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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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업
1.1. 모리나가 제과(森永製菓)
1.2. 모리나가 유업(森永乳業)


1. 기업[편집]


파일:모리나가 로고.svg
현재의 로고. 과거에는 아래쪽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아기천사 모양이었다.[1]

홈페이지

1.1. 모리나가 제과(森永製菓)[편집]


일본의 제과 업체. 한국식으로 읽으면 '삼영제과' 이다. 창업주는 모리나가 다이치로(森永太一郎, 1865~1937).

본사는 도쿄도 미나토구 시바5초메 33-1에 있으며, 공장은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츠루미구 등 5곳에 두고 있다. 1910년에 주식회사 모리나가 상점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고, 1912년에 현재의 이름으로 모리나가 제과 주식회사로 변경되었다.

하이츄, 다스 초콜릿, 팟쿤쵸를 비롯하여 이 회사의 히트작이 많지만 모리나가 카라멜이 가장 유명하다.

과즙 음료를 넥타로 부르는 것도 모리나가가 원조다.

김혜수가 주연한 드라마 국희에서 등장하는 모리나가가 바로 이 회사다. 또한 오스트리아산 유명 캔디인 페츠의 일본 내 공식 유통사다.

창업주인 모리나가 가문은 아베 신조의 아내 아베 아키에의 외가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했을 무렵, 모리나가는 전투식량을 생산했다. '모리나가 도시락'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고, 국책식량이라고 광고를 했다. 형태는 한국군의 특전식량과 비슷한 모양이다. 모리나가 밀크 캬라멜과 모리나가 '드롭스' 캔디도 구 일본군에 전투식량 대용으로 인기가 있었다.[2] 한반도에도 공장을 만들어서 건빵을 일본군에 납품했다.[3]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 항쟁기 강제 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 강제 동원 희생자 등 지원 위원회가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에 관여하던 일본 전범기업으로 확정했다. 그래서 비판과 불매운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창업주인 다이치로가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도 감리교 신자였으며, 고향에서 첫 전도 활동을 하다 아버지에게 의절당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또한 1935년 경영에서 물러난 뒤 1937년 사망했을 때까지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전도 활동에 힘썼다고 한다. 다만 그에게 세례를 준 선교사가 메리맨 해리스(Merriman C. Harris)[4]인 점과 상기한 전범기업 활동 탓에 한국 개신교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매년 주문은 토끼입니까?의 캐릭터 호토 코코아랑 콜라보를 실시한다. 해당 캐릭터가 그려진 상품을 담은 밀크 코코아를 판다거나, 11월 7일이면 "코코아의 날"이라고 홈페이지의 코코아 상품 페이지에 코코아의 일러스트를 걸어놓고, 축하 보이스를 공개한다. 축하 보이스는 주문토끼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것과 모리나가 페이지에 있는 것의 내용이 다르다.

한반도 지역에는 꽤 오래전인 일제강점기에 진출했다. 서울 미츠코시 백화점(三越 百貨店)에서 관련 제품들을 판매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당시 살았던 사람들 중에는 모리나가 제품들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1940년 영화 수업료에도 버스에 탑승한 주인공이 모리가나 캬라멜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1.2. 모리나가 유업(森永乳業)[편집]


위 회사의 형제회사. 소재지는 같지만 건물은 다르다.

1955년 분유에 비소가 불순물로 들어가 영아 130명 이상이 죽은 '모리나가 비소 밀크 사건'이라는 흑역사가 있다.

또한 80년대에는 일본 굴지의 제과업체인 에자키 글리코社와 함께,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이라는 영구 미제의 납치/협박사건에 휘말린 적이 있다.

이 회사에서 만드는 커피 첨가제 크립(Creap)은 한국의 프림같은 위상인데, 프림과 달리 진짜 우유로 만든다.


2. 일본의 성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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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9년 모리나가제가와 기술협업한 동양제과(현 오리온)의 광고.
파일:모리나가 기술제휴 밀크카라멜 광고.png
[2] 미군투시 롤처럼 이것도 달다구리해서 높은 칼로리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롭스는 반딧불이의 묘(애니메이션)에 묘사되는 것처럼 스팸처럼 생긴 깡통에 들어있었다.[3] 이 모리나가의 생산시설을 동립산업의 함창희가 되살려서 한국전쟁 말기부터 국군에 건빵을 납품한다.[4] 감리교 선교사였는데, 다른 선교사들과 달리 경술국치 때 일본을 두둔하는 등 노골적인 친일 행보를 보였고, 이 때문에 한국 개신교에서 평가가 아주 나쁘다. 일본에선 오프라인에든 온라인에든 이러한 비판을 전혀 다루지 않으며, 서양에선 온라인에서 잘 다루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