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쿠니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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森 国造 (もり くにぞう)
(1890년 12월 18일 -1949년 4월 22일)
1. 개요[편집]
일본 해군의 제독으로, 최종 계급은 해군 중장. 1941년 11월, 사세보 진수부 연합 특별 육전대 사령관에 발령되어 태평양 전쟁을 맞이했으나 1946년에 예비역으로 편입되었다.
2. 만행[편집]
태평양 전쟁 개전 초기에 남방전선 당시 학살죄를 저질렀고, 부하 호리우치 도요야키 대좌에게 뒤집어 씌었다. 이로 인해서 호리우치 도모야키는 이 일로 인해 의례 소총 5발로 총살형 사형이 집행 되었다.
이후에 치치지마에서 일본 육군의 다치바나 요시오 장군과 함께 치치지마 식인 사건을 주도하고 위안부에 대해서 막말까지 저질렀다.
이보게 다치바나 중장, 미군놈들 고기는 매우 질기구만... 차라리 위안부 년들의 고기를 배급해주게... 그게 차라리 연하고 부드럽더구만..
3. 재판 및 형 집행[편집]
1946년 10월 4일 예비역으로 편입이 된 이후에 치치지마 식인 사건으로 종신형의 판결을 받고 복역중에 있었는데, 이 때 다치바나 요시오 등 사형을 선고받은 자들이 두들겨 맞는 동안 모리 구니조는 두들겨 맞기는 커녕[1] 그곳에서 미군의 요청으로 미군과 미군 군의관 그리고 감방 동료들에게 사람의 간에 대해 의학적 가치에 대해 강의를 했는데, 이는 모리 쿠니조가 중국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보인다.
그러나 조금 뒤 태평양 전쟁 개전 초기 동인도 제도에서 남방전선 당시에 자신의 학살죄를 부하 호리우치 도모야키 해군 대좌에게 뒤집어 씌웠던 일이 발각[2] 되어 네덜란드 측에 의해 다시 기소가 되었고, 결국 민간인 신분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술라웨시섬 마카사르에서 교수형으로 집행했으며, 호리우치 대좌의 유가족에게 사죄의 편지를 보내고 배상금도 지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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