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와 켄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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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미카와켄이치.jpg
1. 개요
2. 경력
3. 대마초 복용 사건
5. 이야깃거리


1. 개요[편집]


일본가수. 본명은 모모세 유이치. '미카'라는 예명으로 데뷔하였다.


2. 경력[편집]


1965년에 청춘가요를 부르는 미소년 컨셉을 내세워,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래도》라는 노래로 데뷔하였다. 하지만 다음 해인 1966년에 레코드 회사로부터 엔카 《야나가세 블루스》라는 노래를 부르라고 요청받았다. 미카와 켄이치는 이를 거절했지만 이를 부르지 않는다면 해고될 수 있다는 레코드 회사의 강요에 못이겨 《야나가세 블루스》를 부르게 되고, 이것이 크게 히트하여 엔카 가수로 노선을 바꾸게 되었다. 이후 《여자의 아침》, 《쿠시로의 밤》, 《전갈자리 여자》 등의 노래가 연달아 히트하면서 일약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3. 대마초 복용 사건[편집]


1977년, 대마초를 복용한 것이 밝혀져 체포된다. 비록 판결은 기소유예였지만 이미지에 적잖은 타격이 발생하여 그 해 그의 노래였던 《역》이 히트에 실패하게 된다. 이후 1980년에 그의 데뷔 15주년 행사가 곳곳에서 열리면서 재기에 성공하는 성 싶었으나.. 1984년에 대마초를 다시 복용한 것이 밝혀져 이번에는 징역 1년 6개월과 집유 3년을 선고받게 된다. 이후 TV에 출연하는 횟수도 적어졌으며, 지방과 온천을 돌아다니며 작은 행사를 맡는 것이 전부였다. 미카와 켄이치로 예명을 바꾼 것도 이때. 여태까지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함이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4. 재기[편집]


1980년대 후반, 일본에는 모노마네[1] 붐이 일었는데, 그 중 탤런트 고로케의 미카와 켄이치 모노마네가 대히트를 이끌었고, 함께 등장했던 미카와 켄이치 또한 대중들에게 한번 더 각인이 되어, 미카와 켄이치가 부활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이후 홍백가합전 등의 국민 노래 프로그램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며 다시 인지도를 쌓았고, 지금은 일본에서 엔카하면 떠오르는 가수들 중 한명이 될 만큼 인지도가 높은 상태이다. 현재도 국내외로 많은 콘서트에 참여하거나 자신의 은인 고로케와 함께 공연을 다니는 중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5. 이야깃거리[편집]


  • 대마초 때문에 자신이 나락으로 추락하자, 미카와 켄이치는 대마초를 '악마의 속삭임', '지옥' 등으로 표현하며 노골적인 혐오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두 명의 어머니의 존재 덕분이었다고.
  • 가정사가 조금 복잡하다. 자신이 2살 때 어머니의 폐결핵 때문에 숙모에게 맡겨져, 중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숙모가 자신의 진짜 어머니인줄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미카와 켄이치는 이 사실을 숨기기로 하고, 두 명의 어머니를 보살피기 위해 연예인이 되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 미소라 히바리, 아와야 노리코 등 당시의 많은 가수들과 친분이 있었다.
  • 그에 대해 정리한 블로그 글을 보면 활동 초창기 때는 미소년 컨셉이었으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여장을 하고 활동을 하는 것으로 변모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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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대모사와는 달리, 목소리뿐만 아니라 그의 행동거지나 표정 등을 따라하며 대상의 흉내를 내는 것을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