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상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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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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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호
맹상군(孟嘗君)

(嬀)

(田)

(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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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정곽군(靖郭君) 전영(田嬰)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5월 5일 ~ 기원전 279년

1. 개요
2. 생애
3. 대중매체에서



1. 개요[편집]


중국 전국시대 전국사군자 중 가장 앞시대 인물. 제나라 왕족 출신이다. 대부분의 사서에서는 맹상군이라고 표기하는데, 일부에서는 제나라 출신임을 밝혀 제맹상(齊孟嘗)이라고 적기도 한다. 본명은 전문(田文)이다. 몰년은 기원전 279년으로 알려져 있고, 생년은 미상인데 탄생일은 제나라 역법 기준으로 5월 5일이다. 생년은 미상인데 생일만 잘 알려져 있는 이유는 아래에 나온다. 전국사군자라고는 하지만 다른 인물들보다는 한 세대 위의 사람이다.

많은 식객들을 거느렸던 전국사군자이자 계명구도나 식객 풍환과의 고사로도 유명해 뭔가 대인배스러운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행적을 보면 전국시대의 정치인답게 어두운 일면도 종종 보여줬던 흥미로운 인물이다.


2. 생애[편집]


제나라 위왕(威王)의 막내아들인 정곽군(靖郭君) 전영(田嬰)의 서자로 태어났다. 전영은 전기손빈을 천거할 정도로 안목이 좋았으나 정작 자기 아들인 맹상군 전문의 능력은 알아보지 못했다. 전문은 천첩(賤妾)의 소생[1]인데다가 하필이면 5월 5일에 태어났기 때문에 전영은 재수가 없다며 전문을 버리라고 명했으나, 당연히 전문의 어머니는 전문을 몰래 길렀다가 장성하자 아버지에게 데려갔다. 전영이 왜 안 버렸냐고 고함을 지르자(…) 전문이 나와 물었다.

"설공(薛公)[2]

께옵서는 어째서 저를 버리려 하십니까?"

"속설에 5월 5일에 태어난 아이는 문설주[3]

만큼 자라면 어버이를 죽인다 하지 않더냐."

"…사람 목숨은 하늘에서 받은 것입니까, 아니면 문설주에서 받은 것입니까?"

"……."

"사람 목숨이 하늘에서 받은 것이라면 걱정을 하실 필요가 없고, 문설주에서 받은 것이라면 문설주를 높이면 되지 않습니까?"

전영은 대꾸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신의 KO패를 인정한 것이다.

어느 날 전문은 전영에게 "현손의 현손은 무엇이냐"고 질문해 전영이 모르겠다고 하자[4] 누군지도 모르는 먼 후손에게 재산을 물려주느니 충신과 과부, 선비들에게 나눠주는 게 낫지 않느냐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전영은 전문을 높이 사 그에게 집안일을 돌보게 하고 빈객 접대하는 일을 맡겼다. 사람들이 전영에게 전문을 후계자로 삼으라 권했고 전영은 이를 받아들인다. 이는 아마 조간자 조앙의 일[5]을 본받은 것일 것이다.

맹상군이라 하면 뭐니뭐니 해도 대단한 수의 식객들을 거두고 잘 대접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단 무슨 재주든 자랑할 만한 것이 있는 자는 받아주기로 이름이 나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었고 그 결과 문하에 식객이 바글바글했다고 한다. 적게는 1000명이었다고 하고 많게는 3000명이라는 설까지 존재한다. 위의 일화에서 떡잎이 보이듯이 젊은 시절부터 식객을 잘 대접하던 맹상군은 점점 집안 살림을 거덜내가며(…) 식객을 모으는 데 주력했는데 이 일로 개인 파산까지 겪곤 했다. 일설에는 그가 혼인을 못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정도.[6]

식객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영지였던 설읍이 아예 맹상군 랜드였던 듯하다. 맹상군의 식객에 대한 이야기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이후에도 사람을 대접하기 좋아하는 사람, 특히 능력 있는 사람을 우대하거나 사람을 모아서 큰일을 시도하려 하는 사람을 맹상군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염상섭의 소설 삼대에서 식료품 상점을 차린 병화가 그 가게의 수입을 기반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모으거나 교육시키겠다고 하자 덕기가 붉은 맹상군 나셨군이라고 비아냥거리는 부분이 있다. 사마천은 《사기》 맹상군열전에서 자신이 설읍에 들렀을 때 노인과 나눈 대화를 실었다.

내가 일찍이 설읍을 지난 적이 있는데 공자(孔子)의 고향인 노나라나 맹자(孟子)의 고향인 추나라와는 달리 그 풍속이 문란했다. 설읍의 노인에게 물어보니 맹상군이 있을 당시 어진 이들뿐 아니라 간악한 자들도 몰려들었다 하니 가히 짐작할 만하다.

맹상군이 죽었을 때가 기원전 279년이고, 사기가 기원전 91년에 완성되었으니 어림잡아 190년 정도의 텀이 있는데 두 세기가 지나도록 그 이야기가 나올 정도면 맹상군의 위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근데 잘 보면 맹상군을 은근히 까는 내용이다. 사실 사마천전국사군자들을 다 깐다. 그나마 신릉군에게만 우호적인데, 아무래도 전한창업자가 신릉군을 추종하였으니 사마천이 함부로 서술할 수 없었을 듯하다.

거둔 식객의 수가 어마어마했던 만큼 그중에는 자질이 뛰어난 이도 많아서 그 자체로 그의 명망을 높이고 자산이 되기도 했다. 진나라의 소양왕은 맹상군을 흠모하고도 두려워해 그를 진나라로 초청한 뒤 잡아두려 한 일이 있었다. 이때 맹상군은 탈출을 위해 소양왕의 애첩을 매수했는데 그에 필요한 흰 여우 갖옷(호백구狐白裘)을 흉내를 내 득템한 것도, 함곡관에서 제시할 관문 통행 여권을 위조한 것도, 함곡관에서 울음소리를 성대모사해 추격군이 오기 전에 함곡관 문을 열게 한 것도 모두 식객들의 재주 덕분이었다. 그가 탈출한 것을 안 소양왕은 찬탄해 마지않으며 호백구를 지키던 창고지기와 함곡관 문지기들을 처벌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사성어 계명구도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말이다.

여기서 호백구란 여우의 겨드랑이에 있는 하얗고 부드러운 털을 모아 만든 가죽옷. 사실 맹상군은 호백구가 있었으나 소양왕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갖다바쳤는데 문제는 맹상군에게 호백구는 한 벌밖에 없었던 것.[7] 그래서 소양왕이 가져간 그 호백구를 훔쳐다가 애첩에게 준 것이다.

이보다 더 먼치킨스러운 식객으로는 풍환이 있다. 진나라에서 맹상군을 두려워해 실각시키고자 유언비어를 퍼트렸을 때 그는 진나라와 제나라의 역학관계를 꿰뚫어보고, 두 나라[8]의 왕들을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다가 맹상군을 복위시키기는 데 성공한다. 사가들 사이에서는 제 민왕이 막장이었던 점도 한몫했다고 평가한다.

맹상군이 진나라에서 탈출했을 때 맹상군을 보러 온 사람들이 모두 그의 키 작고 왜소한 것을 비웃자 식객들이 마을을 초토화시킨 일이 있는데, 조나라의 평원군은 이 일을 문제 삼지 않았기에 외교적 문제로까진 발전하지 않았다. 중국계 일본인 역사학자 진순신은 자신이 쓴 《십팔사략》에서 이런 일화나 맹상군이 식객을 거느리고 다닌 점을 들어 맹상군과 그 집단을 깡패에 비유했다. 송나라의 개혁가 왕안석(王安石)도 그의 저서 〈독맹상군전(讀孟嘗君傳)〉에서도 '맹상군은 그저 닭 울음소리 내는 자와 개 도둑의 두목일 뿐이었다'고 비평한 적이 있다. 학계에서는 일단 조나라가 진나라부터 공격받으면 도움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나라가 제나라[9] 였고, 진(晉)나라에 뿌리를 둔 조나라 역사 속에서 과거에 제나라 군주인 경공이 진(晉)나라의 2인자였던 극씨 가문의 당주 극극의 신체를 두고 놀렸다가[10] 극극의 상소로 진나라와 전쟁이 벌어져 패배한 일을 거울 삼은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순수하게 평원군이 맹상군을 흠모하여 눈감아 줬다는 해석도 있다. 근데 평원군열전 앞부분에서 절름발이가 자신을 비웃은 평원군의 애첩을 죽여달라고 청원하는 모습이 나오고 사기 내 다른 기록에서도 명예를 훼손시키면 목숨으로 대항하는 부분이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당시의 명예관념은 지금보다 매우 강했다고 추정되니, 왕족이자 재상인 맹상군이 평민들에게 비웃음당했으니 맹상군으로서는 충분히 저럴 수 있었을 것이다.

말년에는 제민왕이 교만해져서 맹상군을 없애려고 하자, 맹상군이 이를 두려워하여 위나라로 갔다. 위소왕은 그를 재상으로 삼았고, 맹상군은 서쪽의 진·조와 동맹하고, 연나라 군대와 함께 제나라를 깨뜨렸다. 제민왕은 거(莒) 땅으로 달아났지만 결국 거기서[11] 죽었고, 그 뒤를 이어서 아들인 제양왕이 즉위했는데, 맹상군은 제후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켰다.[12] 맹상군이 사망한 후에 맹상군의 여러 아들들이 자리를 다투는 동안 제나라와 위나라가 함께 설을 멸망시켰고, 맹상군의 후사는 없어져서 대가 끊겼다.

3. 대중매체에서[편집]


파일:external/san.nobuwiki.org/1044.jpg
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에서 고대무장으로 등장. '전문'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삼국지 12에서 등장하는데 능력치는 통솔력 79/무력 67/지력 88/정치력 93이고 전법은 전군병격이다.

삼국지 13에서도 전작과 스텟은 동일하다. 전법은 방원진. 중신특성은 없다. 특기는 문화4 / 순찰5 / 교섭8 / 언변3 / 인덕5

킹곤타의 만화 달인전에서는 죽기 직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장자와의 일화를 얘기해주며 붉은 삼협 일행을 맞이하고, 자신의 경험을 조금 얘기해준뒤 사망한다. 사망하기 직전 장단 일행과 함께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지만, 장단이 장자가 말하듯이 "사람은 태어날때 태어나고 떠나야할때 떠난다" 라고 하자 무언가 깨달은 듯이 자신은 꿈속에서 나비였다며 호접지몽 같은 얘기를 하더니 여기까지라며 기운을 발하고 사망한다. 이후 맹상군이 남긴 유언과 도움으로 다른 사군자인 신릉군, 평원군 등과의 접점이 생기게 하는 등 퇴장은 일찍 했지만 스토리 전개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 사후에도 몇번 언급되다가 백기가 과거를 회상할때 여러번 등장한다. 혼자 십만 이상의 군사를 다스리며 발하는 능력과 분위기를 보고 백기는 병법 외의 모든것을 맹상군에게 받았다며 아주 고평가한다. 전국사군자들의 장점만을 모은듯한 인물로 그려지며, 신릉군과 비슷하게 군사를 다루는 일과 평원군처럼 식객을 다스리는 힘, 춘신군과 같이 말로써 사람을 휘어잡는 것 모두를 갖췄다. 대신 직접 전장에서 싸우는 느낌은 아니었는지, 작중 초반에 왕흘이 맹상군과 같은 경우도 흥미롭지만, 신릉군처럼 직접 맞붙어 싸우는 경우도 재미있다고 얘기한다. 백기가 과거회상을 할때 지휘관으로 보이는 모습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직접 싸우는 무인 계열은 아니었던 모양. 위의 삼국지 시리즈 능력치도 그렇고 실제 사서에서도 그렇고 지휘관으로 두각을 드러낸 모습은 별로 없지만, 전투들의 맹주 같은 느낌으로 기록이 되어서인지 작중에서는 지휘술이 아주 뛰어났던 것으로 그려진다.

대진제국지굴기에서 등장. 신삼국에서 노숙을 연기한 곽청(霍青)이 분했다. 작중에선 주로 설공(薛公)으로 불린다.

고우영 십팔사략에서는 맹상군이 선물하기 전 호백구에 대해 아랫사람에게 설명해 주면서 '여우의 가장 부드럽고 은밀한 부위의 털', '암컷 여우만이 가지고 있는 부위의 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호백구를 간수하던 하녀가 낯을 붉히고, 그 아랫사람이 "암컷 여우만이 가지고 있는 가장 보드랍고 은밀한 곳이 대체 어떤 것인지요?"라고 눈치 없게 계속 물어본다. 결국 맹상군이 기가 차서 "거 참 사람하곤! 이미 알고 있으면서 자꾸 물어보는구먼!" 이라며 가볍게 나무라고, 시녀는 얼굴을 붉히며 호백구에 얼굴을 파묻고 어쩔줄 몰라하고, 아랫사람이 키득거리는 것을 보면 어떤 부위인지 예측이 될 것이다. 과연 고우영 화백답다.
[1] 전영은 목숨의 위협을 받은 일이 있어서 자신의 호위를 강화하려 했는데, 이 호위들조차도 사실 잘 믿을 수가 없어 기골이 장대한 여인들(…)을 노비로 거느리고 그 노비들과 관계를 맺어 아들만 40여 명이었다. 또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 역시 호위로 쓰기 위해서 길렀다.[2] 마찬가지로 서출이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고 하는 홍길동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전영은 제나라 왕족으로서 '설(薛)' 땅을 식읍으로 받았다. 전영이 설 땅을 받은 일은 《맹자》에서도 간접적으로 언급된다. "등문공이 말했다. '제나라에서 설 땅에 성을 쌓으려 하므로 나는 매우 두렵습니다. 어찌해야 할까요?'"(맹자 양혜왕 하 14)[3] 문짝을 끼워 달기 위하여 문의 양쪽에 세운 기둥[4] 정답은 운손(雲孫)이다. 전한 시대부터 존재가 확인되는 유교 문헌인 이아에 처음으로 나오는 표현이라 한참 옛 사람인 전영이라면 정말 몰랐을지도…….[5] 조간자에게는 수많은 아들이 있었는데 유명한 관상가인 포상경을 초청하여 관상을 보게 하니 적자들을 보고는 "장군감이 없습니다"라고 하다가 서출인 조무휼를 보더니 "이 아이만이 장군감"이라는 긍정적인 답변을 하였다. 그 이후 조간자가 조양자를 지켜보고 후에 조양자에게 후사를 맡겼는데, 이 조양자는 결국 지씨를 멸하고 실질적으로 자립한다.[6] 다만 후술하겠지만 그의 아들들 운운한 걸 보면 서자 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7] 사실 또 이 호백구는 당시의 기술력을 생각하면 비싸기도 했다. 애초에 맹상군이 일국의 왕인 소양왕의 환심을 사려고 갖다바칠 정도라면 그 가치가 높으면 높았지 낮았을 리가 없다.[8]사기》에서는 진나라와 제나라, 《전국책》에서는 위나라와 제나라로 나온다.[9] 당장 위에 대군에 의해 유린당하던 조나라를 위위구조의 계책으로 구해주었던 나라가 어디인지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더욱이 이 당시만 해도 제나라는 제법 잘나가는 나라였다.[10] 《사기》에 따르면 극극은 꼽추였다고 전해진다.[11] 사기 악의열전에는 연나라 장수 악의가 연·조·초·한·위나라의 연합군을 끌고서는 제나라를 박살내었고, 제민왕은 거(莒) 땅으로 달아나서 거기서 죽었다고 나온다.[12] 공원국을 비롯한 일부 학자들은 이 문장을 두고 뒤에 이어지는 제와 위가 연합해 설땅을 멸망시켰다는 표현과 결부시켜 사실상 설읍이 반쯤 독립국이었던 상황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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