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비행기 참사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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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ich air disaster
British-European-Airways-Flug 609

항공사고 요약도
발생일
1958년 2월 6일
원인
이륙 도중 기체 전복
탑승인원
승객: 38명
승무원: 6명
사망자
23명
생존자
21명 中 부상자 19명
기종
Airspeed AS.57 앰배서더
항공사
브리티시 유로피언
출발지
베오그라드
경유지
뮌헨
도착지
맨체스터

파일:attachment/19580001.jpg

파일:attachment/19580002.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unich_Clock.jpg

올드 트래포드에 있는 추모 시계. 상단의 1958년 2월 6일은 사고 일자이며, 하단의 MUNICH는 사고장소인 뮌헨을 나타낸다. 가운데의 시계는 당시 사고 시각인 3시 30분경에서 멈춰 있다고 알고있는 사람이 있지만, 사실 그냥 시계다. 제 시간대로 간다.[1][2]

1. 사건 개요
2. 생존자
2.1. 항공사 직원
2.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단
3. 사망자
3.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단
3.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 스탭
3.3. 취재기자단
3.4. 기타
4. 사고의 원인
5. 기타
6. 관련 문서


1. 사건 개요[편집]




파일: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로고.svg
Movie: UNITE. 영화로 제작되었다.

1950년대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거만함에 빠져 자국 리그인 프리미어 리그 우승 팀의 유러피언컵의 출전을 막아왔다. 이전 리그 우승팀이었던 첼시 FC 등은 그런 협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출전하지 않았지만,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감독 맷 버스비는 세계적인 팀들과 겨루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축구협회의 권고를 무시하고 유러피언컵에 참가하게 된다. 당시 유러피언컵 원정은 리그와 일정이 촉박해 버스비는 협회에 리그 일정을 미뤄 줄 것을 부탁했지만, 오히려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버스비가 자신들을 무시했다는 것에 앙심을 품고는 일정에 맞춰 돌아오지 못하면 승점 삭감을 감수해야 한다는 엄포를 놓았고 결국 맨유의 선수단은 일정에 쫓겨 서둘러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리고 참사의 시작은 1958년 2월 6일, 맨유가 유고슬라비아FK 츠르베나 즈베즈다와의 유러피언컵 8강 원정 경기를 치르고 선수단 비행기로 귀국하는 중에 일어났다. 유고슬라비아에서 잉글랜드로 돌아오던 영국 유러피언 항공 609편(British European Airways Flight 609) 비행기가[3] 경유지 뮌헨 공항에서 이륙하던 도중에 기체가 전복되고 만 것이다.

이 사고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단 중 8명을 포함하여 구단 스태프, 취재기자단을 통틀어 23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맷 버스비 감독 체제 아래 구단의 첫 번째 화양연화를 맞이하면서 당시 최강이라 불리던 레알 마드리드 CF에게 전혀 부족하지 않다는 평가를 듣던 절정기였는데, 너무나 치명적인 타이밍에 벌어진 참사였다.

당연하겠지만 팀의 주축 멤버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맨유의 전력은 그야말로 바닥으로 떨어졌으며, 간신히 살아남은 선수들 역시 회복을 위해 긴 시간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당시 잉글랜드 1부 리그를 호령하던 맨유는 그야말로 암흑기로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사건 이후 당시의 전력을 회복하는 데에는 1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잉글랜드 전체가 비통함에 빠졌던 사건이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에서 지우고 싶은 손실이자 비극이다. 영국 현지에서는 사건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매년 희생자들의 추도 묵념의 시간을 가진다.

당시 잉글랜드 팀의 유럽 대회 참여를 못마땅히 여긴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비협조로 경기 일정이 촉박해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비행기를 선택했던 탓에 일어난 사고였기 때문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 중에서는 축구협회를 비난하는 의견도 있다.


2. 생존자[편집]




2.1. 항공사 직원[편집]


로즈마리 체버튼 (스튜어디스)[4]
마가렛 벨리스 (스튜어디스. 1997년 사망)
조지 윌리엄스 로드리게스 (통신담당. 1998년 사망)
제임스 테인 (기장) (1921~1975)

2.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단[편집]


조니 베리 (FW.1926~1994)[5]
잭키 블란치플라워 (MF.1933~1998)[6]
바비 찰튼 (MF)
빌 폴크스 (DF.1932~2013)
해리 그랙 (GK.1932~2020)[7]
케니 모건 (FW.1939~2012)
알버트 스케논 (FW.1935~2009)
데니스 바이올렛 (FW. 1999년 사망)[8]
레이 우드 (GK. 1931~2002)
맷 버스비 (감독.1909~1994)[9]


3. 사망자[편집]



3.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단[편집]


파일:attachment/19580005.jpg

사진 속 붉게 칠해진 선수들이 사고 희생자이다.

제프 벤트 (DF)
로저 바인 (DF)
에디 콜먼 (MF)
마크 존슨 (MF)
데이비드 펙 (MF)[10]
던컨 에드워즈 (MF)[11]
토미 테일러 (FW)[12]
빌리 휄란 (FW)


3.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 스탭[편집]


월터 크리그머 (클럽 비서)
톰 커리 (트레이너)
버트 월리 (수석코치)


3.3. 취재기자단[편집]


알프 클락 (맨체스터 이브닝)
돈 데이비스 (맨체스터 가디언)
조지 팔로우스 (데일리 헤럴드)
톰 잭슨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
아치 레드브룩 (데일리 미러)
헨리 로즈 (데일리 익스프레스)
에릭 톰슨 (데일리 메일)
프랭크 스위프트 (뉴스 오브 더 월드 /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15일 후 사망)[13]


3.4. 기타[편집]


케네스 레이먼트 (공동기장. 후송되었으나 3주 후 사망)
톰 케이블 (스튜어드)
벨라 미클로스 (여행 대행사 직원)
윌리 사티노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서포터)


4. 사고의 원인[편집]


원인은 활주로에 쌓인 슬러시였다. 슬러시는 따뜻한 기온이나 화학적 처리로 인해 눈의 성질이 변한 혼합물로 당시 이 적당히 녹아서 질퍽해진 점성을 띈 상태가 된 것을 말한다. 막 이륙속도에 도달한 항공기가 이 슬러시를 통과하면서 속도가 느려져 이륙을 중단하기에는 너무 빠르고 이륙하기에는 너무 느린 속도에서 기수를 들게 되었다. 결국 이륙에 충분한 속도를 받지 못하고 이륙한 항공기는 실속하면서 인근 민가에 추락, 주차된 트럭과 충돌하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초기 독일의 조사에 의하면 날개 위에 쌓인 눈에 대하여 방빙 조치를 하지 않아 사고가 난 것으로 지목되었다. (영국 조종사 과실). 하지만 기장 제임스 테인은 어마어마한 비난을 감당하면서 11년간 끈질기게 결백을 주장한 끝에 영국에서는 재조사가 2차례 이루어졌고, 여러 실험을 통한 입증 끝에 활주로에 5cm 이상 쌓인 슬러시가 원인인 것으로 발표되었다. (독일 비행장 과실). 결정적으로, 사고 직후 공항에서 항공기로 달려온 독일인 파일럿이 날개를 확인했을 때 날개 위에 눈은 없었다는 증언을 독일 조사위원회에서 누락한 것이 밝혀졌으며, 이에 대하여 독일 조사위원장은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독일은 공식적으로 조종사가 방빙 조치를 하지 않아 사고가 났다는 기존의 입장을 끝까지 철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공항들은 609편에 대한 영국의 발표에 따라 활주로 슬러시에 조치를 취하여 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최강의 인기 선수단을 사망케 했다는 누명을 쓰고도 11년간 포기하지 않고 끝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한 테인 기장은 "The difference between the impossible and the possible is merely a measure of man's determination."이라는 말을 남겼다. 해석하면 "의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정도의 뜻이다.[14]


5. 기타[편집]


파일:external/4.bp.blogspot.com/United%2B%25282011%2529.jpg

당시의 사고를 바탕으로 2011년, 영화 유나이티드(원제: United. 주연 데이비드 테넌트) 가 개봉하였다.

국내 스포츠 웹툰에서 이 사건을 짤막하게 연재한 작품이 있다. 1편 2편 3편

파일:Munich-Getty_3336314k.jpg

2008년 2월 10일, 2007-08 프리미어리그 시즌 26라운드 맨체스터 시티 FC와의 맨체스터 더비가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렸는데, 마침 뮌헨 비행기 참사 50주기와 겹치게 되어 맨유는 참사 당시의 유니폼을 재현하여 맨시티와의 경기에 입고 뛰었다. 경기 결과는 1-2로 맨유가 패배.

맨체스터 출신이자 전 스미스 보컬리스트 모리세이의 'Munich Air Disaster 1958' 는 뮌헨 비행기 참사 사고를 추모하기 위한 곡으로, 7집 <You Are The Quarry> Deluxe에 수록되어 있다.



파일: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로고.svg
Manchester Un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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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36
영국 밴드 더 스미스 출신
싱어송이터 모리세이뮌헨 비행기 참사를 주제로
맨유를 위해 만든 헌정곡.
Morrissey - Munich Air Disaster 1958
We love them
We mourn for them
Unlucky boys of red
I wish I'd gone down
Gone down with them
To where mother nature makes their bed
We miss them
Every night we kiss them
Their faces fixed in our heads
I wish I'd gone down
Gone down with them
To where mother nature makes their bed
They can't hurt you
Their style will never desert you
Because they're all safely dead
I wish I'd gone down
Gone down with them }}}'''


이와 유사한 사건으로, 1970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 헌팅턴 시에 있는 마셜(Marshall) 대학의 미식축구팀 선더링 허드(Thundering Herd)의 선수들이 비행기 사고로 탑승한 75명 전원이 사망하여, 대학과 지역 주민들은 엄청난 슬픔에 시달려야 했다. 이후 데드몬 총장은 미식축구팀을 재건하기로 결정하고, 20년에 걸친 노력 끝에 선더링 허드는 다시 강팀으로 부활하게 되었다. 이를 소재로 영화 "We are Marshall"이 제작되었다.

이후 1993년. 1년뒤 열릴 미국 월드컵 아프리카 예선에서 잠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원정길 도중 비행기 사고로 선수단 전원 사망한 잠비아 축구 국가 대표팀 비행기 참사가 일어났고[15], 2016년 11월 28일 콜롬비아에서 브라질 프로축구팀 샤페코엔시의 선수단 및 관계자 81명을 태운 여객기가 추락해 76명이 사망한 라미아항공 2933편 추락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가 일어나기 9년 전인 1949년 이탈리아의 토리노 FC수페르가의 비극을 겪은 것도 있었다.

또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뿐만 아니라 FC 바이에른 뮌헨도 이날의 참사를 결코 잊지 않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홈 경기장인 알리안츠 아레나의 박물관에 당시 사건을 기록 및 관련 물품을 전시하여 그날의 사건을 잊지 않고 있으며 비행기가 추락한 장소에 해마다 위문 방문을 오는 맨유 팬들을 위해 위령비를 세웠으며 사건 현장을 아예 맨체스터플라츠로 이름을 변경했다.#

사고 후 레알 마드리드 CF에서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페렌츠 푸스카스를 맨유로 이적시키려 했다. 이게 정말 대단한 게, 이때 디 스테파노와 푸스카스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자 레알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스타 선수들인만큼 굉장히 충격적인 일이었다.[16] 세계 최고 수준의 슈퍼스타들의 이적을 통해 다시 팬들을 불러모으며 성적까지 보장해주고자 함이었는데, 이런 레알의 선심은 까다로운 조건[17]에 막혀 실패하였다. [18]

라이벌인 리버풀은 무려 9명의 선수들을 맨유로 임대를 보내 리그를 마치는 것을 도와주었다. 또한 매년 sns에 추모글을 올리고 있고, 매년 안필드의 위령비를 만들어놓고 있다.

이 외에도 같은 리그의 많은 팀들이 임대를 보내 리그를 진행하는걸 도와주고 힘든 시기를 겪는 맨유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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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뮌헨 비행기 참사는 3시 4분경에 일어났다.[2] 파일:뮌헨 비행기 참사 시간.jpg[3] 기종: Airspeed AS.57 앰배서더 (기체 등록번호: G-ALZU)[4] 현재 바비 찰튼과 더불어 이제 2명 뿐인 이 참사의 생존자이다.[5] 사고 후유증으로 다시는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되었다.[6] 사고 후유증으로 은퇴, 여담으로 대니 블랜치플라워의 동생이다.[7] 사고 당시 맷 버스비 감독을 비롯하여 여러 명을 구조하였다. 팀의 주전 골리로써 야신의 라이벌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2020년 2월 16일 만, 87세로 사망하여 선수진에서 이제 이 참사 생존자는 1937년생인 보비 찰튼만 남게 되었다.[8] 부상 회복 후 팀에 복귀했지만, 사고 여파로 기량이 예전같지 않아졌다.[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알렉스 퍼거슨과 쌍벽을 이루며 축구 역사를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명장이다. 사고 회복을 한 후 팀의 재건에 매진하여 우승컵을 들어올리는데 성공했고 맨유 회장도 역임했고, 팀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후 세상을 떠났다. 올드 트래포드 앞에는 버스비 감독을 기리는 동상이 있고 그의 이름을 딴 거리도 있다.[10] 레알 마드리드가 당시 유로피안 컵에서 요주의 선수로 꼽았던 선수였다. 데이비드 펙을 막기 위한 선수만 따로 영입했을 정도다.[11] 1957년에 불과 21세의 나이로 발롱도르 3위로 선정되었을 정도로 장래가 대단히 유망한 선수였다. 이 사고가 없었다면 펠레, 마라도나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을거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역대 최고 재능은 바비 찰튼도, 조지 베스트도, 라이언 긱스도 아닌 던컨 에드워즈였다고 한다. 사고 직후에는 살아있었으나 보름 만에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12] 사고로 사망했을 당시 나이가 26세였는데 센터 포워드로 맨유에서 166경기에 출전해 112골을 넣는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선수였다.[13] 맨시티의 전설이기도 하다. 포지션은 골키퍼. 1934년 포츠머스와의 FA컵 결승 때 너무 긴장한 나머지 경기 직후 기절을 해 버리는 황당한 일을 겪기도 했다.[14] 직역하면 "불가능과 가능의 차이는 단순히 의지의 양의 차이에 불과하다." 라는 것이다.[15] 원인은 엔진 고장+조종사의 피로누적.[16] 항목을 직접 보면 알겠지만 디 스테파노는 마라도나와 펠레도 인정한 올라운더 무결점 플레이어였으며, 푸스카스는 일반인한테도 유명한 푸스카스 상의 그 푸스카스이다.[17] 당시 영어를 못하는 선수는 영국 리그에서 뛸 수가 없었다.[18] 맨유가 겪은 참사와 여러 구단들에서 손을 내밀었다는걸 생각하면 예외로 넘어가줄만도 한데 자국 리그 선수들이 못큰다는 이유까지 들며 FA가 결사반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