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1898년)

덤프버전 :



매일신문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매일신문
每日新聞
Maeil sinmun (Daily Newspaper)

국가
[[대한제국|

대한제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제국"
행정구
]]

창간
1898년 4월 9일
종간
1899년 4월 3일
설립자
이승만
양홍묵
유영석 등
전신
협성회회보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 제508호
매일신문
每日新聞
Maeil sinmun (Daily Newspaper)

소재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
분류
등록문화재 / 기타 / 동산
수량 / 면적
1식
지정연도
2012년 10월 17일
시대
1898년 4월 9일 ~ 1899년 4월 3일
소유자
(소유단체)

학교법인연세대학교

1. 개요
2. 상세



파일:매일신문.jpg

《매일신문》[1]



1. 개요[편집]


주간지였던 기존의 협성회회보일간지로 전환하면서 이승만, 양홍묵, 유영석 등이 1898년 4월에 창간한 신문이다. 한국 최초의 민간 일간지이다.[2]


2. 상세[편집]


1면에 논설, 2면에 내보·관보·잡보, 3면에 외국통신과 전보, 4면에 협성회의 회중잡보와 광고 등을 실었다. 순한글 신문이었으며 한글신문시대를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외세에 저항하는 한국 신문의 전통을 확립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1898년 5월 16일자(제32호) 1면에 러시아프랑스대한제국 정부에 대하여 토지와 탄광에 관한 이권을 요구해 온 외교문서를 폭로하여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재정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두고 내분이 일어나서 이승만과 유영석이 해임당했고 그들은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국신문을 창간했다. 매일신문은 그 뒤로도 재정난이 계속되어 1899년 4월 4일자를 끝으로 종간했다.

2012년 10월 17일에 국가등록문화재 제508호로 지정되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7 10:37:22에 나무위키 매일신문(1898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2]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은 2년 앞선 1896년 창간되었으나 주 3회 발간됐기 때문에 일간지는 아니었다. 독립신문이 일간으로 바뀐 시점은 1898년 7월로 매일신문보다 늦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