우 드물었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 유일하게 식민모국과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를 지지한 국가라는 특이한 위치에 있었다.

독립 이후 30년 가까이 반공권위주의 노선을 견지했던 반다였지만 탈냉전 이후 전 세계적인 민주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는데, 1992년 말라위 천주교의 주교가 반다의 정치노선을 비판하는 서한을 시작으로, 말라위 대학교의 챈슬러 캠퍼스(Univ. of Malawi at Chancellor College)의 학생들이 주도하여 주교를 지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이윽고 말라위 노동계의 지도자였던 차쿠프와 치하나(Chakufwa Chihana)가 다당제 도입을 묻는 국민투표를 제안하는 시위를 했지만 반다는 치하나의 제안을 체포로 화답했다. 그래도 당시 국제적인 시선은 장기독재자인 반다에게 호의적이지는 않았고, 결국 1993년 6월 국민투표를 통해 일당제 체제가 종식되고 1994년 총선부터 다당제 선거가 출범하게 된다.[7]

이후 반다와 그가 이끄는 정당인 말라위 의회당(Malawi Congress Party, MCP)는 1994년 선거에서 패배하고 96세의 나이로 순순히 물러났다.[8] 1994년 총선에서 바킬리 물루지(Elson Bakili Muluzi)가 이끄는 민주전선연합(United Democratic Front, UDF)가 여당이 돼 정권을 잡게 되는데, 물루지는 대기업 간부 출신으로 부유층을 위한 노골적인 정책으로 대차게 욕을 먹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경제인이니 경제를 잘 안다는 엘리트주의 정치를 부르짖으면서 비료 무상 제공을 포퓰리즘 정책으로 비난하며 전면 폐지하곤 상당수 농업 필수품들을 독점하여 이득을 취했다. 당연히 가뭄이 없어도 비료를 공급 받지 못하여 많은 사람들이 생활난에 빠지게 되었는데, 1990년대 후반 연이은 가뭄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온갖 질병이 퍼질 때 한다는 소리가 "이 나라에 질병은 없는데 악질적인 소문을 내서 민심을 어지럽히는 행위를 처벌하겠다"였다.

결국 민심을 잃고 2004년 겨우 10년(?)만에 권력을 잃고 선거에서 패하여 물러났다. 물루지는 선거에서 패한 것을 무식한 농민들의 오해라고 끝까지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지 않았다. 허나 농민 상당수를 식구로 둔 군부 및 여러 고위층도 물리지의 정책을 말라위 역사상 가장 바보라고 혹평했다. 결국 비난 속에 물루지는 말라위에서 추방당했다. 물루지 후임으로 선출된 빙구 와 무타리카는 물루지와는 선을 긋기 위해 민주진보당(Democratic Progress Party)로 독립하여 자기 세력을 키웠고 물루지 시절 실정을 바로잡는 정책을 실시해 말라위 국민들에게 희망을 갖게 만들었다. 하지만 임기 중이었던 2012년 4월 심근경색으로 사망했고, 이후 부통령이었던 조이스 반다에게 대통령직이 자동승계되어 말라위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남은 임기를 수행했다.

이후 2014년 총선에서 빙구와 무타리카의 동생인 피터 무타리카가 대통령이 돼 민주진보당은 계속 여당으로 남았다. 그러나 내륙국에다 1차 산업 외에 이렇다 할 경제적 기반이 전무한 국가 특성상 뾰족한 수가 없어 좀처럼 경제가 극적으로 성장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2019년 5월 피터 무타리카의 재선이었던 총선거에서 민주진보당의 불법선거 의혹이 제기돼 말라위 고등법원이 총선 결과를 미루는 결정을 내렸고 # 이 와중에 주 말라위 미국대사가 야당인 말라위 의회당 당수이자 대통령 후보였던 라자루스 차퀘라 박사와 면담하던 도중에 경찰이 쏜 최루가스에 피습된 일이 발생되었다. #

2020년 2월 3일 말라위 헌법재판소는 부정 행위를 이유로 2019년 5월에 있었던 대선 결과를 무효화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무타리카 대통령은 사법 쿠데타라고 반발하며 이 문제를 대법원으로 끌고 갔다. # 그러나 헌법 규정에 따라 재선거가 치러지게 됐다. 이후 6월 25일 말라위에서 치뤄진 재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했고 #, 6월 28일에 라자루스 차퀘라 신임 대통령이 취임했다. #

하지만 2020년 COVID-19 확산 과정에서 차퀘라 정부는 적극적인 대응을 취하지 않았고, 세수 감면 외에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그저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던 것은 기도만이 거의 전부일 정도로 무능한 대통령과 정부로 비판을 받고 있다.[9]

2018년 10월 14일에 인도와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마하트마 간디 동상을 건립하려 하자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10]

2019년 3월 9일 인도양에서 올라온 사이클론의 영향으로 수해가 발생해 30여 명이 실종되거나 사망했다. #

2022년 2월 18일, 약 30년만에 말라위에서 소아마비 환자가 발생했다.#

2023년 1월 5일, 말라위에서 콜레라가 창궐해 643명이 사망했다.#


4. 지리[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1px-Malawi_sat.png

아프리카에서 3번째로 큰 호수인 말라위 호[11]가 국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 '호수의 나라'로 불린다. 말라위 호에서 잡히는 어패류 수출 등이 말라위 경제의 큰 몫을 차지하며, 호수 관개 사업을 통해 농사를 짓고 있다. 하지만 관광으로는 좀 애매한데, 물생활 동호인들에게는 이 호수에 서식하는 시클리드들인 말라위 시클리드로 유명해 탕카니가 호의 시클리드와 견줄 정도라 이를 보기 위한 스노클링이 성행하지만, 호수에 서식하는 주혈흡충 기생충으로 인한 위험도 상존하고 있다. 또한 말라리아도 이쪽에서는 꽤 독해서 정말 강한 약을 먹어야 예방이 된다고.

파일:external/farm6.staticflickr.com/5751633394_a6e5025b83.jpg
영토 내에 있는 물란제(Mulanje) 산은 해발 3,000m로 말라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12]

영토의 모양이 한반도 모양이라고 해서 화제가 되었는데, 오래 전에 스펀지에 진짜로 나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선암마을에 비하면 쨉도 안 될 뿐이고, 정작 강원도함경도에 해당되는 부분은 호수 지역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한반도 모양이라고 막 하기는 어렵다.

상기했듯 말라위 호의 동쪽 일부는 옆나라 모잠비크의 땅인데, 특이하게도 모잠비크령 말라위 호 내에 있는 리코마 섬(Likoma Islands)이 말라위의 월경지다. 하지만 행정을 뺀 생활 부분은 대부분 모잠비크와의 교류가 절대적이라 모잠비크의 땅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그래도 교류가 많지는 않지만 말라위까지 가는 배가 가끔 있기는 하다.


5. 행정구역[편집]


파일:말라위 국기.svg 말라위의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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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District map of Malawi.png

말라위는 각각 북부, 중부, 남부, 3개 (州, Region)와 29개 (縣, District)으로 나뉜다. 다만 사실상 모잠비크 땅이나 다름없는 리코마 현을 제외하면 28개가 된다. 이 중 수도인 릴롱궤가 있는 곳은 중부 주 릴롱궤 현(14)이다.

북부의 음주주(Mzuzu)와 중부의 릴롱궤(Lilongwe), 남부의 블랜타이어(Blantyre)와 좀바(Zomba)가 해당 주의 중심지이다. 좀바는 시절인 영국 중앙아프리카 보호령(British Central Africa Protectorate, 1893~1907)과 니아살랜드 보호령(Nyasaland Protectorate, 1907~1964), 그리고 말라위 독립 초기인 1974년까지 수도였다.


6. 경제[편집]


남아프리카경제
[[앙골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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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골라]]
[[나미비아#경제|

파일:나미비아 국기.svg

나미비아]]
[[남아프리카 공화국/경제|

파일: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svg

남아프리카 공화국]]
[[잠비아#경제|

파일:잠비아 국기.svg

잠비아]]
[[보츠와나#경제|

파일:보츠와나 국기.svg

보츠와나]]
[[레소토#경제|

파일:레소토 국기.svg

레소토]]
[[말라위#경제|

파일:말라위 국기.svg

말라위]]
[[짐바브웨#경제|

파일:짐바브웨 국기.svg

짐바브웨]]
[[에스와티니#경제|

파일:에스와티니 국기.svg

에스와티니]]
[[모잠비크#경제|

파일:모잠비크 국기.svg

모잠비크]]
[[마다가스카르#경제|

파일:마다가스카르 국기.svg

마다가스카르]]
[[모리셔스#경제|

파일:모리셔스 국기.svg

모리셔스]]


말라위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며, UN개발계획(UNDP) 기준으로 극도의 저개발 국가이다. 2023년 IMF 통계 기준으로 말라위의 1인당 GDP는 고작 496$로, 195개국 중 191위에 불과하다.[13] 물론 말라위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가난한 국가가 있기는 않지만, 이들은 모두 내전의 후유증에 시달리거나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국가들이다. 사실상 북한, 마다가스카르[14] 와 함께 내전의 후유증이 없는 국가들 중에서는 가장 못 사는 나라인 셈이다.

인구의 80~90% 가량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2017년 기준으로 농업이 GDP의 1/3, 수출의 80%를 차지할 정도다. 차, 희귀 어류, 목화, 담배[15] 등이 주요 수출품이며, 자원도 거의 없다시피하다. 그리고 그것도 그나마 성장률이 2% 이상 올라서 그렇게 됐다.

그나마 헤이스팅스 반다 시절에는 1인당 GDP상으로는 최빈국이기는 했어도 굶주리는 이웃 국가들에게 옥수수를 수출까지 했을 정도로 먹고 살기에는 그다지 큰 지장은 없었지만, 반다가 물러나고 민주화된 이후 식량 사정은 오히려 독재정권 시절보다도 더 나빠졌다. 그 1차 산업, 특히 농업이 잦은 가뭄과 흉작, 이에 반대되는 홍수 등의 자연재해로 대폭망하기 일쑤라고 한다. 주식은 옥수수지만 기근이 찾아오면 입에 들어오는 건 뭐든지 찾다가 쥐고기까지 먹게 된다고.[16] 아래에도 소개되는 윌리엄 캄쾀바도 농부의 아들이었으며, 그의 자서전에도 기근과 빈곤, 굶주림에 관련된 일화가 여럿 실려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04~2005년 극심한 가뭄 이후 현재까지는 말라위를 위협할 정도의 큰 가뭄피해는 없다는 것. 그러나 3년에 한번씩 평년에 비해 작황이 떨어지는 사이클이 반복된다.

1차 산업에 기대는 산업구조상 자연재해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며, 우기에 비가 적절하게 내리지 않는다면 이는 말라위 경제뿐만 아니라 식량안보에도 큰 문제를 가져온다. 문제는, 주식인 옥수수가 정부의 입김에 의해 가격이 좌지우지되는 소위 '정치적인 작물(Political crop)'이라는 문제가 있다.[17] 다만, 옥수수 이외의 작물의 경우 작황이 좋으면 주변국과 비교하여 공급에 우위를 점하는 경우가 있어 종종 대박이 나는 경우도 있는 모양.

말라위의 단순하고 취약한 경제·산업구조상 환율에 의한 인플레이션 역시 문제인데, 2010년대 중반 IMF 사무소가 말라위에 들어와 말라위 정부에 정책자문을 해준 덕으로 그나마 인플레이션이 잡히는 듯 싶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정부고시 미 달러 환율과 시장가격(소위 암시장) 환율의 괴리가 심각해 인플레이션 현상이 급격히 발생되고 있다.

주요 수출 품목은 담뱃잎으로 전 수출의 2/3를 담배가 차지하고 있다. # 심지어 JT 사무소가 들어올 정도. 여전히 담배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짭짤한 수입을 보기는 하나 전 세계적으로 담배 소비량이 줄고 있어 타격을 받고 있다. 그 외의 잘 알려진 특산품으로는 커피가 있다. 케냐산 커피와 비슷한 향과 맛을 보여주나 산미가 조금 덜한 편으로, 비교적 유명한 커피 생산지는 아니지만 품질은 아주 훌륭하다. 좋아하는 사람은 아라비카 커피 중 최상품으로 치기도. 다른 유명 커피 생산국과는 달리 거대 플랜테이션이 아니라 소규모 개인 농장 위주로 생산된다고 한다.

홍차도 생산 중인데 잃어버린 말라위(Lost Malawi)라는 상표가 영국에서 팔리고 있다. 코너 우드먼이 쓴 <나는 세계 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라는 책에서도 언급된다.

아래 언급되지만, 흉작으로 인한 식량 문제로 국제기구 사무소와 여러 NGO가 진출하여 활동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NGO를 통해 진행되는 프로젝트로 외화가 유입되는 비중이 말라위 경제에서 생각보다 어느 정도 차지하는데, NGO가 말라위 경제의 하나의 산업군이라는 자조적인 농담이 있기도 하다.


6.1. 식량 위기[편집]


1990년대부터 지속적인 식량 위기를 겪고 있다. 인구가 지난 반 세기 동안 4배 가까이 폭증한 반면에 감자와 옥수수의 생산은 빠르게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 1만명당 2명의 기아 사망자가 발생한 2002년부터 세계식량기구와 유니세프 등이 구호에 나섰지만, 만성적인 물 부족을 해결하지는 못하고 있다. 2005년에는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기도 했다. 또한 식량 위기는 부차적인 사회 문제의 원인이다. 기아 사망으로 인한 고아가 증가하고 있으며, 학업 중퇴율도 25%로 치솟았다.

한편 IMF와 세계은행이 2002년 식량 위기를 불러 일으켰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세계은행은 1990년대 '워싱턴 컨센서스'의 일환으로 말라위의 농경업무 민영화, 종자 및 비료에 대한 정부보조금 삭감을 제안했고, 예산의 절반 이상을 원조에 의지하던 말라위 정부는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연이어 가뭄이 닥치면서 식량 생산량의 급감하면서 이는 국가재난이 되었다. 이미 정부는 곡물 비축분을 전량 매각하였기에 구호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으며, 곡물 중개인들은 오히려 곡물 가격을 올렸다. 결국 정부는 세계은행의 정책에 반기를 들어 시장에 개입하여 시장 가격보다 싼 값으로 소농을 지원했다.

세계은행은 즉각 반대했으나 정부는 정책을 밀어붙였고, 이는 2000년대 말 풍작으로 이어지며 성공을 거둔다. 이러한 진통 끝에 세계은행은 개발도상국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농업 민영화 정책은 오히려 실제 경제를 해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경제 실패는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정책과 긴밀히 연결된 민주주의에 대해 말라위 국민이 회의감을 품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18]


7. 사회[편집]


가난한 국가이지만 경제에 비하면 주변국인 짐바브웨콩고민주공화국 등에 비해 비교적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안정적이다. 대체적으로 부족 간의 반목도 여타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 적은 편으로, 북중부 지역의 릴롱궤와 남부 지역의 블랜타이어 두 도시간의 라이벌 감정이 있긴 하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한국의 경상도-전라도 또는 경상도 내의 경북-경남이나 일본의 간토-간사이, 이탈리아의 남부 이탈리아-북부 이탈리아, 그리스의 남부 그리스-북부 그리스[19]와 같이 지역갈등 정도 수준에 그칠 정도로 총질이 난무하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서는 애들 장난인 수준. 국민성도 호전적인 다른 국가의 국민보다는[20] 온순하다는 평이다.

2019년 당시 피터 무타리카(A. Peter Mutharika)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총선에서 부정선거가 발생했는데, 시민들의 시위가 격렬해도 사회 전체가 마비될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결국 법정까지 간 부정선거 의혹은 대법원 판결로 선거효력 무효로 이어졌고, 2020년 6월 재투표를 통해 평화적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말라위 국민들도 나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모양.

치안의 경우, 외국인 입장에서는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그러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절도·강도 사건은 있기에 항시 조심해야 하며, 여느 아프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여성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시각을 가지기에 오해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한때 정부에서 골 때리는 법을 제정하려다가 전 세계급으로 대차게 까였다. 2011년에 공기 오염 법안을 제정하면서 법무부 장관이 공공 장소에서 방귀를 뀌지 말라고 발언한 것. 이 소식을 들은 말라위 국민들은 그야말로 충공깽. 결국 논란이 확산되자 법무부 장관이 발언을 철회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이 사건이 국제적 헤드라인을 장식한 후 말라위 정부는 언론과 협약을 맺어 정부의 해명없이 말라위의 이미지와 신용을 훼손하는 기사를 쓰지 말도록 했다. 이런 행정부의 언론 탄압은 2011년 말라위 시위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8. 외교 [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말라위/외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스포츠[편집]


여느 아프리카 국가가 그렇듯 말라위에서도 축구가 매우 인기가 있다. 하지만 FIFA 랭킹은 100위권에서 머물고 있다. 아프리카 축구 연맹과 그 지역연맹인 남부아프리카축구연맹(Council of Southern Africa Football Associations, COSAFA)에 가입돼 있고, 남녀 국가대표팀이 매년 열리는 COSAFA컵에 가끔 준우승에서 4위 사이의 성적을 내긴 하지만 지역 강팀인 남아공, 잠비아, 앙골라 등에 현실적으로 밀린다. 자세한 내용은 말라위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하지만 이 나라를 유일하게 빛내주는 스포츠가 있으니 농구와 유사한 스포츠인 넷볼에서 초강세를 보인다. 영연방에서 인기있는 여성 스포츠로, 아프리카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2007년 뉴질랜드에서 열린 넷볼 월드컵에서 거둔 5위가 해당 대회의 최고성적이다.


10. 말라위 출신 인물[편집]




11. 창작물에서의 말라위[편집]


겁스 무한세계에서는 UNIC의 다세계협정에 서명하지 않은 10개국 중 하나이다.


12. 기타[편집]


양궁 대표단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본선 진출을 이루는 쾌거를 달성하여 화제가 되었다. 대표팀의 박영숙 감독 말에 의하면 제3세계 대표팀이 그렇듯 전혀 기대도 안 하고 있다가[21] 본선에 진출하자 나라 전체가 난리가 나서 말라위 정부 관계자가 국가적으로 뭘 해주면 좋겠느냐라고 연락이 올 정도라고 한다.

굿네이버스 12회와 13회의 주인공인 핫산과 라멕이 사는 곳이 말라위다.


말라위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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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족은 멀리 떨어진 니제르콩고어족이지만, 정작 사용국은 짐바브웨와 말라위 뿐이다. 냔자어라고도 한다.[2] 2018년 센서스 기준으로는 릴롱궤 인구가 약 100만, 블랜타이어 인구가 약 80만이다. 다만, 릴롱궤가 정치·행정도시라면 블랜타이어가 상업도시이기에 말라위 내 양대 라이벌 도시이다.[3] 특히 2020년 동아프리카 지역이 황충 피해로 큰 타격을 입을 때 말라위 내 식량작물의 수출가격이 오르는 반사이익을 누렸다.[4] 2020년 UN 발표 자료에 따르면 말라위가 615달러, 북한이 618달러를 기록했다.[5] 주로 미국, 영국, 캐나다로부터 원조를 받았으며, 후술하지만 아파르트헤이트로 전 세계적인 왕따였던 남아공을 지지한 덕에 원래 수도였던 좀바에서 릴롱궤로 천도할 때 남아공이 대놓고 지원해줬을 정도였다.[6] 이웃국가인 모잠비크의 경우 냉전 시기 포르투갈과의 독립전쟁 때문에 모잠비크 해방전선(FRELIMO)이 반식민주의를 지지한 소련중국의 영향을 받았고 모잠비크와 같은 처지에 있던 앙골라 역시 공산권이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줬다. (그래서 이 두 나라 국기에 각각 AK-47마체테와 톱니바퀴 그려져 있는 것이다.) 소수의 백인 기득권에 의해 자행된 아파르트헤이트 학정에 대항한 남아프리카공화국짐바브웨의 흑인운동가들 역시 공산권의 지원을 받았다. 탄자니아제3세계 국가로서 제1세계와 제2세계 사이에 있긴 했지만, 역시 전형적인 제3세계 국가답게 공산권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했다. 오히려 말라위와 비슷한 처지였던 잠비아, 보츠와나는 상기 국가들과 연합하여 이른바 '전선국가 (Frontline States, FLS)'라는 느슨한 연합체에 속했을 정도.[7] 치하나는 1993년 국민투표 4일 전에 석방됐고, 이후 1994년 총선에서 민주주의연대(Allliance for Democracy, AFORD)의 당수로 활약해 1994년 총선 후 부통령으로 활동한다.[8] 1997년 99세에 사망했다.[9] 실제로 차퀘라는 신학박사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렇기에 한국의 순복음교회에서 말라위 오순절교회 연합회의 회장까지 지냈던 차퀘라를 2022년에 초청하기도 했지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이단교회 쪽에서도 똥파리짓을 하게 되는데(…) 구원파계인 기쁜소식선교회에서 같은 해에 대통령궁을 예방하기도 했다.[10]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변호사로 있을 때 인도인이 영국인과 동등한 권익을 얻을 수 있도록 힘썼지만 흑인에 대해서는 무시했다는 비판이 있다. 아프리카에서 간디에 대한 평가는 복합적이며 오히려 간디보다는 인도의 독립에만 치중했고, 식민제국주의 시대 종식 후에는 여타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들과의 연대를 꾀했던 자와할랄 네루와 혹은 그의 딸인 인디라 간디를 높게 평가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다만, 동아프리카 지역 경제계를 장악하고 있는 인도계의 수가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간디 동상 건립은 일어날 만한 일이긴 하다.[11] 탄자니아모잠비크에선 니아사(Nyassa탄자니아/Niassa모잠비크)로 부른다. 모잠비크의 니아사 주 역시 면접한 말라위 호/니아사 호에서 이름을 땄다.[12]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은 킬리만자로(Kilimanjaro) 산. 해발 5895m.[13] 이 통계에 따르면 말라위보다 가난한 나라는 남수단, 시에라리온, 아프가니스탄, 부룬디 4개국밖에 없다.[14] 다만 이쪽은 2009년 마다가스카르 정치 위기 항목을 봐도 알 수 있듯 정세가 상당히 혼란스러운 나라이다. 정세가 안정적인데도 이 정도로 가난한 나라는 북한과 말라위가 전부다.[15] 2012년 수출 수익의 1/3을 담배가 차지했으며, 2000년에는 세계 최대 담배 생산국 10위를 기록할 정도였다.[16] 그런데 극심한 기근에 먹는 쥐고기가 식량이 덜한 때에는 은근 별식으로 통한다. 외국에 체류 중인 말라위인이 쥐고기가 생각난다면 본국에 배송 요청을 하기도 한다고.[17] 한국으로 치면 과거 정부가 추곡수매를 통해 쌀 가격을 통제했던 원리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한국의 쌀 가격 통제는 식량 확보 및 쌀 산업 보호, 보조금 투입을 통한 농가소득 보전의 성격이 크다.[18] Joshua Kurlantzick, 2013, Democracy In Retreat, Yale University Express;조슈아 컬랜칙, 2015, 어떻게 민주주의는 망가지는가, 노정태 역, 들녘, 101-103면. 이상의 식량위기 내용은 이 책을 참고.[19] 바다 건너 이탈리아처럼 그리스 역시 수도 아테네 등이 위치한 남부와 테살로니키 등 북부 지역 간의 지역감정이 존재한다. 자세한 건 지역갈등/유럽 문서 참조.[20] 호전적인 주변국가로 DR콩고모잠비크, 짐바브웨 등의 국민들이 손에 꼽힌다.[21] 심지어 제대로 된 장비도 없어서 폐지와 계란 케이스로 과녁을 만들어 썼을 정도로 열악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