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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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益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행적
3. 창작물에서


1. 개요[편집]


후한 말의 인물.


2. 행적[편집]


중랑장으로 조정의 명을 받고 187년에 장순, 장거가 반란을 일으키자 기도위 공손찬을 이끌고 반란군을 토벌했다.


3. 창작물에서[편집]


소설 조자룡 하북제패에서는 장순, 장거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북쪽으로 올라가는 공손찬에게 멈추라고 불러세우면서 유주의 공손찬임을 확인하고, 낙양에서 보냈다고 소개하면서 공손찬을 기도위로 임명해 장순, 장거를 토벌하라는 조칙을 전한다. 공손찬이 어명을 받들자 축하한다면서 공손찬의 명성은 낙양에서도 유명하고 북군중후 추정이 대장군 하진과 중상시에게 공손찬의 서찰을 전달하고 기도위를 요청하면서 유주를 잘 지켜달라는 당부를 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한 조정에서 자신이 주장, 공손찬을 부장으로 삼아 진압하라 했지만 자신이 남양 출신이라 유주의 사정에 어둡기에 공손찬이 하자는 대로 해서 토벌에 임하기로 하겠다고 한다.

공손찬에게 유우가 유주자사로 임명된 것을 전달했지만, 공손찬이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보고 그 속 마음을 모르고 유우는 인자하고 좋은 분이라며 그 분이 부임할 수 있게 반란군을 몰아내자고 했다.

소설 상태창 삼국지에서는 장거가 죽고 삼군오환이 물러나자 반란군이 와해되었으니 유주 백성들을 위로하자고 했으나, 공손찬은 이를 무시해 장순을 추격하고 맹익은 중앙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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