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국노/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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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등재 기준[편집]


1. 일제강점기의 매국노는 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中 '매국, 수관' 등을 차용할 것
1. 일제강점기 이후의 매국노는 주권, 이권의 해석을 최대한 좁게 보아 외환죄(외환유치죄, 여적죄, 간첩죄, 간첩방조죄, 군사상기밀누설죄 등)에 연루된 사건을 사안에 따라 개별적으로 토론할 것을 권함
1. 정상참작이 가능한 경우, 애매한 경우나 관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경우에는 ☆표시


2. 한국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매국노/목록/한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해외[편집]


이하의 여러 사례 중 (주로) 서양의 경우 민족 국가 개념 형성 이전 시대 인물들은 매국노라는 단어로 재단하기가 모호한 부분이 많다. 18세기까지만 해도 봉건적 지배권, 왕가의 혈통 같은 개념이 국가보다 앞섰고, 일반 백성들에게는 '국가에 충성(혹은 하지 않으면 반역)'이라는 의식이 없었다.



3.1. 그리스[편집]


  • 디미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의 동생이자, 동로마의 제후국인 모레아 전제군주국의 통치자였다. 형이 마지막까지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우다가 조국과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맞은 것과는 달리, 함께 모레아를 통치하던 동생 토마스 팔레올로고스를 축출하기 위해 오스만군을 끌어들였다. 이후 술탄 메흐메트 2세제후로서 모레아의 단독 통치자로 인정받기를 기대했으나, 토사구팽당해 아드리아노플에서 연금된 상태로 10년 동안 비참하게 살다가 죽었다.
  • 알렉시오스 4세: 부황이었던 이사키오스 2세의 한을 갚는다는 명목으로 백부를 유폐시켰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십자군을 개입시켜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로마 황제로서도 암군이었다.
  • 에피알테스: 테르모필레 전투 당시 페르시아군에게 우회로를 가르쳐줘 그리스 연합군의 패퇴를 야기한 자. 결국 암살자에 의해 죽게되며 그의 이름은 악몽이란 부정적인 뜻으로 기억되게 된다.
  • 오레스테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케네의 왕자 오레스테스와는 동명이인으로 서로마 제국의 실권자였던 인물이다. 자신의 조국 로마를 안보를 위협하는 훈족의 왕 아틸라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고 측근이 되어 호의호식하다가, 아틸라 사후에 아틸라의 아들들이 내전을 벌여 훈족이 쇠퇴하자, 서로마로 돌아와 당시 실권자였던 리키메르에게 아부하여 사면받고 등용되었다. 리키메르 사후에 정권을 승계했던 리키메르의 조카 군도바트가 동로마에서 임명된 황제 율리우스 네포스에 의해 실각[1]한 이후, 리키메르 지지자들을 규합하여 율리우스 네포스를 축출함으로써 정권을 장악했다. 그는 게르만족 혈통인 리키메르나 군도바트와는 달리 태어날 때부터 로마인이었기에 황제가 되는데 법적인 하자는 없었으나, 아틸라에게 부역한 경력 때문에 이미지가 안 좋아서 직접 즉위하지 않고 아들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황제로 추대했다. 그러나 정권을 잡은지 1년 만에 게르만족 용병대장 오도아케르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는데 실패하여 살해되었고, 그의 아들이 폐위됨으로써 서로마 제국은 멸망하였다. 다만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는 나이가 어려서 살해되지는 않고 연금을 받으며 살 수 있었는데, 정확히 언제 사망했는지는 알 수 없다.
  • 요르요스 촐라코글루, 콘스탄티노스 로고테토풀로스, 요안니스 랄리스: 나치 휘하 그리스국의 총리들로 전원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3.2. 네덜란드[편집]



3.3. 노르웨이[편집]


  • 비드쿤 크비슬링: 아예 영어로 Quisling이라는 단어까지 만든 노르웨이의 매국노. 노르웨이인들의 분노가 얼마나 강했는지 없어졌던 사형제도를 전격 부활시켜 그에게만 적용했을 정도다. 참고로 나치 협력자에 대한 처벌을 보면 오히려 프랑스는 처벌 대상자에게는 혹독한 대신 정작 처벌 대상의 비중이 낮은 편이며, 반대로 다른 유럽 국가들은 처벌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하지 않고 관용을 베푸는 대신 사소한 협력 행위도 반드시 책임을 물었다. 매국 행위는 무작정 두들겨패는 게 능사가 아니라 처벌을 통한 범죄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 크누트 함순: 1920년노벨문학상을 받은 노르웨이의 대문호지만 1940년 4월 9일 아돌프 히틀러노르웨이를 침공하자 영국의 노골적인 침략 위협에서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독일이 왔다고 주장했다. 그것도 모자라 히틀러가 자살한 후에는 그를 추모하는 라디오 방송을 하는 등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나치를 찬양하는 행보를 보이다가 그간 쌓아온 명예와 전 재산을 날려먹고 비참한 말년을 보냈다.


3.4. 독일[편집]




3.5. 러시아[편집]


  • 러시아 인민해방위원회[3]: 독소전쟁 당시 소련에 반대하는 소련인들이 조직한 정부로, 독일과의 강화 조약을 체결하고, 공산 정부를 무너뜨리고 민주적인 신정부 수립이 목표였다. 이들은 러시아 해방군을 조직하여 독소전쟁에 참전하기도 하였다. 다만 러시아 해방군은 대부분이 자원자가 아닌 소련군 포로였다.
    • 안드레이 블라소프☆: 나치 독일동부 전선에서 소련에 대항하는 의미에서 설립한 괴뢰 조직인 러시아 해방군의 총사령관이다. 명명백백히 러시아인들에게는 매국노가 따로 없지만, 이 사람은 이오시프 스탈린의 독재와 소련체제의 억압에서 러시아 민중들을 구하려고 그런 거라서[2], 동정의 여지가 많다. 심지어 이 사람은 아무런 전범 행위도 하지 않았고, 부하들이 소련으로 송환될 때 그들을 버리지 않고 소련군에 투항해서 함께 끌려가서 죽었으므로, 친서방 성향의 러시아인들은 그를 의인으로 여겨 추모하기도 한다.
    • 세르게이 부냐첸코
  • 블라디미르 레닌☆: 러시아에서 쫓겨나 스위스에서 망명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 도중에 양면전쟁으로 고통 받던 독일 제국의 지원으로 모국인 러시아를 뒤집어 엎어서 전쟁에서 이탈시켰다. 그것도 모자라서 엄청난 땅을 독일에게 떼어준 것은 덤. 물론 국제주의적인 공산주의자 입장에서는 매국노가 아닐 수는 있으나 반동 제국주의 군주국의 지원을 받고 엄청난 영토를 내어준 것은 도저히 변호해 줄 수 없다.[4]
  • 자유 러시아 군단☆: 푸틴 정권의 입장에서는 매국노이지만 반전주의 성향 러시아인들 및 우크라이나인들에게는 러시아군 윗선의 압박 앞에서 소신을 지킨 정의롭고 용감한 러시아인으로 여겨진다. 임진왜란 당시의 항왜들과도 비슷한 케이스다.
  • 일리야 포노마료프
  • 러시아 파시스트당
  • 아나스타시 본샤츠키
  • 그리고리 세묘노프


3.6. 루마니아[편집]


  • 라두 3세☆: 루마니아의 민족 영웅이자, 왈라키아 공국의 공작인 형 블라드 가시공오스만 제국과 손잡고 몰아내고 공작위를 찬탈한 인물이다. 하지만 당시 오스만 제국은 유럽 최강대국으로 등극했을만큼 전성기를 맞이한 상태여서 이들과 맞서는 게 왈라키아의 국력으로는 무리였던데다 어쨌든 자국의 민중들을 보호하고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보전하려고 애쓴 사람이라서, 중세 왈라키아인들의 후예인 현대 루마니아인들은 라두 3세를 매국노가 아니라 형 블라드 가시공에 이은 또 한 명의 민족 영웅으로 여긴다.


3.7. 멕시코[편집]


  • 말린체: 도냐 마리나라고도 함. 말린체를 매국노라 하는 것 부터가 코미디인데 말린체는 아즈텍인이긴커녕 오히려 아즈텍에 끌려온 타국의 백성이었다.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는 그의 노예이자 첩자이면서 정부인 도냐 마리나(Doña Marina)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렇게 많이 정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원래 이름이 말린친이었던 마리나는 기독교로 개종한 후 아즈텍 이름을 버리고 개명했다. 아즈텍어와 마야어는 물론 스페인어에도 능통했던 마리나는 코르테스의 연인뿐만 아니라 그의 조언자이자 협력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정복자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가 아즈텍 제국을 파괴하는 데도 거들었다. 멕시코에서는 'La Malinche'로 알려진 마리나의 배신 행위는 스페인어로는(아즈텍어가 아니라) 'Malinchista'로 자리잡았다. 이 단어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모국어와 동포를 버리는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말린체의 경우 원래 아즈텍의 노예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아즈텍에 대한 소속감이 거의 없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음을 고려한다면 매국노라기보다는 오히려 압제자에게 보복한 것에 더 가깝다. 마치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에게 대동아공영권을 배신했다고 하는 격이다. 독립 후 오랜 세월이 지나고 현대 멕시코 역사가들에게 민족주의를 고양시킬만한 대상으로 아즈텍 제국이 꼽혔기 때문에 일어난 사달이다.


3.8. 미국[편집]


  • 도쿄 로즈
  • 로버트 한센[5]: 미국 역사상 최악의 간첩 중 하나. 1976년부터 2001년까지 FBI의 방첩 책임자로 근무했다. 1981년부터 1985년까지를 제외하고는 소련의 GRU의 스파이로 일했는데, 단돈 140만 달러와 다이아몬드를 대가로 소련에 수천 개의 기밀문서를 팔아넘겼다. 이 기밀 문서 안에 든 내용들은 미국의 군사 무기 기술의 발전, 미국의 방첩 프로그램의 측면들을 넘어 무려 핵 공격 시에 사용할 수 있는 보호 시설의 위치를 위시한 핵전쟁 발생 시 쓸 미국의 전략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 정도 내용이면 그야말로 한 개 문서가 이웃나라에 넘어가도 나라가 뒤집힐 만한데 가장 중대한 내용에 가장 엄격히 보호해야 할 문서들이 무려 수천 개나, 그것도 미국 최대의 적국에 넘어갔으니 미국이 엄청 뒤집어졌을 거란 건 안 봐도 뻔하다. 거기에다 미국에 협조하던 소련인들의 정보까지 KGB에게 넘겨 두 명은 사형당하도록 하는 등 그야말로 나라에 온갖 해를 끼쳤다. 더욱 놀라운 것은 소련 측에서 먼저 접근한 것도 아니고 그가 자발적으로 접근해서 기밀을 팔았다는 것이다. 2001년 2월에 발각되었고 유죄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15번 선고받고 ADX 플로렌스 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2023년 6월 5일에 사망했다. ADX 플로렌스 교도소가 어떤 곳인지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죗값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인과응보의 결말을 맞이한 셈이다.
  • 올드리치 에임스[6] - CIA의 방첩 책임자로서 1984년부터 1994년까지 구소련의 간첩으로 일했고,[7] 미국의 외교, 국방, 안보, 대소 정보 작전에 관한 수천 건의 기밀문서들을 소련에 유출한 것은 물론이고 특히 CIA와 FBI가 몇 년간 포섭해와 미국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던 소련인 이중스파이 10명의 리스트를 누설해 이들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들고는 그나마 사치 생활은 하지 않았던 한센과는 달리 이쪽은 간첩행위로 얻은 돈 460만 달러로 호화저택과 고급 자동차까지 구입하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다가[8] 모든 것이 발각된 이후 1994년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인디애나 주의 테러 호트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해악이 어느 정도였는지 이 사람 한 명 때문에 CIA가 해체될 뻔했다고 한다.
  • 베네딕트 아놀드: 독립 전쟁 당시의 미국 장군으로 영국군과 내통한 건 물론이고, 자기가 이끌던 부대와 요새를 전부 넘기려 했던 반역자. 사실 이 전쟁 중에 매국노가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도 베네딕트 아놀드만 매국노 취급을 받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이 것만 아니었어도 독립유공자가 되었을 텐데 결국 매국노로 완전히 낙인찍혔다. 현재도 미국인들은 그를 미국판 이완용으로 볼 정도. 실제로 현재 미국 남자이름중에서도 베네딕트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베네딕트 아놀드도 미국 대륙회의에 팽당했던 전력이 있는지라…
  • 제임스 드레즈녹☆: 미국 출신의 매국노인데 미군 복무 중 월북해서 인민군 군관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교관이 되었다. 하지만 정황상 동정이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이 사람은 월북한 이유도 자살 시도를 하기 위해 비무장지대로 건너간 것이다.
  • 프리츠 쿤
  • 에즈라 파운드


3.9. 몰도바[편집]


  • 트란스니스트리아 분리주의자들☆: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 더 나아가 베사라비아 전체를 러시아에 넘기려 들고 있다.


3.10. 베네수엘라[편집]


  • 후안 과이도☆: 2019년 베네수엘라 정치 경쟁에서 실패한 결정적인 원인이 서구 사회의 지원을 등에 업었다는 점에서 민중들에게 매국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3.11. 베트남[편집]


  • 레 반 비옌: 일명 바이 비옌. 베트남 최악의 갱단인 빙쑤옌(Bình Xuyên, 平川)을 이끈 정치깡패.
빙쑤옌은 본래 프랑스 식민통치기 말기에 일종의 의적 컨셉으로 프랑스 식민정부나 부역자들을 상대로 약탈하던 수적 집단이었으나, 결국 바이비옌이 우두머리가 된 50년대로 들어서면 그냥 깡패 군벌세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베트민이 먼저 동맹을 깨고 배신해서 목숨을 위협받았으니만큼 프랑스와의 협력 자체는 매국행위라고까지 볼 건 없지만, 그 이후 프랑스의 지원을 업고 사이공의 경찰권을 장악하고 온갖 행패를 부려 결국 이론의 여지가 없는 매국노로 등극한다. 결국 응오딘지엠이 집권하자마자 전차를 동원하여 강경진압한다. 빙쑤옌은 박격포와 대전차무기로 저항했지만 숫적으로 우세한 정부군을 이길 수는 없었고 바이 비옌은 간부들을 처형당하도록 내버리고 혼자 프랑스로 도주한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도 제 버릇 못 버리고 베트남인 갱단을 여러 번 조직한다.


3.12. 사라왁[편집]


  • 압둘 라흐만 야쿱: 조국인 사라왁을 배신하고 식민통치를 하는 말레이시아를 위해 일하며 사라왁을 사실상 멸망으로 몰아넣은 사람이다. 말레이시아 입장에서는 '말레이시아를 위하여 일했다'고 해서 애국인사로 추앙받지만 사라왁에서는 매국노에 민족 반역자로 욕만 쳐먹는다.


3.13. 스페인[편집]


  • 서고트 왕국의 귀족들과 유대인들☆: 왕에 반발하여 나라를 이슬람 제국에 나라를 팔아먹었고, 결국 스페인700년동안 국토를 되찾기 위해 전쟁을 해야 했다. 다만, 이들의 이런 매국 행위는 당시의 이슬람 제국 세력을 일반적인 봉건 세력과 똑같다고 착각해서 그런 거고[9], 이들이 서고트인들과 그들의 문화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를 가하자[10], 일부 진짜배기 매국노들을 제외하면 도로 이슬람에 맞서 싸웠고, 이때 정신을 차린 매국노들 중에서 지금의 아스투리아스 지방에서 봉기한 세력이 현존하여 현대 스페인 왕국의 모태가 되었다.


3.14. 아프가니스탄[편집]


  •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의 대통령이었으나, 결국 탈레반에 의해 아프간이 장악당하자. 별다른 후속조치도 없이 국민들과 나라를 그대로 버려둔채 자기는 곧바로 안전한 외국으로 도주하였으며. 이후, 탈레반에게 1억 1천만 달러를 받고 아프간을 팔아넘겼다는 문서가 폭로되면서 아프간 국민들에겐 최악의 매국노로 남게 되었다.


3.15. 알제리[편집]


  • 아르키(Harki, حركة): 알제리 전쟁 당시 자신들의 원래 조국인 알제리를 저버리고 프랑스 편을 들어 독립운동가들을 죽이던 알제리인 민병대이다. 당연히 알제리의 독립 후에 분노한 알제리인들의 린칭을 받아 살해되거나 프랑스로 도피해야만 했다.


3.16. 영국[편집]


  • 가이 포크스
  • 에드워드 8세: 영국의 전 국왕.[11]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이 연합국으로 참전해 나치 독일과 맞서싸우는 와중에도, 지속적으로 아돌프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독일을 방문하며 적국을 찬양 및 고무하였다. 급기야 영국의 군사 계획을 독일 측에 누설하는 반역에 가까운 짓까지 저질렀다. 게다가 자국민이 죽던 말던 독일 측에게 효과적인 폭격이 이루어진다면 영국이 평화적으로 나올 거라는 망언까지 전달했고, 그 말을 한 지 1달만에 영국 본토 항공전이 일어나 영국의 수많은 국민들이 사망했다. 부인인 월리스 심프슨 역시 독일 측 스파이가 아니냐는 음모론이 돌 정도로 나치와 친밀한 관계였다. 결국 이들 부부는 세트로 영국 총리와 왕실에게 제대로 찍혀 쫒겨나다시피 프랑스로 떠나 그곳에서 살아야 했고, 종전 이후에도 왕실 행사에 참석할 때를 제외하고는 죽을 때까지 영국 본토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 오스왈드 모슬리: 입헌군주제 국가인 영국을 파시즘 국가로 만드려 했다. 제3제국의 장검의 밤 이후 사실상 영향력을 잃었으나, 전후에 다시 파시즘 운동을 전개했다.
  • 윌리엄 조이스: 독일의 대영 선전방송의 진행자. 반 협박으로 선전방송을 떠맡은 도쿄 로즈와 달리 이 인간은 지가 좋아서 히틀러가 자살하는 그 날까지 나치에 붙어먹었다.
  • 케임브리지 5인조: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하여 조국 영국을 배신하고 소련의 간첩이 되어 수많은 공작으로 조국에 엄청난 피해를 끼친 영국인 간첩 5인조를 가리키는 표현인데, 이들 전원이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신이라서 이렇게 부른다.


3.17. 이탈리아/고대 로마[편집]





3.18. 인도[편집]




3.19. 스위스[편집]




3.20. 오스트리아[편집]


  • 아돌프 히틀러☆: 조국 오스트리아를 저버리고 오스트리아를 내부 동조자들과 함께 독일에게 합병했다. 다만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의 관점에서 매국노로 취급받으며, 독일 관점에서는 매국노라기보단 외국인 출신 독재자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당대에는 독일인이나 오스트리아인들이 서로를 외국으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에는 그를 보고 독일어권의 통일이라는 국가적 숙명을 완수한 국가적인 영웅으로 인식하는 여론이 강했다. 아예 나치당과 대립하는 독일 사회민주당이나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도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것을 두고 두 손 들고 환영했다.
  • 오스트리아 나치당☆: 원래 오스트리아에선 독일과 통합해야 한다는 대독일주의가 지지를 얻고 있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에 패전하며 나치 독일이 멸망하며 도루묵이 되어버렸다.
  • 아르투어 자이스잉크바르트☆: 오스트리아 병합을 주도하고 네덜란드 국가판무관이 된 오스트리아의 매국노이자 네덜란드인 20만명을 죽인 전범. 당연히 전범 재판에서 처형되었다.

3.21. 우크라이나[편집]




3.22. 리투아니아[편집]




3.23. 유고슬라비아[편집]




3.24. 일본[편집]


  • 오카모토 타케시
  • 타미야 타카마로
  • 항왜☆: 일본(특히 근현대 이후) 입장에서 보면 매국노. 다만 당대 일본은 조선과 달리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없고, 조선 왕에 대한 충성도 다이묘를 바꾸는 정도로 생각한 경향이 있음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사실 항왜의 거의 전부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개인을 싫어할 뿐이지 천황과 일본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도 이들이 한 행동은 조국의 조선침략을 막은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3.25. 중국[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매국노/목록/중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26. 중화민국[편집]


  • 대만 내 친중파
    • 황안: 쯔위 사태의 주범. 중화민국 출신이면서 중화 인민 공화국에 아부한 자로 중국 공산당 분청의 입장에서 보면 애국자이지만[12] 중화민국 입장에서 보면 매국노.
    • 중국 국민당


3.27. 체코슬로바키아[편집]



3.28. 캄보디아[편집]


  • 훈 센☆: 고국의 최대 적국이던 베트남과 손을 잡아 베트남이 고국을 침략해 괴뢰국 캄푸치아 인민공화국을 세우는 것을 돕고 그 괴뢰국의 수상으로써 권력을 잡은 것만 보면 매국노처럼 보이겠지만, 그 고국이 사실은 폴 포트가 다스리는 민주 캄푸치아였고, 당시 벌어진 일이 킬링필드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상참작할 수밖에 없으며 어느 누구에게도 매국노 취급받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잘못된 신념을 바탕으로 고의적으로 나라의 모든 인프라를 파괴해버린 폴 포트가 더욱 매국노스러운 짓을 했다.

3.29. 폴란드[편집]


  • 브로니슬라프 카민스키☆: 자신의 조국 벨로루시와 폴란드를 지옥으로 만든 장본인. 다만 악질 전범이지만 그와 별개로 악질 매국노라고는 보기 힘들다. 젊었을 적에 적군에 가입해 싸웠지만 스탈린의 재앙적인 집단농장 정책을 비판한 혐의로 대숙청의 칼날을 맞아 수용소에 갇혔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폴란드 혈통이지만 어머니는 독일 혈통이라 폴란드 입장에서도 매국노라 볼수 없다.
  • 콘스탄틴 로코솝스키☆: 폴란드 귀족의 후예였음에도 불구하고 소련군에 입대해서 무수한 공을 세웠으나, 폴란드인들을 무수히 살육했다. 폴란드 입장에서는 매국노. 본인도 소련의 애국자라고 생각했으며 현재도 폴란드에서는 그를 증오하는 반면 러시아와 기타 소련 구성국들은 그를 영웅 대접한다. 애초에 로코솝스키는 폴란드인이라는 생각이 없었는데 스탈린이 폴란드계라는 이유로 폴란드 통치자의 자리에 앉힌 것.


3.30. 프랑스[편집]


  • 모리스 파퐁: 비시 프랑스 당시 나치 점령군 밑에서 부역하며 유대인 1,560명을 추방한[13] 프랑스 공무원. 나치가 패배할 기미가 보이자 샤를 드 골에게 빌붙어 알제리 전쟁 때에는 알제리 독립운동 탄압에 참여하여 훈장을 받기도 했고, 이후에는 파리 경찰서장으로 재직하면서 1961년에는 파리 중심부에서 열린 알제리인들의 독립운동 시위를 유혈진압하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고[14] 후에는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정권에서 예산 장관까지 맡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1981년에 나치 부역 전력이 폭로되고는 1999년에 재판에 회부되어 재판 장면이 전국에 생중계되는 굴욕을 당한 후 감옥에 갇혔다. 그 뒤 파퐁은 중병을 이유로 3년도 안 되어 사면되었고, 이후 요양생활을 하다가 2007년에 향년 9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 부르고뉴파☆: 백년전쟁 당시의 부르고뉴프랑스의 한 지방임을 부정하고 독립하려고 했다. 심지어는 부르고뉴 독립운동이 백년전쟁 이후까지 이어져서 프랑스와 혈전을 치르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날의 프랑스 국수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당시의 프랑스 왕실에 대한 지지도는 크게 바닥을 치고 있었다. 이 시기의 파리 시민들은 잔 다르크가 이끄는 왕당파 의용군을 보고 환영은 커녕 영국군과 협력해서 뜨거운 물까지 끼얹으면서까지, 살벌한 공성전을 벌였고 잔 다르크에게는 마녀라며 꺼지라는 둥 갖은 욕지거리까지 할 정도였다. 잔 다르크를 죽게 만든 것 때문에 욕을 먹지만 중세 시대 사람들에게 현대적인 민족주의 헤게모니를 적용시키는 것은 무리수다.[15]
  • 알렉상드르 빌라플란: 나치 독일에 빌붙어서 레지스탕스들을 살해한 인물.
  • 자크 도리오
  •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 프랑스인으로서 프랑스군과 싸우고 스웨덴의 왕이 되었다. 자세한 건 해당 항목 참조. 프랑스 입장에서는 매국노라 봐도 할 말 없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매국노.
  • 조세프 다르낭: 프랑스의 친나치, 반유대주의 단체인 밀리스 프랑세(Milice française)의 단장.
  • 코코 샤넬: 나치 독일의 스파이였지만, 그나마 고국에 피해를 입힌 것은 적었기에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 폴 투비에
  • 페르낭 드브리농: 비시 프랑스의 파시스트로 그의 부역은 피에르 라발 못지 않았다.
  • 피에르 라발: 비시 프랑스의 인물들 중 나치에게 가장 열심히 부역한 자이다.
  • 피에르 코숑☆: 잔 다르크를 화형시킨 보베의 주교. 랭스 태생으로 랭스 대성당의 주교 대리, 파리 대학 학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백년 전쟁에서 부르고뉴 공의 지지세력으로서 시종일관 영국 편에 선 인물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권력욕 때문에 어거지로 잔 다르크를 화형시킨 뒤에도 헨리 6세의 프랑스 왕 대관식에 참석했다. 샤를 7세가 파리를 탈환하자 루앙으로 도망갔으며 그곳에서 1442년에 사망했다. 별표인 이유는 위 부르고뉴파 참조. 물론 이렇게 봐도 자신의 권력욕 때문에 잔 다르크를 어거지 재판으로 화형시킨 것은 마땅히 욕먹는 이유이며 사후 사망 이후 교황 갈리스토 3세에 의해 잔 다르크 명예회복과 함께 파문을 당했다.
  • 필리프 페탱☆: 제1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나치에 항복하여 비시 프랑스의 수반이 되었다. 원래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그래도 늦게나마 나치와의 협력을 거부하다가 감금된 점. 그리고 실무는 피에르 라발이 중심이었다는 점(전후 전범으로 처형) 등을 감안하여 드골이 무기징역으로 형량을 낮추었으며, 일반 감옥에 가두지 않고 섬에 유배시키는 등의 배려를 했다. 1951년 유배지에서 병사했다.[16]


3.31. 홍콩[편집]



4. 창작물 속의 매국노들[편집]


어디까지나 "국가"나 "민족"에 한정되며, 배신한 국가를 가로 표시한다. 다만 전근대인 경우 애매한 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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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 로마 신화
    • 코마이토(타포스): 타포스의 공주. 적장 암피트리온에게 반해 아버지 프테렐라오스와 나라를 배신한다. 그러나 암피트리온은 코마이토의 배신에 분노하여 그녀를 죽인다.
    • 스킬라(메기라): 메가라의 공주. 적장 미노스에게 반해 아버지 니소스와 나라를 배신한다. 그러나 미노스는 스킬라를 버린다.
    • 헬레노스(헬레노스): 트로이의 왕자. 헬레네를 두고 데이포보스와 경쟁해서 지고 성을 나왔다가 오디세우스에게 붙잡혔다. 그리스 연합군에게 트로이를 멸망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아버지 프리아모스와 조카 아스티아낙스를 죽인 네오프톨레모스의 부하가 된다.
    • 안테노르(트로이): 트로이의 장로 중 하나. 조국 트로이를 배신하고 그리스를 도와 트로이를 멸망시킨 인물. 단테의 지옥에서 제9지옥의 제2원은 안티노라는 그의 이름을 딴 지옥이다.

  • 레젠다리움
  • 얼음과 불의 노래 - 루스 볼턴, 왈더 프레이(북부-리버랜드 왕국)
  • 울펜슈타인 시리즈(2009년판부터) - 레오니드 알렉산드로프(러시아), 오스트리아 나치당, 프리드리히 켈러(프랑스), 아이작 애스터(영국)
  • 진격의 거인 - 칼 프리츠, 타이버 가문(에르디아)
  • 은하영웅전설 - 욥 트뤼니히트(자유행성동맹)
  • 코드 기어스
    • 를르슈 람페르지(신성 브리타니아 제국)☆ - 자국이 침략 전쟁을 벌인 것에 대해서 맞서 싸웠다. 다만 이는 개인적인 복수심 때문에 브리타니아와 맞서 싸운 것이고 목적 자체가 자신의 여동생 나나리를 지키고[17] 브리타니아를 부순다[18]는 개인적인 이유[19]였다. 하지만 브리타니아의 제국주의 체제에 분노한 것은 맞고 나중에 나나리 하나만을 위해 싸워온 게 아님을 깨닫는다. 덧붙이자면 패륜아이기도 하다.
    • 쿠루루기 스자쿠(일본) - 일본을 위한다면서 브리타니아에 협력하지만 결국 일본의 독립을 막는 행동일 뿐이었다. 단순히 매국노로 보기엔 어폐가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무장 투쟁은 옳지 않다는 개인의 신념 때문에 적국의 군인이 되어서 독립 운동을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인물이라 매국노로 봐도 무리가 없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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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군도바트는 자신의 출신 민족인 부르군트족의 지지는 여전히 확보하고 있었기에 갈리아 남부에서 부르군트 왕국의 왕이 되었다.[2] 그리고 소련이 비록 러시아 중심으로 돌아가고, 공용어도 러시아어를 쓸 정도였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헌법 단계에서 민족주의를 철저하게 부정하는 모습(러시아 민족주의도 포함.)을 보인 까닭에, 독일이 침공해오자 이를 반기는 러시아인들도 상당히 많았다. 참고로 이들을 나치의 적으로 돌아서게 만든 건 나치 독일 자신들이었다. 게르만 우월주의에 심취해서 슬라브계인 러시아인들을 다 죽이고 이곳을 독일인의 땅으로 만들겠다고 떠들고 다녀서, 독일군이 도저히 대화가 안 되는 미친 놈들이었음을 깨달은 러시아인들이 죄다 소련군에 협력하는 입장으로 돌아선 것이다.[3] 러시아 인민해방위원회에는 소련인들 뿐만 아니라 러시아 내전 이후 망명한 백군들도 있었다.[4] 사실 잃은 영토를 언젠가는 수복하고 독일까지 집어삼킬 계획이었지만 러시아 내전을 완전한 승리로 이끌지 못해서 결과적으로 레닌의 혁명으로 인해 러시아는 폴란드, 발트 3국, 핀란드 등을 상실했다. 다만 이오시프 스탈린 시절에 독소 불가침조약으로 독소 폴란드 점령을 하고, 베사라비아, 발트 3국을 되찾긴 했다.[5] Robert Philip Hanssen, 1944~2023[6] Aldrich Hazen " Rick " Ames, 1941~[7] 다만 CIA 근무 자체는 1962년부터 시작했다.[8] 연봉이 6만 달러였는데 5만 달러의 재규어 자동차는 물론이고 4만 5천 달러의 저택을 현금으로 구입했고, 주택 리모델링과 장식 비용에 99,000달러를 썼다.[9] 당시에는 같은 기독교인 영주들끼리 전쟁이 벌어지면, 내부의 귀족들이나, 도시들이 자신들의 자치권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적대 세력에게로의 이적 행위를 벌이는 일이 잦았는데, 그러면 이들의 도움으로 해당 세력을 쉽게 장악한 적대국에서 자발적으로 투항한 세력들에게 고도의 자치권을 주고 자신들의 봉신으로 인정해서 보답을 해주었다. 어차피 중세 유럽 사회는 민족주의보다 종교가 더 중요히 여겨지던 시절이었으니, 백성들도 웬만해선 이런 짓을 매국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근데, 서고트 왕국의 귀족들이 투항한 세력은 기독교인이 아닌 이교도였고, 이들에게는 이런 암묵의 룰이 통하지 않았으므로, 투항해 온 귀족들이 뒤늦게나마 반기를 들고 결사투쟁을 벌였다. 그리하여 이슬람으로 개종한 소수의 서고트인 귀족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서고트인 귀족들은 북부의 아스투리아스 지방으로 도망쳐서 항쟁을 계속했다.[10] 당시의 이슬람 제국 군대가 서고트 왕국 시절의 문화재들을 우상 숭배라면서 대대적으로 박살내서, 현대까지 서고트 왕국 시대의 문화재는 현존하는 게 별로 없다. 이 때문에 고트족서고트 왕국에 대한 연구도 극심한 애로사항을 겪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알안달루스 문명의 후예를 자처하는 모로코계 스페인인들이 이슬람 제국의 지배 덕분에 스페인이 관광대국이 되었다고 주장하면, 토착 스페인인들은 이슬람 제국의 지배가 없었다면 대신 서고트 왕국의 문화재를 통해 관광대국이 될 수 있었을 거라고 반박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11] 아래에 후술된 심프슨 부인과의 결혼으로 동생 조지 6세에게 양위했다.[12] '중국 공산당'에 취소선이 그어진 이유는, 당시 황안이 보여준 추태 때문에 중화민국과 대한민국에서 반중 감정에 불만 제대로 붙었기 때문. 이 사건이 일어나면서 (그나마 중국 공산당에 우호적이던) 중국 국민당제14대 대만 정부총통 선거제9대 대만 입법위원 선거에서 쪽박을 차고, 노골적인 반중 성향인 민주진보당이 집권하고 말았으니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긁어 부스럼만 만들었다는 여론이 터져나왔다. 현재 대륙에서 황안을 보는 시선은 떨떠름 그 자체.[13] 그 유대인들은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었다. 파퐁 입장에서는 강제수용소의 존재는 전혀 몰랐고 단순히 추방 정도로만 알고 있었으니 추방으로 표시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파퐁은 홀로코스트의 동조자였던 셈이다.[14] 다만 레지옹 도뇌르 훈장 자체는 이 학살 3개월 전에 수여받았기에 이 학살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15] 백년전쟁보다 훨씬 이후의 시기를 다룬 소설 삼총사에서도 주인공 달타냥이 스스로를 프랑스인이라고 지칭하지 않고, 고향인 가스코뉴를 앞세워 가스코뉴인이라고 하거나 리슐리외 추기경을 포함한 나머지들도 달타냥을 가스코뉴 청년이라고 부를 정도로 이후에도 '하나의 프랑스인'으로서의 의식은 프랑스 대혁명 이전까지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16] 다만 페탱 원수는 프랑스 제3공화국의 정치적 혼란과 지도층의 무능 속에서, 1차 대전의 영웅에게 의지해보고자 하던 의도 하에 스페인에서 돌아와 수장직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후 비시 프랑스를 수립하였으나, 이는 프랑스의 일부라도 지켜 보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히틀러는 프랑스를 착복하였고, 비시 정권이 없었다면 프랑스는 나치에 의해 초토화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만 정적을 제거하기도 했고, 나치에 협력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자크 도리오나 피에르 라발 같은 악질 매국노는 아니다. 히틀러의 프랑스 포로 살해 협박에 자신을 먼저 죽이라고 말해 무마시킨 일화도 있다.[17] 그 때문에 블랙 리벨리온때 나나리가 V.V.에 납치되자 바로 부하들을 버리고 전선을 이탈한다. 이로 인해 지휘체계에 혼란을 가져오고 전쟁에 패배했다. 게다가 훗날 부하들에게 그에 대한 사과 또한 하지 않았다.[18] 황제를 죽이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원래 죽일 생각은 없었고 기아스를 걸어서 나나리의 안전을 보장하려고 했다는 뒷설정이 있다.[19] 애초에 식민지였던 일본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봉기한게 아니며 작중 일본과 그 부하들을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취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