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 종단 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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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 Militant uprising

1. 개요
2. 배경
3. 진행
3.1. 시작
3.2. 마에고르의 즉위
3.3. 비터브릿지와 그레이트 포크 전투
3.4. 마에고르법 제정
3.6. 마에고르의 최후
4. 결말



1. 개요[편집]


얼음과 불의 노래의 과거 사건.

41AC - 48AC에 벌어진 칠신교 산하 무장조직인 무장 종단타르가르옌 왕가에 일으킨 대규모 봉기.


2. 배경[편집]


칠신교의 종단은 승승장구하는 타르가르옌 가문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칠왕국의 통일 작업을 도왔지만, 칠왕국 평정이 끝난 뒤 왕권을 확립하려는 왕가와 기존의 권위를 유지하려는 종단간의 갈등이 필연적으로 벌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아에니스 1세는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이러한 갈등을 붙붙이기만 했다. 예를 들어서 강철 군도의 대영주 고렌 그레이조이가 철왕자에 반기를 든 로도스의 반란을 진압하고, 다시 충성을 맹세한 대가로 칠신교의 선교사들을 강철 군도에서 추방시켜달라고 하자 무작정 허용한 것 등.

특히 종단 내에서 타르가르옌 가문의 근친혼 문제에 관해 문화적인 차이를 존중해야 된다는 온건적인 파벌과 죄악이니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강경적인 파벌로 나뉘었다.


3. 진행[편집]



3.1. 시작[편집]




그러던 와중 41 AC에 아에니스 1세가 자신의 장남장녀인 아에곤라에나를 결혼시키자, 보수적인 최고성사는 분노하며 공개적으로 왕가를 비난하고 종단 내의 과격파였던 무장 종단도 반발하며 봉기를 일으킨다. 이때 아에곤 왕자와 라에나 공주의 결혼을 축하해준 머미슨 성사도 파문당한 뒤 무장 종단원들이 붙잡아 죽였다.

급기야 아에니스 1세알리사 왕비 부부, 그들의 남은 자녀[1]마저 왕성에 침입한 무장 종단들에게 일가족이 몰살당할 뻔하자 아에니스 일가는 드래곤스톤으로 피난가는 신세가 되고 만다.

3.2. 마에고르의 즉위[편집]


파일:external/awoiaf.westeros.org/Sept_of_Remembrance.jpg

킹스 랜딩에서 쫓겨나 드래곤스톤으로 피난을 간 아에니스 1세가 결국 그곳에서 사망하자 추방당했던 마에고르가 어머니 비세니아 타르가르옌의 부름으로 귀국하여 왕좌 계승권을 주장한다. 이때 대학사 가웬만이 아에니스 1세의 첫째 아들인 아에곤의 계승권이 위라고 주장하며 그의 즉위를 항의하자 "힘이 있는 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며 그 자리에서 목을 날려버리고[2] 왕위에 앉았다.


그 직후 비세니아와 마에고르는 셉트에 가서 "이제부터 내가 왕이니 불만 있는 놈 다 나와" 라고 선언하자 무장 종단의 '전사의 아들들' 기사단 총단장 데이먼 모리겐이 7 대 7 결투 재판을 신청한다. 이때 마에고르가 같이 싸울 사람 없냐고 묻자 킹스가드는 아에니스에게 가 있었기 때문에 없었고 모리겐과 기사들은 뛰어난 실력을 가지다보니 다들 최강의 전사들에게 덤빌 엄두를 못냈지만, 딕 빈이라는 일개 평민 맨앳암즈가 왕을 위해 싸우겠다며 먼저 나서자 다른 기사들 또한 용기를 얻고 나섰다. 여기서 마에고르는 도전한 데이먼 모리겐과 종단 기사들을 모두 죽이고 승리하지만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고 본인 또한 결투 도중 철퇴에 머리를 맞아 30일 동안 의식 불명에 빠졌다. 하지만 추방 기간 중 사귄 티안나라는 여자의 도움으로 회복한다.

의식을 되찾은 마에고르는 깨어나자마자 드래곤 발레리온을 타고 킹스랜딩의 기억의 셉트를 습격해서 안에서 기도하던[3] 무장 종단 일원 700명을 모조리 태워 죽인다.[4] 이때 발레리온의 불길을 피해 도망가던 무장 종단 신자들은 마에고르가 데려온 궁수와 창병들에게 전부 사살되거나 창에 찔려 죽었다.[5]


3.3. 비터브릿지와 그레이트 포크 전투[편집]


파일:external/awoiaf.westeros.org/Marc_Simonetti_March_of_nine_thousand_poor_fellows.jpg

이에 종단은 겁먹기는 커녕 분노하였고 반란은 오히려 전국으로 번졌다. 특히 스톤브릿지의 전투에서는 광부 와트(Wat the Hewer)가 이끄는 무장 종단 군대 9천 명과 마주하 게되었는데, 이들 무장 종단의 군대는 모두 보병인데다가 가난한 평민들이었기에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고 장비도 형편없었던 터라 마에고르가 이끄는 기병대의 공격에 꼼짝없이 격파되었다. 결국 이들은 마에고르의 진압군에게 맨더 강이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 정도로 대패하였으며 스톤브릿지는 그 후로부터 "비터브릿지"로 불리게 되었다. 특히 반란군 지도자 와트는 진압군의 사령관인 메도우 경을 포함한 기사 12명을 죽이면서 저항하다가 마일스 스몰우드 경에게 패하여 생포된다. 와트는 쇠사슬에 묶여서 킹스랜딩으로 압송되었고 마에고르와 티안나의 결혼식 때 조리돌림을 당하다 마에고르의 명에 의해 도끼로 사지가 잘려 죽고 만다.

그레이트 포크의 전투에서는 무장 종단 뿐만이 아니라 리버랜드와 웨스터랜드의 반란군을 포함한 2만 명에 달하는 병력이[6] 마에고르의 진압군 2만과 맞붙었으나 마찬가지로 대패하였다.[7] 이때 마에고르는 발레리온을 타고 직접 전투에 참가해 용의 화염으로 수많은 반란군을 태워죽였으며[8], 반란군 사령관인 호이스 힐과 루퍼트 팔웰을 죽였다. 전투가 끝난 후 포로가 된 종단 신자들과 반란군 기사, 병사들 상당수가 처형된다.


3.4. 마에고르법 제정[편집]


종단과 왕의 갈등은 점점 심해지자 마에고르는 최고성사에게 킹스랜딩에 와서 재판을 받으라고 요구하고, 최고성사는 지지않고 마에고르한테 직접 올드타운으로 와서 신에게 잘못을 얘기하며 빌라고 요구했다. 이에 격분한 마에고르는 또 이런 요구를 하면 올드타운을 태워버리겠다고 경고하고 최고성사도 반발하는 등, 두사람과 왕가와 종단의 관계는 점점 더 최악을 향하고 있었다. 43 AC에 마에고르와 어머니인 비세니아가 하이 셉톤과 협상하기위해 올드타운으로 가던 중 갑자기 최고성사가 죽고[9][10] 비세니아가 자신의 드래곤인 바가르의 등위에 탑승해서 먼저 도착했을 땐 이미 올드타운의 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타르가르옌 가문의 깃발이 펄럭이고있었다.[11] 이후 하이타워 가문은 신속하게 다시 한번 왕실에 충성을 맹세하면서 훨씬 대가 약하고 늙은 성사를 창 끝으로 압박해서, 최고성사의 자리에 오르게하여 마에고르를 왕으로 인정하면서 왕과 종단 사이의 갈등은 누그러지게된다. 마에고르도 첫번째 아내인 세리스 하이타워를 왕비로 복권시켜주면서 화해하였으며, 이후 올드타운에 반년동안 기거하면서 조정을 열었고, 이 과정에서 포로로 잡힌 전사의 아들들은 처형당하거나 장벽으로 유배되는 선택을 해야 했는데, 당시 하이타워 지부의 단장이었던 세리스 왕비의 동생인 모건 하이타워는 사면받았다.

또한 마에고르는 악명높은 "종교 무장 금지법"(마에고르법)을 만들어, 1년간의 유예시간을 줄테니 무장 종단은 불법이며 가입하면 극형에 처할것이고 종단의 단원들은 전부 무장해제하라는 경고를 내렸다. 또한 종단의 기사(Warrior's Sons)의 두피를 벗겨 가져오면 금화를 주고, 일반 병사인 가난한 동료(Poor Fellows)의 두피를 가져오면 은화를 준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 공약은 그대로 지켜져 마에고르를 지지하는 귀족들에게 신자들이 학살되는 결과로 이어지게된다. 이 학살로 약 2천명이 살해되었는데 실제로는 돈을 노리고 무고한 사람들도 다수 죽였다는 의혹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탄압 속에서도 여러 무장 종단원들은 새로 선출된 최고성사는 아첨쟁이라고 비난하며 여전히 투쟁을 계속하였다.


3.5. 신의 눈 전투[편집]


파일:Battle_Beneath_the_Gods_Eye.jpg

이러한 혼란 속에서 아에니스 1세의 장남이자 원래 후계자였던 아에곤 왕자는 숙부 마에고르 1세를 찬탈자라 부르며 다시금 왕위계승권을 주장하면서 반란을 일으켰고 그의 용 퀵실버와 지지세력을 이끌고 신의 눈 섬으로 향해 숙부 마에고르와 맞서게된다. 그러나 겨우 서른을 넘은 용 퀵실버와 백살은 가볍게 넘은 고룡 발레리온은 체급과 실전 경험부터가 다르니 상대가 될 리가 없었고, 마에고르 또한 칠왕국 최고의 전사이자 지휘관이라 애송이에 불과한 아에곤으로써는 이길수가 없었다. 결국 신의 눈 호수 인근에서 벌어진 일기토에서 발레리온의 화염 공격에 퀵실버가 오른쪽 날개를 잃고 추락하면서 아에곤 왕자는 추락사하게되며, 아에곤 왕자를 따르던 군대 또한 섬멸당하고 만다. 다음해 마에고르는 알리사 벨라리온 왕대비와 자식들인 재해리스 왕자와 알리산느 공주를 드래곤스톤에 가둔 후 비세리스 왕자를 종자로 삼아 인질로 만들었다.


3.6. 마에고르의 최후[편집]


파일:Maegor I's Death.png

그러나 마에고르의 이런 잔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종단은 계속하여 봉기하였다. 탄압이 계속되던 와중 AC 48년 문 성사조프리 도겟[12]이 엄청난 수의 가난한 신자들을 이끌고 레드킵으로 진군하게 된다. 이들은 AC 50년 재해리스 왕자를 지지하며 마에고르를 끌어내리기 위해 더욱 많은 군대를 모으기 시작했으며, 여기에 마에고르의 폭정에 질색한 귀족들마저 반란에 참가하게되자[13] 온 나라가 마에고르에게 들고 일어선 상황이 되었다.

재해리스 왕자를 보호하던 바라테온 가문로가르 바라테온이 재해리스에게 호국경으로 임명되어 지지를 천명한 것을 시작으로 반란이 본격화되자 라에나 타르가르옌은 드림파이어를 타고 막내동생에게 도주했으며, 소협의회의 최측근이었던 수관 에드웰 켈티가르 그랜드 마에스터 베니퍼, 킹스가드 두명마저도 마에고르의 학정에 질려 도주하고 만다. 특히 선박대신 및 제독 다에몬 벨라리온은 함대까지 빼돌려 재해리스에게 가담했다. 나중에 가서는 라니스터 가문, 티렐 가문, 아린 가문같은 대가문들까지도 대놓고 재해리스의 편을 들기 시작하면서 마에고르의 몰락은 가속화되고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마에고르는 남은 충성파 영주들을 모조리 소집하지만 그 자리에는 국왕령 소영주 몇몇만이 참석하였을뿐이었다. 자신의 몰락을 깨닫게된 마에고르는 결국 마지막까지 작전회의를 짜다가 다음날 아침 철왕좌에 앉아서 손목이 그어진 채로 쓸쓸하게 죽은 채로 발견된다.


4. 결말[편집]


파일:external/vignette4.wikia.nocookie.net/HL5_Jaehaerys_I_Concilliates_with_the_High_Septon_to_end_the_uprisings.png

마에고르가 죽은 뒤에는 수도에 입도한 재해리스 1세가 즉위하게 되었는데, 마에고르에게 협조한 귀족과 하인들 대부분은 재해리스의 자비로 큰 처벌을 면하게된다. 다만 이중 마에고르가 벌인 학정의 최전선에 있었으며 특히 비세리스 왕자를 고문하는데 협조한 간수 및 고문기술자들은 처형당했고, 마에고르 치세에 임명된 킹스가드들은 한명은 처형, 한명은 결투 재판에서 죽었으며 나머지는 도주한 두명을 포함해 장벽으로 유배되었다.

재해리스는 신들린 외교력으로 종단과 협상을 통해 종단 사면과 보호를 조건으로 무장 종단을 해산시켰고, 결과적으로 무장 종단 봉기는 일단락 되면서 동시에 정교분리의 원칙이 세워지게 되었다. 덤으로 이 사건의 근본 원인이었던 근친혼 문제는 그냥 안달족발리리아인들은 다르다라고 예외주의를 확정시키고 넘어가면서 심플하게 해결된다.

하지만 250년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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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남 비세리스, 3남 재해리스, 차녀 알리산느. 라에나와 아에곤은 순방 도중 크레이크홀에서 무장 종단에게 포위당한 상태였다.[2] 이 마에스터를 포함해서 마에고르가 재위에 있을때는 대학사가 그의 심기를 거슬리게 한 죄로 3명이나 참수되었다.[3] 단순히 기도만 한게 아니라 무장 종단 기사들이 마에고르가 결투 재판에서 승리했으니 그를 왕으로 인정하고 내전을 끝내자는 기사들과 마에고르를 절대 인정할수 없으니 끝까지 싸워야한다는 기사들로 크게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사실 이게 마에고르의 큰 실책인것이 이때 찾아가서 정당성을 말하기만 하면 무장 종단 기사들도 인정하며 지지세력이 되며 내전을 끝냈을 가능성이 높았는데 자신에게 도전한것이 화가 난다고 그냥 공격해서 학살한것이다. 마에고르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잔혹한 성격인지가 드러나는 정면이다.[4] 이 발레리온의 불길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무려 7일이나 타올랐다고 한다.[5] 이때 발레리온한테 불타죽고 병사들에게 학살당하는 무장 종단 신자들의 비명소리가 킹스랜딩 전체에 들렸다고 한다.[6] 칠왕국 전역에서 모집된 가난한 동료 13,000명, 전사의 아들 기사 200명, 리버랜드와 웨스터랜드의 5개 가문의 12명의 귀족들이 이끄는 반란군 6800명으로 구성되었다.[7] 칠왕국 최강의 용 발레리온이 있었던 것도 있지만 마에고르의 진압군은 반란군보다 기병이 두배나 되었고 궁수부대까지 더 많았기에 훨씬 더 유리했다.[8] 이때 발레리온의 화염은 전투에서 비가 내렸는데도 타올랐을 정도로 강력했다.[9] 암살인 건 거의 확실한데 용의자가 너무 많아서 누가 배후에 있는지는 현재까지 미궁에 빠져있다. 정황상 마에고르가 암살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 최고성사도 결코 좋은 사람은 아닌지라 당시 올드타운의 영주인 마틴 하이타워, 마틴의 고모인 패트리스 하이타워, 왕의 협박에 겁 먹은 성직자 등등, 암살 용의자 후보와 그 배후의 후보자가 넘쳐날 정도로 인망이 최악이었다.[10] 특히 이 최고성사가 신앙에 미쳐서 겁도 없이 타르가르옌 가문에게 이기지도 못할 전쟁을 선포하는 바람에 교단은 무장 종단이 몰살에 가깝게 숙청되고 지지해주던 귀족 가문들도 수십 개나 멸문당하는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으며, 본거지인 올드타운까지 태워먹을 뻔하면서 마에고르의 사후 재해리스 1세가 즉위한 뒤에도 사병부터 재판권까지 빼앗겼는데도 알리산느 왕비를 향한 개인적인 암살 시도 외엔 별다른 반항을 못할 정도로 세력이 크게 축소되었다. 특히 용들의 춤으로 보유한 드래곤을 모두 잃고 왕권이 크게 약화된 이후라면 모를까 당시의 타르가르옌 가문웨스테로스 역대 최강의 드래곤 발레리온을 비롯한 수많은 드래곤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 드래곤들을 모두 전쟁에 투입시킨다면 이길 도리가 없을텐데, 상황 파악도 못한 채 반란군을 모집하고 왕실 일가를 모욕하는 걸 넘어 암살하려고까지 한데다 패배가 확실시된 상황에서도 신에게 잘못을 빌라는 얼토당토않는 요구를 하며 여전히 뻗대는 모습을 보면 그냥 저 최고성사나 무장 종단이나 미치광이 광신도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11] 이때 하이타워 가문과 올드타운의 시민들이 왕실의 공격을 대비해서 전갈 쇠뇌와 궁병부터 석궁병까지 배치했음에도 얼마나 불안해하고 무서워했던지, 어차피 마에고르의 발레리온과 비세니아의 바가르에게 죄다 타죽게 생겼으니 죽기 전에 실컷 놀자는 생각으로 거리에 나와 먹고 마시는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최종병기인 드래곤이 두마리나 오고 있으니 이길 생각은 꿈도 못꾸고 완전히 자포자기했던 셈.[12] 마에고르에 의해 가족을 잃었으며 성도 파괴되어 가문이 몰락해버려서 복수귀가 되었다.[13] 중요한 원인은 마에고르가 부과한 높은 세금이었다. 왜냐면 종단의 봉기 뿐만 아니라 왕실에 대항하는 반란들을 진압한다고 돈을 워낙 많이 쓰는 바람에 왕실의 재정이 나빠져서 이를 해결하려고 부과한 세금이 평민들은 물론이고 여태까지 마에고르를 지지해준 귀족들까지 반발하여 적으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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