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슬라프 블라제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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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슬라프 블라제비치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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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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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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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파일: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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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3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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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10대




크로아티아의 前 축구감독


파일:블라제비치.jpg

이름
미로슬라프 블라제비치
Miroslav Blažević
출생
1935년 2월 10일
유고슬라비아 왕국 트라브니크시
사망
2023년 2월 8일 (향년 87세)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국적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display: none; display: 크로아티아"
행정구
]]

신체
179cm
직업
축구선수(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디나모 자그레브(1957~1958)
FK 사라예보(1958~1959)
HNK 리예카(1959~1964)
FC 시옹(1964~1966)
감독
브베 스포츠 05(1968~1971)
FC 시옹(1971~1976)
FC 로잔 스포르(1976~1979)
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1976)
HNK 리예카(1979~1980)
GNK 디나모 자그레브(1980~1983)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1983~1985)
FC 프리슈티나(1986)
GNK 디나모 자그레브(1986~1988)
FC 낭트(1988~1991)
PAOK FC(1991~1992)
GNK 디나모 자그레브(1992~1994)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1994~2000)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2001~2002)
NK 오시예크(2002)
GNK 디나모 자그레브(2002~2003)
NK 무라(2003)
NK 바라주딘(2003~2005)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2005)
뇌샤텔 크사막스(2005~2006)
NK 자그레브(2006~2008)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축구 국가대표팀(2008~2009)
상하이 선화(2009~2010)
중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2010~2011)
메스 케르만(2011~2012)
NK 자그레브(2012~2013)
FK 슬로보다 투즐라(2014)
NK 자다르(2014~2015)
국가대표
없음

1. 개요
1.1. 축구인 생활
1.1.1. 선수 시절
1.1.2. 감독 시절
1.1.2.1. 크로아티아 이전
1.1.2.2. 크로아티아 대표팀
1.1.2.3. 크로아티아 이후
1.2. 사망
2.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크로아티아(구 유고슬라비아 SFR)축구선수 출신 감독.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고 월드컵 3위를 차지하며 분리 독립 이후 첫 번째 전성기를 이끈 바 있다.

1.1. 축구인 생활[편집]



1.1.1. 선수 시절[편집]


1957년디나모 자그레브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하여 FC 시옹에서 1966년에 은퇴했다.


1.1.2. 감독 시절[편집]



1.1.2.1. 크로아티아 이전[편집]

크로아티아 감독이 되기 전에 여러 팀들을 많이 옮겨다녔다. 국가대표 감독 경험으로는 스위스 감독직을 잠깐 한게 전부였다.


1.1.2.2. 크로아티아 대표팀[편집]

1994년에 부임하여 유로 1996에서는 8강까지 진출했다. 이 때 크로아티아는 독일에 2:1로 져서 8강 7위로 마쳤다. 하지만 신생 독립국인 점을 감안하면 8강 7위도 충분한 성과였다. 그런데 2년 뒤 크로아티아는 독립국으로써 처음 출전한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당시 기준으로 엄청난 이변을 일으키는데......

조 편성 결과 H조에 편성되었다. 같은 조에는 아르헨티나, 자메이카, 일본이 있었다. 여기서 최강국 아르헨티나를 제외하면 크로아티아를 포함한 나머지 3개국 모두 월드컵에 처녀출전한 국가들이었다. 조 운이 생각보다 매우 따른 셈. 또한 블라제비치 감독은 유로 96 멤버를 대거 유지하면서 어린 팀보다는 노련한 팀으로써 크로아티아 대표팀을 구성해 대회에 출전했다.

1차전부터 간판 공격수 다보르 슈케르의 득점행진이 시작되었다. 자메이카전은 3:1, 일본전을 1:0 으로 연거푸 잡아내며 조기 16강을 확정하고 마지막 아르헨티나전은 1:0으로 패배하여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는 루마니아다보르 슈케르의 결승골로 누른 뒤 8강에서 독일을 만났는데 3:0으로 격파했다. 4강에 올라가니 홈팀 프랑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스전은 다보르 슈케르의 선제골로 리드를 가져갔으나 릴리앙 튀랑이 인생경기를 펼치는 바람에 2:1로 패배하여 3위 결정전으로 떨어졌다. 그다음 상대는 네덜란드였는데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다보르 슈케르가 득점을 하여 2:1로 승리하여 대회 3위를 차지했다. 이 때 다보르 슈케르는 6골로 대회 득점왕을 차지하게 되었다.

1987년 유고슬라비아의 U-20 월드컵 우승 멤버이자 유로 1996 8강 진출 멤버들을 대거 포함시킨 노장위주의 팀을 구성한 선택이 적중하며 블라제비치 감독은 일약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도 그럴것이 구성된지 10년도 안된 대표팀을 이끌고 무려 월드컵 3위를 차지한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라제비치 감독의 입지는 유로 2000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한순간에 위태로워졌다. 그나마 월드컵 3위의 공이 있기 때문에 2002 월드컵 예선에서도 기회를 부여받았고 젊은 선수들을 여럿 기용하며 팀의 세대교체를 시도했다. 그러나 예선 초반 2경기에서 연거푸 비기며 본선행에 먹구름이 끼자 사실상 경질되었다.


1.1.2.3. 크로아티아 이후[편집]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난 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협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1] 그러나 대한민국에 거스 히딩크가 선임되며 블라제비치는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최종예선에서 1위를 차지하는데 실패하며 플레이오프라는 가시밭길을 힘겹게 뚫고 대륙간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했으나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 막혀서 결국 2002년 한일 월드컵 본선행에 실패했다. 크로아티아 대표팀과 이란 대표팀에서 연거푸 실패한 뒤 이후 여러 팀을 옮겨다니다가 2014년에 지도자 생활도 은퇴했다.


1.2. 사망[편집]


2023년 2월 8일, 오랜 암투병 끝에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88세 생일을 2일 남기고 향년 8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2. 둘러보기[편집]




[1] 이용수 당시 기술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협상 1순위는 에메 자케, 2순위는 거스 히딩크, 3순위는 조 본프레레 그리고 4순위가 블라제비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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