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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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계 고대 민족과 그들이 세운 국가로써 이란 북서부 고원에서 건국되었으며, 당대 세계의 중심이었던 서아시아의 강대국이었다. 영어로는 Medes/Media, 고대 페르시아어로는 마다이였으며, 중심지는 엑바타나였다.《개역 성경》에서의 표기는 메대. 청동기 말기에 이란 고원으로 이주해 온 초기 이란계 부족들로 추측되며, 이란에서 현재 메디아인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기 유물들이 발굴되고 있다. 고대 메디아 왕국의 멸망 이후에는 이란 북서부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으로 쓰였다. 현대 지명으로 보면 동으로는 테헤란, 서로는 케르만샤, 북으로는 아제르바이잔에 이르는 지역이다.
그리고 아케메네스 왕조가 이란 역사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면, 메디아는 이란 역사의 기초를 다진 국가였다.
메디아인들은 이란고원에 살면서 뛰어난 말을 사육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들은 원래 신아시리아 제국의 속국이었으며 한때 스키타이인의 침공을 당했지만, 퀴악사레스[3] 왕 시대에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퀴악사레스는 국력을 일신하여 영토를 이란 고원 너머로 확장하고, 신바빌로니아와 함께 신아시리아 제국을 공격했으며 결정적으로 수도 니네베를 함락시켜 멸망시켰다.[4] 이에 그치지 않고 동쪽으로는 인더스강 유역까지 점령했고, 소아시아에 있었던 서방의 강국 리디아까지 침공했으나 우열을 가리지 못하고 카파도키아를 경계로 삼아 휴전했다.
메디아, 바빌로니아, 리디아의 서아시아 3국 정립[5]
퀴악사레스의 아들 아스티아게스[6] 는 카파도키아에서 이란 동부까지 펼쳐진 광대한 제국을 물려받았다. 리디아와는 휴전 이후 점차 우호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신바빌로니아는 신아시리아 멸망 때부터 쭉 우방이었기 때문에 아스티아게스 시대의 메디아는 별 문제 없이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남쪽의 속령 파르스에서 키루스 2세가 반란을 일으키고, 여기에 중신 하르파고스까지 가담하면서 아스티아게스는 패배하고 키루스 2세에게 직접 처형을 당한 뒤 공식적으로 메디아 왕국은 멸망했다.[7] 그러나 키루스 2세가 세운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는 사실상 메디아 왕국의 패권과 왕통을 계승한 국가였으며, 메디아인과 파르스인은 언어, 문화, 인종, 습속이 같았으므로 자연스럽게 그냥 메디아-페르시아인으로 묶이게 되었다. 조로아스터교가 이란에 널리 퍼진 것도 메디아 왕국 시대의 일이다.
다만 이 역사의 상당 부분은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유물이나 기록과의 교차 검증이 되지 않는 부분을 중심으로 그 실체에 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메디아 당대의 자료가 부족한 것은 메디아의 수도로 여겨지는 엑바타나의 자리에 현대 도시인 하마단이 자리 잡고 있는지라 유적을 발굴하기도 어려운 상태이며 연구된 메디아의 고고학적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후 페르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 3세가 요절한 뒤 디아도코이 전쟁의 와중에 메디아의 일부가 반란을 일으켜 아트로파테네라는 이름으로 떨어져나갔는데, 이것이 현대 아제르바이잔의 기원이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아제르바이잔 항목을 참조. 나머지 메디아인들은 셀레우코스 왕조 시리아에 복속되었다가 이란계 정복왕조인 아르사케스 왕조 파르티아에 정복되었고, 메디아의 지배층은 점차 지방 귀족 세력으로 변모했다. 파르티아 시대에 형성되어 사산 왕조 페르시아 시대까지 큰 세력을 유지했던 대귀족인 커렌(Kâren) 가문과 메흐런(Mihrân) 가문이 메디아를 거점으로 했다.
알려진 왕을 순서대로 적었다.[8] 괄호 안은 재위 기간.
아래는 크세노폰의《키루스의 교육》에만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의 메데이아는 고전 그리스어 발음인데, 이를 헬레니즘 시대의 발음인 코이네 그리스어로 읽으면 메디아가 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위 문서의 시조로 연결짓는 설도 있다. 물론 현대에 와서는 역사적 근거는 없으며 그나마 메데이아가 코카서스(콜키스) 출신이니 비슷한 어원이 있을 거라고 연결지어 보는 것이 고작이다.
소속은 D반. 이름의 유래는 4번 항목.
성우는 마츠키 미유.
메이드복을 항상 입고 있다. 원작이나 애니판이나 레베카 미야모토가 스승한테 찾아갈때 첫 등장하였으며 스승이 성추행을 하면 가짜 팔을 꺾어버린다.
후에 모종의 이유로 모모츠키 학원의 D반으로 전학을 온다. 그때 베호이미에게 접근하는데 "절 본적 없나요? 혹은 전쟁터라든가."라 말할때 베호이미가 "아 생각났다. 그 미소."라며 적개심을 드러낸다. 이 대화로 추정컨대 과거 전장에서 만나 서로 적으로 만난듯. 바로 메디아가 적이 아니라고 하지만 베호이미는 "아 그러십니까? 라고 순순히 받아줄거라 생각하면 오산이야."라고 대답한다. 아쉽네요라 말하며 메디아가 삼각김밥을 뜯는데 메이드 장갑을 끼고 있어서 안 벗겨지는데 베호이미가 "그거 하나 못 벗기냐"며 대신 벗겨준다.
이 장면 때문에 파니포니 커플 관련 투표에서는 1위를 해먹은 적도 있고 지금도 여전히 상위권이다.
그 후에도 항상 둘은 붙어다닌다.
원작에선 목적이 레베카라 전학온듯 한데 D반으로 전학와서 묵사발된듯 하다.
그 외에는 포니테일 취향인 듯.
자세한 내용은 메디아(세인트 세이야 Ω)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디아 계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디아의 아군전체판.
자세한 내용은 메디아(카트라이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이란의 고대 왕국[편집]
[각주]
이란계 고대 민족과 그들이 세운 국가로써 이란 북서부 고원에서 건국되었으며, 당대 세계의 중심이었던 서아시아의 강대국이었다. 영어로는 Medes/Media, 고대 페르시아어로는 마다이였으며, 중심지는 엑바타나였다.《개역 성경》에서의 표기는 메대. 청동기 말기에 이란 고원으로 이주해 온 초기 이란계 부족들로 추측되며, 이란에서 현재 메디아인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기 유물들이 발굴되고 있다. 고대 메디아 왕국의 멸망 이후에는 이란 북서부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으로 쓰였다. 현대 지명으로 보면 동으로는 테헤란, 서로는 케르만샤, 북으로는 아제르바이잔에 이르는 지역이다.
그리고 아케메네스 왕조가 이란 역사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면, 메디아는 이란 역사의 기초를 다진 국가였다.
메디아인들은 이란고원에 살면서 뛰어난 말을 사육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들은 원래 신아시리아 제국의 속국이었으며 한때 스키타이인의 침공을 당했지만, 퀴악사레스[3] 왕 시대에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퀴악사레스는 국력을 일신하여 영토를 이란 고원 너머로 확장하고, 신바빌로니아와 함께 신아시리아 제국을 공격했으며 결정적으로 수도 니네베를 함락시켜 멸망시켰다.[4] 이에 그치지 않고 동쪽으로는 인더스강 유역까지 점령했고, 소아시아에 있었던 서방의 강국 리디아까지 침공했으나 우열을 가리지 못하고 카파도키아를 경계로 삼아 휴전했다.
메디아, 바빌로니아, 리디아의 서아시아 3국 정립[5]
퀴악사레스의 아들 아스티아게스[6] 는 카파도키아에서 이란 동부까지 펼쳐진 광대한 제국을 물려받았다. 리디아와는 휴전 이후 점차 우호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신바빌로니아는 신아시리아 멸망 때부터 쭉 우방이었기 때문에 아스티아게스 시대의 메디아는 별 문제 없이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남쪽의 속령 파르스에서 키루스 2세가 반란을 일으키고, 여기에 중신 하르파고스까지 가담하면서 아스티아게스는 패배하고 키루스 2세에게 직접 처형을 당한 뒤 공식적으로 메디아 왕국은 멸망했다.[7] 그러나 키루스 2세가 세운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는 사실상 메디아 왕국의 패권과 왕통을 계승한 국가였으며, 메디아인과 파르스인은 언어, 문화, 인종, 습속이 같았으므로 자연스럽게 그냥 메디아-페르시아인으로 묶이게 되었다. 조로아스터교가 이란에 널리 퍼진 것도 메디아 왕국 시대의 일이다.
다만 이 역사의 상당 부분은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유물이나 기록과의 교차 검증이 되지 않는 부분을 중심으로 그 실체에 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메디아 당대의 자료가 부족한 것은 메디아의 수도로 여겨지는 엑바타나의 자리에 현대 도시인 하마단이 자리 잡고 있는지라 유적을 발굴하기도 어려운 상태이며 연구된 메디아의 고고학적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후 페르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 3세가 요절한 뒤 디아도코이 전쟁의 와중에 메디아의 일부가 반란을 일으켜 아트로파테네라는 이름으로 떨어져나갔는데, 이것이 현대 아제르바이잔의 기원이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아제르바이잔 항목을 참조. 나머지 메디아인들은 셀레우코스 왕조 시리아에 복속되었다가 이란계 정복왕조인 아르사케스 왕조 파르티아에 정복되었고, 메디아의 지배층은 점차 지방 귀족 세력으로 변모했다. 파르티아 시대에 형성되어 사산 왕조 페르시아 시대까지 큰 세력을 유지했던 대귀족인 커렌(Kâren) 가문과 메흐런(Mihrân) 가문이 메디아를 거점으로 했다.
1.1. 역대 통치자[편집]
알려진 왕을 순서대로 적었다.[8] 괄호 안은 재위 기간.
- 1대: 데이오케스 또는 흐샤트리타(Khshathrita)[9]
- 2대: 프라오르테스[10] (BCE 675?~ BCE 653)
- (스키타이의 지배(BCE 653 ~ BCE 625))
- 3대: 퀴악사레스(BCE 625 ~ BCE 585)
- 4대: 아스티아게스(BCE 585 ~ BCE 550)
아래는 크세노폰의《키루스의 교육》에만 등장한다.
- 5대: 퀴악사레스 2세(BCE 550 ~ ?)[11]
2. 메데이아의 또다른 발음[편집]
그리스 신화의 메데이아는 고전 그리스어 발음인데, 이를 헬레니즘 시대의 발음인 코이네 그리스어로 읽으면 메디아가 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위 문서의 시조로 연결짓는 설도 있다. 물론 현대에 와서는 역사적 근거는 없으며 그나마 메데이아가 코카서스(콜키스) 출신이니 비슷한 어원이 있을 거라고 연결지어 보는 것이 고작이다.
3. 파니포니 대쉬의 등장 인물[편집]
소속은 D반. 이름의 유래는 4번 항목.
성우는 마츠키 미유.
메이드복을 항상 입고 있다. 원작이나 애니판이나 레베카 미야모토가 스승한테 찾아갈때 첫 등장하였으며 스승이 성추행을 하면 가짜 팔을 꺾어버린다.
후에 모종의 이유로 모모츠키 학원의 D반으로 전학을 온다. 그때 베호이미에게 접근하는데 "절 본적 없나요? 혹은 전쟁터라든가."라 말할때 베호이미가 "아 생각났다. 그 미소."라며 적개심을 드러낸다. 이 대화로 추정컨대 과거 전장에서 만나 서로 적으로 만난듯. 바로 메디아가 적이 아니라고 하지만 베호이미는 "아 그러십니까? 라고 순순히 받아줄거라 생각하면 오산이야."라고 대답한다. 아쉽네요라 말하며 메디아가 삼각김밥을 뜯는데 메이드 장갑을 끼고 있어서 안 벗겨지는데 베호이미가 "그거 하나 못 벗기냐"며 대신 벗겨준다.
이 장면 때문에 파니포니 커플 관련 투표에서는 1위를 해먹은 적도 있고 지금도 여전히 상위권이다.
그 후에도 항상 둘은 붙어다닌다.
원작에선 목적이 레베카라 전학온듯 한데 D반으로 전학와서 묵사발된듯 하다.
그 외에는 포니테일 취향인 듯.
4. 세인트 세이야 오메가의 등장인물[편집]
자세한 내용은 메디아(세인트 세이야 Ω)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여신전생 시리즈의 회복 스킬[편집]
자세한 내용은 디아 계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디아의 아군전체판.
6. 카트라이더의 등장인물[편집]
자세한 내용은 메디아(카트라이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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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 사진의 노란색 부분. 신아시리아 제국 멸망 이후 세력 균형을 이룬 오리엔트의 4대 왕국(리디아, 이집트, 신바빌로니아, 메디아). 나중에 모두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에게 정복된다.[2] 메디아어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며 고대 페르시아어와 근연 관계의 언어인 것은 알려져 있지만 메디아 시대 당시의 보존된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문자를 사용했는지, 문법이 어땠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3] Cyaxares. 재위 BCE 625 ~ BCE 585. 고대 페르시아어로는 우(후)바흐쉬트라(Uvaxštra, 𐎢𐎺𐎧𐏁𐎫𐎼)[4] 이때 신바빌로니아와의 동맹을 위해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게 메디아의 공주 아미티스를 시집 보냈는데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왕비인 아미티스를 위해 건설한 것이 공중정원이라고 알려져 있다.[5] 3국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파란 나라는 킬리키아 왕국이다. 비록 영토도 가장 작고, 강대국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인 나라인 것처럼 보이지만, 비옥한 토지와 지정학적 중요성을 발판삼아 서아시아의 여러 나라들 사이를 중개하며 나름 번영을 누렸던 것으로 보인다.[6] Astyages. 재위 BCE 585 ~ BCE 550. 고대 페르시아어로는 아르쉬티베이가(Ršti-vêga), 아카드어로는 이쉬투메구(Ištumegu)[7] 설화로는 이렇게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키루스 2세는 자신의 외조부인 아스티아게스를 폐위시키기는 했으나 처형하지 않고 오히려 어느 정도 대접해주었던 것으로 보인다.[8]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메디아의 건국자는 메도스이며, 메데이아의 아들인 메도스가 왕위에 오르면서 콜키스의 국호를 메디아로 바꾼 것이 시초라고 한다. 딱히 근거는 없으며 역사학계에서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고고학적으로 메디아는 콜키스에서 한참 먼 곳에서 시작했다.[9] 둘이 동일인인지는 불명.[10] 고대 페르시아어로 프라바르티쉬(𐎳𐎼𐎺𐎼𐎫𐎡𐏁)[11] 실존 여부 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