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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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자격요건
3. 입상 단위
4. 왕관에 대하여
5. 위상
5.1. 추락의 원인
6. 역사
6.1. 미스코리아 이전
6.2. 역대 대회 및 입상자
7. 지역 대회
8. 논란
8.1. 수영복 심사
8.2. 국제대회 출전권 박탈
8.3. 대회 관련 비리
8.4. 사상 최초의 재투표
8.5. 예전보다 못한 참가자들의 미모와 성형 논란
8.6. 그 외
9. 녹원회
9.1. 역대 회장
10.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미스코리아 로고 (흰색).svg
파일:미스코리아 로고 (골드).svg
흰색
골드

홈페이지
아름다운 꽃 진선미 보란듯이 피었네
햇빛처럼 달빛처럼 찬란하고 은은하게
꿈속에서 뽑힌 너는 미스코리아
꽃 구름에 쌓인 너는 미스코리아
자랑스런 꽃 진선미 향기롭게 피었네
하늘처럼 바다처럼 넓은마음 푸른마음
꿈속에서 뽑힌 나는 미스코리아
꽃 구름에 쌓인 나는 미스코리아
공식 주제가[1]

'글로벌 E&B'가 주최하는 대한민국미인대회로 1957년부터 시작했다.

미스코리아 입상자는 글로벌 E&B와 계약하여 글로벌 E&B 소속으로 활동하게 된다. 2017년 당시엔 회사 이름이 (주)미스코리아였으나, 2018년 한국일보 E&B, 2021년 글로벌 E&B 순서로 이름이 변경됐다.[2]

미스코리아에서 입상하면 미스 인터내셔널, 미스 어스 등 국제 미인대회에도 나갈 수 있다. 과거에는 미스 유니버스, 미스 월드에도 나가도록 연계되어 있었지만, 미스 유니버스는 라이센스가 회수되어 2016년 미스 유니버스 코리아로 별도의 대회가 열려 우승자가 2018년 대회에 출전했고, 2017년 대회엔 미스 월드 코리아 김제니가 출전하게 되어 기존에 미스코리아 진으로 당선된 이민지, 김진솔은 미스 유니버스에 참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에는 미스코리아 선이 한국 대표로 미스 월드에 나갔지만 2011년부터 미스 월드 코리아란 별도의 대회의 우승자가 한국 대표로 나가게 되었다.[3]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는 타이틀은 전국 단위의 본선 대회 입상자에게만 붙이는 말이다. 지역대회 수상자로 본선대회에 출전했다고 해서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는 말을 쓸 수 없다. # 허나 이러한 규정은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 그나마 지역대회 입상자들은 어쨌든 본선 참가자들이라 크게 문제가 되는 편은 아니지만, 몇몇은 지역대회에 참가만 해놓고 본선에는 발도 안 담군 사람들이 멋대로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는 말을 쓰는 경우도 있다.

2. 자격요건[편집]


학력(고졸 이상), 연령(만 18~28세)[4], 기혼 유무(미혼) 등의 제한 요소가 있으며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미스코리아 지역 대회에서 입상해야 한다. 예전에는 신장도 포함되었으나 현재는 신장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3. 입상 단위[편집]


미스코리아의 1등, 2등, 3등은 각각 '진선미'라고 불린다. 진(眞)은 참됨, 선(善)은 착함, 그리고 미(美)는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미인대회인데 왜 아름다움이 3위인지에 대해 의아할 수 있는데, 이것은 플라톤의 영혼3분설에 기반한 심미적 아름다움의 기준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즉, 표면적인 아름다움인 미(美)보다는 참됨(진리)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의미이다.

미스코리아의 영향을 받아 다른 국내 미인대회들도 진, 선, 미 칭호를 쓰는 편이다. 참고로 영어로는 특별한 명칭 없이 그대로 Winner, 1st runner-up, 2nd runner-up으로 호칭한다.


4. 왕관에 대하여[편집]


미스코리아의 꽃은 왕관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그만큼 왕관의 디자인과 스타일도 계속 바뀌었는데, 대표적으로는 미스코리아의 황금기를 알렸던 1970년 제14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부터 1992년 제36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까지 무려 23년간 사용한 왕관이 제일 유명하며, 2000년 제44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부터 2004년 제48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까지 미스코리아 진에게 수여한 신라 시대 스타일의 금관도 유명하다. 이후 대회부터는 계속 대회별로 왕관을 새로 제작하고 있다.[5] 특히 2009년 제53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사용된 진 왕관 "동양의 빛"은 1270개의 다이아몬드가 사용되었고 왕관의 사용된 총 캐럿만 해도 1000캐럿에 달하며 당시 가치로 15억에 달했다.

하지만 실제 보석이 사용된 왕관은 대회 시상식 당일 무대에서만 사용되고 대회가 끝나면 왕관 제작 업체가 회수하게 되어있다. 당선자에게는 보석이 아닌 큐빅이 사용된 모조 왕관이 제공된다.[6]


5. 위상[편집]


한국의 미를 대표하는 사절로서 과거에는 높은 인기를 누렸으며, 미스코리아 입상 경력을 바탕으로 연예인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심사과정에서의 뇌물 수수 사실이 밝혀지고 대중들의 공감을 사지 못하는 후보자들이 입상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최고 권위의 미의 제전이라는 위상이 흔들리고, 주최사 한국일보의 평판도 함께 떨어졌다. 이에 더해 페미니스트들과 여성단체들의 반발로 인해 1972년부터 지상파에서 생중계되었던 미스코리아 본선 중계 방송은 2001년 5월 27일 MBC에서 단독 중계한 것이 마지막이었으며, 2002년부터는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 방송으로 옮겨가면서 화제성과 관심도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2019년 대회는 TV 중계 없이 유튜브, V LIVE 등 오로지 온라인으로만 중계를 하게 되었으며 수영복 심사도 폐지했다.[7]

과거에는 미스코리아 진으로 선발되면 박정희를 면전에서 직접 만나서 그 박정희가 직접 축하를 해주고 덕담을 해 줄 정도로 엄청나게 메이저했다.

미스코리아 인지도가 많이 떨어져 2016년아는 형님 8회에서 가짜 미스코리아를 찾는 진실게임 포맷의 게임을 진행했는데 단 1명만, 그것도 찍어서 맞힐 정도. 슈퍼모델 1명 외엔 모두 2015 미스코리아 진, 선, 미였는데 아무도 몰랐다.


5.1. 추락의 원인[편집]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여성단체쪽에서 여성의 성상품화라는 이유로 안티 미스코리아 운동을 벌여 공중파에서 생중계되던 미스코리아 대회를 케이블 방송으로 내쫓은게 가장 큰 타격을 입혔다. 안티 미스코리아 운동으로 인해 케이블에서 방송된 이후로는 관심도나 인기가 급하락할 수 밖에 없었고[8] 이 때문에 예전만큼의 지원자도 모이지 않게 된 것이다.

지상파에 방송될 때만 하더라도 전국민의 관심을 받아 생중계되던 날은 전가족이 같이 모여 시청하고 미스코리아 진은 방송계에 러브콜을 받아 단숨에 최고 인기 연예인이 되곤 했으나, 이는 단순히 미스코리아 자체의 문제만이 아닌, 당시 여성단체와 페미니스트[9]들의 안티 미스코리아 운동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04년에는 KBS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하려던 미스코리아 대회도 공영방송이라는 이유로 못하게 막았고 # # # # 지역방송에서 중계하는 지역대회에 반발하는 모습도 보였다. # 2019년에는 미스코리아 폐지를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하는 등 # 성 상품화를 이유로 미인대회의 폐지를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 존재하는 백여개의 미인대회와 지상파 SBS슈퍼모델 선발대회 등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고, 미스코리아의 폐지에만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없지는 않다. 미스코리아 지역대회 비리는 그 전부터 고질적인 문제였고 유명 미용실과 주최사와의 관계도 문제가 많았다. 여성운동이 본격화되기 전인 1980년대에는 이런 문제가 없었을까? 그럴리가 없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비리 사건이 1990년부터 등장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비리사건의 형성과 폭로의 유형을 보면 1980년대에 이미 일반화 되었다는 이야기다.

"세리" 미용실과 "마샬" 미용실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미스코리아 미용실의 양대산맥으로 유명했다. 기존에 마샬이 패권을 가지던 상황에서 1988년 진 김성령을 세리가 배출하면서 라이벌로 떠올랐고, 분노한 마샬의 원장이 다음해 고등학생 고현정을 발굴하여, 세리가 키우던 오현경과 배틀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1989년 진 오현경과 선 고현정의 대결이 양대 미용실의 배틀로 유명했다고 한다. 당시 미용실 원장끼리 누가 더 자기 미스코리아 머리를 크게 키우나 배틀을 했다고도 알려져 있다.[10]

그리고 여성운동과 비리 말고도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대한민국 연예계에 아이돌이 등장한 이후, 남녀를 불문하고 미모가 되는 사람들은 죄다 아이돌로 몰리는 바람에 미스코리아 지원자들이 아이돌로 뽑혀가고 남은 인원들로 채워지다 보니 인재유출이 굉장히 심각해져서 미스코리아가 그 시점, 정확히는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쇠락했다. 게다가 미스코리아 진으로 선발되면 이후 미스 유니버스 등 상위대회 출전 준비를 해야만 했으며 그 외에도 여러가지 홍보대사로 장기간 활동을 해야 하는 등 이런저런 활동에 대한 의무가 추가적으로 부과되어 있는 상태라서 30살 정도나 되어야 연예인으로서 첫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는 문제가 존재하며 실제로도 피현지는 입상을 하고도 이를 거부하는 바람에 입상이 취소되었다.[11]

일각에서는 경제 발전과 여성 인권 신장으로 인해 과거보다 여성이 사회진출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미인대회의 관심도가 줄어들어서 그렇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과거보다 연예인을 희망하는 여성들은 현저히 늘어났으며 미인대회에 출전하는 여성들의 학력은 과거보다 크게 올라갔다. 오히려 1994년에 한성주가 고려대 최초의 미스코리아 출전이라며 화제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 또한, 현재 미스코리아 대회는 여러 부분에서 변화의 요구를 받아들여 수영복 심사를 폐지했고 영향력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물론 현재의 미스코리아 대회가 스펙쌓기로 전략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많은 고학력 여성들이 미인대회에 연예인을 희망하는 것이 과연 미스코리아만의 문제인지, 시대를 역행한다고 볼 수 있을지는 고민이 필요하다.

6. 역사[편집]



6.1. 미스코리아 이전[편집]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10111121491410001010-001.jpg

한국 최초의 미인 대회는 일제강점기에 있었다. 1931년 국경의 밤을 쓴 시인 김동환이 창간한 잡지사 삼천리가 개최한 '반도의 대표적 려인(麗人) 미쓰 코레아 삼천리 일색(一色)'으로, 사진 응모를 통해 선발하였다. 심사위원이 의외로 화려한데, 이광수, 염상섭, 김억, 안석주, 이승만[12], 허영숙, 나혜석, 김원주, 최승희가 심미안을 갖췄다라는 이유로 선발되었다. 총 326명의 응모를 받아서 14명이 입상했다. 그중에서 1등을 특상이라고 불렀는데, 당대 여류문인 최정희의 여동생 최정원(崔貞嫄)이 선택되었다[13]. 최정원은 이후 카프 소속인 이갑기[14]와 결혼했는데, 결혼 몇 주만에 이갑기가 카프 참여 혐의로 체포되는 아픔을 겪었다고 한다. 이후 언니 최정희처럼 소설 <낙동강>을 발표하면서 문인으로도 데뷔.

다음은 1940년 8월 일본 잡지사인 <모던 니뽄>이 황기 2600년을 기념하여 미스 조선을 선발하였는데, 전남 목포 정명고등여학교를 갓 졸업한 19세 김영애가 선발되었다. 이후 김영애는 화가 문재덕과 결혼하였는데, 이쪽도 운수가 좋지 못했는지 6.25 전쟁때 남편이 납북되게 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미인대회는 1949년 월간잡지 <신태양>이 미스 대한 선발대회를 개최한 것이 기원이다. 신태양은 사진 응모로 후보를 추린 다음에 명동에 그 사진을 걸어놓고 지나가는 사람의 투표로 미인을 선발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고등학생이나 사무직 여직원 등 47명의 사진만 도착하였다. 그나마 영 아니다 싶은 경우를 추리자 7명만 남았고, 이 7명 역시 잡지에 실을 수준은 아니었다. 결국 기자들에게 나가서 외모가 되는 미인들을 찾아오라고 했으니, 주 대상은 다방 마담들과 요정 직원들이 주가 되었다[15]. 이렇게 20명을 채웠으니, 우승자도 역시 명동 지역 다방 마담이었던 임현숙이 선정된다. 이후 임현숙은 나름대로 연예계 생활을 좀 했다.

이 다음은 더욱 가관이다.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달리던 1953년 5월 피난 수도였던 부산시청 강당에서 미인대회가 열렸다. 중앙일보 주최[16]였던 제1회 여성 경염대회(競艶大會)로 미스 유니버스에 파견할 목적으로 개최되었다. 제1회라고 하지만 어차피 2회는 없었다. 이 대회의 1등은 숙명여자대학교 재학 중에 부산으로 피난온 강귀희가 차지하였는데, 이 과정도 골치 아프다. 원래 강귀희는 참가자 명단에도 없었는데, 심사위원들의 요청으로 후보가 되었다. 이 본선은 수영복 심사를 포함하고 있었지만, 수영복 심사는 비공개로 진행하고 나머지는 공개로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미인대회에서 수영복 심사한다는 소리를 듣고 인파가 많이 몰렸기 때문에 결국 모조리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다만 본선 진출자 10명으로 모아놓고 발표회만은 공개로 진행했다.

파일:external/munjanet.net/05193.jpg

이 발표에서 당연히 심사위원이 초빙한 강귀희가 1등으로 발표되었는데, 이 때 명칭을 미스코리아라고 했기 때문에 강귀희를 최초의 미스코리아라고 부르는 사람도 가끔 있으나 이 대회는 공식적인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포함되지 않는다.[17]

이후 강귀희의 앞날도 그렇게 순탄하지 않아서 유명세로 몇 년간 공부를 못하질 않나,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 한국 음식점을 여네 디자인을 하네 하다가 결국 로비스트로 활동했다. 단적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의 고교 1년 선배라는 이유로 KTX의 시스템 및 열차 도입 과정에서 프랑스 알스톰사의 TGV의 로비를 담당하였고[18], 개신교계 유명 목사와 프랑스 나비부인과의 관계를 주선하는 인물이라서 이후의 소송에서 참여했다.

그리고 1957년 5월, 서울 명동 시립극장에서 한국일보 주최로 세계대회에 파견할 한국 대표를 뽑는 최초의 미스코리아 대회가 열리게 되었다.


6.2. 역대 대회 및 입상자[편집]


한국일보 제공 역대 미스코리아 명단
연도



준미스코리아
한국일보
1957
박현옥
-
김정옥
홍인방
-
1958
오금순
정연자
김미자
1959
오현주[19]
정옥이
서정애
나인덕
1960
손미희자
김정자
이영희
진: 박수자
선: 장인자
미: 김미자
김자현
1961
서양희
이옥자
한창애
진: 임영빈
선: 임미애
미: 엄순영
이명주
1962
서범주
손양자
정태자
진: 송혜자
선: 임경실
미: 최인자
정의자
1963
김명자
최유미
최금실
진: 김혜원
선: 강경림
미: 강애리사
신정화
1964
신정현
이혜진
윤미희
진: 문순자
선: 최승자
미: 이수진
최정인
1965
김은지[20]
김민지
이은아
진: 장혜경
선: 모성량
미: 이숙영
최수아
1966
윤귀영
진현수
정을선
진: 이봉분
선: 임수향
미: 김영성
이명숙
1967
홍정애
최양지
정영화
진: 손은정
선: 김윤
미: 김춘진
김정숙
1968
김윤정
김희자
이지은
진: 장문정
선: 방인숙
미: 장혜선
진경례
1969[21]
임현정
김유경
김승희
진: 임정은
선: 서원경
미: 이주희
-

연도





한국일보
1970
유영애
김인숙
이정희
정: 이은자
숙: 김경순
현: 이지수
박지연
1971
노미애
최숙애
차순영
정: 홍신희
숙: 이영은
현: 조애자
이명신
1972
박연주
서윤희
신가정
정: 배정자
숙: 정금옥
현: 오영은
량: 김성실
이인숙
1973
김영주
김매자
김준경
정: 박신화
숙: 이태현
현: 안순영
이혜숙
1974
김은정
김경옥
심경숙
정: 김지현
숙: 강영숙
현: 이희영
전혜경

연도



협찬사상
1975
서지혜
이성희
이연옥
이형목
노덕자
진숙
태평양: 김자영
한국일보: 이경아
1976
정경숙
정광현
한영애
차장옥
신병숙
이혜경
태평양: 조인옥
한국일보: 유재선
1977
김성희
정정화
이정화

김영선
신병옥
김순애
태평양: 백경선
한국일보: 정미희
1978
손정은
채정숙
박경애
김은희
제은진
박숙재
태평양: 최현아
한국일보: 이수미
1979
서재화
홍여진
김진선
태평양: 이주연
한국일보: 김미재
1980
김은정
장혜지
김혜란
태평양: 정나영
한국일보: 강민정
1981
이은정
이한나
김소형
태평양: 김종숙
한국일보: 박현주
1982
박선희
최성윤
이현주
태평양: 김미선
한국일보: 정애희
1983
임미숙
김선미
서민숙
태평양: 오숙희
보령: 정영순
한국일보: 김종중
1984
최영옥
김경리
장시화
태평양: 임지연
보령: 박은경
한국일보: 이주희
1985
배영란
안정미
김윤정
태평양: 최은희
보령: 서현경[22]
한국일보: 임명숙
1986
김지은
정화선
정명선
태평양: 권민경
엘칸토: 오수경
르망: 이혜정
한국일보: 민선경
1987
장윤정[23]
최연희[24]
김미림
태평양: 이윤희
엘칸토: 김희연
르망: 장혜영
국제페리: 이지연
한국일보: 황보경[25]
1988
김성령
김혜리
김희정[26]
태평양: 채화정
엘칸토: 양현정
국제페리: 추영미
쌍방울: 김유나
한국일보: 오현주
1989
오현경
고현정
이윤영
태평양: 신소금
엘칸토: 채경진
국제페리: 조애선
실버벨: 김미진
한국일보: 장영희
1990
서정민[27]
김태화
윤제선
태평양: 이승은
엘칸토: 권정주
국제페리: 김현숙
실버벨: 강은숙
한국일보: 이혜정[28]
1991
이영현
염정아
이미영
태평양: 김현주
엘칸토: 이선혜
국제페리: 장미영
유림: 전혜진
한국일보: 소영경
1992
유하영
장은영
이승연
태평양: 서연정
엘칸토: 우정아
국제페리: 김인영
유림: 구교현
한국일보: 이정희
1993
궁선영
허성수[29]
김영아
태평양: 채연희
엘칸토: 윤수진
에스페로: 장미호
유림: 정지영
한국일보: 손수미
1994
한성주
이유리
윤미정
김미숙
김예분[30]
성현아
태평양: 전민선
한국일보: 최명련
1995
김윤정
최윤영
김정화
김민정[31]
김아린
한성원[32]
태평양: 이경숙
한국일보: 임주연
1996
이은희
설수진
김양희
최숙영
이지희
최정윤
태평양: 이자영
한국일보: 권민중
1997
김지연
조혜영
김진아
임선홍[33]
여혜전
정은주[34]
태평양: 함소원[35]
한국일보: 조윤주
1998[36]
최지현
김건우
이재원[37]
이정민
양소현
최윤희
태평양: 이정희
한국일보: 곽신혜
1999
김연주
한나나
설수현[38]
드봉: 김효주
에이스침대: 강옥미
FILA: 이혜원
한국일보: 손혜임[39]
2000
김사랑
신정선
손태영
갤러리아: 장은진
골든듀: 손민지[40]
한주여행사: 박미선
한국일보: 박소윤
2001
김민경
서현진
백명희[41]
갤러리아: 고윤미
골든듀: 김지혜
무크: 정아름
한국일보: 한지원[42]
2002
금나나
장유경[43]
기윤주[44]
갤러리아: 이진아
골든듀: 김소윤
쉬즈노블: 이재남
한국일보: 김연수[45]
2003
최윤영
박지예[46]
신지수
오유미
안춘영[47]
양혜선
와인코리아: 이소훈[48]
2004
김소영
한경진
김인하
JU네트워크: 조혜진
모나리자: 최영아
한국일보: 김혜연
2005
김주희
오은영
이경은
유혜미
김은지
유혜리
한국아이닷컴: 김정현

연도



2006
이하늬
박샤론
장윤서
박희정
김유미
박성민
김수현
2007
이지선
조은주
박가원
이진
유지은
김주연[49]
이재아
2008
나리
최보인
김민정
서설희
장윤희
이윤아
김희경[50]
2009
김주리
차예린
서은미
박예주
유수정
이슬기
최지희[51]
2010
정소라
장윤진
김혜영
하현정
고현영
이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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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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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선
이세미나
남미연
김수정
공평희
2012
김유미
이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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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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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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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화
최혜린
한수민
김민주
최송이[52]
2014
김서연
이서빈
신수민
김명선
이사라
백지현
류소라
2015
이민지
김예린
김정진
한호정
최명경
소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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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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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영
홍나실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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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서재원
이한나
정다혜
이수연
남승우
김사랑
피현지
2018
김수민
송수현
서예진
이윤지
김계령
박채원
임경민
2019
김세연
이하늬
우희준
이혜주
신윤아
이다현
신혜지
2020
김혜진
이화인
류서빈
전연주
전혜지
2021
최서은
최미나수[53]
김수진
조민지
정도희
2022
이승현
유시은
김고은[54]
2023




1963년 진 김명자는 한국이 지지리도 못살던 시절, 별다른 후원도 없이 미스 유니버스에서 5위 입상했다. 당시 미국 측에서도 김명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연예계 활동을 제안했으나 김명자 측에서 가족의 반대로 거절. 1960년대에 의외로 단아하고 복스러운 전통 미인들이 미스 유니버스, 미스 월드에서 성적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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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미스 유니버스에서 김명자가 5위 입상한 모습. 이 당시 1위는 아르헨티나의 노르마 놀란이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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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미스 유니버스 5위, 미스 월드 Top14, 미스 인터내셔널 5위의 성적으로 당시 세계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나라 코리아의 이름을 알린 공로로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위원장에게 초대받은 모습.


6.3. 참가자[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미스코리아/역대 참가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지역 대회[편집]






8. 논란[편집]


미인대회 그 자체에 대한 논란은 해당 문서 참고.


8.1. 수영복 심사[편집]


수영복 심사에 대한 논란과 여성계의 비판 때문에 안티 미스코리아 운동[55]이 일어나기도 했다. 2019년 대회부터 수영복 심사를 폐지했다.[56][57]


8.2. 국제대회 출전권 박탈[편집]


미스코리아는 1980년대가 지난 후 유난히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성적이 좋지 않다. 아마 미스 유니버스 대회가 태닝된 구릿빛 피부에 근육으로 다져진 당당한 이미지와 키도 175cm를 전후하거나 넘는 장신의 미인을 선호해서 다소곳하고 키 165cm 이하여도 얼마든지 선발될 수 있는 순수한 이미지의 여성을 선호하는 미스코리아와는 코드가 안 맞는거라 보기도 한다. 미국, 일본도 국내대회인 미스 아메리카, 미스 재팬은 엄친딸 속성인 사람을 뽑고, 미스 유니버스 대표 선발전인 미스 USA, 미스 유니버스 재팬에서는 태닝한 파티걸 스타일을 뽑는다. 2015년도 미스 유니버스 재팬에서는 흑인 혼혈 참가자 미야모토 아리아나[58]가 우승하기까지 했다.

미스코리아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청순하고 다소곳한 이미지보다도 위에도 언급되었듯이 태닝된 피부에 거침없고, 당당하고, 솔직한 매력이 통통 튀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그래야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까 말까하는 상황이 반드시 온다. 모든 미코들의 롤 모델이자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4위를 한 이하늬를 예로 들어보자. 이하늬는 국악 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59] 솔직하고 당당한 매력을 거침없이 어필할 뿐 아니라 글래머한 몸매에 11자 복근을 바탕으로 한 몸매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끌 수 있었다.

거기다 동양적 마스크에 예쁜 몸매, 차분하면서 관능적인 목소리가 이하늬의 매력을 한층 더 높이게 해줬다. 덕분에 그 결과 2007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4위를 기록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60]

결국 미스코리아 대회는 2011년에는 미스 월드의 출전권을 상실하더니[61], 2016년부터는 국제 양대 미인대회 중 하나인 미스 유니버스에 나갈 한국 대표를 뽑을 권리를 상실하게 되어버렸다.

이로써 미스코리아 대회는 미스 월드에 이어서 미스 유니버스라는 국제 양대 미인대회의 출전권을 모두 상실하게 되었다. 이에 2015년 이후 미스코리아 선, 미 당선자 중에서 남은 국제대회인 미스 인터내셔널, 미스 어스에만 출전하게 되어 미스코리아 진이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2019년에는 일본 상품 불매운동에 편승해 일본에서 개최하는 미스 인터내셔널에는 후보자를 출전시키지 않아 국제대회는 미스 어스만 출전했다.

현재 미스 유니버스, 미스 월드 출전권은 미스퀸 코리아 입상자에게 있다.

2022년 미스 어스 대회에서 최미나수1위를 차지하면서 미스코리아의 위상을 다시 끌어올렸다.

8.3. 대회 관련 비리[편집]







사건사고가 많이 터졌고, 뒷말도 엄청나게 많은 것이 현실이다.

공식적으로 이야기가 나온 것만 해도 1990년 대회에는 한국일보 임원과 미용실 원장이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되었다.

1993년 미스코리아 선 역시 뇌물의 결과로 드러났고 역시 관련 인물들이 구속되었다.

2012년 대회에서는 후보자의 모친이 해당 언론사 팀장을 통해서 심사위원들에게 뇌물 총 4,000만원을 전달했다가 결국 입선하지 못하자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심사위원들이 거부하면서 대형 논란으로 발전했다. 이쪽과 관련된 것이 소위 말하는 미스코리아 미용실들로, 미스코리아 당선 소감으로 나오는 어느 어느 미용실 원장님에게 감사하고라는 이야기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는 평이 많다.

지역대회의 경우는 정말 관련된 악명이 자자한 편으로, 원래 심각하던 지역대회의 비리가 이젠 지상파를 타지 못하는 본대회까지 퍼졌다는 식의 이야기도 많다. 심사위원 매수금만 억단위라는 기사까지 있었으니...

이런 비리의 온상으로 유지가 되는 것은, 미스코리아라는 것이 아직도 소위 '스펙'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쉽게 생각하게 되는 결혼시장, 취업 관련은 물론이고, 심지어 전문대학원에서도 미인대회 입상은 예체능 특기자로 취급해서 특차입학의 조건이 된다. 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가려고 미스코리아 지역 예선에 뇌물썼다가 돈으로 분쟁이 벌어진 사건이 2011년 경기지역에서 이미 벌어졌었다.

이 문제를 특히 열심히 뒤지는 프로그램이 시사매거진 2580으로 2010년에는 '놀랍고도 추악했던 미스코리아', 2013년에는 '돈 주고 사는 미스코리아'라는 취재로 비리가 사라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했다. 2010년 당시의 관련된 블로깅 내용과 그 댓글들을 보면 참 답이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미디어오늘이 2019년 5월 22일에 미스코리아 비리를 폭로하는 기사 ‘63회 한국일보 미스코리아 대회’ 잡음 여전를 냈고, 한국일보 측에서 허위사실을 통해 기사를 작성했다며 6월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를 냈다. 2020년 4월 23일, 한국일보 측이 일부 승소하여 미디어오늘 측이 손해배상금과 함께 기사 중 일부 부분을 삭제할 것을 명령받았다. #

8.4. 사상 최초의 재투표[편집]


1998년 대회에서는 심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9대의 채점용 컴퓨터를 도입했으나 1대의 채점용 컴퓨터에 이상이 생겨, 점수를 입력해 합산하는 기능에 오류가 발생되었다. 이로 인해, 2차 선발에 진출할 예정이었던, 4명의 후보가 점수 오류 때문에 불이익을 받아 탈락하는 어처구니 없는 대형 사고가 발생되었다. 본선 대회 종료 직후, 2차 선발에서 탈락된 당사자 4명과 그 가족들이 주최측에게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후원사이자 주관방송사인 문화방송과 미스코리아 조직위원회가 진상조사에 착수했는데, 감사 결과 기술상 문제로 특정 후보들에게만 심사위원 1명의 점수가 합산이 되지 않아서 최종 점수 채점 결과를 잘못 산정해 생방송에 내 보낸것으로 확인돼 미스코리아 조직위원회가 사상 최초로 오늘 벌어졌던 본선대회에서의 최종 선발와 수상을 모두 취소했으며, 추후 재심사를 통해 98 미스코리아를 수상자를 다시 선발하기로 결정했다.[62] 이에 대해서도 뇌물 받아먹은 것이 꼬여서 이렇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미리 점수를 맞춰놓은 것이 아니면 이 총점이 제대로 된 것인지 아닌지 알 수도 없거니와, 현장에서 관련인들 사이에서 욕설과 몸싸움이 벌어졌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1주일 후, 녹화방송을 통해 희대의 미스코리아 선발 컴퓨터를 이용한 재투표와 재심사가 벌어지면서, 상위 15명만을 다시 데리고 나와 심사하는 웃지 못 할 광경이 벌어졌다.

8.5. 예전보다 못한 참가자들의 미모와 성형 논란[편집]











미스코리아가 뽑혔다는 기사의 댓글에 많이 달리는 내용은 '어떻게 저런 얼굴로 미스코리아가 되었냐?', '아니, 미인대회라면서 왜 이렇게 미인들이 없어?'라는 등의 내용들이다. 즉, 미스코리아 주제에 외모가 별로라는 평으로, 원인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위상이 점차 떨어짐과 동시에 지원자의 수도 적어지면서 그만큼 질적 저하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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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경우는 샤크라 출신 이니와(본명 임선홍),함소원이 출전한 1997년 대회에서 이니와 같은 미스코리아 미에 뽑힌 정은주.[63] 정은주의 경우 일반적인 미인상과는 매우 거리가 있다고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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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미스코리아 진 김민경은 한때 김지유라는 가명으로 배우로 활동하였으며 파스타 싸다귀로 유명해진 아침 드라마에 출연했다. 당선 당시 대구 지역 미인대회 우승자 배출의 산실 송죽미용실의 원장인 어머니의 배경으로 우승을 했다는 루머와 성형전 사진등의 인터넷을 떠돌아 안티 미스코리아 카페의 붐이 일기도 했다. 무엇보다 김민경(164cm)은 선과 미로 당선된 서현진(172cm)과 백명희(174cm)에 비해 단신인 키로 인해 더욱 논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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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미스코리아나리와 진행자 박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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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13년 미스 울산 지역의 진, 선, 미 당선자들은 지금까지 회자된다. 선착순으로 뽑힌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을 정도. 진, 선, 미 모두 키도 그렇고, 얼굴도 그렇고 타 후보들에 비해 현저히 수준이 떨어졌다. 화장법이 별로여서 그렇게 보였다는 의견도 있긴 하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음 대회인 2014년부터 부산과 통합해 대회를 치르고 있다.


2000년대 중후반 이후로는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까지도 몇몇 지방 지역대회에서는 1980~90년대 스타일의 메이크업이나 사자머리 헤어스타일이 유지되는 것도 문제다.

8.6. 그 외[편집]


게다가 대회의 인지도가 갈수록 떨어지며 정말 미스코리아에 걸맞는 출중한 미모의 소유자들은 쓸데없이 시키는 것도 많고 고생하면서 경쟁해야되는 미스코리아 대회를 외면하고, 바로 연예인 쪽으로 도전하는 경우가 많아서 양질의 참가자를 구하기도 쉽지 않아지고 있다고 한다. 유튜브, 아프리카TV 심지어는 SNS 포스트로도 얼굴을 알리기가 더 쉬운 상황이니 연예계 등용문으로서의 파워도 낮아졌고.

입상을 하고 난 이후에 각종 포털사이트에 미스코리아, 미스코리아 진 이름 등이 실검 1위 혹은 상위권을 장악한다 하더라도 거기까지... 이후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실검에서 사라지면서 잊혀진다. 그만큼 예전같은 인기나 존경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에 미모가 출중한 인재들의 참여 욕구를 불러일으키기가 쉽지 않다. 미코에 대한 인지도가 높았던 이전에는 수많은 지상파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은 물론, 연예 기획사로부터 연예인 제안을 받고 연예계쪽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다.[64]

9. 녹원회[편집]


홈페이지

1987년에 설립된 미스코리아 수상자들의 모임으로 봉사단체로 이루어져 있다. 2013년엔 사단법인이 출범되면서 공익성을 더욱 강화했다.


9.1. 역대 회장[편집]


회원들이 직접 선거를 통해 회장을 선출한다.

사단법인 출범 전
  • 초대: 이다나 (1961 선)
  • 2대: 김성희 (1977 진)
  • 3대: 임미숙 (1983 진)
  • 4대: 김재키 (1977 미)
  • 5대: 최영옥 (1984 진)
  • 6대: 권정주 (1990 엘칸토)

사단법인 출범 후
  • 1대: 권정주 (1990 엘칸토)
  • 2대: 김미숙 (1994 미)
  • 3대: 장은진 (2000 갤러리아)
  • 4대: 이정민 (1998 미)


10.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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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6년 10회 대회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유호 작사, 손목인 작곡이다.[2] 2015~2017년 대회를 개최한 한주미디어네트워크, 한주E&M과는 별개의 회사다.[3] 그런데 2012년 8월에 미스 월드 코리아 주최사가 미스코리아 주최사인 한국일보를 고소하고 한국일보 측도 맞고소를 하여, 2012년에는 미스 월드 코리아 대회는 열리지 못했다. 그래서 2012년 미스 월드 대회에는 2011년 미스 월드 코리아 2위 입상자가 대신 나갔다. 2013년에도 대회가 열리지 못해 2011년 미스 월드 코리아 3위가 출전했다. 2013년 5월 미스 월드 코리아 측이 패소하였고, 2014년부터 다시 미스 월드 코리아가 열렸다.[4] 26세까지 였으나 2021 대회부터 28세로 변경되었다.[5] 2006년 빅토리아, 2007년 로즈베이, 2008년 마르첼라 등등[6] 모조 왕관 또한 가치가 5000만원 이상이다.[7] 수영복 심사는 2004년에도 한번 폐지를 했다가 2005년에 다시 부활한 바 있다. 2004년 때는 VCR 영상으로 대체했으며 상반신만 나왔다.[8] 당시엔 지금처럼 케이블 채널 보급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방송에서 접하기 더욱 힘들었다.[9] 대표적으로 김신명숙이 있는데, 1999년에 '미스코리아 대회를 폭파하라'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냈다.[10] 참고로 2011년부터 헤어와 메이크업을 전문가의 도움 없이 후보자들이 직접 해야하는것으로 바뀌면서 미용실의 비중이 크게 줄었다.[11] 사실 이전에는 미스코리아 대회가 연예인 데뷔의 등용문이였으나 현재는 소속사의 오디션 공채가 폭넓어지고 아이돌로 활동하다가 연기자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굳이 미스코리아에 참가하지 않아도 연예계에 데뷔하는 길이 넓어진 편. 이전 90년대 미스코리아 출신들이 연예계에 데뷔 후 활발하게 활동을 하여 인지도를 알렸으나 2000년대 이후로는 이하늬를 제외하고는 연예계에서 이렇다 할 자리를 잡지 못하였다.[12] 李承萬.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는 동명이인으로, 행인이라는 호를 쓰던 삽화가이다.[13] 인터넷에는 이걸 최정희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좀 있다.[14] 이효석조선총독부에 취직하자 "너도 개가 되었구만"이라고 발언해 이효석이 조선총독부를 그만두는 원인이 된 인물로 유명하다.[15] 덕분에 심사가 가관이었다는 이야기가 많다. 후보들이 담배를 꼬나물거나 치마를 걷어서 올리고 노려보는 등, 업소 분위기가 물씬 풍겼기 때문이라고.[16] 현재의 중앙일보와는 별개의 단체다.[17] 강귀희는 미스 유니버스에 사정이 여의치 못해 나가지 못했다.[18] 결과적으로 KTX 대상 열차는 노태우가 아닌 김영삼 정부 시기에 선정되었으므로 로비는 실패.[19] 국회의원 오위영의 딸. 당시 이화여자대학교 불문과 학생이었다. 전 천주교 제주교구강우일 베드로 주교의 막내이모. 미스 유니버스에서 한국인 최초로 인기상, 포토제닉상, 스피치상 등을 수상했다. 2010년 숙환으로 사망.[20] 배우 김정은의 이모이다.[21] 원래 김지연(본명: 김정혜)이라는 사람이 진으로 당선됐으나 결혼을 한 사실과 실제로는 풍문여고 중퇴임에도 숙명여자대학교 가정학과에 재학중이라고 학력까지 속인 것이 드러나 당선이 취소되었다. 사실이 밝혀지자 김지연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고 이에 입상자들의 순위가 한 단계씩 상승. 그래서 선 임현정(본명: 임희선)이 진이 되었다. # 공교롭게도 임현정은 숙명여대 영문과에 실제로 재학중이었다.[22] 골프 선수 미셸 위 어머니.[23] 미스 유니버스 2위 입상으로 이것은 이하늬의 4위 입상보다 높은, 현재까지 역대 대한민국 최고 기록이다. 참고로 1988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가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렸다고 잘못 알려진 경우가 많은데 1988년 미스 유니버스는 대한민국이 아닌 대만 타이페이에서 개최되었다. 대한민국에서 개최한건 1980년이다.[24] 1984년 진 최영옥의 동생이다.[25] 미국 유명 댄스 강사, 댄서, 안무가 2004년생 '베일리 속'의 어머니. #[26] 2002 한국일보 김연수의 첫째언니[27] 1993년에 미스코리아 당선 과정에서 뇌물 수수 의혹이 검찰에 의해 드러났다. 그때까지 미스코리아 산실로 명성을 날리던 마샬미용실 원장에게 서정민의 어머니가 3천만원을 건넸고, 마샬미용실 원장은 한국일보 사업본부장에게 9천만원을 건넨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뉴스를 타면서 연예계에서 사실상 은퇴, 이후 재판에서는 무혐의로 종결되었으며, 결혼 후 현재 캐나다에서 거주 중이다.[28] 다이어트 서바이벌 빅토리에 나와 충격적인 근황을 알렸으며 최종 우승했다.[29] MBC 공채 27기 연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미스코리아 대회 참가자가 공채 연기자로 들어간 상당히 드문 경우.[30] 연예계로 진출해 연기 및 MC를 맡았으며 특히 SBS 달려라 코바 MC를 맡아서 연기 활동보단 MC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하지만 결혼 후 간통 및 방송에서 거짓사연 언급으로 논란을 빚고 연예계에서 은퇴하였으며, 지금은 식품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31] 2002 한국일보 김연수의 셋째언니[32] 배우 한고은의 언니.[33] 이후 걸그룹 샤크라이니라는 예명으로 데뷔했다. 샤크라에서는 최연장자 + 최장신 + 비주얼 담당이었다.[34] 2008년 원광대 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35] 이 입상년도 때문에 학력 의혹이 불거졌다. 분명 자기 말로는 숙대 95학번이랬고 1학년 때 미스코리아 입상했다 했었는데 입상년도는 학번과 2년 차이나는 97년도이기 때문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3학년 때 편입을 해서 95학번을 받아야 된다. 게다가 여태 차석 입학이라는 말을 한 번도 안 했다가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처음 언급했었다. 모 네티즌이 함소원은 편입생이라고 폭로했었다.[36] 사상 초유의 재심 사건으로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37] 심재학 MBC SPORTS+ 해설위원의 아내.[38] 1996년 선 설수진의 동생.[39] 배우 손태영의 언니, 이루마의 아내.[40] 2006년 혈액암으로 투병 중 사망. 도전 지구탐험대에 출연한적이 있었는데 그때 만난 원주민들과의 인연이 사후에 알려졌다.[41] 백민희라는 예명으로 배우로 활동했었다. 하지만 배우 생활은 단기로만 활동하여 기억하는 사람들은 잘 없다. 그뒤 연예계에서 은퇴하고 진로를 변경, 대한항공 승무원에 합격하여 근무하다가 퇴사 후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대한항공에 합격 당시 그룹 버즈의 멤버 민경훈의 전 연인인 남호정도 같이 합격하여 승무원 카페에선 화제가 된바가 있다.[42] 당시 미스코리아에 뽑히면 한동안 여러 방송에 수상자들이 단체로 출연하여 대외활동을 하였으나, 수상 후 단 한번도 방송에 출연한적이 없다. 결국 다음해 미스코리아 대회에도 불참하여, 정아름이 대신 수상을 하였다. 김민경도 시상식에 불참하였으나 미스 유니버스 출전으로 인해 불참이라 예외[43] 미스코리아로 뽑힌 이후 예능 프로 보조 MC로 잠시 활동한적이 있다.[44] 다이어트워 시즌5에 나와 충격적인 근황을 알렸으며, 중간에 탈락했으나 본인이 혹독하게 관리하여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45] 5자매중 4명이 모두 미스코리아 출신. 김연수는 5자매중 막내. 이 중 넷째만 제외하고 모두 입상에 성공하였다. 관련기사[46] 통일교 문선명의 4남 문국진과 결혼.[47] 축구 선수 현영민과 결혼.[48]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수달 장군을 연기했던 배우 김시원의 양딸이다. #[49] 축구 선수 황재원과의 스캔들로 엄청난 파문이 있었다. 결국 조직위원회에서 자격을 박탈하고, 뒤이어 누드 모델 파문을 일으킨 김희경과 함께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정보가 삭제되었다.[50] 2006년 '서마린'이라는 예명으로 누드 모델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나 자격 박탈.[51] 민서연이라는 예명으로 모델 활동.[52] 2013년 미스 어스 대회에 출전해 한국의 역대 최고 성적인 4위에 랭크되었다. 본명은 카타리나 최 누녜스.[53] 2022년도 미스 어스 1위.[54] 축구 김현수(1973년 3월)의 딸.[55] 여성계뿐만 아니라 여성 국회의원들도 적극적으로 미스코리아 TV 중계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쳤으며, 前 국토교통부 장관 김현미도 안티 미스코리아 운동을 지원한 이들 중 한 명이다.[56] 2019년 대회에서는 수영복 모습을 VCR 영상으로 대체했다.[57] 수영복 심사는 2004년에도 한번 폐지를 했다가 2005년에 다시 부활한 바 있다. 2004년 때도 VCR 영상으로 대체했으며 상반신만 나왔다.[58] 아버지가 미국인, 어머니가 일본인. 2살 때 부모가 이혼한 후, 어머니와 함께 일본에서 살았다. 키 173cm.[59] 보통 국악 전공자들은 대부분 청순하고 다소곳한 이미지가 있다.[60] 당시 1위는 2016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출전한 김제니에게 망언을 퍼부은 일본의 리요 모리.[61] 미스 월드 측은 미스코리아 1위에 해당하는 진을 미스 유니버스에 내보내고 2위에 해당하는 선을 미스 월드에 내보내는 것에 불만이었던지라 국내 출전권을 다른 회사로 넘긴 것이다.[62] 따라서, 역대 최악의 주최 사고로 인해, 문화방송은 3시간 분량의 본선대회 원본 테잎 전량을 폐기 처분하기로 했다.[63] 이후 중앙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원광대학교에서 강의를 하였다.[64] 2006 진으로 뽑혔던 이하늬 같은 경우, 그 당시에 미코에 대한 인지도는 떨어지기는 했어도 지금보다 심하지는 않았다. 거기다 2007 미스 유니버스에서 4위를 차지한데다가 김태희(이하늬 서울대 동기)와 박봄 등 연예인들과 친분이 있는 것은 물론, YG에서 가수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미 연예계로 진출하기 위한 준비를 나름대로 착실하게 진행하고 있었던 셈. 물론 본인은 연예인이 되지 않겠다고 언급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