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틀리 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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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UCRlogo.jpg 선정 가장 위대한 미국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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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음악 언론 Ultimate Classic Rock이 2021년 가장 위대한 미국 밴드를 선정한 순위다.
1위
2위
3위
4위
5위
비치 보이스
톰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
밴 헤일런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
에어로스미스
6위
7위
8위
9위
10위
도어즈
토킹 헤즈
R.E.M.
이글스
사이먼 앤 가펑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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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위-50위 펼치기 · 접기 ]





머틀리 크루
Mötley Crü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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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 상단부터 빈스 닐, 토미 리, 니키 식스, 믹 마스.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결성
1981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데뷔
1981년 10월
정규 1집 Too Fast for Love
해체
2015년
재결성
2018년
멤버
니키 식스 (베이스)
존 5 (기타)
빈스 닐 (보컬)
토미 리 (드럼)
장르
글램 메탈, 헤비 메탈, 하드 록
레이블
머틀리, 일레븐 세븐 뮤직, 엘렉트라 레코드, 리서, 워너 브라더스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
2. 특징
3. 바이오그라피
3.1. 멤버
3.1.1. 니키 식스 (베이스 기타)
3.1.3. 토미 리 (드럼)
3.1.4. 빈스 닐 (보컬)
4. 음반 목록
4.1. 정규 앨범
4.2. 컴필레이션 앨범
4.3. EP
4.4. 박스 셋
4.5. 싱글
4.6. 미디어



1. 개요[편집]


파일:motleycrue2014interview.jpg

2014년 사진. 왼쪽부터 믹 마스 (前 기타), 니키 식스 (베이스), 빈스 닐 (보컬), 토미 리 (드럼).

미국록밴드. 대표적인 글램 메탈 밴드로서, 가장 미국적인 록밴드로 손꼽히며, 미국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록 밴드 중 하나이다. 전세계 1억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미국 내에서만 2,500만 장의 앨범을 판매하였다.


2. 특징[편집]


전형적인 미국식 글램 메탈 밴드의 이미지를 처음 만들어낸 밴드로서, 블루스에 기반한 넘실대는 그루브감과 팝적인 멜로디, 그리고 다소 선정적이고 향락적인 가사가 특징이다. 이름에 다른 록밴드인 모터헤드처럼 움라우트가 들어가지만, 독일어는 아니고 그냥 멋있어 보여서 붙인 거라고 한다. 뫼틀라이 츠뤼에.
처음에는 니키 식스가 밴드 이름을 x-mass로 지을 뻔 하였으나 믹 마스 덕분에 mötley crüe로 결정되었다.

밴드 결성 초기부터 1985년 Theatre of Pain 시절까지는 영국글램 록헤비메탈에 영향 받은 짙은 화장과 섹슈얼하고 화려한 차림을 하고 나왔는데, 이는 나중에 꽃미남 콘셉트를 이용한 글램 메탈의 이미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후 Girls, Girls, Girls 앨범부터는 미국의 전형적인 Bad Ass 콘셉트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 콘셉트는 비슷한 이미지의 동시대 밴드들과 함께 전형적인 미국 록밴드의 이미지를 형성하였다. 음악적으로는 영국 글램 록 밴드 슬레이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특히 Home sweet home 같은 곡의 조용하다가 폭풍처럼 몰아치는 완급 조절은 슬레이드를 빼다 박았다.

전 멤버인 믹 마스를 빼고는 하나같이 범죄자인 집단으로도 유명하다. 데뷔 초기부터 폭행, 음주, 약물 중독, 기물 파손, 성매매 등 각종 사건 사고를 일으켰으며 이들의 전 매니저가 말하길, 다른 밴드들은 록스타라면 당연히 해야 될 일이라고 해서 소동을 일으킨 반면 이들은, 그냥 이유없이 일으켰다고 한다. 빈스 닐은 하노이 락스의 드러머 래즐과 함께 만취한 상태로 운전대를 잡다가 빗길에 넘어지며 반대에서 오던 차량과의 사고를 통해 래즐을 사망케 했다.ㅈ상대 차량 운전자 및 동승자도 뇌가 다치는 중상을 입었으며 이때문에 빈스 닐은 당시 한화로 약 30억 가량의 합의금을 지불하였다. 이후 하노이 락스를 2차 가해하며, 래즐의 사망을 밴드 홍보차원으로 쓰는 등의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감옥에 들락날락 하기도 하고 드러머 토미 리는 전 아내 파멜라 앤더슨과 찍은 섹스 비디오가 유출되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베이시스트 니키 식스는 싸움이 일상이었고 마약을 과용하다가 심정지가 온 적도 있다. 유일하게 얌전한 것 같은 믹 마스 또한 알코올 의존증 때문에 고생을 하기도 했다. 쉽게 말하자면 총기사고만 일으키지 않은 백인 갱스터 그룹이였다고 보면 된다.

믹 마스를 제외한 멤버 전원이 그루피와의 섹스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애초에 라이브 공연 때 무대 위에 클럽에서 야한 춤 출법한 복장의 댄서들(남녀구분 없다)을 세워놓고 춤추고 코러스 넣게 하는 것은 기본이요, 폴댄스같이 하드한 춤도 추게 한다. 궁금하면 2014년 iheartAudio 공연을 보면 된다. 본 공연도 이 정도니 공연 후에는... 특히 자서전 The Dirt에선 그런 멤버들의 행각이 아주 상세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재결성 이후 토미 리를 제외하면 일단은 조용히 살고 있다.

그런 난장판 속에서도 조용히 음악만 하고 비는 시간에 후배들도 돕던 기타리스트 믹 마스의 존재는 정말 이질적이다. 믹 마스야말로 10대 때 발견한 지병 때문에 고생했음에도, 후배들의 존경을 받아오며 현역 생활을 이어갔으니...

사고뭉치 이미지로 인해 메탈롤링 스톤즈에 대한 모욕이다...라고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리더 및 작곡자가 밴드의 베이시스트인 니키 식스라 여타 메탈 밴드들과 달리 베이스 음이 상당히 비중있게 들리며, 베이시스트 싱어송라이터 특유의 간결함이 있다. 처음부터 곡을 좀 복잡하고 화려하게 만들어보려는 기타리스트 리더/싱어송라이터들과 달리 베이시스트들은 곡을 쓸 때 가장 심플한 리듬을 기반으로 그 위에, 기타가 적당한 MSG를 뿌리는 식이다.

결성 당시 니키 식스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제대로 된 밴드 경력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빈스 닐은 주로 소규모 파티나 뒷뜰에서 커버 곡을 연주하며 분위기를 띄워주는 밴드 멤버였고, 믹 마스 또한 기타 실력은 프로지만 커리어 대부분을 남의 노래를 커버하며 공연하는 밴드에서 보내거나 인기가 시덥지 않은 밴드에서 보냈다. 토미 리는 클럽에서 자작곡을 연주하는 밴드에서 활동하긴 했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해체한 것이 전부일 정도. 유일하게 니키 식스만 그나마 클럽 주말 공연을 연일 매진 시킬 정도로 지역에서 인기 있는 자작곡 기반 밴드에서 활동했다.이후 대다수의 다른 밴드들이 멤버들과 언더그라운드에서 몇 년간 인고의 시간을 보낸 것과는 달리 머틀리 크루는 시작과 동시에 LA 지역 클럽의 주요 공연들을 연달아 매진 행진시키면서 인기 몰이를 하더니 결성 2년만에 수만 명이 운집한 페스티벌을 나가거나 대형 공연장에서 공연을 개최 하는 등 결성한지 얼마되지 않은 상태에서 빠르게 미국 전국구에 자신들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다.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는 희대의 양아치 밴드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개개인의 기본 음악 소양은 매우 탄탄했다는 증거.

현지에선 그들이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입성에 실패한 것에 대해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그들의 음악성이나 영향력, 상업적 성공을 따져봤을때는 입성에 성공한 다른 밴드들 처럼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지만 역시나 그들이 벌인 수많은 악행들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게 중론. 리더 니키 식스 또한 입성하기를 희망하지만 심사위원들에게 머틀리 크루가 후보로 선정될 일은 없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선봉에서 글램 메탈 전성기를 같이 보낸 동료 밴드들이 입성에 성공한 것을 생각하면 본인들도 참 아쉬울지도.

여담으로 멤버들 나이가 60대 이상임에도 전원이 풍성한 모발을 자랑한다.

3. 바이오그라피[편집]


1981년 1월 17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에서 결성되었다. 다른 밴드에서 탈퇴한 상태였던 니키 식스와 토미 리가 합심하여 믹 마스[1]를 오디션을 통해 영입하고, 토미 리의 고등학교 시절 친구인 빈스 닐[2]을 영입하여 결성하였다.

1981년, 첫 앨범 Too Fast for Love를 셀프 프로듀스 형식으로 제작하여 발매했는데, 발매 후 2만 장이 팔리며 셀프 프로듀스 치곤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이후 메이저 음반사인 Elektra Records와 계약하게 된다. 계약 후 리믹스와 리마스터링을 거쳐 재발매된 그들의 데뷔 음반은 1987년에 플래티넘을 기록하게 된다.

1983년,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앨범 Shout at the Devil을 발표한다. 이 시기에 발표된 Shout at the Devil (1983), Theatre of Pain (1985), Girls, Girls, Girls (1987) 세 장의 앨범은 그들의 커리어 하이를 상징하는 앨범들로, 수많은 인기 싱글이 쏟아지며 그들에게 세계적인 인기를 가져다준다. 당시에 불었던 MTV 붐과, 글램 록과 메탈의 이미지를 섞은 그들의 글램 메탈 형식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명실공히 미국 문화를 대표하는 밴드로 자리잡게 된다.

하지만, 밴드의 성공과 함께 찾아온 돈벼락과 그루피는 믹 마스를 제외한 멤버들의 정신 상태를 혼돈에 빠뜨렸고 온갖 사건 사고가 쏟아져 나왔다. 빈스 닐의 음주운전 사고 때 동승했다 사망한 하노이 락스 멤버 래즐의 문제로 법정에 드나드느라 빈스의 상태는 더 엉망이 되고 토미 리도 각종 여자관계 문제를 일으켰으며 그 결정타 격으로 1987년 12월 23일, 니키 식스가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쓰러지고 앰뷸런스에 실려가던 도중 심정지로 2분간 사망 선고를 받게 되지만 앰뷸런스에서 머틀리 크루 팬이었던 간호사가 긴급히 아드레날린을 주사해 겨우 소생시켰다.[3] 그런 풍파를 겪고나니, Girls, Girls, Girls가 400만 장 팔리건 말건 현자타임이 올 수 밖에없었고 이들은 정신이 번쩍들었다. 이미 글램 메탈의 최전성기를 보냈으며 이 자리를 노리고 등장한 건즈 앤 로지스 같은 신예 그룹의 성장[4]으로 1인자의 지위가 위태위태한 판에 저런 상태로 몇년을 보냈으니 마약과 방탕한 생활에 멤버들 모두 회의감을 느끼게 되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고 새 앨범을 녹음하기 시작하였다. 본 조비의 'Slippery When Wet'의 엔지니어와 믹싱을 담당하던 프로듀서 밥 록은 기존 앨범 제작과정에 비해 아주 섬세한 스타일이었고 이러한 방식과 맞물려 앨범 전체적으로 기존과 다르게 깨끗하고 명확한 소리가 들리게 된다.[5]

1989년에는 그들을 대표하는 앨범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앨범으로 그들의 앨범 중 가장 많이 판매된 앨범인 DR. FEELGOOD을 발매하며 인기의 정점을 찍는다. 이때부터는 기존의 글램 메탈 양아치 컨셉을 버리고 American Badass 컨셉으로 전환했다. 머틀리 크루를 상징하는 앨범은 2-5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당장 이 앨범의 대표곡인 Dr.Feelgood부터 니키가 죽을 뻔 하다가 마약을 팔아 부자가 된 사나이의 흥망성쇠와 비참한 최후를 노래하며 너네들 마약 손대면 나처럼 좆된다고 말해주고 있으니.

1989년 싱글 Dr. Feelgood을 필두로 Kickstart My Heart, Without You, Same Ol' Situation, Don't Go Away Mad 등 앨범 거의 절반에 가까운 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 상위권에 랭크되고 앨범 역시 600만장을 팔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메탈의 선봉장임을 자처하면서도 준수한 히트작은 많으나 월드와이드로 메가 히트한 앨범은 없었는데 Dr. Feelgood은 본 조비의 'Slippery When Wet' 건즈 앤 로지스의 'Appetite for Destruction' 데프 레파드의 'Hysteria'와 더불어 메탈 씬 최고의 히트작이 되었다.

하지만 1992년 멤버 간 불화로 빈스 닐이 밴드를 떠나고[6] 존 코라비를 영입한다. 존 코라비는 기타리스트로서도 훌륭한 터라 빈스 닐과 다르게 기타와 보컬을 겸임하였다. 곧 이어진 그런지의 유행으로 메탈 장르 전체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밴드 역시도 침체기에 들어갔다. 1994년 셀프 타이틀 앨범 'Motley Crue'를 발매하여 빌보드 차트 8위에 랭크 되었으나 앨범 판매량은 겨우 골드에 그치는 등 상업적으로 실패를 맛보았다. 그래도 다른 메탈 밴드의 상업적 몰락에 비하면 이 정도는 선방한 편.

중간에 빈스 닐이 돌아와[7][8] 1997년 'Generation Swine'을 발표하며 빌보드 앨범 차트 4위에 랭크되지만 기존과 크게 다른 스타일의 앨범이라 골수 팬들이 크게 실망하게 된다.[9] 결국 토미 리가 탈퇴하는 등 멤버 교체도 일어나고 예전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한다.

2004년 재결성하여 다시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2008년에는 신보인 Saints of Los Angeles를 발표하며 다시금 미국을 대표하는 록밴드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2012년에는 기아 K5(미국명 옵티마) TV 광고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2015년 12월 31일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해체하였다가, 2019년 다시 재결합을 선언했다. 2019년에 공개된 넷플릭스의 전기영화인 <더 더트>가 인기를 끌면서 젊은 팬들이 늘어난 것이 이유라고 한다.

2019년 3월 22일 머틀리 크루의 전기영화 더 더트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로 공개되었다. 그들의 명성(?)답게 섹스, 알코올, 약물, 구속, 수감으로 뒤범벅이 된 내용인데 플롯 자체는 상당히 심플하고 실감나게(?) 구성되어 있다. 밴드의 전기 영화로서 완성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2020년에 스타디움 투어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때문에 2022년부터 포이즌, 데프 레파드, 조안 제트와 함께 투어에 나섰다.

2021년 11월 18일, 토미 리와 파멜라 앤더슨의 섹스 비디오 유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드라마 Pam & Tommy 티저가 공개되었다. # 토미 리의 역으로는 세바스찬 스탠이 파멜라 앤더슨 역으로는 릴리 제임스가 캐스팅 되었다.

2022년 10월 28일, 기타리스트 믹 마스가 건강 문제로 앞으로의 공연 및 투어에서 하차하기로 결정했다. # 그를 대신해 존 5가 기타를 맡아 예정된 투어를 그대로 진행했다.


3.1. 멤버[편집]



3.1.1. 니키 식스 (베이스 기타)[편집]


Nikki Sixx
니키 식스


파일:rs-237342-Nikki00.jpg

탄생명
Frank Carlton Serafino Feranna Jr.
프랭크 칼턴 세라피노 페라나 2세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출생
1958년 12월 11일 (65세)
미국 캘리포니아 산 호세
장르
헤비 메탈, 하드 록, 글램 메탈, 얼터너티브 메탈 등
직업
베이시스트
소속
머틀리 크루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원래 이름은 Frank Ferranna Jr 였으나 성인이 되고 나서 자신이 두 살 무렵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도망간 아버지 Frank Ferranna를 수소문 해 전화를 걸었고 난 아들이 없고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매몰찬 대답에 충격을 받아[10] 연을 끊고자 당시 여자친구의 전 남자친구였던(...) Niki Syxx[11]란 이름을 도용해 Nikki Sixx로 개명하였다. Niki Syxx 역시 인디애나에서 활동했던 뮤지션이였고 종종 그 당시 그의 지인들이 Nikki Sixx에게 인디애나 출신 아니냐 라며 물어보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훗날 머틀리 크루 투어 중 호텔에 쉬면서 이리 저리 티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Niki Syxx가 한 방송에 나와서 Nikki Sixx는 자신의 이름을 훔쳐간 사탄이고 자기가 진짜 Niki Syxx라는 식으로 인터뷰하는 걸 보았다고 한다. 그 뒤 Niki Syxx는 존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 키스베이시스트인 진 시몬스처럼, 밴드의 리더 겸 메인 작곡가.
  • 깁슨 선더버드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시그니처 모델까지있다. 깁슨사가 왠만한 레전드 급 뮤지션들 이외엔 시그니처 모델이나 엔도서를 안해주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례적인 일.[12] 쉑터깁슨 선더버드 셰입 시그니처 기타도 사용한다.
  • 재결성 이후 공연에서는 베이스 기타화염방사기를 달고 불을 뿜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두프 워리어.[13] #
  • 개인 유튜브 채널인 SIXX Sense를 운영하다가 다른 프로젝트를 위해 그만두었다. 주로 1980 ~ 1990년대 활동했던 동년배 밴드들을 초대해서 인터뷰하는 콘텐츠들.
  • 머틀리 크루는 동물적인 본능을 가진 최고의 망나니 밴드이고 그런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 무엇도 할 수 있다고 생각 했던 니키 식스였지만 당시 같이 투어를 돌던 오지 오스본의 기괴한 행동들[혐오주의]을 겪은 뒤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걸 인정하였다.
  • 글램 메탈 밴드의 베이시스트이면서 무대 위에서의 기행[14] 때문에 믹 마스처럼 실력이 저평가받았다. 현란한 베이스 속주나 테크닉을 보여주는 부류의 기교 타입이 아닌 딱 배킹 위주로 제 역할을 하는 베이시스트였는데 작곡도 상당히 뛰어나서 머틀리 크루의 상당수의 히트곡들을 직접 작곡할 정도고 명반인 Dr. Feelgood 역시 그가 대부분 작곡했을 정도. 베이스 특성상 곡의 중심이 되는 멜로디를 연주하는데, 이 멜로디만 잘 뽑히면 곡 자체에 그리 많은 군더더기를 넣을 필요가 없다는 니키 식스의 작곡 철학[15] 덕분에 수많은 명곡들이 만들어졌다. 믹 마스의 현란한 기타 연주도 한몫 했지만 그 연주들이 나올 수 있는 곡을 만든것을 니키 식스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 토미 리의 어머니와 성관계를 가질 뻔 했으나 마침 그 현장을 목격한 토미 리의 아버지에게 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소리를 듣고 무산된 적이 있다. 친구의 엄마를 사랑했네. 토미 리는 신경도 안 썼다고
  • 2019년, 60세 나이에 득녀하였다. 모델 출신의 아내와의 사이에 가진 아이로 이름은 루비 식스.
  • 2023년 기준 겨울 향수로 메종 프란시스 커정 매스큘린 플루리엘을 사용한다. 설탕에 졸인 견과류와 장작, 가죽 향이 난다고.
  • 한때 마약 중독으로 심정지까지 겪었으나, 중독 전문 상담사인 Bob Timmons를 만나고 인생이 바뀌었다. Bob Timmons도 니키 식스처럼 불우한 환경에서 방황하다 마약에 중독된 과거가 있었는데, 감옥에서 만난 국선변호인의 도움으로 중독 전문 상담사가 되었고, 니키 식스와 만나게 된 것이다. 그가 2008년에 별세하자, 니키 식스는 마약을 끊고 그에게 칭찬을 들은 것이 살면서 들은 가장 다정한 말이었다면서 그를 추모했다.링크 링크

3.1.2. 믹 마스 (일렉트릭 기타)[편집]


Mick Mars
믹 마스


본명
Robert Alan Deal
로버트 앨런 딜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출생
1951년 5월 4일 (72세)
미국 인디애나 Terre Haute
장르
헤비 메탈, 하드 록, 글램 메탈, 블루스 록 등
직업
기타리스트
소속
머틀리 크루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팀 내 최연장자이며 다른 멤버들이 한창 자식을 키울 때 그는 이미 손자가 있는 할아버지였다. 1970년대 초중반 부터 여러 밴드를 거친 베테랑 기타리스트.

  • 온갖 범죄, 사고를 치고 다녔던 인간 말종급 나머지 멤버들과 어떻게 같이 수십년간 한 팀을 했는지 궁금할 정도로 정말로 조용하고 음악에만 매진했던 멤버로 사실 믹 마스도, 한 똘기를 보여주기는 한다. 다만 나머지 멤버들이 상상을 초월할 만치로, 다들 가공할 수준의 언행을 일삼고 다닌지라 상대적으로 묻힌 감이 있다. 머틀리 크루 활동 못지않게 리바이벌 글램 메탈 붐이 일 때 후배 글램 메탈 밴드들의 앨범을 프로듀싱하고 피처링해주는 등 2000년대 메탈 씬에 많은 기여를 했다.

  • Mötley Crüe 라는 밴드명을 제시한 인물인데, 전에 같이 활동했던 한 동료의 "이거 완전히 '잡다해 보이는 무리'(Motley-looking crew)같은데."라는 말에 아이디어를 얻어 언젠가 꼭 쓰고 싶었던 밴드명이라고 한다.

  • 머틀리 크루에 합류 하기 전 들어가는 밴드마다 뒷끝이 안좋거나 밴드에 만족을 못느껴 금세 나오기를 반복했었고 수중에 돈이 다 떨어져 부랑자 생활도 전전하기도 했었다. 더 더트에서 밴드명을 공책에 써서 보여줄 때 "난 오랫동안 이 날(밴드가 결성되는 날)만을 기다려 왔지."라는 대사를 통해 실제 믹이 오랜 고난의 세월을 견뎌왔음을 암시했다.

  • 기타리스트치고는 특이할 정도로 작곡이나 공연 때 솔로 욕심이나 화려한 리프 자랑이 적은 이단아 중 하나로 손꼽힌다. 물론 믹이 기교가 없거나 아예 안 한다는 건 아니다. 유튜브만 뒤져도 믹의 현란한 테크닉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하지만 글램 메탈 밴드들의 무대를 보면 알지만 뽀대로 먹고사는 팀이 대부분인 글램 메탈 씬에서 믹 정도의 실력은 거의 독보적임에도 라이브 무대에서 현란한 테크닉을 마음 껏 표현하기 보단 본 음악에 맞게 적재적소에 테크닉을 기깔나게 적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디테일한 운지가 많아서 은근히 따라하기 까다로운 연주자이다.

  • 커리어를 쌓을 만큼 쌓은 베테랑인데도 뒤에선 야한 복장의 여성 댄서들이 봉춤 같은 야한 춤을 주고,[16] 빈스 닐은 그 사이에서 미쳐 날뛰고 니키 식스는 전술한 대로 베이스를 연주하면서 뛰어다니고 불 쇼하고(...) 토미 리는 청룡열차를 타면서 드럼을 두들기는 혼돈의 카오스와는 달리 포지션도 포지션이고 17세 때부터 투병했던 강직성 척추염의 영향으로 거동이 불편해 무대에서 다른 멤버들에 비해 조용히 베이시스트 마냥 묵묵히 자기 담당 연주만 하는 이질적인 기타리스트이다. 허나 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전성기 시절엔 니키와 빈스처럼 이리저리 방방 뛰어다니고 구르고까지는 아니여도 나름 몸의 불편함을 극복하며 살짝살짝 뛰어다니기도 하고 돌아다니며 연주하긴 했다. #1 #2 밴드가 1인 기타 체제이기도 하고 니키의 근음 위주 베이스에 비해 손가락을 바삐 움직여야 하기에 퍼포먼스를 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기도 하다. 물론 연로해진 뒤로는 정적 그 자체다. 그래서인지 양아치 메탈이라고 메탈헤드들에게도 이미지가 안 좋은 글램 메탈 기타리스트면서도 여러 록, 메탈 매체들이 가장 저평가된 기타리스트로 항상 손에 꼽는 인물이다. 글램 메탈 전성기에 돈벌이용 급조 밴드 이미지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기타리스트들을 간단히 적어보면 머틀리 크루의 믹 마스, Ratt의 워렌 디마티니와 로빈 크로스비, 신데렐라의 꽃미남 보컬이자 기타리스트로도 훌륭했던 톰 키퍼 등이 있었다.

  • 2010년도 이후 라이브의 연주들을 보면 그동안 더 실력이 늘어서 밴드 전성기 때보다 더 현란하고 자연스러운 연주를 보여준다.곡 중간중간에 각종 즉흥 연주와 훨씬 더 자연스러워진 피킹 등 젊은 시절 녹음했던 스튜디오 버전이나 라이브 버전 곡과 비교해보면 이게 나이 든 할아버지의 연주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

  • 대중들의 인지도는 좀 낮은 편으로, 여기에 하필이면 헤어 메탈 콘셉트를 버리면서 멤버들이 복장을 바꿨을 때 믹은 흔히 장의사 패션으로 불리는 올 블랙 슈트 + 코트에 검은 페도라를 쓰고 나왔는데 이게 건즈 시절 슬래시랑 거의 비슷해서 묻혔다. 이 둘은 생일 축하 트윗도 주고받는 친한 사이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니키 식스가 마약 중독 쇼크로 죽을 뻔 했을 때 구급차 부르고 같이 있던 게 더프와 슬래시였으니. 믹 마스가 이 바닥에서는 소문난 인격자라 그런지 슬래시도 존경하는 선배로 꼽기도 하였다. 주 장비로는 Kramer의 텔레캐스터와, 검은색 도장으로 유명한 72년판 레스폴 커스텀에 마샬 JCM 800 2203 빈티지 시리즈, MX4 12B 앰프를 사용한다. 재결성 이후 J.M 롤프 픽업(HSH), FRB를 장착한 Fender Stratocaster를 사용한다. 1963, 1964, 1965년판 부품이 섞여 있으며, 낡고 낡아 도장이 벗겨지고 온갖 스크래치와 탄 자국이 남은 바디를 그냥 두고 있어서 이 기타로 연주하면 정말로 좀비(...)같은 느낌을 준다. # The End에서의 연주 장면 대놓고 가사 씹고 날먹하는 빈스 닐과 심히 비교된다.

  • 다른 멤버들보다 거의 9-10살 연상이다보니 2021년 기준으로 칠순 할아버지고 거기다가 올 블랙에 다소 창백한 외모, 무대 위에서 잘 움직이지 못하는 탓에 유튜브의 라이브 영상 댓글에서는 "죽은 것 처럼 보이지만 신처럼 연주한다."는 말을 듣는다. 항상 건강 문제에 시달렸던 탓인지 열심히 관리해서 기량을 지켜나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기타를 던지는 퍼포먼스도 할 정도로 정정하긴 하다. 힘들어해서 그렇지. #

  • 2022년 10월 말, 결국 건강 악화에 따른 은퇴를 선언하였다. 공식 멤버로는 남아있기로 결정하였으며 앞으로의 투어는 크루와 친분이 있는 존 5가 맡기로 하였다.

  • 여러가지 에피소드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니키식스와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상당히 잘 맞았던 듯 하며 니키식스는 그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본인의 허벅지에 아예 믹 마스의 초상화를 타투로 새겼다. 그러나 2023년 4월의 고소가 터지며 의미가 크게 퇴색되었다.

  • 2023년 4월 믹 마스가 머틀리 크루를 고소 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로 인해 그 동안 우애가 좋은줄 알았던 멤버들의 불화 및 머틀리 크루를 위해 40년간 헌신한 믹 마스와 소송전이 수면으로 드러나 많은 팬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팬들은 음주 사망사고를 내고 와이프를 패고 약물 과다 복용 후 죽음 직전 까지 가 밴드를 파멸로 몰고 갈 뻔한 멤버들이 그동안 묵묵히 밴드를 지켰던 믹 마스에게 보답하는게 이런거냐며 여론은 안 좋은 상태.

  • 2022년 투어 동안 멤버들에게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을[17] 당하며 자신은 건강문제로 투어를 그만 한다고 말을 하였지만 멤버들은 자신의 동의없이 은퇴를 발표했으며 이로 인해 그는 강제 은퇴를 하게되었다고 한다.

  • 투어를 하기전 믹 마스는 밴드에게 이번 투어가 자신의 마지막 투어가 될 것이라 말을 하였고 예정 되어있던 12번의 공연은 소화 가능하다고 말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예정과 달리 공연이 36회로 늘어나게 되며[18] 건강이 좋지 않던 믹 마스는 더욱 더 힘들어 했다. 강직성 척추염으로 인해 해외를 가게되면 24시간은 잠을 자야 회복이 된다고 한다.

  • 멤버들이 밴드 긴급 주주총회를 열어 믹 마스를 내쫒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믹 마스에게 밴드지분 25%를 포기하고 2023년 본인을 제외한 투어 수익금 5%를 받는 조건으로 퇴직 계약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 2022년 라이브 당시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파트들은 MR을 연주했다며 폭로하였다. 니키 식스는 100% 사전 녹음된 MR을 틀고 핸드싱크를 하였고 토미 리와 빈스 닐은 부분 MR로 연주 및 노래를 하였다는게 믹 마스측의 입장.

  • 머틀리 크루 측은 바로 대응 성명을 냈는데, 믹 마스를 일방적으로 해고한 것에 대해서는 부정했으나, 머틀리 크루와 더 이상 함께하지 않는 다는 것에 대해선 인정하였다. 이로 인해 밴드 초창기 부터 함께한 믹 마스의 머틀리 크루 탈퇴가 확정되었다.

  • 2024년 2월 23일 첫 솔로 앨범 The Other Side of Mars를 발매한다.

3.1.3. 토미 리 (드럼)[편집]


Tommy Lee
토미 리


본명
Thomas Lee Bass
토머스 리 베이스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출생
1962년 10월 3일 (61세)
그리스 아테네
장르
헤비 메탈, 하드 록, 글램 메탈, 뉴메탈, 랩 메탈, 하우스 뮤직 등
직업
드러머
소속
머틀리 크루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긴 팔다리를 이용한 파워 드러밍이 돋보이는 멤버. 이 사람도 빈스 닐처럼 워낙 사생활이 엉망이라 그렇지, 비교적 평범한 수준의 테크닉이지만 밴드 중심을 잡는 박자 감각이 뛰어난 드러머라 믹과 마찬가지로 항상 과소평가된 일류 드러머로 손꼽히는 드러머 중 하나다. 이 양반도 쇼맨십과 관심병이 남달라서, 청룡열차 드럼은 토미 리의 전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19] 왠만한 메탈 드러머들은 나이 40이 넘으면 관절 상태가 안좋아져서 은퇴하거나 전성기보다 못한 연주를 보여주는데, 환갑이 다 되어 가는 나이에도 젊은 시절 못지않게 강력한 드럼 연주를 하는 것을 보면 엉망인 사생활 이전에 드러머로서 관리를 철저하게 했다는 증거.[20]
  • 믹 마스가 밴드 첫 합주때를 술회하길 니키 식스는 음악적으로 미숙하다고 평가한 반면 토미 리의 드럼은 결코 아마추어 실력이 아니라며 감탄하였다.[21]
  • 밴드 해산 후에는 솔로 앨범을 발매하여 솔로 활동을 했다. 솔로 앨범 작업은 원맨 밴드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Methods of Mayhem"이란 이름으로 싱글 Get Naked를 발매하였고[22], 1집은 Methods of Mayhem의 후속 느낌으로 인더스트리얼뉴메탈 성향을 띠었으나, 2집부터는 얼터너티브 록의 성향을 강하게 띠었다. 2002년, 서태지가 주최한 록 페스티벌 ETPFEST를 통해 내한했다. 참고로 서태지는 중학생 때부터 머틀리 크루의 열렬한 팬이다.
  • 파멜라 앤더슨과 결혼생활 당시 섹스 비디오 유출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을 정도로 결성부터 쭈욱 개망나니로 살았다.
  • 토미 리의 아버지는 미군 장교, 어머니는 미스 그리스 출신의 그리스인으로 그리스에서 만난지 5일 만에 결혼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40년 뒤 토미 리 또한 파멜라 앤더슨을 만난지 4일만에 결혼하였다.
  • 2살 어린 여동생 아테나 리 베이스가 있으며 남매가 모두 드러머이다. 아테나는 Hardley Dangerous, Butt Trumpet 등의 밴드에서 활동했다.
  • 데뷔 초 쪼들리는 처지라 스튜디오 이용료가 부담스러웠던 니키는 토미에게 스튜디오 여성 엔지니어와 한 번 자라(...)는 제의를 했고 토미의 취향은 아니었지만 어쨌건 그렇게 거사를 치르고 난 뒤 그 스튜디오는 머틀리 크루가 언제나 원하는 시간대에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용료 또한 무료로 바뀌었다고 한다(...).
  • 투어 중 호텔에서 알몸으로 복도를 뛰어다니며 한바탕 소동을 일으킨 적이 있는데 그렇게 출동한 경찰은 호텔방에서 조용히 있던 믹 마스를 체포해갔다고 한다. 억울.
  • 헤더 로클리어라는 여배우와 약 7년 간 결혼 생활을 했다. 영화에 나온 토미 리의 결혼식이 바로 그 결혼식이다. 니키 식스가 약 빨고 온(...) 이혼 후 헤더는 리치 샘보라와 재혼한다.
  • 영화 더 더트에서 머신 건 켈리가 토미 리 역을 맡아 훌륭하게 소화하였다.
  • 2018년도에 전처 파멜라 앤더슨이 인터뷰 중 토미 리의 가정폭력을 언급했는데 토미 리는 지나간 옛 이야기를 왜 다시 들추냐며 파멜라를 비난하다 이에 격분해 집까지 찾아온 아들 브랜던 토마스 리[23]에게 죽빵을 정통으로 맞고 뻗었다. 한때는 SNS에 아들마저도 배신자라며 비꼬는 게시물을 올리며 부자 간 법적 공방까지 고려한다고 했지만 원만하게 합의하고 다시 사이좋은 부자가 된 듯 하다. #
  • 2022년 스타디움 투어 직전에 짐을 들고 2층 계단을 내려가다 1층으로 떨어져 갈비뼈가 4개나 부러졌다. 현장을 목격한 아내 브리트니 풀란은 처음엔 그가 죽은 줄 알고 기겁했으나 다행히 멀쩡했다. 이쯤되면 신의 총애를 한몸에 받는 게 분명하다.
  • 2022년 8월 만취상태로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올누드 셀카를 올리는 사고를 쳤다.
  • 2022년 12월 17일 인스타그램에 데미섹슈얼이라며 커밍아웃(?) 비슷한 게시글을 남겼다. 데미섹슈얼은 감정 유대를 형성한 상대에게만 성적 끌림을 느끼는 정체성이다. 이에 아내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구라까지 말라는 반응을 보였다.


3.1.4. 빈스 닐 (보컬)[편집]


Vince Neil
빈스 닐


파일:vince-neil-2018-net-worth.jpg

본명
Vincent Neil Wharton
빈센트 닐 워턴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출생
1961년 2월 8일 (63세)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도라
장르
헤비 메탈, 하드 록, 글램 메탈 등
직업
보컬리스트
소속
머틀리 크루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토미 리와 함께, 밴드의 악명을 떨치는 데 가장 기여한 인물. 마약과 술에 취한 상태로 핀란드의 글램 메탈 밴드 하노이 락스의 드러머 래즐을 옆자리에 태우고선 운전하다 사고를 내 래즐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하노이 락스는 결국 해체하게 된다.
  • 고등학생 때 당시 만났던 여성과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첫 자식을 두게 되었고. 전교에서 유일하게 양육비를 내는 고등학생이었다고 한다(...)
  • 토미 리에게 처음 머틀리 크루 가입 제의를 받았을 때 그들의 데모 테이프를 들은 빈스는 음악이 엉성하다고 생각해 가입하고 싶지 않아 한동안 토미를 피해 숨어다녔다고 한다. 결국 그들이 다른 보컬을 구했다는 말을 들었을때 이제 토미를 피해다닐 일이 없어서 기뻐했다고(...).
  • 스키드로우세바스찬 바흐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고음 보컬이며 메탈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 재결성 이후 라이브는 상태가 많이 안 좋은 편. 가사를 생략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앵앵거리는 경우가 많고 발음을 흘리는 편이 많다. 특히 가사가 많고 빠른 DR. FEELGOOD, Kickstart My Heart 를 부를 때 두드러진다. 팬들의 반응은 주로 "지금 중국어로 노래하냐?" "빈스가 드디어 몽골어를 마스터했다!!!" "Kheemstar Mahar[24]는 좋은 노래입니다" 등등 조롱하기 바쁘다.
  • 몸 관리를 전혀 안 하는지 전성기 꽃미남 시절에 비해 배가 남산만큼 불어갖고 팬들이 빈스가 임신했다(!?)는 농담을 하기도 하며,[25] 몇몇 팬들은 진심으로 빈스 닐의 건강을 염려했다. 헌데 딴 데는 다 늙고 살까지 쪘는데 신기하게도(?) 목 관리는 잘된 편이라, 젊은 시절 불렀던 노래들을 2019년 50이 넘은 나이에 한 키로 소화한다.[26] 외적으론 훌륭하지만 애석하게도 록커로서 생명은 다해 보이는 존 본 조비와 완벽히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머틀리 크루 해체 이후에도 자신의 밴드를 만들어서 왕성히 활동했으며, 재결성 이후도 열심히 활동한다.
  • 잭 다니엘스 위스키 광팬이라 술에 쩔어 일어난 후 해장으로 우유 대신 잭 다니엘스 위스키에 시리얼을 말아먹곤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 전성기 시절 아이돌 뺨치는 얼굴과 날씬한 몸매로 수 많은 여성들의 인기를 끌었으나, 탈퇴 전후로 살이 점점 불더니 솔로 활동을 할 시기 여러 사건들을 겪게 되면서 살이 팅팅 불어 가장 급격히 노쇠한 멤버가 되었다. 훗날 재결합을 논의를 위해 멤버들끼리 만났을때 토미가 기억하길 마지막으로 봤을때 보다 더 돼지가 되었다고. 하지만 꾸준한 운동으로 다이어트를 성공하였다.
  • 건즈 앤 로지스의 보컬 액슬 로즈와의 일화가 유명하다. 한번은 Cathouse 라는 클럽에서 건즈 앤 로지스 멤버 이지 스트래들린이 당시 빈스 닐 부인에게 집적거리면서 폭행을 가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빈스는 몇 주뒤에 열리는 MTV 시상식 날까지 기다렸다가 공연하고 내려 온 이지를 향해 죽빵을 때리고 이에 베프이자 동료인 이지가 맞았다는 소식을 알게된 액슬은[27] 빈스 닐에게 결투를 신청하였다. 우습게도 결투를 받긴 했는데 액슬이 데리고 나온 보디가드들에게 쫄아 빈스가 도망갔다. 이후 빈스 닐은 MTV를 통해 공개적으로 액슬에게 공공장소에서 3라운드 룰로 결투하자는 제의를 하였다. 이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머틀리 크루와 건즈 앤 로지스와의 사이가 안 좋은 줄 아는데 엄밀히 말하면 빈스 vs 액슬&이지의 구도일 뿐 그 외 멤버끼리는 원래도 친분이 있었을 뿐더러 저 사건 당시에도 빈스 닐조차 슬래시, 더프와는 여전히 친하게 지냈다. #


4. 음반 목록[편집]



4.1. 정규 앨범[편집]


발매일
제목
빌보드 최고순위
비고
1981
Too Fast for Love
77위
처음에는 밴드 자체 음반사인 Leathür Records에서 발매되었고, 이후 리믹싱과 부분 재녹음을 거쳐 1982년 엘렉트라 레코드에서 재발매되었다.
1983
Shout at the Devil
17위

1985
Theatre of Pain
6위
그들이 사실상 록스타가 되게끔 만든 앨범이며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Home sweet Home이 수록된 앨범이다. 허나 빈스 닐이 말하길 Home Sweet Home과 자신이 수록하자고 한 커버곡 Smokin in the Boy Room을 제외한 나머지 곡들은 다 별로라고 한 바 있다. 이 앨범의 성공으로 우리는 대충 하면서 앨범을 내도 몇 백만장 팔 수 있다는 자만심만 커졌다고 한다(...).
1987
Girls, Girls, Girls
2위

1989
Dr. Feelgood
1위

1994
Mötley Crüe
7위
유일하게 빈스 닐이 아니라 존 코라비가 참여한 앨범이다. 믹 마스가 인터뷰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앨범으로 꼽았다. 본인한텐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 격이라고. 앨범 아트 타이틀에 움라우트가 빠진 채로 표기되었다.
1997
Generation Swine
4위
빈스 닐이 다시 복귀한 앨범. 존 코라비도 일부 코러스와 리듬 기타로 참여하였다. 중요한 건 앨범 순위는 높았으나 머틀리 크루 역사상 최고의 괴작으로 뽑힌다.
2000
New Tattoo
41위
토미 리가 탈퇴하고 랜디 카스틸로가 드러머로 참여하였다.
2008
Saints of Los Angeles
4위



4.2. 컴필레이션 앨범[편집]


발매일
제목
빌보드 최고순위
비고
1991
Decade of Decadence
2위

1998
Greatest Hits
20위

1999
Supersonic and Demonic Relics
-
미발표곡과 데모 트랙, EP 수록곡들로 구성되었다.
2003
The Millennium Collection: The Best of Mötley Crüe
-

2004
Loud as F@*k
94위

2005
Red, White & Crüe
6위

2009
Greatest Hits
94위

2019
The Dirt Soundtrack
10위
머틀리 크루 전기 영화 "The Dirt" 사운드트랙.


4.3. EP[편집]


발매일
제목
비고
1988
Raw Tracks

1990
Raw Tracks 2

1994
Quaternary



4.4. 박스 셋[편집]


발매일
제목
비고
2003
Music to Crash Your Car to: Vol. 1
1 ~ 4집 곡들에 오리지널 믹스 트랙들과 라이브 음원, 데모 트랙 등이 추가 수록되었다.
2004
Music to Crash Your Car to: Vol. 2
5 ~ 6집과 EP Quaternary, 컴필레이션 앨범 Decade of Decadence, Supersonic and Demonic Relics의 곡들과 보너스 트랙들로 구성되었다.


4.5. 싱글[편집]


발매일
제목
빌보드
HOT 100

빌보드
메인스트림 록

수록앨범
비고
1981
Stick to Your Guns


Too Fast for Love

1982
Live Wire



Public Enemy #1



Merry-Go-Round



1983
Shout at the Devil

30위
Shout at the Devil

Helter Skelter



1984
Looks That Kill
54위
12위

Too Young to Fall in Love
90위
17위

1985
Smokin' in the Boys Room
16위
7위
Theatre of Pain

Home Sweet Home
89위
38위

Keep Your Eye on the Money



1987
Girls, Girls, Girls
12위
2위
Girls, Girls, Girls

Wild Side

14위

You're All I Need
83위


1989
Dr. Feelgood
6위
7위
Dr. Feelgood

Kickstart My Heart
27위
17위

1990
Without You
8위
11위

Don't Go Away Mad (Just Go Away)
19위
13위

Same Ol' Situation (S.O.S.)
78위
34위

1991
Primal Scream
63위
21위
Decade of Decadence

Home Sweet Home '91
37위
41위

Anarchy in the U.K.

10위

1992
Angela



1994
Hooligan's Holiday

10위
Mötley Crüe

Misunderstood

24위

Uncle Jack



Smoke the Sky



Power to the Music



1997
Afraid

10위
Generation Swine

Beauty

37위

Find Myself



Glitter



1998
Bitter Pill

22위
Greatest Hits

Enslaved



1999
Teaser

35위
Supersonic and Demonic Relics

2001
Hell on High Heels

13위
New Tattoo

New Tattoo



Treat Me Like the Dog I Am



2004
If I Die Tomorrow

4위
Red, White & Crüe
캐나다의 펑크 록 밴드 심플 플랜이 2004년 그들의 2집 앨범 작업 시 작곡했던 곡으로 앨범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고 하여 제외되었던 곡을 프로듀서 밥 록이 구매[28]한 뒤 머틀리 크루에게 들려주었다. 니키 식스는 이 곡을 들은 후 밴드가 레코딩하기 전에 약간의 서정적인 요소를 추가하고 음악에 변화를 주었다.
2005
Sick Love Song

22위

2008
Saints of Los Angeles

5위
Saints of Los Angeles

Mutherfucker of the Year

29위

2009
White Trash Circus

37위

2012
Sex




2015
All Bad Things Must End

32위


2019
The Dirt (Est. 1981)
(featuring 머신건 켈리[29])

8위
The Dirt Soundtrack



4.6. 미디어[편집]



1987년 발매 싱글 Girls, Girls, Girls. 그들의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라 할 수 있다.[30]


1989년 발매 싱글 Kickstart My Heart. 위에 언급한 기아 K5 광고 삽입곡이자 쟈니 에이스가 테마곡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2020년 스폰지밥 무비: 핑핑이 구출 대작전 예고편 음악으로 쓰였으며 2021년에는 배틀필드 2042의 티저 트레일러에 리믹스 버젼이 삽입되기도 했다.


1989년 발매 싱글 DR. FEELGOOD. 그들의 대표곡으로 꼽히며, 가장 많이 판매된 싱글이기도 하다. 그들만의 그루브감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어서, 웬만한 드러머들도 연주하기 까다로운 곡이다.


그들의 몇 안되는 발라드 곡 중 하나인 Home Sweet Home. 85년에 발매된 후 91년에 재발매되었다. 해당 앨범은 이 곡을 제외하고 전 곡이 금지곡이 되는 바람에 당시에는 국내 발매가 안 되었다. 물론 해적판 LP는 시중에 돌아다녔기에 노래를 신청하면 방송에서 틀어줬다. 존 쿠삭이 주연한 1980년대로 타입 슬립하는 코미디 영화인 욕조 타임머신 엔딩이 이 곡인데, 1985년판 뮤직비디오를 편집해 만들었다. 주인공 세 친구 중 하나 루(Lou)가 니키 식스 포지션인 보컬로 나오는데 헤어, 복장에 문신까지 똑같이 하고 나오며, 당연히 원래 뮤비의 다른 멤버들 연주 장면도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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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니키 식스와 믹 마스는 서로 머틀리 크루 하기 한참 전에 니키가 어떤 주점에서 알바할 때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손님으로 간 믹은 가게 점원이였던 니키에게 음악 이야기를 하면서 꼰대스러운 언동을 보였고 거기에 열받은 니키는 믹에게 욕설을 난무하였으나 믹은 의기양양하게 '내가 이 근처에서 공연을 하니, 진짜 음악이 뭔지 알고 싶다면 보러오던가'라고 니키를 도발했다. 니키는 잔뜩 열받아서 꺼지라고 했지만 몰래 공연을 보러갔고 믹의 연주에 뻑가버렸다고 한다. 훗날 머틀리 크루 오디션을 통해 둘이 재회했을 땐 둘 다 서로를 기억 못 하였으나 믹의 우스꽝스러운 복장에 폭소를 터뜨린 토미 리와는 달리 그의 연주를 들은 니키는 곧바로 토미에게 '우리가 찾던 게 바로 이 친구야!'라며 강추했다는 것을 보면 기본적으로 니키와 믹은 음악적으로 잘 맞았던 것 같다.[2] 처음엔 빈스 닐은 머틀리 크루 가입에 대해 회의적이였는데, 당시 본인의 밴드인 Rockcandy가 동네에서 잘나갔거니와 머틀리 크루의 음악을 허접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오디션장도 안 나타나고 피해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뒤 몇몇 멤버들 때문에 공연장에서 제대로 엿먹은 빈스 닐이 팀을 탈퇴해버리고, 마침 만난 토미 리의 재차 권유에 머틀리 크루의 일원이 된다.[3] The Dirt에서 이 장면을 아주 상세히 묘사하였다. 여담으로 이 때 구급차를 불렀던 사람이 다름아닌 건즈 앤 로지스의 기타리스트 슬래시와 베이시스트 더프 맥케이건이었다. 니키가 구급차에 실려가는 동안 상기했듯이 간호사가 아드레날린을, 그것도 '심장'에 주사했지만 당시 니키의 마약 중독이 극한에 다다른 때여서 처음 했을 때는 살아나지 않았다. 그래서 간호사가 한 번 더 주사했더니 그 때 살아난 것(...). 그때 니키가 죽다 살아난 경험과 느낌을 곡으로 만든게 5집의 2번째 싱글인 Kickstart My Heart. 정확히는 Inject였던 것(...).[4] 건즈 앤 로지스가 처음 결성되고 나서는 머틀리 크루의 공연 오프닝 밴드였지만 머틀리 크루가 이래저래 허덕이는 동안 AFD앨범으로 승승장구하던 건즈는 1989년이 되자 어느덧 동급 수준이 되어버렸다(...).[5] 메탈리카의 라스 울리히가 이 앨범을 듣고 후에 밥 록을 영입하여 앨범을 준비한다. 라스가 밥 록 프로듀싱 특유의 그 웅장한 사운드에 매료되었다고. 그 결과물이 바로 메탈리카의 대중적 명성을 한단계 끌어올린 명반인 블랙 앨범.[6] 영화에서는 빈스 닐이 자기가 나간 거라고 하고 니키 식스는 너는 해고 당한 거라고 하지만 책에서는 반대로 빈스 닐은 팀이 자기를 해고 했다고 생각을 하였고 니키 식스는 빈스 닐 스스로가 팀을 떠난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힌다.[7] 존 코라비는 Ratt의 기타리스트로 합류한다.[8] 셀프 타이틀 앨범 Motley Crue의 실패로 인하여 그 동안 함께 했던 스탭들을 갈아치우게 되고 적자를 보게 된 소속사에서도 멤버들에게 존 코라비를 해고하고 빈스 닐을 복귀시키도록 압박한다.[9] 애초에 이 앨범의 대부분은 코라비 재직 시절에 제작된 것이고, 앨범 제작 도중 존 코라비 탈퇴 후 빈스 닐이 이어 받아서 마저 녹음과정만 마친 것. 그래서 인지 노래를 녹음할 때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10] 1집 수록곡 On with the show가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노래로 만든 것이다.[11] Nikki Six 혹은 Nikki Syxx라는 말도 있다.[12] 사실 깁슨이 기타 쪽으론 유명해도 베이스쪽으론 인지도가 낮기 때문에 당시 인기 락스타였던 니키가 꾸준히 사용을 하였기 때문에 엔도서를 해준 것일 수도 있다.[13] 여담으로 매드 맥스 개봉 전부터 니키 식스는 이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엄밀히 말하면 이쪽이 원조. 그리고 화염의 크기 부터가 두프 워리어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크고 아름답다.[혐오주의] 투어 도중 날씨때문에 잠시 한 술집에 들르게 되는데 마약을 복용하고 싶던 오지는 마약이 다 떨어져서 없다는 이야기를 듣자 니키에게 빨대를 달라고 재촉한 뒤 술집에 딸린 수영장 가장자리로 가서 개미굴에 빨대를 들이밀고는 개미들을 마약 대신 모조리 흡입하였다. 게다가 그것도 모자라 바닥에 오줌을 싸더니 그걸 능숙한 혀놀림으로 6번 만에 다 핥아 먹었다고 한다. 오지는 니키 식스에게도 너도 한번 해보라며 권유를 하였고 니키는 질 수 없다 라는 생각으로 잔뜩 긴장한 채 오줌을 바닥에 싸고 그걸 여러 생각과 함께 핥아 먹으려고 얼굴을 갖다대는 순간 오지가 니키를 옆으로 밀어버리곤 바닥에 싸질러진 니키의 오줌을 개처럼 핥아먹었다고 한다. 전기 영화 The Dirt에서 이 장면이 자세하게 묘사되는데노출주의 정작 오지는 이런 일화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였다.[14] 베이스 솔로 타임 때 잭 다니엘을 엄청 마셔댄거나 난동을 부리는 등[15] 이런 류의 작곡 철학은 메탈 계에 꽤나 보편적인 것이다. 잭 와일드도 작곡을 이렇게 한다고 한다.[16] 이렇게 머틀리 크루 공연에 백댄서, 코러스로 활동했던 여성 댄서들 중 1명인 Emi Canyn과 1990년 결혼했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이혼했다. Canyn은 2017년에 사망한다.[17] 공연 도중 믹 마스가 실수를 하면 리더인 니키 식스는 믹 마스에게 기타실력이 떨어졌다. 인지기능 장애가 있다 라는 등의 모욕적인 발언을 하였다고 한다.[18] 참고로 영화 The Dirt를 보면 니키 식스가 빈스 닐에게도 이 짓거리를 똑같이 해서 빈스가 니키에게 정나미가 떨어져서 밴드를 탈퇴했다는 전개가 나온다.[19] 훗날 후배 밴드 슬립낫의 조이 조디슨이 토미를 오마주하며 이 퍼포먼스를 본인 버전으로 시전하기도 했다.[20] 2016년 경 밴 헤일런새미 헤이거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새미 헤이거, 마이클 앤소니와 함께 Rock Candy라는 곡을 연주하였는데, 50대 중반임에도 상당히 탄탄하고 에너제틱한 연주를 보여주기도 했다.[21] 어느 음악의 장르든 드럼 같은 타악기는 왠만한 박자 감각과 곡 이해도가 요구가 된다. 단순히 박자만 잘 맞춘다고 좋은 드러머가 아니고 연주 하는 곡의 특징과 흐름을 잘 표현을 해야한다.[22] 참여 뮤지션이 림프 비즈킷의 프레드 더스트에 릴 킴이었다. 당시엔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던 뮤지션들이었다.[23] 파멜라와의 사이에서 낳은 장남.[24] Kickstart My Heart (...)[25] 2015년 공연 영상에 달린 댓글 중 하나의 내용이 "빈스 임신 8개월 치고는 공연 괜찮게 하네(...)."였다.[26] 목 관리는 잘 되어 소리는 좋지만 젊은 시절에 비해 체력이 안 되는지 가사를 생략하고 부르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말한다.[27] 액슬은 빈스가 아무 이유 없이 이지를 때린 줄 알았다.[28] 밥 록은 심플 플랜 2집의 프로듀서였다.[29] 영화 The Dirt에서 토미 리 역을 연기하였다.[30] 여담으로 박철이 SBS 파워FM에서 '2시 탈출'을 진행할 때 썼던 오프닝곡이었다. 그리고 서태지가 이 뮤직비디오를 보고 바이크 운전을 꿈꿔 왔으며 결국은 2019년에 바이크 면허를 취득했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