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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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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무협 소설(武俠小說)은 무림이나 협객 등을 다루는 소설 장르다. 주로 왕조 시대 중국이 배경으로 등장하나 다른 시공간도 가능하다.
2. 상세[편집]
1911년부터 시작된 신해혁명과 중화민국 건국의 격동기를 거치며 무협이라는 장르가 태동한다.[1][2] 초기 형성기를 지나, 1923년에 이르러[3] 평강불초생(平江不肖生)[4] 이 <강호기협전>을, 조환정이 <기협정충전>을 비슷한 시기에 각각 발표하여 초기 무협사에 한 획을 긋는다. 그리고 환주루주(還珠樓主)의 <촉산검협전>이나 왕도려의 <학철오부곡>[5] 이 뒤를 따른다.
평강불초생(상개연)의 성공 후 무협지를 쓰려는 작가들이 늘어났고, 세월이 지나며 남파(南派)와 북파(北派)로 나뉘어 작가들의 남북대립구조가 생겨났다.[6] 남파는 상개연과 동료 작가들, 그 문하생들의 집단을 지칭했고, 소위 정통무협지의 이름을 내세우며 신비문파나 이국의 이방인 같은 제3세력을 주인공으로 삼는 스타일을 추구하였다. 북파는 환주루주라는 필명을 쓰는 이수민(李壽民)과 왕도려(王度廬)를 중심으로 한 작가 파벌을 지칭했는데, 남파보다 역사성은 상대적으로 짧지만 대중들의 수요가 더 많다는 것을 내세워서 남파와 대립하였다. 이들은 구파명문가라고 하는 구파일방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무림 세력을 만들어 두고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는 스타일을 추구하였다.[7] 그러다가 공산주의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자 이들은 홍콩이나 대만으로 터를 옮기고 새 출발을 하게 된다.
근대무협소설계는 고전 협의소설의 계보를 이으면서 서양에서 유입된 사실주의 문학 등의 영향을 받으며 관념적 서사 중심에서 구체적인 인정의 묘사 중심으로 옮겨온다. 그리고 1950년대 이후 김용, 양우생, 와룡생[8] 등 이른바 신파 무협가들의 등장으로 무협소설계는 중흥기를 맞이한다. 여기에 고룡 등 뛰어난 후속 신세대 작가들도 나타나며 무협소설은 그동안 통속적인 오락물 정도로 치부되던 세간의 인식을 넘어 작품성까지 인정받는 새로운 경지로 가고자 노력하였다.
국내에서는 무협지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불렸으며, 아직도 이쪽이 통용된다. 무협소설이란 표현은 1990년대 후반 들어서 대본소 중심의 장르문학 시장이 무너지면서 '무협지=저질문학'이라 푸대접받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독자층이 기존 무협과 차별화하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주구독층은 중국, 대만을 비롯한 중화권 지역과 한국 정도다.[9] 동아시아 문화권이라 인기 있을 듯하지만 의외로 일본은 찬바라라는 고유 장르가 있는데다[10] 정서상의 차이도 커서 무협 관련 컨텐츠는 인지도나 소비층이 별로 없다. 음양오행과 기혈 개념이 아직도 한의학의 기본이 되어 있는 한국과 중화권에 비해 일본은 애초에 상한론을 중심으로 했기에 도교의 신비한 개념인 '기'나 더 나아가 내공같은 개념이 익숙하지 않기도 하다. 물론 음양사라는 직종이 있었던 만큼 음양오행설의 경우처럼 일본에서도 익숙한 개념은 일부 있고, 스타워즈의 포스마냥 비슷한 개념은 일본에도 얼마든지 이해는 시킬 수 있겠지만 그와 별개로 무협 자체가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인도네시아에도 1960년대 무렵부터 김용 등 중국 무협의 인도네시아어 번역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무협 소설 생태계가 구축되었다. 다만 이 경우 중국 무협의 영향을 크게 받기는 했지만 독자적인 토착 무술을 테마로 하는 경우도 많으므로 상세는 별도 문서에 서술한다.
20세기 기준 무협소설 창작이 많이 이루어진 국가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1990년대 이전의 대만, 한국 등) 자유로운 정치적 참여의 길이 막혀있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무협소설이 당시 독재 등으로 현실에 불만이 많던 지식인 작가들의 간접적인 정치적 투영로였다고 보는 주장도 있다. 물론 이 장르의 흔하디 흔한 클리셰가 강호를 평정한 뒤에 조정과 결탁(!)하여 외세를 물리치거나 조정의 뜻에 영합해 관직을 제수받고 부마가 되는 등 전형적인 입신양명물이 많은 것에 착안해서 이들 중 일부가 추구했던 것도 결국 대의보단 그런 입신양명 수준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있긴 하다. 하지만 더 깊게 생각해 보면 억압적이고 검열적 체제 속에서 결말까지 체제 전복적이면 배출구가 되기는 커녕 출판도 전에 검열에 걸려 빛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11] 검열과 탄압으로 소설 등 문화산업이 대거 제한받던 시절 그나마 이러한 장르 소설이 일종의 배설구 역할을 한 측면도 분명 있다. 작가마다 창작 동기는 다양할 것이니 몽땅 묶기보단 이런저런 속사정도 있었다 정도로 보면 될듯. 민주화된 이후에도 무협소설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거 보면 결국 무협이 인기를 끈 주된 요인은 1차적으론 재미있어서가 가장 강할 것이다.
무협이 만들어내는 재미라는 것은 복합적인 요소들의 조합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이 중엔 무협 특유의 한자를 기반으로 한 언어의 예술적 유희 부분을 거론하는 의견도 있다. 이는 한자에 생소한 21세기 신세대 독자들에겐 무협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한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들에겐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하는 요소라는 것. 과거부터 다른 장르문학과 비교해도 유명 무협소설 작가들이 전체적으로 연륜이 쌓인 고학력자들이 많은 것도 이런 연유가 있을듯.[12] 물론 무시하고 봐도 줄거리 이해에 큰 걸림돌이 되진 않는 경우가 많긴 하다. 특히 판협지 시대 이후부턴 더 그렇다.[13]
무협소설은 같은 용어를 쓰더라도 실제 소설마다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또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했다 해도 어차피 가상역사물의 범주라 고증을 철저히 살려도 결국 역사소설이다. 리얼리즘 항목에도 나와있듯이, 그 이상 가면 그냥 역사 논문이 된다. 물론 실제 사건이나 역사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설정의 경우 대부분 누군가 머리를 짜내 만든 허구이기 때문에 반드시 000를 따라서 작성되어야 한다는 규정 같은 것은 없다. 단, 동양풍 시대의 특성상 서구 언어에서 비롯된 외래어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 룰이며, 최대한 유사한 의미의 한국어(순우리말과 한자어까지는 허용) 문구로 쓰는게 좋다. (예: 시너지→상승효과.) 이웃인 인도나 서역의 언어, 혹은 남만을 통해 들어온 서구 언어는 음차, 혹은 가차해서 쓰기도 한다. 그리고 현재 사용하고 있는 표준 도량형을 가급적 쓰지 않는 등 일종의 불문율은 있다. 물론 작가가 설정하기 나름이라서, 만약 본 항목 설명이 당신이 읽은 작품과 다르다면, 그 작품 속에서 통하는 설명을 받아들여 읽기를 권한다. 이는 판타지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내 무협 소설에선 실제 중국사와는 무관하게 무협의 세계관만 가져오는 경우도 많다.[14] 구파일방, 무림세가 등이 대표적. 무협소설의 세계관이나 무공의 설정은 좋아하지만 방대한 중국사까지 일일이 알기엔 진입장벽이 너무 커서 그런 것으로 추정되며 말그대로 지역과 문파의 이름만 가져오는 케이스나[15] 아예 새로운 세계관으로 시작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존재한다.[16]
관련 영상
3. 대한민국의 무협 소설[편집]

4. 설정[편집]

5. 작품 목록[편집]

6. 작가 목록[편집]

7. 기타[편집]
- 19세기 청나라에선, 무협소설스러운 판타지에 낚여 국가의 운명을 뒤흔든 사건이 있었다. 바로 의화단 운동. 의화단은 의화권이라는 권법을 수련하던 집단이었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권법을 100일간 수련하면 '도창불입(刀槍不入)'의 몸이 되어 칼과 창에도 상처를 입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19세기 내내 산둥과 즈리를 중심으로 세력을 넓혀가더니 부청멸양(扶淸滅洋) 기치를 걸고 의화단 운동을 일으킨다. 급기야 서태후까지 이들의 시범을 본 후 완전히 믿게 되었다. 그래서 서태후는 외세를 몰아내기 위해 이들에게 의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되려 외세에 의해 이들이 개박살 나고 신축조약으로 청나라는 빈사 상태가 된다.
도검불침이지만 총은 아니었다.
- 실존인물 중에서도 무력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인 사람을 두고 역사에서 혼자 무협지 쓰고 있는 사람이라 표현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군대'를 통솔을 잘 하는 명지휘관이 아니라 일신의 무용으로 전장에서 무쌍을 찍는 경우를 주로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고려의 무장 척준경. 사실 그 외에도 관우나 문앙, 김유신, 이성계, 리처드 1세 등 역사서에 홀로 무협지를 쓰는 인간흉기들이 의외로 많다. 다만 이런 사람들이 반드시 유능한 지휘관으로 비례하는 건 아닌 경우도 종종 있는 게,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면 지휘관급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런 사람이 후방에서 효율적 지휘를 하지 않고 제일 앞에서 칼춤이나 추고 있는 건 물론 솔선수범으로 아군의 사기를 높이는 선순환이 될 수는 있지만 사실 온전히 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삼국지연의의 여포 이미지가 대표적으로 이런 경우.
- 무협소설 이미지상 남성 작가들이 많을 것 같고 실제 그렇기도 하지만, 진산 등처럼 여성 작가도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다. 심지어 배우 강소라도 10대 시절 비연신검이라는 무협소설을 낸 바 있다.
8. 관련 문서[편집]
[1] 《수호전》과 같은 고전소설이나 1910년대 이전의 작품을 '협의 소설(俠義小說)'이라고 하며 '무협 소설(武俠小說)'은 1910년대 이후의 작품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는 것이 일반적 용법이다. [2] 무협소설의 기원을 사마천이 기록한 <사기>의 『자객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는 사람도 있지만, 애초에 소설이 아니긴 하다. 물론 이후 시대에 현대 무협소설과 유사한 체계를 갖춘 작품들도 몇 있긴 하지만, 《서유기》처럼 동양풍 판타지와의 차이점 등 따질 부분이 있어 현대 무협 장르는 어찌됐든 20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3] 1922년이란 말도 있다.[4] 필명이고, 본명은 상개연(向愷然). <홍잡>에 『강호기협전』을 6년 동안 연재한다. 일각에선 최초의 무협지로 평가받기도 한다.[5] 5부작 중 네 번째 작품을 주요 원작으로 이안 감독이 만들어 2000년 개봉한 동명 무협 영화가 바로 <와호장룡>이다.[6] 이게 정파/사파 개념의 토대가 된 것 아니냔 의견도 있다.[7] 세간에 알려진 구파일방이란 것은 북파가 만든 구파명문가란 설정에 김용의 독자적인 설정인 개방을 한국 작가들이 추가하여 만들어진 것이다.[8] 구파무협과 신파무협의 과도기적인 인물이라 보는 것이 맞다.[9] 김용처럼 유명한 작가의 소설 정도는 다른 나라에도 수출되지만, 무협소설이란 장르 자체가 완전히 정착한 것은 중화권을 제외하면 한국 정도다. 이는 이시기 무협물도 많던 홍콩 영화가 한국에서 인기를 끈 영향도 있을듯하다. 하여튼 이러다보니 요즘에는 한국에서 무협소설이나 무협소설을 원작으로 한 웹툰 등 각종 무협물을 역수출하는 경우도 있다. 비록 김용 등 대가들의 영향력에 미치지는 못해도 용대운, 좌백, 진산, 서효원 등 국내에서 활약한 무협작가들의 필력 역시 어지간한 중화권 작가들 못지 않았다.[10] 이후엔 주로 소년만화의 능력자 배틀물들이 이를 대체한다.[11] 실제 한국에선 필화 사건인 무림파천황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12] 무협소설의 거장 김용도 무협소설 쓰고 싶다는 학생들에게 글을 잘 쓰는 것만으로는 좋은 작품을 쓸 수 없다고 조언하기도 하였다.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라는 것. 물론 작가도 세월이 지나면서 성장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초기 데뷔작부터 엄청난 소양을 요구하는건 웬만한 천재 아닌 이상 무리인 부분도 있긴 하다.[13] 여기서 설명하는 정통무협적인 요소나 인문학적 소양같은 경우는 국내 신무협 시대에서 요구했던 그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반대로 말하면 신무협 항목에도 있듯 신무협 시대가 저문 원인 중 하나기도 하다.[14] 사실 판협지 시대 이후부턴 애초에 이런 류가 주류다. 한동안은 한반도와 연계시켜 장백파 등이 등장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무협 세계관 자체가 현실과 점점 멀어지는 경향이 있다보니 어느순간 유행이 지났다. 물론 써도 상관은 없지만.[15] 무한전생-무림의 사부나 무협을 모르는 천마님 등. 퓨전 무협쪽에서 자주 보인다.[16] 성운을 먹는 자 등은 동양 판타지쪽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