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첼 살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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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축구 감독


파일:Míchel-Salgado-puede-poner-rumbo-a-Grecia.jpg


라리가 앰버서더

이름
미첼 살가도
Míchel Salgado

본명
미겔 앙헬 살가도 페르난데스
Miguel Ángel Salgado Fernández
출생
1975년 10월 22일 (48세)
스페인국 갈리시아지방 아스네베스
국적
[[스페인|

스페인
display: none; display: 스페인"
행정구
]]

신체
174cm
직업
축구 선수 (라이트백 / 은퇴)
소속
선수
RC 셀타 데 비고 B (1994~1995)
RC 셀타 데 비고 (1995~1999)
UD 살라망카 (1996~1997 / 임대)
레알 마드리드 CF (1999~2009)
블랙번 로버스 FC (2009~2012)
감독
갈리시아 대표팀 (2016~ )
UAE 대표팀 (2021~ / 특별 컨설턴트)
국가대표
파일: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53경기 (스페인 / 1998~2006)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커리어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여담




1. 개요[편집]




스페인 국적의 前 축구 선수. 현재 라리가 앰버서더로 활동하고 있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라이트백이다.

선수 시절 레알 마드리드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그 유명한 갈락티코스 군단의 일원이었다.


2. 클럽 경력[편집]



2.1. 셀타 비고[편집]


갈리시아 아스네베스 출신인 살가도는 1992년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와 함께 갈리시아를 대표하는 구단인 셀타 비고 유스 팀에 입단했다. 당시 유스 팀에 '미겔'이란 이름의 선수가 존재했었기에 살가도는 자신의 이름인 미겔 대신 미첼로 본인을 선수 명단에 등록했다.

1996/1997 시즌 살라망카로 가 임대 생활을 하며 기량을 끌어올린 살가도는 다음 시즌 셀타 비고의 주전으로 자리잡으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2. 레알 마드리드 CF[편집]


1999년, 파비오 카펠로 감독을 따라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으나 잦은 감독 교체로 인해 구단에 실망한 크리스티안 파누치가 이적함에 따라 대체자를 찾던 레알 마드리드가 살가도를 영입한다. 마드리드 팬들은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활약하던 파누치 대신 갈리시아 지방의 무명 선수를 영입한 것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었으나 살가도는 첫 시즌부터 레알의 주전으로 자리잡으며 호베르투 카를루스와 함께 레알의 극강 풀백진을 형성했다. 살가도는 이적한 첫 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페르난도 모리엔테스의 득점을 도우며 레알 마드리드의 우승에 공헌한다.

2000년 살가도는 위기의 봉착한다. 새로 레알 마드리드 회장직에 앉게 된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이 루이스 피구를 시작으로 스타 선수들을 영입하는 일명 갈락티코스 정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가도는 루이스 피구, 지네딘 지단과 같은 스타 선수도, 라울 곤살레스, 이케르 카시야스와 같은 유소년 출신 선수도 아님에도 주전 라이트백으로 자리를 굳건히 하며 2000년대 초반 레알 마드리드 전성기의 일원으로 맹활약했다.

물론 레알 마드리드가 이 시기 라이트백 영입을 등한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유럽 무대에 적응하지 못했던 디오고, 지나치게 공격적이라 불안했던 시시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며 살가도는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며 세비야에서 영입된 세르히오 라모스[1] 성장하기 직전까지 팀의 우측 수비를 책임지면서 라리가 2연패를 달성하기도 했다.

2009년 그는 레알과 계약을 상호 해지해 블랙번 로버스로 이적한다.


2.3. 블랙번 로버스[편집]


2009년 노장 선수 기용에 적극적이던 샘 앨러다이스가 이끄는 블랙번 로버스와 2년 계약을 체결했다. 살가도는 이적하자마자 주전 라이트백 자리를 차지하며 계약을 1년 연장했으나 나이가 많이 찬 만큼 기량이 많이 하락하였고, 여기에 설상가상 블랙번은 2011-12 시즌 강등을 당하였고 결국 블랙번과의 연장 계약에 실패하면서 은퇴를 선언한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유로 2000을 통해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에 주전으로 출전했으나 수비적인 면에서 문제를 보였다. 이후 푸욜의 급성장으로 인해 대표팀과 멀어졌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엔트리에도 뽑히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절치부심한 살가도는 2003년부터 다시 스페인의 주전을 차지하는데 당시 스페인의 감독이었던 이냐키 사에스는 우 살가도-좌 푸욜 라인을 탄생시키며 완성도 높은 사이드백 라인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살가도는 유로 2004 최종 엔트리에 발탁되고도 훈련 도중 부상을 당하면서 엔트리에서 아웃된다. 살가도 대신 발탁된 라울 브라보의 활약이 미비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살가도의 부재는 스페인에게 천추의 한이 된 셈.

2006년 월드컵에도 출전했으나 세르히오 라모스에게 밀려 1경기 출장하는 데 그쳤고 월드컵 직후 대표팀을 은퇴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날카로운 오버래핑을 주무기로 하였으며 넘치는 투지를 바탕으로 터프한 수비와 몸을 아끼지 않는 수비로 상대 공격수를 저지했다. 윙어와 연계를 통한 공격능력과 크로스능력 역시 준수하였다. 하지만 스피드가 느렸던 탓에 오버래핑 후 수비 복귀가 느려 발빠르고 개인기 좋은 공격수에게 뒷공간을 내주는 일이 많았으며 무리한 반칙을 저질러 경고나 퇴장을 받는 일이 잦았다.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 말기에는 과도한 오버랩보다는 오프 더 볼 움직임과 동료와의 연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5. 커리어[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5.2. 개인 수상[편집]




6. 여담[편집]


  • 1998년 주니뉴 파울리스타에게 살인 태클을 한적이 있다. 그리고 주니뉴는 6개월 후에야 복귀했다.

  • 2000년에 결혼했는데 배우자는 당시 레알 마드리드 회장이던 로렌소 산스의 딸 말룰라 산스였다. 슬하에 딸 하나가 있다.

  • 현역 시절부터 영어 공부에 관심이 많았다.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스티브 맥마나만과 통역 겸 친구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레알 마드리드를 떠난 이후에는 잉글랜드 블랙번에서 뛰었다. 여기에 은퇴 후엔 영국 스카이스포츠에서 축구 해설 위원으로도 활약했었다.

  • 은퇴 이후 중동인도 지역 축구팀의 이사회 멤버로 주로 활동했다. 이를 바탕으로 중동 갑부들의 지원을 등에 업어 셀타 비고의 회장직을 노렸으나 카를로스 모우리뇨 셀타 비고 회장은 이를 거절했다. 거절의 이유는 셀타 비고를 중국 자본에 넘길 생각이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으며 살가도는 이에 관해 "언제 지원이 끊길 지 모르는 중국 자본을 끌어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 2016-17 시즌부터 스페인 라리가 앰배서더로 활동 중이다.
[1] 정확히 말하자면 라모스는 입단 후, 2시즌 동안에도 살가도와 함께 주전으로 뛰었다. 라이트백이 아닌 센터백으로. 당시 레알 마드리드는 센터백이 상당히 불안했기 때문에 감독들이 라모스를 센터백으로 기용했었는데 라모스가 다른 센터백들보다 더 잘해서 레알 입단 후 한동안은 중앙에서 뛰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이후 라모스는 2007-08 시즌부터 살가도를 밀어내고 라이트백으로 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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