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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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연방공화국 제8대 연방총리
앙겔라 도로테아 메르켈
Angela Dorothea Merkel


파일:Angela_Dorothea_Merkel.jpg

본명
앙겔라 도로테아 카스너
Angela Dorothea Kasner
출생
1954년 7월 17일 (69세)
서독 함부르크[1]
재임기간
제8대 연방총리
2005년 11월 22일 ~ 2021년 12월 7일
서명
파일:앙겔라 메르켈 서명.svg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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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울리히 메르켈(Ulrich Merkel) (1977~1982)
요아힘 자우어(Joachim Sauer) (1998~)
자녀
의붓아들 다니엘 자우어(Daniel Sauer), 아드리안 자우어(Adrian Sauer)[1]
학력
카를 마르크스 대학교 (물리학 / 학사)[2]
베를린 독일 과학원[3] (물리화학 / 박사)[4]
종교
개신교 (독일 개신교회)[5]
신체
165cm, A형
소속 정당

의원 선수
8 (하원)
지역구
포어포메른·뤼겐-포어포메른·그라이프스발트 1구[6]


1. 개요
3. 평가
3.1. 긍정적 평가
3.1.1. 높은 인기
3.1.2. 경제적 평가
3.1.3. 반대 측의 정책 수용
3.1.4. 러시아 침공 책임 주장에 대한 반론
3.2. 부정적 평가
3.2.2. 과도한 러시아산 자원 의존
3.2.3. 과도한 군축과 러시아 위협에 대한 무시
3.2.4. 유럽 난민 사태를 초래한 무모한 중동 난민 수용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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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연방공화국 제8대 연방총리 취임 선서 (2005)



독일연방공화국 제8대 연방총리 취임 선서 (2018)


1. 개요[편집]


독일의 제8대 연방총리, 물리학자.

2005년 11월 22일부터 2021년 12월 7일까지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로 16년간 재임했다.[2][3] 4년 연속 포브스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이기도 하였으며 2015년에는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2. 생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앙겔라 메르켈/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평가[편집]



3.1. 긍정적 평가[편집]


"옷차림도 검소하고 헤어스타일도 늘 똑같습니다, 부를 과시하지도 않죠. 원래 사치를 하지 않는 분이라 뇌물로 매수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빌프/RTL TV 기자


현명한 실용주의를 선보이고 윤리의 나침판을 내려놓지 않는 사람

버락 오바마


(bbc)메르켈의 16년… 전문가들이 평가한 리더십과 유산
(한국경제)누구보다 강하고 유연했다…메르켈의 '무티 리더십' 16년

메르켈 총리는 정치에 입문한 지난 24년 동안 단 한 차례의 스캔들이나 부패 사건에 연루된 적이 없다. 뉴욕타임스에서는 서방 세계에서 신뢰할 만한 마지막 정치 지도자로 평했다.

사실 애초에 메르켈은 총리 4선을 계획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상황이 바뀐다. 미국 선거 8일 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작별인사차 베를린을 방문하여 베를린의 한 호텔에서 만찬 도중, 메르켈에게 총리직에 다시 출마해서 서방 진영과 세계가 단합하도록 이끌어 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메르켈이 응했다.# 이외에도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으로서 가장 마지막으로 통화한 인물이 바로 메르켈이며#, 앞에서 언급햇던 것처럼 3기로 정계에서 은퇴하려던 메르켈을 4기까지 도전하도록 독려했을 정도로 오바마는 미국을 대신하여 서방의 자유세계를 지킬 인물로 메르켈을 뽑았다.

3.1.1. 높은 인기[편집]


퇴임을 앞뒀지만, 메르켈의 인기는 여전했다. 독일 공영방송 ARD가 정치인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메르켈에 대해 ‘만족한다’는 응답은 63%로, 차기 총리 후보로 각 당에서 지명된 기독교민주당(이하 기민당)의 아르민 라셰트(32%), 사회민주당(이하 사민당)의 올라프 숄츠(42%) 등을 앞섰다. #


3.1.2. 경제적 평가[편집]


경제적 업적도 두드러지는데 독일은 2005년 메르켈이 집권을 시작했을 당시 ‘유럽의 병자(sick man of Europe)’로 불렸다. 통일 후 경제는 내리막길을 치달아 당시 실업률이 11%에 달했다. 하지만 8월 말 현재 실업률은 5.5%로 낮아졌으며 국민의 생활 수준도 개선됐다. 메르켈 총리가 집권한 2005년 이후 독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영국·캐나다·일본·프랑스의 2배 속도로 성장했고, 실업률은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70%에 육박하는 독일인이 자신의 경제 상황에 만족하고 있다고 답했다. 메르켈 시대의 최대 공적으로 꼽히는 고용 창출은 특히 여성·난민·고령자에게서 크게 확대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5~64세 독일 여성의 노동 참가율은 80%로 주요 7개국 가운데 가장 높다. 심지어 난민 등 이민의 취업률도 상승했다.# 때문에 메르켈은 독일에 두번째 '라인강의 기적' 을 가져와줬다고 평가받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은 경제와 재정과 관련하여 일가견이 있었다고 평가받는다.# 일례로 독일 총리로 취임한지 닷새 만에 유럽연합 재정 프로그램을 제대로 익혀서 당시 유럽연합집행위원회 재정위원장을 놀라게했다. 이렇게 타고난 경제적 감각 덕분에 메르켈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독일을 경제 불황에서 지켜냈고#, 이는 훗날 유로존 위기가 유럽연합을 덮칠 때 독일이 재정위기로 허덕이던 이웃 국가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발판으로 작용했다.

메르켈은 유로존 위기를 극복한 구원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는 독일로부터 긴축정책을 강압 받은 그리스 재무장관도 그의 정책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인정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물론 메르켈의 강압적인 긴축정책 요구로 남부 유럽 국가들의 원성을 사기는 했지만 당시 유로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정책이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만약 당시 메르켈 측에서 남부 국가들의 재정 구원에 소극적이었다면, 유로존은 몰락했을 가능성이 크고, 이는 유럽연합 전체의 위기로 번질 수 있었던 상황이다.

코로나의 여파로 유럽연합 전체를 덮친 경제 불황도 메르켈이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과 주도적으로 능동적인 정책을 초기에 도입시켜서 제2차 유로존 위기를 막을 수 있었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비록 유럽연합집행위원회와 남부 회원국들이 필요한 만큼의 재정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유럽연합집행위원회가 회원국의 사전동의 없이 스스로 재정을 확보할 수 있는 정책을 도입하여, 향후 발생할 수 있는 경제위기에 유럽연합이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3.1.3. 반대 측의 정책 수용[편집]


메르켈은 이공계 박사 경력을 가진 정치인인데 그에 걸맞게 정치에 대한 접근법이 사실 기반적이고 기계적이고 과학적이였다. 때문에 독일 정치판을 '정치'보단 '정책'에 대한 토론장으로 바꿔놓았다는 평을 받기도 하고 이에 대해 안좋게 보며 부정적인 평도 있다. 그러나 사실을 평가하며 선입견을 갖지 않고 접근했으며 정치가 양극단으로 흘러갈 때도 그는 문제에서 '정치적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상황을 진정시키려 했다. 이러한 점은 코로나 19에서 가장 잘 드러났다. # # #

반대측의 정책에도 독일에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거리낌없이 실행했다. 2005년 총선 당시 경쟁자이자 전임 총리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의 ‘어젠다 2010’, 일명 하르츠 개혁을 계속 추진한 것이 대표적 어젠다 2010은 노동 유연성과 실업 급여, 임금 삭감을 골자로 한 슈뢰더 전 총리의 경제개혁 정책을 국민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켜 슈뢰더 전 총리를 패배하게 만든 정책이지만 독일에 필요하다고 판단되자 과감하게 경제개혁을 추진해버렸으며 이후로도 슈뢰더 전 총리에게도 공을 돌리는 면모도 보였다.#


3.1.4. 러시아 침공 책임 주장에 대한 반론[편집]


메르켈에 대해 책임을 주장하는데 이는 당시 상황에 대한 언급이 부족한 일방적인 책임전가에 불과하다 우선 러시아군이 속빈 강정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결국 우크라이나 정복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게 분명히 드러났는데 굳이 군비확충에 나설 필요가 있었냐는 점, 그리고 블라디미르 푸틴우크라이나에서 온갖 만행을 저지르기 전까지는 그나마 최소한의 합리성을 가진 독재자라는 평가를 전세계에서 받았다는 점,[4]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막나가기 시작한 시점이 나토 확대를 우크라이나까지 검토하기 시작한 시기인데 이 시기 러시아에 대한 평가는 그렇다 쳐도 최소한 나토 확대를 주도한 건 미국이지 독일이 아니므로 메르켈보다는 부시와 오바마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 등이다. 그리고 대러관계에 있어 과실이 있었다고 쳐도 재통일 당시 후유증까지 안고 있었는데도 유로화 위기 당시 독일 경제가 파탄나는 사태를 피한 것은[5] 슈뢰더와 메르켈의 개혁 덕분이었으므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일만 보고 메르켈을 역적 취급하는 과도한 평가는 틀린 것이다

메르켈은 푸틴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고 푸틴을 굳이 도발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당장 현재 나눠진 진영논리를 벗어나서 보면 실제로도 푸틴은 "2002년 체코 프라하"에서 발트3국을 포함 총 7개의 국가들이 무더기로 나토에 가입해 동진 하는 것을 불쾌해하면서도 참고 문제삼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결국 2002년 동부유럽 7개국이 나토 가입은 큰 마찰 없이 확정됐고 이로써 나토의 동진은 마무리되는 것으로 인식해온 것이다. #

그러나 이렇게 러시아의 묵인을 얻어 무더기로 나토 가입이 이루어졌음에도 또 추가적인 나토 확장 이야기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것이다. 조지아와 함께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기존의 나토 가입들과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문제였으며 이것만큼은 러시아로서도 발트 3국과 동유럽 4국들 총 7개국들의 나토 가입과는 달리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심각한 안보 위기였다. 그리고 이 점을 메르켈은 조지 W 부시와 같은 이상론적인 안이한 발상과 달리 냉정하게 현실을 깨닫고 있었던 것 뿐이다. 결국 당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일방적인 고집과 서둘러가면서 나토를 계속해서 팽창시키고자 하는 과도한 욕심에 메르켈은 더 이상은 안된다고 테클을 건 것이다. 이미 2002년도에 프라하에서 논의를 확정해 2004년도 부터 공식 나토 멤버로 활동하게 하는 과정을 거쳐 무려 7개국씩이나 통째로 나토 가입을 시켰고 이때 러시아와 푸틴의 묵인과 양해를 얻고도 몇년 되지도 않아서 또 2008년도에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에 나토 가입을 시킨다는 것은 러시아를 대놓고 도발하는 것이였다.

무책임하게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 안건을 꺼낸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그야말로 미국의 일극체제, 미국의 강한 국력을 기반으로 유엔을 무시해가면서 패권적 행보들을 자행한 무책임한 사람이였다. 현재 푸틴이 유엔과 안보리도 무시하고 불법 전쟁을 일으킨다고 거센 비판을 받는데 푸틴 이전에 유엔과 안보리도 무시하고 불법 전쟁[6]을 일으켜댄 인물이 바로 조지 W 부시이다.

또한 여전히 반박의 여지가 남아 있는데, 대표적 공격적 현실주의자인 존 J. 미어세이머와 대표적 방어적 현실주의자인 스티븐 월트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원인으로 'NATO의 동진'을 지목하고 있다.2015년 시카고대, 번역본 이들에 따르면 NATO를 비롯한 서방 세력이 러시아 세력권 코앞까지 진출함에 따라 러시아가 이 지역에서 안보 불안을 느꼈다는 것.[7] 메르켈의 앞선 발언[8] 역시 그런 현실주의적 시각과 유사한 논조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러시아의 침공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메르켈이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의 여부와는 관계 없이 그 발언 자체가 유의미한 접근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The Kyiv Independent: In an interview with the German newspaper Die Zeit, Angela Merkel said about the Minsk protocols that 'It was obvious that the conflict was going to be frozen, that the problem was not solved, but it just gave Ukraine precious time.'

Do you also believe that the negotiations in Minsk were intended to delay Russian advances in Ukraine?

François Hollande: Yes, Angela Merkel is right on this point.

Hollande: ‘There will only be a way out of the conflict when Russia fails on the ground’


이후 반대측의 각종 비난에 시달리던 메르켈은 결국 자신에 대한 논란에 대해 반박하면서 급기야 민스크 협정이 우크라이나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용도였음을 실토하게 된다. 이후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 또한 kyivindependent와의 인터뷰에서 메르켈의 의도가 그것이였다고 확인시킨다.

“I think this was a great diplomatic achievement. Having the Minsk agreement, we kept Russia away from our borders — not from our borders, but away from a full-sized war.”

Financial Times - Ukraine’s ex-president Petro Poroshenko: ‘The army is like my child, and I am very proud’


우크라이나 전임 대통령이자 민스크 협정당시의 대통령이였던 페트로 포로셴코 또한 민스크 협정에 대해 일단 위기를 피했다고 높게 평가했다.

결국 메르켈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게 우크라이나는 전쟁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고, 푸틴은 강경했다. 현재 2022년 우크라이나는 미국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지원을 받고 8년동안 나토와 미국의 지원하에 군대를 단련시켰음에도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는 처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메르켈보고 왜 푸틴에게 무르게 나왔냐고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메르켈때 전쟁이라도 터졌다면 그야말로 준비가 안된 우크라이나가 순식간에 쓸려나갈수도 있었던 위험천만한 상황이였다.

이후 일각에선 메르켈에 대해 물렀다고 주장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왜 빨리 안시켜줬냐고 메르켈을 헐뜯지만 정작 서방은 메르켈 이후 시간이 지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 위기에 전쟁을 피하기 위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나토 가입이 시급하다며 제발 가입시켜달라고 줄곧 읍소했는데도 # 끝내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받아들이길 머뭇거리며 거부했다.

한마디로 메르켈뿐만 아니라 서방 진영 전반이 우크라이나를 NATO에 받아들여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서방-러시아 전쟁으로 확대되는것은 극도로 꺼리고 있는 것.

허나 이 장황한 쉴드가 무색하게도, 2023 4월 30일 메르켈은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중지하고 외교 협상으로 종전해야 한다 주장했다. 사실상 러시아의 편을 든 것.[9]

3.2. 부정적 평가[편집]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수많은 러시아군이 죽고 있는 것은 푸틴이 선량한 러시아인들을 전쟁터로 내몰았기 때문이 아니라 러시아 제국주의에 매료된 러시아인들 스스로 선택한 러시아의 과거, 현재, 미래일 뿐이다. 애초에 부정선거의 영향도 있다지만 푸틴을 대통령으로 연거푸 추대한 것은 러시아인들이 아니던가. 그들이 푸틴을 러시아의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그 푸틴이 전쟁을 벌여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단지 그럴 뿐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메르켈도 독일인이 선택한 결과물일 뿐이다. 그런 메르켈은 독일의 화신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독일이라는 국가의 특성을 인간 형태로 압축시켜 놓은 지도자였다. 독일의 고질적인 문제점, 한 번도 지역강국 수준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어 국력에 비해 미래를 보는 비전이 너무 부족하고, 국가의 위신을 높이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책임을 극도로 회피하며, 그때그때 눈앞의 이익만 쫒다가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부분을 그대로 답습했다.[10]

메르켈에겐 좋든 나쁘든 어떻게 국가를 이끌어 나가겠다는 비전이나 고집이 전혀 없었다. 국제 무대에서건 국내 문제에서건 특정 이슈를 두고 상반된 입장이 대립하면 어느쪽 편도 적극적으로 들지 않고 중간에서 절충하며 국제적으론 독일의 부, 국내에서는 유권자의 표를 끌어 모으는 걸 목표로 했을 뿐. 언제나 중간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인했을 뿐 자신의 이상을 전파해서 대중을 설득하는 리더십은 없었다. 프랑스의 마크롱처럼 좌우 모두 최대한 포옹하려는 확고한 중도지향의 리더쉽조차 아니었다. 그냥 상반된 양쪽이 100% 만족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수그리고 들어갈 수 있는 지점을 찾아서 선점해 양쪽에서 표를 모으는 임시변통에 가까웠다.

이런 메르켈의 특성은 에너지 정책, 그리고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정치 초년병 시절 메르켈은 탈원전에 관심이 없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비롯한 여러 사고와 냉전을 거치며 형성된 핵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 냉전 시기 최전선이었던 독일에 자연히 팽배해진 반핵 기조를 전면에 내세운 녹색당의 부상으로 자신이 표를 잃을 위기에 처하자, 이를 재빨리 캐치하고 녹색당이 완전히 헤게모니를 가져가기 전에 선점했을 뿐이다. 안 그럴 이유가 없었다. 탈원전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원전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만약 진정으로 탈원전을 지지했다면 후속되는 다른 조치들이 있었어야 하는데 독일 산업을 지켜야 한다는 명목으로 각종 환경, 탄소 규제가 독일 자동차 산업에 제대로 적용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막았고 디젤게이트로 터져 도저히 숨길 수 없을때까지 무시했으며 대체 에너지에 대한 투자는 후술하겠지만 미비했다.

이 같은 좋게 말하면 중립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비열한 태도는 국제무대에선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왔다. 유럽 제 1의 경제력을 가진 국가가 유럽의 리더가 되기는 커녕 다른 나라는 어떻게 되던 우리 집 곳간이나 채우면 그만이라는 단견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유럽, 특히 동유럽 국가들은 완장은 원하지만 그에 따라오는 책임은 지기 싫어하는 것을 넘어 불리한 것 특히 러시아 견제와 국방 분야에서 타 유럽 국가들에게 떠넘기려 하는 당시 독일 메르켈 내각의 태도에 치를 떨었다. 이 때문에 대러시아 유화 정책을 펼치던 메르켈이 물러나면서 독일군의 국방 예산 증강과 대러 강경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운 올라프 숄츠가 후임 독일 총리가 되고,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 침공을 단행하자 그간 메르켈의 노선에 불만이 누적된 폴란드, 체코, 불가리아, 루마니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그리스 등 유럽의 여러 국가들도 역사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게 당했거나 나치 독일군과 싸우는 등 독일에 대한 원한과 증오가 존재하고 있던 나라들였음에도 숄츠 총리의 국방비 예산 증강과 강경 대러시아 정책에 찬성/지지하는 행보를 보였으며, 특히 역사적, 정치적으로 독일한테 쌓인 게 많았던 폴란드는 아예 방위사업 파트너를 한국으로 갈아타버렸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찰 노릇을 하면서 이런저런 실패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것은 전투 이후 정치의 실패였지 최소한 전투 자체는 막대한 물량과 기술력으로 압도적으로 이겨왔고, 무엇보다 해외 투사력 자체를 상실한 적은 없다. 한편, 영국은 처칠 이래로 미국의 세계 전략의 가장 충실한 파트너로 움직이면서 여차하면 유럽과도 각을 세웠고[11], 프랑스는 드골 이래로 유럽을 중심으로 무엇을 해보고자 노력하는, 지도자가 바뀌어도 언제나 뚜렷한 기조가 있었다.

반면 독일은 미국과 바짝 붙는 것도 아니고, 유럽 중심국가로 뭘 해보는 것도 아니고 연방의회 승인 핑계로 뭉그적거리고 유럽의 안보에는 나 몰라라 하면서 러시아와 밀월 관계를 강화해 값싼 러시아 가스로 독일, 특히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구 동독 지역에 이득을 주는 데나 매달렸다. 돈바스 침공 이후에도 이런 태도를 버리지 않아 유럽이 러시아를 막을 의지조차 없다는 것을 파악하게 된 러시아의 간덩이는 점점 커졌다. 그 결과 2002년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불쾌감 표시 정도로 끝냈던 푸틴이 12년 후에는 영토 강탈 행위를 하고, 20년 후에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면전쟁을 일으키는 불씨를 제공하고 말았다.

이런 태도를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12] 하지만 독일쯤 되는 강대국은 내치만 잘하면 만사형통이 되지 않는다.[13] 그만한 덩치의 국가는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주변이 휘청거리지 않는가? 적어도 메르켈은 스스로의 정책이 유럽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는 시늉 정도는 했어야 했지만 메르켈은 그마저도 하지 않았고, 그녀는 현재의 관점으로 봤을 때 지극히 근시안적인 리더라고밖에 할 수 없다.


3.2.1. 우크라이나북대서양 조약기구 가입 반대[편집]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거부했던 전적이 있는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부차 학살의 참상이 알려지면서 이 전적이 새로운 비판 요소로 떠올랐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메르켈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그녀의 결정으로 일어난 결과인 부차 학살 현장을 보여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을 정도. 이에 대해 메르켈은 자신의 결정이 아직도 옳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하며 학살 현장도 가지 않겠다고 언급하는 등[14] 자신을 비판하는 젤렌스키의 주장에 반박했다.[15] 결국 메르켈의 인스타그램에 수많은 네티즌들이 해당 발언과 부차 학살의 실태를 외면하는 행보에 대해 비난하고 있다.# 똑같이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반대했던 프랑스의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관련 이슈에 대해 의견 표명과 같은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아 나름 조용히 지나가고 있는 걸 생각하면 괜히 적극적으로 대응했다가 안 나서니만 못한 꼴이 된 셈이다.[16]

메르켈에 대한 비판은 비단 네티즌만 하는 것이 아니다. 메르켈의 '그 발언' 이후 점점 메르켈에 대한 서방권의 평가는 '제2의 체임벌린이자 우크라이나를 팔아 자국의 배를 채우며 푸틴 같은 독재자의 야심만 키운 대책없고 무책임한 이기주의자'로 변해가고 있다.

전 유럽과 독일인 모두가 부차에서 일어난 학살과 전쟁범죄에 대해 분노하고 있을 때, 게르하르트 슈뢰더[17] 메르켈의 자살에 가까운 정치적 발언은 메르켈의 정당인 기독교 민주당마저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만들었다. 여기에 절망스러운 독일 연방군의 현황에 대한 책임론도 나오고 있다.[18] 사민당 대표는 공식적으로 게르하르트 슈뢰더에게 탈당을 요구하고 있으며, 기독교민주연합 역시 메르켈이 앞으로도 이러한 정치적 입장을 취한다면 향후로는 당적을 유지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 같은 태도는 슈뢰더와 메르켈이 은퇴한 정치인이기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데, 지금까지 해왔던 일이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민당과 기민당의 현직 정치인들은 선거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고, 그들이 메르켈과 슈뢰더를 저버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현재 독일인들의 메르켈과 슈뢰더에 대한 분노가 어마어마하다는걸 보여준다.

최근에는 자신의 행위를 뮌헨 협정네빌 체임벌린에 빗대는 망언을 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는 자신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막았기에 뮌헨 협정으로 시간을 번 네빌 체임벌린처럼 우크라이나를 위한 시간을 벌었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이건 그야말로 역사책을 뒤흔드는 전 유럽급 망언이다.[19][20]

사실 네빌 체임벌린 항목에도 있지만 공산주의를 극도로 혐오해 냉전을 활짝 연 처칠에 대한 폄하, 그 반작용으로 체임벌린과 뮌헨협정에 대한 수정주의적 재평가가 사회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건 거의 음모론적인 이야기일 뿐에다가[21] 불문율로써 그걸 절대로 입에 담으면 안되는 국적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체임벌린을 겁박하여 뮌헨 협정을 이끌어낸 아돌프 히틀러를 민주적으로 선출해 준 독일인들이다. 그런데 그게 전직 독일 총리 입에서 나왔으니 주변국들이 발칵 뒤집어진 것이다. 뮌헨 협정으로 체코를 병합한 전범국 독일의 전직 총리가 뮌헨 협정을 미화하고 있으니, 체코인들 귀에 저 말이 어떻게 들렸을지 상상해 보라.[22]

수정주의자들의 소수설과는 다르게 정설은 체임벌린이 체코에게 벌인 배신행위는 크나큰 실책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체임벌린은 그 어떤 여론조사에서도 영국 역대 총리 중 평가가 최하위이다. 뮌헨 협정으로 번 시간은 고작 6개월에 불과했으며, 체코를 팔아먹어서 얻어낸 이 기간동안 영프가 거둔 성과는 전혀 없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영국의 배신으로 주테텐란트를 빼았기고 국가 체제를 유지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나치 독일에 합병된다.[23] 메르켈이 든 비유를 그대로 해석하자면 우크라이나의 뒤통수를 치고 도네츠크와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팔아먹고나니 망할 줄 알았는데 망하지 않아서 의외인 것 같다는 소리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과거의 일은 그렇다쳐도 메르켈의 말대로 시간을 벌었다면 8년간 시간이 있었을 텐데 그 동안 독일이 무엇을 했느냐 하면 유럽 각국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가 국방비를 GDP의 2%로 올리고 러시아 가스에 대한 자원수입을 자제하라고 하자, 보란듯이 씹고 국방비를 더 줄이고 노드스트림 공사를 더 빠르게 진척시켰다. 러시아의 위협을 과장하지 말라며 유엔에서 비웃는 태도를 보이는 독일 외교관은 유튜브에 그대로 남아있다.#

즉 뮌헨 협정 드립을 치려면 우크라이나가 대비를 하는 거야 당장 나라가 엎어지게 생겼으니 그렇다 쳐도 그럼 독일도 대비를 해야 하는데 아무 것도 안하다못해 8년 내내 러시아 편을 들어주고 있었으니 앞뒤가 하나도 안 맞는 것이다. 그리고 독일은 과거사를 생각해서라도 절대 러시아에 유화적이어서는 안 되었다.

러시아가 키이우에 침공한 직후 젤렌스키가 서방국가에 전화를 돌리면서 지원을 호소했을 때, 오직 독일에서만 상상을 초월한 답변이 왔다고 한다. 곧 교체될 정권이니까, 교체된 정권과 이야기하겠다. 라는 말이었다. 주독 우크라이나 대사인 안드리아 멜리크는 키이우 침공 당일 다급하게 독일 정부와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그 어떤 독일의 기관과도 대화할 수 없었다. 결국 우크라이나 측은 독일의 이 대응에 대해 우크라이나 정부는 독일을 침략의 공모국으로 간주함과 동시에 주독 우크라이나 대사는 원색적으로 독일 정계를 비난하는 발언을 독일 언론에 쏟아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는 독일 국민도 적으로 돌리는 어리석은 행위일 것이기에 우크라이나가 이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지는 않았다. 독일 정부의 태도에 대한 의혹을 압박하면 공식적인 사실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정부를 곧 무너질 정부로 취급하는 독일 정부를 상대로 하지 않고 반 나치 성향이 강한 독일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나라가 타국의 정부에 대한 비토를 타국 국민에게 호소한다는 것이 먹히리라 기대하기도 어렵고 일반적으로는 상상도 못할 행위이지만 우크라이나가 겪는 전쟁을 대하는 독일의 태도 자체가 비상식적이었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독일 여론이 발칵 뒤집어졌고 사민당이 곤혹에 처하게 되었고 슈뢰더와 메르켈에 대한 손절, 좀 더 격식을 갖춘 단어를 말하자면 숙청이 벌어진 것이다.

서방 국가의 국민들이 저런 독일 정부의 행동를 보고 독소 불가침 조약을 떠올리는 게 마냥 과장된 것일 수는 없다. 이게 공개된 시점에서 폴란드의 정치인들 중 상당수가 독일을 사실상 잠재적 적국이나 적대적 중립국으로 취급하기 시작했으며 서부에 군단 배치 계획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폴란드 군이 GDP의 5%까지 국방비 추가 경정 편성을 요구하자 여당 총리가 그걸로 되겠냐며 GDP의 8%까지 올려주며 준 전시경제상태로 돌입했다.. 지난 전쟁에서 나치 독일만 쳐다보다가 소비에트에게 배신당하고 저항도 못해보고 무너진 경험을 한 그들에게 독일의 태도는 불신을 사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나중에 소비에트도 바르샤바 봉기 때 나치 독일이 폴란드인들을 다 죽여주길 기다린 경험이 있는 만큼 둘이 정말 서로 다 죽이자고 싸우는 와중에서도 폴란드를 정리하고자하는 의도에는 합심할 수 있다는 게 폴란드의 숙명적인 지정학적 위치이기 때문이다. 폴란드 국방부가 굳이 바로 옆나라인 독일의 무기가 아닌 지구 반대편 한국의 무기를 사들이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 때문인데 러시아가 쳐들어 온다면 지금의 우크라이나에게 한 것처럼 전쟁 무기를 팔려면 야당과 합의과 필요하다, 방위산업체에 투자하는 게 어렵다 등등 한가한 소리를 하면서 폐기가 예정된 2선무기나 선심쓰듯 던져주며 밍기적거릴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독일산 무기를 주력으로 삼았다가 전시 충원이나 탄약 공급 자체가 불가능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토가 있으니 우크라이나와 다를 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가짜전쟁 항목에서 보듯이 지난 전쟁에서 폴란드가 동맹이 없어서 망했던 것도 아니다.

메르켈을 중심으로 한 전직 총리와 정치인들의 입장이 매우 곤란해진 것도 러시아의 이런 움직임을 사전에 알고 공모했거나,묵인했을 거라는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독일의 복잡한 스탠스는 단순한 독일 국민들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우호적 감정을 떠나, 독일 엘리트의 입장에서 독일의 전략적 위치를 다시 생각해보면 수백년간 나라가 다섯번이나 갈아엎어졌어도 이루지도 포기하지도 못한 독일인들의 해묵은 야망이 드러난다.

지금의 독일이 나치 독일처럼 폴란드나 우크라이나를 적극적으로 분할할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으며 독일군이 먼저 움직일 가능성은 제로 수준이겠지만, 폴란드 침공 때와 입장이 180도로 바꾸어 러시아가 폴란드를 무너뜨려 바르샤바의 행정력이 공백상태가 되면 전후 다시 독일계가 다수 이주한 포즈난포메른 서부는 보호를 명분으로 자연스럽게 독일군이 진주하고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다. 그것도 하필 메르켈의 지역구인 동독지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폴란드로부터 모든 재산을 박탈당하고 추방당한 실향민들 대다수가 동독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독일이 러시아가 일전을 불사한다 해도 최소한 발트3국이 수바우키 회랑 문제로 짓밟힌 이후에야 전쟁을 벌여야한다. # 그래야 단치히 회랑 문제 재발 방지로 소련이 가져갔던 쾨니히스베르크의 탈환 명분이 선다. 생각해보면 독일은 전쟁이 안 날 거 같다면 아예 러시아와 각을 세울 이유 없이 중재자 노릇하는게 이익이고, 전쟁을 한다고 쳐도 러시아가 미쳐날뛰어 자국 국경 바로 앞까지 오도록 유도해야 비로소 전략적 이익이 생긴다. 폴란드, 우크라이나에 갈려서 전력이 감쇄되는 건 물론이다. 그러니 움직일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렇게 독일은 가만히만 있으면 발트와 폴란드가 망해주면서 어그로는 러시아가 다 끌어줄 테고 러시아가 미친 짓을 반복할 수록 전범 딱지도 러시아가 가져가는 데다, 되찾을 방법이 없어서 포기하고 있던 독일의 영토도 되찾을 수 있는데 우리가 그걸 왜 막아야하나?라는 속셈이 그려진다.[24]

모든걸 다 때려치고 전쟁이 싫어요. 라는 평화주의 야권의 경우에도 전쟁에 끼어들기 싫다면 나토 핵심국이면서 중립국인척 하는 지금의 포지션을 고수해야한다. 아무리 민주주의의 십자군같은 정파라 할지라도 전범국 취급하는 딱지 때문에 핵무기도 소유하지 못해서 핵억지력이 없는 독일더러 병사는 앞장서서 갈아넣으라하는건 거부할 것이다. 냉전때야 서독이 지금의 우크라이나 입장인 최전선이었으니 고려할만한 외교적 옵션이 없이 가장 희생자가 많이날 지상군 파트를 담당했지만 지금의 독일은 그때의 독일이 아니고 지금의 미국도 그때의 미국이 아니며 지금의 러시아가 그때의 소련은 더더욱 아니다. 즉 독일내 모든 정파 엘리트들의 입장을 따져봐도 독일은 우크라이나나 폴란드의 믿음직한 아군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독일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애매모호한 포지션은 이런 다종 다양한 이유 때문이지만 결국은 믿을 수 없는 국가라는 결론이 나오며 그에 따른 태도를 여실히 취하고 있다. 독일의 외교적 포지션은 이런 이유로 우리는 러시아의 폭주를 불감청고소원하고 있지만 그게 국제무대에서 들키면 안된다. 라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크림반도나 도네츠크가 러시아의 역사적 영토라는 주장이 독일 정치권 언저리에서 자꾸 나오는 것도 굉장히 불안한 요소다. 그럼 메멜은? 슐레지엔은 누구의 역사적 영토인 것인가라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있는 모든 국가는 독일의 세계대전 패전, 러시아의 냉전에서의 패전으로 생겨난 국가들이다. 잃어버린 땅은 서독의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 이래 독일에게 크나큰 한으로 남은 지역이다. 이들 국가를 바라보는 독일과 러시아 정치인들에겐 무언의 공감대가 있으니 저런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어쩌면 독일은 생각보다 많이 달라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영토문제가 너무 멀리 나간 문제라면 적어도 러시아가 그 곳에서 무슨 일을 벌이든지 간에 묵인하는 대가로 러시아산 가스의 안정적 공급, 노드스트림 송유관의 안정적 유지를 약속받는 대가로 불개입하는 내용의 밀약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은 광범위하게 공감대를 얻고 있다.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결의하던 날, 러시아군이 노드스트림 송유관을 사보타주 형식으로 자기 손으로 부숴버린 것도 러시아가 독일이 암묵적으로 합의된 밀약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 표시가 아닌가라는 말도 있었다.

우크라이나가 모두의 예상을 벗어난 선전을 펼치며, 2주도 못버틸거라는 서방의 예측을 벗어나 치열한 전투를 거듭하며 전선을 유지하는데 성공하자, 우크라이나로 전세계의 지원이 솓아지고 젤렌스키는 민주주의의 영웅으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독일 정치권은 바로 그 자신의 국민들의 여론에 의해 궁지에 몰렸다. 슐츠 총리는 유럽연합 내에서의 독일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우크라이나 대사의 외교적 결례에 눈감고 비위를 맞추고 있지만 거의 적대국에게나 할 만한 우크라이나 대사의 호전적인 발언들 때문에 독일정계에서도 반우크라이나 정서가 부상하고 있다. 슐츠 총리가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기 지원을 결의한 이후 젤렌스키가 대사를 해임하고 거부했던 독일정치인들의 방문을 허가함으로서 # 갈등을 어느정도 봉합되었지만 유럽연합 제1의 군사 경제 강국이면서도 폐기 딱지가 붙은 군수물자만 제공할 뿐 현용 무기의 생산, 판매, 지원을 모두 거절하고 있고 경제 지원마저 유럽연합 전체의 10% 수준으로 지원액 총액으로보면 동유럽 국가들보다도 못하면서 생색만 내고 있는 독일의 내심 자체에 대한 의심은 여전히 거두어지지 않은 상태다. 결국 소극적인 독일에 태도에 참다못한 마크롱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레오파르트2 전차지원을 압박하는 성명을 내는 등, 여전히 독일 정계에 대한 막후 협상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어 외국 정부가 독일국민에게 직접 언론플레이를 하고, 자국 여론이 무서워 독일정계가 화들짝 이를 승인하는 형태가 꾸준히 반복되고 있다.

독일이 이런 의심을 받는 상황을 초래한 메르켈이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해 여과 없이 내지르는 수사들은 더더욱 독일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3.2.2. 과도한 러시아산 자원 의존[편집]


메르켈은 노르드스트림 등 러시아와의 밀월 관계를 강화해 푸틴을 기고만장하게 만들었고 독일 연방군을 예산만 많이 잡아먹고 싸울 줄은 모르고, 과거에 자랑하던 기술적 우위도 대부분 잃어버린 비효율의 극치를 달리는 조직으로 전락시켰다. 더욱이 전력생산에 들어갈 에너지 자원 수입원을 분산투자가 아니라 천연가스, 석유, 석탄 등 러시아에게 의존시키는 구조로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영국과 달리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25]

메르켈이 탈원전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면서 밝힌 플랜에서 화석 연료는 어디까지나 잠시 거쳐가는 기착지로 완전한 친환경 재생에너지 체계로의 전환을 내세웠다. 그러나 메르켈 재임기 내내 친환경 재생에너지의 확충은 지지부진했다.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원전을 닫았으면 러시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화석 연료 체제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성장시켰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만 잔뜩 높여 놓았다. 전쟁 4개월 전에도 메르켈은 러시아 가스 의존에 의해 에너지 수급이 위태롭지 않을 것이라는 기밀서류 비공개 해제했다.#

2018년 트럼프가 재임 당시 독일의 에너지 정책에 대해 노골적으로 면전에서 경고를 했던 장면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이때만 해도 독일 정부 관료들은 트럼프의 경고에 모두 코웃음을 쳤는데 이 장면이 모두 영상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

러시아의 노르드스트림 중단으로 8월 시점부터 이미 가스 가격이 오르는 추세로, 가구당 132만원씩 가격이 오른 상황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이미 가격이 오르는 추세에서 2022년 겨울 독일에서는 가스 부족으로 겨울나기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푸틴이 가스관을 잠그며, 노골적으로 협박했으나 반전이 일어났다. EU의 가스 수급 다변화가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지며, 가을부터 에너지 가격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현재 전망으로는 겨울 에너지 대란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와 관련해서 메르켈이 또 비판받았는데, 그의 주장과는 달리 생각보다 가스 수급 다변화가 너무 수월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의존의 근거를 찾기 어려워졌다.

게다가 이런 메르켈의 실책들은 코로나를 비롯한 악재들과 겹쳐 2021년 9월 ~ 22년 9월 EU 평균 물가상승률 10%라는 쓰라린 결과를 안겨주었다. 독일도 물가상승률이 10%를 넘었으며,[26] 심지어 발트 3국은 물가상승률이 24%를 찍었다. 전쟁중인 우크라이나가 22%다! 물가상승을 주도한게 에너지와 식량인데, 우크라이나는 둘다 자급능력이 돼서 피해를 줄일수 있었지만 엉뚱하게도 "낙후되지 않은" 다른 유럽국가들이 심각한 피해를 본것이다. 우크라이나는 한때 체르노빌 원전까지 가동했을 정도로 원전을 이용했는데, 만약 독일처럼 탈원전을 시도했다면 에너지 사용 감축과 일시적인 정전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늘도 메르켈과 푸틴을 버렸는지 2022년 유럽 겨울은 봄처럼 따뜻했다. 심지어 일부 국가는 20도를 넘긴 날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우려했던 가스대란은 일어나지 않았고, 가스탱크는 겨울을 나고도 가스가 남았다. 2023년부터는 EU국가들이 공동으로 가스를 구매해서 협상력을 높이기로 했다.

메르켈의 말과는 달리 푸틴의 가스를 대체할 수단은 생각보다 많았다.

메르켈 전 총리의 수석 경제보좌관을 지낸 라르스 헨드리크 뢸러는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우리는 당연히 다르게 행동했을 것"며 러시아산 가스 의존의 실패를 인정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그것이 옳은 일이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사항이었다"고 주장했다. #


3.2.3. 과도한 군축과 러시아 위협에 대한 무시[편집]


비축되어 있던 무기는 우크라이나만 제외하고 러시아를 포함한 전세계에 다 팔아 치워서 정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EU를 대표하는 독일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꼴랑 방탄모 5000개만 지원이랍시고 넘겨 초라해 보일정도로 남는 무기가 없었다. 최소한 러시아 견제를 하면서 군의 소수정예화라도 이뤘다면 비판을 덜 듣겠지만 푸틴이 크림반도를 무단 점령했을때 그냥 경고 및 비판만 하는 행동으로 사실상 허파에 바람 넣어주고 우크라이나를 죽일 무기와 돈 주머니 채워준 것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비판을 받는 것이다. 이때 얼마나 독일의 군축이 심했는지 폴란드와도 계약한 레오파르트2 PL의 납기가 늦어지는 것은 물론 정비도 엉망인 상태여서 전쟁 발발 후 폴란드는 공산권 무기를 우크라이나에게 전부 넘겨준 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미국의 에이브럼스 전차와 함께 K-2흑표 전차를 비롯해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한국산 무기를 대량으로 구매계약한 뒤 레오파르트2 PL이 2선급 전차도 아닌 퇴역 차량 겸 우크라이나 공여 차량으로 강등당하는 등의 굴욕을 당했다.[27] 영국 텔레그레프 지는 '메르켈은 조용한 은퇴를 누릴 자격이 없다'며 이런 그녀의 잘못된 정책을 차갑게 비난했다.#

무모할 정도의 군축[28]은 러시아의 침공이 현실화된 지금에서는 명백한 판단미스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애초에 독일이 기존의 강대한 병력을 확보하고 있었더라면 푸틴이 소련 시절에 비해 크게 약화된 병력으로 나토가 어찌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얕보고 자신있게 침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에는 예측할 수가 없었다는 변명을 한다고 한들 결과적으로 잘못된 판단에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으며, 메르켈의 발언 수준은 당시 여론이나 상황에 비해 정치적으로 자살 행위라 할 정도로 고압적이었다. 사르코지는 현명하게도 입을 다물고 있고 다른 독일의 정치인들은 명백한 판단미스라며 반성하거나 푸틴에 의해 속았다고 발언을 하고 있다. 메르켈 자신이 직접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거부권을 행사한 결과 현재 러시아와 혼자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지 않았던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 "부차에도 갈 필요가 없다" 등의 이해할 수 없는 망언을 했기 때문에 독일인들이 어이가 없을 정도로 부끄러워하고 또한 분노했던 것이다.[29][30]

지지하는 측의 독일군의 증강이 주변국의 불안을 조성한다는 이야기는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이며, 오히려 독일 연방군의 무모할 정도의 과도한 군축에 주변국이 우려를 표하고 있었다. 냉전시기의 독일 연방군은 나토의 최전선으로서 바르샤바 조약군의 2만대에 가까운 전차를 막을 방벽이었으므로 육군에 엄청난 투자를 하여 미군을 포함하고서도 나토 육상 전력의 40%를 차지하고 있었다. PzH2000 자주포 및 레오파르트 2 전차 등 그 당시에선 세계 최고 수준의 장비를 가졌고,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강군으로 평가받던 정예군을 보유하던 독일 연방군이 약화된건 오로지 사민당과 기민당의 선택이었다.[31] 미국은 대통령과 관계없이 GDP 대비 1%대의 독일 국방비를 문제시 삼고 있었으며 동유럽, 특히 폴란드[32] 등은 외교적 결례를 감수하고서라도 독일군의 군축을 비판하였고, 서유럽의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의 국가들 또한 자신들 대신 러시아를 막아줄 장벽이었던 독일군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심각한 수준으로 약화된다는 걸 반기지 않았다. 그래서 2014년 이후로 군축을 멈추고, 2018년부터 상당한 수준으로 국방비를 증액시켰던 것도 그런 이유인데 문제는 돈만 때려붓고 효율적인 예산집행과 전력강화를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과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않았다. 유로마이단 이후 22년까지 독일군은 늘어나는 예산을 물먹는 하마처럼 집어삼킬 뿐 효율은 하나도 없는 조직이었다.

6월 7일엔 "2008년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려는 것을 내가 막았는데 만약 그때 막지 않았으면 러시아는 그걸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쳐들어왔을 것이다. 지금과 다르게 그때의 우크라이나는 방어할 능력이 없었다. 또한 노르트스트림 2는 도덕적인 문제를 떠나 당시 독일의 에너지 안보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였다." 는 발언을 하였다, 거기다 독일 연방군의 현재 상황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며 더 이상의 비판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내세우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엄밀히 말해 이 같은 발언 전부가 정치적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로, 숄츠 내각에 심각한 부담을 안기는 행위다. 이 인터뷰 직후 숄츠 내각의 관료들은 메르켈의 발언의 의미를 축소하려 애썼고 동시에 그녀의 발언과 독일 정부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했다. 메르켈이 이런 발언을 이어나가는 것은 2차대전 개전 이후 체임벌린이 자기변호를 위해 애쓴 것이나 무타구치 렌야가 회고록을 남겨 자기행적을 변명한 것과 비슷한,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자기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일 뿐이고, 이런 왜곡된 현실인식에 따른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발언은 본인의 이미지를 나락에 밀어넣을 뿐 아니라 숄츠 내각에도 엄청난 부담을 안긴다. 본인 말에 따르면 푸틴이 그런 일로 전쟁을 일으킬 광인인 것을 알면서도 수십 년간 부대를 해산하고 장비를 팔아먹으며 러시아에 자원의존만 심화시켰을 뿐, 어떠한 대비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양보의 끝의 결과는 크림반도 합병, 도네츠크 점령이었다. 그녀가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던 노르드스트림 2는 발언 시점 이전에 이미 파산이 결정난 사안이었으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학살을 거듭하는 상황이니 위의 발언들은 사민당이 현재의 위기상황을 초래했다는 것을 부각시킬 뿐이다.[33][34]

국내에서는 나토 가입 문제만이 다뤄지는 경향이 있지만, 나토 가입만이 문제가 아니다. 2014년에 이런 위기를 충분히 예측할수 있었으므로 우크라이나 침공시 유럽이 실질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표명하고 그럴 힘을 비축하는 것 또한 자국의 안보를 위해서 메르켈이 했어야 할 조치였음에도 불구하고, 메르켈과 독일은 당장의 한시적인 이득을 위해 러시아의 행동을 계속 외면했다. 단지 나토 가입을 불허한 것 따위의 문제가 아닌 유럽 전체의 가스 의존과 군축, 러시아의 행동에 눈을 감는 것을 주도적으로 한것이 독일의 메르켈이였다.

현재 상황에서 주변국들을 지속적으로 침공한 러시아의 행적을 무시한 채로 나토의 동진이 전쟁의 원인이라 주장하거나 크림반도와 도네츠크에 자국 정규군의 계급장을 떼내고 밀어넣어 우크라이나군 수십 만을 살상한 러시아의 행동을 무시한 채로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 시도가 나빴다고 주장하는 측은 더 이상 서방에 존재하지 않는다. 20년 전 나토가입을 확장하지 않겠다는 구두 발언을 근거로 러시아의 전쟁이 명분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당장 몇 년도 안 된 민스크 협정의 협정문을 종잇장처럼 짓밟은 러시아의 행동은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의해 정당하다고 외치는 사람들과 동일한 사람들만 남았다. 전쟁은 회색지대를 빠르게 지워나간다. 이미 유럽에선 그런 발언을 하는 순간 친러 오신트 취급을 받는 상황으로 정치적 상황이 격변해있는 상태이며, 메르켈은 슈뢰더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나가고 있다.


3.2.4. 유럽 난민 사태를 초래한 무모한 중동 난민 수용[편집]


분명 난민 수용은 인도적 조치 및 노동력 문제를 해결하려는 좋은 의도이긴 했으나, 아무런 사전 대비 없이 갑자기 수용한 것이 문제였다. 그동안 유럽에서 받아들였던 무슬림 난민들은 대개 구 공산권 알바니아보스니아 출신이 많았고, 이들은 세속주의 무슬림 근본주의 무슬림 문제를 떠나서 문맹자도 극히 드문 편이었다. 반면 유럽 난민 사태로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온 무슬림들은 이슬람주의[35] 성향은 물론 부족주의가 강했고, 문맹자도 많았다.[36] 유사 사례로 이탈리아에서 리비아 난민선을 타고 오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을 마냥 받아주었다가 심각한 사회적 갈등으로 번진 사례가 있다. 그리고 선진국들의 경우 장애인 교육 및 복지 관련해서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경계선 지능발달장애인들이 일반인들과 그렇게 심각하게 갈등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난민 방출국들의 경우 이런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에 선진국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든 사고를 치는 경우가 많다.[37] 제2세계도 아닌 제3세계 빈곤국 난민들에 대한 충분한 재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작정 수용하면 문제가 벌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본인도 인도적 조치랍시고 난민 수용에 대해 고집을 부리다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되니 안면몰수하고 다른 중유럽 국가들에게 난민 할당제로 난민들을 떠넘기려는 꼼수까지 저질러 중유럽 국가들이 독일에 대해 깊은 불신을 갖게 만들었다.[38]

또한 메르켈의 이런 태도는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그대로 역이용하여 튀르키예에 머물고 있던 중동 난민들을 비행기에 태워서 폴란드-벨라루스 국경으로 내몰아 2021년 벨라루스-유럽 연합 국경 위기를 야기했다. 당연히 애꿎은 폴란드와 발트 3국 국경 경비대와 군인들만 생고생을 했고, 현재도 틈만 나면 난민 밀어넣기와 추방이 반복되고 있다.

물론 부정적인 평과 별개로 인권 부분에 있어서는 주목할만한 결단을 내린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유엔난민기구로부터 2022년 난센 난민상 수상을 하게 되었다.#


4. 기타[편집]


  •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 연속으로 포브스 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에 뽑혔다. 2010년에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영부인미셸 오바마에게 1위 자리를 뺏기고 4위로 내려앉았지만, 유로존 위기에서 여러 유럽 국가들에게 긴축재정을 강요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한 메르켈이 결국 2011년에 다시 1위를 탈환했다. 실제로 포브스에서는 "논쟁의 여지 없는 유럽연합의 지도자이자 유로존 경제위기를 해쳐나갈 해결사이다"라며 2011년 메르켈의 1위 선정 이유를 밝혔다. 독일이 유로존 경제위기를 이유로 자국 내정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을 내정 간섭처럼 보며 싫어하는 남부 유럽인들이 적지 않지만 이 남유럽인들이 어떻게 화를 자초했나를 생각해보면 메르켈에게 정당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39] 게다가 일부 그리스 언론의 경우 메르켈에게 히틀러의 딸 드립을 치는 등 망언을 연발하다가 있는 동정론까지 날려먹었다. 허나 2000~2020년 유럽의 PC, 탈원전, 군축, 글로벌 통합의 패러다임을 주도한 인물중 하나인 만큼 당시에는 고평가 받았으나, 퇴임 후에는 재평가를 받았다.

  • 똑같은 범보수우파 + 여성인 장기 집권 지도자이면서도, 원칙 고수적인 성향이 강한 마가렛 대처와는 대조적으로 타 정파의 정책까지도 포용하는 화합적 리더십을 펼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비교 대상으로 손꼽힌다. 강경우익인 신보수주의자 대처와 달리 메르켈은 중도적인 인물로 좌우파 화합을 중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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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에 찍힐 때는 거의 항상 손끝을 붙인 포즈다. 본 문서 맨 위에 있는 사진도 이 포즈. 그래서 "접착제 때문에 손이 붙었다"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 해외에선 이런 드립도 나오고 있다. 메르켈이 16년간 집권하면서 이 포즈가 독일 정치인들의 상징이 되었는지, 후임으로 취임할 올라프 숄츠 역시 비슷한 손모양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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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브라질을 상대로도 적당히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 독일의 절륜함에 감동하여 결승전 장소인 마라카낭 경기장을 찾아갔고 그 결과 독일이 마리오 괴체의 연장전 결승골로 아르헨티나에 1:0으로 승리하자 시상식에서 독일 선수들을 껴안아주며 격하게 기뻐했다. 이 승리로 메르켈 총리가 독일의 A매치를 직관했을 때 독일의 성적은 11승 1패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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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이랑의 비극 이후 생긴 짤방[40]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G8_leaders_watching_football.jpg
G8 회담 도중.[41]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때에는 메르켈이 정치 일정이 겹쳐서 자국의 경기를 직관하러 오지 못했다. 결국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한국한테 2:0 패배를 당해서 월드컵 탈락이 확정되자, 매우 슬프다고 언급하였다.

파일:메르켈 공식반응.png
Schade. Wir sind heute alle miteinander traurig. /am
안타깝습니다. 오늘은 우리 모두에게 슬픈 날이군요. /am[42]

앙겔라 메르켈

그리고 페이스북으로도 매우 슬프다며 같은 반응을 업로드하였다. 링크(삭제됨)

  • 정상회담을 할 때마다 각국 남성 정상들이 메르켈에게 스킨십을 시도해서 골치라고 한다. 사진의 프랑수아 올랑드처럼 포옹, 어깨에 손 올리기 등.[43] 그런데 정작 메르켈 본인은 남성 정상들과의 스킨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44] 언젠가 조지 W. 부시는 메르켈에게 뜬금없이 안마를 해줘서관련 기사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메르켈이 알아서 피해가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종류의 사진들을 보면 메르켈의 불편한 표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관련 기사 그리고 이 방면(?)의 상습범들은 사진의 프랑수아 올랑드블라디미르 푸틴이라고 한다. 뉴스를 보면 알겠지만, 본인의 개인적인 성향도 스킨십을 싫어하기도 하나 강인한 남자 아래 보호받는 여자의 이미지로 보여지는 게 정치인 메르켈로서는 썩 좋지는 않기 때문이라고[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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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직접 커피나 차를 따라준다고 한다. # 인터뷰를 하러 온 기자나 총리 관저에 온 축구 선수나 예외는 없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이런 행동을 being a mother라고 할 정도로 익숙한 행동으로 받아들인다. 참조

  • 2012년 4월 노르웨이 오슬로의 새로운 오페라 하우스 개장식에 참석하여 아주 이례적으로 가슴이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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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년 새해 초부터 파리에서 벌어진 테러사건의 여파로 인해 독일 내에서 반 무슬림 운동이 확산되자, 보수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무슬림들을 지지하여 항의를 받았다. 다만 유럽 난민 사태 당시에는 추방을 두려워하는 난민 소녀에게 독일의 난민 정책과 현실을 그대로 설명하면서 난민을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으며 일부는 돌아가야 한다고 하자 난민 소녀가 울어버린 적도 있다.#[46] 이 소녀와 가족들은 나중에 독일 체류연장 허가를 얻었다.#

  • 2015년 3월에 방일하여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이 끝난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질의된 질문에 대해 독일의 과거사 청산 사례를 거론하며 "독일은 과거를 직시했으며, 주변국들의 관용이 있어서 국제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다. 모든 관계국들이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서 평화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기시다의 말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물론 독일은 일본에 대해서 어드바이스할 입장이 아니다" 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다만 일본도 엄연한 주권국가인 만큼, 메르켈의 답변에 대해 기시다 외무상은 "일본과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무엇이 일어났는지, 어떤 상황에서 전후 처리에 임했는지, 어떤 국가가 주변국인지 등의 경위가 달라 양국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라며 사실상 과거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다.#

  • 남편인 요아힘 자우어는 1949년생 화학자이다. 전공은 양자화학으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부군으로서 총리를 보좌하는 업무가 아닌 자신의 직업인 학자의 길에 매진하고 있으며 부부 동반모임 등에도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1년에 한 번 바이로이트 오페라 축제에만 메르켈과 함께 참석해 독일 언론은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는 2005년 있었던 메르켈의 총리 취임식도 TV로 봤다고 하며, 이 때 독일 타블로이드 언론에서는 ‘메르켈의 남편은 어디 갔나’라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다만 이런 행동은 대부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편이다. 국가 수반의 가족이 설쳐서 나라를 통째로 말아먹은 사례는 부지기수이지만, 그 반대는 거의 없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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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로 ISS 우주조종사들을 격려하는 메르켈 총리(2006년)
  • 열다섯 살 때 러시아어 올림피아드에 나가 우승했던 경력이 있을 정도로 러시아어에 능통하며 러시아 문학 애호가이기도 하다. 러시아어에 능통하다 보니 푸틴 대통령과는 통역 없이 러시아어로 대화했다.# 또한 학자 출신답게 영어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영어에는 러시아어만큼 능숙하지는 않다. 실제로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와의 회담과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통역을 쓴다.# 러시아어도 능통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예전같지 않다 보니 독일어로 대화했다는 것이 있다.#

  • 2017년 독일 동성결혼 의회 투표 결과가 과반이상으로 찬성 결과가 나오자 본인은 반대표를 던졌지만 이 결과가 화합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인터뷰하였다. 또한 동성애자 독일 축구선수에게 당신은 커밍아웃을 해도 전혀 피해받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다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며 이것은 본인의 정치적 메시지라고 밝혔다. 이러한 사례는 중도주의적인 메르켈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언급된다.

  • 퇴임 후, 미용비로만 8천만원을 정부 돈으로 받으면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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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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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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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평가
역대 선거
제16대 독일 연방의회 선거 · 제17대 독일 연방의회 선거 · 제18대 독일 연방의회 선거 · 제19대 독일 연방의회 선거
사상
진보적 보수주의 · 기독교 민주주의
정책
탈원전 · 난민 수용 · 대연정
지역구
포어포메른·뤼겐-포어포메른·그라이프스발트 1구
사건사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외국 정상
에마뉘엘 마크롱 · 프랑수아 올랑드 · 니콜라 사르코지 · 마거릿 대처 · 보리스 존슨 · 테레사 메이 · 데이비드 캐머런 · 조지 W. 부시 · 버락 오바마 · 도널드 트럼프 · 조 바이든 · 블라디미르 푸틴 · 시진핑 · 아베 신조 · 쥐스탱 트뤼도
관련 독일 정치인
헬무트 콜 · 게르하르트 슈뢰더 · 올라프 숄츠 · 아르민 라셰트 · AKK · 프리드리히 메르츠 · 아날레나 베어보크 ·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기타
앙겔라 메르켈 내각 · CDU · 동독
메르켈 내각
역대 내각
제1차 메르켈 내각 · 제2차 메르켈 내각 · 제3차 메르켈 내각 · 제4차 메르켈 내각
여당
CDU
연립여당
CSU · 사회민주당 · 자유민주당
사건사고
2016년 독일 뮌헨 총기 난사 사건 · 2016년 독일 열차 테러 · 2016년 베를린 트럭 테러 · 2016년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 · 2021년 독일·베네룩스 폭우 사태
기타
유로화 사태 · 그리스 경제위기 · 유럽 난민 사태
파일:파란색 깃발.svg 보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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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란 곳은 동독이라고 한다. 출처: https://youtu.be/RQTK7ANOh68[2] 총리 대행 기간 포함[3] 집권 기간 거쳐간 독일 대통령만 하더라도 호르스트 쾰러, 크리스치안 불프, 요아힘 가우크,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로 무려 4명이나 된다. 이 중 쾰러와 불프는 말 한번 잘못하거나 횡령 혐의로 중도 사임했고 가우크는 고령으로 재출마를 거절했다. 그만큼 의원내각제인 독일은 대통령의 권위가 강력하지 않다. 참고로 이들 4명은 2020년 기준 생존한 전현직 대통령들이다.[4] 물론 우크라이나에서 일을 벌이고 그의 이미지가 히틀러 수준으로 나락 간 시점에서는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간과하기 쉽지만 히틀러 역시도 처음에는 나름대로는 합리성을 지닌 지도자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도 그럴게 10년 가까이 끌어온 독일-폴란드 무역전쟁을 끝내는 등 이후에 벌어질 행위들에 비해서 초창기에는 나름대로 합리성이 있는 외교정책을 보이기도 했고 자르 국민투표도 나치의 뒷공작이 있었지만 애초부터 자르는 독일로의 편입을 희망하던 지역이었으며 편입 관련해서는 국제연맹에서 이미 15년간 위임통치 후 편입여부 투표를 하기로 해서 문제가 없었다. 즉 푸틴이나 히틀러나 처음에는 그나마 합리성이라도 있다고 여겨진 점은 같다.[5] 물론 독일의 산업 경쟁력에 비해 남유럽 국가들의 산업 경쟁력이 답 없는 수준으로 엉망이었던 측면은 있다. 원래라면 다른 화폐를 써야 하는 나라들이 화폐를 통합하면서 독일만 이득을 본 것인데 어찌됐건 이 결정을 내리고 실행한건 슈뢰더와 메르켈이다.[6] 초강대국 미국의 불법 전쟁을 비판하고 처벌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마찬가지인지라 불법 전쟁의 책임 추궁을 하지 않고 덮고 넘어간거지 이라크 전쟁 또한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이 명백하게 불법 전쟁이다. 이라크의 대량 파괴무기 사찰을 지휘했던 한스 블릭스 당시 UN감시 검증 사찰 위원회 위원장# 코피아난 UN 사무총장#등은 명확하게 이라크 전쟁은 불법 전쟁이라고 정의했다. 그나마 아조프 연대나 우크라이나 내 네오 나치 등 러시아가 명분으로 내세운대로 네오 나치가 우크라이나 내에 있기는 하긴 하지만 이라크의 경우 미국이 명분으로 내세웠던 대량살상무기는 끝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7] 중국이 20년 후 미국의 전통적 세력권인 캐나다나 멕시코에 군사 기지를 두는 상황을 가정하며 NATO 동진에 대해 러시아가 느끼는 안보 위협을 역설하고 있다.[8] 22-06-07, "2008년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려는 것을 내가 막았는데 만약 그때 막지 않았으면 러시아는 그걸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쳐들어왔을 것이다."[9] 우크라이나는 물론 러시아도 점령지를 조금도 내줄 생각이 없음을 보면 한마디로 러시아에 땅 주고 항복하라는 말이나 다름이 없다.[10] 대표적으로 파울 폰 힌덴부르크. 자기 이름으로 항복하는 걸 싫어해서 자기 부관을 대신 항복하는 자리에 내보냈고, 1차대전 말기 승산따윈 없었는데도 힌덴부르크는 이 사실을 뻔히 알면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배후중상설을 내세웠다.[11] 결과적으로 이쪽이 옳았다.[12] 임기 막판까지 국내외적으로 메르켈 총리의 중도 실용적, 당면과제 처리 위주의 실무적인 리더십이 개성있고 통합적이라는 칭송을 받았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러시아와의 외교 관계도 현재와 같이 부침 위주로 부각되지는 않는 편이었다. [13] 애시당초 정치적으로 EU, 군사적으로 NATO가 있는 이유가 뭔지 생각해보자.[14] 즉 과거 자신의 발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그 결과로 일어난 현실을 외면하겠다는 것. 물론 부차학살의 책임은 1차적으로 러시아의 책임이지만, 메르켈에게 전혀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애시당초 푸틴의 간을 부풀린 게 바로 메르켈 탓이니까. 물론 이 발언 뒤에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지지한다고 말하며 나름 수습을 시도하긴 했다.누가 봐도 립서비스겠지만.[15] 여담으로 이 시기의 독일 국방장관이 바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2013~2019 재임)이었는데, 이 사람은 메르켈과 달리 부차에 직접 방문했으며 이후 본인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푸틴이 집권하는 한 유럽과 러시아는 절대로 전쟁 이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래서 여전히 자신의 과거 발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메르켈은 더더욱 비판받고 있다.[16] 사르코지가 처신을 할 줄 알아서 침묵을 지키는 게 아니다. 사르코지는 대선 직전인 2007년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에게 660억 상당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 여기에 푸틴과 영합했다는 혐의까지 붙으면 감당할 수 없어지기에 닥치고 있는 것이다.[17] 참고로 슈뢰더는 한술 더 뜨는게 메르켈이 단지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지 않는 정도라면 슈뢰더는 친러에 가까운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18] 대규모 탄약 발주시, 탄약을 신규 생산하여 공급하는 것을 시작하는데 최소 6개월이 걸리며, 우크라이나에 보내라고 거론되는 마르더 IFV가 실은 고철매매를 위해 야지에 3년간 방치되어 있어 우크라이나에 보내봐야 고철 운송비만 아까운, 화만 돋울 게 분명한 상태로 판명되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사 라인메탈이 독일군이 운용하는 현역 마르더를 우크라이나에 넘기고, 이 고철을 수리해서 매꿔주겠다고 요구하면서 언론플레이를 했다. 이에 숄츠 총리는 여러 인터뷰에서 어쩔 수 없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줄 수 없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외교적 이유로 안 준다는게 아니라 줄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이 같은 상황은 메르켈 총리 재임기간 독일 연방군이 방치에 가까운 예산편성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복수의 국방부 장성의 이야기도 있다. 이러한 이야기가 진실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메르켈은 현재 독일 상황에 대한 모든 책임을 요구받고 있고, 장기집권한 전 총리로서 그 책임을 피할 수도 없을 것이다.[19] 체임벌린이 물론 나치 독일의 야욕을 위협적이지 않다고 평가해 유럽 전역이 나치 독일의 권역에 들어가게끔 방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현재의 독일처럼 유럽 전체의 안보를 나 몰라라 하진 않았기 때문에 재군비를 시작하는 등 독일을 견제하기는 했었다. 이때 노동당의 반대에 직면하면서도 군비 확장을 했다. 메르켈이 스스로를 체임벌린과 비교하는 것은 체임벌린에 대한 모욕이다.[20] 엄밀히 말하면 재군비를 소홀했다는 점에서 체임벌린이나 메르켈이나 도긴개긴이다. 하지만 체임벌린 시절 영국의 상태는 현재의 독일보다 훨씬 안 좋았다는 게 메르켈과 체임벌린의 차이점이다. 당시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의 영향으로 재군비를 갖추기에는 엄청난 출혈이 필요했고(물론 그래도 해야 했다. 결과론이지만 오히려 그 편이 더 싸게 먹혔다.) 거기서 체임벌린은 국가 재건을 위해 나치가 뭘 하든 눈을 돌리고 정작 해야 할 재군비에는 손을 놓은 것이 문제였다. 다만 그렇다보니 체임벌린은 영국 최악의 총리로 언급되면서도 끊임없이 재평가의 말이 나오고 있다. 비록 최악의 선택을 했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 그런데 메르켈은 분리된 독일이 통일되고 소련은 해체되어 러시아가 되면서 독일에는 엄청난 호경기가 오고 이제 군대는 필요없다며 군축을 하고 그 자원을 경제에만 쏟아부으면서 EU의 중심 국가가 되는 등 러시아와 짝짜궁이 맞으면서 돈잔치 및 석유잔치를 위해 러시아가 돈바스 전쟁을 하든 크룸반도를 점령하든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요약하자면, 최악의 상황에서 죽네사네하다가 어느 정도 어쩔 수 없이 눈을 돌린 체임벌린에 비해 메르켈은 돈잔치나 하면서 러시아가 뭘 하든 상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메르켈 쪽이 훨씬 더 질이 나쁘다.[21] 네빌 체임벌린은 뮌헨협정 이후에도 재무장을 시작하긴 했지만 그건 체코슬라바키아의 붕괴, 나치 독일에 의한 전쟁 위협의 고조(이미 뮌헨협정 6개월 후에는 아무도 2차대전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정도다.), 처칠등 강경파의 강력한 반발을 생각하면 안 하는 게 이상한 일이었으며, 그 와중에서도 계속 처칠의 주장에 반박하며 대규모 육군양성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처칠등 강경파가 반박한 것은 그렇다쳐도 독소 불가침 조약의 원인도 체임벌린의 지분이 절대 작지 않다. 뮌헨협정 이후 다급하게 영불과의 동맹을 추진하려던 스탈린은 우리는 120개 사단, 전차 6천대, 중포 5천문을 준비하겠다고 제시했고 프랑스는 110개 사단 전차 4천대를 준비했다고 해서 규모면에서는 호응했지만 체임벌린의 영국은 소련이 요구한 외무장관이 아닌 겨우 해군소장 나부랭이를 보내서 16개사단, 실제로 준비할 수 있는건 4개 사단뿐이라고 해서 보로실로프에게 통역을 잘못한 거 아닌가? 하는 소리를 듣기도 했고, 스탈린에게 황당함을 넘어 영국의 의도 자체에 대한 의심을 하게 만들었다. 스탈린이 당장 군대를 만들어내라고 한 것도 아니고 재무장의 의지가 있었다면 재무장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외무장관을 보내 성의를 표시하고 사정을 설명하는 게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고작 해군소장따위를 보내서 저런 식으로 협상을 고의로 파토낸 것을 보면 체임벌린은 재무장 의지는 커녕 독일과 싸울 생각 자체가 그 뮌헨 협정 이후에도 전혀 없었다고 보는 현재의 정설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스탈린은 체임벌린이 재무장을 하지 않는것은 나치독일이 확장하더라도 프랑스와 소련이 피를 흘려가며 막을 것이 확실하므로 영국이 굳이 참전해서 같이 피를 흘릴 필요가 없다는 의사표명이라 받아들였으며, 오히려 나치독일과 소련과의 전쟁을 유도함으로서 나치독일의 확장을 견제하거나, 혹은 둘이 공멸하기를 바란다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당시 체임벌린 내각은 독일만큼이나 공산주의 소련도 혐오했으므로 스파이들로 첩보를 종합한 스탈린의 판단은 딱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체임벌린의 그런 안이한 판단은 프랑스의 신속한 항복, 독소 불가침조약 수립으로 완전히 무너졌으며 홀로 남아 나치독일과 상대하며 전 국토가 폭격당하면서 대가를 치른다. 그나마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처칠과 영국 국민들이 대신해서 치렀지 채임벌린은 그 전에 죽음으로써 책임조차 지지 않았다.[22]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자면 아베 신조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한일합방을 미화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일이다.[23] 그리고 나치 독일은 체코슬로바키아를 합병함으로써 당시 영프에 비해서도 부족했던 전쟁 준비를 완료할 수 있게 되었다.[24] 러시아가 벨라루스,우크라이나,폴란드의 일부를 점령해도 독일이 영토를 획득하지 못할 거라는 주장도 하지만 러시아가 그런 짓을 하는 순간 히틀러 2세로 확실히 낙인 찍히게 되고 나토와 전면전을 벌인다는 의미가 된다. 유럽을 러시아가 정복하거나 모스크바를 나토가 점령하고 러시아를 산산조각내는 핵전쟁이 발생한다는 의미고, 그렇게되면 최소 백만단위 이상의 독일인이 죽겠지만 이기기만 한다면 전후 협상에서 적어도 동프로이센은 확정이고, 스탈린이 그랬듯이 망해버린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의 국경을 조정하여 벨라루스와 러시아 서부를 주고 슐레지엔도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전면전이 일어난다면 어차피 베를린에 핵폭격 맞는건 확정인데 땅이라도 찾아오면 모를까 아무땅도 못찾아오고 그냥 맞아주는건 손익계산에서 답이 안나오는 문제다. 물론 거듭말하지만 전쟁 안일어나는게 좋은데 안일어난다고 가정한다면 러사이와 각을 세울 이유 자체가 없다. 즉 독일은 전면적 전쟁이 안일어나는게 최선이지만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크라이나와 폴란드가 망해줄정도로 판이 커져야만 비로소 전략적 이익이 생긴다는 것이다.[25] 현재 대한민국의 군사력이 최대 세계 5~6위 정도일 거라는 고평가를 받는 데는, 물론 자체적으로 군사적인 역량을 확충시킨 것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독일을 위시한 유럽의 국가들의 군사력이 크게 떨어진 것에도 이유를 찾을 수 있다.[26] 대한민국에서 물가상승으로 난리가 났을때가 5.6%다.[27] 사실 폴란드는 독일의 바로 이웃국가여서 독일 전차를 매번 구입해가던 안마당 같은 방산시장이였는데 독일의 삽질과 자폭으로 반대편 한국에게 홀라당 빼앗긴 상황이 되어버렸다. 사실 폴란드 뿐만이 아니고 루마니아, 에스토니아, 핀란드같은 동유럽권 국가들 중 상당수가 독일 병기를 믿지 못해 대한민국제 무기를 사들이거나 고려 중인 형편이다.[28] 독일은 엄밀히 빠르게 보면 1990년 늦게 봐도 1991년부터 이미 미국과 독자적인 '서유럽의 맹주로서의 목소리'를 내놓으며 유럽의 지정학적 질서를 주도적으로 변동시키는데 앞장서왔다. 어디까지나 2차대전 이후 '유럽 내 국경선을 지역별 연방 구성국들의 자체 투표로 변경하는 선례'는 위험한 선례의 도입에 부정적이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당시 미 대통령과 제임스 베이커 3세 당시 미 국무장관의 우려를 뒤로 한 유고슬라비아 구성국들의 분리 독립에 대한 독일의 지지가 시작이었다. 독일은 동일한 EC 회원국인 프랑스와 스페인의 반대에도 유고슬라비아 연방 해체에 앞장섰으며 유럽의 역사는 독일의 주장대로 흘러갔다. 이에 대한 책임은 독일 정치권이 헬무트 콜 당시 총리가 이끌던 독일 연방국과 현재 독일의 연속성을 긍정하는한 자국의 군사력으로 전쟁 억제력을 갖추는 형태로 져야 한다.유고슬라비아 해체의 역사 그리고 메르켈은 당시 해당 선례 도입의 촉발국이자 미국으로부터 독자적인 유럽만의 목소리를 내며 서유럽의 맹주 역할을 자처하던 당시 독일 정권의 유산을 부인하지 않았다. 통일 독일 총리인 메르켈은 그 역사에 대한 책임을 충분한 국방비 투자로 전쟁 억제력을 갖추며 다해야 하는 지위에 있었지만 일관적으로 '러시아의 위협은 과대평가 되어있다'고 주장하며 지속해서 군비를 축소하였다.[29] 우크라이나가 잿더미가 되건말건 나토 가입 안시켜준 덕분에 독일은 안전하지 않느냐, 남의 나라가 박살이 나건 말건 우리와는 관계없는 일이다라고 해석할 수 밖에 없는 발언이다. 이건 우크라이나 지지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독일 여론과는 엄청난 거리가 있는 사고방식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30] 거기다 우크라이나가 박살나면 독일도 안전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말이 생긴 이유가 왜인지 생각해보면 정말로 답도 없는 망언이다. 당장에 2차대전 직전 영국과 프랑스가 나만 안전하면 그만이라며 외국을 계속해서 팔아먹다가 결국 팔아먹을만한 외국이 더는 없게 되자 자신들이 두들겨맞았다.[31] 대놓고 폴란드만 믿고 뒤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지원만 하겠다는 포지션인데, 제아무리 폴란드가 중부유럽 최강의 육군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러시아가 작정하고 밀고 들어왔을 때 폴란드 선에서 그 병력이 막힐거라고 생각하는 국가는 단 하나도 없다. 나토의 워게임 전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유럽사를 통틀어 군사력으로 따지면 인구 구조 상 영국군, 프랑스군, 독일군, 러시아군이 메인 플레이어고 나머지는 전부 부차적인 변수일 뿐이다. 거기다 폴란드를 믿는다는 포지션도 마냥 긍정적인건 아닌데 이건 결국 폴란드보다 100% 몸빵으로 막으란 소리고 못막으면 약체화된 독일군이 그대로 러시아와 싸워야 하고 막더라도 폴란드의 피해는 막심하다. 즉 폴란드를 믿는다는 것은 피는 네가 다 흘려라 라는 말과도 비슷하다.[32] 폴란드는 나치 독일의 침공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되는 비극을 겪은지 8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폴란드가 독일의 군축을 비판할 정도로 독일 연방군의 상황은 심각하였다.[33] 노르드스트림 2는 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가 나빠질 때 독일의 리스크를 줄이는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졌다. 전쟁이 궁지로 몰리자 푸틴이 다시 한번 천연가스 카드를 꺼내들려고 하는데 실제로 사용되면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편을 든 독일도 피해를 입을 게 자명하다. 물론 피하기 위해서 결국 우크라이나 지지를 철회할 수 있고 이는 심각하게 우려되고 있는 사안이지만 이게 진짜로 이루어진다면 유럽연합은 러시아의 천연가스 압박에 또 한번, 그것도 불법적, 명분도 없는 전쟁에 굴복하게 되는 것이며 유럽연합의 맹주격인 독일의 위신은 크게 추락할 것이고 이 모든 사태를 초래한 메르켈 또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34] 정작 웃기는 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국은 부랴부랴 천연가스를 확보하고 매입선을 다각화하려 노력했는데 그 결과 고작 몇 개월 만에 독일의 천연가스 비축량은 필요분의 90% 이상을 채울 수 있었다. 즉, 조금 더 비싸게 사긴 했지만 다각화 자체는 충분히 가능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메르켈이 한 말은 그냥 헛소리에 불과했다는 것으로 굳이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목을 맬 필요는 전혀 없었던 것.[35] 민주주의의 관용과 표현의 자유를 숙주로 삼아 이슬람 근본주의 신정 정치체제를 건설하려는 정치 사상 전반[36] 그나마 유럽 난민 사태의 당사국이었던 시리아는 내전 이전 아사드 독재 정권 시절에 교육 인프라가 나름 정상적으로 운영되어서 문맹률이 적었던 편이고, 이집트나 예멘 같은 같은 경우는 문맹 문제가 심각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문맹자들의 경우 글을 모르니 게임도 못하고 책도 못 보니 건전한 취미생활 대신에 못된 쪽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유럽 난민 사태의 주역이 시리아 난민이 아니라 예멘 혹은 이집트 난민이었다면 난민 사태의 심각성이 훨씬 더 커졌을 것이라 보는 사람들도 적지는 않다.[37] 이를테면 자기를 치료해주는 의사를 치료비를 깎아달라며 마구 때린다든지, 아니면 수영장에서 대놓고 이성의 엉덩이를 더듬는다든지 등등[38] 당장 독일 동쪽에 이웃한 나라들은 식민지배에 대한 어떤 책임도 없을 뿐더러, 자꾸 서유럽으로 인구가 빠져나가는 통에 경제력이 제 코가 석자인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말 그대로 난민들을 먹여살릴 물적, 인적 자원들이 부족한 건 물론이고, 난민들이 돌발 행동을 일으켜 내분이 벌어지는 것에 그만큼 취약할 수 밖에 없다.[39] 오히려 유로존 붕괴를 미리 예견하고 대처해야 했는데 상콤하게 씹었다가 이 지경이 됐으니 남부유럽 입장에선 존심이 상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40] 거대 예수상과 합성한 실로 적절한 짤방.[41] 첼시가 승부차기로 바이에른 뮌헨을 누르고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이다. 캐머런은 아스톤 빌라 팬이지만 그냥 EPL팀이 우승해서 좋아하는 듯.[42] 앙겔라 메르켈의 이니셜. 서양권에서는 정치인 SNS 계정에서 정치인 본인이 직접 작성해 올린 글에 이름 이니셜을 글 말미에 덧붙이는 관행이 있다. 보좌진이 올린 글과 구분하기 위함이다. '켜짐'이라고 쓰여 있는 것은 페이스북과 연동된 번역 엔진이 뒤의 am을 일반 단어로 인식했기 때문이다.[43] 프랑스의 경우 이성간 가벼운 스킨십에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44] 메르켈뿐 아니라 독일 사람들이 대체로 이런 스킨십을 꺼린다.[45] 사실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생판 남이, 그것도 이성이 스킨십을 해오면 기본적으로 불쾌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이성 간 스킨십에 가장 관대하다는 프랑스조차도 조지 W. 부시가 앙겔라 메르켈에게 했듯이 이성에게 다짜고짜 어깨를 주무르는 짓을 했다간 성추행 혐의로 쇠고랑을 차는 수가 있다.[46] 다만 메르켈은 난민에 대해 우호적이라는 점을 보았을 때 그저 현실적인 조언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