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촉 명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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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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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1. 개요
2. 분파
3. 항렬
4. 이 성을 쓰는 실존 인물
4.1. 한국
4.1.1. 21세손
4.1.2. 22세손
4.1.3. 23세손
4.1.4. 24세손
4.1.5. 항렬 미상
4.2. 기타 국가
5. 이 성을 쓰는 가상 인물


1. 개요[편집]


(밝을 명). 본관은 서촉(西蜀) 단본이며 이외에도 연안(延安), 해주(海州), 황해(黃海), 한양(漢陽), 양산(陽山), 태안(泰安) 등 24본까지 있다고 하나 모두가 한 핏줄의 세거지명에 불과하다. 시조 명옥진(明玉珍)은 원 말의 군웅으로 촉(蜀), 오늘날 사천성 일대에 명하를 세웠으나 1366년(고려 공민왕 16) 사망해 아들 명승(明昇)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위를 계승했지만 1371년(공민왕 20) 명(明)나라 태조 주원장의 세력에 항복하였다. 주원장이 명승(明昇)을 귀의후(歸義侯)에 봉하고 명나라에서 살도록 했으나 명하의 잔존 세력들이 계속 저항하자 이듬해 명승과 어머니 팽씨(彭氏)[1] 등 일족 27명이 함께 고려로 보내졌다. 고려에 귀화하자 같은 해 6월에 공민왕은 이들에게 저포(苧布) 9필을 하사하였다. 공민왕은 명승과 모후 팽씨를 개경 흥국사(興國寺)에 살게 하고, 연안, 백천 양현(兩懸)의 공물(供物)로 공봉(供奉)하였다.

명승은 총랑(摠郎) 윤희종(尹熙宗)의 딸과 혼인하여 살면서 아들 4형제를 낳아 우리나라 명씨(明氏)와, 창평 승(昇)씨의 시원을 이루었다. 그래서 서촉 명씨와 창평 승(昇)씨는 서로 통혼하지 않는다고 한다.

인구는 2015년 기준 29,110명이다. 인구대비 비율 0.057%, 한국 국민들 10000명 중 6명만이 명씨인 셈이므로 쉽게 발견하기는 힘든 성씨이다. 임진왜란 때 개경에서 여러 곳으로 흩어졌다.

중국 중경시 강북(江北)구에 명옥진의 황릉이 있다. 한편 명씨는 외래 귀화 성씨임에도, 중국에서는 명((Míng; 밍)씨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명옥진이 명하(明夏)의 초대 황제이자 명(明)씨의 시조로서, 그 아들 명승(明昇)과 일족이 고려로 왔기 때문이다. 명옥진은 원래 민(旻)씨였으나 명(明)씨로 바꾸었고, 이는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국호를 '대명(大明)'으로 정한 것과 비슷한 이유였다. 당시 한족들이 원나라에 대항하면서 백련교 일명 '명교(明敎)'를 숭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나마 혹시 중국에 남아있었을지도 모를 명씨들은 장헌충의 전설적 학살 등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명씨 대종회 카페가 있다. 네이버 카페, 다음 카페 명씨 대종회로서 중국과 교류하기도, 명씨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한다. 2013년 6월 13일, 네이버 밴드에도 명씨대종회(明氏大宗會)를 개설했다.

2018년 5월 5일, 대전광역시 뿌리공원에 명씨 비석이 세워졌다.


2. 분파[편집]


명승의 네 아들(의 공호)을 파조로 하여 분파되었지만 대부분 파가 없다고 인식하고 있다. 분파 이유는 전주 이씨 항목 참조.

  • 자헌공파(資憲公派) - 자헌공(資憲公) 명의(明儀)의 자손
  • 총랑공파(摠郞公派) - 총랑공(摠郞公) 명현(明俔)의 자손
  • 부사공파(副使公派) - 부사공(副使公) 명준(明俊)의 자손
  • 시랑공파(侍郞公派) - 시랑공(侍郞公) 승신(昇䢔), 원래 이름 명신(明信)의 자손인 창평 승(昇)씨.


3. 항렬[편집]


대략적으로 근현대에 분포하고 있는 족보항렬자는 다음과 같다. 항렬자 순서는 水部-木部-火部-土部-金部로, 오행의 상생 순서를 따른다. 세대 수의 1의 자릿수가 2, 7이면 木, 3, 8이면 火, 4, 9이면 土, 5, 0이면 金, 1, 6이면 水이다.

21세
제(濟)
22세
식(植)
23세
노(魯)
24세
재(在)
25세
호(鎬)
26세
순(淳)
27세
주(柱)
28세
희(熙)
29세
기(基)
30세
종(鍾)
31세
수(洙)
32세
상(相)
33세
엽(燁)


4. 이 성을 쓰는 실존 인물[편집]



4.1. 한국[편집]



4.1.1. 21세손[편집]


  • 명제세 (明濟世, 1885년 2월 4일 - 1964년 1월 4일) -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4.1.2. 22세손[편집]



4.1.3. 23세손[편집]




4.1.4. 24세손[편집]



4.1.5. 항렬 미상[편집]




4.2. 기타 국가[편집]




5. 이 성을 쓰는 가상 인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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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록 단명한 왕조이긴 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중국의 황태후였기에 조선 건국 당시 각종 궁중 법도를 정할 때 자문역으로 참여했다고 한다.[2] 활동명 치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