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세스 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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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세스 알루
Moisés Alou

본명
모이세스 로하스 알로 벨트레[1]
Moisés Rojas Alou Beltre
출생
1966년 7월 3일 (57세)
조지아 주 애틀랜타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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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2]
신체
190cm / 83kg
포지션
외야수[3]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6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번, PIT)
소속팀
피츠버그 파이리츠 (1990)
몬트리올 엑스포스 (1990), 1992~1996)
플로리다 말린스 (1997)
휴스턴 애스트로스 (1998, 2000~2001)
시카고 컵스 (2002~2004)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05~2006)
뉴욕 메츠 (2007~2008)
가족
아버지 펠리페 알루
백부 매티 알루, 헤수스 알루
이복동생 루이스 로하스
사촌 멜 로하스
5촌 조카 멜 로하스 주니어

1. 개요
2. 커리어
3. 여담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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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동한 전직 야구 선수. 도합 17시즌 동안 통산 올스타 6회 선정, 타율 .303, 332홈런 2134안타, 1287타점을 기록한 것[4]에서 보이듯이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을 풍미한 외야수였다.


2. 커리어[편집]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200홈런, 2100안타를 기록, 1960년대를 풍미한 강타자 펠리페 알루의 아들로 태어났다. 피는 못 속이는지, 고등학교 때부터 만능 스포츠맨의 자질을 보여주었다. 알루 본인이 좀 더 열중했던 것은 야구가 아니라 사실 농구였지만 스카우터들은 야구 쪽 재능을 더 높이 평가했고 대학교 1학년 재학중이던 1986년 1월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피츠버그 파이러츠에 입단한다. 이 마지막 1월 드래프트에서 알루 앞에 지명된 선수는 다름아닌 제프 쇼였다. 알루는 높은 지명 순위와 달리 마이너리그 초창기 시절 상당히 헤매다가 6년만인 1990년에야 콜업된다.[5]

피츠버그 소속으로 딱 2경기만을 뛰고는 아버지 펠리페 알루가 감독으로 재직중이던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트레이드된다. 2년차로 기대를 모았던 1991년 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해 고스란히 날려먹는다. 그러나 부상에서 복귀한 1992 시즌에 115경기에서 타율 .282, 9홈런 56타점을 기록하면서 본격적으로 커리어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고, 신인왕 투표에서도 2위를 기록한다.

1993시즌에도 타율 .286, 18홈런 85타점을 기록한 데 이어 다음해인 1994 시즌에는 포텐셜이 대폭발한다. 1994 시즌에 알루는 107 경기에서 타율 .339, 22홈런 78타점으로 첫 올스타 선발, 실버슬러거, 정규리그 MVP 투표 3위라는 영예를 누린다. 알루-마퀴스 그리솜-래리 워커라는 당시 메이저리그 최고의 외야진의 일원이었고, 팀도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의 해를 보내며 월드시리즈까지 넘볼 수 있었지만 1994년 메이저리그 파업으로 그 꿈도 날아가버린다. 다음해인 1995 시즌에는 발목[6]에 이은 어깨 부상으로 시즌의 절반 가까이를 날렸지만 그 이듬해인 1996 시즌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말을 증명하듯 타율 .281, 21홈런 96타점으로 건재를 증명한다.

1996 시즌 후 알루는 분노의 지름을 행하고 있던 플로리다 말린스로 FA 이적을 한다. 말린스에서 알루는 타율 .292, 22홈런 115타점을 기록했고 거기에 생애 첫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를 손에 넣는 기쁨까지 누리게 된다. 알루 본인 역시 월드 시리즈 내내 타율 .321 3홈런 9타점으로 인디언스 투수진을 폭격하면서 우승의 일등 공신이 된다.[7]

다만 1997년 월드 시리즈 우승과 동시에 말린스는 페이롤 감축을 위해 폭풍 세일에 들어섰고, 스토브리그 시즌 도중에 알루는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된다. 킬러B의 우산효과로 알루는 1998 시즌에 타율 .312, 38홈런 124타점으로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경신하면서 1994시즌에 이어 다시 한번 올스타 선발, 실버슬러거 수상, 정규리그 MVP 투표 3위의 영광을 누린다. 그렇게 거침없이 자신의 시대를 열어가나 했는데 이번에도 부상이 알루의 발목을 잡는다. 1998 시즌 종료 후 개인 운동을 하던 알루는 런닝머신에서 넘어지면서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중상을 당했고 1999 시즌을 날려버린다. 애스트로스 팬과 프런트가 뒷목을 잡은 건 덤. 그래도 클래스는 또 어디 안가서 2000 시즌과 2001 시즌 각각 타율 .355 / .331이라는 리그 성장급 지표를 찍어준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유리몸 기질은 여전해서 알루는 매해 30경기 가량을 결장했고, 결국 그의 인저리 프론을 염려한 애스트로스 프런트는 2001 시즌 종료 후 그에게 계약 연장을 제시하지 않는다.

알루를 데려간 새로운 팀은 시카고 컵스. 그리고 알루는 컵스와 함께한 첫 시즌의 시작을 부상자 명단 등재와 함께 한다(...) 뭐 해마다 30경기씩 날리는 거는 거의 연례행사였다고 치더라도 스탯 역시 상당한 비율로 떨어져서(타율 .275, 15홈런 61타점) 먹튀가 되는 우려를 샀었다. 하지만 다음해인 2002 시즌 불과 열 경기만 결장하는 한층 건강해진 모습으로 타율 .280, 22홈런 91타점을 기록했고 팀 역시 간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를 무난히 물리치고 만난 상대는 옛 친정팀 플로리다 말린스. 5차전까지 컵스는 3승 2패로 시리즈를 앞서나갔고 6차전에서 8회까지 3-0으로 앞서나가면서 60년만에 월드 시리즈 진출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그런데 그 유명한 스티븐 바트만의 파울볼 강탈 사건이 일어났고, 이후 갑자기 컵스가 흔들리면서 마치 거짓말처럼 컵스는 6,7차전을 말린스에게 내주고 다시 한번 분루를 삼켜야만 했다. 당시 알루가 공을 놓치고는 바트만에게 미친듯이 성질을 내는 바람에, 모든 비난의 화살과 살해 협박은 바트만에게 쏠려버렸다. 물론 당시에도 알루를 비판하는 의견이 없지는 않았다. 마운드에 서 있는 어린 에이스를 다독이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앞장서서 난리를 친 그의 베테랑답지 않은 행동이 역전패의 시발점이었다는 것.

문제의 영상


각설하고, 다음해인 2004 시즌에는 다시 한번 대각성해서 타율 .293, 39홈런 106타점의 성적을 찍는다. 하지만 컵스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리그 마지막 9경기에서 7패를 당하는 어메이징한 모습어메이징은 이 팀 종특인데을 보여주면서 탈락했고, 그것으로 컵스와의 인연도 끝이 난다.

컵스를 나온 알루에게 손을 내민 것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그리고 몬트리올 때와 마찬가지로 이 때의 자이언츠도 아버지 펠리페 알루가 감독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사실 알루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자기가 먼저 아버지에게 같이 뛰고 싶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자이언츠에서 알루는 배리 본즈와 공포의 외야라인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받았지만, 정작 본즈가 부상으로 나가떨어지면서 이는 설레발에 그치고 만다.

자이언츠에서 알루는 2005년 .321/.400/.518 OPS .918 21홈런 63타점 OPS+ 138, 2006년 .301/.352/.571 OPS .923 25홈런 74타점 OPS+ 132를 기록하면서 30대 후반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좋은 타격을 선보였고 2005년에는 올스타에도 선정되었다. 심지어 저 스탯을 투수 친화구장으로 유명한 AT&T 파크에서 찍었다.[8] 다만 훌륭한 비율스탯에 비해 홈런이나 타점이 적어보이는데 그 이유는 당연히 부상. 안그래도 유리몸인데 30대 후반이라는 나이 영향도 겹친 탓에 2005년에 123경기, 2006년에는 98경기로 시즌 1/3 가까이를 날린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2006 시즌 종료 후에는 코너 외야수를 애타게 구하던 뉴욕 메츠가 1년 $7.5M에 1년 연장 옵션을 달면서 알루를 영입했다. 이 당시 뉴욕 메츠의 코너 외야수는 엔디 차베스, 숀 그린, 클리프 플로이드 등이 로테이션으로 돌았는데 다 결점이 뚜렸했다. 차베스의 경우 타격이 아쉬웠고, 그린은 전성기의 장타력은 사라진채 노쇠화가 왔으며, 플로이드는 부상으로 인해 플레잉타임을 보장하기 힘들면서도 정확도도 부상 여파로 보장되지 않는등 같은 인저리프론이지만 공격력에서 알루의 하위호환버전이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만 40세의 나이지만 타격은 여전했던 알루를 잡아온 것. 알루는 메츠에서도, 늘 그랬듯이 건강하면 아주 훌륭한 모습을 보였다. 여전히 부상에 시달리며 시즌 절반 정도에 불과한 87경기에 출장했고, 나이는 어쩔 수 없는지 장타력도 전보다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나온 경기에서 알루는 .341/.391/.524 OPS .916 13홈런 49타점을 기록했고, 심지어 시즌 말미에는 30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기까지 했다. 이에 고무된 메츠 단장 오마르 미나야는 옵션을 발동해 계약을 1년 더 연장했지만, 알루는 2008 시즌 내내 햄스트링 부상에 시달린 끝에 15경기에 출전하는데 그쳤다. 결국 시즌 종료 후 메츠와의 계약이 만료되자 알루는 은퇴를 선언했다.[9]

은퇴후에는 프런트로 일하고 있다. 모국 도미니칸 공화국의 윈터리그 팀 오네스 델 에스코기의 단장으로 일하다가 2013 WBC 때는 도미니카 공화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단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현재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선수 육성 부문 특별 자문을 맡고 있으며 2016 시즌 도중 올스타 퓨처스 게임에서 세계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10]


3. 여담[편집]


  • 다혈질이다. 2003 NLCS 6차전 당시 그 문제의 파울볼 강탈 사건 때 수비를 방해한 팬[11]에게 미친듯이 화를 낸 것이 가장 유명한 예. 게다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놓고도 심판과 허구헌 날 입씨름을 했다. 컵스 프런트에서 '네가 유리몸인건 참을 수 있어도 심판이랑 치고 박는건 이제 못 참겠다'면서 계약 연장을 거부할 정도.
  • 야구 가문 출신이다. 단순히 '가족들이 다 야구를 했다' 정도가 아니라 모두 메이저리그에서 선수로 10년 이상 롱런했다. 아버지 펠리페 알루야 메이저리그에서 감독까지 지낼 정도의 짬밥이었고, 삼촌이었던 매티 로하스와 헤수스 로하스 역시 1960~70년대 메이저리그에서 선수로 활동했다. 다만 삼촌들의 경우에는 벤치워머로 대부분의 커리어를 보냈고 주목할 만한 성적을 기록한 인물은 아버지 펠리페 알루와 본인. 또한 동갑내기 친가 쪽 사촌인 멜 로하스 시니어와는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같이 뛰기도 했다. 그리고 2017년 kt wiz에서 뛰고있는 멜 로하스 주니어5촌 당조카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 뉴욕 메츠 감독이였던 루이스 로하스가 이복동생이라고한다.
  • 흔히 표제어대로 '모이세스 알루'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굳이 따지고 본다면 일반적인 표기는 아니다. 스페인어 작명법에서는 부계 성과 모계 성이 모두 들어가는데, 모이세스 알루의 경우 Moisés가 이름, Rojas Alou가 부계 성, Beltre가 모계 성이다. 일반적인 사례대로 이름 + 부계 성을 사용한다면 '모이세스 로하스 알루'가 되는 것. '모이세스 알루'로 굳어진 이유는 다름아닌 아버지 펠리페 알루와 관련이 있다. 펠리페의 풀 네임은 '펠리페 로하스 알로'(Felipe Rojas Alou)로, Felipe가 이름이며 Rojas가 부계 성, Alou가 모계 성이다. 따라서 원래는 '펠리페 로하스'로 등록해야 하는데, 펠리페를 스카우트한 자이언츠 스카우터가 스페인식 이름 표기법을 몰라서 Rojas가 미들 네임, Alou가 성이라고 착각해서 '펠리페 알루'라고 등록했다고 한다. 모이세스 역시 그 영향을 받아서 '모이세스 알루'라고 표기하게 된 것. 참고로 모이세스의 부계 성인 'Rojas Alou'의 경우도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인데, 스페인어권에서 본인의 모계 성은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물려주지 않기 때문. 따라서 일반적인 사례였다면 모이세스의 본명은 '모이세스 로하스 벨트레'가 되었어야 하는데, 모이세스는 뜬금없게도 아버지의 모계 성인 '알루'도 물려받았다. 이는 아버지 펠리페가 이미 '펠리페 알루'로 잘 알려진 상황이고 모이세스 역시 유망한 야구선수로 주목받아서 부계와 모계 성을 그냥 통째로 아들에게 성으로 붙인 것으로 보인다.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인 아버지와 달리 아들 모이세스는 비교적 복성(複性)이 많은 영미권 출신인 것도 한 몫 했고. 그에 비해 모이세스의 이복동생인 루이스의 경우 선수로서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해서 아버지의 후광을 위해 굳이 펠리페의 모계 성인 'Alou'를 물려받을 필요가 없었고, 따라서 루이스는 아버지의 부계 성만 물려받아 루이스 로하스로 불리게 되었다.
  • 부자가 모두 메이저리그에서 20홈런을 기록했다. 이는 필더 부자(프린스 필더, 세실 필더), 그리피 부자(켄 그리피 주니어, 켄 그리피 시니어), 본즈 부자(바비 본즈, 배리 본즈) 포함해서 메이저리그 150년 역사에서 단 네 번 있는 사례.
  • 누적 성적이 아쉬웠기 때문에 명예의 전당을 도전하기에는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일반적이었고, 실제로 은퇴 후 처음 명예의 전당 자격을 부여받은 2014년 선거에서 6표로 1.1%의 득표를 받고 광탈했다. 누적 성적 부족 요인은 역시 유리몸 기질탓. MLB 데뷔는 만 23세이던 90년이었고 풀타임 첫 시즌은 만 25세이던 92년이었는데, 91년과 99년은 부상으로 빅리그 출전 기록이 아예 없다. 그리고 1경기라도 뛴 기록이 있는 17시즌 중 150경기 이상은 뛴 시즌이 고작 4시즌에 불과하다.
  • 블라디미르 게레로호르헤 포사다 등과 더불어 배팅 장갑을 안끼고 맨손으로 타격하는 것으로[12] 유명했다. 또한 무게중심을 상당히 낮게 잡는 타격폼 때문에 이를 따라한 야구키즈들이 은근 있었다.

[1] 선수가 도미니칸 혈통이고 성명을 스페인어 방식으로 하고 있음에 따라 스페인어 표기법을 적용한 표기. 발음은 /mojˈses aˈlow/로 '모이세스 알로-' 정도로 발음하며, 스페인어 표기법에서는 ou를 '오'로 옮기므로 '알로'로 표기한다. 선수가 미국인임을 감안해 영어식으로 발음할 경우 /mɔɪzᵻs əˈlu./, 한글로 옮기면 '모이지스 알루'로 표기할 수 있다. 그 외에 이름 표기 순서와 관한 일화는 하단의 '여담' 문단 참조.[2] 도미니카 공화국 혈통의 미국인이다. 부모님이 도미니칸.[3] 좌익수와 우익수를 주로 봤다. 본인이 더 선호했던 포지션은 코너 수비 자리 중에서도 더 수비부담이 적은 우익수였는데, 이런 저런 팀의 사정상 좌익수 수비를 보는 경우도 많았다.[4] 다만 HOF로 가기에는 누적 성적이 아쉬웠다.[5] 당시 기록을 보면 마이너리그 첫 4년동안 싱글 A에서조차 타율이 2할5푼이 넘은 적이 없었다(...) 관련 링크[6] 1993 시즌부터 발목 부상으로 고생했다. 그리고 이 때의 발복무상으로 결국 포지션을 코너 외야수로 변경해야만 했다.[7] 월드 시리즈 MVP는 1차전과 5차전에서 선발로 나와 승리를 가져간 같은 팀의 에이스 리반 에르난데스에게 수여됐다.[8] 물론 좌타자에 비해 우타자가 조금 더 유리하긴 하지만 그래도 투수에게 유리한건 변함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알루가 뛰던 당시에는 배리 본즈의 영향으로 AT&T 파크가 타자 친화구장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어서 알루의 성적은 오히려 저평가되기도 했다. 이름이 오라클 파크로 바뀐 현재는 구장 크기를 다소 줄이면서 중립구장 정도로 바뀌었다.[9] 알루가 1년간 땜질한 메츠의 코너 외야수 구하기 프로젝트는 2010 시즌에 들어서야 제이슨 베이의 영입으로 해결된다.[10] 미국팀 감독을 맡은 사람은 샌디에이고의 전설 트레버 호프먼.[11] 그 팬의 이름은 스티브 바트만으로 그간 근황이 전해지지 않았으나, 16년 시카고 컵스의 우승 후 구단주 톰 리케츠가 바트만을 만날 예정이라는 기사가 떳다! 바트만의 변호인에 따르면 여전히 시카고에 살고 있으며, 컵스의 우승소식에 여느 팬들처럼 매우 기뻐했다고. 이후 시카고 컵스 구단은 그에게도 2016년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를 선물하면서 이 때의 일을 다시 한 번 위로를 해 줬다. 하지만 바트만은 알루만큼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하였다.[12] 맨손 타격에 따른 상처와 물집을 예방하기 위해 손에다가 소변을 본다고 기자들에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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