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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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북독일 연방과 독일 제국을 구성했던 대공국이었으며 수도는 슈베린이었다. 주요 도시로는 로스토크, 비스바르 등이 있었다.
1905년 기준으로 면적 13,127 km², 인구 64만 가량이었다.
2. 약사[편집]
오늘날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서부 지역에 위치한다.
메클렌부르크 가문[1] 은 시조가 니클로트(Niklot, 1090~1160)라는 슬라브 계통의 인물로, 1130년부터 시작되었다. 1329년에 공국으로 승격되었고, 두세 분파로 이어져오다 1701년에 슈베린, 슈트렐리츠 두 분파로 재편되었다. 1815년 빈 회의 결정에 따라 두 공국은 함께 대공국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북독일 연방을 거쳐 독일 제국에 가입했다.
1918년 독일 제국이 붕괴하면서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국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한 주(Freistaat)로 바뀌었고, 1933년에 나치 치하에서 메클렌부르크로 합쳐질 때까지 지속되었다.
3. 왕사(王史)[편집]
대공국 승격 이후
- 프리드리히 프란츠 1세 (1815-1837)
- 파울 프리드리히 (1837-1842)
- 프리드리히 프란츠 2세 (1842-1883)
- 프리드리히 프란츠 3세 (1883-1897) - 니콜라이 1세의 손녀 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와 결혼, 슬하에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를 포함한 1남 2녀를 낳았다. 장녀 알렉산드리네는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10세와 결혼했고, 차녀 체칠리에는 빌헬름 2세의 장남 빌헬름 황태자와 결혼했다.
-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 (1897-1918) - 독일 제국군의 보병대장이었지만, 아무런 부대도 지휘하지 않았다.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가는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의 두 아들들이 자녀를 두지 못하거나, 아들을 두지 못하여 2001년 단절되었다. 다른 방계 친족들도 있었지만 하나같이 자녀가 없거나, 딸만 있었다. 빌헬미나 여왕의 남편인 헨드리크 공도 이 공가 출신인데(프리드리히 프란츠 2세의 막내아들), 만약 빌헬미나 여왕이 아들을 두었다면 그 아들인 네덜란드 국왕의 남계 후손이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가의 수장을 겸하게 됐을 듯. 아무튼 2001년 이후로는 슈트렐리츠 계통만이 메클렌부르크 대공가를 대표한다.
2022년 독일 쿠데타 모의의 주도자 하인리히 13세의 모친 페오도라(1918~2019)도 프리드리히 프란츠 2세의 손녀이다. (전체 8남 3녀 중 7남이자 빌헬미나 여왕의 부군 헨드릭 공(하인리히)의 바로 윗 형인 아돌프 프리드리히의 외동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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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보드리텐(Obodriten) 가문이라고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