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야마 켄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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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왕공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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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동궁 제2대 궁주

대한제국 고종의 손자
모모야마 켄이치 | 桃山虔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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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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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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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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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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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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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952)
조선적 (1952~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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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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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1990)
출생
1909년 10월 28일
대한제국 한성부 사동궁
(現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 196)
사망
1990년 12월 21일 (향년 81세)
일본국 사이타마현 사이타마시
사동궁주 재임
1930년 6월 12일 ~ 1947년 5월 3일
이름
건(鍵) → 켄이치(虔一)[1]
아명
용길(勇吉)
부모
아버지 의친왕 이강, 적모 의친왕비 김덕수, 생모 수관당 정씨
형제
이복동생: 이우, 이수길[2], 이곤, 이해원, 이해청, 이해룡[3], 이석
배우자
전처 마츠다이라 요시코(松平佳子)[4]
마에다 요시코(前田美子)[5]
자녀
이충[6], 이기[7], 이옥자[8], 모모야마 코우야[9], 모모야마 쿠미[10], 그 외 딸 1명
군사 경력
임관
일본육군사관학교
복무
일본 제국 육군
1932년 ~ 1945년
최종 계급
중좌
참전
제2차 세계대전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대중매체에서
5. 자녀



1. 개요[편집]


대한제국 초대 황제 고종의 손자이자 의친왕장남이다. 한국명은 이건(李鍵). 의친왕과 마찬가지로 왕공족으로 생활했으나 동생 이주가 대한민국 외교부 외교관까지 역임한 바 있었음에도 이건은 국가에 대한 정체성도 없었던 걸로 보인다.

국적이 복잡한데 1909년에 대한제국에서 태어났으나, 1910년 경술국치일본국적이 되었고, 1945년 종전으로 반 무국적 상태에 놓였다가, 1952년에 최종적으로 일본 국적이 박탈되었다.(자세한 사항은 조선적 문서 참조.) 그러나 1955년에 일본으로 완전히 귀화하였다. 결론적으로 대한제국 황실 출신의 한국계 일본인이다.

고종의 손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대한제국 시기에 태어났다.


2. 생애[편집]


1909년(융희 3년)에 의친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수관당 정씨. 어릴 적 이름은 용길(勇吉)이었으나 1924년에 건(鍵)으로 개명했다. 1910년(융희 4년) 한일합방 당시에 왕공족고종황제, 순종황제, 순정효황후, 영친왕, 의친왕, 의친왕비, 흥친왕, 흥친왕비 등 8명이고 나머지 이왕가의 왕족들은 왕공족으로 대우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건의 이복 동생인 이우가 1917년 3월 이준용양자로 들어가면서 왕공족이 되었고, 이건은 1930년 6월 아버지 의친왕이 일제의 압박으로 강제로 은퇴한 후 공(公) 작위를 계승했다.

1930년에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기병 소위로 임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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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다이라 요시코와 결혼한 이건[11]

1931년에 작은어머니의 이종사촌 여동생인 일본 여성인 마츠다이라 요시코(松平佳子)와 결혼했다. 요시코의 어머니인 마츠다이라 토시코(松平俊子)는, 이방자의 외할아버지 나베시마 나오히로(鍋島直大)가 측실 아사치요(朝千代)에게서 낳은 딸이다. 즉 토시코는 이방자의 이모, 요시코는 이방자의 이종 사촌 여동생이다. 즉 이방자는 이종사촌처형이자 작은어머니가 되는 겹사돈 관계가 성립된다. 마츠다이라 요시코는 이이 나오스케의 둘째 딸의 아들의 딸이기도 하다. 즉, 이이 노스케의 증손녀인 셈.

1936년에 대위로 진급하고 육군대학을 졸업한 뒤 중좌 계급으로 종전을 맞았다. 1947년 신적강하가 이뤄지자 모모야마 켄이치(桃山虔一)란 이름을 쓴다. 장남 이충은 타다히사(忠久), 차남 이기는 킨야(欣也), 장녀 옥자는 아키코(明子)로 개명했다. 아내 요시코의 이름은 원래 세이코(誠子)였는데, 이때 요시코로 개명했다.

일본 패전 후, 이건과 요시코 부부는 시부야에서 단팥죽과 산양젖을 팔거나 제과점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1984년 이방자 여사가 〈경향신문〉에 연재한 회고록[12]에 따르면, 그래도 엄연한 왕족이고 군대 장교였던 이건 공이 시장에서 단팥죽 장사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아 몰래 찾아갔더니, 정말 이건 공과 요시코 부부가 '모모야라는 간판을 걸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고. 영친왕이방자 여사는 굉장히 충격을 받아, 이건과 요시코에게 말도 붙이지 못하고 돌아왔으며 동시에 자신들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함을 느꼈다고 한다.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어서 독일어 번역일 등을 하기도 했다. 요시코는 사교적인 성격이라 이 시절에 긴자의 클럽 등에서 일하기도 했는데, 이건은 이를 굉장히 싫어했고 서로 자주 싸웠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내의 외도에다, 결정적으로 장남 타다히사가 자신의 친자가 아님을 안 것을 계기로 1951년에 이혼했다. 이건에 따르면, 요시코에게 약혼 전부터 사귀던 일본 화족 청년이 있었다는 것과 결혼 10개월 만에 태어난 장남이 친자가 아닌것은 전쟁 중 혈액 검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요시코는 후에 자신의 회고록에서 그런 장남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불쌍한 아이라고 언급했다. 이혼 이후 차남 킨야는 이건이, 장남 타다히사와 아키코는 전처인 요시코가 키웠다. 1952년에 마에다 요시코(前田美子)와 재혼했고, 그 사이에서 3남 코우야(孝哉)와 3녀 쿠미(久美) 및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딸 1명을 낳았다. 1955년에 일본으로 귀화하였고, 1990년에 사망했다. (전처인 요시코는 2006년에 사망했다.)

말년에는 시영 임대 아파트에서 살다가 사망했다고 하며, 사망 시 다카히토 친왕이 빈소에 방문 했다고 한다.[13]


3. 여담[편집]


  • 의친왕의 5녀이며 이건의 이복 여동생인 이해경 여사가 집필한 《나의 아버지 의친왕》에 기록된 이해원의 증언에 의하면, 의친왕과 이건 부자는 원만한 사이가 아니었다. 어째서인지 의친왕은 아들들이 어릴 때부터 둘째아들 이우는 무척 총애하면서 큰아들 이건을 노골적으로 미워해서, 술을 마시고 취하면 이건에게 일본으로 가서 살라고 화를 내곤 했다. 이우가 방학 때 일본에서 돌아오면 직접 서울역으로 마중나갔지만, 이건이 돌아오는 날에는 일부러 외출하며 이건을 피하곤 했다. 어느날 이건이 일본에서 돌아왔는데 또 의친왕이 일부러 집을 비웠다. 이것을 알고 참다 못한 이건이 웃통을 벗어부친 채 마당에서 장대비를 맞으며 울부짖는 것을 이해원 여사가 목격한 적도 있다. 이건이 이우와 다르게 일본의 식민 지배에 순종적인 태도를 취하고 해방 후 아예 일본에 귀화한 데는, 아버지 의친왕의 미스터리한 미움과 구박이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 그러나 그럴만도 한 게, 이건은 친일 성향을 지닌 인물이었다. 일본 황실의 태도에는 따뜻한 맛이 있는데 한국 황실에는 냉담함만이 있다고 언급하거나 1945년 8월 12일 황족 회의에서 쇼와 덴노를 보고 그 말투며 태도며 실로 경복하기에 족한 것이 있었다고 칭송하였으며, 동생 이우가 어떻게든 일본인을 거부하고 박영효의 손녀인 조선인 박찬주와 결혼한 것과 달리 자신은 이방자의 이종 사촌여동생인 일본인 마츠다이라 요시코(松平佳子)와 순순히 결혼했다. 또 일본으로 귀화하면서 아버지와 연을 끊고 싶어 귀화했다고 하는 등 노골적으로 자신을 일본 황실의 일원으로 여겨 아버지인 의친왕과 사이가 나빴던 인물이다.

  • 8.15 광복 후 한국에 와서 이복동생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때 조선 왕족의 후예라는 것을 내세우지 말고 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이 공화정으로 바뀐 세상에서 힘들어하던 동생들에게 적응하도록 노력하며 살라는 것인지, 아니면 조선 왕가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것인지는 불명.

  • 모모야마 켄이치의 후손들은 전처 마츠다이라 요시코 사이에 2남 1녀, 후처 마에다 요시코 사이에 1남 2녀가 있다. 후처 마에다 요시코와의 사이에서 낳은 3남인 모모야마 고야는 카이세이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를 하고 교감을 지내기도 했다. 전주 이씨 모임이 고야와 접촉하려 했을 때 고야가 '아버지의 출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한 것을 보면 본인이 황족임을 숨기고 산 듯 하다. 고야는 전주 이씨 왕실 모임을 거절했고 나머지 후손들도 현재까지 참석하지 않는다. 덧붙여서 다른 후손들에 대한 정보는 알려진 바 없다. 이때문에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총재:이원)에선 의친왕의 혈통상 장남을 이우로 인정하고 있다.[14]


  • 이해원(1919~2020)과 이해경(1930~ ), 이석(1941~ ) 다음으로 의친왕계 2세대 중 오래 산 인물이다. 만 81세, 세는 나이로 82세까지 살았으며, 나이로만 따지면 남동생 이우(향년 32세), 이방(향년 37세), 이주(향년 65세), 이곤(향년 65세), 이광(향년 31세), 이현(향년 73세), 이갑(향년 76세)보다 오래 살았다.

  • 이복동생 이주가 1공화국 시기 주일본 대한민국 대표부 서기관을 맡은 바 있기에 이건과 이 무렵 만난 적 있지 않냐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건이 자신의 황실 혈통을 싫어하는 수준을 넘어 매우 친일적이고 일본에 완전히 동화된 인물이었기에 실제로 교류가 있었을지는 알 수 없다.

  • 본인보다 어린 고모가 있었다.


4. 대중매체에서[편집]


  • 2016년작 영화 덕혜옹주에서는 배우 정세형이 모모야마 켄이치 역할을 맡았다. 비중은 크지 않으며 친일적인 행적을 반영하여 영친왕과 이우, 덕혜옹주 등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영친왕의 망명을 반대하며 자신은 이 자리에서 빠지겠다고 하며 나가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5. 자녀[편집]


  • 장남 이충 → 타다히사(忠久): 요시코(松平佳子) 생. 친자가 아니라는 것이 나중에 밝혀진다. 요시코와 이혼 후 요시코가 양육했다. 2006년 사망.
  • 장남[15] 이기 → 마에다 킨야(前田 欣也): 전처 마츠라이다 요시코 생. 이건의 친자로 후에 후처 마에다 요시코의 아버지의 양자로 입적.새어머니의 동생?
  • 장녀 이옥자 → 아키코(明子): 전처 마츠다이라 요시코 생.
  • 차남[16] 모모야마 고야(桃山 孝哉): 후처 마에다 요시코(前田美子) 생.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의 모교인 가이세이가쿠엔(開成学園) 학교 교감을 역임.
  • 삼녀 모모야마 쿠미(桃山 久美): 후처 마에다 요시코 생. 우에노 히데하루(上野秀治)[17]에게 시집갔다.
  • 그 외 후처 마에다 요시코 사이에서 낳은 딸 1명이 더 있지만 이름이 밝혀진 적이 없어서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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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완전히 일본인으로 귀화하면서 개명했다.[2] 1917~1982. 대한민국 외교관까지 역임했다.[3] 현 대한제국 황사손 이원의 생부.[4] 1931년 결혼, 1951년 이혼[5] 1952년 재혼.[6] 일본명 모모야마 타다히사(桃山忠久). 친자가 아님이 밝혀졌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7] 일본명 모모야마 킨야(桃山欣也)[8] 일본명 모모야마 아키코(桃山明子)[9] 桃山孝哉.[10] 桃山久美.[11] 우측사진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이 링크에서 사진 다운로드 가능하다.[12] 원 제목은 《세월이여 왕조여》. 2014년에 출판사 지식 공장소에서 《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입니다》로 재출간했다.[13] 한국어 위키에는 두 사람이 일본 육사 동기라고 표기하고 있으나 잘못된 오기. 실제로는 이건의 일본 육사 42기 동기 중에서 황족이라고는 쇼와의 사촌인 다케다노미야 츠네요시 뿐이며 다카히토 친왕은 일본 육사 48기로서 격차가 상당한 편이다. 육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후 이건과 다카히토가 진학한 일본 육군 대학교의 경우에는 이건은 육군 대학 51기, 다카히토 친왕은 55기로 차이가 제법 나는 편이다. 결국 다카히토 친왕은 자신의 육사 및 육군 대학 선배이자 과거 황족 출신이였던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온 것으로 보인다. 만일 다카히토와 이왕가의 누군가가 육사 혹은 육군 대학 재학 중에 만났다고 한다면 이건이 아니라 이건의 배다른 동생이자 육사 45기, 육대 54기생 이우였을 것이다.[14] 종손은 이우의 친동생인 이곤일가.[15] 이충이 이건의 아들이 아니란 게 밝혀지기 전까지는 차남으로 알려져있었다.[16] 이충이 이건의 아들이 아니란 게 밝혀지기 전까지는 삼남으로 알려져있었다.[17] 기타시라카와노미야 요시히사 친왕의 신적강하한 6남 우에노 마사오(上野正雄) 백작의 양손자다. 히데하루와의 사이에 딸이 1명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