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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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미터의 기원
2.1. 자오선의 측정
3. 새로운 미터의 정의
4. 여담


1. 개요[편집]


거리의 단위. 국제표준표기는 metre지만 미국식 영어에서는 meter라고 쓴다.

1 m는 진공 중에서 이 <math>\displaystyle \frac{1}{299,792,458}</math> 동안 전진한 거리로 정의된다. 국가표준기본법 시행령 별표 1도 "빛이 진공에서 1/299 792 458 초 동안 진행한 경로의 길이"라고 미터를 규정한다. 2019년 SI 개정 정의로는 진공에서 빛의 속도를 c = 299 792 458 m/s 가 되도록 하는 길이의 단위며 수학적으로는 같은 말이다.

SI 단위(미터법)의 대표적인 단위이다. 미터는 단위로 m으로 표기한다. 착각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으나 소문자로 표기함이 원칙이다.[1]

한국에서는 장·노년층을 중심으로 '메다'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어로 미터를 '메타(メーター)'라고 했는데, 한국인들이 발음하기 쉽게 바뀐 것이다.[2] 현대 일본에서는 미국식 철자법 meter에서 유래한 '메타'보다는 영국식 철자법 metre에서 유래한 '메토루(メートル, ㍍)'가 더 일반적이다.

중국에서는 (미) 혹은 公尺(gōngchǐ, 궁츠)을 미터의 의미로도 쓴다. 전자는 '미터'를 음차한 '米突(mǐtū)'를 줄여 부르는 것이고, 후자는 중국 자체의 표현법을 의미한다. 公은 중국어 도량형에서 '국제 단위계에 의한 단위'를 의미하고 그것과 값이 비슷한 중국 전통 단위 (chǐ, 한국식 독음은 )를 덧붙인다. 즉 尺와 값이 비슷한[3] 국제 단위계라서 公尺이다. 여기서 1000을 곱한 킬로미터는 公里(공리)라고 표현한다. 역시 里(lǐ, 한국식 독음은 )와 값이 비슷한 국제 단위란 뜻이다.


2. 미터의 기원[편집]


사실 완전히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창조된 단위는 아니다. 1미터에 가까운 단위나 미터라는 이름 자체는 그 이전부터 있기는 했다.

18세기는 계몽주의의 시대로, 본격적인 근대 과학이 태동하여 정량화된 과학이란 개념이 나타났다. 이에 측정기술과 도구들은 괄목상대해야 할 발전을 거듭했지만, 정작 통일된 도량형이 없어서 유럽 세계의 과학자들이 서로 교류하는 데 큰 문제가 있었다. 이에 과학자들은 새로운 도량형이 필요함을 느꼈다.

미터의 개념의 기원이 된 첫 주장은 영국의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이 제안하였다. 그는 진자의 반주기, 즉 진자가 한쪽에서 반대쪽으로 가는 시간이 1초인 진자막대의 길이를 표준단위로 삼자고 주장했다. 이 첫 미터의 정의 기준이 지금도 흔적으로 남아 지금의 미터 기준으로 0.993 621 4 m 정도가 된다.(제곱근의 유효숫자는 원 숫자보다 1 개 더 늘리므로 유효숫자 7 자리까지 구했다.) 중력가속도의 첫 두자리가[4] 파이의 제곱과[5] 같은 것도 이때의 흔적이다. 이러한 신도량형은 영국 의회에도 제안되었고 그 통과를 앞두었다

이후 프랑스 혁명 정부탈레랑도 그 영향을 받아 1790년, 프랑스 혁명 의회에 도량형의 통일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했고, 파리 과학 아카데미에 새로운 도량형의 정의를 요구했다.

당초에는 탈레랑도 크리스토퍼 렌의 주장을 받아들일 생각이었으므로 아카데미의 회의에 영국의 과학자들을 초청하자는 제안도 하였다. 일이 잘 되었다면 서유럽의 양대 강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동시 미터법을 채택하여 자연스레 국제사회로 전파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이 격화되면서 프랑스와 영국간 외교관계는 악화되었고, 영국의 과학자들을 초청하자는 제안은 취소되었다. 탈레랑은 이에 길이 단위에 시간이라는 다른 단위가 얽히는 것은 모순이라는 이유를 대며 크리스토퍼 렌의 기준을 비판하였다.[6] 거기다가 진자를 이용하여 1 m를 정의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위도에 따라서 중력의 세기가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중력 문서가 설명했듯이, 적도에서는 지구 자전으로 말미암은 원심력이 고위도 지방보다 강하기 때문에 중력이 고위도 지방보다 약하다. 이에 따라 적도 지방에서는 진자를 이용하면 1 m의 길이가 짧게 측정되었고, 결국 진자가 아닌 다른 길이 정의 방식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이때 파리 과학 아카데미에 있던 인물이 앙투안 라부아지에인데, 그는 이미 영국의 제임스 와트에게 의뢰를 받아 도량형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역사적 유명인 우르르 나오는 시대적 사건 초진자의 길이가 지구 둘레의 약 4천만 분의 1에 가깝다는 것을 인지한 아카데미 측은 1791년 3월, 지구 둘레가 더 좋은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아카데미는 적도 길이의 4천만분의 1을 당초 계획으로 제출하였으나, 적도의 길이를 측정하는 것은 너무나 거대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반려되었다. 대신 파리의 경도를 기준으로 하여 북극부터 적도까지의 자오선을 기준으로 하여 그 1천만분의 1로 정의하기로 결정되었다. 이 자오선 측정 프로젝트는 프랑스 혁명으로 파리를 탈출했던 루이 16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서명한 서류라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 초진자의 길이를 기준으로 하자는 입장이었던 군사 공학자 프뢰외르가 정치질을 하는 바람에 라부아지에징세청부업자라는 혐의로 사형당하여 자오선 측정 프로젝트는 난항을 겪느라 1797년에야 완료되었다. 이러한 경위로 지구의 물리적 수치 중 지구의 둘레는 약 4만 킬로미터로 맞아 떨어지는 수치가 되었다.[7]

이후, 측량술의 발달로 지구가 완벽히 대칭인 구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논란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1799년 백금 원기로 1미터 길이를 제시하다가, 1889년에 정확한 1미터의 기준이 될 미터 원기를 백금 90% 이리듐 10% 합금으로 제작하였다. 이 합금은 부식되거나 산화되지 않으며 온도에 따른 변화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1 미터는 섭씨 0°C에서 이 미터 원기의 길이로 정의되었다.[8]

프랑스 혁명 정부는 1799년 미터법을 국가표준으로 채택했지만, 대중들은 이미 익숙한 기존 도량형을 사용했기 때문에 정착이 지지부진했다. 결국 1840년에 법적으로 사용을 강제한 뒤에야 대중 사이에 정착했는데, 벌금 10프랑씩 매긴 덕분이었다고 한다. 이후 이 미터법은 배우고 사용하기 쉬우며, 객관적 표준이 프랑스와 같은 특정세력이 독점한 무언가가 아니라 지구를 근거로 하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채택될 수 있었다.



2.1. 자오선의 측정[편집]


내용 출처
이미지 출처
정의하기로는 북극에서 적도까지 거리의 천만 분의 1이라 하였으나, 당시로서는 인공위성은커녕 비행기도 없었고 바다 위에서 동원할 정밀한 측정도구조차 없었다. 그리하여 실제 자오선 길이를 측정할 때, 적당히 자오선의 일부를 추출하여 육지 위에서 측정하는 방법으로 대체하였다.

파일:fOvsgEH.png
위 그림과 같이 됭케르크(가장 북쪽에 있는 파란색 표시)에서 바르셀로나까지, 경로의 대부분이 프랑스 영토 남북을 가로지르는 두 지역을 기준으로 떨어진 거리와 위도 차를 측정하고 자오선의 길이를 유추하였다. 측정참가자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 한 쪽(Delambre 담당)은 됭케르크에서 로데(Rodez, 연두색 표시)까지, 다른 한쪽(Mechain 담당)은 바르셀로나부터 로데까지 맡았다.

측정과정에서 육지 위 랜드마크를 군데군데 선정하고 삼각측량으로 거리를 계산하였다.(각도 측정에 사용한 도구가 위 출처에 있다.) 사실 자크 카시니(Jacques Cassini)가 이미 1718년 됭케르크에서 콜리우르(Collioure, 바르셀로나의 바로 위 붉은색 표시에서 살짝 남쪽 해변)까지 거리를 재고자 삼각측량을 이용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사이 프랑스 혁명 등 굵직한 사건으로 기존에 설정했던 랜드마크 상당수가 철거 혹은 소실되어, 다른 랜드마크를 골라야 했다. 더욱이 측정 과정에서 도구가 망가지는 등 각종 크고 작은 일을 겪기도 했다. 한 예로 거리와 각도 측정의 기준점을 정하기 위해 하얀 깃발을 세웠는데, 하얀색 깃발이 왕당파를 의미해서 잡혀간 일도 있었다. 그 당시로서는 천 km에 이르는 거리를 측정하기란 매우 험난한 과정이었다.[9]


3. 새로운 미터의 정의[편집]


미터의 첫 정의는 '적도에서 북극까지 자오선 길이의 1천만 분의 1'이었다. 따라서 정의대로라면 북극에서 남극을 거쳐 북극으로 돌아오는 자오선의 길이는 4천만 m여야만 한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 기술이 발전하자 당시 측정에 오차가 있어서, 정의와 달리 지구 자오선의 길이가 4천만 m보다 약간 더 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10] 만약 더 정확한 자오선의 길이에 따라 새로 미터를 정의한다면, 새로운 1m는 기존 1 m보다 약 0.2 mm 더 길어야 한다.[11] 그렇다면 선택은 두 가지밖에 없다. 정의에 따라 다시 정확히 측정하여 미터를 다시 만들거나, 아니면 기존 미터를 놔두고 정의를 바꾸거나.

또다른 문제도 있었다. 아무리 특수한 합금으로 만들더라도 미터 원기의 길이는 역시 온도 등 외부요인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아주 정확한 기준으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 지구는 이상적인 구형도 타원체도 아니고 당시 측정 과정에서 잰 경로(혹은 지오이드면)가 정확히 원호라는 보장도 없었다.

1 m의 길이가 0.2 mm쯤 달라지면 정밀한 측정/측량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큰 문제가 생긴다. 또한 기존 미터를 기준으로 삼은 실험이나 각종 공업제품/공예품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측정을 다시 하여 기존 정의에 맞는 정확한 미터를 새로 구하느니, '잘못 측정된' 미터를 그대로 두고 정의를 바꾸어 그 길이를 재현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1960년에는 좀 더 과학적인 기준으로 크립톤 원자가 방출하는 의 파장을 정의로 채택하였다. 이때 1미터는 크립톤-86 원자가 방출하는 오렌지색-적색 범위의 빛의 진공에서의 파장의 165만 763.73 배로 정의했다.

그런데 측정이 점점 정확해지고 더 높은 정밀성이 요구되자 이 정의도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 나왔다. 크립톤 원자는 열운동을 하기 때문에 도플러 이동에 의해 파장이 미미하게 분산(열적 도플러 선폭 증가)되어 단일한 값이 잘 나오지 않는다. 이 때문에 파장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데는 다소 어려움이 생겨 100만 분의 1 정도 오차가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1983년에 마침내 1 미터를 진공에서 2억 9979만 2458분의 1 초 동안 진행하는 거리로 정의했고, 이 정의는 현재까지도 쓰인다. 그러나 측정상 편의 문제로 실제 실험에서는 현재에도 레이저의 파장을 측정하여 거리의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3억분의 1 같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2억 9979만 2458분의 1이라는 복잡한 숫자로 정의한 이유는 이전에 정의한 길이와 맞추기 위해서이다. 백금-이리듐 원기나 크립톤 원자를 이용하여 약속한 1 미터의 길이를 함부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1 미터의 길이 자체를 바꾸면 과거의 '미터'를 적용한 기기나 측정기록 등의 호환이 깨진다. 물론 일상적인 생활에서는 그 정도 차이를 무시해도 되지만, 정밀한 실험 등에서는 새로 정의된 미터과 기존 미터의 차이 때문에 과거의 실험결과로 나온 수치를 그대로 사용하지 못하여 큰 지장이 생긴다. 이 때문에 원래 있던 정의에 근거하여 정해진 길이 1미터를 그대로 두고, 정밀도를 높이는 식으로 정의를 바꾸면서 숫자를 위와 같이 복잡하게 잡은 것이다. 이는 1초의 정의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약 다른 값, 예를 들어 빛이 3억 분의 1초 동안 지나는 거리를 1 m로 정했다면 지금의 1 m당 0.7 mm 더 짧아진다. 일상적인 단위 사용에서야 이 정도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정밀한 측정분야에서는 엄청난 오차이며 관련 측정장비를 전부 다시 만들어야 한다. 당연히 측정장비를 몽땅 바꾸는 것보다는 정의를 바꾸면서 숫자를 위와 같이 복잡하게 잡는 게 비용이 싸게 먹힌다.

4. 여담[편집]


  • km 이상의 미터 단위는 Mm, Gm, Tm, Pm, Em, Zm, Ym, Rm, Qm 순으로 늘어나지만 잘 안 쓰인다. 지구의 둘레가 4만 ㎞ 남짓이기에 Mm는 쓸 법도 하지만[12] 익숙한 km가 Mm보다 잘 와닿기 때문에 이조차도 많이 쓰이진 않는다. 그 이상 단위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우주에서 이 단위를 쓰자니 우주의 기본단위인 천문단위광년이나 파섹이 있다.[13]
  • 2018년 4월 22일에 방영된 도전 골든벨에서 마지막 골든벨 문제로 등장하였다. 문제는 '이것'의 역사에 따라 변화했던 정의를 던져주고 답으로 미터(m)를 적으면 되는 것.[14]
  • 한국어에선 종종 센티미터를 줄여서 '센치' 또는 '쎈찌'라고 읽곤 한다. 이는 센티미터의 일본어식 약자 센치(センチ)가 들어왔거나, 한국어의 구개음화 현상으로 티읕 발음이 이 모음을 만나 치읓으로 바뀌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밀리미터 역시 줄여서 '미리'리고 발음하는 사례가 흔한데, 역시 일본어식 줄임말 미리(ミリ)가 들어온 것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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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위의 대소문자 구분은 일반적으로 사람 이름이나 성에서 따온 경우엔 첫 글자를 대문자로, 그렇지 않다면 소문자로 표기함이 기본이다. 가령 온도단위인 Celsius는 18세기 스웨덴 천문학자 안데르스 셀시우스(Anders Celsius)의 이름에서 따왔기 때문에 대문자 C를 사용하여 '°C'로 씀이 원칙이다. 자세한 내용은 미터법 문서나 도량형 문서를 참조하자.[2] 일제강점기에 한국어로 들어온 일본어 단어는 청음(清音)이 예사소리화되는 경우가 흔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다다미. 요새 들어온 단어였다면 타타미, 또는 다타미라고 했을 것이지만, 일본어 ta행은 한국어의 ㅌ처럼 파열음이 아니므로 타타미보다 다다미가 원음상으로는 좀 더 유사하다.[3] 실제로는 상용로그를 취해야 비슷해지지만[4] 9.80665에서 9.8[5] 3.14...의 제곱인 9.8696044...에서 9.8[6] 현대의 미터 정의가 '빛이 1/299 792 458 초 동안 진행한 경로의 길이'로 시간 단위가 얽힘을 생각하면 참으로 얄궂은 일이다.[7] 미터의 기준이 변경되고 측량기술이 발달한 현대에 측정된 수치는 남북극 방향을 기준으로 약 40,009 km이다.[8] 1894년 킬로그램 원기와 함께 국내로 들어왔고, 충북 음성에 있는 국가기술표준원 계량박물관에 킬로그램 원기와 함께 전시 중이다.[9] 물론 고대에 에라토스테네스도 비슷한 방법으로 길이를 쟀지만, 미터 원기를 제작하고자 측정하는 작업은 매우 정밀해야 하므로 사정이 판이했다.[10] 정확하게는 대략 4000만 7863 m 정도이다.[11] 오차가 있었다 하지만 겨우 0.2 mm 남짓이었으므로, 최초의 정의에 따라 측량하고 미터 원기를 만든 이들은 당시 기술수준을 감안하면 대단히 정확하게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12] 서울(인천국제공항) - 뉴욕(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의 거리는 11 Mm 정도로 나타낼 수 있다.[13] Pm 이상부터는 광년이나 파섹에 비해서 작은 편이 아니다. 가령 1 Em은 100 광년이고 1 Zm은 10만 광년, 1 Ym은 1억 광년이고, 관측가능한 우주의 크기는 약 880 Ym (0.88 Rm) 이다. 이미 굳어진 단위가 있는데 굳이 접두사를 붙이면서까지 미터를 쓸 이유가 없을 뿐이다. 다만 광활한 우주를 다루는 게임인 엘리트: 데인저러스에서는 C (빛의 속도) 이하의 단위로 Mm/s가 나오긴 한다.[14] 고등학교 물리1 교과서 첫 부분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