뭄타즈 마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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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제국 황후
뭄타즈 마할
ممتاز محل


파일:Portrait_of_Mumtaz_Mahal_(Arjumand_Banu_Begum).jpg

이름
아르주만드 바누 베굼
ارجمند بانو
출생
1593년 4월 27일
파일:mughalalam.svg 무굴 제국 아그라[1]
사망
1631년 6월 17일 (향년 38세)
파일:mughalalam.svg 무굴 제국 부르한푸르[2]
재위 기간
파디샤 베굼[3]
1628년 1월 29일 ~ 1631년 6월 17일 (4년)
남편
샤 자한
무덤
타지마할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기타



1. 개요[편집]


1593년 4월 27일 ~ 1631년 6월 17일

뭄타즈 마할은 인도 무굴 제국 5대 황제 샤 자한아내이자, 무굴 제국 황후이다. 황후가 되기 전의 이름은 아르주만드 바누이다.

2. 생애[편집]


무굴 제국의 페르시아계 귀족인 아부 라 하산 아사드 칸과 그의 아내 디완지 베굼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총명했는데 아랍어페르시아어를 자유롭게 구사했고 시를 잘 지었다.

황후가 되고 나서 남편의 최측근이 되어 그의 고문이 되기도 했다. 남편과의 금슬이 매우 좋아 샤 자한이 전장에 그녀와 함께 갔을 정도로 총애했다고 한다. 샤 자한 본인이 뭄타즈 마할에 대해

털끝만큼의 오점도 없다

고 말할 정도니 말 다 했다.

19년 동안 14명의 아이를(8남 6녀) 낳았으며, 1631년에 14번째 아이이자 막내딸인 가우하라 아라 베굼을 낳고 나서 산후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향년 38세.


3. 여담[편집]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뭄타즈 마할이 왜 죽었는지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견을 내놓았는데 '너무 애를 많이 낳았다', '산후조리를 잘 못해서' 등의 설이 있다. 상술했듯이 14명이나 아이를 낳은 데다가 황후의 임무를 하며 샤 자한과 함께 전쟁터에 종군까지 했으니 건강이 좋았을 리가 없었다.

뭄타즈 마할이 죽자 샤 자한은 큰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깨어난 뒤에는

"뭄타즈 마할! 뭄타즈 마할!"

이라고 부르짖으며 울었다고 한다. 이후 샤 자한은 오로지 아내에 대한 순애보적 집념만으로 아내의 영묘인 타지마할의 건설을 명한다. 특히 새 황후도 들이지 않았으며 그가 아끼는 장녀 자하나라 공주가 황후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타지마할의 건설을 위해 수많은 자금과 인력을 낭비하면서 신하들과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고, 결국 뭄타즈 마할 소생의 셋째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폐위당하고 감금당한 후, 아들의 모진 학대[4]에 시달리다 쓸쓸하게 눈을 감는다. 이후 샤 자한의 유해는 뭄타즈 마할의 유해와 함께 공동 안장됐다.

4. 기타[편집]


고려에는 이와 비슷한 인물로 노국대장공주가 있다. 남편들도 아내들의 사후(死後)에 암군이 되어 버렸다는 것도 비슷하다.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뭄타즈 마할은 다산 이후 마지막 14번째 아이를 낳고 죽었지만, 노국공주의 경우에는 아이도 하나 낳지 못하고[5] 죽었다는 게 차이점이다.[6]

창작물에선 그녀와 비슷한 캐릭터로 <옹정황제의 여인>의 순원황후가 있다. 남편을 애처가로 만들었고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요절했고, 이후 남편 성질머리를 망가뜨리는 악영향을 주는데 일조했다는 것도 비슷하다. 다만 이쪽의 경우 남편이 대놓고 암군까진 안 돼서 내명부 관리는 개판으로 했어도 외부 정치는 최후까지 열심히 공들여 했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는 주인공 형제가 부부 관광객을 대상으로 가이드 사기를 하는 장면에서 언급되는데,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관광객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이때 관광객이

'애를 낳다 죽은 걸로 알고 있다'

고 핀트를 걸자, 능청스럽게

'맞습니다. 애를 낳기 위해 병원에 가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지요.'

라고 커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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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파일:인도 국기.svg 인도 아그라.[2]파일:인도 국기.svg 인도 마디아프라데시.[3] 무굴 제국의 황후를 칭하는 호칭이었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었고, 제국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여성을 의미했다. 로마 제국의 아우구스타와 거의 같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4] 아우랑제브는 아버지를 평생에 걸쳐 철저히 학대했는데, 생필품 미지급은 기본이었고 아버지가 물이 너무 짜서 강물이라도 마시게 해달라고 청원했음에도 눈 깜짝 하지 않았다. 결국 보다못한 누나 자하나라가 동생 아우랑제브에게 아버지를 학대하지 말라고 항의했음에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사실 자하나라는 아우랑제브의 경쟁자인 첫째 남동생 다라 시코와 친했고 그를 황태자로 지지한 터라 아우랑제브가 그녀를 미워했다. 특히 자하나라 베굼도 아버지와 같이 별궁에 유폐된 처지였다. 나중에 샤 자한이 사망하고 나서 자하나라가 아우랑제브한테 용서를 빌었고 아우랑제브도 그녀를 용서하고, 화해하여 유폐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5] 그 아이가 태어났다면 남편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첫 번째 아이가 되는 셈이었으나, 노국공주는 그 첫 번째 아이가 될 뻔 했던 아이를 낳다가 죽고 만 것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 아이까지 같이 죽었다는 것이다.[6] 사실 과거엔 출산 관련 의료기기나 의료시설, 의료기술, 산후처리, 위생문제 등이 조악하거나 없었기에 이렇게 출산 도중에 죽거나 출산 후에 얼마 안 가 죽는 경우가 왕족이나 천민 귀천 할 거 없이 매우 흔했다. 전반적인 의료수준이 발전한 현대에 와서야 그나마 출산 성공률이 더 올라갔으나, 현대에서도 제대로 된 의료시설 내에서 전문 의사를 포함한 의료인들의 지원을 받아 출산하는 산모들 중에도 출산 도중 산모가 견디지 못하고 죽거나 아이가 출산 과정을 버티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꽤 드물게나마 발생하기도 한다. (보통 산모의 몸이 약하거나 나이가 많았거나 아이가 역아이거나 탯줄 쪽에 문제가 있다던가 하는 등등, 하여튼 정상적인 출산 과정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에는 이런 비극적인 일이 터진다.) 그만큼 출산은 예나 지금이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다. 물론 사전에 철저한 질병 예방과 관리, 준비를 하는 만큼 출산 성공율이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