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호노 부르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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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에 등장하는 캐릭터에 대한 내용은 미호노 부르봉(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문서 참고하십시오.
조부 밀 리프는 14전 12승 2착 2회의 전적으로 더비와 킹 조지, 개선문상을 우승, Timeform 레이팅 141을 기록한 명마로, 일본 경마계에서의 또다른 대표적인 후손으로는 이나리 원이 있다.
부마 매그니튜드의 다른 GI 자마로 에레부스, 코가네 타이후(コガネタイフウ, 1989년 한신 3세 스테이크스), 마사 럭키(マサラッキ, 1999년 타카마츠노미야 기념)이 있다.
모계 3대모 카미 야마토의 반형제 언니로 1960년 우준 빈마, 아리마 기념을 우승한 스타 로치가 있다.
영세 목장이었던 하라구치 목장에서 당시 종마로 인기있던 밀 조지(이나리 원의 아비)와의 교배를 원했지만 교배료가 비쌌기 때문에 같은 밀 리프의 산구지만 교배료는 50만엔 정도로 쌌던 매그니튜드를 대신 선택해서 태어나게 된다. 태어날 당시에는 마체도 그리 좋지 않았고, 성격도 다른 말들과 떨어져 홀로 조용히 지내는 등 "얘가 과연 경주마로서 제대로 뛸 수나 있을까?"라는 걱정을 살 정도였다.
하지만 목장의 염원이었던 "중앙경마에 출전시켜 미승리전을 승리한다"[4] 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세일즈를 했고, 마침 자신의 이론[5] 을 증명하기 위해 750만엔에 구입[6] 하고, 체질적으로 스피드에 특화된 스프린터형이지만 "단련시켜서 강한 말을 만든다"라는 신념으로 유명한 스파르타 조교의 대부 토야마 타메오(戸山為夫) 조교사가 이론과 신념을 결합시켜 오직 트레이닝 하나만으로 적성 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데에 성공시켰다.[7][8] 특히 보통 말이면 많아야 주 2~3회, 하루 한번 뛰면 기진맥진하는 릿토 트레이닝 센터의 언덕 코스[9] 훈련을 훈련 초기부터 매일 하루 4회씩 소화한 괴물같은 훈련량은 현재까지도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한 번은 토야마 타메오 조교사가 1일 5회를 시험해 보았지만 천하의 부르봉도 5회를 했더니 컨디션이 무너져서 다시 1일 4회로 되돌렸다고 한다.
데뷔전에서는 스타트 실수로 후방 스퍼트를 통해 이겼지만, 이후 도주 각질로 일관하면서 기계적인 페이스 배분과 압도적인 힘으로 연승을 거듭, 사츠키상(2000m)과 일본 더비(2400m)를 모조리 쓸어담았다.
클래식의 마지막 관문인 킷카상(3000m)도 우승이 유력했으나, 쿄에이 보우건이 도주하는 것을 본 미호노 부르봉 측이 평소 페이스와 달리 추격을 시작하며 예상보다 스태미너를 많이 소모했고,[10] 미호노 부르봉에게 커리어가 짓밟혀온 라이스 샤워에게[11] 철저히 마킹당한 끝에 패배, 2착으로 들어오면서 무패 트리플 크라운의 꿈은 목전에서 좌절되었다.[12] 여담으로 킷카상의 이 패배가 생애 최초의 패배였던지라, 이제까지 뛴다=이긴다가 당연한 것으로 학습한 부르봉이 위닝 런을 하러 가려고 했던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킷카상의 패배에 이어 식도암을 앓고 있던[13] 토야마 조교사의 죽음[14] 등 비극이 따라왔고, 잔부상이 여러 차례 이어지더니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이듬해에 은퇴했다. 라이스 샤워와 마찬가지로 가혹한 훈련으로 몸에 피로가 누적되어서 부상으로 이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경기 중 골절로 안락사된 라이스 샤워에 비하면 오래 살았다는 점이다. 선천적인 이점보다는 후천적으로 강화된 능력 탓인지 씨수말로의 실적은 그리 높지는 못했다. 다만 단련된 몸은 어디 안갔는지 노환으로 죽을 때 까지도 몸의 근육이 다 빠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25살 미호노 부르봉의 몸 상태.
무패 삼관은 무산되었지만, 현역시절의 압도적인 퍼포먼스와 마체로 인하여[15] '언덕길의 산물', '사이보그', '스파르타의 바람'[16] 등등의 별명으로 불린 명마로, 이 말의 성공 사례를 계기로 언덕 코스의 강점을 가진 릿토(관서)말이 미호(관동)말에 우위를 갖기 시작했고, 이는 2010년도 후반에 미호 마주들이 접하기 쉬운 외부 훈련 목장의 시설 강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된다. 현재에는 대자본이 투입된 대형목장들이 설립한 외부 트레이닝 센터들이 유력마들의 대세가 되고, 릿토, 미호 트레이닝 센터는 밀려난 상태이다.
[20]
[각주]
1. 개요[편집]
신념의 갑옷
누군가 소리친다
너에게는 무리라고
큰 소리가 울려퍼진다
너에게도 한계가 있다고
남들이 멋대로 하는
짐작이나 단정 따위
되받아쳐 주어라
오늘까지 단련해 온
신념이라는 이름의 갑옷을
몸에 걸치고
JRA 명마의 초상
92년, 사츠키상.
그 몬스터의 이름은 미호노 부르봉.
상식은, 적이다.
2011년 사츠키상 CM
일본의 경주마. 무패 클래식 삼관의 목전까지 근접했었던 당대 최강의 명마. 이름의 유래는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로 보인다.
2. 혈통[편집]
조부 밀 리프는 14전 12승 2착 2회의 전적으로 더비와 킹 조지, 개선문상을 우승, Timeform 레이팅 141을 기록한 명마로, 일본 경마계에서의 또다른 대표적인 후손으로는 이나리 원이 있다.
부마 매그니튜드의 다른 GI 자마로 에레부스, 코가네 타이후(コガネタイフウ, 1989년 한신 3세 스테이크스), 마사 럭키(マサラッキ, 1999년 타카마츠노미야 기념)이 있다.
모계 3대모 카미 야마토의 반형제 언니로 1960년 우준 빈마, 아리마 기념을 우승한 스타 로치가 있다.
3. 생애[편집]
영세 목장이었던 하라구치 목장에서 당시 종마로 인기있던 밀 조지(이나리 원의 아비)와의 교배를 원했지만 교배료가 비쌌기 때문에 같은 밀 리프의 산구지만 교배료는 50만엔 정도로 쌌던 매그니튜드를 대신 선택해서 태어나게 된다. 태어날 당시에는 마체도 그리 좋지 않았고, 성격도 다른 말들과 떨어져 홀로 조용히 지내는 등 "얘가 과연 경주마로서 제대로 뛸 수나 있을까?"라는 걱정을 살 정도였다.
하지만 목장의 염원이었던 "중앙경마에 출전시켜 미승리전을 승리한다"[4] 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세일즈를 했고, 마침 자신의 이론[5] 을 증명하기 위해 750만엔에 구입[6] 하고, 체질적으로 스피드에 특화된 스프린터형이지만 "단련시켜서 강한 말을 만든다"라는 신념으로 유명한 스파르타 조교의 대부 토야마 타메오(戸山為夫) 조교사가 이론과 신념을 결합시켜 오직 트레이닝 하나만으로 적성 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데에 성공시켰다.[7][8] 특히 보통 말이면 많아야 주 2~3회, 하루 한번 뛰면 기진맥진하는 릿토 트레이닝 센터의 언덕 코스[9] 훈련을 훈련 초기부터 매일 하루 4회씩 소화한 괴물같은 훈련량은 현재까지도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한 번은 토야마 타메오 조교사가 1일 5회를 시험해 보았지만 천하의 부르봉도 5회를 했더니 컨디션이 무너져서 다시 1일 4회로 되돌렸다고 한다.
데뷔전에서는 스타트 실수로 후방 스퍼트를 통해 이겼지만, 이후 도주 각질로 일관하면서 기계적인 페이스 배분과 압도적인 힘으로 연승을 거듭, 사츠키상(2000m)과 일본 더비(2400m)를 모조리 쓸어담았다.
클래식의 마지막 관문인 킷카상(3000m)도 우승이 유력했으나, 쿄에이 보우건이 도주하는 것을 본 미호노 부르봉 측이 평소 페이스와 달리 추격을 시작하며 예상보다 스태미너를 많이 소모했고,[10] 미호노 부르봉에게 커리어가 짓밟혀온 라이스 샤워에게[11] 철저히 마킹당한 끝에 패배, 2착으로 들어오면서 무패 트리플 크라운의 꿈은 목전에서 좌절되었다.[12] 여담으로 킷카상의 이 패배가 생애 최초의 패배였던지라, 이제까지 뛴다=이긴다가 당연한 것으로 학습한 부르봉이 위닝 런을 하러 가려고 했던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킷카상의 패배에 이어 식도암을 앓고 있던[13] 토야마 조교사의 죽음[14] 등 비극이 따라왔고, 잔부상이 여러 차례 이어지더니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이듬해에 은퇴했다. 라이스 샤워와 마찬가지로 가혹한 훈련으로 몸에 피로가 누적되어서 부상으로 이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경기 중 골절로 안락사된 라이스 샤워에 비하면 오래 살았다는 점이다. 선천적인 이점보다는 후천적으로 강화된 능력 탓인지 씨수말로의 실적은 그리 높지는 못했다. 다만 단련된 몸은 어디 안갔는지 노환으로 죽을 때 까지도 몸의 근육이 다 빠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25살 미호노 부르봉의 몸 상태.
무패 삼관은 무산되었지만, 현역시절의 압도적인 퍼포먼스와 마체로 인하여[15] '언덕길의 산물', '사이보그', '스파르타의 바람'[16] 등등의 별명으로 불린 명마로, 이 말의 성공 사례를 계기로 언덕 코스의 강점을 가진 릿토(관서)말이 미호(관동)말에 우위를 갖기 시작했고, 이는 2010년도 후반에 미호 마주들이 접하기 쉬운 외부 훈련 목장의 시설 강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된다. 현재에는 대자본이 투입된 대형목장들이 설립한 외부 트레이닝 센터들이 유력마들의 대세가 되고, 릿토, 미호 트레이닝 센터는 밀려난 상태이다.
4. 종마 성적[편집]
[1] 토야마 타메오를 제외한 두 조교사가 담당할 때에는 경주에 출주하지 않았다.[2] 현 JRA상 최우수 2세 수말.[3] 현 JRA상 최우수 3세 수말[4] 목장 배출마 대부분이 지방경마 소속이었고 미호노 부르봉 이전까지 딱 5마리가 중앙경마에 등록되었는데 전부 미승리로 끝났다.[5] 종마가 처음으로 낳은 말은 덩치가 작아지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조교에는 잘 견디는 특성이 있다 라는 이론을 세웠는데 미호노 부르봉은 매그니튜드의 첫 산구 중 하나이면서도 덩치는 의외로 나쁘지 않았기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6]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거의 8천만원 돈이라 비싸 보이지만, 역시 헐값에 팔린걸로 유명한 티엠 오페라 오가 1천만엔에 팔렸다는 걸 생각하면 그보다 더 싼 가격인 750만엔이면 정말 기대 하나도 못 받는 말이었다는 뜻이다.[7] 이를 두고 JRA에서 만든 사츠키상을 광고하는 CM에서, "상식은 적이다."라고 표현한다.[8] 다만 신마전 단 1경기를 제외하면 단거리를 실제로 뛴 적이 없으니 진짜로 거리적성이 단거리였을지는 알 수 없다. 킷카상 승리 전까지 혈통만 보고 거리적성이 단거리나 마일쪽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았던 키타산 블랙 같은 경우도 있고, 애초에 미호노 부르봉의 조부는 킹 조지와 개선문상 우승에 빛나는, 그리고 천황상(봄)과 아리마 기념을 우승한 이나리 원의 조부이기도 한 밀 리프다.[9] 전장 1085m, 고저차 32m의 훈련 코스[10] 다만 이 건으로 쿄에이 보우건을 비난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당시 부르봉의 3관이 좌절되어서 나온 아쉬운 소리에 불과하다. 쿄에이 보우건에 의해 페이스가 어지럽혀진것은 부르봉 뿐만이 아니라, 라이스 샤워를 포함한 다른 말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11] 라이스 샤워에게 첫 G2 우승 기회인 스프링 스테이크스에서 4착을 할 때, 첫 G1 출전인 사츠키상에서 8착을 할 때, 1992년 일본 더비-세인트 라이트 기념-교토 신문배 3연전에서 모두 부진할 때 이 중 일본 더비와 교토 신문배에서 승리를 가져간 것이 바로 미호노 부르봉이었다. 게다가 킷카상은 G3마저 우승하지 못했던 라이스 샤워가 인기 2위인 막장 라인업이었다.[12] 이 당시의 어그로는 부르봉이 경합을 벌여서 페이스가 흔들리는 원인이 되었언 쿄에이 보우건이 가져갔으나, 이후 라이스 샤워가 메지로 맥퀸의 천황상 3연승을 저지하는 이변이 일어나자 킷카상 승리도 안 좋은 의미로 재조명되어 라이스 샤워에게는 악역 이미지가 씌워지게 되었다. 심볼리 루돌프이후 8년만에 다시, 그것도 무패 3관이 좌절된데다, 당시엔 아직 라이스 샤워가 초장거리 스테이어라는 인식도 없었으며, 지금도 뿌리깊은 일본의 큰 지역감정인 관동(미호) VS 관서(릿토) 구도에서 관서를 대표하던 명마 부르봉과 맥퀸의 영예를 그들의 홈인 교토에서 날린 관동의 자객이라는 스토리라인까지 만들어진 탓에, 이런 감정적인 여론이 생겨났다.[13] 투병 중에 조교 노하우를 집대성하여 쓴 책이 '단련시켜 최강마를 만들다-미호노 부르봉은 어째서 명마가 될 수 있었는가(鍛えて最強馬をつくる - ミホノブルボンはなぜ名馬になれたのか)'로, 한국에서는 정식으로 출판되지 않았지만 한국마사회에서 자료용으로 번역한 적이 있다.[14] 부르봉의 전담 기수였던 토야마의 제자 코지마 사다히로(小島貞博)도 기수 은퇴 후 조교사로 일하던 중 생활고로 인해 2012년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15] 링크글에서 알 수 있듯, 근육이 장난이 아니다.[16] 이중 스파르타의 바람은 JRA 히어로 열전의 공식 문구로 쓰였다.[17] 중앙경마 기준[18] 2012년까지 종마 활동 상태로 있었다.[19] 이후 순위 - 2009년 436위, 2010년 409위, 2011년 401위
5. 여담[편집]
- 예능 방송 <춤추는! 산마저택!>(踊る!さんま御殿!)에서 태어난 해에 미호노 부르봉이 엄청나게 강했다는 이유로 이름이 미호가 되었다는 시청자 사연이 등장한 적이 있어서 짤방화 되었다. # / 자막 영상
- '사이보그'라는 딱딱해보이는 별명과 대조적으로, 제대로 뛸 수나 있을지 관계자들이 걱정할 정도로 얌전하고 온화한 성격의 말이었다고 한다.[21][22] 혹독한 훈련을 군말없이 다 받아들인 것도 이 온순한 성격 덕분. 단, 밥 먹는 걸 방해하면 평소와 달리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대식가로 유명한 말이라면 마방에 깔아놓은 건초까지 먹었다는 오구리 캡이나 우마무스메로 유명해진 스페셜 위크등이 있지만, 미호노 부르봉도 만만찮은 대식가였다고 한다. 일부에선 "그렇게 죽도록 훈련을 시켰으니 안 죽을려면 영양보급을 충실히 해야지"라며 스파르타 훈련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격한 조교가 끝난 후나 레이스가 끝난 후에도 식욕이 전혀 줄지 않은데다 은퇴 후에도 60kg씩 먹어댔다는 것을 보면 타고난 대식가인 듯.
- 어렸을 때는 목장의 언덕길을 놀이삼아 오르던 다른 망아지와 달리, 운동은커녕 가만히 있으면서 풀을 먹기만 하는 상당히 게으른 성격이었다고 한다. 은퇴 후에는 이 게으른 성격으로 되돌아와서 방목지에서 누워있는 경우가 많았고, 움직일때도 누워서 움직였다고 한다. 심지어 목책에 발을 끼워 놓아서 관계자들이 눈을 뗄수가 없었다고 한다. 말의 한계를 넘는 하드 트레이닝을 했는데도 부상을 이겨내고 장수한 것에는 이 여유있는 성격이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 영상 #
6. 경주 성적[편집]
[20] #[21] 한번은 은퇴 후 방송출연을 한 적이 있는데, 이때 함께 방송에 나온 여성 연예인이 한번도 말을 타본 적이 없었는데도 부르봉의 등에 올라타게 되었다. 당연히 해당 연예인은 제대로 타기는커녕 거의 매달리다시피 하며 부르봉의 등과 목을 꽉 붙잡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동요하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고 한다.[22] 이는 1992년 킷카상에서 미호노 부르봉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라이스 샤워 또한 마찬가지였다. 라이스 샤워 또한 미호노 부르봉과 메지로 맥퀸의 기록을 저지한 이력때문에 "히트맨", "자객" 같은 이미지를 얻게 됐지만 실제 말의 성격은 세간의 평가와는 다르게 착하고 온순한데다가 성실한 말이었다.[레코드] A B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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