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로스

덤프버전 :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슬라브어권의 이름 '밀로스'에 대한 내용은 밀로시 문서
밀로시번 문단을
밀로시#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개요
2. 상세
3. 밀로스 섬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Μήλος
최초의 민주정 국가인 아테네가 멸망시킨 중립국.


2. 상세[편집]


아테네가 후방정리 차원에서 오랫동안 복속하지 않고 있던 멜로스에 복속을 요구했는데, 멜로스인들은 이에 긍지와 자연법적 주권을 이유로 거부했다. 멜로스는 중립국이었으나 기원전 6세기 라코니아인들에 의해 개척된 폴리스로, 모식민시인 스파르타의 구원을 기대했으나 스파르타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1] 결국 멜로스는 아테네군에 얼마 못 버티고 함락되었는데 아테네군은 멜로스에 들어가 성인 남자는 모두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팔아버렸다.

사실 대중들에게 그렇게 유명한 이야기는 아니다. 소설 은하영웅전설에서 양 웬리가 민주주의 국가라고 해서 무조건 선은 아니라는 예로써 아테네의 멜로스 공격을 거론한 바 있다. 도시 함락 후 학살극을 벌이는 것은 고대로부터 자주 있었던 일이나, 최초의 민주정 국가로 후세에까지 이름을 남긴 아테네가 벌인 죄악이라는 점에서 다른 학살과는 구분된다. 군주국가들과 달리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국민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다른 폴리스들은 이 학살을 계기로 아테네로부터 등을 돌렸고,[2] 결국 아테네를 패망으로 몰아넣게 된다.

국제정치학에서는 현실의 국가가 세계정부가 없는 국제정치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 왜 도덕과 규범은 국제정치에서 근본적으로 통용되기 어려운가를 보여 주기 위한 학문적 사례의 하나로 연구되고 있다. 힘 없는 중립국이 최악의 경우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민주주의가 구성원들의 상태에 따라서는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를[3] 잘 보여준 사례.



3. 밀로스 섬[편집]


위의 도시국가가 있던 섬.

현대 그리스어로는 밀로스라 읽힌다. 루브르 박물관의 두팔없는 아프로디테(비너스) 여신상이 발견된 곳이 바로 이 섬.

화산섬으로 석기 시대부터 석기 시대 기준 유용한 물질인 흑요석 채취와 무역으로 인기가 많았던 섬이다. 이후 청동기 시대 미노스 문명미케네 문명기에는 각각 해당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 청동기 시대의 몰락과 바다 민족이 날뛰던 암흑시대에는 미케네와 함께 문명의 흔적이 끊긴다.

철기 시대그리스, 에게해 전역에 도시국가 폴리스들이 나타나는데 이 섬에 세워진 것이 위에서 언급된 도시국가 밀로스다. 결국 언급된 대로 멜로스의 대화를 남기고 아테네에게 멸망당한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시대부터 다시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 이후 로마, 비잔틴, 베네치아, 오스만등에게 소유권이 넘어가다 독립하여 그리스의 섬이 된다. 오늘날에도 수천 명의 주민이 있다.

4.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9 09:37:32에 나무위키 밀로스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애초에 스파르타가 멜로스를 구원하려면 바다를 건너와야 하고, 이 경우 막강한 해군을 보유한 아테네와 해전을 벌여야 하는데, 육군국인 스파르타로서는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며, 아테네도 그 점을 지적한다.[2] 왕이 독단으로 전쟁을 할 수 있는 전제군주제국가가 저질렀으면 그 왕만 처형하고 같은 짓을 반복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아테네는 민주정이라 국민들이 스스로 결정한 일이니 그럴 수도 없다.[3] 일례로 제국주의 시절 대부분의 식민제국들은 대다수가 민주공화국이거나 입헌군주국이었다. 물론 이들 중 명목상으로만 입헌군주국인 경우도 있긴 했지만 그들의 비중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