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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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판결
4. 사건 이후
4.1. 엄벌 여론
4.2. 후유증
5. 영향
5.1.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5.2. 가해자 여자친구의 경찰 합격 근무 논란
5.4. 피의자의 네티즌 고소
6. 기타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2004년경상남도 밀양시에서 발생한 집단 성폭행 사건. 밀양 지역의 남고생 44명[1]이 울산 지역의 여중생이었던 피해자 1명(당시 중3, 1989년생)을 온라인 채팅으로 유인해 1년 동안 성폭행한 사건이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가해자들은 1986년 3월~1989년 2월생으로, 현재 35~38세이다.

단순히 협박을 통해 약점 등을 빌미로 벌인 윤간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폭력을 이용한 강간이었다. 쇠파이프로 두들겨 패서 저항을 못 하게 한 뒤 집단 성폭행한 것을 시작으로 1년 이상 폭행, 강간, 협박이 지속되었다. 윤간하는 장면을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에 퍼뜨리겠다고 협박했는데 실제로 조사 중 인터넷으로 유포된 것도 밝혀졌다. 이후에도 협박, 강압에 뜻한 성관계 정도가 아니라 지속적인 둔기 폭행과 금품 갈취가 이어졌다. 가해자들의 친구인 여학생들도 망을 보거나 촬영을 위해 동원됐다.

언론에는 자매가 피해를 당한 것처럼 보도되었지만 피해자의 여동생은 성폭행을 당하지 않았다. 피해자에게 여동생이 있는 것을 알게 된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여동생과 이종사촌을 불러 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사실은 있으나 성폭행을 하지는 않았다. 언론에서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은 채로 추측으로 난무하는 기사를 내보낸 것이 사실인 것처럼 굳어진 것이다.[2]

이 사건을 저지른 이른바 밀양 연합[3]이라고 불리는 미성년자 범죄조직의 피해자는 경찰 수사 중 최대 5명까지로 밝혀졌는데 밀양에서 1명의 여고생, 창원에서 2명의 여고생, 울산에서 1명이 이들의 표적이 되어 성폭행과 강도를 당했다. 그러나 친고죄로 인해 피의자 모두를 기소하지는 못했다.


2. 판결[편집]


경찰에서 송치한 가해자 44명에게 내려진 처우는 아래와 같았다.

기소: 10명(구속 7명, 불구속 3명)
소년부 송치: 20명
공소권 없음: 13명(피해자의 아버지가 돈을 대가로 합의했기에 기소 불능, 2004년 당시 성범죄는 친고죄였으므로 합의할 경우 사건 진행이 불가능했음)
타청 송치: 1명(다른 사건에 얽혀 있었다.)

소년부로 송치된 20명 중 4명은 소년원, 16명은 봉사활동 및 교화 처분을 받았다. 기소된 10명 중 5명은 보석되었다. 이후 이들 10명은 모두 소년부로 송치되었다.

가해 고교생들은 여러 지역의 4개 고교에서 결성된 '밀양연합'이라는 일진 단체의 소속이라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고 가해자는 실제 조사를 받은 42명 외에도 75명이 더 있어서 최대 117명으로 추정된다.


3. 2차 가해[편집]


피해를 입은 여학생은 수사가 시작된 2004년 12월 7일 가해자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어디 제대로 사나 보자", "너 몸조심 해라"라는 등의 협박을 당했는데 경찰의 피해자 보호가 너무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수사 과정에서의 문제점도 발견되었다. 피해 사실을 알게 된 피해자의 보호자는 고소하기에 앞서 경찰에게 몇 번이나 피해자의 신원을 노출시키지 않기로 약속을 받아냈으나 수사가 진행된 뒤 언론에 관련 보도자료가 공개되었다.

당시 밀양 경찰 중 1명이 피해자인 여학생에게 "내가 밀양이 고향인데 너는 밀양 애도 아닌 게[4] 왜 여기 와서 밀양 물을 흐려놓냐", "네가 먼저 꼬리 친 것 아니냐"는 발언을 했으며 심지어 노래방 도우미에게 피해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피해자가 너랑 똑같이 생겨서 밥맛 떨어진다"는 인신공격뒷담화를 했다. 해당 노래방 도우미는 이 사실을 신고했으며 결국 법원에서 해당 경찰과 경찰서에게 피해 배상금으로 각각 1천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피해자의 신원을 노출시키는 등 별다른 보호조치도 하지 않았고 여경 동석은 성범죄 피해자 대면 시 기본이지만 피해자가 직접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범인식별실이 따로 존재했으나 피해자와 가해자를 같은 조사실 안에서 서로를 마주 보게 한 채 서로를 지목하게 하는 등 기본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넘어간 사실이 밝혀졌다.

검찰 역시 경찰과 마찬가지로 비판을 받았다. 피해자가 피곤했기에 건성으로 대답하자 “동생과 짜고 이야기하는 거 아니냐"고 하고 “(다른 일 때문에 밀양에 간 적이 있다고 하자) 나 같으면 한 번 당한 이후로는 밀양 쪽은 쳐다보기도 싫을 것 같은데 어떻게 또 갔어?”라는 질문이 있었다.[5]

피해자와 가족들은 서울로 쫓기다시피 피신했다. 지속적인 성폭행으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고 전술한 바와 같이 수사과정에서는 경찰에게 폭언을 듣고 가해자 부모 측으로부터 협박에 시달려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상태였기에 인구 10만 남짓의 소도시인 밀양에서 '성폭행 피해자'라는 꼬리표를 끊어낼 수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피해자의 삶은 평탄하지 못했다. 자살 시도가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밖에서도 지하철에 뛰어들겠다고 시늉까지 했다. 심각한 우울장애 증세와 정서불안이 이어지자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염려해 가족은 피해자를 폐쇄병동에 입원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2005년 3월 가족을 버린 채로 지내다가 사건이 터진 후에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가 멋대로 친권자 자격을 행세하면서 가해자 부모들과 함께 피해자를 찾아와 "가해자들과 합의하라"고 강제했는데 이것은 돈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기세에 눌린 최 양은 결국 단돈 5,000만 원에 몇몇 가해자들과 합의해 줬다. '엄한 처벌을 원치 않으니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의 탄원서까지 썼다. 그나마 그 돈이라도 피해자에게 가서 치료비 등으로 쓰였다면 좀 나았겠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 돈을 단 한푼도 만져 보지 못했다. 대부분 엉뚱한 사람에게 착복당했기 때문이다. 그 중 1,500만 원으로는 울산 외곽에 작은 집을 구하고 남은 돈은 합의를 주도한 고모 등의 친척들이 빼앗아 갔다고 한다. 피해자 어머니가 한탄하길 “그 합의금 때문에 자기들끼리 싸우고 다 나눠 가졌다.”고 하는데 결국 피해자는 어떤 적절한 치료도 받지 못했다. 퇴원한 피해자는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가출했다가 어머니를 만나 서울에 정착했다. 이후 피해자의 아버지는 알코올 의존증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전학을 가려고 해도 다른 지역 학교에서는 피해 여학생이 성폭행 피해자라는 핑계를 이유로 들며 전학을 받아주지 않았다. 학교 측은 빈 자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당시 서울의 한 고등학교 관계자가 "그런 애들을 받기는 좀 그렇다. 사실 받아야 하는 게 옳은 것이지만, 저희(해당 학교)뿐만 아니라 다 그렇다"고 밝혔다. 학교들의 문전박대에 피해자는 서울에서도 받아주는 학교가 없어 결국 학교를 다니지 못했고 이후 뜻 있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가까스로 겨우 전학하여 정상적인 삶을 되찾기 시작하려 하였으나 이번에는 처벌을 받은 피의자 부모들이 가석방 '탄원서'를 요구하며 학교로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

피해자는 교실 앞에서 기다리던 가해자 부모가 무서워 화장실에 숨어서 나오지 않기도 했고 결국 어렵게 들어간 학교를 끝내 그만두면서 학업을 완전히 중단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피해자 자매의 어머니는 “가해자의 부모들이 매일 새벽이고 밤이고 계속 찾아와서 (합의서를) 좀 써 달라고 하고 주위에서도 써주라고 해서 너무 괴로워서 써줬다고 최 양이 말했다”고 증언했다. 신의진 교수는 “피해자가 ‘세상에 이용당했다. 세상이 보호를 안 해줬다.’며 세상에 대해 분노하는 상황이었다”며 “퇴원 당시 피해자의 아버지는 알코올 의존증이 심한 상태였지만, 보호자의 친권 때문에 아무리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더라도 (퇴원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는 알코올 의존증이 있는 아버지로부터 폭력에 시달리다가 부모가 이혼하고 친권변경 신청을 한 뒤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지원금으로 생활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런 생활 기반도 없는 객지에 그냥 내던져진 피해자는 폭언한 경찰이 소속된 경찰서와 국가를 상대로 받아낸 배상금 2천만 원으로 어렵게 구한 집을 제외한 그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했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그녀에게 찾아온 것은 우울장애와 폭식증이었고 결국 학업마저 제대로 마치지 못한 탓에 성인이 된 후에도 안정적인 직장이나 생계도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한다.


4. 사건 이후[편집]



4.1. 엄벌 여론[편집]


41명의 가해자와 70명의 추가 공범자들 중 처벌받은 남학생은 30명이었다. 당초 밀양 사건을 수사한 울산광역시경 울산남부경찰서는 44명의 피의자들 중 13명만을 구속 수사하고 나머지는 훈방 조치했다. 밀양 성폭행 '솜방망이' 처벌 항의 촛불집회

당시 사건을 수사한 울산지방검찰청은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피의자 10명(구속 7명, 불구속 3명)을 기소하고 20명을 소년부로 송치했다. 또 13명에 대해서는 피해자와 합의했거나 고소장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13명은 피해자의 아버지가 합의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무죄 혐의로 풀려났다. 1명은 다른 사건에 연루되어 다른 청에 송치되었다.

2005년 3월 22일 울산지검 형사2부는 집단 성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밀양 고교생 박 모(19)군 등 10명에게 징역 장기 4년에서 집행유예 3년(징역 2년 6월)을 각각 구형했다. 기사 검찰은 이날 울산지방법원 제3형사부(재판장 황진효.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박 군에게 징역 장기 4년, 단기 3년을, 우 모 군 등 4명에게 징역 장기 3년, 단기 2년 6개월을, 김 모 군 등 5명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구형했다.

소년부로 송치된 20명 중 4명은 소년원 1년, 16명은 봉사활동 및 교화 등의 처분을 받았다. 기소된 10명 중 일부는 보석을 신청하기도 했다.

검찰은 "고교생들이 수 회에 걸쳐 집단 성폭행한 사건으로 사회적 충격이 컸으며, 피고인들의 상호 진술에서 공소사실이 인정되는데도 범행을 부인하고 있어 죄질이 불량하다"며 "그러나 청소년이고 초범인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박 군 등은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최 모 양을 혼자 또는 2명 이상 집단으로 성폭행하고 반지와 팔찌 등을 빼앗은 혐의로 구속 혹은 불구속 기소됐으며 당초 경찰에 입건됐던 이 사건의 전체 피의자 43명 가운데 20명은 소년부에 송치되었고 나머지는 ’공소권 없음’ 등으로 처리됐다.

이후 울산지방검찰청 특별수사팀이 ‘엄정 수사’를 천명하면서 이 사건을 맡았지만 구속된 13명 중 7명만을 구속 기소하고 나머지 3명은 불구속 기소, 20명을 소년부에 송치하는 선에서 4월 7일 사건을 종결했다. 사건은 울산지방법원2005년 4월 기소된 10명에 대해 부산지방법원 가정지원 소년부 송치 결정을 내리면서 마무리됐다. 피의자들은 각각 보호관찰과 소년원 송치를 받았고 사건 이후에는 직장인이나 군인·대학생이 되어 큰 문제 없이 재범도 안 저지르고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담당 재판부는 사안의 중대성과 심각성을 인정하면서도 "(피고인들의)진학이나 취업이 결정된 상태이고, 청소년들로 성적 호기심이나 충동적 집단심리로 인해 저지른 우발적인 측면이 있는 점을 참작한다"고 밝혔다. 이에 네티즌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판결이 나던 2005년 당시 '안 하느니만 못한 처벌'이라는 국민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대한민국 검찰청이 나서서 조사했으나 7명만 구속되는 선에서 마무리된 것이다. 결국 5명이 소년원의 보호처분을 받았을 뿐 나머지 가해 학생들은 다들 집으로 돌아간 셈이 됐다. 성폭행 보다 잔인한 학교·사회 '충격'…'밀양사건' 피해 여학생 결국 가출 3개 고교의 가해학생 중 학교에서 징계를 받은 학생도 1개 고교의 7명으로 3일간 교내봉사활동에 그쳤다며 엄벌 여론이 불타올랐다.


4.2. 후유증[편집]


일부 가해자 및 가해자들의 여자친구 중 수 명이 피해자들이 당하는 장면을 핸드폰과 캠코더 등으로 촬영해 부모에게 발설할 경우 유포하겠다고 협박하였다. 그런데 일부 가해자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하면서 미국, 일본의 사이트에 엽기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동영상에는 피해자 자매와 가해자들의 얼굴과 모습이 신원을 알아볼 수 있도록 촬영되어 있었다. 이에 반발한 일부 네티즌들은 2004년 12월2005년 4월 가해 남학생 110여 명 중 40명의 명단과 가해자들의 여자친구인 여성 6명의 명단과 사진 등 동영상을 근거로 신상을 털어서 인터넷에 게시하기도 했다. 이후 삭제되었다.

피해자는 성인이 되었지만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이 밝혀졌다. 당시 무료 변론에 나섰던 강지원 변호사[6] 역시 같은 증언을 했다. 피해자 중 한 사람인 A씨는 "여전히 사건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악몽 같은 삶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강지원 변호사는 “당시 충격 때문에 (피해자 최모 양이) 트라우마로 여러 번 가출하기도 했다”고 했다. A씨는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고 힘든 일상을 살아가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조사 과정에서 “밀양 물 다 흐려놨다”며 A씨에게 충격적인 발언을 했던 경찰의 잘못에 대해 국가로부터 금전적인 손해배상을 약간 받은 것이 전부라며 강 변호사는 “도가니 사건도 심각하지만, 밀양 사건의 끔찍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면서 “특히 피해 학생이 받은 상처는 상상을 초월하며 아직도 고통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밀양 사건은 영화 도가니가 이슈가 되면서 다시 조명되었다.


5. 영향[편집]


이 사건은 세계의 수많은 지탄받을 사건들처럼 고질적인 사회의 병폐로 인해 밝혀진 문제가 덮히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물어 희생시키는 것으로 귀결된 것 같지만 그 뒷편에서는 지역이라는 요소가 결합되어 더욱 심각한 현상들을 만들어냈다.

위의 경찰의 발언에서 보이듯이 지역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서 성폭력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으로 몰아붙이고(가해자 담론) 이들이 밀양시 출신자가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피해자보다도 밀양 지역의 안정성을 지키고자 하는 의도가 나타났다. 이제 범죄 관계는 피해와 학대의 의미가 아니라 지역의 도덕성에 대한 인식을 흐리는 위험하고 나쁜 것으로 전환되고 이러한 맥락 속에서 피해자들은 조사과정에서 2차적으로 해를 입게 되었다.[7] 결국 밀양시라는 지역적 정체성은 이 문제를 새롭게 구성하고 이후 비슷한 사례에서 닮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용인할 취약점을 노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네티즌들은 이 성폭력 사건을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특별한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밀양시라는 지역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과하게 드러냈다.[8] 밀양이 '깡촌'이고 사람들도 의식이 없고 따라서 이런 지역 사람들은 욕먹어도 싸고 다 싸잡아 지역 자체가 사라져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9] 결국 "지역=후진성"이라는 인식이 사건으로 생겨난 파장을 둘러싸고 새롭게 형성됨으로써 지역의 위계화가 더 강화되었다. 특히나 잊을 만하면 터지는 2014년 신안 염전 노예 사건, 흑산도 집단 성폭행 사건 등의 작은 사회닫힌 사회의 부조리 폭발 사건으로 인해 서울에서 먼 지방의 사건 = 닫힌 사회의 부조리 사건이라는 선입견을 강화시키는 대표적인 사건이 되어 버려 오히려 서울 vs 비서울의 지역감정을 악화시키는 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

이 사건에서 지역적인 특수성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은 사실이다. 폐쇄된 환경에서 자신이 아닌 외지인이나 순응하지 않는 일부에게 차가운 시선을 꽂는 내부인들의 모습은 SBS에서 내보낸 신안군 섬노예 방송에서 보여준 것처럼 극단적인 모습을 띨 수 있다. 이 사건에서도 "너는 밀양 주민도 아닌 게 밀양에 와서 물을 흐린다"는 경찰의 말이 이곳의 폐쇄된 지역사회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일은 당연히 전 세계 어디의 폐쇄된 집단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후속 처리가 잘못되었고 사건의 재발을 막지 못한 점에 대해서 면죄부를 던져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007년에야 이 사건이 뒤늦게 떠오르자 밀양시장은 이에 사과한 바 있다. 같은 시기 울산 신문 기사

이후 영화 도가니가 개봉되었고 위의 내용처럼 묻혔던 이 사건 역시 재조명받았다. 관련 기사

여담으로 당시 밀양 주민 64% 이상이 관련 설문조사에서 "피해자의 잘못이다."라고 답변하여 논란이 되었는데 2007년 당시 공개 사죄성명을 낸 당시 밀양시장의 해명에 의하면 이 설문조사에 답한 것은 중학생들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성인 대상 설문조사였다. #

게다가 이 사건을 기점으로 경찰이 과거 90년대까지 사형 집행하던 시절 검거된 강력 범죄를 저지른 범인들의 이름, 얼굴 등 신상을 공개하는 관행을 일시 중단하였고, 마스크나 점퍼로 가렸다. 이때문에 유영철, 정남규, 정성현, 오종근, 정상진, 이향열 등 역대 흉악무도한 살인범들의 얼굴 등 신상이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고, 2009년 강호순 사건을 기점으로 흉악범들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발발하였고, 2010년 6년 만에 피의자 신상 공개제도를 개설하여 김길태를 기점으로 흉악 범죄자들의 신상을 공개 하는 관행을 다시 시작하였다.


5.1. 대중매체에서의 등장[편집]


  • 이창동 감독의 영화 - 2010년 5월 13일 개봉. 주인공 손자가 저지른 범죄 묘사가 이 사건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듯하며 밀양과 원작인 이청준벌레 이야기를 연상케끔 한다.

  • 이재익 작가의 41 - 2012년 4월 15일 출판

  • 영화 한공주[10] - 2013년 10월 4일 개봉. 주연배우는 영화 써니의 등장인물 '상미' 역할의 배우 천우희다.

  • tvN 드라마 시그널 - 전반적인 내용을 관통하는 사건으로 '인주 여고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나온다.(방송기간: 2016년 1월 22일~2016년 3월 12일)

  • 웹툰 청소부K - 모티브를 따 왔으며 소재 정도만 차용했다.(연재기간: 2015년 11월 3일~2022년 3월 25일)



5.2. 가해자 여자친구의 경찰 합격 근무 논란[편집]


2012년 4월 가해자의 친구이자 피해자를 조롱한 학생 황선미(이후 황다해로 개명)가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경남지방경찰청에 근무한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 사건 당시 가해자를 두둔하고 네티즌과 설전을 벌였던 인물인지라 후폭풍이 컸으며, 해당 경찰청에도 항의가 빗발쳤다.[11] 이후 경찰청 공지로 당사자가 심적으로 힘들어하니 자제해 달라는 게시글과 본인의 사과문이 올라왔다.

파일:external/mbsibal.files.wordpress.com/3.jpg

이 게시물은 삭제되었다. #

그 과정에서 해당 여경을 비난하는 사람을 신고했다는 말이 퍼졌으며 경찰청 홈페이지 관리자가 사회복지직 공무원으로 속여서 글을 썼다가 들통나기도 했다.[12] 또 지원 당시 경찰청 홈페이지 혹은 경찰학원 수기에 “겸손하고 부지런하며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범죄에도 범죄자의 입장까지 생각하여 성폭행을 당하게끔 하고 다니지는 않았는지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을 모두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절 뽑아 주십시오. 이종격투기도 좀 합니다.”라는 글을 썼다고 알려졌으나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웰페어뉴스, 뉴스한국[13]

해당 여경은 경남도경 의령경찰서로 발령되었으며 2014년 2월 12일 경장으로 승진한 사진이 의령경찰서에 올라왔다가 이후 삭제되었다.

2016년에 다시 이 사건이 불거지면서 경남도경 의령경찰서에 항의가 이어지자 해당 여경은 휴가를 냈다고 한다. # 경남도경과 의령경찰서는 해당 논란이 가라앉기만을 바란 것으로 알려졌다. "시그널 빨리 끝나기만…" 밀양 성폭행 논란에 경찰 한숨만 그러나 항의는 계속되었다.

의령경찰서 칭찬합시다 게시판에는 황 경장을 비난하는 게시글이 빗발쳤다. 이후 이렇다 할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복직을 완전히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5.3. 관련자의 해명글?[편집]


2016년 3월 5일 보배드림에 가해자로 알려진 사건 관련자가 을 남겼으나 본인은 가해자가 아니라는 주장으로 인해 가해자가 정말 아닌지에 대한 의문을 자아낸 점, 주범이 아니더라도 방관자였으며 그간 피해자에 대한 진심어린 사죄와 피해자 회복에 대한 노력이 없었다는 점, 네티즌을 향해 고소하겠다는 선언 등으로 인해 대다수 네티즌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한규정 변호사는 "피의자들 간 범죄의 경중이 다르고 실제 '무혐의 처분을 받은' 피의자들처럼 억울한 피의자가 있을 수 있지만, 단지 기소유예나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았다는 이유로 해당 피의자가 자신도 당해 사건의 '억울한 피해자 중 하나다'라는 주장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밀양 사건 '갑론을박'…피의자 A씨의 주장과 진실


이와 관련해 한 법률 전문가는 “당시에는 강간친고죄였기 때문에 신고를 하지 않으면 공소권이 없다”며 “공소권 없음이라는 내용만 가지고는 합의를 한 것인지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해당 논란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다만 그는 “강간 사건에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은 경우 합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합의가 이뤄졌을 가능성에 대해 시사했다.

밀양사건 가해자 1人 “억울하다” 호소…거센 후폭풍


참고로 해당 사건 당시 강간은 친고죄였기 때문에 공소권이 없다는 이야기는 "가해자는 맞지만 피해자 혹은 피해자의 대리인과 합의 및 구체적인 고소 의사를 제기하지 않아 검사가 공소제기 할 수 없다."라는 얘기이며 가해자가 아니라면 "혐의 없음" 등의 처분을 받는다. 혐의없음과 공소권 없음은 명백하게 질적으로 다른 처분. 해당 글의 사진에는 "가, 나, 라"항은 "혐의 없음"으로 처분하면서 "다"항 "청소년 강간 등"은 굳이 따로 분류하여 "공소권 없음" 처분을 했다. 이 부분에서 혐의 없음 처분을 받은 항들은 특수강간(집단윤간) 등 당시에도 친고죄가 아니었던 형량이 무거운 범죄들이다. 만일 특수강간으로 적용했다면 친고죄가 아니기 때문에 친부의 합의행각과 관련없이 공소권이 없어지지 않아 처벌할 수 있었음은 물론, 특수강간의 최소형량을 볼 때 최종적으로 가해자들이 받았던 가벼운 처분은 절대 받을 수 없었다.[14][15]

'다' 항 "청소년 강간 등"이 혐의 없음이 아닌 검사가 굳이 "혐의없음"과 "공소권 없음"을 구분지어 놓은 것을 볼 때 귀찮아서 혹은 실수로 공소권 없음 처분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3월 6일 기준으로 이 부분에 대한 추가 해명은 없었고 개인적으로 답변하겠다는 카톡 아이디는 없는 아이디로 나왔다.

3월 6일 12:42분에 공소권 없음에 대한 해명글이 올라왔다. 아카이브

그러나 해당 글에 나온 사진은 "사법경찰관이 특수강간(집단윤간 등)으로 적용하려 했으나, 피해자에게 반항이 억압될 정도의 강제적인 힘을 가했다고 확인할 수 없어 특수강간은 적용하지 않는다"는 처분에 대한 내용일 뿐 일반 강간에 대해서는 "적법한 고소가 없다"는 앞서 확인된 내용밖에 없다. 해당 글 사진의 밑줄친 내용도 "피해자가 누군가의 자취방에 억압되어있던 당시 수많은 사람들 중 누가 있었는지 정확하게 특정짓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 정도지 이 두번째 글이 글쓴이의 공소권 없음이 원래는 혐의 없음이라는 증명은 되지 못한다.

자세하게 서술하자면 1여년간 발생했던 수많은 집단강간 사건 중 (언제 어디서 어떻게 벌어진 사건인지는 안 보여주니 모르겠지만 어쨌든 뭔지 모를)범죄사실 4항, 5항, 7항의 3건의 강간 범죄행위는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할 만한'[16] 강제적인 억압을 확인할 수 없어 특수강간(집단강간, 윤간)으로 볼 수 없으며[17] 다만 누군가에 의해 간음이 행해진 사건임은 맞고 이에 대해서는 해당 인물에 대한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 해당 사건에 공소권이 없다는 의미다. 굳이 이 내용이 사진에 확인되듯 검사가 언급한 것은 당시의 일반 강간은 친고죄지만 특수강간은 당시에도 비친고죄, 즉 특수강간임을 인정하면 피해자 친부의 합의행각이나 피해자에 대한 초기 경찰의 비상식적 행태와 관련 없이 공소를 제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특수강간을 부정하고 사건별로 개별적인 일반강간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해당 사건에서 가령 3월에 3명의 가해자에 의해 피해자가 누군가의 자취방에서 강간을 당했을 때 해당 3명이 누구인지 진술하지 못하면 해당 사건은 피의자를 밝힐 길이 난해해져버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사건이 되어 버린다. 단일 사건이라면 누구였는지 기억하는 데 문제되지 않았겠지만 밀양에서 벌어진 사건은 1명의 피해자에게 처분받은 것만 40여명, 관여되어 수사받은 용의선상에 있던 인물이 100여명에 달하는 사건이며 기간도 수개월에 걸쳐, 횟수도 수십차례 반복된 사건으로,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진술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하다. 거기다 설령 초인적인 의지와 원한으로 그걸 다 진술해도 피해자의 친부놈이 합의해 버리는 바람에 공소를 제기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 문서의 맨 첫 문장에서도 이 사건을 "2004년경상남도 밀양시에서 발생한 윤간(집단 성폭행) 사건"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상식적으로 누가 봐도 이 사건은 가해자의 수, 행위의 방식 등을 볼 때 집단에 의한 특수강간이 맞고 전 각주에 설명한 이유로 특수강간으로 수사하지 않으면 수사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 경우 범죄의 증명에 있어서도 같은 범죄에 대해 공범이 수십명이 되는데 이때 공범관계에 있는 이들의 진술 역시 소송에 따라 상호간의 증거가 되는 점에서 범죄를 증명하기 위해 피해자의 진술에만 기대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범죄사실 자체, 범죄 입증, 처벌 모든 면에서 이 사건 자체가 특수강간으로 처분하는 게 맞음에도 일반강간으로 처분하여 피해자의 진술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점에서 당시 수사기관은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18] 특수강간(윤간, 집단강간)으로 처분했어야 했던 당위성은 해당 사건 피해자의 무료변호를 했던 변호사의 인터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관련 기사

문제는 특수 강간에 있어서 "다수의 합동" 부분인데 여기서 수사기관은 이 합동 부분을 "매우 구체적인 수준의 협박"[19]이나 팔이나 다리 등 몸을 붙잡거나 폭력을 가하는 수준의 "물리적인 폭행", 강간 행위 이전에 같이 여성을 장기간 강간하자고 의사를 함께 하는 "공모, 모의"만을 '''특수강간에서 말하는 "다수의 합동"으로 인식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보배드림에 올라온 관련자 글에 첨부된 문서 사진에 있는 '검찰이 강제적인 억압을 확인할 수 없다'는 부분에서 "매우 구체적인 수준의 협박"이나 "물리적인 폭행" 외에는 피해자의 항거 불능을 인정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으며 해당 글의 사진 외에도 비록 문서가 아닌 개인적인 주장이라 신빙성은 떨어지지만 글쓴이가 수사받은 과정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형사가 "공모, 모의"를 확인하려고 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글쓴이는 피해자가 있는 현장에서 어디 놀러가자고[20] 친구인 다른 가해자들과 대화를 나눈 이유만으로 "공모, 모의"했다고 경찰이 넘겨 버렸다는 주장을 했는데 군사독재 정권도 아니고 21세기에 이런 경찰은 모가지 날아가고 싶은 모자란 경찰 빼곤 없다. 이 사건은 국민적 공분으로 인해 수사팀이 한 번 교체된 사건이다. 경찰 중에서도 베테랑 및 법률 이해도가 높은 팀이 투입됐다는 얘기다. 글쓴이의 주장대로라면 그 수사팀이 나중에 재판관이 "얘 왜 잡았어요?"하면 "어디 놀러가자고 얘기 나눴다고 합니다."라면서 그걸로 유죄 받겠다고 생각했다는 소리인데 형법만큼은 현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전문가인 경찰이 일반인만큼도 못한 백치라는 의미다. 심지어 이 사건은 이슈화된 후 가해자들의 처벌을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서 백방으로 뛰어다닌 피해자 변호사도 있었던 사건이다. 일반적 시선으로는 그저 자기가 진술한 내용이 법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니 날조로 보이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사법경찰관이 "특수강간"으로 의율을 시도했다는 이야기는 아마 기존 수사팀이 물의를 일으켜 해체되고 새로 교체된 수사팀 중 1명이겠지만 피해자가 진술도 제대로 하기 힘든 상황에서 가해자들을 최대한 처벌하려고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했던 경찰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특수강간의 "다수의 합동"을 이해하면 이 사건이 특수강간이 되기 어려운 사건임을 짐작할 수 있는데 사전에 '피해자를 같이 항거불능 상태로 만들자'라고 공모, 모의하거나 현장에서 피해자를 항거불능으로 폭행, 협박하는 행위를 함께하지 않는 한 단순히 피해자가 항거불능인 상태를 추후에 알고 이를 이용하거나 사전 모의 없이 피해자가 항거불능이 된 이후에 우연히 혹은 주범들이 불러 현장에 가서 간음하면 이는 특수강간이 아닌 준강간(일반 강간과 처벌이 동일)이다.[21] 그마저도 항거불능인 상태를 몰랐다던가 기존의 피해자에게 폭행, 협박이 있었던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하면[22] 고의가 부정되어 무죄다. 100여명에 달하는 용의자들이 어떻게 자신의 범행을 부정하였고 처벌받은 가해자들이 줄어들었는가 그 일면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적용해 볼만한 이론으로는 경찰의 2차 수사팀이 심문한 내용이 유효적절하다는 가정 하에 미필적 고의 정도를 차용해 볼 수는 있겠으나 이를 이용해 기소된 적이 없어 기존의 사건들이나 이후의 사건들은 밀양 사건과 달리 죄증이 명확했던 경우가 대부분이며 용의자가 이렇게 다수인 경우도 거의 없었다. 당연히 검사는 판례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공소를 제기하는 후술된 부담을 감안해야 한다. 만일 강간죄가 친고죄가 아니라면 특수강간이 법원에서 부정되어도 일반 강간죄의 증거라도 확실하다면 강간죄의 유죄라도 받을 수 있으니 패소가 아닌 승소가 되어 검사의 부담이 적어졌겠지만 당시 강간은 친고죄였고 피해자의 친부의 합의 종용 행태로 일반 강간은 적법한 공소권이 없으니 특수 강간이 부정되면 무죄, 즉 검사의 패소로 그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었다. 행태로써의 집단 성폭행과 법률로써의 집단 성폭행이 다름을 알 수 있는 단면.

그러나 주의할 점은 검사는 사진에서도 글쓴이에 대해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할 만한 강제력을 확인할 수 없다고 언급했을 뿐 글쓴이에 대해 (글쓴이의 주장에서 언급된) 경찰이 확인한 공모 부분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글쓴이가 주장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공모 부분은 검사가 보기에 (강제적인 억압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 유효한 심문이었거나 애초부터 공모 부분을 확인할 것도 없이 강제적인 억압(폭행, 협박)의 합동만이 판단에 필요한 요소였거나.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할 만한' 강제력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판단에 대해서 강간죄는 폭행·협박으로 인한 강제적인 간음으로 성립되는 범죄로, 일단 강간죄에서의 폭행·협박은 가장 적용 범위가 좁은 의미다. 다른 죄에서 논의되는 폭행·협박과 다소 차이를 보이는데, 단순히 사람에게 폭행·협박을 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행위가 “피해자의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항거불능)에 이르러야 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도주가능성이 존재했거나”, “주변의 구조가능성이 존재했거나”, “반항 시 으레 생기는 피멍 등의 반항 흔적이 없으면” 화간의 가능성과 폭행·협박이 없는 채 단순 위력에 의해 벌어진 간음사건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해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이 그간의 판례였고, 그 중간에 발생할 수 있는 수치심이나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차이에서 오는 반항 불능 상태는 부정되거나 혹은 일부 인정되더라도 이 "도주가능성, 구조가능성, 반항흔적 없음" 3가지에서 의심되는 화간의 가능성을 뒤집은 판례가 없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23] “도주 가능성”, “구조 가능성”, “반항의 흔적이 없음"에도 반항이 불가능한 폭행, 협박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판례는 2005년 7월에야 비로소 나왔고 2012년이 되어서야 그 기준이 다소 명확해졌다.[24]

지방법원, 고등법원은(원칙적으로는 판결에 영향력이 없지만) 상급심에서 자신의 판결이 뒤집어지면 인사고과 등에 반영되는 사항이니 대법원이 판결했던 기준에서 벗어나 소신껏 판결하는 것은 상당히 부담되는 것으로, 거기에 무고한 시민을 범죄자로 판결하거나 설령 심각한 반사회적 행위라도 그것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와 그 근거를 적용할 논리가 없다면 처벌해서는 안 되는 사법정의상 당연히 해당 가능성들이 있으면 무죄 판결하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실제 2005년 “노래방이니 적극적으로 구조를 요청하면 주인 등 구조받을 수 있었다.”, “가해자의 성기에 상해를 입히는 등의 방법으로 빠져나올 가능성이 있었다.”, “피해자의 신체에서 반항 시 생기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2심까지 무죄 판결[25]이 차 안에서 벌어진 강간이었던 2012년 “운영되는 상가가 있는 주변의 대로변이니 문만 열어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반항이 불가능할 정도의 폭행이었다고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26] 2심까지 무죄 판결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2005년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죄하는 대화를 들었다는 강간 이후 들어온 동료들의 증언, 2012년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문자 등의 증거와 함께 특히 2012년에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체적 차이”와 “팬티와 바지가 종아리까지 벗겨져 있는 상태에서는 수치심에 도주하기 힘들다.”는 “수치심”, “신체적 차이” 역시 피해자의 항거 불능 상태를 증명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고 판결했다. 이는 “도주가능성”, “구조가능성”, “상해의 흔적이 없음”만으로 폭행·협박의 범위를 과도하게 좁혀선 안된다고 수사기관과 하급심에게 지적하는 내용임과 동시에 앞으로 이러한 요소들도 유죄를 판단할 수 있는 이유가 될 테니 수사기관과 하급심은 수사와 판결 중에 참고하라는 내용의 판례가 비로소 나온 셈이다.

특히 2005년 판례가 나온 날짜는 2005년 7월로, 밀양 사건이 2005년 4월 처분이 완료되었음을 생각할 때 당시의 사회적 여론과 하급 기관의 경직된 법률해석으로 야기되는 문제의 심각성[27]이 2005년 7월 판례가 나오게 된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검사에게 있어서도 이 사건이 단순히 권력자인 학부모의 압력에 무죄 방면된 것으로 이미지가 굳어진 데는 각종 매체의 역할이 클 것이다. 물론 법률적으로도 다소 모순되는 판례나 검사의 기소독점주의에서 야기되는 문제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이 사건을 단순 권력 문제로 비추는 것은 본질에서도 벗어나 있으며 성범죄에 있어서 개선점에 대한 논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애초에 무전유죄 유전무죄도 그 현상의 일부 원인은 단순히 초법적으로 법을 돈으로 무시하는 것만 아니라 법 자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공백과 허점을 변호사가 공격하는 것이고 한 번 공소를 제기하면 거의 반드시 유죄를 받아야 하는 검사가 큰 부담을 지는 구조적인 부분에서 발생하는것이다. 그렇다고 검사의 부담을 줄여주자니 그리되면 안그래도 막강한 권력을 지닌 검사가 검사 항목에도 지적되듯 인권을 거의 무시할 수 있는 과도한 힘을 가지게 되는 위험성이 발생하게 되고 검사 역시 무리하게 공소를 제기해서 무죄 판결을 받게 한다면 그 시간과 비용만큼 무고한 시민이 희생당했다는 의미고 당연히 승소율도 검사의 평가 기준이다. 때문에 검사 역시 판례를 바탕으로 자신이 담당한 피의자가 무죄인지 유죄인지 판단하고 유죄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사건을 기소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변호사가 어떤 논리로 피고인을 변호할지도 가정하며 공판을 준비할 것이다.

여기서 밀양 사건은 동영상을 강제로 촬영한 범죄행위 건은 별개로 사건 전반을 전부 기소했다면 기존의 판례 논리로 변호사가 “피해자가 1년간 특정 장소에서 감금되어 있던 상태도 아니고, 원한다면 학교 선생, 경찰 등에 알려 구조받을 수 있었음에도 알리지 않았다.”는 지적을 바탕으로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가해자들과 간음 행위를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동영상이 촬영된 시점만 명확한 강간일 뿐이다.”라는 주장도 가능할 것이다.[28]

그리고 검사가 주장할 것은 “남성 다수라는 숫자에서 피해자가 억압되어 있었고, 가해자들도 이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 “동영상 촬영 등의 증거를 볼 때 자발적 상태가 아니었다.”와 함께 경찰의 유도신문[29]과 기타 반영될 만한 정황증거들을 긁어 모아 피고인의 유죄를 주장해야 한다.

이것에 대해 누구의 주장을 신빙성 있게 받아들일지는 법관의 재량이지만 2005년 7월 판례가 없는 상태에서는 변호사가 주장할 만한 것들은 그간 당연히 무죄 판결을 받아 왔던 주장들이고 검사가 주장할 수 있는 내용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새로운 판례를 만들 만한 주장으로, 검사가 패소할 부담이 컸던 사건이다. 최소한 유죄를 받아내더라도 대법원까지 끌고 가서 받아내는 것은 확정적이고 2심까지는 무죄가 나올 것은 기정 사실이다.[30] 요는 자신이 가해자가 아니라고 주장한 글쓴이는 기존에 알려졌던 주장대로 "폭행·협박은 없었다. 이 부분은 11월에 벌어진 일부터 언급되는 내용이다."라고 주장했고 이를 바탕으로 읽는 이에게 은연중에 "화간" 가능성을 어필하고 있는데 단순히 강제적인 억압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일반인의 상식에서의 의미가 아니라 이러한 법률적인 의미에서의 이야기고 폭행·협박의 개념도 현재의 관점이 아닌 상술한 2005년 4월이라는 시기적 상황으로 글쓴이의 주장의 신빙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 외 사진 상단부에 있는 사건은 글쓴이의 손가락에 의도치 않게 가려져 항목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판단할 수 없는데 일단 4, 5, 7항과 별개의 사건으로 보이며, 상단부의 사건은 글쓴이와 관련된 사건이었는지도 판단할 수 없고 다만 확인할 수 있는 건 "교문에서는 봤지만 누군가의 자취방에서 행해진 모종의 사건 현장에도 있었는지는 모르겠다"는 내용을 볼 때, 해당 글의 사진 내용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을 종합하면 당시 수사기관은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각각 누구고 어디서 어떠한 행위를 했는지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으로 구체적인 진술을 하도록 요구했다는 의미다.

상술한 내용을 종합하면 이 사건을 한번에 특수강간으로 공소제기하기는 "당시의 기준"으로는 어려움을 알 수 있다. 즉 사건 중간 중간의 구조 혹은 도주가능성이 생겨버리기 때문에 항거불능에 이를 정도인 강제력이 부정되어 무죄판결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당시에 벌어진 사건을 모두 떼어내어 그 중 혐의가 입증될 만한 사건을 각각 특수강간 또는 비록 형량은 죄질에 비해 비교할 바 없이 적어지겠지만 어쩔 수 없이 몇 개의 사건은 일반 강간 등으로(각 사건을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이 다수에 의해 벌어진 사건일 테니) 개개별 공소를 제기해 보는 방법인데 이마저도 1~22까지의 연관성이 부정되었기 때문에 특수강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사건마다 개별로 '공모, 모의' 행위를 확인하거나 '폭행, 협박의 합동'을 확인해야 한다. 당연히 이것이 입증될리가 없으니 특수 강간이 성립될리도 없고, 일반 강간에서도 '피해자의 반항이 억압될 만한 폭행, 협박이 구체적으로 확인되는' 사건을 제외하고는 최선을 다해야 준강간, 그나마도 입증하기 어렵거나[31] 강간과 동일하게 당시의 기준으로는 항거불능 등이 부정[32]되는 상태[33] 또는 합의 등으로 인해 공소권이 없어지는 것이다. 즉 따로 떼어놓아 공소를 제기해도 이 사건은 처음의 폭행, 협박이 벌어졌을 사건에 가담한 가해자들이나, 혹여 피해자가 견디지 못하고 사건 현장에서 저항을 시도했을 몇몇 사건, 그리고 가해자들이 이후 SNS에 올린 영상을 촬영하는 것에 저항하여 피해자가 반항하자 이에 폭행, 협박 등을 가하고 이것이 영상에 촬영된 가해자 외에는 폭행, 협박이 없는 사건이 된다. 그마저도 가장 최초에 있었을 사건은 오래된 만큼 폭행, 협박을 입증하기 더더욱 어려웠을 것.

위의 사실을 "공소권 없음" 처분을 토대로 하여 그대로 이해하면 검사의 처분만으로는 실질적으로 강제력이 없었다고 할 수도 없으며 심지어 어떠한 방식이든 글쓴이가 이 사건에 "법률적으로도 피해자가 고소하면 공소를 제기할 수 있었던 수준으로 얽혀 있었다"고 검사가 판단한 것으로 해석되는 건 변함없다.[34] 때문에 정확한 정황과 글쓴이 주장의 사실여부는

  1. 글쓴이와 연관된 사건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벌어진 사건들인가[35]
  2. 사건 당시와 전후 시간대에 글쓴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인과관계에 대한 부분

이 어떻게 수사되었고 기록되었는지[36] 공개해야 판단할 수나 있을까 의문일 정도의 문제이며, 해당 사진의 내용은 "혐의 없음"이 아닌 "공소권 없음" 판결을 받은 이유에 대한 설명과 증거는 전혀 아닌 셈이다.

집단강간에 참여는 안했으나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을만한 행위는 예를 들어

(1) 간음 행위에 동참하기는 했으나 그 이전에 벌어졌던 폭행 협박 현장들에는 가담한 적이 없으며 이미 당시 피해자는 특정 인물들(몇 명인지는 확인할 길은 없다)에 의해 반항이 억압되어있었고 이러한 상태 하에 간음했기 때문에 특수강간이 성립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가 (친부놈의 합의 등으로 인해) 이에 대해 고소를 제기하지 못했을 가능성.[37]

(2) 일반 강간으로 처분된 만큼, '강간'이라는 행위가 있음을 알면서도 방조했던 경우에 강간을 한 주범(정범)이 피해자(혹은 그 친부놈)와 합의 등을 하여 고소를 못한 경우 덩달아 방조자 역시 공소권이 없어지는 경우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관련 사진에서 피의자들의 이름을 가려놨고, 범죄사실 4, 5, 7항은 물론 글쓴이가 연관되어 있다는 17건에 대해서는 전혀 확인할 수 없어 정확한 전후사정과 진실은 해당 글로는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3) 여전히 강간한 주범이지만 합의해서 공소권이 없어졌을 가능성,

(4) 너무 많은 가해자들 중 해당 피의자들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진술하지 못했을 가능성 역시 해당 글로는 사라지지 않았으며 당연히 이 중 어느쪽도 책임을 면하지 못할 사유다.

여기서 해당 사건에 대해 글쓴이는 "가해자들과 피해자들이 1여년동안 같이 술마시고 성관계를 하며 놀았다고 들었다."거나 중요한 것은 본인은 당시 강간이 "사람을 납치, 감금해 성관계를 맺는 것이 강간이라고 생각했고, 납치, 감금이 아닌 강제적 성관계[38]는 강간이 아닌 줄 알았다. 다른 가해자들 역시 피해자를 강간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따라서 방관이나 묵인한 적 없으며 그저 몰랐을 뿐이다." 등의 주장을 했는데 이는 전술한 내용 중 후자인 방조자에 대한 내용과 관계 있다. 심지어 본인이 무죄라고 주장하는 글에서도 이 주장은 당시의 간음 행위에 대해 납치 감금이 아닐 뿐[39] "비정상적인 행태로 벌어지는 중"이라는 사실을 당시의 본인도 인식하고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발언인 것이다!!!

여기서 글쓴이의 이 주장이 설령 사실 그대로라도 도덕적 책임은 물론 "합의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성관계강간 등의 반사회적 행위"라는 건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누구나 생각할 수 있으며 구성요건이나 법률적인 유죄 요소를 아주 명확하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아도 일반인의 상식 선에서 예상할 수 있는 것은 형법에서 "몰랐다."는 변명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만일 이 사건이 공소권이 남아 있었고 이에 대해 검사가 제대로 기소했다면 진술한 내용에 따라서는 "방조자로서 법률상 책임도 져야 했을 가능성도 매우 크다." 물론 진술 내용에 따라선 정범으로서 처벌받을 가능성은 덤이다. 그리고 드러난 사건의 전반을 볼 때 그와 같은 일이 그 오랜기간 벌어진 일에 대해 가해자의 친분관계에 있던 이들이 가해의 정황을 모르는게 가능한가 하는 비판과 의문은 여전하다.[40]

또 사진은 딱 한 페이지기 때문에 다른 사건에도 글쓴이가 정말 관련이 없는지도 알 수 없으며 피의자 부분에 가려진 이름에 글쓴이의 이름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판단할 수 없다.관련글의 댓글을 달아놓은 사람들이 "전부 밝혀라."라고(명예훼손을 조장하는 다소 어이없는 소리긴 하지만 어쨌든) 이야기하는 이유다. 전혀 객관적인 설명이 되질 않는다. 최소한 자기가 진술했던 내용과 피해자의 진술 전체를 전부 갖다 놓고 서로 비교해야 판단할까 말까 수 있는 부분이지 A4 반페이지 정도로는 확인할 수도 없는 내용이며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애초에 해당 부분은 하려고 맘먹으면 제일 앞페이지 도장 찍힌 걸 제외하면 자기가 직접 눈대중으로 작성하고 조작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부분.

당사자는 일단 3월 7일 합의금을 주지 않았다는 서류를 떼 오겠다고 했는데 당시 수사과정이 피해자에 대한 협박이 용인되는 수준으로 막장이었고, 친부 역시 막장이었기 때문에 해명이 될지는 의문이다.[41]

결국 글쓴이가 자신이 무죄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최소한 저 공소권 없음 부분을 혐의 없음, 죄가 안됨 등등으로 다시 처분받는 것 외에는 없다.[42] 추후 글쓴이가 최종적으로 공소권 없음 처분에 대해 정정받게 될 지를 지켜봐야겠지만, 아무튼 사진 2장으로 상당히 많은 부분을 확인할 수 있는 글을 올려주긴 한 셈이다.

그 외 해당 글의 내용에서 글쓴이는 자신과 같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은 이는 "억울한 사람들"이며 해당 처분이 수사기관의 폭언, 폭행, 짜맞추기 등으로 날조됐다는 주장을 했다.(뭐?) 누가 봐도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제대로 당한 사건이고 가해자가 축소된 사건이며 이미 그렇게 보도된 사실만 10여년 간 셀 수 없어 나무위키에 다 갖다놓지도 못하는 와중에 본격 사건을 조작해 가해자를 확대했다는 새로운 주장이라 신선하다.

이후 4월 11일 "더 이상 논쟁하지 않겠다."고 글을 올렸다.


5.4. 피의자의 네티즌 고소[편집]


황선미 경장을 잊어주자는 글?

당시 성폭행 혐의를 받다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은 이들 중 1인[43]이 자신을 비난한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명예훼손을 이유로 광역 고소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범죄 피의자의 신상을 퍼나르며 인신공격을 하는 것은 사적제재의 일환이고 네티즌 개인의 감정 해소을 위한 것일 뿐 공익이 주된 목적이라고도 볼 수 없어 유죄 가능성이 높아졌다.


6. 기타[편집]


여성가족부의 무능에 대해 비판할 때 이 사건을 언급하며 여성부가 그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으나 아예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사건이 여성부에 대한 비판 혹은 폐지에 대한 근거로 자주 제시되는 부분에 대해 서술하면 수사 진행 당시 피해자에 대한 경찰관의 막말, 피해자 신분을 언론 및 일반인에 노출, 피해자의 여경 수사 요청 묵살 등 다수의 피해자 인권침해, 가해자의 협박 방치 등의 사실이 언론에 발표되자 "경찰청장 사퇴", "손 놓고 있는 여성부 폐지" 등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장된 바 있다. 원문 이에 대응해 경찰은 관련 수사팀 해체 후 지역 경찰서장을 포함한 관련자 전보 등 조치와 여경이 포함된 새 수사팀을 사건에 투입했고 여성부는 인권위와 함께 해당 지역 방문 및 관계 부처와 협의하여 피해자 대책 마련과 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 구조 대책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원문현재는 삭제됨다른 기사

그러나 이때 굳어진 이미지로 여론이 악화되어 퍼지기 쉽고 해명은 인식되기 어려운 인터넷 여론의 특성상 결국 회복되지 못했고 이후 피해자가 서울 지역으로 전학을 시도할 때 각 학교들이 전학을 거부하여 피해자가 또 다른 피해를 입었다는 점, 그리고 나중에 회복이 미비해 피해자가 결국 가출 후 실종된 사실이 함께 언급되면서 '가만히 앉아 있던 여성부', '능동적이지 못한 여성부' 등의 비판을 받게 되었다. 사실 이 사건 때문에 욕을 먹었다기보다는 원래 여성부는 '이익이 되지 않는 여성 관련 사건들에는 관심이 없다'는 평가와 비난을 받아 왔고 이 사건 역시 그 사례 중 하나로 쓰였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2018년에는 아프리카TV에 이 사건의 가해자가 출연해 논란이 일었다. 기사

사건에 연루된 이 중 한 명은 고리대금업에 손을 댔다가 징역을 받기도 했다.

가해자 옹호 경찰 해임 청원이 진행되었고 재수사 청원도 올라왔다. 각각 1개월간 49명, 94명으로 마무리되었다.

2018년 10월 7일 해당 사건에 대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다시 올라왔다. 결국 611명으로 종료되었다.

2023년 한 여성이 네이트판에 "부모님이 결혼을 약속한 언니의 남자친구가 87년생 밀양 출신 남성이라는 이유로 반대한다"는 글을 게시해 인터넷상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해당 사건이 재조명됐다. #, 원본 또 다른 글이 올라왔는데 자신이 사생아고 어머니도 미혼모라며 마을 사람에게 몹시 박대 받고 학교에서 왕따에 시달렸다고 한다. #


7.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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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용의자는 115명이었다. 당시 정확한 조사 없이 흐지부지 조사가 끝난 사례도 있는 만큼 44명이라고 단정짓기 어렵다.[2] 흔히 "여성이 폭행을 당했다." 등의 제목의 기사가 나가면 성폭행을 당한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생겨난 추측성 기사들이다.[3] "밀양 고교생 44명에 당한 성폭행 사건 피해자, 8년이 지나도 악몽은 그대로" 이 단어는 예전에 조폭을 수사하던 경찰들이 만든 것이다.[4] 피해자는 밀양 출신이 아니며 가해자들이 채팅으로 유인해 밀양에서 범행을 저질렀다.[5] 확실한 점이 없는 이상 기소할 수 없는 것이 검찰이므로, 무고에 대한 사전 예방은 필수적이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불쾌감을 호소하지 않게끔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받았다.[6] 2012년제18대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7] 이는 이 사건 이후 일어난 유사 사건인 광주 인화학교 사건 당시 광주광역시 관계자들의 행태나 피해자들을 다룬 태도에서 그대로 드러난 문제점이기도 하다.[8] 부산여성사회교육원 지음. 《함께 하는 여성지역문화》 p.302 집단 성폭행 사건을 둘러싸고 새롭게 형성된 밀양에 대한 지역적 반감[9] 이는 밀양이 시 지역치고는 교통망이 부실한 것도 한 몫 한다. 밀양이 철도 초강세 지역이라 시외버스 교통편이 부족하며 밀양에서 바로 갈 수 있는 목적지는 서울, 부산을 위시한 경부선 라인, 그리고 주변 도시 정도밖에 없다. 순천, 광주광역시, 전주, 군산 등 호남권으로 가는 노선은 없는 데다 철도로 이동할 수 없는 주제에 호남권 제 1의 도시인 광주광역시로 가는 노선조차 없어 목적지가 다양하지 못해 시 지역치고는 지역간 교류가 다양하지 못하다.[10] 각색이 꽤 많이 진행되어 해당 영화가 본 사건을 소재로 하여 제작된 것을 모르는 이의 입장에서 관람하면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남학생들 뿐만 아니라 여학생들도 피해자에게 가해했으나 여학생들의 가해 행위는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 피해자 측이 가해자들에게 유인당하지는 않았다는 점, 사건이 피해자의 자택에서 발생했다는 점 등이 각색된 부분이다.[11] 다만 사회일반의 공분을 일으키는 발언만으로는 임용취소 혹은 퇴직을 시킬 법적 사유가 없다.[12] 경찰서 자유게시판은 실명이 드러난다.[13] 하단에 "기사 작성 과정에서 합격수기글 인용 부분에 오류가 있어 수정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14] 자의적으로 소년부에 송치해도 소년부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한 사건이라 판단하면 검찰에 재송치하고 검찰은 다시 소년부에 송치하지 못한다.[15] 당시 특수강간을 적용할 수 있었던 범죄임에도 대다수의 가해자들이 풀려나거나 약한 처분을 받은 것이 수사기관에 대한 비판점 중 하나다. 굳이 좋게 보려고 한다면 가해자들이 청소년이자 100여 명이었으니 수많은 인생을 끝장내지 않고 갱생의 여지를 두려고 했던 배려 있는 처분으로도 볼 수도 있지만 그 의도가 정말 무엇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며 정작 피해자 회복에 수사기관, 여가부 모두 방치하여 도리어 피해자를 수렁에 빠트려 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16] 후술되어 있듯 단순히 강제적인 억압을 확인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17] 강제적인 억압이 없었다는 말을 풀어 쓰면 다수가 현장에 있는 당시에 A가 피해자를 강간할 때 B등이 손 발을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았다던가 하지 않았다는 의미거나 피해자가 수십명의 가해자들을 1여년동안 심리적 억압 없이(즉,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신고할 수 있는 상태로) 자발적으로 따라가서 오랜 기간 반복해서 강간을 당했다는 소리다. 그러나 3건의 범죄사실에 대해 피의자가 다수임은 이미 사진에서도 확실히 언급되어 있는 사실이며 밀양 사건이 진행되는 중에 다수의 피의자로부터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는지는...[18] 그러나 후술되었듯 수사기관이 이들을 처벌하기에는 시대적인 제한점과 패소의 부담이 매우 큰 사건이기도 했다.[19] 영상 등을 촬영해서 "부모 등에게"알리겠다는 구체적인 수준이거나 "죽여버리겠다"는 등의 생명 등과 관련된 수준의 협박을, 개개인별로 따로 협박하는게 아닌 "가해자 전원이 빠짐없이 함께 실행"[20] 정황상 이 "놀러간 곳"이 범죄현장 중 하나로 보인다.[21] 물론 이 사건은 1회가 아닌 수십차례 가해 행위가 지속적으로 벌어진 참혹한 사건이기 때문에 가령 준강간 행위를 한 가해자 중 일부가 피해자가 항거불능인 상태를 인지하고 이를 이용해 추후에 다른 장소에서 추가로 범행을 저지르자고 의견을 나누고 범행을 저지르면 준강간 역시 특수강간이 적용된다. 보배드림의 글에서 글쓴이가 주장한 경찰이 확인하려 한 정황과 동일하다.[22] 이 항목의 글쓴이가 주장하는 내용과 동일하다.[23] 강간죄의 폭행, 협박의 범위를 좁히는 이유는 폭행죄, 협박죄의 폭행, 협박의 범위가 매우 넓어서(특히 폭행죄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폭행의 개념보다 훨씬 넓다.) 강간죄의 폭행, 협박을 그와 같이 본다면 강간죄의 성립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져서 상식적으로 강간으로 볼 수 없는 행위가 강간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강간죄 문서 참조.[24] 밀양 사건은 2005년 4월에 처분이 종료된 사건이다.[25] 변호사가 주장한 내용들이며 이것이 받아들여져 무죄가 되었음을 의미한다.[26] 심지어 이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차량에서 피해자에 의사에 반한 강제적인 간음을 했음을 가해자 본인이 시인했음에도, 그 과정의 폭행이 피해자의 항거불능 수준까지는 아니었다는 이유로[27] 뒤에도 한 번 더 언급했지만 승소율이 검사의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정도는 절대적으로 매우 크다. 때문에 대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린 이유에 대해 그러한 무죄로 판단할 만한 사유가 있어도 다른 증거를 바탕으로 대법원이 유죄를 인정하는 판례가 나오기 전에는 검사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자유롭게 공소제기하기는 사실상 힘든 부분이다. 또한 아무리 사법계의 정점인 대법원이라고 할지라도 사회적으로 반사회성이 분명한 형태의 행위를 기존의 법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법조계(학자들을 포함해)에서 대다수가 이의 없이 받아들일 만한 논리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 연구되어야 한다. 좋게 보면 그만치 자칫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쓸 사람을 최소화하는 사법정의에도 부합하지만 역으로는 그만큼 필연 진짜 가해자가 풀려나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문제라는 이야기. 강간에 있어서는 이 문제가 2005년까지 대략 20~30년간 이어져 온 셈이니 분명 너무 늦은 대처임을 비판하는 것 역시 틀리진 않겠지만, 강간은 현대에도 사기 등과 함께 입증하기 가장 어려운 종류의 범죄 중 하나라는 점과, 검사의 승소율 문제는 오히려 한국보다는 법체계가 더 선진화되었다고 평가받는(즉 피의자, 피고인의 인권이 좀 더 체계적으로 보호받는) 미국, 일본, 독일 등에서 심각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피상적인 비판보다는 좀 더 근원적인 해결책을 지금보다도 더 오랜 기간 깊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자세한 내용은 검사 항목 참조.[28] 실제 밀양 주민들과 가해자들의 주장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즉, 단순히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뻔뻔한 발언들이 아니라 법률적으로 우위에 서기 위한 주장이라는 의미다. 보배드림의 글에서도 글쓴이가 "폭행·협박은 1월부터가 아닌 11월부터 언급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 역시 "동영상이 촬영된 시점만 강간이다."라는 맥락에서 법률적 우위에 서기 위한 주장인 셈이다.[29] 경찰의 신문조서는 피고인이 내용을 부정하면 증거능력이 없지만 경찰이 증인으로 나와 수사과정을 증언할 수 있고 이를 신빙성있게 받아들일지는 역시 법관의 재량이다. 피고인(가해자)이야 당연히 "자긴 안 그랬다."고 주장할 거고 그리 되면 증거로 쓸 수도 없는 신문조서를 경찰이 괜히 열심히 유도신문하고 타자를 두들겨 입력하는게 아니다.[30] 물론 밀양 사건이 그 심각성으로 인해 사회 전반이 주목하고 있었던 사건이었던 점과 2005년 7월 판례에서 나타난 당시 법조계 전반에서도 "도주, 구조 가능성=반항이 가능한 상태"라고 판단하던 문제에 대해 이미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던 점 등을 볼 때, 밀양사건 역시 “폭행 장면이 포함된 집단 강간 행위가 직접적으로 담긴 SNS영상의 내용과 기타 협박 등의 정황상, 피해자가 장기간 폭행, 협박에 의해 항거 불능의 상태에 있었음이 인정된다.”고 하여 최소한 대법원에서는 승소했을 가능성은 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당시 피해자를 변호했던 변호사와 2005년 7월과 2012년 7월 판례가 나온 후의 관점에서의 평가일 뿐이다.[31] 피해자에게 이전에 폭행, 협박 등이 가해진 사실이나 항거불능 상태임을 몰랐다고 주장하는 등이다.[32] 가해자의 보복 등이 두렵기는 하겠으나, 그럼에도 강간을 당하기 싫다면 가해행위 전에 교사, 경찰에 신고했으면 되지 않느냐는 논리로. 지금은 이 논리만으로는 무죄가 선고되지는 않지만, 당시에는 거의 100%로 무죄였다.[33] 항거불능이 부정되면 앞서 경찰이 확인한 공모, 모의의 의미가 없어진다.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니 강간이나 준강간 자체가 성립이 안되니 특수강간은 논의조차 되지 못하는 것.[34] 검찰이 보기에 경찰의 수사가 얼토당토않거나 증거가 불충분하면 당연히 혐의없음 처분이 맞다. 검찰이 보기에도 혐의가 있다고 충분히 판단할 만한 이유가 있으나 안타깝게도 공소를 제기 못했다는 의미다. 바꿔 말하면, 심지어 위에 길게 서술된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할 만한 강제력"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과는 별개라는 의미다. 당연하지만 1장의 사진으로 그 많은 사건이 모두 들어있을리가 없다. 강제력을 확인할 수 없다고 위 사진에서 언급된 것은 22건의 사건 중 3건에 관한 서술 뿐이다.[35] 얼마나 많은 가해행위가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22건 이상일 수도 있다) 글쓴이와 관련된 사건 중 '공소권 없음' 사건은 3, 4, 7, 9~22까지의 17건이다.[36] 기록이나 했으면 다행이겠지만 일반적으로 이런 일을 검사가 예상하지는 않기 때문에, 처분에 필요한 내용 외의, 수사과정에서의 구체적인 진술 내용등을 자세히 기록하는 일도 거의 없다. 그런거 다 입력하면 검사 및 담당 공무원 과로로 실려간다. 당장 해당 글의 사진에서도 왜 경찰이 "현장에 어떠한 형태의 가해행위가 있었기에 특수강간으로 의율"했고 검사는 이를 "어떠한 이유로 기각"했는지 굳이 구체적으로 적어놓지도 않았다. 딱히 검사만의 문제가 아닌게, 재판관이 작성하는 유죄 판결문 역시 피고인이 무죄를 주장했던 내용은 왜 무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에 대해 일부 예외(정당방위 등)를 제외하고 거의 적지 않는다.[37] 항거불능 상태를 몰랐다면 무죄 처분이겠으나 공소권 없음이기 때문에 이 행위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았다면 최소한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는 알고 있어야 한다.[38] 이 주장대로라면 데이트 폭력 정도로 인식했다는 의미로 보인다. 물론 이 역시 강간 맞으며, 경찰의 의율 의도를 볼 때 글쓴이가 단순히 자신의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혹은 자신의 범행을 부정하고 축소하려는 주장일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학교폭력의 사례에서 피해자의 피해 사실과 달리 가해자들이 하나같이 "장난이었다."고 말하는 사례와도 유사하며 후에 경찰의 판이한 대응으로 사건 수사에서 대비되는 초안산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에서 가해자들의 변명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39] 첨언하자면, 강간 행위에 납치감금죄가 추가되면 경합범이다. 쉽게 표현하면 강간과 함께 별개의 죄가 성립하고, 당연히 단일 강간과 비교해 더 세게 처벌된다.[40] 여기서도 일반강간으로 처분한 데 대해 안타까운 사실은 어쨌든 확실한 가해자들만이라도 특수강간으로 처분했다면 피해자 친부와의 합의로 인해 풀려난 가해자들은 물론, 덩달아 풀려난 해당 사건에 관련 있던 이들 역시 강간범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 방조범으로라도 처벌할 수 있었으며 공범관계의 가해자 간의 증언을 토대로 현재는 증거부족 등으로 풀려난 이들 중 직접적인 가해자들을 색출해내기도 더 용이했다.[41] 일단 주장대로라면 이건 잘못된 수사에 의해 피해자가 진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문제로 이는 이미 합의금의 문제가 아니며 설령 합의와 관련 있다고 해도 공식적으로 친부에게 직접적으로 돈을 쥐어준 건 주범급이면서 돈 많은 1~2명 뿐이었다면 등. 형소법에서는 공범 관계에 있는 반의사불벌죄 혹은 친고죄의 경우 단 한명의 범인에 대한 고소를 포기 혹은 취소하거나 불벌의 의사를 밝힐 시 나머지 공범자들도 자동적으로 공소권이 없어지는 기본 원칙이 있다. 때문에 애초에 공문서로 확인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닌 거다.[42] 그러나 불기소처분은 그 종류가 어떤 종류이든 굳이 정정해 줄 "법익"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통상적이기 때문에(다시 안 해 준다는 얘기다) 진짜 명예훼손을 각오하고 전문을 가리는 부분 없이 전부 공개하는 것 외에는 가능성이 희박하다.[43] 기사 내용으로 보아 윗 문단에서 무고를 주장한 사람과 동일인물로 추정된다.