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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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
木浦市
Mokpo City





시청 소재지
양을로 203 (용당동)
광역자치단체
전라남도
하위 행정구역
23
면적
51.62㎢
인구
217,604명[1]
인구밀도
4,234.57명/㎢[2]
시장

[[무소속|
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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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석


2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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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석
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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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석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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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이 (목포 / 초선)
상징
시화
백목련
시목
비파나무
시조

시가
목포시민의 노래
지역번호
061
웹사이트
www.mokpo.go.kr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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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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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코트 포포 & 포미

1. 개요
2. 역사
3.1. 인구
5. 경제
5.1. 산업
5.2. 금융
6. 관광
6.1. 관광지
6.2. 축제
7. 교육
7.1. 공립유치원
7.2. 초/중/고등학교
7.3. 도심 공동화에 따른 학교 불균형 문제
7.4. 대학교
7.5. 특수학교 / 평생교육시설
7.6. 기타
8. 생활문화
8.1. 지역 특징
8.2. 관내기관
8.3. 의료기관
8.4. 문화시설
8.5. 스포츠
11. 기타
12. 출신 인물
1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목포 시내 전경 (2019년)
가운데가 목포 시가지, 오른쪽이 [[남악신도시|{{{#fff
남악신도시}}}]], 왼쪽은 [[영암군|{{{#fff 영암군}}}]] 삼호읍(대불 국가산업단지)이다.



목포항구다.[3]

- 이난영 노래

전라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 군산, 여수와 함께 호남 3대 항구의 하나로 개항 이후부터 항구 도시로 발전해왔으며, 호남선 철도의 종착역이자 서해안고속도로의 시점으로 호남권 교통의 시발점 역할 또한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1940년대만 해도 부산광역시, 인천광역시, 원산시와 함께 인구 7만으로 조선 4대 항구 중 하나였고, 1950년대 10만을 훌쩍 넘는 인구 증가(11만)로 한때 남한 6대 도시에 속했다. 그러나 목포항은 군산항과 함께 내해 수심이 얕아 현대적 대규모 무역항으로 쓰기에는 입지가 나쁘기도 했고 목포항을 통해주는 교통 인프라의 부실이 영향이 커서, 결국에는 해운 수요가 교통 인프라가 좋은 부산항인천항으로 집중되고 목포항은 군산항과 함께 화물 운송량이 급속도로 줄게 되었다.[4] 이 때문에 목포항에 의지하던 목포시의 경제에 큰 타격을 받았고 대도시로 성장하지 못했다. 흔히 목포시가 산업화 시절때 소외되었다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나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전라남도 행정과 정치의 중심[5]이다. 전라남도의 경제력은 여순광으로 통칭하는 동부권(여수, 순천, 광양 등)이 압도적이며 목포는 공업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도 없는 순수 소비도시이니 자체 경제력은 떨어진다. 역내 총생산을 비교해보면 목포시는 45,305억 원이지만 여수 258,706억 원, 순천 61,250억 원, 광양 100,602억 원에 달하며, 2020년 기준 재산세는 목포시는 224억원으로 여수시 507억 원, 순천시 301억 원, 광양시 279억 원에 이어 4번째다.[6] 목포 생활권에 속하는 영암군 삼호읍에 현대삼호중공업과 대불산단이 있고 영암군의 전남 내 수출액 비중은 10.4%다. 하지만 동부권의 수출비중은 80%를 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따져보든 목포의 경제력은 도무지 여순광과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도청신도시가 서부권에 올 수 있었던 게 상대적인 낙후지역이라는 점이 작용한 바가 크고, 소비도시 규모로서는 전남의 다른 도시들보다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작은 도시면적과 그에 따른 높은 인구밀도을 바탕으로 도시 인프라의 구축은 여순광에 비해 훨씬 큰 도시로 보이게 만든다. 마천루[7], 대형마트와 아울렛, 영화관 등이 다른 도시에 비하면 많은 편이다.

행정구역같은 경우에는 개항 이후 무안군에 속했던 지역을 야금야금 편입시키기는 하였으나, 그나마도 1987년 옥암리와 대양리를 끝으로 1995년 지방자치제가 본격 실시될 때 도농통합을 이루지 못해 발전의 희망이 끝나 버렸다. 면적이 서울특별시 서초구수원시 권선구와 엇비슷하다. 비수도권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이고, 전국적으로는 경기도 구리시, 과천시, 군포시, 광명시, 오산시에 이은 6번째로 좁은 시이다. 멀리 안 보고 목포 생활권인 영암군 삼호 하나가 목포시 전체 면적보다 넓다. 무엇보다 저기 나온 시들은 전부 100% 본토 면적으로 계산을 하는 내륙 도시들인데 목포시는 고하도, 율도, 달리도, 외달도 등 인구가 드문 도서지역까지 포함하고 있는 항구도시다. 즉 목포 본토의 인구 밀도만 따지면 20만 남짓한 규모의 중소도시라는게 무색해지게 수원시안양시 수준까지 올라가버리는 셈이다.

목포는 옛날 일제강점기 때부터 커온 도시라서 도시 구획이 잘 되어있다. 대성동과 유달산 아래쪽은 난개발 지역이지만 일제가 도시구획을 잡고 개발해서 그런지 목포역 남쪽과 동쪽 도시구획들이 사각형 형태로 뻗어있다. 옛날엔 목포역 근처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는데 대부분 도시가 바다를 매립한 곳이다. 나머지 구도심과 하당과 남악도 다 바다를 매립하여 이루어진 지역. 인구도 1980년 때의 수준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사공의 뱃노래 가믈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 년 원한 품은[8]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깊은 밤 쪼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쩌다 옛 상처가 새로워진다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전설적인 노래 목포의 눈물이 이 지역을 소재로 해서 만들어졌다.

법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서울특별시와 함께 가장 설치 년도가 앞선 도시이다.[9]


2. 역사[편집]


통일신라
고려
조선
1896년~
1897년~
1910년~
1914년~
1949년~
1969년~
무안군
물량군
무안군
무안현
무안군
무안현
무안부
목포부
목포부
목포시
무안군
무안군
압해군
장산현
육창현
임치현
압해현
나주목
광주목
지도군
영광군
해남현
지도군
신안군

본래 행정구역상으로는 무안군의 일부였다. 백제 때는 물아혜군(勿阿兮郡)이라고 불렀으며, 신라 경덕왕 때 무안군으로 바뀌었다. 이후 그대로 가다가 구한말에 목포가 개항하면서 도시로 발전, 무안에서 독립한다.

목포라는 이름은 후삼국시대에 최초로 등장한다. 태봉시대의 일인데 궁예 휘하의 장수였던 왕건이 태봉 수군을 끌고 목포라는 포구에 도착해 현지 호족 오다련과 정략결혼으로 맺어지고 현재 전라남도 서남부 일대를 복속하여 현 광주광역시인 후백제의 거점도시 무진주를 위협하였다(그러나 당시의 목포의 위치에 대해서는 지금의 목포시가 아니라 나주시 내라는 설도 있다).

'목포'라는 지명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앞의 목(木)을 단순히 나무라 해석해 나무가 많은 포구라서 붙었다는 설도 있고, 목화가 많이 나서 붙었다는 설, 목련이 많이 자란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이외에도 사투리나 관습적으로 부르던 지명을 한자로 음차하여 발생했다는 등 많은 설이 존재하지만 현재로서 확인할 길은 없다.

이후 목포라는 이름이 영산강 유역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 시작해 조선 태종 때 현재의 목포시 지역에 목포진(木浦鎭)을 설치하여 지명이 확정되었다. 한편 목포 일대는 무안군의 일부였으며, 고을의 행정 중심지 역할은 목포가 아닌 현 무안읍내 지역이었다.

오늘날과 같은 항구도시로서의 시작은 1897년 10월 1일 대한제국목포항 개항과 동시에 무안군이 무안부로 승격되면서이다. 형식적으로는 외국과의 조약에 의한 개항이 아닌 정부의 자발적인 개항으로써 첫 번째였다. 이때 형성된 유달동, 만호동에 해당하는 목포의 구도심은 일본 등 외국자본에 의해서 간척된 계획도시이기에 도로가 격자식으로 잘 형성이 되어있다.

1910년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무안부가 목포부로 개칭되었으며[10],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개항장(현 유달동, 만호동, 대성동, 목원동)을 제외한 목포부의 나머지 지역을 무안군으로 분리하였다.[11] 무안군청은 목포부 내에 두었다. 1932년에는 무안군 이로면의 죽교리(유달산과 뒷개라 불리는 해안지역 모두 포함), 산정리(산정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목포에서 남으로 북까지 쭉 뻗은 목포 구도심의 1/3을 차지하는 법정동), 용당리(목포시청과 목포상고 인근)를 목포부에 편입하였다. 1944년 인구 69,000명으로 당시 한반도 15대 도시 중 하나였고 38선 이남에선 7번째로 큰 도시 였다.[12]

해방 직후에는 인구가 불어났으나, 이후 중국 및 일본과의 교역이 단절된 목포는 크게 성장하지 못하였다. 이 당시 전국(남한) 6번째로 큰 도시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영산강으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토사에 의해 목포항의 수심이 얕아지는 것은 목포의 발전에 악영향을 주고 있었다. 이에 목포시는 1962년 현 동명동사거리에서 대삼학도 서측을 잇는 방조제 공사를 시작으로 하여, 삼학도 전체를 육지화시켜 외항을 건설하였다. 또한 대삼학도 북측에서 현재 제일중학교까지를 방조제로 연결하여 생긴 땅에 차관을 빌려 4차주택단지를 건설하였다. 이로 인해 삼학도는 현재까지도 공원화가 되어 있긴하나 완전 복원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삼학도의 흑역사

1963년 무안군 이로면(석현리, 대양리, 옥암리 제외)[13]이 목포시에 편입되어, 목포시의 영역이 확장되었다. 하지만 부산동래군의 면을 몇 개씩 편입하고, 서울특별시가 부근 군(당시의 광주군, 지금의 성남시, 하남시, 광주시.)의 면을 몇 개씩 편입하는 동안, 목포시는 무안군의 1개 면을, 그것도 완전히 편입한 것도 아니었다. 이로면의 잔여 지역은 삼향면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에 석현리를, 1987년에서야 대양리와 옥암리를 편입하게 된다.

1969년 무안군에서 신안군이 분군되면서, 목포시 내에 있던 기존 무안군청은 신안군청으로 전환되고(이후 압해도로 이전), 새 무안군청은 무안군 무안면(이후 무안읍)에 설치되었다.

1970년대 목포는 나름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1호광장-2호광장-3호광장으로 이어지는 광로가 이때 개통된 것이다. 이전에는 대성동-산정초등학교-전남제일고앞 작은 길-이로시장-굴다리로 이어지는 도로가 목포의 간선도로였다. 1972년에는 상동에 최초의 현대적인 공업단지가 설립되었다. 하지만 그 규모는 매우 작았고 그나마 호남고무나 행남자기와 같은 경공업 위주로 구성되었다. 1974년에는 옛 일본영사관에 있던 목포시청이 현 용당동 청사로 옮겨가고, 그 옆에는 목포마리아회고등학교가 개교하였다. 현 초원관광호텔 자리에 있던 경찰서, 소방서와 기업은행 맞은 편 교회 자리에 있던 법원 등도 이 시기에 용당동 청사로 이전하였으며, 현 유달산우체국 자리에 있던 목포우체국과 유달산 기슭에 있던 MBC가 각각 1987년, 1989년에 용당동으로 이전을 완료한다. 비슷한 시기에 시역을 넓혀나간 다른 경쟁도시들이 이미 1970년대 중반에 이러한 변화를 마친 반면, 목포는 이러한 변화를 1980년대 말에서야 마무리를 한 것이다.

그렇기에 목포는 1990년대 초반까지 별 다른 변화없이 전혀 발전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하지만 1989년 노태우 대통령 지시에 의해 목포와 마주한 영암군 삼호에 대불공단이 세워지고, 1995년 한라조선소가 건설되면서 도시의 정체된 발전을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993년에는 20년 이상 끌어오던 하당지구 개발이 완료되었고, 하당지구는 목포의 대표적인 신도심으로 성장하였다. 2001년에는 서해안고속도로 전면개통, 2004년에는 KTX가 목포까지 운행되면서 수도권과의 이동시간이 대폭 단축되었다. 2006년에는 인접한 무안군 삼향면 남악신도시에 전남도청이 개청하고 2007년에는 영암에 있던 목포공항을 폐쇄하고 무안국제공항이 개항하게 되었다.

항구도시답게 대한민국 해군의 주요 기지 가운데 하나였고, 한국전쟁 초반에 대통령이었던 이승만과 정부 인원들이 이곳을 통해 해군 함정을 타고 부산으로 철수했다. 휴전 이후에도 해군이 계속 주둔해 목포해역방어사령부를 제3함대사령부 휘하로 두고 있다가, 2008년 3함대 사령부가 강 건너 삼호읍으로 옮겨 오면서 목방사를 해체했다.


3. 지리[편집]



도시구조는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고, 주변에는 군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다.


3.1. 인구[편집]


파일:목포시 CI_국문.svg
전라남도 목포시 인구 추이
1896년 13도 개편 후 전라남도 무안군, 지도군
1897년 목포항 개항, 무안군무안부 승격
1910년 무안부목포부 개칭
1911년 80,925명}}}
1914년 종래 목포부에서 항구 지역만 목포부로 분리, 나머지 지역과 지도군을 합해 무안군 관할로 함
1915년 12,782명}}}
1920년 16,701명}}}
1925년 25,762명}}}
1930년 31,817명}}}
1935년 59,046명}}}
1940년 69,183명}}}
1943년 72,981명}}}
1949년 목포부목포시로 개칭
1949년 111,128명}}}
1955년 113,492명}}}
1960년 129,650명}}}
1966년 162,166명}}}
1969년 무안군에서 신안군 분리
1970년 177,669명}}}
1975년 192,888명}}}
1980년 221,754명}}}
1985년 236,038명}}}
1990년 243,035명}}}
1995년 239,423명}}}
2000년 245,492명}}}
2005년 남악신도시 조성과 전라남도청 이전
2005년 242,988명}}}
2010년 245,422명}}}
2015년 238,382명}}}
2020년 224,044명}}}
2022년 1월 218,700명}}}
{{{-2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50만 명, 참고용으로 무안군, 신안군(지도군) 인구를 그래프에 포함(인구수는 표기하지 않음)
1966-1990: 통계청 인구총조사, 1995-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4. 교통[편집]



도로와 철도 교통 이용이 모두 괜찮은 편이다. 서해안고속도로호남선 철도의 종점이며, 전남 서남해안권 도서지역으로 가는 여객선의 모항이 된다.


5. 경제[편집]



5.1. 산업[편집]


어항이자 항구도시였던 과거의 영화와는 달리, 현재의 목포시는 소비도시로서의 정체성이 강하다. 물론 과거보단 못하지만 일정 규모의 수산업은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목포시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웃 영암군 삼호읍에 있는 대불공단과 무안군 삼향읍에 있는 전남도청 및 관련 기관들이다. 문제는 두 곳 모두 행정구역상으로 목포시 관할이 아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목포시의 재정에 도움을 주는 것은 미비하며[14] 근무자와 그 가족이 목포 혹은 해당 지역에 거주하면서 파생되는 소비 활동 정도에 만족해야 한다는 점이다. 거기에 도내 유관기관으로는 광주에서 살면서 출퇴근하는 사람도 많아서 효과가 크지는 않다. 그리고 목포시의 인구가 무안군에 위치한 남악신도시로 이동하면서 점점 도심이 구도심(목포역 인근)에서 하당신도시로, 하당신도시에서 남악으로 이동하고 있다. 의외로 한국은행의 지역 본부가 있는 도시 중에 한 곳으로 IMF 위기 때 통폐합 예정이었으나 도청이 옮겨올 예정이라는 명목으로 살아남았다. 물론 당시 폐점이 추진되던 다른 지점들도 모두 부활하긴 했지만 구미와 순천 지점이 나중에 통폐합 된 것을 보면 도청을 유치하여 얻은 소득이 있다.

목포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회사는 영암에 있는 현대삼호중공업으로,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목포에서 생활한다. 이들은 대부분 하당신도심에서 물건과 서비스를 소비하는데 조선업 경기에 따라 하당지역 유흥가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 목포와 마주보고 있는 대불공단 또한 현대삼호중공업과 연계된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여기에 목포시내에 산재한 중소형 조선소까지 포함하면 조선업이 목포를 먹여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래 일제강점기에는 항구도시의 이점을 바탕으로 경공업이 발달하였고 광복 후에도 이런 경향은 이어졌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목포의 향토기업으로 조선내화, 보해양조, 행남사가 있는데 현재 이들 기업이 목포에서 미치는 영향은 없거나 매우 미미하다. 그 외에 한국제분 등의 기업이 목포에 본사를 두고 있었으나 현재 상법상 본사를 목포로 하는 기업은 보해양조와 행남사 두 곳이다.

조선내화는 1994년 광양으로 아예 본사를 이전하였는데 옛 공장 부지가 제법 넓어서 그 활용방안이 주목 받았으나 시민단체의 반발과 창업주 일가에서 보존을 희망해 옛 공장이 존치되어 있다. 보해양조는 목포역 앞에 본사를 두고 있는데 창업 당시에 사용하던 부지 대부분은 상가로 전용되어 보해상가라는 이름으로 남아있고 보해양조가 쓰는 공간은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다. 1991년 장성군에 공장을 신설한 후 대부분의 생산은 그 곳에서 이루어지며 옛 산정동 공장부지는 라송센트럴카운티 아파트가 되었다. 행남사는 목포시 연산동 산정농공단지에 본사를 두고 있으나 목포에 남아 있는 본사와 공장부지는 상당히 작다. 본래 상동 호반리젠시빌 자리에 본사와 생산공장이 있었고 산정동 종원나이스빌 자리에 생산공장이 있었으나, 2002년 여주시에 세계 최대 본차이나 단일 생산공장을 준공하여 대부분의 제품은 그 곳에서 생산되고 있다. 서울사무소에서 대부분의 업무가 이뤄지나 목포 본사에서 주주총회 등이 개최되고 있다. 1988 서울 올림픽 공식 지정 도자기 등 한 때는 한국도자기와 함께 잘 나가는 회사였으나 2015년 창업주 일가가 경영권을 상실한 이후 소유주가 여러차례 바뀌다가 급기야 상장폐지 되기에 이른다. 목포에 본사를 두었던 한국제분은 1994년 본사를 서울 이전하였고, 목포 공장은 계속 유지되었으나 삼학도 복원 사업의 여파로 당진으로 이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조그룹에 피합병되었다. 어르신들에게 가장 유명한 목포 소재 기업은 구. 삼학양조로 1호광장에 본사와 공장이 위치했었으나 1973년 세무조사 후 사실상 폐업 조치된다. 삼학양조의 명성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이 명성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악용되어 삼학양조를 재건한다면서 경제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여러차례 발생했다.

과거 목포의 대표적인 산업단지는 삼학도와 석현동 공단이었다. 석현동에 위치한 목포공업단지는 1973년 조성되었으나 80년대까지 목포 경제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던 호남고무와 남양어망이 90년대 초중반 도산하면서 공동주거지역으로 용도가 변경되어 전부 아파트로 바뀌었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삼양사 목포공장이 2018년에 철거되었고 호남선 철길 맞은편에 있던 청호시장 쪽 소규모 공장들도 대부분 사라졌다.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공장은 목포 시내버스 태원여객의 계열사인 태원자동차정비공장이다. 삼학도에도 한국냉장 공장시설을 포함한 산업시설이 있었는데 2000년부터 삼학도 복원사업에 들어가 2011년 한국제분의 이전으로 공장은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 일부 시설을 이전하지 못한 상황이다.

현재 목포 시내에 위치한 산업단지는 산정농공단지, 삽진산업단지, 대양산업단지 세 곳으로 각각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조성되었으며 세 단지가 고하대로를 따라 나란히 조성되었다. 하지만 세 개의 산업단지 모두 규모가 작아 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산정농공단지는 규모가 작아 농공단지로 지정되었을 뿐 단지 바로 맞은편이 아파트촌으로 농공단지라는 이름과는 영 거리가 멀다. 입주한 업체들도 C&중공업, 한국알루미나 등의 회사가 있어 식품을 제조하는 삼진물산을 제외하면 농공단지와는 거리가 있는 편이다. 삽진산업단지는 소형 조선소와 소형 자동차정비공장들이 입주해 있으며, 최근 세라믹산업단지도 함께 조성하였으나 아직 활성화 되지 못한 상황이다. 대양산업단지는 현재 분양 및 입주중에 있는데 역시 소규모 공장들이 들어설 예정이다.

2차 산업의 경우 인근 영암군과 마찬가지로 조선산업이 발달하였다. 삽진산업단지 등에 중소형조선소가 분포하고 있으며, 조선소와 그 하청업체들로 공업기반이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거듭하는 조선업계 불황으로 인해 목포 인구는 한동안 정체였다. 최근에는 다시 조선업이 호황이라서 목포 경제도 어느정도는 다시 살아날 것으로 전망되며, 목포 남항에 친환경선박클러스터를 조성할 예정이다.[15] 조선 산업 말고도 납석이 많이 나는 전남 서부권의 자원특성을 활용하기 위해 세라믹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세라믹산업종합지원센터 등이 들어서는 등 세라믹 산업도 발달시키려고 하고 있다.[16] 다만 세라믹산단 자체는 아직 미분양률이 제법 높은 편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목포는 과거 어항이자 항구도시였다. 때문에 목포시에서는 수산식품수출단지를 조성해 과거의 영화를 어느정도 되찾으려고 하고 있다.[17] 결론적으로 목포시의 2차산업 기반은 조선업, 식품업으로 요약된다고 할 수 있다.

농업은 비중이 낮은 편. 주요 농산물로는 , 쌀보리, 맥주보리, , 참깨, 들깨, 느타리버섯 등이 있다.


5.2. 금융[편집]


목포시에 위치한 금융기관 [괄호]
국가기관
목포우체국 (12)
제1금융권 [괄호]
중앙은행
한국은행 (1)
국책은행
한국산업은행 (1)
중소기업은행 (1)
특수은행
수협은행 (1)
농협은행 (7)
시중은행
신한은행 (4)
우리은행 (1)
SC제일은행 (1)
하나은행 (1)
국민은행 (2)
지방은행
광주은행 (4)
지점이 없는 제1금융권
한국수출입은행[광주]
한국씨티은행[광주]
대구은행[대전]
부산은행[대전]
제주은행[* 거리상으로는 부산 지점이 육지에서 가까운 지점이다. 대중교통(SRT) 이용시는 서울지점이 내륙 지점중에서는 가장 가깝다. 제주도를 기준으로는 서문지점이 가장 가깝다.]
전북은행[*고창 지점이 가장 가깝다.]
경남은행[하동]
제2금융권(상호금융) [괄호]
농업협동조합
목포농협 (10)
목포원예농협 (5)
목포무안신안축협 (2)
한국양계농협 (2)
수산업협동조합
목포수협 (6)
신안군수협 (2)[* 본점이 목포시에 위치해 있다.]
근해유망수협 (1)
새마을금고
목포동부새마을금고 (1)
목포중앙새마을금고 (4)
국민새마을금고 (2)
산정새마을금고 (2)
삼학새마을금고 (2)
신용협동조합
목포우리신용협동조합 (1)
목포신용협동조합 (4)
목포대성신용협동조합 (3)
용해신용협동조합 (2)
꿀벌신용협동조합 (3)
북교신용협동조합 (2)
산림조합
신안군산림조합 (1)
상호저축은행(상호금고)
삼호저축은행 (1)
JT저축은행 (1)
제2금융권(금융투자) [괄호]
종합금융사 [괄호]
우리종합금융 (1)
증권사 [괄호]
대신증권 (1)
미래에셋대우 (1)
NH투자증권 (1)
한국투자증권 (1)
KB증권 (1)
하이투자증권(1)
하나금융투자(1)
제2금융권(보험사) [괄호]
생명보험사 [괄호]
교보생명 (1)
삼성생명(1)
한화생명(2)
흥국생명(1)
동양생명 (1)
KDB생명(1)
신한생명(1)
미래에셋생명 (1)
ABL생명 (1)
손해보험사 [괄호]
현대해상 (1)
삼성화재(1)
한화손해보험(1)
흥국화재(1)
KB손해보험 (1)
NH농협손해보험 (1)
롯데손해보험(1)
메리츠화재(1)
DB손해보험(1)
SGI서울보증보험(1)
제2금융권 (여신전문금융회사) [괄호]
캐피탈 [괄호]
현대캐피탈 (1)

  • 아래는 목포시에 위치한 제1금융권 금융기관 및 우체국 금융점포들의 상세정보로 순서는 지점 개설 역사순.

SC제일은행
Standard Chartered Bank Korea

지점명
개점일자
이력
위치
비고
목포
1906년 12월
* 농공은행 목포지점 (1906~1918)
* 조선식산은행 목포지점 (1918~1954)
* 한국저축은행 목포지점(1954~1958)
* 제일은행 목포지점 (1958~2005)
* 한국스탠다드차타드제일은행 목포지점 (2005~2012)
*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 목포지점 (2012~2015)
* SC제일은행 목포지점 (2015~현재)
옥암로 83 (상동)
목포시 최고(最古)은행
1대 목포시 금고 은행
위 지점이 관리하는 ATM
한국은행
목포본부


영산로 109 (명륜동)
(외부인 이용가능)
위 지점에 통합된 지점/출장소
지점명(행명)
존속일자
이력
위치
목포(조선저축은행)
1936년 11월 16일 ~
1947년 6월 30일
* 광주지점으로 업무 일부 이관 후 폐쇄 (1947년)
본정1정목 3번지
(현. 복만동)

유달출장소
2003년 5월 26일 ~
2018년
목포지점의 기존 위치에 출장소 개설
행복동2가 2번지


SC제일은행 목포지점은 목포시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 지점으로 1906년에 목포 개항 후 약 10년 뒤에 개설되어 오늘날 하당에 이전하여 100년이 넘도록 지속되어 영업하고 있다. 조선식산은행으로 개편 뒤, 광복 후에는 산업은행이 인수하지 않고, 제일은행이 승계하여 영업을 계속하였다. 원래는 제일은행의 전신인 조선저축은행[18]이 1936년에 목포에 지점을 내었지만 광복 후 폐점되었다가 다시 한국저축은행으로 개편된 시절에 인수한 것이다. 조선식산은행 시절에는 제1대 목포부 금고를 맡기도 했으며, 유달출장소 개설 후 하당 이전 전까지는 조흥은행 목포지점과 목포우체국(현.유달산우체국)과 더불어 선창의 터줏대감으로 불리기도 했다.

목포금융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과거에 비해서는 위세와 이용객 및 영업이 많이 줄었지만 한때는 광주지점의 영업실적도 넘을 만큼 위력이 컸다.(제일은행30년사 본문 기준) 그리고 위 지점의 건물이 행복동2가 2번지에 90년대말까지 남아서 있었으나 1997년 목포지점을 신축을 위한 철거로 인해서 사라졌다. 막상 신축 후 10년도 사용하지 않고 2003년 하당으로 이전했다.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밑의 조흥은행 목포지점처럼 등록문화재로 지정받았을 지도 모른다. 연식도 조흥은행 목포지점보다 더 오래되었기도 하고 90년대 말에서야 철거된 건물인데도 사진 자료조차 거의 남아있지 않아 기억에만 의존해야 해서 더욱 안타까운 부분이다.

신한은행 (구. 조흥은행)
Shinhan Bank (Choheung Bank)

지점명
개점일자
이력
위치
비고
목포
1920년 2월
* 호남은행 목포지점 (1920~1939)
* 동일은행 목포지점 (1939~1943)
* 조흥은행 목포지점 (1943~2006)
* 신한은행 목포지점 (2006~현재)
영산로 118 (호남동)
2대 목포시 금고 은행
목포하당
1996년 4월
* 신한은행 하당 출장소 (1996~2002)
* 신한은행 하당지점 (2002~2016)
* 신한은행 목포하당금융센터 (2016~현재)
백년대로 352 (상동)

목포법원
1989년 3월 30일
* 조흥은행 목포법원출장소 (1995~2006)
* 신한은행 목포법원출장소 (2006~현재)
정의로 29 (옥암동)

목포대학교
1995년 4월 8일
* 조흥은행 목포대학교지점 (1995~2006)
* 신한은행 목포대학교지점 (2006~현재)
무안군 청계면 도림리 (목포대학교내)

위 지점이 관리하는 ATM
국제여객선터미널

해안동1가 10-6
목포지점 관리
이마트 목포점

옥암로 138 (옥암동)
(외부인 이용가능)
하당지점 관리
롯데마트 목포점

원형서로 15 (상동)
(외부인 이용가능)
하당지점 관리
청호시장

석현로 18-2 (석현동)
하당지점 관리
위 지점에 통합된 지점/출장소
지점명(행명)
존속일자
이력
위치
롯데마트목포
1995년 4월 8일 ~
미상

원형서로 15 (상동)

목포역
1996년 7월 13일 ~
2008년
구. 신한은행 목포지점
명륜동 3

목포공항
1994년 ~
2008년
구. 조흥은행 ATM
영암군 삼호읍 용당리


위에 SC제일은행 목포지점을 이은 목포 금융의 터줏대감으로, 1920년에 향토은행인 호남은행 목포지점으로 개점하였고 본점의 역할을 하였다. 후에 동래은행 등 같은 민족계자본은행을 지속적으로 합병하고 영업한 결과 중형은행급으로 전남(장성, 담양, 광주, 순천 지점)은 물론 부산경남지역까지 지점이 있을 정도로 준수한 편이었으나, 총독부에 의해서 동일은행으로 강제합병 후 동일은행이 조흥은행으로 편입되면서 2006년 조흥은행이 신한은행으로 행명을 변경할 때까지 조흥은행의 역사를 함께 하였다. 신한은행으로 개편뒤에도 2년이 넘도록 영업하였으나, 기존 위치가 중심도로에서 멀다는 점이 지적되어 목포역 근처인 목포역지점(구. 신한은행의 목포지점)과 통합을 결정 후 목포지점으로 재출범하였다. 호남은행 시절부터 조흥은행 시절까지 목포시 금고를 맡았으며, 1961년 기업은행 출범후 기업은행에 넘겨주게 된다. 목포대학교, 법원 등 목포시에 위치한 많은 공공기관들의 주거래 은행을 맡았거나 맡고 있으며, 그 만큼 조흥은행 시절부터 목포시에 있어서는 중요한 은행이었고 시민들도 많이 쓰는 은행으로 시중은행 중에서는 가장 지점이 많은 은행이기도 하다.

2022년 1월에 남악신도시에 있는 남악지점이 목포하당금융센터로 통합이전하였다.

한국은행
The Bank of Korea

지점명
개점일자
이력
위치
비고
목포본부
1950년 6월 12일
* 한국은행 목포지점 (1950~2002)
* 한국은행 목포본부 (2002~현재)
영산로 109 (명륜동)

위 지점에 통합된 지점/출장소
지점명(행명)
존속일자
이력
위치
해남분실
1979년 9월 25일 ~
1999년 6월 30일

해남군 소재


한국은행이 설립될 때 같이 개업한 지점으로 목포시의 한국 금융에서의 위치를 보여주는 부분이자 지점이기도 하다. 본래는 한국은행 목포지점으로 개업했으나, 후에 직제변경으로 목포본부로 개편되었다. 원래는 보광동1가4(현.목포요양병원)에 있었다가 지금의 목포역 앞으로 이전한 것인데 원래는 이 자리가 목포공업고등학교 자리로 공업고가 유달경기장 부근으로 이전 후에, 목포시청이 용당동 이전 전에 잠시 임시로 쓰인 부지에 건립한 것으로, 전국의 여타 한국은행들과 비슷한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해남군에 해남분실(구.해남사무소)가 있었다가 외환위기 직후 몸집 줄이기로 폐쇄되었다.

IBK기업은행
Industrial Bank of Korea

지점명
개점일자
이력
위치
비고
목포
1961년 8월 1일
* 중소기업은행 목포지점 (1961~현재)
옥암로 29 (상동)
3대 목포시 금고 은행
위 지점이 관리하는 ATM
구. 유달출장소

복만동 8-1

죽교동

수문로 109

북항동

산정동 620-35번지
24시간
기독병원

백년대로 303
목포지점 관리
광남개발 앞

산정로 59
24시간
목포시청

양을로 203
24시간
목포연산

연산로 197
24시간
동부시장입구

산정로 172
24시간
목포아름다운병원앞

백년대로 267
24시간
목상고입구

동부로 1
24시간
문태고교 건너편

용당로 147
24시간
용해하이츠 앞

용당로 269
24시간
은하맨션 건너

대성동 212-3
24시간
하당비파1차 건너

하당로 233-1
24시간
위 지점에 통합된 지점/출장소
지점명(행명)
존속일자
이력
위치
유달출장소
2001년 ~
2020년

복만동 8-1

목포시청출장소
1984년 ~
2020년

양을로 203

목포연산출장소
2003년 ~
2020년

연산로 197


목포 금융의 맹주이다. 50년이 넘도록 목포시금고를 담당한 매우 향토성이 짙은 은행으로, 그만큼 기업은행이 목포시에 투자한 곳은 굉장히 많다. 유달산 가로등, 고하도 조명, 낙조대 등. 건립비석을 보면 하나같이 기업은행 목포지점장의 이름이 새겨져 있을 정도이다. 1961년에 중소기업은행이 창립하면서 같이 세워졌으며 그 후 정부에 의하여 목포시금고로 지정되었다.[19] 목포시청이 구 일본영사관과 명륜동에 위치할때는 목포지점 또한 현재의 유달출장소 자리(현재는 목포시가 매입하여 사용하고 있다.)에 있었던 지라 굳이 출장소를 개설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가까워서 목포시청 출장소는 목포시청이 용당동으로 이전 후에 세워진다.

이외에도 목포시청, 대성동사거리, 용해동주민센터, 구 청호시장, 2호광장, 영흥중고입구 정류장 옆 등. 시내 곳곳에 ATM이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우체국에서도 통장/카드로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목포시에 거주할 일이 있으면 농협과 기업은행 통장을 만드는 것이 훨씬 좋다.2호광장과 3호광장 사이 500m 에는 산정동우체국, 동부시장 앞, 목상고 입구, 목포우체국 총 4곳의 ATM이 있을 만큼 기업은행을 이용하기 편한 도시구조이다. 참고로 2019년 이전에는 구.홍익금고 앞에도 있어서 총 5곳의 ATM기가 있었다. 왠만한 사람들도 기업은행 계좌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고, 사업체도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국민은행
Kookmin Bank

지점명
개점일자
이력
위치
비고
목포역
1963년 2월 1일
* 국민은행 목포지점 (1963~2001)
* 통합 국민은행 목포지점 (2001~2022)
* 통합 국민은행 목포역점 (2022~현재)
영산로 101 (명륜동)

목포
1995년 5월 17일
* 한국주택은행 하당지점 (1995~2001)
* 통합 국민은행 하당종합금융센터 (2001~2022)
* 통합 국민은행 목포종합금융센터 (2022년~현재)
백년대로 310

위 지점에 통합된 지점/출장소
지점명(행명)
존속일자
이력
위치
구. 한국주택은행 (1967~2001)
Former Korea Housing Bank

목포(한국주택은행)
1977년 11월 1일 ~
2001년

호남동 10-50
국민은행 목포지점과 통합
구. 국민은행 (1963~2001)
Former Korea Citizen Bank

용당동(국민은행)
1990년 6월 27일 ~
2012년
용당동 1095-26
국민은행 목포지점과 통합
하당출장소(국민은행)
1997년 12월 2일 ~
2001년

상동 848-3
주택은행 하당지점과 통합

한국무진(지금의 상호금고 또는 사채)의 목포지점으로 개설되었다가, 1963년 국민은행법에 의하여 국민은행 목포지점으로 승격출범되었다.(제1금융권 편입) 원래는 오거리 근처인 상락동2가에 위치했다가 우리은행이 하당으로 통합 이전하면서 그 자리를 차지하여 목포역 앞에 목좋은 곳으로 이전하였다.[20] 반면 하당지점은 원래 국민은행 지점이 아니라, 한국주택은행 하당지점으로, 목포지점이 국민은행 중심으로 통합한 반면에 하당지점은 주택은행 중심으로 통합하였다. 건물도 산업은행 바로 옆에 건물이다. 주택은행 목포지점은 KT 맞은편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옥에 위치해 있었다. 그 외에 옛 국민은행 용당동 지점이 용당동 MBC 맞은편에 위치해 있었다가 용당동 금융가의 쇠퇴로 인해서 시중은행들 중 용당동에서 마지막으로 철수하였다. 두 지점 다 주택은행 시절 코드번호를 사용한다. 그러나 목포지점이 2022년 1월 22일에 하당에 있는 하당종합금융센터로 통폐합을 해 철수예정이 되어있었지만 출장소로 전환하여 목포역점으로 운영하기로 하였다.[21] 하당종합금융센터는 목포종합금융센터로 변경되었다.

농협은행
Nonghyup Bank

지점명
개점일자
이력
위치
비고
목포신안시군지부
1969년 5월 1일
* 농협중앙회 목포시신안군지부 (1969~2013)
* 농협은행 목포신안시군지부 (2013~현재)
후광대로 114 (옥암동)

목포2호광장
1970년 5월 5일
* 농협중앙회 산정동지점 (1970~1980)
* 농협중앙회 목포2호광장지점 (1980~2013)
* 농협은행 목포2호광장지점 (2013~현재)
영산로 227

목포중앙
1974년 7월 1일
* 농협중앙회 죽교동지점 (1974~2012)
* 농협중앙회 목포중앙지점 (2012~2013)
* 농협은행 목포중앙지점 (2013~현재)
삼일로 10

자유시장
1974년 8월 2일
* 농협중앙회 자유시장지점 (1974~2013)
* 농협은행 자유시장지점 (2013~현재)
자유로 121-1

동명동
1975년 12월 3일
* 농협중앙회 동명동지점 (1974~2013)
* 농협은행 동명동지점 (2013~현재)
산정로 18-1

신목포
1997년 1월 15일
* 농협중앙회 신목포지점 (1997~2013)
* 농협은행 신목포지점 (2013~현재)
비파로 34

목포시청
2007년 12월 24일
* 농협중앙회 목포시청출장소 (2007~2013)
* 농협은행 목포시청출장소 (2013~현재)
비파로 34
출장소
위 지점에 통합된 지점/출장소
지점명(행명)
존속일자
이력
위치
구. 축협중앙회 (1981~2000)
Former Korea Federation of Livestock Cooperatives

목포(축협중앙회)
1983년 10월 1일 ~
2000년

옥암동 968
현재 목포무안신안축협 지점이 위치

전국에서 농협은행과 단위농협을 포함한 갯수가 가장 많은 곳이 목포시이다. 그 만큼 농협을 쓰는 사람도 정말 많다. 원래는 농업협동조합중앙회가 1961년에 창립하면서 시군지부를 설치할때, 유독 목포시지부만이 설치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무안군청이 당시에는 목포시에 있었기 때문에 무안군 지부가 목포시내에 이미 설치 되었기 때문이다. (구 신안군청 자리가 무안군청이었다.) 그 후 무안군청이 면성면(현.무안읍)으로 이전하면서 1969년에 목포시신안군지부로 처음 설치되었고, 차례로 2호광장, 자유시장, 동명동 지점이 개설되면서 세를 확장하였다. 축협중앙회는 목포지점이 있었다가 2000년 농축협 간 통합으로 인해서 폐점하였다.

광주은행
Kwangju Bank

지점명
개점일자
이력
위치
비고
목포
1971년 3월 10일
* 광주은행 목포지점 (1971~현재)
영산로 93 (명륜동)
4대 목포시 금고
용당동
1988년 5월 4일
* 광주은행 용당동지점 (1982~현재)
용당동

하당
1996년 10월 29일
* 광주은행 하당지점 (1982~현재)
하당

북항
2010년 2월 10일
* 광주은행 북항지점 (2010~현재)
북항


광주은행의 주 영업구역이 광주전남이니 전라남도 목포시에 지점을 설치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광주은행을 쓰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오히려 기업은행신한은행을 쓰는 사람이 더 많을 지경. 실제로 광주은행이 기업은행을 제치고 시금고로 지정되자 많은 시민들이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다른 지방은행도 마찬가지지만 광주은행 역시 광주권에 지점이 집중되어 있고 목포에는 4개밖에 없으며 목포 인근에는 거의 없기 때문에 광주에 연고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딱히 만들 필요가 없다.

하나은행
Hana Bank

지점명
개점일자
이력
위치
비고
목포
1971년 9월 9일
* 서울은행 목포지점 (1971~1976)
* 서울신탁은행 목포지점 (1976~1995)
* 서울은행 목포지점 (1995~2002)
* 하나은행 목포지점 (2002~2016)
* KEB하나은행 목포금융센터 (2016~2020)
* 하나은행 목포금융센터 (2020~현재)
백년대로 319 (상동)

위 지점이 관리하는 ATM
이마트 목포점

옥암로 138 (옥암동)
목포금융센터 관리
위 지점에 통합된 지점/출장소
지점명(행명)
존속일자
이력
위치
구. 한국외환은행 (1969~2016)
Former Korea Exchange Bank

목포
1980년 ~
2018년
* 한국외환은행 목포지점 (1980~2016)
* KEB하나은행 목포하당지점 (2016~2018)
옥암로 68(옥암동)
구. 외환은행 목포지점
산정출장소
2000년 ~
2006년

영산로 243(용당동)

구. 서울은행 (1959~2002)
Former Seoul Bank

목포중앙출장소
2001년 ~
2005년

영해동1가 11-1
구. 서울은행 목포지점
용당동
1989년 ~
2004년

영산로258번길 1
구. 서울은행 용당동지점

하나은행 목포지점은 본래의 1991년에 창립한 하나은행의 지점이 아니라 서울은행이 1971년에 세운 목포지점을 모태로 하고 있다. 후에 한국신탁은행과 합병하면서 서울신탁은행 목포지점으로 변경하였고, 다시 서울은행으로 다음에 하나은행과 합병하면서 하나은행 목포지점으로 변경되었으며 외환은행까지 잡아먹고 목포금융센터로 변경되었다. 서울은행은 또한, 목포시내 영업 확장에 큰 관심을 두어서 하당이 없던 시절에 용당동까지 지점을 설치하였으며 이 기반으로 많은 고객을 유치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한국상업은행한일은행보다 목포시 입성시기가 10년 정도 빨라서 지금도 왠만큼 쓰는 사람이 많다. 하나은행 목포금융센터의 사용고객의 50%는 서울은행, 나머지는 외환은행 출신 계좌들이다.

외환은행은 1980년에 목포지점을 최초로 2호광장에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기업금융에 있어서는 목포에서는 신성불가침이었다. 한라중공업의 주거래가 외환은행이었을 만큼 많은 노동자들이 외환은행을 이용하였고, 2호광장에 있었던 시절에는 동부시장의 일부 상인들과 소상공인들도 물론 이용하였기 때문에 용당동 시민들 또한 서울은행과 마찬가지로 외환은행을 많이 이용하였다. 산정출장소는 목포지점이 하당으로 이전 후 대책으로 남겨둔 지점으로 6년이 지나 폐쇄된다.

현재, 하나은행 목포금융센터는 전국은행연합회 전산상으로는 개점일자가, 서울은행 용당동지점 상으로 되어 있다. 쉽게 말해, 하나은행 목포금융센터는 이 둘을 먹어 손 안대고 코 푼격이다.

우리은행
Woori Bank

지점명
개점일자
이력
위치
비고
목포
1982년 12월 28일
* 한국상업은행 목포지점 (1982~1998)
* 한빛은행 목포지점 (1998~2002)
* 우리은행 목포지점 (2002~2015)
* 우리은행 목포금융센터 (2015~현재)
백년대로 360 (옥암동)

위 지점에 통합된 지점/출장소
지점명(행명)
존속일자
이력
위치
구. 한일은행 (1932~1999)
Former Hanil Bank

목포(한일)
1983년 10월 1일 ~
2000년

무안동 8-2

하당
1996년 3월 10일 ~
2015년
* 한일은행 하당지점 (1996~1998)
* 한빛은행 하당지점 (1998~2002)
* 우리은행 하당지점 (2002~2015)
옥암동 968


우리은행 목포지점은 본래 한국상업은행 목포지점으로 1982년에 개점하였다. 우리은행의 오랜 역사에 비해서 상업은행이 들어선 시기가 굉장히 느린데 이는, 조흥은행이 목포에서의 위세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상업은행 목포지점은 외환위기 직후 한일은행 목포지점과 통합하였으며, 통합 전 상업은행은 1호광장 구.교보빌딩 맞은 편에 있었고 한일은행은 YMCA 맞은편에 있었다. 잠시 상업은행을 통합된 지점으로 이용하다가 목포역 앞 LG빌딩이 완공되면서 한빛은행 목포지점으로 사용했다. 하당지점은 당시에 상업은행의 하당지점이 없었기 때문에 한일은행 하당지점이 한빛은행 하당지점으로 바뀌었다가, 우리은행으로 영업을 지속하였다. 2015년에 목포지점이 건물에서 쫓겨나면서[22] 하당지점과 통합하여 목포금융센터로 변경되었다.

한국산업은행
Korea Development Bank

지점명
개점일자
이력
위치
비고
목포
1989년 7월 12일
* 한국산업은행 목포지점 (1989~현재)
백년대로 306 (상동)


많은 산업은행 지점들이 조선식산은행을 모태로 하지만, 조선식산은행 목포지점은 제일은행에 인수당하고 목포에서의 산업은행은 산업은행이 한참 점포 개설을 할 때인 89년에 개점하였다. 대불공단의 몇몇 기업들이 산업은행과 거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지속되는 지점으로, 현대삼호중공업보해양조등의 채권은행을 맡고 있어 개인보다는 기업 금융이 좀 더 많은 편이다. 원래는 지금 시내의 KT목포지사 건녀편이자, 한국가스안전공사의 옆 건물에 위치하였으나, (ABL생명이 있는 곳이다.) 2000년대 초반 하당으로 이전하였다. 365코너는 설치되어 있지 않다.

수협은행
Suhyup Bank

지점명
개점일자
이력
위치
비고
목포
1992년 2월 13일
*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 목포지점 (1992~2016)
* 수협은행 목포지점 (2016~현재)[23]
신흥로 4


수협은행은 1992년에 남교동에 목포지점을 최초로 설치하면서 시작되었다. 목포수협이 수산업협동조합이 창립할 때부터, 있었던 반면에 수협중앙회는 상당히 늦게 들어온 편이다. 2015년에 하당으로 이전하였다.

전남지방우정청
Korea Post

국명
개점일자
이력
위치
비고
목포
1897년 12월 29일
* 무안우체사 (1897~1905)
* 목포우편국 (1905~1950)
* 목포우체국 (1950~현재)
영산로 288

목포창평동
1912년 12월 3일
* 목포창평정우체국 (1912~1948)
* 목포창평동우체국 (1948~현재)
수문로20번길 10

목포산정동
1961년 12월 25일
* 목포산정동우체국 (1961~현재)
산정로 162

목포양동
1967년 12월 13일
* 목포양동우체국 (1967~현재)
북항로 30

목포용해동
1985년 10월 2일
* 목포용해동우체국 (1985~현재)
양을로 220

목포유달산
1987년 7월 1일
* 목포유달산우체국 (1987~현재)
영산로 33

목포삼학도
1989년 12월 21일
* 목포삼학도우체국 (1989~현재)
동명로 10

목포죽교동
1991년 11월 20일
* 목포죽교동우체국 (1991~현재)
원산로 39

목포석현동
1992년 10월 15일
* 목포상동우체국 (1992~2009)
* 목포석현동우체국 (2009~현재)
영산로 674

목포하당동
1994년 12월 26일
* 목포하당동우체국 (1994~현재)
비파로 101

목포연산동
1996년 12월 9일
* 목포연산동우체국 (1996~현재)
원산중앙로 98

목포옥암동
2002년 12월 2일
* 목포옥암동우체국 (2002~현재)
통일대로 98

지점명
존속일자
이력
위치

목포순라선내
1904년 ~
1934년

목포 순라선 내
폐국
목포남교동
1928년 ~
1987년

남교동
남교동우편취급소로 변경
목포대성동
1991년 ~
2015년

양을로 59
양동우체국으로 통폐합
목포과학대학
? ~
1998년

목포과학대학 내
폐국
목포해양대학교
? ~
2007년

목포해양대학교 내
폐국

사실 우체국은 제1금융권 분류에 속하지는 않으나 편의상 기재되어 있다. 현 유달산우체국 자리에서 시작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한국씨티은행을 제외하고는 모두 있으며 가장 가까운 지점은 광주로, 목포에서의 거리를 생각하면 그렇게 먼 편은 아니다. 사실 씨티은행과 제휴되어 있는 우체국에서도 이용할 수 있으니, 크게 걱정은 안해도 될 판이다. 목포시 금융가는 크게 3가지로 변화 되었는데, 선창(1단계)-시내(2단계)-하당(3단계)로 구분되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6. 관광[편집]




광주광역시처럼 빛의 도시를 목표로 한다고해서 불꽃놀이를 자주 한다든지, 유달산에 가로등 설치 같은 삽질을 하고 있다. 축제한답시고 불꽃놀이는 새벽까지 해대는 터라 인근 주민에게는 죽을 맛인데다가 멀쩡한 산을 가로등으로 덮어놓는 건 환경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매우 좋지 않다. 게다가 바닷물을 끌어와서 해상분수를 만든다는 프로젝트를 시에서 세웠는데 문제는 물을 높이 뿜을수록 소금물이 주변으로 퍼져서 주변 토양에 염해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 때문에 시민단체들에서도 염해피해 대책을 이유로 해상분수를 반대하고 있고 목포대학교의 실험결과에서도 염해피해가 우려되었으나 시에서는 무슨 일인지 무작정 밀어붙이고 있다. 때문에 추적60분에서도 격하게 까였다.

그런데 2010년 여름 실제로 해상분수가 완공되어 해양문화축제 때 선보이자, 까던 말들이 사라져 버렸다. 예상 외로 이쁘다는 것이다. 해양분수는 "춤추는 바다분수"로 명명되었고, 4~11월 동안 비가 오거나 강풍이 부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공연을 한다. 중간 중간 쉬는 타이밍에 사연과 신청곡도 들려준다. 인근 주민들은 몇 번 보니까 식상해하기도 하는데, 외지에서 오는 사람은 보고 뻑 가는 듯. 실제로 목포에 방문하는 내일러들에게도 필수 방문코스다.

주요 관광지로 유달산이 있으며 바다를 면한 박물관 밀집지역인 문화의 거리가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구 국립해양유물전시관[24]), 목포자연사박물관, 남농[25]기념관 등이 가깝게 붙어 있으며 목포문화예술회관도 그 근처에 있다. 이 근처에 있는 갓바위는 2009년 천연기념물 제500호로 지정되었다.

볼 것은 없지만 유달산과 가까운 연안여객선 터미널을 통해 흑산도, 홍도와 같이 관광지로 유명한 섬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인근 횟집들에서 상당히 저렴한 가격으로 수산물을 즐길 수 있으며, 여름 민어가 유명하다.


유달산 관광사업으로 케이블카를 추진하고 2018년에 완공을 목표로 하였으나 2018년 6월 1일 오후 12시 경에 케이블카 기둥이 무너지는 일이 발생해 완공이 미뤄졌고, 약 1년 후인 2019년 9월 6일 목포해상케이블카가 개통되었다.

개통 후, 총 길이 3.23km의 압도적인 탑승거리와 볼거리로 베트남 빈펄케이블카를 능가하는 아시아 최고의 노선으로 평가를 받은 영향으로, 전국 각지에서 목포해상케이블카를 타려고 몰려들어서 지금은 목포의 대표 관광코스로 지정되었다. 도시 크기가 크지 않아 주요 관광지들이 한곳에 다 모여있어 짧은 이동거리로도 거의 다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2021년 11월 산정동순교자기념성당이 건립되었다. 건축 당시 이름인 성 미카엘 대성당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준대성전으로 지정되어 현존하는 국내 가톨릭교회 중 가장 높은 격의 가톨릭교회다.


6.1. 관광지[편집]


평화광장에 위치해 있으며, 4월~11월 까지 운영한다. 화, 수, 목, 일요일에는 2회 운영하고 6월~8월에는 3회 공연한다. 금, 토요일에는 분수쇼를 3회 공연해주었으나 해상 W쇼로 대체하게 되었다. 저녁 8시 부터 20분간 5곡씩 공연하며, 월요일에는 정기 점검 때문에 운영하지 않는다. 월요일 이외에 강풍이 불거나 비가 심하게 올 경우에도 운영하지 않는다.
  • 율도해수욕장


6.2. 축제[편집]


  • 유달산 꽃 축제 (매년 4월 초 개최 /유달산 일원)
  • 목포항구축제 (매년 7월 말 또는 8월 초 개최 / 삼학도, 평화광장 일원, 舊 목포해양문화축제[26])
  • 목포시민의날 (목포 덕인고 출신 개그맨 배동성이 지상파에서 개그 소재로 활용한 적이 있다.)


7. 교육[편집]



7.1. 공립유치원[편집]


  • 단설 목포서부유치원, 목포옥암유치원, 목포백련유치원
  • 병설: 목포북교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산정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중앙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유달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동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이로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남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서산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대성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용호초등학교병설유치원,목포삼학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연동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임성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대연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상동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부영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하당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연산초등학교병설유치원,목포신흥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청호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한빛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미항초등학교병설유치원,목포서해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용해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석현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항도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애향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부주초등학교병설유치원


7.2. 초/중/고등학교[편집]









고등학생들의 수준은 대체로 타 지방 중소도시의 평균만큼은 한다. 그런데 인근에 있는 광주광역시가 전국 수능 평균 상위권이라서 목포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타지 광주의 고등학교로 가는 학생도 있고, 전남외국어고등학교 전남과학고등학교 로 가는 학생들도 많다. 수시 지역 균형으로 서울대에 합격은 하나 최저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다른 지역에 비해서 공립학교가 고등학교에 한해서 굉장히 적고 사립학교가 많은 편이다. 최초의 고등학교는 1920년에 도립 목포상업전수학교, 현 목상고등학교이며,[27] 40년대에 목포고등학교의 전신인 목포중학교가 개교, 40년대 후반에 목포여자고등학교가 개교되면서 본격적으로 인문계 교육의 양성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이후 5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까지 영흥고등학교, 문태고등학교, 홍일고등학교로 위시되는 사립학교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공립학교를 세울 조건도, 땅도 마련되지 않아 목포제일여자고등학교를 이후로 공립학교는 더이상 세워지지 않고 있다. 공립학교는 현재 목상고등학교, 목포고등학교, 목포여자고등학교, 목포제일여자고등학교가 일반계로서 운영중이고, 목포공업고등학교가 특성화계로서 유일하게 공립으로 운영중이다. 반면, 사립학교는 남학교인 목포홍일고등학교, 목포마리아회고등학교, 목포덕인고등학교가, 여학교인 목포정명여자고등학교, 목포혜인여자고등학교, 목포여자상업고등학교가, 남녀공학으로 영흥고등학교, 문태고등학교 등이 목포시에 위치하고 있다.[28]

이 지역 중고등학교는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 시행 이후로 사립이 강세고, 공립은 굉장히 약하다. 2005년 이전 고교 비평준화 시절에는 거꾸로 공립이 강세, 사립이 약세였다. 이 시기에는 공립학교인 목포고등학교가 제일 위에서 군림하고 역시 공립학교인 목포여자고등학교, 사립학교인 영흥고등학교, 문태고등학교전남제일고등학교가 그 뒤를 따르는 형세였고 목포고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있었으나 대학들이 수시를 통해 내신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뽑기 시작하면서 영흥고, 문태고, 홍일고를 필두로 하는 사립 고등학교들이 같은 재단의 사립중학교와 공립중학교에서 장학금, 기숙사 제공 등의 혜택을 내걸고 우수학생들을 유치하여서 좋은 내신점수를 만들어 주어 수시로 대학들을 보내기 시작하자 목포고의 위상이 흔들리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학생들을 정시로 뽑던 시기에는 정시를 통해 명문대 입학생을 많이 배출하며, 위세를 유지하다가 2005년 고교 입학생부터 평준화로 학생들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락세를 탔다. 결국 비평준화 마지막 세대인 2007년 수능의 응시생인 2004년 입학생에서 인문계 광주전남 수석[29] 및 자연계 광주전남 수석을 배출한 것을 마지막으로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공립고등학교인 목포상고는 일반계인 전남제일고등학교[30]로 바뀐 뒤 더 하락세다.[31]

상술했듯 목포고등학교가 평준화 이후 맥을 못추는 틈을 영흥고등학교, 문태고등학교, 목포덕인고등학교, 목포홍일고등학교 등의 사립고들이 잘 나가고 있다. 평준화 후부터 2012년 즈음까진 영흥고가 홍일고와 함께 명문대 배출자를 두고 우위를 겨누다 교내에서 안 좋은 일로 인하여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은 상태고 그 틈을 타서 홍일고가 성장하여 14년 현재 가장 명문고로 언급되고 있다. 13년에 수능 자연계 만점을 맞은 모 학생도 이 홍일고 출신이다. 이후 14년도 입시 성적도 일반고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였다. 15년에 수시에서 말도 안 되는 포텐이 터지고 수능 성적으로는 전남 문과 수석 이과 차석이 배출되어 전남권에서는 명문 사학으로 자리매김을 했다.[32]

목포 지역 중학생들은 학교를 잘 생각하자. 참고로 고교평준화 지역이므로 뺑뺑이다. 물론 일부 사립중학교에서 자교의 성적 중하위권 학생들은 절대로 같은 재단 고등학교를 못 쓰게 하고, 공립고등학교인 목포고등학교목상고등학교(구, 전남제일고)에다가 다 몰아줘 버린 다음에 일부러 미달 혹은 정원에 가까운 인원 정도만 지원하도록 만든 후 타 중학교 상위권 학생들에게도 이러한 점을 어필해서 상위권 학생들을 끌어모으는 식의 '장난질'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33]


7.3. 도심 공동화에 따른 학교 불균형 문제[편집]


현재 목포시 교육의 문제는 원도심 공동화에 따른 학생 수 편중 문제이다. 목포시의 구도심+하당지구[34]+전남도청의 인구는 하당신도심을 거쳐 남악신도시까지 지속적으로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이를 못 따라가고 있어서 원도심 학교들의 학생수 감소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서부초등학교는 북항의 버프를 받아 현재까지 약 1,000명 가까이인 850여 명의 학생수로 살고있다. 원도심이야 이미 심각한 지 한참 되었지만 남악신도시가 개발된 2010년대에 들어서는 여파가 퍼지고 있다. 유달, 산정, 연동, 남, 중앙, 북교 등 원도심 초등학교는 학년당 한두 학급 겨우 유지하는 수준이고, 서산초등학교는 한 학년당 인원이 10명 이내로 거의 섬 초등학교 수준이고, 1990년대~2000년대 초반에 미어터지는 수준으로 열심히 교사(校舍)를 증축하고 신설학교를 추가로 개교시키던 하당지구나 북항지역 초등학교들마저 교실이 남아돌고 있다. 게다가 단순히 택지개발뿐만이 아니라 출산율까지 떨어지며 남악신도시를 개발하는 동안 초등학교 신입생수가 1천여 명 이상 감소해서 더욱 학생수 감소현상은 심화될 전망이다.[35]

초등학교야 통학거리 등의 문제로 소규모 학교라도 유지시켜야겠지만 중, 고등학교는 신도심이 생길 때마다 새로운 학교 신설만 하고, 기존 학교 정리나 이전 등의 대책은 세우지 않아서 원도심 학교 진학 기피 현상으로 인해 구도심 학교들이 여파를 입고 있다. 게다가 고교평준화의 영향으로 사립중학교들이 새로이 명문고가 된 사립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발판 등으로 인식되면서 지원률도 떨어져 애꿎은 공립중학교들만 미니학교가 되가고 있다. 목포 버스 13-1번이라는 전용 통학 노선까지 만들어가며 유치한 목포여중의 2021년 총 학생수는 6학급 122명(특수학급 1학급 3명 포함)이다.[36] 거기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원도심 공립 3개 남학교(목포제일중, 목포유달중, 청호중)들도 학급감소가 심각하다. 목포제일중의 경우 한때 목포시 인구 1/4가 하당지역에 있던 유일한 남중이었던 영흥중학교가 1999년부터 남녀공학이 되면서 하당중학교가 개교한 2005년까지 남학생이 갈 수 있는 학교가 0.5개뿐이라 신도심 근처에 위치한 관계로 미어터졌지만 이마저도 이제는 학급이 줄고 있다.[37]

어쨌든 이러한 수요 불균형에도 일단 원도심 학교들이 학급수를 줄여서라도 유지는 되고 있는데 뺑뺑이 추첨에서 운 나쁘면 누군가는 신도심에서 원치 않은 원도심 중학교로 진학하게되니 이에 대한 신도심이나 남악신도시 옥암지구 주민들의 불만도 많고, 해마다 구도심으로 진학하게된 학생들이 대량으로 위장 전입을 써서 무안군 관내인 남악신도시 남악지구의 남악중학교로 전학신청을 하는 사태도 발생하였다. 이에 또 2013년에는 남악중학교 교사들이 과밀학급으로 교육의 질 저하가 우려된다며 관할 교육청에 배정중지 요청을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관련 기사 거기에 원도심 고등학교들도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으로 인한 사립학교로의 학생 쏠림 및 도심 공동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결국 학생 수 감소를 버티다 못한 청호중학교는 새로운 택지개발지구인 용해지구로 학교를 이전하였다.관련 기사 위에서 언급한 목상고등학교 역시 옥암지구로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관련 기사 ~그런데 옥암지구의 학교 부지들이 워낙 콩알만 해서 옥암지구로 가면 교지 면적이 1/4~5로 줄어든다.[38]


7.4. 대학교[편집]


종합대학교는 목포대학교 목포캠퍼스[39], 목포해양대학교, 목포가톨릭대학교가 있고, 전문대학은 목포과학대학교가 있다.


7.5. 특수학교 / 평생교육시설[편집]


  • 사립: 목포인성학교(특수학교),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평생교육시설)
  • 공립 : 목포고등학교부설방송통신고등학교(평생교육시설), 목포중앙여자중학교부설목포방송통신중학교(평생교육시설)


7.6. 기타[편집]


목포 근처의 타 지역에서 목포로 유학오는 경우도 있다. 특히 목포 근처의 지역이 대부분 섬과 같은 지역이라 섬 내에 고등학교가 없어서 아예 목포로 오는 경우도 있고, 질 좋은 교육이나 체육특기생 등의 이유로 목포로 오기도 한다. 목포가 죽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전남 서남부에서는 목포만한 도시가 없기 때문. 이렇게 시내로 들어오는 많은 학생들이 목포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숙사 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애초에 시내로 유학오는 이유가 잘나가는 학교에 들어가기 위함이었으니, 하지만 평준화 이후 옝말이 되어 지금의 목포고등학교는 기숙사 방이 남아돌아 4인실을 3인실로 바꿨다.

목포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광주로 가기 때문에 이를 잡아두기 위하여 목포시에서는 목포시내 고등학교 출신자가 서울대학교에 합격하면 4년 전액 장학금을 지원해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실력이 있는 학생은 노려볼 만하다!

전라남도의 22개 시군 중 유일하게 '읍과 면 지역 및 도서와 벽지지역 교육진흥법'의 적용이 되지 않는 지역이다. 그게 당연한 게 법 이름에서부터 명시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적용 대상은 읍면지역 한정이다. 그런데 목포는 전남에서 유일하게 도농통합이 안 이뤄진 도시라서 읍면이 전혀 없다. 이걸 따지겠다면 읍면 지역에만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법을 탓해야지 이미 도농통합을 한 전남 다른 시들과 비교해서 지역차별하고 있다는 걸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여순광 지역이라도 시내 지역은 전혀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그게 그거다.

도서관은 목포시에서 운영하는 목포시립도서관과 전라남도교육청 산하의 목포공공도서관이 있다. 공공도서관은 원도심 쪽에서도 인구가 많은 북항지역에 있고 13번, 60번 버스를 이용할 수 있어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다만 주택가 한 가운데에 있어서 이면도로를 따라 들어가기 때문에 초행자들이 접근하기 어렵고 어린 학생들의 경우에는 골목을 운행하는 차량들로 인해 통행하기 위험한 것이 단점이다. 시립도서관은 접근성 면에서 최악[40]인데다가 도서관과 연계되는 대중교통 편마저 없어서 이용객이 적다. 시의회에서 시립도서관 운영에 대해 여러 차례 문제제기는 되고 있고 아직도 민간 위탁운영을 하고 있어서 시설 개선도 잘 안 되고 있는데 시립도서관의 존재감이 너무나 떨어져서 이마저도 묻히는 실정이다. 작은도서관과 이동도서관 운영을 통해 수박 겉핥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시립도서관 산하의 어린이도서관과 영어도서관은 청호시장 부근에 위치하는데 입지가 다소 애매한 편이다.

대학교가 위치한 도시들의 경우 중고등학생 및 주변 주민들의 도서관 이용으로 갈등이 발생하는 반면 목포시의 경우 인구에 비해 대학 수가 제법되는데도 학교들의 위치나 입지가 좋지 않아서인지 대학교 도서관 이용도 상당히 드물다. 목포대학교는 목포 밖에 있고 목포해양대는 원도심에서도 아예 바다쪽으로 더 가야 갈 수 있다. 목포가톨릭대도 목포시내 끄트머리에 있는 편이라 잘 가지 않게 된다. 목포과학대가 그나마 입지가 괜찮은데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야 해서 선호되는 곳이 아니다. 목포시 행정구역 내는 아니지만 옥암지구에 거주하는 경우는 바로 옆에 있는 전남도립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어서 그나마 도서관을 이용하기 용이하다.


8. 생활문화[편집]



8.1. 지역 특징[편집]


개발도 많이 안 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꽤 잘나가던 항구[41][42]라서, 일제강점기에 지은 건물이 많이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의 건축물+근대건축물의 산실로 일본인 구역이었던 유달산 아래 목포여자중학교 근방과 구시가지에는 눈에 띄는 건물들이 다 준문화재급으로 오래된 건축물들이다. 그러나 이는 보존하려고 해서 보존한 것이 아니라, 이 지역이 그 이후로 거의 개발되지 않아서이다.[43] 예를 들어 경성, 부산, 대구, 대전 등지에는 목포보다 훨씬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했지만, 개발의 물결을 타고 일제의 잔재가 전부 사라졌다. 반면 목포는 해방 이후 개발이 더디어 이런 적산가옥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일제의 잔재로는 목포해양대학교 근처의 해안가에서 볼 수 있는 건너편 섬들에 웬 동굴들이 여러개 뚫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건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이 미군을 막겠다며 군수물자나 군인들을 폭격등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현재까지도 슬픈 역사의 상징이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한편, 유달초등학교 내부에는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로 알려진 호랑이의 박제가 전시되어 있으며, 운동장 쪽에 공중폭격에 대비한 방공호가 있다. 현재는 입구를 막아놔서 들어갈 수 없지만 목포문화원에서 대략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것이 있다. 광주와 목포의 유력한 한국인 자본가 24명이 참여한 호남은행의 목포지점 건물이 있는데, 해방 후 조흥은행 목포지점으로 사용하였다. 목포에 현존하는 유일한 금융계 근대건축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 5월 31일 등록문화재 제29호로 등록·관리되고 있다. 현재는 목포문화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국도 1-2호선 기점 비석 인근의 구 일본영사관 건물은 1900년에 완공된 건물로 일제강점기 때는 목포부청으로 사용되었고, 해방 후에는 1974년까지 목포시청으로, 그 후 1989년까지는 시립도서관으로, 1990년 이후로는 목포문화원으로 사용되다가 2014년 목포근대역사관 1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건물은 사적 제286호로 역사적, 건축학적 가치가 높은 개화기의 근대 건축물이다.

목포근대역사관은 총 2개의 건물로 운영중인데, 구 일본영사관이 1관, 인근에 있는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이 2관으로 1관에서 관람료를 내고 관람한 다음 2관까지 다 보면 된다. 유물보다는 당시의 서류 자료나 사진을 주로 전시해 놓았고, 일제강점기의 목포 거리를 일부 재현해 놓기도 했다. 단, 2관에 있는 독립군을 처형하는 사진의 경우 정말 적나라하게 시체가 드러나는 사진이 일부 있기 때문에 관람에 주의를 필요하다.

쌀수출항에 일본인 거주구역이 많았던지라, 일제강점기에 젊은 시절을 보내신 구시가지 지역의 어르신들은 거의가 다 일본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하는 특이한 동네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유로 제주도 출신들이 많이 살기도 한다. 특히 4.3사건 이후 이주자가 많았다. 일례로 박영수부좌현이 있다. 따라서 제주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성씨들도 목포시에서 유의미하게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통영과 함께 최고의 다도해 경치를 자랑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저녁에 유달산에 올라 석양에 붉게 물든 다도해의 바다는 정말 천하일품.

현재 전국에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프리머스시네마가 있는 도시였다. 2016년 1월 31일까지만 프리머스시네마로 운영하였고, 이후에는 메가박스로 운영되고 있다. 도서관은 목포시립도서관과 목포공공도서관, 목포어린이도서관, 전라남도립도서관[44]이 있다. 목포시립도서관의 경우 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책 읽으러 가다가 뻗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다.

방송 전파 환경의 경우, KBS목포방송국, 목포MBC, 목포극동방송 등 전남 서남부 지역을 관할하는 지역 방송사들의 소재지이다. 하지만 평야지대가 많은 전라남도 서남부의 지형 특성상 광주지역 방송사 전파가 잘 들어오며,[45] 이 때문에 kbc MyFM, 광주CBS, TBN 광주교통방송 등 출력 3kW 이상인 광주지역 FM 방송국들은 목포에 중계소를 설치하지 않았다.[46]

8.2. 관내기관[편집]


파일:목포시 CI_White.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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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목포시청
사법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우정
목포우체국
세무
목포세무서
소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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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목포세관
치안
목포경찰서
서해지방해양경찰청
목포해양경찰서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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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업은행 목포지점
중소기업은행 목포지점
보건/검역
목포시보건소
국립목포병원
목포시의료원
국립목포검역소
중앙행정기관
고용노동부 목포지청
광주출입국관리사무소 목포출장소
광주지방검찰청 목포지청
법무부 목포준법지원센터
목포보훈지청
환경
목포기상대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서부사무소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
교육
목포교육지원청
목포대학교
목포해양대학교
문화
한국방송공사 목포방송국
목포문화방송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목포시립도서관
선거관리
목포시선거관리위원회





8.3. 의료기관[편집]


목포시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은 목포한국병원(577병상)이며, 그 뒤를 목포중앙병원(435병상)과 목포기독병원(357병상), 세안종합병원(354병상), 목포의료원(299병상)이 잇고 있다. 이 중 세안종합병원은 정신과 전문 병원이기도 하다. 현재 목포대학교와 함께 의대 유치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으나, 중소도시인데다 의대 설립을 제한하는 정부 분위기 때문에 계속해서 의대 설립이 되지 않고 있다.

한국병원, 중앙병원, 기독병원의 3대 종합병원은 90년대 이후 종합병원 급으로 급성장하거나 새로 생긴 병원이며 원래 목포에 가장 큰 병원으로 대성동에 성골롬반병원이 있었다. 언덕 위에 있어 대중교통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하고 택시로만 접근이 가능했지만 사실상 유일한 종합병원이라 내원하는 환자들이 많았다. 병원 주변에 약국이 없어서 약 처방으로 벌어들이는 수익도 많았는데 의약분업이 실시되고 한국병원과 기독병원이 확장이전하면서 수익이 급감하여 임금이 체불될 정도가 되자 노사분규로 문을 닫게 되었다.

목포한국병원은 1988년 3호광장 광주은행 옆에 병상 77개로 설립된 중형급 병원이었다. 외과 응급환자는 이 곳을 찾는다 할 정도로 유명했고 확장 이전 후에도 외상환자들이 많이 찾았다. 1990년대 초반 현 위치로 이전하면서 급성장했으며 현재는 보건복지부 지정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되어 있다. 기독병원 또한 1991년 동명동사거리에 70병상 규모로 설립된 중형급 병원이었으며 1997년 하당의 현 위치로 이전하여 하당 지역 내원객들을 받아들이면서 성장했다. 2008년에서야 법적으로 종합병원의 요건을 갖추었으나 이후 급성장하여 뉴스위크 한국판에서 선정하는 병원순위에 들어가 있는 유일한 목포지역 병원이다. 석현동 버스차고지 맞은편에 있어 대중교통편이 많은 목포중앙병원은 1999년에서야 설립된 종합병원이다. 병원 자체의 역사는 짧지만 유달이비인후과 시절부터 따지면 역사는 나름 길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3대 종합병원의 역사는 그렇게 길지 않은 편이며 옛 한국병원과 기독병원 자리에는 현재도 병원이 운영중이라 당시 크기를 대충 짐작해 볼 수 있다. 세안종합병원은 2008년에서야 목포씨티병원으로 개원하여 인지도가 떨어지고 원도심에 있음에도 큰 도로변에 있지 않아 접근성이 애매하다는 단점이 있다. 목포시의료원은 성골롬반병원과 함께 목포의 중추적인 의료기관이었으나 1978년 현 위치[47]로 이전한 이후 2014년 리모델링 하기전까지는 건물이 오래된데다가 대중교통 접근성이 떨어지고 부지도 협소해 선호도가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대부분의 공공병원이 광역자치단체 산하인데 비해 목포시의료원은 1914년부터 시에서 운영해오고 있다. 그렇다보니 광역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공병원에 비해 경쟁력이 부족할 수 밖에 없는데 상급종합병원이 없는 목포시 실정에서는 아쉬울 수 밖에 없다.

의대나 의대병원은 없으며 2003년 들어서야 동신대한방병원이 하당에 들어왔다. 입지가 가장 좋으며 건물도 오래되지 않았으나, 한의대 부속병원 치고 시설이 뒤쳐진다는게 중론이다.

8.4. 문화시설[편집]



8.5. 스포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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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목포
목포국제축구센터

대한민국 3부 축구리그인 K3리그에 참가하는 세미프로 축구팀 FC 목포의 소재지이다. 또한 실업팀으로 목포시청 여자하키팀이 있는데 1982년 창단하여 현존하는 여자하키팀 중 가장 오래된 팀이다. 1984년 창단된 KT, 경북체육회(구.경주시청)와 함께 국내 여자하키의 발전을 이끌어 오고 있다.

스포츠시설은 목포종합운동장, 목포국제축구센터, 목포실내체육관, 목포실내수영장, KBS스포츠월드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전국적인 시설인 축구센터와 KBS 자회사에서 운영하는 스포츠센터 등을 갖추고 있어 정규 체육시설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모든 시설의 접근성이 안 좋은 것은 흠이지만 정규리그 경기가 거의 없기에 큰 문제는 안 되는 듯 하다.

목포종합운동장 이전에 사용되었던 유달경기장은 인구 25만의 도시 규모에 비해 관중석 의자도 없는 11,000명 수용 규모의 작은 공설운동장이었으나 1990년대에는 유공 코끼리와 전남 드래곤즈의 K리그 경기를 일부 유치한 바 있다. 목포실내체육관 또한 농구대잔치와 배구 슈퍼리그의 지방 순회 경기장으로 사용된 바 있다. KBL 출범 이후로는 나산 플라망스의 6강 플레이오프 경기를 개최한 적이 있다.[48]

목포시청 실업팀과 중고등학교 여자하키팀의 존재로 인해 목포국제축구센터에는 소규모 관중석을 갖춘 필드하키 경기장이 설치되어 있다.

시설 수준이 약간 떨어지기는 하지만 프로경기를 치룰 정도의 시설들은 갖추고 있으나, 인구 규모에 비해 생활체육 시설은 정말 미비한데 체육공원 시설은 부주산체육공원과 북항 중앙하이츠 뒤에 있는 작은 산정생활체육공원이 전부다. 이 곳들도 접근성은 좋지 않다. 사회인야구 시설은 축구센터 옆 목포야구장과 옥암지구에 야구장 두 곳이 있는데 둘 다 아직은 흙바닥이다.

학원스포츠팀으로 목포여자상업고등학교 배구부가 유명하다. 김주하, 염혜선이 목포 출신으로 목포여상을 졸업하였고, 각 팀에 목포여상 출신 선수 한 명씩은 있는 강팀이다. 남자 배구로는 목포고등학교 배구부가 있었다. 목포고 출신은 아니지만 강성형 감독이 청호중학교 배구부 출신이다.

농구는 과거에 목포상고 농구부가 있었다. 김현국 경희대 감독, 박종천, 백인선, 우승연 등 KBL 1군 현역으로 활약한 목포상고 출신 선수들이 몇 몇 있었다.

야구는 목포시 출신 선수가 거의 없지만 신안군 출생으로 산정초, 영흥중고를 졸업한 최향남이 가장 성공한 케이스다. 올림픽 국가대표까지 승선하여 해태의 1차 지명을 받았던 오철민도 있었으나 프로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영흥고 출신으로 야구팬들에게 가장 유명한 야구인이라면 KBO 심판으로 활동하는 문승훈, 추평호가 있다. 70년대에는 목포상고에도 야구부가 있었으나 광주가 직할시가 되기 전에는 지역예선에서 밀려 전국대회 출전을 거의 못하다 1985년 해체되었다. 여담으로, 두산 베어스의 레전드 정재훈이 목포 출신이다. 그러나 태어나자마자 바로 서울로 이사를 가서 사실상 서울 사람 취급을 받는다.

축구는 제일중, 목포공고 축구팀이 꾸준하게 운영은 되고 있으나 전남 드래곤즈와 광주 FC에서 뛰었던 이인규 외에는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가 없다. 이인규도 중학교까지는 충남에서 다니다 축구하기 위해 목포로 넘어온 케이스다.

필드하키는 중앙여중과 목포여고 하키팀이 현재도 운영되고 있으며 이 곳을 졸업한 선수들 다수는 목포시청 실업팀에서 활약하는 편이다.

9. 정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목포시/정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현재는 전남에서도 비중이 크게 축소된 중소도시에 머무르지만, 한때 전국 7대 도시 및 3대 항구에 속할 만큼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곳이었기에 목포시의 정치 역사는 광주광역시 못지 않게 호남 정치사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다. 목포를 기반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인물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있으며, 최근까지도 박지원민생당 의원이 지역구를 차지한 곳이기도 하다.

의외로 아예 민주당 계열 정당 아닌 곳에서 정치를 시작한 목포 출신 보수 계열 정당 국회의원까지 지낸 정치인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친이계로 분류되는 안형환이 있으며, 전주혜의 부친인 전석홍이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공화당-민정당 4선 의원인 최영철 서경대 총장이 있다. 그 외에 민영삼 등 민주당 출신 보수인사들도 제법 있다. 소속정당은 없으나 20대 대선 출마를 선언한 극보수 성향의 최대집도 목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해산된 통합진보당 네임드 인사 중에서도 목포 출신이 제법 있는편으로 김미희, 이석기가 해당된다. 정의당 출신의 윤소하, 서기호 의원도 목포 출신으로 생각보다 민주당 외의 정당에서 활동한 목포 출신 인사들이 제법된다.


10. 하위 행정구역[편집]


파일:목포시 CI_White.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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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동
법정동
용당1동

시청
용당동 (일부)
산정동 (일부)
용당2동
용당동 (일부)
연동
산정동 (일부)
용당동 (일부)
산정동
연산동 (일부)
용당동 (일부)

연산동
산정동 (일부)
연산동 (일부)
원산동
대성동
대성동
연산동

용당동
목원동
대안동

명륜동

무안동

북교동

신정동 (일부)

산락동 1가 (일부)

산락동 2가 (일부)

양동 (일부)

죽교동 (일부)


죽동
창평동
측후동
호남동 (일부)

동명동
광동2가
광동3가
동명동
산정동 (일부)
호남동 (일부)

삼학동
산정동 (일부)
만호동
경동1·2가 (일부)

금동1·2가

대의동1가 (일부)

만호동
보광동 1·2·3가

복만동
산정동 (일부)

수강동1·2가

영해동1·2가 (일부)

유동
중동1·2가 (일부)

중앙동1·2가 (일부)

축복동1·2·3가
항동
해안동 1·2·3·4가

행복동1·2가

유달동
경동1가 (일부)

경동2가 (일부)

금화동
달동
대의동1가 (일부)

대의동2가

대의동3가

서산동
온금동
유달동
율도동
죽교동 (일부)

중동2가 (일부)

중앙동1가 (일부)

중앙동2가 (일부)

중앙동3가

죽교동
죽교동 (일부)
북항동
산정동 (일부)
죽교동 (일부)
용해동
용해동 (일부)
이로동
상동
상동 (일부)
석현동 (일부)
하당동
신흥동
상동 (일부)
삼향동
대양동
석현동 (일부)
옥암동
옥암동 (일부)
부흥동
부주동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목포시/행정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목포시의 도시구조는 크게 네 지역으로 나뉜다.


10.1. 행정구역 통합 문제[편집]


목포는 예전부터 좁은 부지의 한계로 재개발 말고는 더 이상 개발할 곳이 없으며 높은 인구 밀도로 인해 주변 지자체들(무안군, 신안군)과의 협의를 통한 확장 혹은 통합을 시도해왔다.[49]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행정구역 개편/전라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기타[편집]


이 도시에 있는 오거리문화센터는 굉장히 특이한 이력을 가진 건물이다. 원래 일제강점기히가시혼간지의 말사인 '목포별원'으로 세워졌다가, 해방과 6.25 전쟁을 거친 뒤 1957년 한국기독교장로회 목포중앙교회가 사들여 안에 있는 것들을 없애고 교회로 개조해서 2007년까지 사용했었다. 2008년 목포중앙교회가 옥암동으로 이전한 뒤에는 목포시에서 다시 사들여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세월호가 거치된 곳이 목포시 달동에 있는 목포 신항만이다. 그리고 빠르면 2024년에 세월호가 이동될 장소도 인근 유달동 고하도로 확정됐다.

도시가 면적이 매우 좁아서 택시를 탈 때 굳이 동 단위를 말하지 않아도 된다. 대부분의 목포 시민들은 택시 탈 때 목적지 주변 건물 이름으로 말한다.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줄 알았다가 서울 가서도 건물 이름을 말하게 된다. 버스 탈 때 역시 마찬가지로 목포 시민들은 목적지 주변 건물 이름으로 말해도 기사들이 대부분 다 알아듣고 해당 버스를 타야 될지 아니면 다른 버스를 타야 될 것인지 안내해준다. 사족으로 現 금호고속 버스 기사인 달리는거북이가 목포시 시내버스(유진운수)에서 약 7년 무사고로 근무한 사실이 있다.

2010년에 목포 여대생 살인 사건이 발생했으나, 근방 CCTV가 고장나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던 점, 발견된 피해자의 유류품들이 바닷물에 젖어[50]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감정불가능한 점, 목격자의 제보가 전무한 점 등 때문에 2010년부터 계속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다우치 치즈코라는 일본 여성이 일제강점기에 한국인 남편과 함께 공생원이라는 고아원을 세우고, 해방 후를 거쳐 1968년 타계할 때까지 평생 고아들을 돌보며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12. 출신 인물[편집]




13. 무대탐방[편집]




14.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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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2년 4월 주민등록인구[2] 비수도권의 자치시, 행정시 중 인구밀도가 가장 높다. 부산광역시와 비슷하고 대구광역시, 대전광역시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심지어 같은 호남 지역이자 전남, 전북 모두 통틀어 최대 도시인 광주광역시 인구밀도도 뛰어넘는다. 다만 언급한 예시들은 땅이 넓으며 그린벨트로 묶인 곳이 많고, 목포는 도시 면적이 워낙 좁아서 포화 상태이기 때문이라는 차이는 있다. 애초에 목포시의 면적은 서울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자치구인 서초구와 비슷하다.[3] 해수욕장은 배 타고 외달도로 가야한다. 유달해수욕장은 2006년에 기능 상실로 인해 폐쇄되고, 유달유원지로 개명했다.[4] 여기에는 1960~1990년대에 이루어진 경제개발이 경부라인과 경인라인에 집중되었으며, 복선으로 이루어진 경부선경인선, 그리고 경부고속도로경인고속도로같은 좋은 교통 인프라가 영향을 주었다.[5] 정확히는 전라남도청이 소재한 무안군이다. 그러나 도청이 위치한 삼향읍 남악리는 목포시 옥암동과 연담화되어 신도시를 구성하고 있어, 사실상 목포 생활권이며 경제적으로도 목포에 종속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6] 재산세 뿐 아니라 목포는 순천, 여수, 광양과 더불어 전남 5대 도시 안에도 들어간다.[7] 전남 내에 완공된 마천루는 5개가 있는데 이 중 2개가 목포에 있으며 현재 건설 중인 하당지구 중흥S-클래스 센텀뷰는 명실상부 호남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가 될 예정. 이런건 인구 20만 초반대의 중소도시에서 나올만한 수준이 아니다.[8] 처음에는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삼백련(三栢淵) 원안풍(願安風)은' 으로 바꾸어 부르다가 광복 후 고쳤다.[9] 도농복합시들은 기존의 시와 군을 폐지하고 새로 설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10] 법적으로는 종래의 무안군의 영역에 새로 설치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11] 이는 전라남도에서 첫 부 승격으로, 이는 현재 광역시광주보다도 앞선다.(광주는 1935년에야 부로 승격.) 그 당시의 부(府)는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던 개항장 위주로 지정되었다.[12] 서울 98만명, 부산 33만명, 인천 21만명, 대구 20만명, 대전 7만6천명, 전주 6만 7천명 광주 8만2천명, 군산 5만 7천명, 진주 5만3천명[13] 당시 이로면사무소는 현재 목포의료원 자리.[14] 사실상 없다. 목포시가 무안군과의 통합을 추진하려는 이유중 하나이다.[15] $#[16] #[17] #[괄호] A B C D E F G H I J K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광주] A B 지점이 가장 가까운 지점이다.[대전] A B 지점이 가장 가까운 지점이다.[하동] 지점이 가장 가까운 지점이다.[18] 처음으로 적금을 출시했으며, 조선식산은행이 자본금 일부를 대기도 했다.[19] 예전에는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에, 중앙정부에 의해서 도와 직할시는 물론이고 일반 시 및 군의 금고은행을 선정해주곤 하였다. 농협은행이 가지고 있는 많은 군 지역들의 지점은 이것이 원인이기도 하다.[20] 사실 LG목포빌딩으로 LG의 금융계열사를 위한 사옥으로 NH투자증권이 그 흔적이다. 이후 LG에서 금융계열사들을 청산하면서 LIG손해보험에게 매각했다가 LIG손해보험을 KB금융지주가 인수하면서 빌딩까지 매입한 것이다. 실제로 KB손해보험과 KB손해사정 등 KB금융지주가 이 빌딩에 모여있다.[21] 그 이유는 목포 구도심의 주민들, 목포시에서 굉장히 반발이 심했다. 거리상 상당히 멀기도 했다.[22] KB금융지주가 국민은행을 입주시키려 재계약을 안했을 가능성이 크다. 원래 국민은행은 상락동에 있었다. 원래 LG목포빌딩으로 LG의 금융계열사를 위한 사옥으로 NH투자증권이 그 흔적이다. 이후 LG에서 금융계열사들을 청산하면서 LIG손해보험에게 매각했다가 LIG손해보험을 KB금융지주가 인수하면서 빌딩까지 매입한 것이다.[23] 농협은행과는 달리 수협은행 분리 이전에도 한동한 수협법에 의해 수협은행이라는 명칭으로 운영되었다.[24] 국립해양박물관 승격을 줄기차게 요구했으나 정부의 반대로 어영구영 시간만 보내던 도중 부산에 국립해양박물관을 떡하니 지어버렸다.현재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로 개칭[25] 남농 허건(1907~1987) : 한국화가. 한국화에서 남화를 잇는 중요한 화가로 꼽힌다.[26] 시장이 바뀌면서 축제 이름도 바뀌었다. 목포대의 한 교수가 오래전부터 이름변경을 권고한 결과.[27] 당시에 목포와 광주는 고등보통학교 유치전을 벌였는데 광주에 유치되면서 총독부에서 일종의 회유책으로 실업계 고등학교를 개교시킨 것이다. 그래서 한인과 일본인의 공동 재학 학교로 개교하였다.[28] 두 학교 모두 남학교에서 남녀공학으로 전환했다.[29] 이 학생은 이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다. 모종의 사태만 없었다면 공동 수석이었기에 사실상 수석 취급을 받기도 한다.[30] 2014학년도부터 장사 상(商)자를 으뜸 상으로 재해석한 목상고등학교로 교명 변경[31] 명색이 대통령을 배출한 학교지만 목포에서의 인식이 낮아졌다가, 2015학년도 고입 이후부터는 여타 다른 고등학교와 비슷한 수준이다.[32] 목포시의 고교 성적 평준화 이후 입학한 15년도 신입생들은 모의고사 성적에서 선배 학년에 비해 후달리는 모습이 보여 이러한 명성도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33] 하지만 이러한 장난질을 막기 위해 2015학년도 고입부터는 성적을 고려하여 목포시 전 고등학교의 입학생의 성적이 동일하도록 뺑뺑이를 돌리게 되었다. 예를 들면 100점이 10명이고 90점이 20명일때 학교가 10개면 한 학교당 100점은 한 명 90점은 2명을 배정하는 식이다.[34] 행정구역상 상동옥암동이다.[35] 목포MBC보도에 따르면 2007년 3,729명이던 초등학교 신입생 수가 2013년 2,623명 까지 감소하였다.[36] 2021년 2월 졸업자수는 40명, 2021년 3월 입학자수는 44명이다.[37] 1995년 입학생은 총 9학급, 1997년 입학생은 총 7학급이었다.[38] 목상고 부지는 목포시내 학교 중에서도 가장 대규모로 유명하다.[39] 이름은 목포대학교인데 대학본부와 단과대학 건물 모두 청계면 도림리에 있다. 원래 용해동에 있던 목포교육대학에서 시작해 무안 청계로 이전한 것. 용해동에는 경영대학원과 평생교육원밖에 없다.[40] 가파른 언덕배기를 올라가서 도서관 정문에 도착하면 도서관 출입구까지 대략 2층 높이의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이렇게 높은 곳에 있는데 정작 시내에서 두드러지게 잘 보이는 것도 아니고 경치나 야경이 좋은 것도 아니라서 오는 사람이 적다.[41] 과 면화 수출항이었다. 일제강점기경상도 지역의 쌀은 부산항을 통해, 충남전북지역의 쌀은 군산항을 통해, 그리고 전남 지역의 쌀은 목포항을 통해 일본으로 보내졌기에 목포에는 많은 일본인 미곡상들이 거주하여, 호남지역에서 가장 일본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이었다.[42] 지금의 목포를 보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광복 당시만 해도 전국 10대 도시 중 하나로 뽑힐 정도였다. 1966년 당시 인구 순위는 전국 8위였다. 10대 도시는 서울 - 부산 - 대구 - 인천 - 광주 - 대전 - 전주 - 목포 - 마산 - 수원 순. 대전까지 끊어서 직할시 승격을 이루었고 마산은 통합을 통해 100만급의 창원시로, 수원은 통합 없이 100만급으로 커져 광역시 떡밥을 물고 전주도 과거보다 위세가 줄었지만 여전히 전북 최대 거점 도시로 호남 북부권의 대표 역할을 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목포는 개발에서 많이 소외되었음을 알 수 있다.[43] 하당과 남악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이 지역은 더더욱 재개발의 꿈도 희망도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유달산 근방은 나름의 정취라도 있지만, 1970-80년대 주택들과 점포들이 위치한 삼학도 일대는 그저 안습.[44] 행정상으로는 무안군이지만 목포와 지척에 있다.[45] 인근의 영암과 무안, 심지어 신안군 압해도, 지도 일대도 그러하다.[46] 반면 산지가 많은 전남 동부 지역에는 광주지역 방송사들의 중계소가 많이 설치되어 있다.[47] 이전에는 목포시 원도심 여러 곳을 옮겨 다녔다.[48] 원년인 1997시즌 기업은행 농구팀을 인수하여 뒤늦게 들어온 나산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정규시즌 후 광주 염주체육관을 임대하지 않았는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구장을 사용하려다 보니 이미 일정이 잡혀 부랴부랴 목포를 대체구장으로 선정했다.[49] 목포 바로 옆에 위치한 남악신도시는 사실상 목포로 여겨지며 거주자들 조차 목포로의 통합을 원한다. 목포-무안-신안의 통합이 어렵다면 남악신도시의 목포 흡수만이라도 충분히 고려 가능한 사안이다.[50] 하지만 사건현장은 바닷가와 꽤 거리가 있다.[51] 지역구: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갑[52] 지역구: 서울특별시 양천구 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