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운명

덤프버전 :



[ 펼치기 · 접기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colbgcolor=#002664> 시대 ||<-3><rowbgcolor=#bb133e> 동부 || 중부 || 남부 || 서부 || 알래스카 || 하와이 ||
||<|6> 독립 이전

~
1776
||<-7>초기 아메리카 원주민||<-1> 폴리네시아인 ||
||<-3>동부
원주민

북동부 원주민·남동부 원주민||<-1> 대평원
원주민
||<-1> 남서부
원주민
||<-1> 서부
원주민

서부 해안가·로키 산맥 고원·그레이트베이슨·캘리포니아 ||||<-1> 알래스카
원주민
||<|3> 하와이 원주민 ||
||<-4> 미시시피 문화
이로쿼이 연맹
포우하탄 연맹 ||<-2> 선대 푸에블로인(아나사지 문명) ||
||<|2> 제임스타운 ||<|2> 플리머스
식민지
|| 뉴네덜란드 ||<|2> 누벨프랑스 ||<|3><-2> 누에바에스파냐 ||<|6> 러시아령
아메리카
||
|| 뉘아스베리예 ||
||<-3> 13개 식민지 ||
||<|3> 영토 확장
1776
~
1861
||<|2><-2><height=50> 미합중국 ||<|2> 버몬트
공화국
||<|2> 루이지애나
준주
||<-2> 멕시코 ||<|3> 하와이
왕국
||
|| 텍사스
공화국
|| 캘리포니아
공화국
||
||<height=50><-6> 미합중국 ||
||<|2> 근대
1861
~
1897
||<-3> 미합중국 ||<-3> 미연합국 || 알래스카
준주
||<|2> 하와이 공화국 ||
||<height=50><-7> 미합중국 ||
|| 현대
1897
~
||<-8> 미합중국
인디언 보호구역 ||





파일:external/www.canadianshakespeares.ca/american_progress_large_003.jpg
{{{#000000 '《미국인의 전진(American Progress)》'
존 가스트, 1872}}}
[1]

파일:external/www.museumsyndicate.com/15583.jpg
{{{#000000 '《제국의 침로는 서쪽으로 향한다
(Westward the Course of Empire Takes Its Way)》'
엠마누엘 로이체, 1861}}}


파일:The Discovery of America (sculpture).jpg
파일:The Rescue (sculpture).jpg
1840년대부터 1958년까지 미국 국회의사당 양쪽에 있던 《아메리카의 발견(The Discovery of America)》《구출(The Rescue)》 조각상.
1. 개요
2. 유래
3. 북부(캐나다 오리건)
4. 남부
4.1. 멕시코
4.2. 중남미
5. 북미 대륙 해외
6. 기타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또는 명백한 천명, 자명한 운명서부개척시대 미국의 팽창주의를 나타내는 표어로, "미국인은 신세계에 기독교(개신교)와 민주정을 전파하기 위해 하늘이 내려 준 사명을 띠며, 따라서 미국은 적극적으로 세력을 확장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 웨스트(Go West)"라는 구호로도 통했으며, 이러한 선민사상은 신생 국가인 미국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구심점이 되어 미국 예외주의 등의 성립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Washington is not a place to live in. The rents are high, the food is bad, the dust is disgusting and the morals are deplorable. Go West, young man, go West and grow up with the country.

워싱턴은 살 곳이 아니다. 지대가 비싸고, 음식이 나쁘고, 먼지가 구역질나며 도덕은 개탄스럽다. 서쪽으로 가라, 젊은 그대여. 서쪽으로 가서 나라와 함께 자라라.

호러스 그릴리(Horace Greeley), 1865년 7월 13일 뉴욕 데일리 트리뷴지에서



2. 유래[편집]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하기가 무섭게 미국인들은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헐값에 사들여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아갔고, 서부에 있는 멕시코의 땅까지 빼앗기 위해 텍사스 공화국까지 합병한 상황이었다. 이것은 사실 1823년 먼로 독트린으로 이미 공포된 상황이었고, 이걸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도 도덕적, 종교적으로 포장한 것이 바로 이 '명백한 운명'이었다.

북으로는 영국(캐나다)와 남으로는 멕시코와 대립각을 세우던 1845년 12월 27일, 뉴욕의 지역지였던 '뉴욕 모닝 뉴스'에 존 오셜리번이라는 칼럼니스트가 쓴 글이 실린다.

...To state the truth at once in its neglected simplicity, we are free to say that were the respective cases and arguments of the two parties, as to all these points of history and law, reversed - had England all ours, and we nothing but hers - our claim to Oregon would still be best and strongest. And that claim is by the right of our manifest destiny to overspread and to possess the whole of the continent which Providence has given us for the development of the great experiment of liberty and federated self-government entrusted to us.

단순함을 간과한 진실을 단번에 밝히자면, 우리는 양 당사자의 각각의 사례와 논쟁, 이 모든 역사와 법의 요점들에 대해, 영국이 우리의 모든 것을 뒤바꾸어 놓았을 뿐, 우리의 오리건주에 대한 요구가 여전히 최선이고 가장 강력할 것이라고 자유로이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요구는 우리의 '명백한 운명'에 의한 것으로서, 신의 섭리가 우리에게 맡긴 위대한 자유의 실험과, 연합된 자치 정부의 발전을 위해 우리에게 수여한 대륙 전체를 정복하고 소유할 수 있는 권리다.


이걸 요약하면 우리가 확장하는 것은 권리인 동시에 의무라는 것이다.[2]

그리고 이에 대해서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제임스 포크가 다음과 같은 말로 확장주의에 기름을 붓게 된다.

It is confidently believed that our system may be safely extended to the utmost bounds of our territorial limits, and that as it shall be extended the bonds of our Union, so far from being weakened, will become stronger.

우리의 제도는 우리의 영토 한계까지 최대한 확대될 수 있으며, 그것이 확대됨에 따라 우리 연합의 결속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강력해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역덕후라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드립이며, 실제로 의도도 링크된 둘이랑 동일하게 그냥 미국이 땅 먹으려고 대는 핑계이다. 신의 뜻을 거역하면서 원주민들과 멕시코가 땅을 내놓지 않겠다고 하니, 무기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다는 식의 논리인 것.


3. 북부(캐나다 오리건)[편집]


미국은 1845년 텍사스 공화국을 합병했다. 이 때문에 멕시코와의 전쟁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동시에 영국과 오리건[3]를 두고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었다. 오리건 주가 자신의 소유라고 영국, 미국, 스페인, 러시아[4] 4개국이 분쟁을 벌였는데 미국과 영국이 남아서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었으나 점점 대립각이 날카로워지고 있던 것이 당시 상황이었다. 양측은 캐나다의 서부 해안쪽 영역을 어떻게 분할할 것인가를 두고 대립하고 있었다.
파일:external/hpcanpub.mcmaster.ca/CP00110-3.jpg
54° 40' or Fight

그 때 확장주의 진영에서 나온 구호가 바로 54도 40분이 아니면 전쟁이다(54° 40' or Fight)였다. 알래스카의 최남단부가 바로 저 위도로, 캐나다의 태평양쪽 해안선을 모조리 잡아먹겠다라는 것이 확장주의자들의 주장이었다. 54도 40분이란 다름아닌 북위 54도 40분을 가리킨다. 이처럼 미국은 캐나다 서부 해안을 집어삼키고 더 나아가 캐나다 전체를 미국의 땅으로 삼으려 꾀하였으나 캐나다는 당시 세계 최강대국 영국령이었고 또 멕시코와의 양면전쟁을 눈앞에 두게 되어 북위 54도 40분을 고수하지는 못했고, 캐나다의 서부 해안선은 일부나마 유지되었다. 여기서 49도 이남에 일부 뻗어있는 밴쿠버 섬을 미국에 합병시켜야 한다거나 최소 49도 이남 밴쿠버는 미국령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일부 의견도 있었으나 결국 밴쿠버 섬 전체를 캐나다 땅으로 인정하고 미-캐 국경분쟁을 끝내었다. 덕분에 후방의 위험이 없어지면서 바로 이듬해인 1846년 미국-멕시코 전쟁을 치르게 된다.


4. 남부[편집]



4.1. 멕시코[편집]


파일:미국 서부 개척.png
미국의 영토 확장

멕시코의 정치불안을 틈타 미국인 이민자들은 텍사스로 빠른 속도로 이주를 하기 시작하여 인구가 늘어나게 된다. 신생국가 멕시코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으나, 이민자들과 협상 끝에 스페인어를 쓰고 가톨릭으로 개종할 것을 조건으로 불하권을 인정받았으며, 결국 필연적으로 조건 따위는 씹어먹은 미국인 이민자들과 멕시코계 주민들간의 충돌이 잦아지며, 미국과 멕시코 양국은 모두 이 지역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미국은 텍사스를 구매하고자 했으나, 멕시코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는 동안 멕시코의 중앙정치 혼란은 가속화되었고, 그 틈을 타서 텍사스의 미국인 이주민 세력은 크게 강해졌다. 그리고 이주민 세력은 멕시코에 반발하여 대반란을 일으켰다. 신생 텍사스 공화국 내부에서 독립파와 연방합류파의 치열한 권력투쟁 끝에 연방합류파가 승리하여 미국의 1개 주로 합류하기로 하고, 미국 역시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문제가 커졌다. 한 마디로, 멕시코 입장에서는 미국이 제멋대로 반란군들이 강점한 자국의 영토를 멋대로 먹튀를 한 셈이었고, 미국 입장에서는 "이웃의 독립국가가 요청을 해서 이를 받아들였을 뿐이다."라는 태도였다.

당연히 텍사스에서 끝나지 않았다. 당시의 미국 대통령 제임스 포크는 팽창론자로서 공공연히 태평양 출구인 캘리포니아까지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경파였다. 1846년 4월 25일, 미국이 도발하여 양군간에 무력충돌이 발생하고 미군 다수가 죽거나 포로로 잡히게 되자 미국은 이를 빌미로 멕시코에 전쟁을 선포했고 전면 침공을 개시했다. 이후에도 항전을 지속한 멕시코였으나, 미군이 계속해서 공격해오면서 각지에서 계속 참패,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의 점령지만 늘어나는 꼴이 되자 결국 항전을 포기하고 휴전을 제의했다.

1848년 2월, 양국은 과달루페 이달고 협정을 체결하여 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냈다. 멕시코는 텍사스의 미 연방 합류를 인정했으며, 이 지역의 국경을 리오그란데 강으로 삼는 것에 동의했다.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c2f315a2627282d9befa9878fc2692ed.jpg
멕시코미국에 양도한 영토

멕시코는 미국에 막대한 영토를 헐값에 강매를 해야 했고 영토를 빼앗기게 되었다. 1,500만 달러의 대가로 넘겨준 지역은 지금 기준으로 캘리포니아, 유타 주, 네바다 3주 전체와 뉴멕시코, 애리조나주의 대부분, 콜로라도 주의 절반 이상과 와이오밍 주의 남부 일부, 캔자스오클라호마 주의 일부였다.

이 협상을 멕시코가 받아들이지 않고 전쟁을 계속했다면, 캘리포니아 반도는 물론, 소노라 주와 치와와 주까지 합병당했을지도 모르고, 멕시코는 완전히 미국의 영토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미국의 강경론자들은 북중부 멕시코 내지는 멕시코 전체를 미국에 병합하자는 주장을 했다. 참조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멕시코는 재기불능의 타격을 입었다. 당장 영토만 따져봐도 전쟁 이전 영토의 약 55%를 날려먹었다.

파일:external/www.doopedia.co.kr/247223.jpg

갈색 영토는 프랭클린 피어스 시기에 미국령으로 편입된 곳이다. 미국은 1853년 메시아 지역의 국경이 불명확하다는 명목으로 전쟁으로 합병하지 못한 캘리포니아 반도 등을 구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멕시코의 반대로 그중 일부만 1,800만 달러를 주고 매입했으며, 이 지역을 매입한 사건을 개즈던 매입이라고 부른다. 미국은 계속해서 멕시코의 캘리포니아 반도소노라, 치와와 북부 주에 테우안테펙 지협 영토까지 노렸으며 더 나아가 자국 주변의 안정이라는 명분 하에 유카탄 공화국, 리오 그란데 공화국 등 멕시코 내의 분리주의를 적극 조장하고 지원했다.

미국은 천명을 외치면서 끊임없이 확장했다. 서부영화에서는 마치 빈 땅을 개척하는 것처럼 보여주지만, 그 빈 땅은 프랑스, 스페인, 멕시코의 소유였으며, 무엇보다도 원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땅이었다. 미국은 인디언 전쟁에서 시작한 전쟁으로 끝임없이 팽창했고, 미국은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모든 땅을 다 집어삼켰다.

하지만 급격한 확장의 부작용도 드러났다. 엄청난 희생과 학살은 자신들의 것이 아니었다고 외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남북전쟁은 이 급격한 확장의 결과로 발생한 것이었다. 미국인들과 각 주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도덕적이고 종교적으로 포장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고삐를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4.2. 중남미[편집]


미국의 영토 야욕은 미국 멕시코 전쟁으로 멈추지 않았다. 미국은 쿠바를 비롯한 중남미 역시 넘보았다.

여러 미국 대통령들은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쿠바를 매입하려고 시도했다.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 시기 공개된 오스텐드 선언 역시 그 일환 중 하나였다. 스페인이 쿠바를 팔지 않을 경우 무력으로 점거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선언이었다.[5]

필리버스터 역시 이 사상과 연관이 있다. 오늘날 국회에서의 필리버스터는 다른 나라에 침입해 혁명을 핑계로 식민지화를 시전하는 행위에서 따왔다. 쿠바 국기의 창안자인 나르시소 로페스나 나무위키에 문서가 있는 윌리엄 워커가 대표적인 필리버스터다. 이들은 주로 중남미를 노예주로 미국에 편입, 연방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우고 싶어했던 남부 미국인들의 지원을 받았다.

관련 단체로 골든 서클 기사단이 있다. 이들의 목적은 로마 제국이 지중해를 자신들의 바다로 만들었듯이 카리브해를 미국의 바다로 만드는 것이었다. 멕시코와 서인도제도 전역을 장악해 노예주로 이루어진 황금 고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의 국력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미국의 간섭이 본격화 되었다. 영국의 포클랜드 제도 식민화와 나폴레옹 3세의 멕시코 간섭에 대처하지 못한 이전과는 다르게 경제, 군사적으로 중남미를 자국의 영향권안에 편입시켰다.

오늘날에도 먼로 독트린부터 시작해 명백한 운명을 이어받은 미국의 중남미 정책은 지역 국가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19세기 말부터 중남미인들은 미국의 내정 간섭을 유럽 국가들의 제국주의와 같은 선상에서 보았고 냉전 기간 미소간 대리전의 전장이 되면서 반미 정서가 더욱 강화되었다.

5. 북미 대륙 해외[편집]


미국의 확장욕은 북미 대륙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먼로 독트린으로 상징되는 '고립적 팽창주의'는 좀 더 과격한 형태로 변하고 있었는데, 이것을 상징하는 것이 쿠로후네 사건신미양요이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50px-GreaterAmericaMap.jpg

캐나다를 견제하고 러시아를 북미 대륙에서 축출하기 위해 알래스카구입했고 하와이 왕국을 병합했으며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약 50년 후인 1890년대에는 미국-스페인 전쟁을 통해서 카리브해의 푸에르토리코필리핀을 식민지화하고 쿠바를 속국이나 다름없이 부렸다. 남쪽으로는 중남미 국가들을 압박해 속국으로 만들었고, 필리핀을 발판으로 아시아로 뻗처나갔다. 이 팽창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바로 쿠로후네 사건이나 신미양요같은 무력을 동원한 강제 외교(소위 빅 스틱 이데올로기(큰 몽둥이 이데올로기)/건보트 디플로매시(포함 외교)라고 칭해지는, 무력 시위나 실제 전투를 통해 최대한의 이익을 얻어내는 외교술)다. 즉, 미국은 유럽에 대해서만 중립이고 그 외 지역에 대해서는 침략적 확장이라는 제국주의적 형태로 변한 것이다.


6. 기타[편집]


이 시기는 꽤 많이 영상화되었다. 그링고 같이 미국-멕시코 전쟁을 다루는 전쟁영화들도 있지만, 그보다 더욱 대중적으로 퍼진 이미지는 따로 있다. 바로 서부영화의 단골 적 3종세트, 일반적인 무법자, '초기 서부개척시대를 상징하는 인디언 무리'와 함께 하는 멕시칸 콧수염들이 바로 미국-멕시코 전쟁과 그 영향을 명백한 운명의 발상으로 다룬 흔적[6]이다.

레드 데드 리뎀션에는 동명의 도전 과제가 있다. 게임에서는 다양한 동물이 있지만 그 중 아메리카 들소만큼은 평원에 20마리만 서식하고, 죽여도 리스폰되지 않는데, 이 들소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 도전 과제다. '명백한 운명'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보여주는 도전 과제라 할 수 있다.

Mainfest Destiny was a slogan popular in the 1840s. It was used by people who claimed it was God's will for the U.S. to expand all the way to the Pacific Ocean. These people did not include many Mexicans.

명백한 운명은 184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슬로건이었습니다. 이는 미국이 태평양 모든 곳으로 확장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에 의해 이용되었죠. 이들 중에는 많은 멕시코인들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미국 애니메이션인 다리아 첫 화에서도 언급된다. 다리아가 전학을 온 첫 날 역사 교사인 디마티노 교사가 물먹이려고 이를 설명하라 하는데, 위 대사로 완전히 교사를 물먹여버린다. 하지만 돌대가리 커플 케빈과 브리트니가 베트남 전쟁 얘기를 하자 디마티노의 꼭지가 돌아버린다.

아이언 하베스트에서는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은 대신에 명백한 운명에만 집중한 세계관을 보여준다. 아예 리오그란데 강을 넘어 멕시코 전체를 합병하고 캐나다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스토리 시작부터 알레스카를 러시아에 돈도 안내고 공산주의자들이 미국 자산을 파괴한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파견해서 합병 해버린다. 다만 너무 많이 먹었는지 이미 남북전쟁을 치뤘음에도 새로 얻은 영토 때문에 10년 내로 2차 남북전쟁이 일어날거라고 한다.

문명 5에서 미국 문명의 특성 이름이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7]으로 지상 군사 유닛의 시야가 1 증가하고, 타일 구매 비용이 50% 감소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 용어대로 팽창에 유리한 특성.

영어권 인터넷에서는 명백한 운명과 나치 독일 레벤스라움이 유사하다는 드립이 있다. 위키백과,레딧 발 밈, quora 그런데 이것은 단순 드립으로 치부하면 안될 것이, 실제로 히틀러를 위시한 나치들은 미국의 서부 팽창을 크게 참조했다.## 또한 일본 제국타이완을 식민지화하면서 원주민들을 보호구역에 가두어버리는 등 미국의 대원주민 정책을 따라했다.

이 외에 명백한 운명은 북한6.25 전쟁을 비롯한 각종 대남도발을 일으키는 명분에도 깊게 영향을 주었다.

영화 아바타: 물의 길에선 RDA가 판도라를 재침략할 때 사용한 성간 우주선 중 선두함이 ISV 매니페스트 데스티니, 즉 '명백한 운명'이다. 아바타에선 주인공 측인 나비족을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입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이름을 붙인 의도를 충분히 알 수 있다.

7.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7 23:13:47에 나무위키 명백한 운명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미국을 상징하는 미스 컬럼비아가 전신선, 철도, 군중을 이끌고 행진하고, 어두운 좌측면에서는 북미 원주민과 버팔로들이 밀려나고 있다.[2] 당시는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는 것이 백인의 의무라고 불리던 시대였다.[3] 이 당시의 오리건은 지금의 오리건 주가 아니다. 현대 기준으로는 미국의 오리건 주, 아이다호 주, 오리건 주에서 분리된 워싱턴 주, 그리고 몬태나 주의 일부와 와이오밍 주의 일부 그리고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를 다 더한 것이 당시의 오리건 지역이었다.[4] 뜬금없긴 하지만 러시아는 의외로 알래스카 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 북부에 포트 로스라는 요새까지 지을 정도로 아메리카 대륙에 꽤 진출해있었다. 심지어 하와이 제도 서북부의 카우아이 섬에 러시아의 군사 요새가 설치되는 등 하와이 제도가 러시아의 식민지가 될 뻔한 일도 있었다!링크[5] 당연히 스페인은 거부했고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열강도 이러한 미국의 팽창 정책을 비판했다.[6] 이 영화들도 존 포드급 감독들은 초기부터 이런 시선과 다른 영화들을 만들기는 했다. 즉, 저런 시선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저게 클리셰가 된 것은, 다른 수많은 매체에서 저런 식으로 만들어 버릇했기 때문이다.[7] 한글 패치 버전에 따라 자명한 운명, 천명, 프론티어 정신 등으로도 번역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