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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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그램 구성 ]

[ 캐릭터 · 밈 ]



1. 개요
2. 무모한 도전의 탄생
2.1. 토요일 3D
2.2. 시도한 무모한 도전들
4. 특징
4.1. 낮은 제작비용이 만든 환경
4.2. 기본적인 구성
5. 기타
6. 역대 고정 멤버와 게스트들


1. 개요[편집]


'불가능은 없다. 초일류 연예인이 되기 위한 초특급 프로젝트'[1]


'내일은 도전하는 자의 것이다!'[2]


MBC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무한도전의 1기로 분류되는 시기. 이후의 무한도전과 구별을 하기 위해 1기의 이름은 정식 명칭인 무모한 도전을 사용했다. 하지만 로고의 정확한 형태가 무한 도전이라, 이때부터 약칭이자 별명으로 무한도전이라 불렸다.

2. 무모한 도전의 탄생[편집]


최초 방영분 (2005년 4월 23일)

2005년 4월, MBC 권석 PD는 토요일이라는 토요 버라이어티의 한 코너로서, <무모한 도전>을 런칭하게 된다. 당시 토요일SBS연애편지KBS스펀지를 견제하기 위해 MBC에서 야심차게 출범시킨 토요 버라이어티로 <슈퍼루키>, <커이커이>, <무모한 도전> 등의 코너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모두 실패하고 만다. 참고로 훗날 3기 무한도전을 연출하게 되었던 무모한 도전 런칭 당시의 김태호 PD는 일밤의 상상 원정대라는 코너의 조연출로 일하고 있었으며, 본인의 프로그램이 아닌데도 무모한 도전의 촬영 원본 테이프를 돌려볼 정도로 무모한 도전을 좋아했고, 관심도 많았다고 한다. 결국 이 관심이 기반이 되어 이후에 자신이 연출한 프로그램 '요리왕'이 종영한 이후, 무모한 도전의 2기 격인 무리한 도전의 연출에 자원하게 되고, 이때부터 무한도전의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되게 된다.

런칭 당시 권석 PD의 가장 큰 업적은 기나긴 삼고초려 끝에 유재석을 MBC로 끌어왔다는 것. 유재석은 자신이 유재석과 감개무량, 천하제일 외인구단과 이어지는 컨셉의 유재석과 오합지졸류 버라이어티쇼를 제안한다. 천하제일 외인구단은 유재석의 주도로 만들어졌고 결국 조기종영되긴 했지만 시청률상으로는 상승세 중이었고 동시간대의 일밤을 추월해서 유재석이 미련을 가지고 있던 포맷의 예능[3]이었다. 결국 무한도전은 유재석이 만든 거나 다름없는 프로그램이 되는 것. 거기에 김태호 역시 앞에 설명한 프로그램과 포맷이 비슷했던 대단한 도전을 맡은 경력이 있었기에 어떻게 보면 꽤 좋은 조합이었던 셈.

유재석은 과거 유승준이나 이범수, 박경림과 함께 비슷한 형태의 프로그램인 동거동락을 진행 한 적이 있다는 점이 부각되어 중심 멤버로 발탁, 프로그램의 제작이 시작됐다.


2.1. 토요일 3D[편집]


신규 프로그램임에도 이렇다 할 지원을 받지 못한 초창기의 '무모한 도전'은 토요일에 방영되는 고정 프로그램이 없는 쩌리 연예인들을 섭외하여 제작을 진행했다. 당시 예능계에서는 (날짜상 시청률이 잘 나오는 환경에 있는) 주말 고정 프로그램이 있냐 없냐를 가지고 연예인의 급수를 암묵적으로 판정하곤 했다. 이를 공론화해 웃음 소재로 활용한 것도 무한도전이 처음.

그런 한가한 연예인들을 데려다놓고 힘든 미션을 시키는 3D적 요소를 가미해 토요일 오후 황금시간대에 방영을 하는, 프로그램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문자 그대로 무모한 도전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던 셈.

2.2. 시도한 무모한 도전들[편집]


파일:external/thumb.mtstarnews.com/2010020108131177026_1.jpg
▲ '무한 도전'의 첫 방송, '황소와 줄다리기' (에피소드 1, 2005년 4월 23일)

이중 무한도전 종영까지 활동한 인물은 오직 유재석뿐이다. 방영분 가운데 무한도전 초기 멤버 6인 중 나머지 셋인 박명수, 하하, 정준하도 게스트로 1회씩 출연했다.[4] 셋중에서 박명수는 게스트로 나온 후 약 한 달 정도 고정까지 꿰찼으나 동시간대 프로그램이었던 스펀지에 출연함으로써 자연스레 하차...가 아니고 무한도전에서 개그욕심 때문에 잘리는 바람에 삐쳐서 스펀지로 넘어간거라고 한다. 후에 무한도전에 박명수가 다시 고정이 되었을 때 초창기에는 이걸로 많이 까였다.[5]

저 당시의 초기 멤버 중에서 무한도전까지 함께한 멤버는 유재석, 정형돈, 노홍철 셋으로 이들을 묶어 유돈노라고 칭한다. 단지 초기 멤버여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니고 일단 뭉치면 무난하게 포텐을 잘 터뜨리는 조합인 데다가[6] 성을 따오니 당시 유명하던 노래 가사와 유사한 이름이라 잘 정착했다.[7]

무모한 도전은 황소와 줄다리기 대결을 벌이거나 불도저가 버스를 굴릴 때 소형 승합차를 굴리거나 목욕탕의 물을 배수구보다 빠르게 바가지로만 퍼내기 같은 해괴한 일들을 시도했고,[8] 이 해괴한 일들을 성공시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이 내용의 주가 되었다.

천하제일 외인구단과 비슷하게 혹독한 훈련 컨셉은 이어졌으며 여전히 도전과제와는 상관없는 걸로 몸부림친 게 대부분이었고 하는 이유도 안 하는 것보다 나으니깐. 물퍼내기와는 상관없는 열탕에서 오래버티기, 뜨거운 가마솥에 손 넣기 등. 그놈의 혹독한 훈련 때문에 힘 다 빼고 진짜 도전에서 매번 실패했다. 지금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할 수준이다.

어떻게 보면 잭애스와 비슷한 컨셉이지만 그거와는 비교도 안 되게 약하다. 그야 시간대와 시청 연령대를 고려하면 어쩔 수 없으니까 사실 초반 내내 인간이랑 대결하는 건 없었고 기계나 동물이랑 대결하다보니까 나중에 괌에서 원주민들하고 대결할 때는 드디어 사람과 대결한다고 큰절까지 했다.

또한 국민생활체육협회 소속의 박문기 심판을 거의 매회마다 정식 심판으로 초대했고 공정한 판정을 부탁하는 의미로 도전 성공/실패 여부의 판정을 맡겼다. 참고로 박문기 심판은 이후 프로그램이 무한도전으로 단독 편성된 이후에도 무도에서 스포츠 관련 특집을 할 때면 어김없이 찾아와 심판을 봐 주곤 했으며, 과거회귀를 컨셉으로 잡은 '타인의 삶 박명수 편'에서도 출연했다. 그리고 2017년 11월 23일에 실시된 대학수학능력시험 특집에도 출연해 멤버들의 수능 시험을 감독하는 역할을 했다.

물론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후에는 해괴함을 내세우면서도 특별 게스트로 영화배우 차승원,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마리아 샤라포바를 섭외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3. 방영 목록[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무한도전/독립 이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특징[편집]



4.1. 낮은 제작비용이 만든 환경[편집]


무모한 도전이 해괴한 프로그램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캐치프레이즈를 현재 시점에서는 심히 믿기 힘들지만 너무 열악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이었으면 이 컨셉은 나오지도 않았을듯 당시 MBC 전 프로그램 중에서 최저 제작비를 자랑하는 프로그램으로 내세우며 실제로 지상파 방송뿐 아니라 케이블 TV 웬만한 프로그램보다 저가의 제작비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초창기에 멤버들이 유니폼으로 착용하고 나오는 짙은 갈색 츄리닝은 멤버가 바뀌더라도 누구나 입을 수 있는 '프리사이즈' 츄리닝이었으며, '전철과의 100m 달리기 대결'(2회차)에서는 훈련을 위해 장난감용 기차모형(제작비 2만 원)으로 도전 현장을 재현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리얼궁상 프로젝트'.

파일:external/thumb.mtstarnews.com/2010020108131177026_2.jpg
▲ 박명수와 함께 한 '목욕탕 물 채우기'편 (10회 방영분, 2005년 6월 25일)[9]

또한 제한된 예산으로 방송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진흙탕에서 구르거나 별 도움 안 되는 체력훈련을 가장한 몸개그를 보이며 '왜 이런 걸 하는 거야?'라고 되물을 정도였다. 이때 나온 멤버들이 너무 고생이 많았겠다 즉, 90년대 들어 쇼프로그램 중심으로 바뀐 방송계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던 슬랩스틱 형태의 개그를 다시 끌고 나온 것이다.

무모한 도전에서 가장 처절한 방송은 차승원이 참가한 '연탄 옮겨 쌓기 대결'(17회차)로 알려져 있다.[10] 성공을 약 20초 남겨둔 시점에서 연탄이 깨지는 바람에... 그런 이유 때문인지 차승원은 언젠간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말미에 무심코 남겼다. 그리고 9년 후, 차승원은 무한도전 극한알바 특집에 게스트로 재출연해 이번엔 석탄 탄광에서 생고생을 했다.사실 납치당해서 강제로 노동착취(?)를 당한 셈이다

주로 이용된 촬영 장소는 방화대교 북단 아래에 위치한 공터. 카카오 로드뷰를 보면 알겠지만 황량하기 짝이 없다... 이곳에서 촬영한 일부 게스트들은 납치되는 느낌을 받았다고...[11]


4.2. 기본적인 구성[편집]


훈련이나 도전과제에서는 2인 1조를 이루어 총 3팀이 경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도전과제나 훈련 내용에 따라서는 개인 종목도 있고, 6인 전원이 참가하는 종목도 있었다. 도전을 수행할 때 멤버 중에서 가장 출중한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은 우대받았고, 특히 맨 마지막에 도전하는 팀/멤버는 곧잘 '에이스'라는 칭호로 불렸다.[12] 재미있는 건 어느 한 팀이 성공하면 곧바로 끝나는 게 규칙이다. 그래서 승부의 결과는 언제나 제멋대로 흘러가곤 했다.

에이스라고 띄워준 인물이 실패해도 진행을 맡은 유재석이 OOO은 에이스가 아니었습니다!!라면서 반전멘트를 치고 다른 참가자들은 '콩~ 그레~ 츄~ 레이~ 션(Congratulation)!' 하고 노래부르며 춤춘다. 이때 사용되는 음악은 클리프 리처드의 콩크레츄레이션(Congraturation) 일종의 현실도피... 그러고 나서 바로 다음 대기자가 나와 미션을 수행한다.

미션 수행을 하기 전에 개인실력을 알아본다거나 모의 훈련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말도 안되는 연습을 하는데,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이거 왜 하는 거예요?" 라며 의구심을 가진다. 실제 누가 봐도 미션에 별 도움안될 것 같은 황당하기 그지 없는 연습을 한다. 물론 그 이유는 웃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습하다가 웃긴 장면이 나오면 그때부터 다들 몰려들어 연습을 내팽개친다. 차승원 도전 때 나온 노홍철의 수다폭탄이나 정준하의 12초 우동흡입 등.

무모한 도전은 저예산으로 제작된 데다 슬랩스틱 코미디를 메인으로 밀었기에 동시간대 타방송과 비교하면 시청률이 높지 않았다.[13] 본방이라 할 수 있는 '토요일'이 '강력추천 토요일'로 이름을 바꾸며 개편에 들어갔고, 기존에 있던 코너 중 무한도전을 제외한 나머지 프로그램들은 전부 종영된다. 이 분위기에 편승하여 무모한 도전도 대대적인 개편을 시도했고, 무리한 도전으로 이름을 바꾸고 계속 진행하게 된다.

총집편 2번을 빼고 모두 25번의 대결을 한 결과는 4승 21패. 처참한 전적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개편 후의 무리한 도전 코너에서는 5전 전패다.[14] 자세히 보면 기계나 차량하고 대결했을 때는 한번도 못 이겼고, 사람이나 동물과 대결했을 때 그나마 승리를 챙겼다.[15] 미방영분으로 타조와의 달리기 시합에서 한번 이기기는 했는데 타조가 중간에 달리다가 멈추는 바람에 허무하게 이겨버려서 이 방영분은 1기 하이라이트에 짤막하게 방영되었다.[16]

참고로 이 시기 나레이션은 시영준이 맡았었다. 무도의 나레이션을 책임진다! 이후 무한도전으로 단독 편성된 이후에도 가끔 시영준의 나레이션이 등장하곤 했다.

도전을 앞두고 훈련을 진행하는데 경품은 매번 자양강장제였다.

5. 기타[편집]


  • 10회 목욕탕 물채우기 편은 사실 승부 조작이 끼어있다. 물펌프에 비해 무모한 도전 멤버들의 속도가 너무 차이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인간이 채우는 탕에 물펌프로 물을 채우는 장면이 있다. 영상의 32분 4초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 도전 시 응원하는 치어리더들이 있었다. 4~5명 정도의 인원으로, 멘트 없이 뒤에서 환호하거나 응원하는 것이 전부였다. 저예산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치어리더를 고용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
  • 당시 무한도전은 MBC에서 별 기대 없이 만든 프로그램이었기에 최저 예산이었고, 독립 프로그램도 아닌 강력추천 토요일의 한 코너였으며 강력추천 토요일은 HD로 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모한 도전은 당연히 4:3 비율 SD 포맷으로 제작/송출되었다. 현재 유튜브에 올라온 무모한 도전 영상을 보면 화질이 살짝 열화되고 손상된 것을 볼 수 있다. 방송국에 보존하고 있는 비디오테이프 자료가 손상되거나 관리부실 영향으로 추정된다. 당시 HD가 제공되지 않은 이유는 당시 방송계에서의 HD 보급률이 꽤 낮았다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된 2005년 기준에는 극소수의 실내 촬영 프로그램 빼고는 거의 모두 SD제작을 했다.[17] 그러다가 훗날 무한도전으로 독립 편성된 시기인 2011년 2월 19일에 HD로 전환되어 이전과 비교하면 위화감이 매우 심하다.

6. 역대 고정 멤버와 게스트들[편집]


  • 우연의 일치인지 무한도전 초기 6인방이 모두 출연했다.

회차
고정멤버
게스트
하차 멤버
1회
유재석, 정형돈, 노홍철, 표영호
이정

2회
이병진, 이켠

3회
유재석, 정형돈, 노홍철, 표영호, 이병진
김재덕

4회
박명수

5회
유재석, 정형돈, 노홍철, 표영호, 박명수
은지원
이병진
미방영
강두

6회
김성수

7회
하하

8회
유재석, 정형돈, 노홍철, 박명수, 김성수
채건
표영호
9회
김창열

10회
김진

11회
김종석

12회
이병진

13회

14회
유재석, 정형돈, 노홍철, 박명수, 김성수, 이켠


15회


16회
유재석, 정형돈, 노홍철, 김성수, 이켠
김종국, 쥬얼리
박명수
17회
유재석, 정형돈, 노홍철, 김성수, 이켠[18]
차승원, 김진

18회
유재석, 정형돈, 노홍철, 김성수, 이켠
이범수

19회
김종국

20회
정준하

21회
조혜련

22회
구준엽

23회

24회
공형진

25회
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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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기 캐치 프레이즈.[2] 후기 캐치 프레이즈.[3] SBS, KBS를 거쳐서 MBC까지 왔으니 결국 무한도전은 방송 3사를 전전하며 만들어진 흔치 않은 프로그램이 되었다.[4] 박명수, 하하, 정준하도 종영 때까지 활동했다.[5] 주로 박명수가 공채-특채-길바닥으로 출신을 구분지으면 길바닥 출신인 노홍철이 무한도전 혈통을 따지며 반격하는 식.[6] 유재석은 말할 것도 없이 진행능력이 뛰어난 데다가 전체적인 예능 능력도 좋은 편이고, 정형돈도 유재석이 인정할 정도로 개그 밑받침이나 보좌를 잘하는 편이고, 마지막으로 노홍철은 소위 미친 짓이라 불리는 날뛰기를 잘 하는 타입이다. 셋이 뭉쳐놓으면 유재석이 진행을 이끄는 동안 정형돈이 서포트하며 공백을 그런 대로 메워주고 노홍철이 중간중간 크게 몇 번 터뜨려주니 평타는 쉽게 치는 것.[7] 미스에이의 bad girl good girl에서 "you don't know me"라는 후렴구 부분.[8] 물론 이 도전의 다수는 시청자의 아이디어에서 얻은 것이다.[9] 현 고정 멤버인 박명수의 첫 등장은 4회차(2005년 5월 14일)인 목욕탕 자연배수 VS 인간 물 빼기였다. 이후 박명수는 얼마 못 가 하차했다가 무리한 도전으로 넘어갔을 때 김태호 PD에 의해 복귀했으며 그 뒤에 무한도전에서도 종영 때까지 계속 활동했다.[10] 얼마나 처절한지 혹독한 훈련 진행 중 토크에서 연예계의 기 센 사람들 많이 만나봤다지만 노홍철이 그 더운날에도 지치지 않을 정도로 독보적이었고, 자기 커리어에서 최고로 웃긴날이라고 평가했다...[11] 유재석도 이 당시 서울 근교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12] 주로 에이스로 꼽히던 건 힘센 정형돈과 젊은 피 노홍철이었고, 속도가 중요한 특집에서는 이켠도 에이스를 종종 차지했다. 그리고 게스트들이 가장 많이 에이스로 불렸다.[13] 이것은 정규가 아닌 서브 프로그램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해석도 있으며, 그 시간대 시청률 치고 낮은 건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무엇보다 동시간대 SBS에서 강호동이 진행하던 리얼로망스 연애편지가 너무나 강한 상대라 아무리 무모한 도전이 노력해도 이기기 힘든 상대였다. 그렇다고 6시 30분 혹은 7시부터의 시간대에도 스펀지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어서 이 시간대에도 이기기는 힘들었다.[14] 전적을 살펴보면 게스트의 활약이 컸다. 고정 멤버들의 공이 명확했다고 볼 수 있는 미션은 차모르족과의 밀어내기 시합 정도고, 그 외 나머지는 게스트를 포함한 1~2인의 하드캐리였다. (개헤엄 편의 은지원, 팔씨름 편의 정형돈과 공형진, 개썰매 편의 이켠과 김종국 등)[15] 기계와 대결했을 때 가장 선전했던 방영분으로 6회 탈수기 vs 인간 편이 있으며 이 회차에서 기계하고 대결했을 때 단 0.01G 차이로 석패했다. 8회 기계세차 vs 인간세차 편과 17회 컨베이어 벨트 vs 연탄나르기 편, 25회 롤러코스터에서 립스틱 바르기 편도 석패한 편으로 꼽힌다.[16] 표영호, 박명수가 있던 걸로 봐서 ep04~07 사이에 있던 대결로 추정된다.[17] HD 제작 비율은 2010년부터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2010년에 제작된 KBS, SBS 드라마와 SBS, MBC 예능을 보면 HD의 비율이 이전에 비해 얼마나 넓어졌는지 알 수 있다.[18] 해외 스케줄 때문에 불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