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계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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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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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계 정당
주요 정당
과거
초기
한국민주당 (1945~1949)
민주국민당 (1949~1955)
민주당 (1955~1961)
군정기
신민당 (1967~1980)
민주한국당 (1981~1988)
신한민주당 (1985~1987)
통일민주당 (1987~1990)
제6공화국
평화민주당 (1987~1991)
민주당 (1991~1995)
새정치국민회의 (1995~2000)
새천년민주당 (2000~2005)
열린우리당 (2003~2007)

대통합민주신당 (2007~2008)
통합민주당 (2008)
민주당 (2008~2011)
민주통합당 (2011~2013)
새정치민주연합 (2014~2015)
국민의당 (2016~2018)
현존
원내정당

더불어민주당 (2015~)
집권 정부
장면 내각 (1960~1961)
국민의 정부 (1998~2003)
참여정부 (2003~2008)
문재인 정부 (2017~2022)
의석
현재
169석[1] / 299석 (56.5%)}}}
1. 개요
1.1. 현 상황
1.2. 당색
1.3. 정당 기호
2. 보수정당과의 연관성
3. 역대 민주당계 정당 목록
4. 소속 정치인
4.4. 국회의원
4.4.1. 13대 국회
4.4.2. 14대 국회
4.4.3. 15대 국회
4.4.4. 16대 국회
4.4.5. 17대 국회
4.4.6. 18대 국회
4.4.7. 19대 국회
4.4.8. 20대 국회
4.4.9. 21대 국회
4.5.1. 서울특별시장
4.5.2. 부산광역시장
4.5.3. 인천광역시장
4.5.4. 광주광역시장
4.5.5. 대전광역시장
4.5.6. 울산광역시장
4.5.7. 세종특별자치시장
4.5.8. 경기도지사
4.5.9. 강원도지사
4.5.10. 충청북도지사
4.5.11. 충청남도지사
4.5.12. 전라북도지사
4.5.13. 전라남도지사
4.5.14. 경상북도지사
4.5.15. 경상남도지사
4.5.16. 제주특별자치도지사
4.7.1. 경기도의원
4.7.2. 세종특별자치시의원
4.7.3. 울산광역시의원
4.7.4. 부산광역시의원
4.7.5. 대구광역시의원
4.7.6. 경상북도의원
4.7.7. 경상남도의원
4.7.8. 제주특별자치도의원
4.7.9. 강원도의원
4.9. 당대표
5. 역대 선거결과
5.1. 대통령 선거
5.2. 부통령 선거
5.3. 국회의원 선거
5.4. 지방선거
7. 진보정당과의 관계
8. 관련 문서
9.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민주당계 정당은 한국의 정당 계열 중의 하나로, 1955년 민주당을 그 시초로 자처한다.[2] 다만 이건 역사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현재의 민주당계의 본격적인 시작은 1987년 양김이 결별하면서 창당한 평화민주당새정치국민회의이다. [3]

한국의 정당 특성상 이념보다는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정당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고 사분오열과 이합집산이 자주 반복되어 왔는데, 특징을 잡아보면 야당이었던 기간이 훨씬 길고, 대체로 정당 이름에 민주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4] 한국의 현대사에서 민주라는 명칭이 붙은 정당의 역사는 아래에 기술한다. 또한 민주라는 명칭은 들어가지만, 실질적으로 민주당계와 관련이 없는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 민주자유당, 민주국민당[5], 민주노동당[6], 자유민주연합[7] 등은 제외한다. 더불어 역사적 의미가 옅은 군소정당들은 제외하고 원내정당이거나 특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위주로 서술한다.


1.1. 현 상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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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계 정당의 계파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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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창당 ~ 장면 제2기 내각
신파 (민주당)
구파 (구파동지회)
장면 제2기 내각 ~ 장면 제3기 내각
소장파
노장파
합작파
신민당
통일당
장면 제3기 내각 ~ 장면 제4기 내각
신풍회
노장파
정안회
신민당
통일당
장면 제4기 내각 ~ 5.16 군사정변
신풍회
중도파
노장파
정안회
신민당
통일당
5.16 군사정변 ~ 민정당 창당
정치 활동 금지
민정당 창당 ~ 1차 진산 파동
민주당
민정당
자민당
국민의당
1차 진산 파동 ~ 신민당 창당
민주계
유진산계
신한당
신민당 창당 ~ 2차 진산 파동
신파계
구파계
유진산계
국민당
민중당
2차 진산 파동 ~ 10.26 사건
신파계
구파계
이철승계
민주통일당
10.26 사건 ~ 5.17 내란
동교동계
상도동계
이철승계
민주통일당
5.17 내란 ~ 11대 총선
정치 활동 금지
11대 총선 ~ 12대 총선
민한당
12대 총선 ~ 이민우 구상
동교동계
상도동계
이철승계
민한당
이민우 구상 ~ 13대 대선
동교동계
상도동계
신민당
민한당
13대 대선 ~ 3당 합당
동교동계
상도동계
3당 합당 ~ 14대 총선
한겨레
신민당
꼬마민주계
박찬종계
14대 총선 ~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동교동계
잔류파
새한국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 15대 대선
동교동계
민주계
15대 대선 ~ 16대 대선
동교동계
민주계
이인제계
16대 대선 ~ 열린우리당 창당
친노
동교동 신파
동교동 구파
후단협
이인제계
열린우리당 창당 ~ 17대 총선
친노
민주
17대 총선 ~ 4회 지선
민평련
친노
비노
민주
4회 지선 ~ 17대 대선
민평련
친노
정동영계
민주
김한길계
17대 대선 ~ 18대 총선
민평련
친노
정동영계
민주
손학규계
김한길계
창조
18대 총선 ~ 국민참여당 창당
민평련
정동영계
정세균계
구민주계
손학규계
창조
국민참여당 창당 ~ 민주통합당 창당
정동영계
참여계
민평련
친노
정세균계
구민주계
손학규계
창조
민주통합당 창당 ~ 19대 총선
정동영계
혁통계
민평련
정세균계
구민주계
손학규계
김한길계
창조
19대 총선 ~ 18대 대선
정동영계
민평련
친문
정세균계
박지원계
구민주계
손학규계
김한길계
18대 대선 ~ 14년 재보선
민평련
친문
정세균계
구민주계
손학규계
김한길계
친안
14년 재보선 ~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김민석계
민평련
친문
정세균계
천정배계
구민주계
친안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 20대 총선
김민석계
친문
정세균계
구민주계
친안
20대 총선 ~ 국민의당 분당
박원순계
친문
안희정계
평화
친안
국민의당 분당 ~ 민생당 창당
친명
친문
비문
평화
대안
손학규계
민생당 창당 ~ 21대 총선
민주
민생
21대 총선 ~ 20대 대선
열린
친명
친문
이낙연계
민생
20대 대선 ~ 현재
친명
친문
비명
정당별 계파 (기타 진보정당 · 진보 · 정의 · 민주 · 민생 · 국민의힘 · 극우정당)
계파 역사 (진보정당 · 민주당계 · 보수정당)



파일:대한민국의 정당 역사 계보.png[8]


1.2. 당색[편집]


민주당을 상징하는 색은 세 개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 복귀를 선언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고른 초록색[9],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열린우리당에서 주로 사용한 노란색[10], 2013년 민주당으로 개명한 후 더불어민주당문재인 정부가 사용하는 파란색[11]이 있다.

2015년, 국민의당은 당시 새누리당의 빨강과 더민주의 파랑이라는 스펙트럼의 중간인 초록색을 선택했다.[12] 주황색을 사용했을 때도 있었는데, 대통합민주신당이 그 예다. 2018년, 국민의당의 분열로 생긴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중 민주당 계열인 민주평화당은 초록색을 골랐고, 후신인 민생당까지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현재는 더불어민주당의 색깔인 파란과 민생당이 사용 중인 초록색, 두 색깔이 쓰이고 있다. 다만 민생당이 원외정당이 됨에 따라 원내 민주당계 정당의 색깔은 더불어민주당의 파란색만 남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더불어민주당에서 시조격으로 여기는 1955년 민주당짙은 남색을 당색으로 사용하였고, 깨어있는시민연대당남색 계통을 쓰고 있다.


1.3. 정당 기호[편집]


국회 원내 의석수 순으로 선거 정당기호 순서를 정한 공직선거법이 제정된 이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민주당계 정당이 전국 단위 공직선거에서 받은 기호는 2번 또는 3번이었다. 민주당계 정당이 배출한 3명의 대통령 중에 두 대통령(김대중, 노무현)이 기호 2번으로 당선된 바 있다. 이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탁현민의 연출하에 김대중의 번호, 노무현의 번호라는 유세 CF를 제작하기도 했다. 기호 1번은 보수정당들이 주로 받았는데 이는 1997년까지 당시 여당이었던 보수정당이 자연스럽게 다수당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던[13] 선거법의 영향이 크다. 제13대 대통령 선거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평화민주당이 기호 3번을 받았고 이후 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은 1991년부터 2002년까지 열린 모든 전국 단위 선거 때 기호 2번을 달았다.

그러다 2004년 이후 민주당계 정당 역사상 처음으로 기호 1번을 받게 되는데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원내 1당이 되면서 기호 1번을 받았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기호 1번을 받은 후 모든 선거에서 모조리 참패하는 흑역사를 만들었고(...) 이 당의 후신인 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제17대 대통령 선거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유산인 기호 1번을 받아 선거에 임했지만 역대급 참패를 당하고 1번 자리를 다시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에 넘겨주고 만다. 이후 시행된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제18대 대통령 선거,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민주통합당, 새정치민주연합이 기호 2번을 달고 선거에 임했다.

그러나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1당 자리를 탈환하면서 기호 1번을 달 수 있는 권한이 다시 민주당계 정당으로 돌아왔고 제19대 대통령 선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더불어민주당이 기호 1번을 배정받았다. 민주당보다 의석수가 적은 민생당은 기호 3번을 받았다. 그리고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절반을 가뿐히 뛰어넘는 압승을 거두면서 2024년 4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치러지는 모든 선거에서[14] 더불어민주당이 기호 1번을 달 수 있게 됐다.


2. 보수정당과의 연관성[편집]


민주당계 정당의 이념은 대한민국의 보수 정당 만큼이나 애매한 위상을 가지고 있다. 다만 언론에선 보수 정당이 보수 우파를 자처하기에 좌파, 진보 진영으로 뭉뚱그려 말하는 경향이 있다. 굳이 정체성을 따지자면 민주당계란 이름에서 보이듯 민주화를 이끌던 계열의 정권 정도가 정체성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 한민당 시절엔 도리어 강경 보수 계열로 평가 받기도 했으나, 이후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거치며 반정부, 민주화 투쟁을 벌이면서 민주/중도적인 방향으로 이동하였다.[15] 그리고 1987년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에는 YS를 필두로 하는 통일민주당 계열은 3당 합당으로 지금의 보수정당의 뿌리가 되었고[16], 남은 민주화 세력은 DJ를 필두로 평화민주당, 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를 거치며 각계의 재야 인사와 개혁적 인사들이 다수 합류하였다.[17] 이로 인해 좀 더 진보적인 색채를 띠게 되어 오늘날에는 다양한 스탠스가 뒤섞인 세력 정도로 평가되고 있다.[18]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이후로는 친노계가 진보적 인사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진보적 색채가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19] 문재인 대통령 또한 당 대표 시절에 재야 인물들을 대거 영입함에 따라서 은 진보적인 인물부터 당 내의 중도보수 인사들까지 아우르게 되었다. 현재도 송영길 대표의 더불어민주당이 이러한 기조를 계승하고 있다.

사실 대중적인 표현과 달리 학술적으로 표현할 때나 스스로 칭할 때나 '진보'나 '좌파'라는 지칭은 거의 나오지 않고 "민주개혁" 또는 "중도개혁"이라는 표현이 주로 쓰인다. 참고로 참여정부의 주축이었던 열린우리당 당시 내세운 이념 역시 사회자유주의였다. 반면 같은 시기의 새천년민주당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보통 참여정부 시기의 민주당계 정당의 이념을 다룰 때는 주의해야 할 점이 당원 각각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었기에 당의 노선을 분명하게 가르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까지도 그런 기조를 유지하기에 민주당 계열은 온건 보수와 온건 진보 세력이 각각 계파를 이뤄 한솥밥을 먹는 구도라 해석할 수 있다.[20] 일례로, 박근혜 정부 당시의 민주당 계열도 참여정부 때와 유사하게 당시 민주당계의 양대 축인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이 각각 온건 진보와 온건 보수가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본다.[21] 현재 민주당계의 주류정당인 더불어민주당만 봐도 19대 대선을 거치며 더 당 내부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졌지만 당의 주축은 이전의 민주당계 정당보다 더 진보화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좌파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덜해지며 정치지형 자체가 변한 것도 이유이다.


3. 역대 민주당계 정당 목록[편집]



3.1. 8.15 광복 이후 ~ 제2공화국[편집]



3.1.1. 한국민주당[편집]


한국민주당은 원세훈, 김병로 조병옥 송진우 등 독립운동가의 조선민족당과 장덕수, 김도연 김성수등 지주,친일파의 한국국민당이 합당하여 만들어진 정당으로, 당시에는 지금 민주당과는 정반대의 우익 성향 정당이었다. 이 중 비주류였던 조선민족당 계열은 독립운동가 출신이 섞여 있었지만, 정작 주류였던 한국국민당 계열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출신이 많았다. 이후 1946년 비주류가 좌우합작운동에 대한 의견 차이로 탈당하면서 한민당은 완전히 친일 지주 세력만의 정당으로 전락했다. 당 수석총무와 2대 부통령을 지냈던 김성수가 한민당의 대표적 친일파이다. 이 친일 논란 때문에 현 민주당 지지자들은 한민당을 흑역사 취급하고 전신으로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대놓고 부정하기도 뭐한 것이 민주당계 정당의 첫 대통령이자 주요 구심점 중 하나인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기 전 소속되어 있기도 했다.

한민당은 초기에는 이승만정읍 발언 및 단독정부 수립 구상에 동의하는 등 친이승만 성향을 띠고 있었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도 반민특위 좌초에 앞장서는 등 이승만 정부의 연립여당 격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한민당이 체제를 의원 내각제로 바꾸고 김성수를 국무총리에 앉히려 했던 반면 이승만은 대통령제를 강하게 주장하면서 둘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이후 내각 구성 과정에서 한민당은 내각의 절반을 한민당 인물로 채워 줄 것을 요구했지만, 이승만은 이를 씹고 좌익 성향의 조봉암을 임명하면서까지 한민당을 노골적으로 홀대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승만은 한민당의 기반이던 친일 지주세력을 찍어누르기 위해 농지개혁법 카드를 꺼내들며 한민당과 이승만 대통령의 사이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다.


3.1.2. 대한국민당[편집]


  • 1948년 11월 13일 ~ 1949년 2월 (민주당으로 흡수)
대한국민당은 이승만 대통령이 여당이면서도 정당보다는 정치 단체의 성격이 강했던 대한독립촉성국민회를 정식 정당으로 전환시키려는 의지를 보이자 신익희, 윤치영 등이 창당한 정당이다. 하지만 이승만은 독촉 자체의 정당 전환을 노렸던 거지 신당 창당을 원한 것이 아니었고, 결국 이승만과의 거리가 멀어진 대한국민당은 한국민주당과 힘을 합치며 야권으로 편입된다. 이후 껍데기만 남은 당을 친이승만계가 채워버리며 1949년 말부터는 전혀 다른 성향의 당이 된다.


3.1.3. 민주국민당[편집]


  • 1949년 2월 10일 ~ 1955년 9월 18일 (민주당으로 흡수)
민주국민당은 이승만 정권에게 뒤통수를 거하게 얻어맞은 한국민주당대한국민당과 합당하며 만들어진 정당이다. 당명은 한국민주당에서 "민주", 대한국민당에서 "국민"을 땄다고 한다. 민국당은 무소속 의원 일부와 제휴하여 내각제 개헌을 추진했지만 통과시키지 못했고, 이승만은 민주주의를 훼손하면서까지 발췌 개헌사사오입 개헌을 통과시키며 대통령 권한 강화로 맞섰다. 이후에도 민주국민당은 야당으로서 이승만 정부의 모진 탄압을 견뎌내야 했다.


3.1.4. 민주당(1955년)[편집]


민주당은 이승만 정권이 발췌 개헌에 이어 사사오입 개헌마저 멋대로 통과시키자 위기를 느낀 제1야당 민주국민당장면흥사단계, 그리고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하는 김영삼자유당 탈당파가 세력을 모아 창당한 정당이다. 민주당은 제3대 대통령 선거신익희를, 3.15 부정선거(당시 4대 대선)에 조병옥을 내보냈지만 공교롭게도 둘 모두 유세 기간에 사망하며 정권을 잡지 못했다. 참고로 3대 대선에서 신익희가 내세운 구호가 그 유명한 못살겠다 갈아보자이다. 그러다가 부정선거에 따른 4.19 혁명으로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면서 민주당은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승하며 제1당이 되고 내각제로 개헌하여 제2공화국의 집권 여당이 되었다. 이 때 민주당이 세운 75% 의석률 기록은 독재정권 시기에도 깨지지 않았고 현재도 깨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작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극심한 내부 계파 갈등에 시달리며 국정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민주당에는 구파와 신파라는 두 계파가 있었는데 구파는 한민당-민국당 시절부터 쭉 당에 있었던 김도연,조병옥,김준연 신익희 등 인사들이고 신파는 흥사단계, 자유당 탈당파 등 민주당 창당 때 새로 들어온 장면,김영삼등 인사들이다. 2공 당시 장면 국무총리는 신파, 윤보선 대통령은 구파 소속이었는데 내각제 특성상 실권이 총리에게 있으므로 장면은 내각을 전부 신파 일색으로 구성해 버렸고, 그러자 윤보선은 장면 내각의 행보에 지속적으로 태클을 걸며 상징적 국가원수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 하지 않았다. 즉 한민당 시절부터 그렇게 내각제를 부르짖었으면서 내각제를 제대로 실천하지도 못한 셈. 이러한 계파 갈등에 따른 정치 혼란은 박정희5.16 군사정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으며 또한 2공이 무능해서 박정희가 갈아엎었다는 식으로 정당성도 제공해 줬다.


3.1.5. 신민당(1960년)[편집]


신민당은 민주당 내 치열한 계파 싸움이 진행되던 와중에 구파 강경파가 일당독재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민주당을 탈당하여 창당한 정당이다. 신민당은 불과 몇달 전까지 같은 정당 소속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장면 내각에 사사건건 딴지를 걸었고, 또한 구파였던 윤보선 대통령이 2공 헌법상 당적을 가질 수는 없었지만 거의 대놓고 신민당의 이익을 대변해 줬다고 한다. 결국 장면 내각의 발목을 잡으며 2공 실패에 일조했던 신민당은 5.16 군사정변으로 민주당과 같이 해산되었다.


3.2. 5.16 군사정변 이후 ~ 제4공화국[편집]



3.2.1. 민정당[편집]


  • 1963년 5월 14일 ~ 1965년 5월 3일 (민중당으로 흡수)
민정당은 민정이양 이후 구 민주당 구파 및 신민당 출신 인사들이 창당한 정당으로, 제5대 대통령 선거윤보선 전 대통령이 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했지만 역대 최소 득표차이로 박정희에게 아쉽게 패배했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구한말 유력 가문 출신의 기성 정치인 윤보선이 보수, 빈농 출신의 신진 세력 박정희가 진보의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40석을 획득하며 제1야당이 되었다.


3.2.2. 민주당(1963년)[편집]


  • 1963년 7월 18일 ~ 1965년 5월 3일 (민중당으로 흡수)
민주당은 민정이양 이후 구 민주당 신파 출신 인사들이 창당한 정당으로, 2공 민주당을 이어받았다는 뜻에서 재건민주당이라 불리기도 했다.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은 야권 단일화를 위해 후보를 내지 않고 민정당 윤보선 후보를 지지했다.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정당에 밀리며 제2야당이 되었고, 자유민주당, 국민의당과 삼민회라는 공동교섭단체를 구성했다. 이 중 국민의당과는 1964년 합당했다.


3.2.3. 자유민주당[편집]


  • 1963년 9월 3일 ~ 1964년 11월 26일 (민정당으로 흡수)
자유민주당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범국민정당 운동"의 일환으로 창당한 정당이지만, 정작 박정희는 자유민주당에 발을 빼며 민주공화당 쪽으로 가버렸고 그 자리에 신민당, 통일당 출신 일부 인사들이 참여하면서 창당 의도와 달리 야권에 편입되었다. 제6대 국회에서는 재건민주당, 국민의당과 삼민회라는 공동교섭단체를 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1964년 같은 구파 성향의 민정당에 흡수합당되었다.


3.2.4. 민중당[편집]


  • 1965년 6월 14일 ~ 1967년 2월 7일 (신민당으로 흡수)
민중당은 1965년 민정당, 재건민주당 양당의 합당으로 만들어진 정당으로, 구 민주당에서 신민당이 떨어져 나간 이후 5년만에 다시 민주당계 정당이 하나로 뭉치게 되었다. 하지만 합당의 취지가 무색하게 여당이 강행 처리한 한일기본조약 저지 투쟁 노선을 두고 원외투쟁을 불사해야 한다는 강경파와 국회의원답게 원내에서 해결을 봐야 한다는 온건파로 나뉘었고 결국 강경파는 민중당을 탈당하여 신한당을 창당했다.


3.2.5. 신민당(1967년)[편집]


  • 1967년 2월 7일 ~ 1980년 10월 27일 (5.17 내란으로 강제해산)
신민당은 제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중당, 신한당 양당이 야권 단일화를 위해 합당하여 탄생한 정당이다. 6대 대선에는 지난 대선에 이어 윤보선이 출마했지만 박정희 정부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성공으로 인해 4년 전보다 훨씬 큰 격차로 패배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신민당의 대중적 이미지는 그냥 무늬만 다르지 형태는 똑같은 보수야당 내지 기성 정치인들이 모인 구태정당에 가까웠다. 그러나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40대였던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이 출마를 선언하며 분위기가 달라진다. 일명 40대 기수론꼰대 마인드의 지도부는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반대로 지지자들은 환호했고, 최초로 현대식 공개경선을 실시한 결과 김대중이 승리하여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김대중은 3선 개헌까지 저지른 박정희가 이번에도 대통령이 되면 영구집권의 총통제를 실시할 것이라고 유권자들에게 경고했지만, 결국 패하고 말았다.

이후 김대중의 예언, 그리고 앞으로는 표달라 하지 않겠다던 박정희의 말대로 정부는 10월 유신을 선포했고, 신민당은 제1야당으로서 유신독재에 맞서 다양한 방식의 민주화 투쟁을 주도했다. 이때부터 신민당을 비롯한 민주당계 정당이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부정적 평가가 희석되고 민주화 투사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자리잡게 된 것이기 때문에 혹자는 구 민주당보다 신민당을 민주당계 정당의 뿌리로 쳐주기도 한다. 이후 장기화된 유신 체제에 대한 국민적 불만과 피로가 누적되며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민당이 민주공화당의 정당 득표율을 앞서는 이변을 연출했고, 그해 10.26 사건으로 유신 정권은 종말을 맞이한다. 박정희 사후 신민당과 민주공화당은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민주헌법 개헌안에 합의했지만 신군부가 5.17 내란으로 정권을 잡으며 민주화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한편 40대 기수론을 타고 정치권 전면으로 급부상했던 양김김대중은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해외 망명 투쟁을 벌이던 중 박정희 정권에게 납치/감금당하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반면 국내 투쟁을 진행했던 김영삼은 총재로 선출되어 당을 이끌었으나, 당내 권력다툼에서 밀리고 있던 정적 이철승차지철을 비롯한 독재정권의 비호를 받고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 난동 사건을 일으키며 반강제로 이철승에게 당권을 넘기게 된다. 하지만 김영삼은 1979년 전당대회에서 강경 노선을 앞세우며 다시 이철승을 꺾고 기어코 총재직을 탈환했다. 박정희 정부는 YH 사건 탄압, 김영삼 총재 의원직 제명 파동, 김영삼 질산 테러 사건 등을 통해 김영삼을 어떻게든 정치권에서 제거하려 했지만 분노한 국민들이 부마민주항쟁을 일으켰다. 이 당시 남긴 희대의 명언이 바로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3.3. 제5공화국 ~ 1995년[편집]



3.3.1. 민주한국당[편집]


민주한국당은 신군부의 정치규제를 피해간 신민당 출신 인사들이 창당한 정당으로, 전두환 정권의 관제야당 중 하나였다. 관제야당이었기 때문에 창당 자금도 국가안전기획부가 대 줬고, 선거 공천도 안기부가 넘겨준 명단대로 했을 정도로 힘이 없었다. 민주한심당 1981년 제12대 대통령 선거유치송 총재가 출마했으나 당연히 전두환에게 큰 차이로 패배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그해 정치규제가 풀린 인사들이 만든 신한민주당에 밀려 제2야당이 되었으나, 선거 과정에서 중선거구제를 이용해 아빠는 신민당, 엄마는 민한당 구호를 내세우는 등 신민당이랑 짜고 민주정의당을 엿먹이는 데 가담하기도 했다. 이후 소속 의원들이 전부 신민당으로 넘어가며 민한당은 사실상 와해되었으며, 끝까지 당을 지키던 유치송 등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부 낙선하며 자동해산되었다.


3.3.2. 신한민주당[편집]


신한민주당은 1985년 초 전두환 정권의 정치규제가 풀린 신민당 출신 인사들이 창당한 정당이다. 사실상 신민당이 부활한 정당으로 당명 역시 선관위가 신민당 재사용을 불허하는 바람에 약칭을 신민당으로 할 수 있는 신한민주당으로 정한 것이다.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은 돌풍을 일으키며 제1야당이 되었고, 이는 전두환 정부가 양김의 정치규제를 해금시키는 등 더욱 유화책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신민당은 민한당을 사실상 흡수하며 의석수를 100석으로 불렸고, 인천 5.3 운동 등 직선제 개헌을 위한 민주화 투쟁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민우 총재가 전두환 정권이 신민당의 요구사항을 들어준다면 내각제 개헌도 수용할 수 있다는 이민우 구상을 발표하자 강하게 반발한 양김이 탈당했고, 이후 신민당은 급속하게 몰락했다. 결국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민우를 비롯한 모든 후보들이 낙선하며 자동해산되었다.


3.3.3. 통일민주당[편집]


통일민주당은 신한민주당 이민우 총재가 발표한 이민우 구상에 반발한 김영삼계와 김대중계가 신민당을 탈당하여 창당한 정당이다. 민주당은 6.10 민주 항쟁을 주도했고 마침내 노태우6.29 선언을 발표하며 직선제 민주화를 쟁취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나란히 출마를 선언한 YS와 DJ가 끝내 단일화에 실패하자 DJ가 동교동계를 이끌고 평화민주당을 창당하며 민주당에는 YS의 상도동계만이 남게 되었다. 민주당은 단일화 무산의 대가로 대선에서 패한 데 이어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평민당에 밀려 제2야당으로 전락하면서 위기에 처했으며, YS의 차기 대권주자 행보에도 급제동이 걸렸다. 이때 똑같이 난관에 봉착했던 노태우 대통령이 3당 합당을 제안하며 접근했고, 김영삼이 수락하며 통일민주당은 여당 민주정의당, 김종필신민주공화당과 합당해 민주자유당이 되어 보수정당의 계보로 편입된다.


3.3.4. 평화민주당[편집]


평화민주당은 제13대 대통령 선거 정국에서 김영삼과의 단일화에 실패한 김대중이 민주당을 탈당하여 창당한 정당이다. 대선에서는 평민은 평민당, 대중은 김대중이라는 센스있는 구호를 내세웠으나 결국 3위로 낙선했다. 당시 DJ는 지방 하나씩을 텃밭으로 삼고 있는 4명 모두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우세한 본인이 이긴다는 4자 필승론을 제시하였으나 결국 노태우가 어부지리로 승리하며 4자 필승론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평민당은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YS의 민주당을 밀어내고 제1야당이 되는 등 황색 폭풍을 일으키며 약진했으나, 나머지 세 정당이 하루아침에 하나가 되며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었다. 사실 노태우 대통령은 평민당까지 끼워 4당 합당을 통해 일본 자민당마냥 중도보수 1당 우위제를 만들려 했지만 DJ는 국민이 만든 여소야대를 뒤집는 건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거부한 것이다.


3.3.5. 민주당(1990년)[편집]


  • 1990년 6월 15일 ~ 1991년 9월 16일 (민주당으로 흡수)
민주당은 3당 합당에 반대하던 통일민주당 이기택, 노무현 등 일부 의원들이 통일민주당을 탈당하여 창당한 정당으로, "민주당"을 약칭으로 쓰던 전신 통일민주당 및 신민주연합당과의 합당으로 만들어진 후신 1991년 민주당과 구별하기 위해 꼬마민주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꼬마민주당은 최대 의석수가 채 10석이 되지 못할 정도로 규모가 작았지만 1991년 지방선거에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통일민주당 득표율의 절반 이상을 득표하는 등 지지율은 꽤 높았다. DJ의 평민당이 동교동계의 정치적 뿌리라면 정치 신인이었던 노무현이 3당 합당 비판에 앞장서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던 꼬마민주당은 열린우리당-친노-친문으로 이어지는 계파의 정치적 뿌리라고 할 수 있으므로 당세나 존속기간은 짧았을지언정 이후 민주당계 정당에 미친 영향은 평민당 못지않았다고 할 수 있다.


3.3.6. 신민주연합당[편집]


  • 1991년 4월 9일 ~ 1991년 9월 16일 (민주당으로 흡수)
신민주연합당 3당 합당으로 순식간에 홀로 남은 야당이 된 평화민주당이 재야 세력과 규합하여 만들어진 정당이다. 신한민주당과 마찬가지로 당명은 약칭으로 "신민당"을 활용할 수 있도록 신민주연합당으로 정하게 되었다. 1991년 지방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의 계파 갈등 및 노태우 정부의 부정부패 스캔들로 인해 무난하게 승리할 것으로 보였으나 야권표가 신민당과 꼬마민주당으로 분산되고 투표율도 저조하게 나오면서 패배했다.


3.3.7. 민주당(1991년)[편집]


민주당은 야권 분열로 인해 지방선거에서 패한 신민주연합당꼬마민주당이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에 맞서기 위해 합당하여 탄생한 정당이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민자당의 과반 의석 획득을 저지하며 100석 가까이 얻어 사실상의 개헌저지선을 확보하는 등 선방했다. 그러나 같은 해 열린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1971년, 1987년에 이어 3번째 대권 도전에 나선 김대중초원복집 사건으로 인한 지역감정 극대화 및 영남권의 대결집으로 인해 라이벌 김영삼에 또다시 패배하고 말았고 결국 김대중은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제2야당이었던 통일국민당의 몰락으로 또다시 나홀로 야당 신세가 되었다. 1995년에는 이종찬새한국당을 흡수했고,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승리했지마 정작 격전지였던 경기도에서 패하며 책임론을 두고 동교동계와 꼬마민주계 간의 계파 갈등이 발생했다.



3.4. 1995년 ~ 2007년[편집]



3.4.1. 새정치국민회의[편집]


새정치국민회의는 민주당 내분이 이어지자 때마침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동교동계를 이끌고 민주당을 나와 창당한 정당으로, 현재 원내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법적 전신이다. 그러나 당시 정계 은퇴를 번복한 DJ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고, 평민당-꼬마민주당 시절 이후 다시 야권이 분열되었기 때문에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회의는 제1당은 커녕 개헌저지선도 확보하지 못하면서 참패했다. 반면 신한국당은 무소속과 자민련 탈당파를 끌어모아 과반 의석을 채웠고, 여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국민회의는 김종필자유민주연합과 손을 잡으며 DJP 연합을 결성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김대중은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로 문민정부의 지지율이 폭락하고 여권이 이회창이인제로 분열되며 이회창의 끈질긴 추격을 뿌리치고 4수 끝에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동시에 헌정사상 첫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했다.

국민회의는 대선을 전후하여 통합민주당 탈당파와 이인제의 국민신당, 그리고 재야/노동운동가 출신 인사들을 대거 영입하며 몸집을 불렸고, 그 결과 민주당계 정당의 대통합이 이뤄지게 되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회의는 DJP 연합으로 연립여당이 된 자민련과의 전국적인 후보 단일화를 통해 광역단체장 16석 중 10석(국민회의 6석+자민련 4석)을 석권하는 등 대승을 거둔다. 여기에 한나라당 출신 의원들을 영입하며 여소야대를 여대야소로 뒤집는 데 성공했다.


3.4.2. 통합민주당(1995년)[편집]


  • 1995년 12월 21일 ~ 1996년 6월 13일 (민주당으로 당명 변경)
통합민주당은 김대중새정치국민회의에 따라가지 않고 민주당에 남은 꼬마민주계 인사들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 계열의 개혁신당과 합당하여 창당한 정당이다. 그러나 나머지 세 정당이 삼김 중 하나가 이끄는 정당인 상황에서 제4당이 설 자리는 별로 없었고,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15석 획득에 그치며 교섭단체 구성에도 실패했다. 더욱이 국민회의와 통합민주당으로 야권이 분열되며 한나라당이 어부지리로 의석수를 챙기는 결과만 낳고 말았다.


3.4.3. 민주당(1996년)[편집]


  • 1996년 6월 13일 ~ 1997년 11월 21일 (한나라당으로 흡수)
의석수가 반토막난 통합민주당은 당명을 다시 민주당으로 바꾸었지만, 국회의원 3명이 한나라당으로 이동하며 의석수는 12석으로 더욱 쪼그라들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은 조순 서울시장을 후보로 추대했으나 지지율 부진으로 인해 대선을 포기하고 신한국당과 합당하여 한나라당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 반발한 노무현 등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소속 대부분은 민주당을 탈당해 국민회의에 입당, 5년만에 김대중과 재회하게 되었다.


3.4.4. 새천년민주당[편집]


  • 2000년 1월 20일 ~ 2005년 5월 6일 (민주당으로 당명 변경)
국민회의는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당명을 새천년민주당으로 변경했지만, 지난 지방선거와 달리 이번에는 DJP 연합에 균열이 가며 단일화를 성사시키지 못했고 결국 4년 전과 마찬가지로 한나라당이 어부지리 승리를 가져가고 말았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민주당 경선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지난 대선 김대중 승리의 일등공신(?) 이인제동교동계 대표 한화갑, MBC 앵커 출신의 소장파 정동영, 영남후보론을 들고 나온 노무현 등 쟁쟁한 후보들이 경쟁했으며 당초 이인제의 승리가 유력했지만 분수령인 광주 경선을 앞두고 노무현만이 이회창을 이길 수 있다는 여론조사가 발표되었고, 이후 노풍(盧風)이 경선을 휩쓸며 노무현이 최종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이어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민주당이 대패하면서 당은 물론 노무현 후보의 입지도 흔들리게 되었다.

한편 2002 월드컵 열풍으로 정몽준이 대선 후보로 급부상했고, 급기야 당내 비노 세력은 후보 단일화 협의회(후단협)를 결성해 노무현 흔들기 및 정몽준으로의 후보 교체를 시도한다. 하지만 단일화 경선 끝에 노무현이 승리하며 그대로 출마하게 되었고, 본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을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에는 민주당 당내 갈등이 잦아드는 듯 했으나 당 쇄신 관련 논쟁과 대북송금 특검 논란으로 인해 동교동계와 친노의 사이는 최악으로 치달았고 친노가 열린우리당으로 탈당하며 민주당계 정당은 다시 쪼개지고 말았다. 이후 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를 적극 주도했으나 탄핵이 기각되며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정면으로 역풍을 맞고 9석짜리 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민주당은 DJ라면 자신들을 지지해주리라 믿었으나 탄핵에 크게 실망한 DJ는 오히려 열린우리당을 공개 지지하며 확인사살을 시켜주었다.


3.4.5. 열린우리당[편집]


열린우리당은 동교동계(호남 구주류)와의 갈등 끝에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한 친노 및 천신정 등 호남 신주류가 창당한 정당으로, 출범 당시에는 47석의 초미니 여당이자 역대 최초의 제3당 여당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무리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시도로 인해 화난 국민들이 우리당에 표를 몰아주며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려 152석을 획득, 단숨에 여대야소로 전세를 뒤집었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던 4대 개혁 입법과 행정수도 이전이 모두 무산되며 참여정부의 레임덕이 오고, 2005년 대연정 파동으로 당이 분열되면서 열린우리당은 하락세를 걷기 시작한다. 결국 우리당은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몇 차례 재보선에서 전부 패배했고, 당 지지율도 추락하자 대선을 앞둔 2007년에는 소속 의원들이 하나둘 당을 떠나기 시작하며 일명 탈당 엑소더스가 진행되었다.


3.4.6. 민주당(2005년)[편집]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패하며 광주전남 지역정당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새천년민주당은 민주당계 정당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당명을 민주당으로 변경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참여정부의 실책과 당내 분열로 인해 그야말로 폭삭 망해버린 열린우리당보다 나은 성적을 기록하며 약해진 당세에 비해 선방했고, 2006년 재보궐선거에서도 예상 밖의 당선자를 배출하며 재기를 노렸다.


3.4.7. 중도개혁통합신당[편집]


중도개혁통합신당은 열린우리당에서 탈당한 김한길계 소속 의원들이 창당한 정당이다.


3.4.8. 중도통합민주당[편집]


  • 2007년 6월 27일 ~ 2007년 8월 13일 (민주당으로 당명 변경)
중도통합민주당은 김한길중도개혁통합신당새천년민주당이 이름을 바꾼 민주당이 합당하여 만들어진 정당이다. 그러나 창당한지 1달 반만에 김한길계가 탈당하며 도로 민주당이 되었다. 애초에 두 계파는 합당 이후에도 기존 정당의 홈페이지를 계속 따로따로 사용할 만큼 실질적 통합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하니 그냥 의석수 늘리기용 야합인 셈. 참고로 당적 변경의 아이콘과도 같은 이인제김한길이 잠시나마 함께했던 유한 정당이다.


3.4.9. 민주당(2007년)[편집]


중도통합민주당은 김한길계가 빠져나가며 2005년 민주당과 다를 바가 없어지자 당명을 다시 민주당으로 되돌렸다.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마땅히 낼 후보가 없던 찰나에 국민중심당을 탈당한 이인제가 들어오며 후보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정계 은퇴를 번복한 이회창이 국민중심당의 지지를 얻으며 출마 선언하자 이인제의 지지 기반이었던 충청도 표가 전부 이회창에게 가버렸고 결국 이인제는 득표율 0.67%를 기록하며 폭망했다.


3.4.10. 대통합민주신당[편집]


대통합민주신당은 열린우리당, 중도통합민주당에서 탈당한 김한길계, 그리고 한나라당 당권 싸움에서 밀려난 손학규계가 통합하여 창당한 정당이다. 제17대 대통령 선거에는 정동영이 출마했으나 모두의 예상대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거의 더블스코어로 패배했다. 그나마 여론조사와 달리 무소속 이회창 후보한테 지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 대선 직후 해산하며 역사상 가장 짧게 존속한 여당이 되었다.


3.5. 2008년 ~ 2017년[편집]



3.5.1. 통합민주당(2008년)[편집]


  • 2008년 2월 17일 ~ 2008년 7월 6일 (민주당으로 당명 변경)
통합민주당은 대선에서 나란히 패한 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이 합당하여 만들어진 정당이다. 이 합당으로 2003년 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 분당 후 약 4년만에 민주당계 정당이 다시 하나로 통합하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허니문 선거였던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연히 패하며 지선-대선-총선 선거 3연패를 당하는 흑역사를 겪었지만, 이후 광우병 논란2008년 촛불집회 정국의 영향으로 지지율 반등을 이끌어냈다.


3.5.2. 민주당(2008년)[편집]


통합민주당은 2008년 7월 창당 5개월만에 당명을 민주당으로 변경했다. 민주당은 2008년 촛불집회에 이어 4대강 정비 사업 반대 투쟁, 미디어법 저지 투쟁,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 투쟁을 연이어 벌이며 민주화운동 시기를 제외하면 가장 투쟁력이 강한 제1야당으로 손꼽힌다. 다만 압도적인 의석수 차이 때문에 실제로 한나라당의 독주를 막아서지는 못한 건 흠.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무상급식 슬로건과 야권연대 성공으로 인해 한나라당에 판정승을 거뒀지만, 정작 수도권인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를 내주며 미완의 승리로 남았다. 그리고 방어전 격이었던 2010년 재보궐선거에서는 야당 지역구를 모두 한나라당에 뺏기면서 민주당 지도부는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그리고 오세훈의 자살골로 치러진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도 후보를 내지 못하면서 이대로는 정권교체가 힘들겠다는 위기감에 휩싸이게 된다.


3.5.3. 민주통합당[편집]


  • 2011년 12월 16일 ~ 2013년 5월 4일 (민주당으로 당명 변경)
민주통합당은 민주당문재인 등 원외 친노 및 시민단체 계열의 시민통합당이 합당하여 창당한 정당이다. 슬슬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이 도래하고 있었기 때문에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통합당의 승리가 예측되었으나, 공천 과정에서 열린우리당 출신만 줄줄이 공천하고 호남권 의원들은 물갈이하는 바람에 호남권 의원들의 탈당이 이어지고, 선거혁명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모바일 국민경선에서도 여러 허점이 발견되며 여당 새누리당이 과반을 먹는 동안 밥상을 걷어찬 민주통합당은 패배했다.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긴 했으나 통진당의 극단적 성향으로 인해 중도층 표심에는 악영향을 미쳤다는 평이 많다. 특히 공천 홀대로 탈당한 호남권 의원들이 정통민주당을 창당해 민주통합당 표를 갉아먹는 등 공천 실패로 인해 야권연대가 100% 이루어지지도 못했다.

총선 이후에도 계파 다툼이 이어졌지만 당대표에 출마한 친노의 이해찬과 원내대표에 출마한 비노(호남계)의 박지원이 서로를 당내 경선에서 지원해 주기로 합의했고 둘 모두 당선되면서 갈등은 봉합되었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경선에서는 참여정부 민정수석 및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이 압승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초반에는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키며 제3후보로 떠오른 안철수와의 단일화 합의가 좀처럼 이루어지지 못하며 1987년의 재림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지만 안 후보가 사퇴하며 단일화가 극적으로 성사되었다. 그러나 단일화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이 본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패하며 민주통합당은 다시 비대위 체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뜬금없이 국민감정과 동떨어진 안철수 책임론을 제기하며 아직 쇄신이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결국 201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도 패하고 말았다.


3.5.4. 민주당(2013년)[편집]


민주통합당은 2013년 전당대회에서 당명을 민주당으로 변경했고, 같은 날 당대표로 비노, 비주류인 김한길을 선출했다. 새로운 당 강령에서는 2008년 촛불집회한미 FTA 등이 빠지며 확실히 우클릭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당의 상징색도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시절부터 써오던 초록색이나 평화민주당, 열린우리당의 노란색이 아닌 파란색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김한길의 중앙당 권한 분산 계획에 문재인이 제동을 거는 등 친노와 비노의 갈등은 여전히 존재했다.


3.5.5. 새정치민주연합[편집]


새정치민주연합은 민주당안철수새정치연합이 합당하여 창당한 정당이며, 당명은 민주당의 "민주"와 안철수의 정치 슬로건인 "새정치"에서 따왔다. 새민련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과 무승부를 거두면서 지난 총선보다는 나은 성적을 냈지만, 무려 국회의원 15석이 걸린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는 정의당과의 야권 단일화에 가까스로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낙하산 공천 논란을 비롯한 공천 실패 때문에 4:11로 완패했다. 결국 김한길-안철수 두 공동대표는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동반 사퇴했고 2015년 전당대회를 통해 18대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이 새 대표가 되었다. 문재인 대표 체제에서 새민련은 그동안의 당내 혼란을 수습하고 다시 단합하는 듯 했지만,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도 높은 정권심판론에도 불구하고 패배하며 위기를 맞았다.

재보선 패배 후 비주류는 문재인 책임론을 제기하며 문 대표의 퇴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또한 비노 주승용 최고위원이 친노 정청래 최고위원과의 말다툼 끝에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고, 문 대표의 최재성 당 사무총장 내정을 두고 이종걸 원내대표 등이 당무 거부에 나서는 등 당내 분위기도 점점 험악해졌다. 새민련 지도부는 당내 통합 및 쇄신을 위해 혁신위원회를 설치하고 혁신안을 발표했지만, 이번에는 안철수 전 대표가 민주당의 혁신은 부족하고 실패했다며 정풍 운동을 주장하고 나섰다. 문 대표와 안 의원은 혁신안 및 당대표 재신임 관련 문제에 대해 회동을 나눴지만 결국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그 사이 9월에는 박주선 의원과 박준영 전 전남지사가 탈당해 신당 창당을 추진했으며, 12월에는 문재인 대표 사퇴를 요구하던 안철수 전 대표 역시 탈당했다. 이후에도 비노, 비주류 의원들의 탈당 행렬이 이어졌다.


3.5.6. 민주당(2014년)[편집]


민주당은 김민석 전 의원을 중심으로 한 인사들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창당한 정당이다. 비공식적으로 민주당으로 불렸던 새정치민주연합과 그 후신인 더불어민주당과 구별하기 위해 원외 민주당으로 주로 불렸으며,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할 때 분쟁이 생기기도 하였다.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1월 박준영 전 전남지사가 주도하던 신민당 창준위와 통합하였으나 두 달만에 국민의당으로 이탈하였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한 신기남 의원이 입당하면서 원내정당이 되었으나 총선에서 모든 후보자가 낙선하면서 다시 원외정당이 되었다. 그 후 동년 9월 18일 더불어민주당과의 통합을 의결하였다.



3.5.7. 국민의당[편집]


국민의당은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사태로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비노계 중 안철수김한길 전 새민련 공동대표, 천정배국민회의, 그리고 박주선통합신당이 통합하여 창당한 정당이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은 민주당의 일명 "호남 홀대론" 덕에 호남 의석의 80% 이상을 석권했으며, 거대 양당에 모두 실망한 유권자들의 표심을 끌어모으며 비례대표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교섭단체를 넘어 40석 가까이 획득하며 120석씩을 얻은 양당 사이 캐스팅보트가 된 건 덤. 이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국민의당은 최대한 빨리 탄핵하자고 주장한 더불어민주당, 정의당과 달리 새누리당 비박계를 충분히 포섭하고 진행해도 늦지 않다고 이견을 냈다. 처음에는 여론의 반발에 부딪혔지만 결국 비박계 포섭 및 탄핵 인용에 성공하며 국민의당의 주장이 맞았음이 드러났다.

탄핵 이후 치러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는 예상대로 안철수가 출마했고, 한때 민주당 문재인과의 양강 구도를 형성하며 문재인의 지지율을 턱밑까지 추격하기도 했지만 안철수 본인의 환장할(...) 토론 실력과 과도한 네거티브 전략으로 인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에게도 밀린 3위를 기록하고 말았다. 이후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건이 터지며 정당 지지율이 5% 밑으로 추락했고, 지지 기반이던 호남에서도 3~4%를 기록하며 민주당에 큰 격차로 밀리게 되었다. 이렇듯 당이 위기에 놓이자 안철수는 소속 의원들의 탈당 러시로 인해 비슷한 상황에 처한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주장했지만, 동교동계와 호남 의원들은 보수정당과 함께할 수 없다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결국 안철수가 전당원 투표를 통해 합당을 밀어붙이면서 어떻게든 저지하려다 실패한 호남계는 탈당했고, 남은 친안계는 바른정당과 합당하여 바른미래당이 되었다.


3.6. 2018년 ~ 2021년[편집]



3.6.1. 민주평화당[편집]


  • 2018년 2월 6일 ~ 2020년 2월 24일 (민생당으로 흡수)
민주평화당은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을 반대하며 국민의당을 탈당한 호남 중진 의원들이 창당한 정당이다. 문재인 정부를 적극 비판하며 우클릭 행보에 나선 바른미래당과 반대로 민주평화당은 정의당과 함께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이라는 공동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등 좌클릭 행보를 보였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평화당은 호남에서만 당선자를 내며 호남 자민련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호남에서라도 세력을 어느 정도 확인한 평화당이 전 지역에서 참패한 바른미래당의 상황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당권을 두고 전북의 정동영계와 광주/전남의 박지원계가 다투기 시작했으며, 전당대회 결과 정동영이 대표가 되며 당권을 잡았다. 그러나 2019년 정 대표가 최고위원으로 박주현을 임명하자 비당권파는 지도부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고, 당권파가 해당행위라며 반박하자 결국 탈당했다.


3.6.2. 대안신당[편집]


  • 2020년 1월 12일 ~ 2020년 2월 24일 (민생당으로 흡수)
대안신당은 민주평화당 비당권파인 박지원계, 천정배계가 당권파인 정동영계와의 갈등 끝에 평화당을 탈당해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대안정치)를 결성하여 무소속으로 활동하다가 2020년 초 창당한 정당이다. 하지만 대안정치 시절 전국 지지율이 0%대(...), 기반 지역이어야 하는 광주/전남에서도 1%대 지지율을 기록하며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특히 이미 80을 바라보는 박지원의 뒤를 이을 인물이 없다는 것, 즉 세대교체가 아예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3.6.3. 더불어시민당[편집]


더불어시민당은 더불어민주당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비레위성정당이다. 그러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만든 민주당이 제도의 취지를 스스로 훼손하는 것에 대해 정의당 이하 진보정당의 비판이 잇따랐으며, 결국 소수정당 및 시민단체 후보들을 10명 정도 끼우겠다는 당초의 구상과 달리 시민당에 합류한 군소정당은 기본소득당시대전환 딱 2개밖에 없었다. 특히나 정의당에 비해 비례연합정당에 호의적 태도를 보이던 민중당, 녹색당, 미래당에 대해서는 성소수자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오히려 배제해 버렸고, 가자!평화인권당 등 다른 소수정당 후보들도 공천 과정에서 탈락시키고 그 자리를 민주당 인사들로 채우며 더욱 논란이 되었다. 그럼에도 총선에서는 17석을 얻으며 민주당 및 범여권의 총선 압승에 일조했다.


3.6.4. 열린민주당[편집]


열린민주당은 손혜원정봉주 등이 현 더불어민주당은 진짜 민주당의 모습이 아니라며 더욱 강하고, 선명하고, 유능한 민주당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창당한 정당이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고 대신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한 인사들을 모아 비례대표로 내보내며 사실상 더불어시민당에 이은 민주당의 제2위성정당이 되었다는 평이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가 열린민주당과 강경하게 선을 긋고 시민당에 투표할 것을 호소하면서 여권 지지층이 시민당으로 결집해 열린민주당은 3석을 획득하는 데 그쳤다. 이후 제21대 국회에서는 민주당의 위성정당답게 검찰개혁을 주장하고 2021년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김진애 후보가 민주당 박영선 후보와 단일화하는 등 민주당과 같이 행동하고 있다. 2021년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된 이재명이 열린민주당에 합당 제안을 했고 2022년 민주당에 흡수합당되며 사라졌다.


3.6.5. 깨어있는시민연대당[편집]


  • 2020년 3월 24일 ~ (이후 윤석열 지지로 이탈)
파일:깨어있는 시민연대당 로고.svg
민주당에서 탈당한 유재호 성남시의원과 SNS 중심으로 활동하는 문꿀오소리들이 창당한 정당. 제도권 정치인은 유재호 한 명만 있다. 이들은 문파를 자칭하며 이재명 경기지사는 물론 이해찬 전 대표까지 비방한 바 있다.[22] 문재인 지지자 중에서도 아주 극소수만 지지할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도 제21대 총선에서 아주 낮은 득표율인 0.05%, 14,242표를 득표했다. 당명 부터 친노, 친문임을 주장하는 정당이었으나 이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을 지지해 민주당계 정당과 약간은 다른 노선을 걷는 중이다. 정확히는 친노, 친문이면서도 반이재명이라는 이유만으로 친윤인 상태다.


3.6.6. 새로운물결[편집]


김동연이 창당한 1인 중심 정당으로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후보 지지선언을 하고 대선 이후 더불어민주당에 흡수합당 되었다.


3.7. 현재[편집]



3.7.1. 원내[편집]



3.7.1.1. 더불어민주당[편집]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svg

새정치민주연합이 2015년 12월 28일 당명을 변경한 뒤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정당이다. 약칭은 처음에는 더민주로 하다가, 2016년 9월 원외 민주당을 흡수한 뒤로는 주로 민주당을 쓰고 있다.[23][24][25]

새정치민주연합 비주류들이 떠난 뒤에 당명을 개정했기 때문에 새정치민주연합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초기에는 여당인 새누리당의 강세와 비주류등의 탈당으로 흉흉한 당 내외적인 상황으로 인해 당에 위기감이 조성되었다. 그리하여 당에서는 인재 영입 등 나름대로 쇄신작업을 진행하였지만, 야권의 분열, 전통적인 텃밭 호남권에서의 당 지지율 저조, 당시 대통령의 지지강세로 인해 20대 총선에서 패배가 예상됐었다.

그러나 대반전을 이뤄내며 전국 정당으로 도약하게 된다. 수도권 압승과 영남권 약진이 선거 승리에 주효했다. 총 123석을 확보하여 제20대 국회 원내 제1당으로 등극[26]하여 정세균국회의장으로 선출시키기도 했다. 다만, 국민의당에게 민주당계의 텃밭이라고 불리는 호남권 대부분의 의석을 내줘야 했다. 비록 전통적인 텃밭을 빼앗기기는 했지만, 이것이 되려 호남 지역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는 데에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호남 의석 대부분을 다른 당에 내주고도 수도권에서의 압승과 영남권에서의 약진 등으로 원내 제1당으로 등극했기에 더 이상 호남에 연연하지 않아도 충분히 당이 건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과정을 겪으면서 범진보 지지층에서의 주류 정당화에 성공했고, 탄핵중도층과 중도 보수층 일부도 지지층으로 끌어오는데에 성공하였다. 그 덕분에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압승하면서 9년만에 다시 집권 여당의 자리를 되찾고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선거 기간 정당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했고, 탄핵을 기회로 전국에서의 지지 기반 구축에 힘쓰면서, 정권 교체 이후에도 민주당계 역사상 가장 높은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다.

정권 중후반기에 치러지는 2020년 21대 총선은 정권의 중간평가 성격이 있는 선거이기에 특유의 정권심판론 발동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쉽지 않을거란 예측이 있었으나, 이 예측을 깨고 헌정 사상 초유의 '단독 180석'이란 압도적 대승을 거두게 된다.

이로써 더불어민주당은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등 전국단위 선거 4연승이라는 헌정사상 최초의 기록을 세우게 됐다. 이에 내부적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이 수권 정당화 및 전국 정당화에 성공했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하지만,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부산에서의 대참패를 겪으며 위기를 맞았고 1년 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패배하면서 정권을 국민의힘에게 넘겨주었다.
  • 대표:
    • 문재인 (대표, 2015년 12월 28일 ~ 2016년 1월 27일)
    •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2016년 1월 27일 ~ 2016년 8월 27일)
    • 추미애 (대표, 2016년 8월 27일 ~ 2018년 8월 25일)
    • 이해찬 (대표, 2018년 8월 25일 ~ 2020년 8월 29일)
    • 이낙연 (대표, 2020년 8월 29일 ~ 2021년 3월 9일)
    • 김태년 (대표 직무대행, 2021년 3월 10일 ~ 2021년 4월 8일)
    • 도종환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2021년 4월 8일 ~ 2021년 4월 16일)
    • 윤호중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2021년 4월 16일 ~ 2021년 5월 2일)
    • 송영길 (대표, 2021년 5월 2일 ~ 2022년 3월 10일)
    • 박지현, 윤호중 (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 2022년 3월 13일 ~ 2022년 6월 2일)
    • 박홍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2022년 6월 2일 ~ 2022년 6월 7일)
    • 우상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2022년 6월 7일 ~ 2022년 8월 28일)
    • 이재명 (대표, 2022년 8월 28일 ~ 현재)

3.7.2. 원외[편집]



3.7.2.1. 민생당[편집]

파일:민생당 흰색 로고.svg

바른미래당대안신당, 민주평화당이 2020년 2월 24일 창당한 신당이다. 제3지대 정당을 표방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민주당 계열의 주로 호남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구 정치인들이 중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주요 정치인들은 모두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등으로 떠나고 지난 총선에서 비례대표 득표율 2.71%를 획득한 것을 바탕으로 받는 선거보조금에 의존하여 간신히 연명하고 있다. 사실상 남은 정치인들은 없다시피 하고 선거보조금을 나눠먹는 사람들만 남아있으며, 내부 권력 다툼도 심하여 사실상 기능이 마비된 정당이다.

  • 대표:
    • 김정화, 박주현[27], 유성엽[28] (공동대표, 2020년 2월 24일 ~ 2020년 5월 29일)
    • 이수봉 (비상대책위원장, 2020년 5월 29일 ~ 2021년 6월 16일)
    • 이관승, 김정기, 황한웅 (비상대책위원장 공동직무대행, 2021년 6월 16일 ~ 2021년 11월 18일)
    • 서진희 (2021년 11월 19일 ~ 2022년 6월 3일)[29]
    • 이관승, 김정기 (비상대책위원장 공동직무대행, 2022년 6월 3일~ )

3.7.2.2. 더밝은미래당[편집]

파일:더밝은미래화이트.png

더불어민주당 더밝은미래위원회와 새로운물결 출신 인물들, 일부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모여서 창당되었다. 녹색자유주의, 참여민주주의, 세계주의 등 기존 민주당계 정당과 다소 다른 노선을 주장하고 있으며 창당준비위원회 단계에서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 후보, 김영록 전남도지사 후보 등을 지지하며 선거를 돕는 등 더불어민주당과 친화적인 활동을 이었다.

  • 대표:



4. 소속 정치인[편집]



4.1. 대통령[편집]


대한민국 대통령
파일:대한민국 대통령 문장.svg

이름

임기
선출 방법
정당
취임일
퇴임일
2
파일:President_PSY.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윤보선
(1897 ~ 1990)
4
1960년 8월 13일
1962년 3월 24일
1960년 대선
간선 82.2%
무소속
8
파일:Kim_Dae-jung_presidential_portrait.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김대중
(1924 ~ 2009)
15
1998년 2월 25일
2003년 2월 24일
1997년 대선
직선 40.3%
새정치국민회의 (1998 ~ 00)
새천년민주당 (2000 ~ 02)
무소속 (2002 ~ 03)
9
파일:노무현_대통령.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노무현
(1946 ~ 2009)
16
2003년 2월 25일
2004년 3월 12일 (직무정지)
2002년 대선
직선 48.9%
새천년민주당 (2003)
무소속 (2003 ~ 04)
고건 국무총리가 직무정지 기간동안 권한대행 (2004년 3월 12일 ~ 2004년 5월 14일)
2004년 5월 14일
2008년 2월 24일
탄핵소추 기각
무소속 (2004)
열린우리당 (2004 ~ 07)
무소속 (2007 ~ 08)
12
파일:President-Moon.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문재인
(1953 ~ )
19
2017년 5월 10일

2022년 5월 9일
2017년 대선
직선 41.1%
더불어민주당


4.2. 부통령[편집]


대한민국 제1공화국 부통령

이름

임기
선출 방법
정당
취임일
퇴임일
2
파일:attachment/inchongim.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김성수
(1891 ~ 1955)
2
1951년 5월 17일
1952년 5월 29일
1951년 부통령 선거
간선 51.3%
민주국민당
4
파일:장면 전 국무총리.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장면
(1899 ~ 1966)
4
1956년 5월 15일
1960년 4월 25일
1956년 부통령 선거
직선 46.4%
민주당


4.3. 내각제 총리[편집]


대한민국 제2공화국 국무총리

이름

임기
선출 방법
정당
취임일
퇴임일
4
파일:장면 전 국무총리.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장면
(1899 ~ 1966)
7
1960년 8월 19일
1961년 5월 18일
장면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안
간선 52.0%
민주당


4.4. 국회의원[편집]



4.4.1. 13대 국회[편집]






4.4.2. 14대 국회[편집]




4.4.3. 15대 국회[편집]





4.4.4. 16대 국회[편집]




4.4.5. 17대 국회[편집]


파일:열린우리당 1차 로고.svg 제17대 총선 당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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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정
강길부
강봉균
강성종
강창일
강혜숙
구논회
권선택
김교흥
김근태
김기석
김낙순
김덕규
김동철
김맹곤
김명자
김부겸
김선미
김성곤
김영주
김영춘
김우남
김원기
김원웅
김재윤
김재홍
김종률
김진표
김춘진
김태년
김태홍
김한길
김혁규
김현미
김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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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광역자치단체장[편집]





4.5.1. 서울특별시장[편집]


대수
이름
임기
당적[30]
11대
김상돈 (金相敦)
1960년 12월 30일 ~ 1961년 05월 18일
민주당
30대
조순 (趙淳)
1995년 07월 01일 ~ 1997년 09월 09일
민주당
31대
고건 (高建)
1998년 07월 01일 ~ 2002년 06월 30일
새정치국민회의
35대
박원순 (朴元淳)
2011년 10월 27일 ~ 2014년 06월 30일
무소속[31]
36대
2014년 07월 01일 ~ 2018년 06월 30일
새정치민주연합
37대
2018년 07월 01일 ~ 2020년 07월 09일
더불어민주당


4.5.2. 부산광역시장[편집]


대수
이름
임기
당적[32]
25대
오거돈 (吳巨敦)
2018년 07월 01일 ~ 2020년 04월 23일
더불어민주당


4.5.3. 인천광역시장[편집]


대수
이름
임기
당적[33]
13대
송영길 (宋永吉)
2010년 07월 01일 ~ 2014년 06월 30일
민주당
15대
박남춘 (朴南春)
2018년 07월 01일 ~ 2022년 06월 30일
더불어민주당


4.5.4. 광주광역시장[편집]


대수
이름
임기
당적[34]
7대
송언종 (宋彦鐘)
1995년 07월 01일 ~ 1998년 06월 30일
민주당
8대
고재유 (高在有)
1998년 07월 01일 ~ 2002년 06월 30일
새정치국민회의
9대
박광태 (朴光泰)
2002년 07월 01일 ~ 2006년 06월 30일
새천년민주당
10대
2006년 07월 01일 ~ 2010년 06월 30일
민주당
11대
강운태 (姜雲太)
2010년 07월 01일 ~ 2014년 06월 30일
민주당
12대
윤장현 (尹壯鉉)
2014년 07월 01일 ~ 2018년 06월 30일
새정치민주연합
13대
이용섭 (李庸燮)
2018년 07월 01일 ~ 2022년 06월 30일
더불어민주당
14대
강기정 (姜琪正)
2022년 07월 01일 ~ 현재
더불어민주당


4.5.5. 대전광역시장[편집]


대수
이름
임기
당적[35]
11대
권선택 (權善宅)
2014년 07월 01일 ~ 2017년 11월 14일
새정치민주연합
12대
허태정 (許泰鋌)
2018년 07월 01일 ~ 2022년 06월 30일
더불어민주당


4.5.6. 울산광역시장[편집]


대수
이름
임기
당적[36]
7대
송철호 (宋哲鎬)
2018년 07월 01일 ~ 2022년 06월 30일
더불어민주당


4.5.7. 세종특별자치시장[편집]


대수
이름
임기
당적[37]
2대
이춘희 (李春熙)
2014년 07월 01일 ~ 2018년 6월 30일
새정치민주연합
3대
2018년 07월 01일 ~ 2022년 06월 30일
더불어민주당


4.5.8. 경기도지사[편집]


대수
이름
임기
당적[38]
8대
신광균 (申光均)
1960년 12월 29일 ~ 1961년 05월 24일
민주당
30대
임창열 (林昌烈)
1998년 07월 01일 ~ 2002년 06월 30일
새정치국민회의
35대
이재명 (李在明)
2018년 07월 01일 ~ 2021년 10월 25일[39]
더불어민주당
36대
김동연 (金東兗)
2022년 07월 01일 ~ 현재
더불어민주당


4.5.9. 강원도지사[편집]


대수
이름
임기
당적[40]
11대
박영록 (朴永綠)
1960년 12월 29일 ~ 1961년 05월 24일
민주당
35대
이광재 (李光宰)
2010년 07월 01일 ~ 2011년 01월 27일
민주당
36대
최문순 (崔文洵)
2011년 04월 28일 ~ 2014년 06월 30일
민주당
37대
2014년 07월 01일 ~ 2018년 06월 30일
새정치민주연합[41]
38대
2018년 07월 01일 ~ 2022년 06월 30일
더불어민주당


4.5.10. 충청북도지사[편집]


대수
이름
임기
당적[42]
10대
조대연 (趙大衍)
1960년 12월 30일 ~ 1961년 05월 24일
민주당
33대
이시종 (李始鍾)
2010년 07월 01일 ~ 2014년 06월 30일
민주당
34대
2014년 07월 01일 ~ 2018년 06월 30일
새정치민주연합[43]
35대
2018년 07월 01일 ~ 2022년 06월 30일
더불어민주당


4.5.11. 충청남도지사[편집]


대수
이름
임기
당적[44]
9대
이기세 (李起世)
1961년 01월 05일 ~ 1961년 05월 24일
신민당
36대
안희정 (安熙正)
2010년 07월 01일 ~ 2014년 06월 30일
민주당
37대
2014년 07월 01일 ~ 2018년 03월 06일
새정치민주연합[45]
38대
양승조 (梁承晁)
2018년 07월 01일 ~ 2022년 06월 30일
더불어민주당


4.5.12. 전라북도지사[편집]


대수
이름
임기
당적[46]
13대
김상술 (金相戌)
1960년 12월 29일 ~ 1961년 05월 23일
민주당
29대
유종근 (柳宗根)
1995년 07월 01일 ~ 1998년 06월 30일
민주당
30대
1998년 07월 01일 ~ 2002년 06월 30일
새정치국민회의
31대
강현욱 (姜賢旭)
2002년 07월 01일 ~ 2006년 06월 30일
새천년민주당
32대
김완주 (金完柱)
2006년 07월 01일 ~ 2010년 06월 30일
열린우리당
33대
2010년 07월 01일 ~ 2014년 06월 30일
민주당
34대
송하진 (宋河珍)
2014년 07월 01일 ~ 2018년 06월 30일
새정치민주연합
35대
2018년 07월 01일 ~ 2022년 06월 30일
더불어민주당
36대
김관영 (金寬永)
2022년 07월 01일 ~ 현재
더불어민주당


4.5.13. 전라남도지사[편집]


대수
이름
임기
당적[47]
11대
민영남 (閔泳南)
1960년 12월 31일 ~ 1961년 05월 23일
신민당
31대
허경만 (許京萬)
1995년 07월 01일 ~ 1998년 06월 30일
민주당
32대
1998년 07월 01일 ~ 2002년 06월 30일
새정치국민회의
33대
박태영 (朴泰榮)
2002년 07월 01일 ~ 2004년 04월 29일
새천년민주당
34대
박준영 (朴晙瑩)
2004년 06월 06일 ~ 2006년 06월 30일
새천년민주당
35대
2006년 07월 01일 ~ 2010년 06월 30일
민주당
36대
2010년 07월 01일 ~ 2014년 06월 30일
민주당
37대
이낙연 (李洛淵)
2014년 07월 01일 ~ 2017년 05월 12일
새정치민주연합
38대
김영록 (金瑛錄)
2018년 07월 01일 ~ 2022년 06월 30일
더불어민주당
39대
2022년 07월 01일 ~ 현재
더불어민주당


4.5.14. 경상북도지사[편집]


대수
이름
임기
당적[48]
8대
이호근 (李浩根)
1960년 10월 07일 ~ 1961년 05월 23일
민주당


4.5.15. 경상남도지사[편집]


대수
이름
임기
당적[49]
10대
이기주 (李基周)
1960년 12월 29일 ~ 1961년 05월 23일
신민당
34대
김두관 (金斗官)
2010년 07월 01일 ~ 2012년 07월 06일
무소속[50]
37대
김경수 (金慶洙)
2018년 07월 01일 ~ 2021년 7월 21일
더불어민주당


4.5.16. 제주특별자치도지사[편집]


대수
이름
임기
당적[51]
32대
우근민 (禹瑾敏)
1998년 07월 01일 ~ 2002년 06월 30일
새정치국민회의
33대
2002년 07월 01일 ~ 2004년 04월 27일
새천년민주당
39대
오영훈 (吳怜勳)
2022년 07월 01일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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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기초자치단체장[편집]





4.7. 광역의회의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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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 경상남도의원[편집]




4.7.8. 제주특별자치도의원[편집]




4.7.9. 강원도의원[편집]




4.8. 기초의회의원[편집]




4.9. 당대표[편집]












































5. 역대 선거결과[편집]


파일:대한민국 정당별 득표율.png

파일:대한민국국회정당별의석20180716.png

파일:대한민국지방선거정당별당선직20180716.png


5.1. 대통령 선거[편집]


후보자
연도
대수
정당
득표수
득표율
결과
이시영
1952년
2대
민주국민당
764,715
10.9%
3위
신익희
1956년
3대
민주당
유세기간 중 사망[52][53]
조병옥
1960년
4대[54]
유세기간 중 사망[55]
김창숙
1960년[56]
4대
29
11.5%
2위
백낙준
3
1.2%
3위
변영태
3
1.2%
3위
김도연
2
0.8%
5위
허정
2
0.8%
5위
김병로
1
0.4%
7위
김시현
1
0.4%
7위
나용균
1
0.4%
7위
박순천
1
0.4%
7위
유옥우
1
0.4%
7위
이철승
1
0.4%
7위
윤보선
208표
82.2%
당선
1963년
5대
민정당
4,546,614표
45.1%
2위
1967년
6대
신민당
4,526,541표
40.9%
2위
김준연
민중당
248,369표
2.2%
4위
김대중
1971년
7대
신민당
5,395,900표
45.2%
2위
유치송
1981년[57]
12대
민주한국당
404
7.7%
2위
김의택
민권당
26
0.5%
4위
김영삼
1987년
13대
통일민주당
6,337,581표
28.0%
2위
김대중
평화민주당
6,113,375표
27.0%
3위
1992년
14대
민주당
8,041,284표
33.8%
2위
1997년
15대
새정치국민회의
10,326,275표
40.3%
당선
노무현
2002년
16대
새천년민주당
12,014,277표
48.9%
당선
정동영
2007년
17대
대통합민주신당
6,174,681표
26.1%
2위
문국현
창조한국당
1,375,498표
5.8%
4위
이인제
민주당
160,708표
0.7%
6위
정근모
참주인연합
15,380표
0.06%
9위
문재인
2012년
18대
민주통합당
14,692,632표
48.0%
2위
2017년
19대
더불어민주당
13,423,800표
41.1%
당선
안철수
국민의당
6,998,342표
21.4%
3위
이재명
2022년
20대
더불어민주당
16,147,738표
47.8%
2위


5.2. 부통령 선거[편집]


후보자
연도
대수
정당
득표수
득표율
결과
서상일
1948년
1대
한국민주당
1표
0.51%
6위
김성수
1951년
2대
민주국민당
78표
51.3%[58]
당선
지청천
1951년
2대
2표
1.3%
5위
조병옥
1952년
3대
575,260표
8.1%
3위
장면
1956년
4대
민주당
4,012,654표
46.43%
당선


5.3. 국회의원 선거[편집]


연도
국회
정당
전체 의석수
지역구
비례
결과
1948년
1대
한국민주당
29 / 200
29 / 200
-[59]
원내 2당
1950년
2대
민주국민당
24 / 210
24 / 210
원내 1당
1954년
3대
15 / 203
15 / 203
원내 2당
1958년
4대
통일당
1 / 233
1 / 233
원내 3당
민주당
80 / 233
80 / 233
원내 2당
1960년
초대 참의원
31 / 58
31 / 58
원내 1당
5대
175 / 233
175 / 233
원내 1당
통일당
1 / 233
1 / 233
원내 5당
1963년
6대
민정당
40 / 175
26 / 131
14 / 44 (20.1%)
원내 2당
민주당
14 / 175
9 / 131
5 / 44 (13.5%)
원내 3당
자유민주당
9 / 175
6 / 131
3 / 44 (8.1%)
원내 4당
국민의당
2 / 175
2 / 131
0 / 44 (8.8%)
원내 4당
1967년
7대
신민당
45 / 175
28 / 131
17 / 44 (32.7%)
원내 2당
1971년
8대
89 / 204
65 / 153
24 / 51 (44.4%)
원내 2당
국민당
1 / 204
1 / 153
0 / 51 (4.1%)
원내 3당
민중당
1 / 204
1 / 153
0 / 51 (1.4%)
원내 4당
1973년
9대
신민당
52 / 219
52 / 146
-[60]
원내 2당
민주통일당
2 / 219
2 / 146
원내 2당
1978년
10대
신민당
61 / 231
61 / 154
원내 2당
민주통일당
3 / 231
3 / 154
원내 3당
1981년
11대
민권당
2 / 276
2 / 184
0 / 92 (6.7%)
원내 4당
민주한국당
81 / 276
57 / 184
24 / 92 (21.6%)
원내 2당
1985년
12대
35 / 276
26 / 184
9 / 92 (19.7%)
원내 3당
신한민주당
67 / 276
50 / 184
17 / 92 (29.3%)
원내 2당
신민주당
1 / 276
1 / 184
0 / 92 (0.6%)
원내 6당
1988년
13대
평화민주당
70 / 299
54 / 244
16 / 75 (19.3%)
원내 2당
통일민주당
59 / 299
46 / 244
13 / 75 (23.8%)
원내 3당
한겨레민주당
1 / 299
1 / 244
0 / 75 (1.3%)
원내 5당
1992년
14대
민주당
97 / 299
75 / 237
22 / 62 (29.2%)
원내 2당
1996년
15대
새정치국민회의
79 / 299
66 / 253
13 / 46 (25.3%)
원내 2당
통합민주당
15 / 299
9 / 253
6 / 46 (11.2%)
원내 4당
2000년
16대
새천년민주당
115 / 273
96 / 227
19 / 46 (35.9%)
원내 2당
2004년
17대
9 / 299
5 / 243
4 / 56 (7.1%)
원내 4당
열린우리당
152 / 299
129 / 243
23 / 56 (38.3%)
원내 1당
2008년
18대
통합민주당
81 / 299
66 / 245
15 / 54 (25.2%)
원내 2당
창조한국당
3 / 299
1 / 245
2 / 54 (3.8%)
원내 6당
2012년
19대
민주통합당
127 / 300
106 / 246
21 / 54 (36.5%)
원내 2당
2016년
20대
국민의당
38 / 300
25 / 253
13 / 47 (26.7%)
원내 3당
더불어민주당
123 / 300
110 / 253
13 / 47 (25.5%)
원내 1당
2020년
21대
163 / 300
163 / 253
0 / 47 (후보 없음)
원내 1당[61]
더불어시민당
17 / 300
0 / 253
17 / 47 (33.35%)
원내 4당[62]
열린민주당
3 / 300
0 / 253
3 / 47 (5.42%)
원내 7당
민생당
0 / 300
0 / 253
0 / 47 (2.71%)
원외 정당


5.4. 지방선거[편집]


연도
횟수
정당
광역자치단체장
기초자치단체
광역자치단체의회의원
기초자치단체의회의원
1991년
1991년
신민주연합당
-[63]
165 / 866
-[64]
민주당
21 / 866
1995년
1회
민주당
4 / 15
84 / 230
353 / 875
-[65]
1998년
2회
새정치국민회의
6 / 16
84 / 232
271 / 616
2002년
3회
새천년민주당
4 / 16
44 / 232
143 / 682
2006년
4회
민주당
2 / 16
20 / 230
80 / 733
276 / 2888
열린우리당
1 / 16
19 / 230
52 / 733
630 / 2888
2010년
5회
민주당
7 / 16
92 / 228
360 / 761
1025 / 2888
국민참여당
0 / 16
0 / 228
5 / 761
24 / 2888
창조한국당
0 / 16
0 / 228
0 / 761
1 / 2888
2014년
6회
[[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민주연합]]
9 / 17
80 / 226
349 / 789
1157 / 2898
2018년
7회
[[더불어민주당|더불어민주당]]
14 / 17
151 / 226
652 / 824
1639 / 2927
민주평화당
0 / 17
5 / 226
3 / 824
49 / 2927
바른미래당[66]
0 / 17
0 / 226
5 / 824
21 / 2927
2022년
8회
더불어민주당
5 / 17
63 / 226
322 / 872
1384 / 2988


6. 전당대회[편집]





7. 진보정당과의 관계[편집]




본 단락에서 말하는 '진보정당'과 '민주당계 정당'은, 정당의 이념이 아닌 대한민국 정치사에서의 계보에 따라 구분해 지칭한다.

"진보적인 민주당계 정당을 진보정당의 일부로 봐야 하는가?"의 문제는 "대한민국의 정당을 이념으로 나누는 것이 합리적인가, 아니면 계보로 나누는 것이 합리적인가?"라는 문제의 해답을 찾는 것과도 같다.

관점에 따라서는 민주당계 정당을 진보정당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당의 분류를 단순히 진보-보수의 성향만으로 구분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당의 계보를 극단적으로 단순히 해야만 가능하다. 민주당계 정당은 창당 이래 지금까지 여러 차례의 이념 변화와 분당 등의 사건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일부 민주당계 정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의 색채를 가진 적도 많이 있었다. 게다가 '민주당계 정당'이라는 용어는 각 메이저 언론사[67]나 논문, 학술 목적의 연구에서도 사용될 만큼[68] '민주당계 정당'이라는 계파는 진보정당과는 별도의 계파로 공인되어 있다. 게다가 민주당계 정당 본인들 역시 '진보정당'이나 '보수정당'이 아닌, '민주당계 정당' 그 자체를 자신들의 이념 정체성으로 삼고 있다. 게다가 민주당계 정당의 경우, 자신들의 현 입장이나 정치적 사건 등으로 인해 중도보수 쪽으로 기울어진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통합진보당 해산 당시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은 통합진보당이 해산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던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의 엄정 수사를 촉구하는 등 민심이 바닥으로 떨어졌던 진보정당과 거리를 두기 위해 우클릭을 하기도 했다.

다만, 21세기 들어 대체적으로는 민주당계 정당도 진보적인 성향이 강해지고 있으며[69],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진보 또는 좌파적 경향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진보 성향이지만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정당은 입장차이가 상당히 크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현존하는 진보정당들은 기존의 보수정당-민주당계 정당의 양강 구도를 깨려는 의지가 강하다. 그래서 민주당계 정당에서는 선거 때마다 진보정당과의 후보 단일화 문제를 두고 '진보 성향의 표를 모으느냐 아니면 진보 성향의 표를 포기하고 중도보수 외연을 넓히느냐'라는 이슈 때문에 당 내부에서도 늘 시끄러웠다. 그래서 민주당계 정당 일부에서는 '진보정당과 연정을 하느니 차라리 보수정당과 연정하는 것이 속 편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진보정당의 시각에서 봐도 민주당계 정당이 추구하는 정책 일부가 자신들의 마음에 들 리가 없다. 특히 진보정당의 주요한 지분을 차지하는 NL 계열의 입장에서 봤을 때 민주당계 정당과 노선을 함께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민주당계 정당이 점차 진보적으로 되더라도, 매일경제신문 정치부, MBN 정치부 기자 20명이 기사를 작성하는 레이더P의 조사에 따르면(법안 표결로 본 국회의원 300명의 이념성향), 정의당이 진보 쪽으로 -0.83만큼 치우쳐 있을 때(-1~1범위 내에서) 더불어민주당은 -0.13만큼만 진보 쪽으로 가 있는 등, 같은 진보적 노선이라 하더라도 민주당계 정당은 다른 진보정당들만큼 강경하게 좌파 쪽으로 이행하고 있지는 않다. 국민의당은 오히려 보수 쪽으로 0.15만큼 가 있다. 민주당계 정당은 이종찬, 이인제, 손학규, 오유방, 김종인, 진영 같이 보수정당 출신의 인물이 넘어오기도 하고[70] 민주당계 자생적인 인물들 중에서도 박영선 같은 보수적 인사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중도~중도보수 쪽으로 외연을 확장하기도 하였다.

다만, 민주당계와 진보계 정당이라는 두 당사자가 이러한 입장 차이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바깥에 있는 강경 보수 세력들은 두 계열의 정당들을 싸잡아 좌파라고 하거나 빨갱이, 종북주의자로 매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19대 대선에서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의 발언이다.(한국일보의 보도, SBS의 보도).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약 10년 동안의 보수정권 시대가 개막하고 한나라당 - 새누리당 정권 동안 보수적인 정책이 이어지면서, 이에 반대하는 야당이었던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정당들은 공동의 적에 맞서서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18대 대선에서 이정희 당시 통합진보당 후보가 대선 후보 토론회에 나와 "자신은 대통령이 되러 나온 것이 아니라 단지 박근혜를 떨어트리기 위해 나왔을 뿐이다"라는 식으로 당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사이에 사실상의 '반 박근혜' 공동전선이 형성된 적도 있고,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당시에는 더불어민주당정의당이 총력전 태세로 필리버스터에 참여하기도 했다.[71],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정부의 인선 및 정책 등에 가장 협조적으로 나오는 야당이 정의당이기도 한 만큼[72]현재는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정당이 상당히 친밀해진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최근 10차 개헌을 가지고 진보정당이 보수정당들과 같이 국회중심의 개헌 스탠스를 취함에 따라 갈등이 생긴 상황.

민주당계 정당과 그래도 연대라도 하는 진보정당이 있는가하면, 민주당계정당마저 진보코스프레해서 자신들의 지지자나 빼먹는 원수같은 정당으로 보는 진보정당도 있다.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개인의 사상이 진보정당을 지지하고 그들의 이념에 더욱 가깝더라도 진보정당 계열의 세력이 미약한 것을 감안하여 투표에서는 민주당계 정당에 표를 행사하는 전략적 투표를 보여주기도 한다. 지방선거국회의원 선거에서 진보정당이 전국 모든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못하는 만큼, 선거에서 진보정당 지지자들이 지역구에서는 민주당계 정당에서 출마한 후보에 투표하고, 비례대표 투표는 진보정당에 투표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반면에 진보정당이 아닌 민주당의 강성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진보정당을 중도층들이 싫어하는 비현실적인 소리나 하는 바보들 취급하고 보수 정당을 막기 위해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편이다.

김영삼[73]-김대중-노무현-문재인을 거치며 진보성향이 점점 강해지기는 했지만, 뿌리는 진보정당과 다르다는 의견이 있다.


8.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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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더불어민주당 169석[2] 역사학적으로는 한국민주당과 그 후신인 민주국민당, 이후 호헌동지회를 통한 반이승만 세력의 빅텐트로 형성된 것으로 본다.[3] 보수정당인 국민의힘도 계보상 과거 민주당계 정당들과 이어져 있다. 실질적 뿌리는 1990년 3당합당으로 창당한 민주자유당으로 보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물론 더 정확히는 민주당계 정당이었던 통합민주당(1995년)신한국당과 합당해 1997년 보수 정당 한나라당이 되는 분기점이 있지만, 통합민주당의 규모가 1996년 15대 총선이 끝난 당시 이미 새정치국민회의에 밀려 당의 존속 자체가 위태했던 지경이었으므로 사실상 신한국당에 흡수된 셈이 되었다.[4] 사실 알고 보면 한국의 보수정당들도 민주라는 용어를 꽤 사용했다.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자유민주연합이 있다.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등 독특한 이름들은 근래에 들어서 사용한 이름들이다.[5] 이 정당들은 보수정당들이다. 대한민국의 보수정당 참고. 다만 민주자유당과 민주국민당의 경우 각각 민주당계 정당인 통일민주당과 통합민주당의 후신이기도 하므로 민주당계 정당과 완전히 관련없는 것은 아니다.[6] 참고로 민노당은 진보정당이다. 대한민국의 진보정당 문서 참고.[7] 사실 1997년부터 2001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민주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하면서 총리직과 상당수의 장관직을 배출했다. 하지만 사실 자민련은 군부 출신인 김종필 전 총리 계통으로 이념상 정통적 정치성향에서 민주당과 거리가 멀었고, 결국엔 갈라섰다.[8] 열린민주당, 미래한국당 등 누락되어있는 부분도 있으니 주의.[9] 동교동계가 자주 사용하며, 호남을 중심으로 하는 당이 많았다.[10]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친노에서 즐겨 사용한다. 과거에는 제13대 대통령 선거 직전에 김대중동교동계가 창당했던 평화민주당도 노란색을 썼다.[11] 과거 민주정의당을 시작으로 한나라당까지 보수정당이 오랫동안 상징색으로 사용하던 색깔이라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졌으며,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변경하면서 미국 공화당처럼 상징색을 빨간색으로 바꾸었기에 파란색이 비어 있는 상황이었다.[12] 국민의당이 초록색을 선택했을 때, 호남을 타겟팅했다고 해석한 이들도 있었다. 왜냐면 새정치국민회의의 색깔인 초록색을 사용하여 김대중 정신과 호남정신을 당에 결부지으려는 의도로도 읽혔기 때문이다.[13] 제12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지역구 의석수 1위 정당이 전국구 의석의 절반 이상을 가져가는 희한한 규정이 있었다. 이 당시 정치 환경상 지역구 의석수 1위 정당은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이었다.[14] 2021년 재보궐선거, 2022년 3월 제20대 대통령 선거, 2022년 6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23년 재보궐선거[15] 다만 이승만과 박정희 시절에는 민주당 계열의 야당들도 반공을 띈 보수 성향이 강했다.[16] 실제로 현재 국민의힘의 계파 중에 가장 많은 원내의원을 보유한 계파인 친윤을 제외하고는, 친유의 수장 유승민, 친홍의 수장 홍준표는 동교동계 또는 상도동계가 절대 다수이다. 이준석도 사실 박근혜 키즈로 이미지가 박혀서 그렇지, 비박계에다 친유로 분류되고 있다.[17] 그런데 사실 양김은 대통령 당선 뒤에도 딱히 노선은 반공 보수에서 변하지 않았다. 문민정부 시기에 터졌던 연세대 사태를 겪은 김영삼은 이후에 시위를 막은 적도 있고, 김대중은 대통령 당선 이래 탈권위주의를 표방했었으나, 연세대 사태 당시 암살위기에 몰려서 그런지,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지정하는 등 아예 씨를 말리러 다녔다. 탄압 수위가 덜 했다는 참여정부 조차도 한총련 탄압은 멈추지 않았으며, 경찰특공대까지 동원했었다. 따라서, 문민정부-국민의 정부-참여정부 조차도 결코 진보라고 할 수는 없다.[18] 그러한 이유로 학계에서는 민주당계의 뿌리를 사실상 새정치국민회의로 보기도 한다.[19] 물론 이 시절에도 진보 성향의 언론이나 지지자들에겐 '좌회전 깜빡이 넣고 우회전한다'고 욕 먹긴 했다.[20] 다만, 미국 민주당처럼 빅텐트 정당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 왼쪽에 자리 잡은 진보들이 미약하나마 제3세력으로 그동안 자리매김하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이 말도 약간 어폐가 있는 게 미국도 제3세력은 있으며 한 동안 세를 떨쳤던 적도 있었기는 했다. 정당의 세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는데 실패한데다가 2000년대 이후로는 눈에 띄는 세력이 없어서 그렇지. 다만, 한국의 제3세력으로 꼽혔던 통합진보당은 출신이 출신인지라 종북성향을 끝까지 버리지 못 하다가 대법원 심판에 의해 해체되었고, 그 뒤로는 미국의 민주당 내 진보인사들 보다도 침체 일로를 걷고 있다. 버디 샌더스가 상당한 인기를 얻긴 하지만, 한국에는 그러한 이가 없는 것처럼. 국민의당이 한때 그러했으나, 대안이 되지 못 하고 쪼그라든 것도 있고.[21] 물론 사안에 따라 달랐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정부 후반에 추진했던 THAAD 배치는 초기엔 국민의당이 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취한 반면, 오히려 더민주는 전략적 모호성이란 말로 중립적 태도를 보였었다.[22] 이들이 얼마나 이재명을 싫어하냐면 지난 7회 지선 당시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가 이재명이라는 이유로 남경필을 지지했을 정도다.[23] 공식 당명을 2022년 11월 현재 6년 11개월 동안 유지함으로써 제6공화국의 역대 민주당계 정당 가운데 가장 오래 유지하고 있다. 새천년민주당은 5년 4개월. 민주당계 정당 역대 1위는 신민당의 13년 7개월. 2위는 관제야당인 민주한국당의 7년 3개월. 그래도 한나라당의 14년 3개월, 민주노동당의 11년 10개월, 자유민주연합의 11년, 정의당의 9년 4개월에는 한참 못 미친다. 또다른 관제야당인 한국국민당도 7년 3개월이다. 한 정당이 공식명칭을 가장 오래 유지한 것은 민주공화당의 17년 8개월. 더불어민주당은 2023년 3월 28일 이후까지 당명을 유지해야 민주한국당을 뛰어넘어 민주당계 정당 역대 2위가 될 수 있다. [24] 신설/흡수 합당 없이 당명만 바꾼 걸 이어지는 역사로 계산하면 새정치민주연합 -> 더불어민주당의 역사는 2022년 11월 현재 8년 8개월로 신민당에 이어 민주당계 정당 역대 2위가 된다. 새천년민주당민주당으로 개명한 뒤의 역사까지 포함해서 7년 5개월로 민주한국당의 7년 3개월을 앞지른다.이 역사를 끊어낸 정당분쇄기 김한길. 모든 정당을 통틀어서 계산하면 더불어민주당의 8년 8개월은 한나라당 ->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의 22년 3개월, 민주공화당의 17년 8개월, 신민당의 13년 7개월, 민주노동당의 11년 10개월, 진보정의당 ->정의당의 10년 1개월에 이어 역대 6위의 기록이 된다. 갈 길이 멀다. [25] 3당 합당이나 한나라당 창당과 같은 굵직한 합당 말고 군소정당을 흡수하기 위한 서류상 신설 합당을 한 정당의 이어지는 역사로 보면, 더불어민주당의 역사를 새정치국민회의까지 거슬러서 27년 2개월로 볼 수 있다. 이해하긴 어렵지만 역대 1위의 기록이다. 새천년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이 분당한 것이나, 김한길이 2007년에 정당분쇄 소동을 일으킨 것은 그 정당들이 돌고돌아 결국 하나로 합쳐졌으므로 억지로나마 하나의 역사로 칠 수 있다. 평화민주당 -> 신민주연합당+민주당 -> 민주당 -> 민주당의 역사는 이 정당이 신한국당과 합치며 한나라당을 만드는 바람에 민주당계 정당으로는 계승되지 않는다.그렇다고 보수정당으로 계승되는 것도 아니다. 한편, 이렇게 계산했을 때 국민의힘의 역사는 한나라당 창당 이래 25년이 된다. 보수정당의 경우에는 민주당계 정당과의 굵직한 합당 때문에 민주정의당의 9년, 민주자유당 -> 신한국당의 7년 10개월을 한나라당과 구분되는 역사로 보아야 한다. [26] 이후 새누리당 탈당파들의 복당으로 2당이 되었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보수 정당의 분당으로 다시 원내 1당이 됐다.[27] 3월 24일 사퇴[28] 4월 20일 사퇴[29] 법원 판결에 의한 직무 정지[30] 선거당시 당적[31] 당시 야권의 단일후보였다. 보궐선거 당시 나경원 후보를 꺾었고 시장 취임 후 민주통합당에 입당한다.[32] 선거당시 당적[33] 선거당시 당적[34] 선거당시 당적[35] 선거당시 당적[36] 선거당시 당적[37] 선거당시 당적[38] 선거당시 당적[39]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전념하기 위해 조기사퇴.[40] 선거당시 당적[41]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 변경[42] 선거당시 당적[43]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 변경[44] 선거당시 당적[45]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 변경. 사퇴서 제출 시점에는 제명 절차 중이었다.[46] 선거당시 당적[47] 선거당시 당적[48] 선거당시 당적[49] 선거당시 당적[50] 야권 단일 후보로 무소속 당선 후 민주통합당 입당하였음[51] 선거당시 당적[52] 선거를 열흘 남기고 전주로 가기 위해 전라선 열차를 타던 중 호남선 구간인 함열역 부근에서 뇌일혈로 졸도했고 이리역에 급히 내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53] 전체 투표수의 20.5%인 1,856,818표의 무효표를 이승만을 반대하지만 조봉암을 지지하지 않는 민주당 지지층의 표라는 해석이 있다.[54] 3.15 부정선거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고.[55] 후보등록을 하고 나서 위병이 심해져서 미국 월터리드 육군병원으로 가서 복부수술을 받았는데 수술후유증으로 인한 심장발병증으로 사망했다. 이쪽은 상태가 회복되다가 일어난 상태라 암살설이 퍼졌다.[56] 간선제로 실시되어 민·참의원 합동투표로 이뤄졌다.[57] 대통령 선거인단으로 뽑는 간선제였다.[58] 당시에는 국회에서 간선제로 실시했는데, 여기의 수치는 결선투표의 수치이다. 1, 2차 선거는 제2대 부통령 선거 참고바람.[59] 비례대표제 없음[60] 비례대표제 없음[61] 더불어시민당과 합산하여 180석[62] 더불어민주당의 연합정당[63] 광역자치단체장와 기초자치단체장은 그 당시 임명직이다.[64] 기초의원직에 정당공천제가 실시되지 않아 정당 소속이 없었다[65] 기초자치단체의회 없음[66] 보수정당으로도 분류[67] 조선일보, 연합뉴스, 한국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21855416 등의 언론에서 '민주당계' 또는 '민주당계 정당'이라는 하나의 정당 분류나 계보를 사용하고 있다.[68] 한 사례로, 영남대학교 정치학과 김학노 교수가 21세기 대한민국의 통일 정책에 대해 분석한 논문(해당 논문, 링크 클릭 시 pdf 파일이 자동 다운로드되니 주의)에서는 대한민국의 양대 정치 세력을 '보수계 정당'과 '민주당계 정당'으로 구분하기도 하였다.[69] 박윤희 ( Yun-hee Park ) , 김민수 ( Min-su Kim ) , 박원호 ( Won-ho Park ) , 강신구 ( Shin-goo Kang ) , 구본상 ( Bon Sang Koo ), 한국의회발전연구회, <의정연구> 49권0호 (2016), pp.117-157[70] 다만 현재는 진영, 박재호, 김부겸, 이시종, 조정식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다 탈당한 상태. 심지어 이 경우도 대부분 열린우리당을 창당했을 때 보수정당과 성향이 맞지 않아 합류했던 인사들이다. 보수정당에 1~2년 이하로 잠깐 머문 경우도 있으나 이 경우는 보수정당계 인사라 보기 어렵다.[71] 당시 국민의당은 일부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필리버스터에 참여하기만 하였다.[72] 오히려 국민의당정의당보다 여당(더불어민주당)의 정책에 관해 반대가 심했다. 애초에 새정치민주연합이 당내 갈등으로 분열했던 것을 보면 이러한 국민의당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국민의당이 분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반 여당(더불어민주당) 기조는 국민의당을 계승한 양당에게 이어지는 형태를 보였다.[73] 3당합당 후 보수정당으로 갔지만 과거 민주당계 정당의 경선후보나 당대표를 하기도 했다.[74] 반독재 투쟁 당시 동교동계와 함께 민주당계 정당의 양대 산맥이었다. 그러나 당수였던 김영삼 총재가 1990년 3당합당으로 인해 보수정당인 민주자유당으로 이동하면서 상도동계 다수 역시 보수 정당으로 이동한다. 반면 소장파 일부는 민주당계 정당으로 다시 이동하여 활동하였는데, 이 중엔 노무현 의원도 있었다. 다만 노무현 의원의 경우 YS가 발탁하긴 했으나, 상도동 직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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