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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မြန်မာကျပ်(-ငွေ) 먄마쩻(-응웨), Kyat[1]

파일:Central_Bank_of_Myanmar_seal.png

1. 개요
2. 환전
3. 1기
4. 2기
5. 3기
5.1. 1차
5.2. 2차
5.3. 3차 전반
5.4. 3차 후반
5.5. 4차
5.6. 5차(현행권)
5.7. 동전
6. 태환권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미얀마에서 사용하는 통화. ISO 4217코드는 MMK, 기호는 K(복수형 Ks)를 사용한다.(1500짯 = 1500Ks) 보조단위로 뺘(Pyas)가 있으나 현재는 폐지된 상태. 인플레가 2009년 기준 7.7%이지만, 그 이전에는 인플레이션이 수십 퍼센트를 웃돌았던 적이 많았다. 그래서 1960~2020년까지 60년간 물가가 무려 1,000배 이상 뛴 것이다. 2023년 1월 11일 현재 환율은 2,100.78짯/달러로 대한민국 원보다 액면가가 거의 두배 정도 더 낮다.

흔히 이 단위를 영어식으로 읽어서 크야트, , 크얏등으로 읽기 쉬운데, 이나 으로 읽는다. 보조단위도 마찬가지.[2] 허나 현지에서 또박또박 '짯'이라고 해도 못 알아듣고 오히려 "젟"에 가깝게 발음한다는데... 그렇다고 항목명을 듣도보도 못한 "젟, , 젯, " 등등으로 표기할 수도 없는 노릇(...).짯도 만만치 않다. 고로 본 항목에서는 모두 짯으로 표기한다. 더불어 국호 자체의 논란이 있어서인지 어감 문제인지 영미권에선 Myanmarese Kyat(미얀마 짯)보다 Burmese Kyat(버마 짯)으로 부르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더 많다. 심지어 위키백과 조차도 버마 짯으로 등록되어 있었다.[3]

시대별로 3종류로 나뉘는데, 근현대화폐(Modern Issue)로서의 짯은 3기부터 해당한다. 끊기고 부활하고만을 반복했기 때문에 특별히 화폐개혁은 일으킨 적이 없었다.

수집하기에는 비교적 골때리는 나라인데, 1978년까지 발행된 지폐는, 일반적인 나라에서는 지폐를 100장씩 다발 띠지로 묶으나, 방글라데시, 인도, 프랑스 (1910~1960년대 일부 권종)와 비슷하게, 100장씩 정리하여 호치키스를 이용하여 철하였고, 당시 발행된 지폐들은 미사용, 사용 할 것 없이 왼쪽에 상하 2개의 핀홀, 심한 경우는 6개의 핀홀이 있는 케이스도 있다. 이런 지폐를 PMG사에 등급 인증을 해 보았자, 핀홀 때문에 58등급이 최고이다. 이는 인도 루피, 파키스탄 루피를 비롯한 남아시아 화폐 구권들도 마찬가지이다.

2. 환전[편집]


소위 바른 생활 여행객을 호구로 만드는 화폐로 법적으로 미얀마 짯은 SDR에 페그되어있는데... 문제는 미얀마라는 나라에 돈이 어딨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아래와 같은 환율값을 보여준다. 표기는 1000짯[4]을 교환하기 위한 각 통화값 (단위통화당 교환 가능한 짯값)

  • 미국: 153달러 61센트 (6.51)
  • 유럽연합: 106유로 72센트 (9.37)
  • 영국: 94파운드 70펜스 (10.56)
  • 일본: 14,286엔(0.07) ... 이상 모두 2010년 1월 초 환율.

...하지만 시장에선 1달러면 교환이 가능했고, 지금도 거의 이정도 차원에서 유지되는 중이다. 그래서 무조건 암시장을 통해 환전해야만 하는데, 국가 차원에서 설치한 양곤의 밍글라돈 국제공항 환전소마저 관광객에게 사기를 친다(...)[5] 환전은 가급적 목요일에, 가급적 빳빳한 100달러짜리를 준비하고[6], 반드시 직접 하도록 하자. 외국인에겐 걸려도 그냥 눈 감아주지만 현지인들 사이에선 엄연히 중죄급이며, 짜고치기의 위험성도 무시할 수 없다. 2013년, 은행에서 대략 800~850짯/$ 내외로 환전이 가능했었다. 다만 여전히 발품 좀 팔아 환전소에서 바꾸는게 조금이나마 이득이었다. 물론 깨끗한 100달러짜리 기준으로. 실험삼아 빳빳하지는 않은 1달러 짜리를 환전소에서 바꾸려고 했더니 700짯 쳐 준다는 얘기가 있다. 그리고 한심하게 쳐다보는 눈빛은 덤. 2017년 8월 기준 양곤국제공항 환전소에서 1,300~1,350짯/$의 환율로 환전 가능하다.

2022년 12월 15일 현지 사설환전소나 은행에서 환전이 가능한 외국 지폐 목록

굵게는 대부분의 사설 환전소나 은행들이 해주는 외국 지폐들이다.

화이트만 환전소 환율창

  • 아메리카: 미국 달러
  • 유럽: 유럽 유로, 영국 파운드
  • 아시아: 싱가포르 달러, 태국 바트, 중국 위안, 말레이시아 링깃, 일본 엔, 홍콩 달러, 한국 원, 인도 루피
  • 오세아니아: 호주 달러

3. 1기[편집]


공교롭게도 "짯"은 1852년, 영국인이 버마남부를 모조리 먹었을 때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엔 1뺘 = 5뻬, 1무 = 2뻬, 1맛 = 4뻬. 1짯(금) = 16짯(은)의 체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보다시피 10진법이 아니다. 분명 로부터 배워왔을 터. 그리고 영국이 버마를 완전히 정복한 1889년에는 폐지시켜버렸다. 이후 인도 루피가 자리를 대신하였다.[7]

참고로 이때 발행된 짯은 모두 동전이었고, 발행 순서대로 1뻬, 1무, 1맛, 5무, 1짯, 1뻬(금), 1무(금), 1/8뺘, 1/4뺘, 1/4뻬, 2뺘, 1뻬, 2.5무, 5무짜리가 발행되었다. 장사는 먼저 동전 외우기부터 연도는 버마력으로 표기되어있기 때문에, 서력으로 볼려면 637을 더해야한다.


4. 2기[편집]


1943년, 영국이 물러가고 일본제국이 이 지역을 지배했을 시기에 일본에 의해 발행되었다. 이때 보조단위는 센트(Cent). 1기때와는 반대로, 동전이 하나도 없었다. 초기에 1, 5, 10, 100짯이 소개되었고, 1945년에 100짯이 개정되어 나왔는데, 그 직후에... 일본이 패망했다.

그렇게 얼떨결에(?) 독립해버리고 7년동안, 또 루피화를 쓰게 되었다.


5. 3기[편집]



5.1. 1차[편집]


1952년 등장하였고, 이때부터를 본격적인 현대식의 미얀마 짯에 해당한다. ISO 4217코드인 MMK도 3기만을 가리키는 것. 이때의 발행명은 버마연합은행(Union Bank of Burma )이다.

이 시기의 지폐는 정말 크고 아름다웠다. 오히려 최근 발행분(4차)보다도 정교하고 아름답다고 할 정도.


뒷면
파일:attachment/짯/burma11.jpg
1K
굉장히 큰 사각돛을 단 가옥선(家屋船)
파일:attachment/짯/burma12.jpg
5Ks
전통방식으로 실을 잣는 전통복장의 여인
파일:attachment/짯/burma13.jpg
10Ks
코끼리를 탄 목수와 코로 통나무를 나르는 코끼리
파일:attachment/짯/burma14.jpg
20Ks
모내기하는 아줌마들
파일:attachment/짯/burma15.jpg
50Ks
만달라이 사원
파일:attachment/짯/burma16.jpg
100Ks
두 마리의 소와 농부
  • 앞면은 디자인이 약간씩 다르지만, 모두 아웅 산의 초상화이다.


5.2. 2차[편집]


1965년에 출시된 시리즈. 이때 발행명은 버마인민은행(Peoples bank of burma)이었고, 영국풍의 국장이 새겨져 있었다.

도안이 매우 세밀한 그림으로 바뀌었고, 암시장에 대처하겠다랍시며 단위가 큰 상위 2종인 50짯과 100짯 지폐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앞면은 여전히 아웅산 장군.


도안
파일:attachment/짯/burma21.jpg
1K
통발을 쳐서 고기잡으려는 어부
파일:attachment/짯/burma22.jpg
5Ks
강렬한 햇살 아래 소 이끄는 아줌마
파일:attachment/짯/burma23.jpg
10Ks
목화따는 아줌마
파일:attachment/짯/burma24.jpg
20Ks
트랙터 모는 아저씨


5.3. 3차 전반[편집]


1972년부터 등장. 발행명이 다시 버마연합은행으로 회귀하고, 종류도 다시 6종류로 복구되었으나 20짯 대신 25짯이 도입되었다는 것만 다르다.

독일 Giesecke & Devrient사에서 기술을 전수받아 직접 생산한 흔치 않은 사례로 도안을 보면 알겠지만 아웅 산이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 제국 육군 군복과 인민군 군복을 입은 모습이다.


앞면
뒷면
파일:attachment/짯/burma31.jpg
1K
일본군복 차림의 아웅산
물레
파일:attachment/짯/burma32.jpg
5Ks
앳된 모습의 아웅산
야자수
파일:attachment/짯/burma33.jpg
10Ks
사회민공풍 군모를 쓴 아웅산
불교축제용 장식그릇
파일:attachment/짯/burma34.jpg
25Ks
짬을 먹은 듯한 아웅산
신화 속 동물
파일:attachment/짯/burma35.jpg
50Ks
두건을 두른 민간인풍 아웅산
낫 타르[8]
파일:attachment/짯/burma36.jpg
100Ks
소박한 모습의 아웅산
사웅 가욱


5.4. 3차 후반[편집]


1985년 11월 3일, 갑자기 고액권 3종(25, 50, 100짯)에 대해 사용금지령이 내려졌다.

교환량도, 교환 기간도 매우 작게 주어져 엄청난 혼란이 빚어지던 중, 7일 뒤인 11월 10일에 뜬금없이 75짯이라는 괴상한 화폐를 도입하였다. 이유는 그저 미얀마의 군부독재자 네 윈75번째 생일 기념이라서! 1짯도 도안을 변경하여 발행하였다.

그의 기행은 계속되었는데 1986년 8월 1일에는 15짯과 35짯이라는 괴상한 단위를 또 도입하였다.

그리고 1987년 9월 5일, 결국 일생 최대의 사태를 일으키고 말았는데 저액권만 남겨놓고 15짯, 35짯, 75짯을 아무런 경고와 유예기간, 그리고 교환 기간도 없이 강제로 폐기시켜 국가 재산 75%가 이 사태로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앞면
뒷면
파일:15 KYATS.jpg
15Ks
군복입은 아웅산
민 하르[9]
파일:35 KYATS.jpg
35Ks
좀 더 두텁게 입은 아웅산, 공작새
낫 타르, 공작새
파일:75 KYATS.jpg
75Ks
소박한 아웅산
라우카낫[10]

이후 1987년 9월 22일, 9가 행운의 숫자라는 소리를 듣고 45짯, 90짯이라는 괴상한 단위의 지폐를 발행하기까지 한다!


앞면
뒷면
파일:45 KYATS.jpg
45Ks
포흘라기
유전과 유전의 노동인
파일:90 KYATS.jpg
90Ks
사야산
모내기 & 쟁기질

이는 결국 1년 후인 1988년 8월 8일, 미얀마에 8888 항쟁을 일으키는 계기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자꾸만 집안 재산을 휴지 조각으로 만드는 정책에 견딜 수 없었다는 것. 현금이 없으면 카드를 쓰면 되잖아


5.5. 4차[편집]


1989년 혁명 직후에 도입되었으며 여기서부터 "미얀마 중앙은행"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다.

1990년 3월 1짯(1일)[11]/200짯(27일), 4년 후인 1994년 3월 27일에 50뺘, 20, 50, 100, 500짯이 등장, 1995년 3월 1일 5, 10짯이 등장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1000짯은 1998년 3월이 아니라 11월에 등장했다.

1990 ~ 94
앞면
뒷면
파일:attachment/짯/myanmar001.jpg
P50
사웅 가욱
매듭 무늬
파일:attachment/짯/myanmar002.jpg
1K
아웅 산
쌍룡 조각

1996 ~ 98
도안
파일:attachment/짯/myanmar003.jpg
앞면 공통
친테[12]
파일:attachment/짯/myanmar004.jpg
1K
깐도지 호의 배타기
파일:attachment/짯/myanmar005.jpg
5Ks
친론[13]
파일:attachment/짯/myanmar006.jpg
10Ks
카라웩[14]
파일:attachment/짯/myanmar007.jpg
20Ks
양곤의 공원과 코끼리분수
파일:attachment/짯/myanmar008.jpg
50Ks
칠기공방의 장인과 칠기들
파일:attachment/짯/myanmar009.jpg
100Ks
개수 공사하는 절
  • 200, 500, 1,000짯은 2004년 10월 11일 크기가 축소되어 5차에 계승되었다.


5.6. 5차(현행권)[편집]


시중에서 자주 통용되는 200~1,000짯의 크기를 줄여서(165*80▶150*70) 새로 발행한 이후의 시점에 해당.

2009년 10월 1일 5,000짯, 2012년 6월 15일 10,000짯이 기존 규칙을 깨고 새로운 도안으로 등장했는데 1만짯의 경우 굉장히 화려해졌다.

2020년 중후반 경 개정판 1,000짯과 동일한 규격으로 아웅 산을 넣은 신 시리즈를 발행을 공고했으며 범위는 10짯부터 10,000짯까지이며 잘 안쓰이던 20짯은 삭제될 예정이었으나, 반년 후 2021년 미얀마 쿠데타가 발발, 동시에 해당 인물이 군부에겐 눈엣가시인 만큼 이미 발행된 500, 1,000짯을 제외하고 위 계획은 완전 무효화되었다.

2023년 미얀마 경제가 막장으로 치닫자 새 고액권 2만 짯을 발행한다.#


도안
파일:attachment/짯/myanmar011.jpg
200, 500, 1000Ks 앞면
친테
파일:attachment/짯/myanmar013.jpg
200Ks
코끼리 목수와 티크나무
파일:attachment/짯/myanmar014.jpg
500Ks
마하반둘라 장군 동상
파일:attachment/짯/myanmar016.jpg
1,000Ks
재무세입청
파일:attachment/짯/myanmar012.jpg
500, 1000Ks 신권 앞면
아웅 산
파일:attachment/짯/myanmar015.jpg
500Ks
(신권)
미얀마 중앙은행
파일:attachment/짯/myanmar017.jpg
1,000Ks
(신권)
네피도의 의회 건물


앞면
뒷면
파일:attachment/짯/myanmar018.jpg
5,000Ks
흰코끼리
네피도의 의회 건물
파일:attachment/짯/myanmar019.jpg
10,000Ks
국가 문장
만달레이 왕궁
파일:Myanmar_CBM_20000_kyats_2023.07.31_B120as_PNLs_AA_0000000_A_f-768x356.jpg
20,000Ks
흰코끼리
사가잉교와 이라와디교


5.7. 동전[편집]


6종류(1짯, 50, 25, 10, 5, 1뺘)가 1958년부터 도안에 아웅 산 장군(1915~1947)의 트렌치코트 차림의 모습이 들어갔다. 다만 1뺘는 1966년, 5/25뺘는 1987년, 10/50뺘는 1991년에 순차적으로 퇴출되어서, 1999년 새 시리즈가 등장하기까지 8년동안은 동전이 소액단위도 없이 1짯 한 종류밖에 없었던 기이한 체계가 유지된 적도 있었다.

이후 1999년에 신 시리즈 5종류(100, 50, 10, 5, 1짯)가 등장했고, 2008년에 100, 50짯의 신 버전을 내놓았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6. 태환권[편집]


미얀마도 일단 근본이 사회주의 국가인지라, 태환권이라는 것이 있었다. 1993년에 도입.

과거 미얀마는 입국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300태환짯(=300달러!)을 의무적으로 환전해야만하는 법률을 근거로, 싼 값에 반해 동남아를 찾은 여행객들을 경악케 했었다. 하지만 이런 조치로 되려 여행객이 확 줄어서 관광수입이 바닥을 치자 의무환전금액을 200짯으로 내리더니, 2003년 8월부로 폐지를 선언하면서[15], 이 태환권도 사실상 운명을 다해버렸다. 공식적으론 여전히 효력이 남아있긴 해도, 애초에 이 미얀마의 태환권이라는게 중국의 태환권을 모방한 것인데다, 질도 조잡해서 받아주는 쪽이 심히 꺼리기 때문에 쓸 만한 물건이 아니다.

위 사진에도 쓰여있지만... 미국 1달러가 미얀마 1짯이다! 가격 자체로도 도저히 시중에서 쓸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16]


7.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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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왼쪽의 버마 문자는 버마 문자 폰트가 설치되어있는 기기에서만 보이며, 실제 문자 그대로 표기하면 kra-p. 물론 끄랍이라고 읽지 않는다.[2] 피아스등으로 읽기 쉽지만, 다.[3] 현재는 미얀마 짯으로 바뀌었다.[4] 외국인들이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지폐.[5] 대략 반도 안되는 환율 (400~500짯/$)에 잘해주겠다고 꼬신다.[6] 아예 법적으로 낡은 외국화의 환전이 금지되어 있다. 접힌것도 불가능해서, 웃는 은행원에게 싸움거는 외국인이 한둘이 아니다.[7] 하지만 엄밀히는 인도 루피와 다르다. 미얀마에서 통용되는 것은, 겉에 "Burma"라고 따로 쓰여있다.[8] 신화 속 춤꾼[9] 버마식 나무인형극에 등장하는 왕자역할.[10] 평화와 번영의 신[11] 96년에 신판이 나왔다.[12] Chinthe. 좌우 규칙적으로 번갈아가며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13] 전통놀이. 리드미컬하게 공을 땅에 떨구지 않고 드리블처럼 발로만 튀기는 것이다. 인원수는 제한이 없는 듯.[14] 왕실풍의 배.[15] 완전 폐기는 2012년 말.[16] 주요 용도는 공공요금을 낼 때였다. 탁상행정의 달인, 정부선생은 달러를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 문제는 그 요금도 100달러가 넘어가면 다행일텐데... 그리고 여행객들이 공공요금 낼 곳이 어딨을까?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